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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작가가 풀어 쓴 소설로 된 『삼국지』를 읽은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처음 『삼국지』를 읽을때는 나라를 차지하려 싸움만 하는 내용들이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열 권으로 된 책을 겨우 다 읽고는 이십 년 동안 읽지 않았다. 아이들을 키우며 아이들에게 삼국지만은 읽혀야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100권 가까이 되는 만화 전집을 사 주었고, 아이들은 밤을 새워가며 재미있게 읽었다. 나는 삼국지 만화를 읽어주어야겠다 생각만 했지 다른 소설들을 읽느라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다. 그리고 몇해를 지나왔다. 오래전에 읽은 삼국지를 이제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것 같아 다시 읽어야 할 때가 된것 같다고 느낄 즈음에 이 책을 만났다. 나관중이 썼고, 모종강이 풀어 쓴 『삼국연의』다. 원문대역이라 삼국지를 제대로 읽을 수 있겠다 싶었고, 이십 년 전의 기억을 되살리고 싶기도 했다.
난 『삼국지』가 그저 삼국지 인줄만 알았다. 위, 촉, 오 세 나라를 가리키는 삼국이야기. 삼국을 다스렸던 인물들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쓴 이야기일 거라고만 짐작했다. 저자 박기봉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 여태 알아왔던 『삼국지』가 원래는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였다는 것. 말 그대로 '삼국지'는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 처럼 역사서를 나타낸다는 것. 『삼국연의』는 삼국시대의 역사적 사실들을 충실하게 기록할 필요도 없고, 진실이어야 할 의무도 없는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과 예술적 표현인 역사소설임을 이야기했다. 우리도 역사 소설을 읽을때 사실적인 인물과 허구의 인물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버무려 있고,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상상력을 마음껏 펼칠수 있게 하지 않나. 『삼국연의』도 그러한 역사소설인 것이다.
자 이제 소설을 읽어볼까. 총 12편의 이야기로 되어 있는 『삼국연의』의 첫 번째 책은 '도원결의'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는 유비, 관우, 장비가 만나 복숭아밭에서 형제의 의를 맺고 마음과 힘을 합쳐서 의로운 일을 하겠다는 맹세를 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삼국연의』에서 가장 현명한 군주라는 유비, 그의 곁에서 의형제를 맺은 관우와 장비가 보필하니 가장 든든해보이는 유비였다. 유비는 아랫사람을 현명하게 다룰줄 알았고, 간계를 쓴 편지를 받더라도 그 의중을 파악할 줄 아는 이였기에 이에 대처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다른 장수들은 간계를 쓰면 간계에 넘어가고 휘하에 있는 장수들을 부릴줄 몰랐다.
예부터 남자들은 여자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지만 여자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물론 여자지만 여자를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왕윤이 동탁과 여포를 잡기 위해 가기 초선을 쓴 '연환계連環計'를 보아도 그렇다. 왕윤은 여포에게는 딸이라 칭하며 초선을 시집보내기로 해놓고는 동탁에게는 가기라 하며 바치겠다고 한 것이다. 동탁과 동탁의 수양아들을 이간질시켜 이 둘을 치겠다는 이간계였던 것이다.
여성을 앞세운 계책은 1권에서 또 나타난다. 양표가 헌제에게 말한 계책으로 곽사와 이각의 사이를 이간질시키는 반간계反間計를 쓴 것이다. 질투가 많은 곽사의 처를 이용해 곽사가 이각의 처와 정분이 있다고 하며 이 둘을 갈라놓는 것이다. 여자의 질투가 어떠한 결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알수 있는 부분이었다.
천하의 간웅이라고 알고 있는 조조를 말하는 부분도 참 재미있다. 조조의 숙부 허소가 조조를 가리켜, '치세에는 유능한 신하가 될 테지만, 난세에는 간사한 영웅이 될 것이다'라고 말한 부분이었다. 숙부 허소는 조조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조의 행보를 보면 자기가 살기 위해서 곁에 있는 이들을 이용하고 이용당하는 부분을 보면서 맞는 말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즈 같은 세상에서도 조조같은 간웅들이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사람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형제라고 불리우는 이들도 이용한다는 점이 특히 그럴 것이다.
사람을 제대로 보고 적재적소에 쓸 줄 안다는 것. 이는 사람을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 사람을 제대로 부릴 것이다. 사람을 제대로 부리지 못해 피해를 많이 보는 것처럼, 사람을 제대로 보는 눈을 지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삼국연의』1권에서는 모종강의 '삼국지 읽는 법'도 괘 여러 페이지로 적혀져 있었고, 한 회가 끝날때마다 모종강의 서시편이 수록되어 있어서 『삼국연의』를 더 재미있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오래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삼국에 대한 이야기를 읽는 느낌이었다. 서로 삼국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 나라를 다스리지 못하면 누군가의 그늘 아래서 때로는 쉴 줄도 알아야 하고 숨도 골라야 하는 법. 힘이 되지 않는데도 무작정 달려가는 것보다는 백배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삼국연의』1권을 읽었는데 점점 재미있어져서 큰일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달랑 두 권.
매 회가 끝날때마다, '~~ 어찌될지 모르겠거든 다음 회를 읽어보아라.' 이 문장 때문에 다음 회가 궁금해 미치겠다. 읽지 않고는 못배긴다. 다음 회를 향해 손가락이 바삐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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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삼국지연의 = 삼국연의. 이 등식은 반만 맞습니다. 삼국지 자체는 위, 촉, 오 삼국의 실제 역사서. 한마디로 조선왕조실록처럼 사서고요, 삼국지연의는 삼국지라는 역사서에 다양한 설화, 민간전설, 이야기 등이 합쳐진 역사소설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출판사는 (엄연히 삼국지라는 사서가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연의를 삼국지로 둔갑시켜 출판해왔지요. 그러다 보니 실록인 양 여기며 사실과 허구를 혼동하게 되고 우리에겐 익숙한 관용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도 사실 처음 <삼국연의>라는 제목을 봤을 때 흔히 알고 있던 삼국지(실제로는 삼국지연의지만요)랑은 다른 건 줄 알았어요.
과감히 털어놓자면 오래전에 1권, 2권 정도까지 읽긴 했었는데 어느 출판사 책인지 기억도 안 나고, 당시엔 '이걸 그렇게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읽어야 하는 거라고 말한단 말이야?' 하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저한테는 책장 넘기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어요. 매번 재미를 못 붙이다 보니 1권의 도원결의만 기억납니다 ^^;;
그런 제가 며칠간 이 책을 읽으며 재밌네~ 읽을만하네~ 하고 있으니, 내 취향 아니야 라고 생각했던 것도 결국 계기가 맞으면 잘 읽히게 되는구나 싶네요. 다 읽지 않은 상태지만, 구성이 참 좋아서 간략히 소개 글부터 적게 되었습니다.
책 앞부분에는 역자 박기봉 님께서 이 책을 출판하게 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읽으면서 든 생각이... (미적대다가 결국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게 되었으니) 이 책으로 삼국연의를 제대로 접하게 된 게 오히려 잘 된 일이구나 싶더라고요. 다양한 삼국지연의가 나와 있는 가운데 비봉출판사의 삼국연의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지요.
최선의 선택인 이유! 1. 앞서 언급했듯 삼국지와 삼국연의 차이를 확실히 해주고 있고요. 2. 우리에게 정본처럼 인정받는 나관중본이란 것에 대해 파헤칩니다. 역자는 이 책이 모종강본으로 대역했다고 하는데 왜 모종강본이란 말이 진짜인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관중은 엮은이 수준이었다면 이후 모종강과 부친 모륜이 다양한 평을 넣고 대폭 손질하면서 이후 모종강본 외 다른 판본은 사라지게 되었다고 해요. 오늘날 전해지는 것은 바로 모종강본이라는 것이지요. 3. 진정한 국내 최초 완역본입니다. 삼국지라는 사서가 바탕이 된 만큼 실제 '말과 글의 기록'은 약간의 오역에도 문장의 의미가 달라진다면서 그간 나온 책들의 오역을 꼬집으며 원문에 충실한 정직한 번역을 했고, 뭣보다 모종간본 삼국연의를 구성하는 서시 평과 협평, 그리고 모종강의 삼국연의 읽는 법까지 모두 번역해 수록했다는 점입니다.
1권에 모종강의 삼국연의 읽는 법이 삼국연의 본문보다 앞서 실려있는데 이 부분이 상당히 만족스럽더라고요. 번역도 매끄러워 옛사람인 모종강의 글이 아닌 번역자님의 추천사처럼 생각될 만큼요. 배경지식이 없는 저 같은 사람에게는 이렇게 친절한 글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이제 제대로 된 삼국연의를 읽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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숱하게 나온 <삼국지> 번역서마다 제각각 특징이 있는데요, 비봉출판사 <삼국연의 (전 12권)>야말로 모종강본을 제대로 완역한 책이네요. 역자는 왜 나관중본이 아닌 모종강본이 정본인지, 왜 이 책이 모종강본의 완역이라 할 수 있는지 꼼꼼하게 일러두고 있습니다. 기존 나관중본이라 하는 삼국지는 삼국연의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개작, 번안인 셈이고 그나마 모종간본이 기존에 하나 나왔었지만 역시 모종강의 평론이나 삼국연의 읽는 법이 빠져있었다고 해요. 역자 서문을 읽으며 비로소 제대로 된 <삼국연의>를 읽게 되는구나 하는 신뢰가 생깁니다.
비봉출판사 <삼국연의>는 모종강본 삼국연의를 번역한 총 120회로 이뤄진 1권~8권까지와 모종강본 삼국연의 원문과 주석이 담긴 9권~12권까지 총 12권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매회 모종강 자신의 평론을 더한 서시평은 물론, 삼국연의 읽는 법까지 완벽하게 수록되어 있어요.
말과 글의 기록만큼은 약간의 오역에도 문장 의미가 달라집니다. 원문에 충실한 정직한 번역이라 자신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삼국연의 1권 도원결의를 읽기 전에 모종강이 쓴 <독삼국지법>부터 소개하는데요, 왜 삼국연의를 읽어야 하는지, 삼국연의를 읽는 중에 어떤 점을 염두에 둬야 하는지, 다양한 인물들의 유래와 선악을 통해 어떤 부분을 고찰해 봐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 후세에 향기를 남기느냐 혹은 악취를 남기느냐 하는 것은 모두 그 사람이 어진가 어질지 못한가에 달려 있고, 그가 군자인가 소인인가에 달려 있으며, 그의 행동이 의로움을 추구하느냐 이익을 추구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 - p43
원래 모종강본 삼국연의에서 모종강의 서시평은 매 회차 시작 부분에 실렸지만, 이 책에서는 매 회차 끝에 자리 배치했는데요. 오히려 이 구성이 훨씬 나은 것 같더라고요. 미리 서시평을 읽어버리고 본문을 읽으면 서시평때문에 스포를 알게 된다고나 할까요. 매 회차 본문을 읽은 후 모종강의 서시평을 읽으면 미처 놓쳤던 부분을 되새김할 기회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본문에는 괄호로 초록색으로 구분한 모종강의 협평이 곳곳에 있는데요. 제가 그동안 삼국지(실제 삼국연의)라는 제목의 1권을 몇 차례 접하면서 큰 재미를 얻진 못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을 빵빵 웃음 터뜨렸는지 몰라요. 비봉출판사 <삼국연의>는 모종강의 협평, 서시평을 완벽히 번역했다는 장점을 역자가 들었었는데 그때만 해도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네요. 이 협평이란게 우리가 책을 읽으면서 느낀 생각을 여백에 적어두는 것과 같더라고요. 괄호 속의 글은 모종강의 생각, 비평인 셈이죠.
고상한 책인 줄 알았더니(이 생각이 바로 제대로 삼국연의라 일컫지 않고 역사서 삼국지와 혼동하게 한 출판사들의 잘못으로 인한 영향이죠) "종놈의 새끼야", "왜 이놈을 주먹으로 때려서 골로 보내지 않는단 말인가.", "잠꼬대 같은 소리 하고 있다." 등 거칠 것 없는 발언이 쏟아지는 모종강의 협평을 읽는 재미를 절대 놓쳐선 안 될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모종강의 협평, 서시평때문에 삼국연의가 재밌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 현덕 曰, "몸을 굽혀 자기 분수를 지키면서 천시天時를 다려야지 운명과 다투어서는 안 된다 (屈身守分, 以待天時, 不可與爭也)."』 - p419
<삼국연의> 1권은 삼국이 되는 시발점을 다루고 있습니다. 동탁의 난, 조조의 격문으로 제후들이 군사를 일으키고 조조, 손견, 유비, 관우, 장비를 통해 하루 동안에도 승패가 뒤집어지는 변화무쌍한 세상을 이야기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간웅 조조가 인재를 모으는 장면이 인상 깊었어요. 한 사람을 천거하면 그자가 또 다른 인재를 천거하는 식으로 엮어진 인간관계. 그러다 보니 조조의 수하에 모신, 맹장들이 아주 많아졌습니다. 재주 있는 사람을 보면 좋아한 조조의 능력이죠. "차라리 내가 천하 사람들을 배반할지언정, 천하 사람들이 나를 배반하지는 못하게 할 것이오."(p180)라고 당당하게 말한 조조는 자기 자신이 잔인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것 자체가 오히려 명석함을 의미합니다. 간사한 영웅 조조, 그와 대립할 유비, 관우, 장비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흥미진진합니다.
삼국지의 매력은 정직한 자와 사악한 자, 온갖 인재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가득해서입니다. 모종강은 삼국연의를 읽는 것은 정말이지 소설가들이 쓴 소설책 수만 권을 읽는 것보다 낫다고 했는데요, 그의 협평이나 서시평을 보면 인물의 우수성과 교훈도 물론 있지만 삼국연의 자체의 평론도 많이 했습니다. 소설로써 작문법, 서사 솜씨, 구성기법을 극찬하며 요즘 소설가들은 이렇게 하지 못할 정도라고요. 매 회차 끝날 때 '끝내 ~ 어찌 될까? 다음 회를 읽어보라.'하며 예고하는데 일일드라마처럼 딱 긴장감이 오르는 시점에 끝나는 감질나는 구성은 독자가 잠시라도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데 큰 공을 세우더란 말입니다.
넥슨의 모 게임도 모종강본을 배경으로 할 정도로 이젠 제대로 된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픽션만 재밌게 읽고 싶다면 아무거나 골라잡아도 상관없겠지만, 우리가 삼국연의를 읽는 이유는 그 속에 담긴 지식, 정보, 교훈이라는 매력 때문 아니겠어요. 그렇기에 제대로 된 정본을 완역한 이 책을 선택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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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이 책 저 책을 읽으며 삼국지 세계에 빠져들었으나 으레 원저자인 나관중의 이름만 알고 읽었지 옮긴 이에는 주목하지 않고 읽곤 했었다. 그렇게 가리지 않고 삼국지를 읽다가 저자, 정확히 따지면 편역자의 이름을 확인하고 읽은 것은 당시엔 길천영치(吉川英治)란 이름으로 알고 있었던 일본인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가 쓴 삼국지로, 유비가 어머니에게 드릴 차(茶)를 사기 위해 낙양으로 향하다 황건적을 만나 봉변을 당하고 이 과정에서 부용 아가씨도 만나고 장비도 만나게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이 특징인 삼국지였다. 이 길천영치 버전 차(茶) 사러 갔다가 황건적을 만난 유비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삼국지가 등장한 것은 우리네 역사로 따지면 일제 시대로, 수 십 년 시간이 흘러 민족은 해방이 되었건만 우리네 삼국지는 일본인 작가 길천영치가 쓴 삼국지의 굴레에서 쉬이 풀려나지 못했었다. 이름난 작가 또는 이름난 만화가가 그린 삼국지, 심지어 라디오에서 성우들의 더빙을 통해 방송된 삼국지도 황건적과 유비, 유비와 장비의 만남을 극적으로 그려낸 요시카와 에이지 버전 삼국지의 영향에서 영 자유롭지 못했더랬다.
책으로는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요 게임으로는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를 즐기며 일본인의 눈으로 본, 그리고 일본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삼국지에 우리네 삼국지 팬들이 중독되었다. 그러한 점을 내심 아쉽게 여겼던 차에 등장한 것이 문장력 하나만큼은 더없이 고풍스러운 이문열 작가가 쓴 민음사판 평역 삼국지였다. 후반부에 가면 독창적인 부분이 줄어들고 스토리 진행에 급급하다는 것이 느껴지긴 하다만 전반부만큼은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이문열만의 글솜씨를 한껏 보여준다. 이문열만의 글솜씨를 한껏 보여줌이 지나친 부분도 없지 않긴 하지만, 요시카와 에이지 버전 삼국지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기존 한국의 삼국지 출판 문화를 생각해본다면 이문열 특유의 장광설마저도 반갑게 느껴졌었다.
작가 이문열이 그 정치적 편벽으로 인해 주류 평론계와 담을 쌓은 지 오래이며 제일 잘 팔리는 책, 제일 이름난 저자를 비판해야 반짝이라도 인지도를 올릴 수 있음이 출판업계의 업(業)인지라 이문열 버전 삼국지는 단어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혀가며 비판을 받았고 정치적 반동을 호되게 후려쳤다는 명성을 얻은 이가 쓴 책들이 연이어 출판되었다. 허나 그렇게 수많은 비판을 받았음에도 가장 잘 팔리는 삼국지 책이 이문열 삼국지임은, 비판의 십자포화를 받았음에도 한국 내 횡행하고 있는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시대를 끝낸 이가 이문열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일이리라.
이후 강호에 이름난 군웅들이 저마다 봉기를 하고 나서듯 당대 출판계의 지가(紙價) 꽤나 올렸다는 작가들이 연이어 저마다의 삼국지를 출판하기 시작했다. 에도 시대 코난 분산(湖南文山)의 통속 삼국지를 비롯한 일본 문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시대를 끊어내고 우리네 작가들이 저마다 말과 글로 한껏 멋을 부린 삼국지를 맞이하게 된 것은 필경 반가운 일일진데 백가쟁명의 시대엔 옥석(玉石)을 가리기가 쉽지 않은 법, 일부는 자신만의 삼국지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기존 삼국지 세계관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삼국지를 만들기도 하고 일부는 지나치게 편협한 자신만의 인물관으로 마치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행인의 발목을 자르듯 삼국지 등장인물들을 함부로 재단(裁
우리네 땅에서의 삼국지 연의를 둘러싼 세태가 이렇게 돌아가고 있을 때 삼국지의 원국(原國)이라고 할 수 있는 중국에선, 정치적 목적에 따라 조조와 사마의를 띄워주는 삼국지 재해석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수 백년 역사를 거치며 생겨난 유비 관우 제갈량 중심 삼국지의 세계관을 뒤집고 조조 중심의 소설, 조조의 고민에 공감하는 영화가 우후죽순격으로 만들어졌다. 망탁조의(莽卓操懿)라고 하여 왕망과 동탁, 조조와 사마의 네 명을 한꺼번에 묶어 비난하던 것이 오랜 기간 동안 삼국지 세계관을 지배해온 인물관이라고 생각하면 지금의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삼국지 평론은 당황스럽다 못해 황당할 정도라고나 할까.
이젠 저마다 각자의 입과 손으로 삼국지를 말하고 쓰는 시대가 되었다. 요시카와 에이지의 시대로부터 벗어난, 다양한 관점들을 내세운 삼국지의 등장이 반갑기도 한 반면 그 색다름이 지나쳐 삼국지 정확히는 삼국지 연의가 가진 본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드는 요즘, 원점 회귀를 선택한 삼국지 서적이 나와서 개인적으로 큰 반가움을 느끼게 된다. 한자의 병용(倂用)을 줄이다 못해 한글로만 이뤄진 삼국지를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기도 하는 시대이다보니 호랑이의 위세를 가진 듯한 장군이라는 뜻을 가진 호위장군(虎威將軍)이란 단어의 뜻을 제대로 독자에게 알리지 못해 호위, 즉 보디가드 노릇을 하는 장수로 호위장군이란 단어의 뜻을 착각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작금의 시대가 이러하다보니 인물이며 관직, 지명에서 고사와 시부(詩賦)에 이르기까지 한자(漢字) 원문을 충실히 수록한 이 책의 가치가 더욱 빛난다고 할 것이다.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를 번역하거나 그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에 약간의 변용을 하거나 나관중 본 삼국지를 내세우거나 자신만의 삼국지 세계로 빠져드는, 기껏 모종강 본임을 내세웠다고 해도 빠진 부분이 있거나 모종강의 이름이 아닌 나관중의 이름을 슬쩍 내세우게 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 책은 나관중이 아닌 모종강의 이름을 크게 내세우고 자의적인 변용보다는 번역에 충실히 임하면서 기존의 모종강을 내세운 삼국지 서적에서 빠진 부분을 충실히 수록하였다.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삼국지란 세 글자 이름 대신 삼국연의란 제목으로 독자에게 선보이며 연의로서의 충실함을 내세우고 있는 이 책, 삼국지 연의의 원점을 살펴보고자 하는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이 책 1권의 마지막인 p.448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있다.
지금 사람들은 <삼국지>를 읽으면서도 여전히 다른 이야기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이는 <삼국지>를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모종강의 서시평(序始評) 속 문장이긴 하지만 어쩌면 정통 삼국지 연의의 참맛을 선보이고자 하는 이 책 삼국연의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낸, 일종의 출사표에 가까운 문장이 아닌가 싶다.
현직 출판사 대표라는 이(비봉 출판사 박기봉)가 책을 썼는데, 최근 모 출판사 대표 李 모가 직접, 정확히 말하자면 가상의 필명(筆名)을 내세워 책을 내면서, 불문학 번역가로 오랜 시간 유명세를 누려왔던 김화영 교수를 지목, 김화영 교수가 쓴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은 오역(誤譯)으로 가득 차 있다는 주장을 내세워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가 하면 자신의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김 모 통속작가가 쓴 상업소설을 자사(自社)가 출판한 이방인 번역본과 나란히 붙여 놓고 세기의 대결, 금세기 최고의 소설을 선택하라! 이벤트를 여는 등의 공격적인 마케팅을 선보이며 출판업계 그리고 독서가들 사이에 떨떠름한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가 생각나서 출판사 대표가 직접 저자로 나선 이 책은 얼마나 전사적(全社的)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설까 궁금했었더랬다. 기존의 삼국지 서적 내지 이번 이방인 오역 논쟁에서 그렇듯 가장 잘 팔리는 이문열 삼국지를 할퀴고 깨물면서 자신의 책을 대중적으로 알리진 않을까 예상했었으나 새로운 삼국지 서적이 나올 때마다 으레 통과의례처럼 뜯기던 이문열을 또 한 번 비난하여 이전투구(泥田鬪狗) 속 반짝 주목을 끌기보다는 출판인으로서의 정도(正道)를 택해서였는지 여태 그런 시끌벅적한 노이즈 마케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이채롭다.
김성탄의 추천사와 모종강의 서문과 협평, 여기에 부록으로 실린 지도는 삼국지 독자들로 하여금 모종강본의 매력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역자(譯者)로서의 꼼꼼한 번역과 정통 출판인으로서의 군자다움이 돋보이지만 한 가지 미미한 단점을 찾자면, 현덕曰: 왕윤曰: 태사자曰: 등 曰과 : 표시가 연이어 붙어 있는 부분은 눈에 살짝 거슬린달까. 가로 왈(曰)과 : 표시 대신 현덕이 얘기하길, 왕윤이 말하되, 태사자가 답했다 등으로 해당 부분을 한글로 풀어서 쓰든지 한자 曰을 굳이 사용하고 싶다면 의미가 중첩된다고 볼 수 있는 : 표시를 생략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또 하나 지적하자면, p.110에 나오는 제1회 모종강 서시평의 일부분이자 책의 가장 맨 뒤에도 등장하는 문장이 약간 어색하다는 점이다. '요즘 사람들은 동맹이나 맹약을 맺을 때 반드시 관제묘에 가서 절을 하지만,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이 복숭아밭에서 의형제를 맺을 당시 어떤 귀신에게 절을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맹세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에 맹세해야지 어떤 귀신에게 맹세해서는 안된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로부터 알 수 있는 것은, 맹세하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 속에 맹세해야지 어떤 귀신에게 맹세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정도로 문장의 끝부분을 바꿔야 좀 더 자연스러운 문장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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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연의1...대의를 위해 모인 제후들의 딴주머니? 한 때 삼국지연의에 심취하여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살아오면서 틈틈이 접해왔던 삼국연의 관련 일화는 평생 주변을 맴돌았다. 우연히 30여년이 흐른 상태에서 삼국연의를 대하면서 가슴뭉클한 감동의 세계로 다시 들어가는 황홀한 기쁨을 맛보았다. 새롭게 등장한 삼국연의는 기존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완 다른 모종강본을 번역한 게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삼국지’란 중국의 삼국시대(서기 220-280년) 역사를 기록한 사서를 지칭하는 고유명사(P.12)이지만 ‘삼국지연의’는 사서가 아닌 소설이다. ‘연의’라는 단어 자체가 어떤 사서의 내용이나 역사적 사건 등에 작가의 상상과 허구를 덧붙여 독자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풀어쓴 이야기라는 뜻(P.12)이다. 두 번째 특징이라면 나관중은 촉에 정통성을 부여한 반면 진수는 위나라에 정통성을 부여했고 기간 역시 전자는 기간을 늘려 184-280년까지 인데 반해 후자는 220-280년까지이다. 모종강은 청나라 초기 강희연간에 기존 240회 통속연의를 120회로 줄이고 문장을 수정하여 논찬 부분을 삭제하여 문학예술성을 높이 삼국지통속연의를 삼국지연의 혹은 모종강본, 모본으로 불렀다.(P.18) 세 번째 특징은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어서 대조하기가 쉽다는 점이다. 네 번째는 모종강본을 구성하는 서시평, 협평, 삼국연의 읽는 법등도 번역했다는 점이다. 다만 원서 서시평은 매회 앞에 오지만 이 책은 매회 끝에 배치하는 것이 다르다. 다섯째, 삼국지 읽는 법을 서술하여 일종의 매뉴얼 이해하기 차원으로 복선이나 스포일러 역할을 한다. 주요 내용을 미리보기 하는 역할로 보아도 된다. 이야기상의 차이점, 대칭, 유사점등을 다양하게 압축해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번역자의 주석을 통해 복선을 알려주고 세세한 설명을 부가함으로써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쉽게 알려준다. 다만 지나친 설명으로 인해 때로는 궁색한 변명?으로 비춰지기도 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처음 대하는 독자들을 위해서는 괜찮은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총1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나 실제 이야기는 8권으로 끝나고 9-12권까지는 원문을 싣고 있다. 서평으로 쓰고 있는 1, 2권은 글의 도입부로 삼국이 형성하는 과정을 서술해주고 있다. 특히 1권은 유비, 조조, 손권이 자리잡아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유비의 경우 관우, 장비를 만나 도원결의를 통해 의형제를 맺고 황건적 토벌에 나서면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과정과 함께 제대로된 자리를 잡지못해 이리저리 휩쓸리며 다양한 제후들과의 접촉을 통해 경험을 익히고 백성들의 마음을 얻어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조조는 동분서주하면서 간웅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준다. 실질적인 영웅으로 떠오르면서 삼국 중 제일 먼저 자리를 잡아 안착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많은 인맥과 간웅으로서의 리더쉽을 발휘해 제사람 만들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과연 영웅다운 면모이구나 싶다. 다만 진정한 영웅이 아닌 간사한 영웅으로서의 그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다양한 기회가 소개된다. 마지막으로 손견은 젊은 영웅이지만 반쪽 영웅에 지나지 않아 도리어 화를 당하고 그의 아들인 손책에 의해 과업이 달성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아직 손권의 본격적인 무대는 펼쳐지지 않고 있다. 황제는 초반엔 황건적, 하진, 십상시에 의해 곤란을 겪다가 동탁, 이각, 곽사를 겪으면서 더욱 힘을 잃어 조조에게 의탁하는 우를 범한다. 이리를 피하려다 호랑이굴로 들어가는 격, 더 이상 황제는 존재가치를 잃게되는 지경에 이른다. 유비는 황건적을 토벌하기 위해 민병대를 조직해 의로운 대열에 나섰지만 빽 없고 조정에 댈 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적절한 직함도 없었기에 합당한 대우조차 받지 못한 채 변방을 전전하다 서주태수 도겸의 부탁으로 서주에 들어오지만 역시 자신의 것이 아니어서 결국 소패성으로 내몰리며 1권은 마무리 된다. 손견은 우연히 옥새를 얻어 황제에 대한 꿈을 꿔보지만 꿈만 꾸다 비명횡사하지만 아들 손책은 아버지의 옥새를 활용해 실질적인 군사력을 증강하고 인맥을 쌓아 강동을 차지하는 소영웅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며 나름의 안정적인 자리를 확보한다. 숨쉴 틈 없이 몰아치는 사건 전개로 지루할 틈이 없다. 다양한 인물들의 등장과 함께 소소한 에피소드, 인물평등이 소개되고 그들의 무용담 역시 함께 서술하고 있다. 삼국연의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워낙 많기에 한 번에 전부 파악하기는 힘들고 여러 번 읽어서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한 번 빠지면 결코 그 매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감동의 도가니인지라 반드시 섭렵해야할 책이다. 간혹 오타가 눈에 띄지만 문제될 건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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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특이하게 삼국지를 즐겨 읽었다. 여중을 다니던 때에 꼬박꼬박 한 권씩 빌려 가는 내가 신기했는지 도서실에 계시던 선생님이 이 책 재미있니-하고 말을 걸어주신 기억이 난다. 커서도 지인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생각보다 삼국지 전편을 다 읽은 사람은 많지 않아서 내심 으쓱으쓱했지만, 이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아직도 멀었구나-싶었다. 별생각 없이 삼국지의 저자는 나관중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들이 지적당하고, 삼국지와 삼국연의의 차이를 알게 되고, 삼국연의의 오묘한 문장들과 그 사이의 조화를 요모조모 언급하는 부분들을 읽다 보면 그랬다. 내가 생각했던 '고전'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작품이구나. 새삼 그 가치를 느꼈다. 서평을 신청하면서도 호기심이 들었던 원문에 평론, 협평들. 실제로 책을 읽어나가니 그 자부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삼국연의는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진진한 이야기인데 평론이 더해져서 그 사이에 숨겨진 인과관계들이나 놓칠 수 있었을 법한 교훈들을 짚고 넘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게다가 협평과 함께 읽으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옛날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중간중간에 추임새를 듣는 것 같았다. 역자의 생각/평가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점은 장점일지 단점일지 모호하지만, 이따금 재치 있는 협평을 볼 때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 어린 시절 읽었을 때 은연중에 영향을 받은 것인지, 좋아하는 인물을 아끼는 마음에서인지, 혹은 그 정당성을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촉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어릴 때 읽을 때도 촉이 점점 약해지는 부분부터는 그 전처럼 즐겁게 읽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 읽은 1,2편은 조금씩 커나가는 그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공명은 그다음 편에 등장하기 때문에 아쉬웠다면 아쉬웠다. 어릴 때는 다만 흥미진진함을 느끼며 읽었지만, 이번에는 이야기를 읽으며 "하늘이 도왔구나"라는 말을 벼락 맞듯 내뱉는 심정을 헤아려볼 수 있었다. 운에 의한 흥망 혹은 승패, 인재를 곁에 두고 알아보거나 알아보지 못함으로 인한 결과들. 추천사에 "나는 일찍이 삼국이 천하를 다투는 형국을 보면서 천운의 변화는 참으로 헤아리기 어렵다고 탄식한 적이 있다."는 문장이 나온다. 한쪽에 모든 천운이 깃들었다면 이토록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위기의 순간에 인물들이 행동하는 모습들의 다양한 유형을 보면서 지혜를 얻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힘겨루기의 승자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어떤 인물로 남을 것인지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일인 것이다. 시간이 흘러 더 나이가 들면 또 새로운 느낌을 받을 것 같은 고전 중의 고전이 아닐까 싶었다. 다만 마음에 걸렸던 부분은 적극적으로 한자를 활용한 것. 한자까지 완벽하게 소화하기에는 아직 부족함이 느껴졌지만, 단순한 소설책이 아니라 배움이 담긴 책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 나름대로 좋았다. 더불어, 받은 책의 제본이 잘못되어 1권의 중간 부분들이 중복되거나 빠진 부분이 있어서 좀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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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다시 읽다.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남자들의 로망, 남자들치고 삼국지 한번 안 읽어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삶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삶에서 다른 사람 때문에 상처 입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지 않나 싶다. 삼국지나 수호지는 영웅의 이야기지만, 처세에 관한 내용인지도 모른다. 삶에서의 처세의 힘듦에 이런 책들을 잡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삶이 힘들고 팍팍한지도. 삼국지, 제목은 세 나라의 이야기이지만, 세 영웅의 이야기가 더 맞는 것 같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무엇보다 알아야 할 점은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마치 역사처럼 우리들에게 와 닿는다. 우리가 주로 읽은 것은 삼국지연의로 소설이다. 진수의 삼국지와 배송지와 삼국지주를 참조하여 재미를 더했다면 될 것 같다. 우리가 주로 읽는 것은 나관중의 판본이 아닐까? 이 책은 삼국지를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게 만든 모종강의 주해본이다. 어려서부터 하도 많이 듣고, 읽어서인지 마치 우리네 이야기처럼 가까이 있다. 하지만, 다시 읽으니 이런 내용이 있어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읽은 지가 오래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간략한 삼국지나 만화나 드라마나 영화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많은 주해가 붙은 삼국지도 읽은 적이 있지만. 내용은 세월과 함께 기억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만 전체적인 이야기 흐름은 아직도 머리에 굳건하게 머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영웅들의 대립과 그들 사이에 펼쳐지는 대결과 권모술수, 무너져 내리는 한황실에 대한 충성과 여러 제후들의 야망, 그 속의 수많은 사건들이 펼쳐진다. 예나 지금이나 충실들의 길은 진정 어려운 것 같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놓고 충성을 할 수 있다니. 과거 왕정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닌지. 우리가 사랑하는 뛰어난 영웅들은 강직함과 정직함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지만, 세상을 차지하는 것은 간웅들이 아닌가 싶다.
영웅의 길을 말하지만, 정작 고생하는 것은 민초들, 세상이 혼란하면 가장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아무 힘없는 백성들이기에. 이리 저리 휩쓸리며 죽도록 고생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민초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는 부족하다. 중국을 배경으로 한 오래 전이야기라서 그런지? 우리의 바램이 영웅을 만드는 것인지 무엇보다 삼국지는 영웅들의 이야기다. 영웅들의 등장과 부침 그 속에서 우리는 함께 하는 것 같다. 작은 이익에 눈먼 인간은 꼭 그에 상응한 결과를 얻는다는 교훈을 준다. 하지만, 그런 어리석은 사람을 따르는 충신들도 있으니, 세상은 참 요지경같다. 그들도 나름 명분과 실리를 가지고 있으니. 1권은 그 유명한 도원결의로 시작한다. 의형제, 누구나에게 필요한 것이 이런 우정과 의리가 아닐지. 이런 형제들을 얻는다는 것은 역시 천군만마를 얻은 것에 진배가 없는 것 같다. 동탁과 여포의 관계에 비하면 하늘이 내려준 인연인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런 형제들을 얻지 못한 친족들과 부하들에게 곤욕을 치르게 하는 조조도 한 사람 두 사람의 인재를 얻으면서 힘을 키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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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나에게 <삼국지>는 아빠와의 끈을 튼튼하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지내다 학교를 다니게 되서야 겨우 부모님과 살게 되었는데, 아무리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유난히 엄격하고 말이 없던 아빠와 어색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아빠가 조풍연이 엮은 <삼국지>를 선물해주시면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중국여행이 가능해지자마자 삼국지를 테마로 부녀가 여행을 갔을 정도고, 지금도 삼국지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조풍연, 이문열, 그리고 요시카와 에이지 정도를 즐겨 읽었다. 이 책에서, 삼국지가 아니라 ‘삼국연의’라고 표기해야 함을 설명하는데, 그러면서 왜 요시카와 에이지는 길천영치라고 표기해서 조금은 아쉬웠다. 하지만 그것 하나를 빼고는 이번에 만난 모종강본 <삼국연의>가 제일 마음에 든다.
역자서문, 추천사, 저자서문까지 합치면 거의 8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삼국연의’에 대한 소개로 이루어져 있다. 나처럼 삼국지를 여러 번 읽어온 사람에게는 ‘삼국연의’를 바라보는 시각을 더 넓혀볼 수 있는 시간이었고,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전체 밑그림을 그려주는 형국이었는데,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부분이었다. 특히나, 긴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삼국지가 사랑받아온 이유를 “고금의 인재가 <삼국>보다 더 많이 모여 있는 것인 없기 때문”이라고 하던, 글이 인상적이었다. 아마 아빠와 내가 수십년동안 삼국지를 읽어오고 또 거기에 대해 수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힘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 수많은 인재를 바라보는 나의 눈도 달라지는 것이 즐거운 경험이기도 하다. 그리고 시작되는 삼국연의의 이야기, 바로 도원결의가 등장하여 왜 유비가 차를 사러 가는 부분이 없을까 아쉬워할 틈도 없이(개인적으로 내가 차를 즐기게 된 이유의 5할은 유비때문인데 말이다)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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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3) 冊 이야기 2015-01 『삼국연의』 (1,2) 나관중 / 비봉출판사 _삼국지(三國志)와 삼국연의(三國演義)는 어떻게 다른가? 이 책의 역자 박기봉에 따르면 〈삼국지〉는 중국 삼국시대(서기 220~280년)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史書)를 지칭하는 고유명사라고 한다. 이에 반해 〈삼국지통속연의〉, 〈삼국지연의〉, 〈삼국연의〉 또는 줄여서 간단히 〈삼국(三國)〉이라고 불리는 책은 사서(史書)가 아니라 〈소설(小說)〉임이 그 책 이름에 분명히 나타나있다. 〈연의(演義)〉라는 단어 자체가 어떤 사서(史書)의 내용이나 역사적 사건 등에 작가의 상상과 허구를 보태서 독자들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쓴 이야기〉라는 뜻이다. 따라서 이때까지 국내에 출간 된 삼국지(三國志)는 책의 제목부터가 잘못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국내 출판 시장이 미처 자리 잡기 전 일본서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관례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외국작품을 일본인들이 번역하고, 그 책을 일본어 해독이 가능한 자가 다시 번역을 하다 보니 책 제목은 물론 내용까지도 아리송한 스토리가 만들어진 경우가 많았다. _왜 현재 〈삼국연의〉의 정본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은 나관중본이 아니라 모종강본인가 나관중이 편차(編次)한 〈통속연의〉가 최초로 발간된 명나라 중엽(1522년)에는 이미 삼국시대에 관한 이야기가 설화나 희곡 등의 민간 예술 분야에서 크게 유행하고 이야기책까지 발간되었었다. 그런데 죽은 지 이미 130년이나 된 사람의 이름으로 된 〈통속연의〉에 대해 궁금한 점은 편차한 사람에 대한 소개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사람들은 〈통속연의〉의 원저자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나관중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또는 실제 저자에 대해서 논란은 계속 이어졌다. 그 후 여러 사람들이 각기 평을 붙이거나 문장을 수정하여 〈나관중 지음〉으로 표시한 판본들이 무려 20여 가지나 유행했다. 이런 상황에 청나라 초기에 모종강과 그의 부친 모륜이 〈통속연의〉를 대폭 손질해서 문학작품으로서의 예술성을 한껏 드높였다. 모종강본이 등장하자 다른 판본들은 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 후 300년이 넘는 지금까지 세상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은 이 〈모종강본 삼국지연의〉뿐이다. _이 책의 장점은 〈모종강본 삼국지연의〉를 최초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완역했다는 점이다. 이 〈삼국연의(三國演義)〉세트가 출간되고 난 후 국내 각 언론들의 반응에도 관심이 쏠린다.
“최초의 삼국연의 완역본.” 〈충무공 이순신 전서〉,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조선상고 문화사〉등을 번역 소개한 박기봉(비봉출판사 대표)씨가 모종강본 〈삼국연의〉를 최초로 완역했다. _조선일보 “본서는 번역문 속에 중요하거나 회자될만한 명구절들의 원문을 병기하고, 또 원전 한문 전체를 따로 네 권에 담아 일일이 주석까지 달았다. 특히 한문을 배우거나 중국문학을 배워 고전인 〈삼국연의〉를 원문으로 읽어보려는 독자들이 반길 것이다.” _한겨레 “국내 〈삼국연의〉 번역본들 중 최고의 번역본이자 완성본.” “서시평. 협평의 〈삼국연의 읽는 법〉까지 번역했다.” _문화일보
1,2권엔 도원결의(桃園結義)와 천하동란(天下動亂)이 담겨 있다. “무릇 천하대세란 갈라진 지 오래되면 반드시 합쳐지고, 합쳐진 지 오래되면 반드시 갈라지는 법”으로 시작된다. 주(周)말기에 일곱 나라로 갈라져 서로 싸우다가 진(秦)으로 합쳐졌다. 한 나라는 고조 유방이 흰 뱀을 베어 죽이고 봉기하여 천하를 하나로 합쳤는데, 그 후 광무제가 중흥시켜 헌제까지 전해졌으나, 마침내 세 나라로 갈라지고 말았다. 책은 사실(史實)과 스토리가 적절히 배합되어있다. 삼국지 다른 번역본은 스토리로 시작해 스토리로 끝난다. “티끝 자욱한 이 땅 일을 한바탕 긴 봄꿈이라 이를 수 있다면, 그 한 바탕 꿈을 꾸미고 보태 이야기함 또한 부질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에 익숙한 독자는 그 마음이 가는 대로 따를 일이다. 그러나 사서(史書)에 기초한 〈삼국연의〉를 읽는 것은 더욱 깊은 맛이 있다. 모종강은 〈삼국지 읽는 법〉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삼국연의〉를 읽는 것은 〈수호전(水滸傳)〉을 읽는 것보다 낫다. 〈수호전〉의 내용은 사실에 근거를 둔 것으로 환상적인 〈서유기〉보다는 그래도 비교적 낫지만,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무엇이 생겨나고, 또 멋대로 생겨났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리기도 하는데,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에 반해 〈삼국연의〉는 일정한 사건을 서술함에 있어서 고치거나 바꿀 수 없는 여지가 없으므로 끝내 창안해 내기가 어렵다. 이런 점에서 〈수호전〉은 〈삼국연의〉보다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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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조조, 손권의 촉, 위, 오나라의 형성과 천하 통일에 대한 이야기는 대한민국에서도 몹시 중요하게 읽힌다. 한 번의 선택이 승패를 결정하는 데다가 한 순간의 사소한 실수가 목이 베어지는 적장과 전리품을 거머쥐는 승자를 뒤엎기에 각 등장인물의 의사결정 전략을 살펴볼 수 있어 유익하며, 매 순간 전쟁과도 같은 삶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훈과 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이야기의 명칭으로 삼국연의보다 삼국지라는 이름이 더 익숙하지만 사실 이는 잘못되었다. 삼국지는 역사서로 진수라는 사람이 편찬하였다. 그에 반해 우리가 주로 읽는 이야기는 역사적 사건에 작가의 상상력이 보태어진 '소설'이며 역사서와 명확하게 구분되기에 명칭이 바뀌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대학교 교양 강의에서 처음 알게 되어서 그동안 읽어왔었던 것이 삼국지가 아니라 삼국지연의겠구나 알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삼국지연의보다 삼국연의가 더 정확한 명칭이라는 것을 배웠다.
역사서 삼국지는 위나라에 정통성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읽는 소설에서는 촉나라에 정통성을 두고 유비를 긍정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삼국지와는 입장이 다르다. 따라서 삼국지에 기초한 삼국지연의가 아니라 삼국의 역사에 대한 연의, 즉 삼국연의가 되어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실제로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것도 유비를 덕이 많고 사람들이 많이 따르는 인물로 그렸으며 이에 반대로 조조는 간웅이며 꾀가 많고 유능하지만 도덕적이지는 않은 인물로 나타냈기 때문에 위보다는 촉을 정통성으로 삼았다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
게다가 나는 삼국연의는 나관중이 지은 소설인줄 알고 있었는데 모종강본이 더 타당한 판본이라는 역자의 이야기도 새로웠다. 위진남북조 시대가 지나고 당시 영웅에 대한 이야기가 구전되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형태의 이야기가 많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중 나관중이 묶은 이야기는 중복된 내용이 많고 이야기 내용이 번잡스러워서 문학성이 떨어졌는데 이후 모종강이 수정작업을 거쳤고 중국에서는 대부분 이 모종강 판본이 주로 전해진다고 했다. 그러므로 모종강판본이 나관중판본 보다 더 정확하고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상이 이 책의 서문을 통해 내가 삼국연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었다. 한국인인 역자도 한문을 많이 사용한 어투여서 한자보다 한글에 더 익숙한 나에게는 가독성이 썩 뛰어난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다른 책보다 읽기가 수월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유익한 정보를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많아서 정말 흥미로웠다. 그렇게 생각하고 모종강의 삼국연의 읽는 법, 그리고 그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 내용들을 지나 원문을 만났다.
원문을 읽으면서 한동안 푹 빠져 지냈던 삼국연의 내용들이 새롭게 살아나는 듯 했다. 그러나 세부적인 정보를 설명하거나 덧붙이지 않기 때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개략적으로 알고 있지 않으면 바로 원문을 읽는데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았다. 한때 삼국연의를 정말 많이 읽어서 각 인물이나 인물이 사용한 전략도 꿰고 있었던 시절이 있어서 이 책에서 등장하는 인물(가끔 인물의 이름만 나온다. 예를 들어 A가 C에게 B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B가 누군지, 무슨 일을 했는지, 무엇 때문에 지금 C에게 B이야기를 하는지 부차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서 이 B가 누구고 무슨 일을 했는지 알고 있지 않으면 A가 C에게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고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이 누구 휘하에 있는 장수였고 각 인물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어렴풋이 기억이 났기 때문에 내용을 파악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잘 떠오르지 않는 인물일 경우 뒷부분을 주욱 읽어나가면서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낸 다음에 다시 읽던 부분으로 돌아가서 내용을 읽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삼국연의를 정말 좋아하셔서 나에게 여러 가지 형태의 삼국연의 책을 사주셨고 또 많이 읽을 수 있도록 권하시고 많이 읽으셨던 내 아버지께서도 이 책을 읽으면서 한문이 많이 인용되었을 경우 내용 파악이 정말 쉽지 않았고 여러모로 확실히 읽기에 수월하지는 않다고 느낌을 말씀해주셨다. 나도 아버지 말씀에 공감할 수 있었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서문에서 느낀 호감을 붙잡고 나머지 2권도 죽 읽어나갔다. 그렇지만 읽으면서 또 한 가지 불편했던 점은 모종강 개인이 덧붙인 협평이었다. 이 협평은 본문 내용에 직접적으로 삽입되어 있었는데 끊임없이 이 이야기가 허구라는 걸 환기해서 이야기에 몰입하는 게 방해받는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서 조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조조에 대한 모종강의 개인적인 느낌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이야기의 진행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때문에 많이 불편했다. 그걸 읽을 때의 느낌은 마치, 뭐랄까? 영화관에서 영화가 상영되는데 앞 사람이 자기 옆에 있는 사람에게 영화에 대한 자기 개인적인 감상을 계속 늘어놓는 것을 보는 느낌? 아니 나도 내 마음대로 영화를 감상할 생각으로 읽고 있는데 자꾸 자기 이야기를 하니까 이야기 자체만 집중해서 읽고 싶을 때 방해가 되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 협평이 유익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는데 처음 삼국연의의 우수한 점에 대해서 설명할 때 문장이 서로 대구를 이루거나 또 그 표현 방식에 있어서 문학작품으로서 우수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런데 실제 원문에서 대체 어느 부분이 어떻게 대구를 이루고 있는지, 그리고 그 표현 방식이 어떤 점에 있어서 우수하다는 것인지 나 개인으로서는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모종강이 이 부분에 있어서 이렇게 이야기를 진행하는 방식은 무슨 표현 방식이라 하고, 그래서 이 부분이 우수하다고 평한 부분이나 또는 이 이야기에서 지금 나오는 B 부분은 앞에서 말한 A와 대구를 이룬다라고 설명해주어서 아 이 부분이 그렇구나 알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는 확실히 읽는 데 편의를 제공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점차 모종강 협평에 익숙해지면서 2권부터는 좀 덜 불편하게 여기게 되었다.
1권 반쯤 읽어나갔을 때는 원문이 술술 읽히는 것이 절대 아니기 때문에 이 삼국연의 원본이 매력적이기는 해도 읽는 게 좀 어려운데 이걸 내가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생각하는 마음이 컸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역자의 말이 떠올라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삼국연의는 원문만으로도 충분히 매혹적이기 때문에 굳이 역자가 이야기를 자기 나름대로 구성하거나 왜곡할 필요가 없다. 삼국연의를 제대로 읽고 싶은 욕망이 있는 사람이라면 원문을 읽고자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고, 원문을 읽어나가면서 이야기의 문학성과 또 사건에 대해 독자 스스로도 더 깊이 생각해보며 정리해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특히 이 모종강 판본을 읽으면서 삼국연의의 관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다. 후기 한나라가 멸망하는 과정에서 조조의 위나라, 유비의 촉나라, 손권의 오나라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지만 나는 실제 당대 사람들이 이것에 대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조조에 대해 정말 부정적으로 표현하고, 유비는 유황숙이다, 군자다, 인술에 뛰어나다는 내용을 덧붙여가며 한나라의 정통성을 위한 영웅이다라고 진술하는 이야기를 읽어나가다보니 아 당대 사람들에게는 조조가 정말 동탁처럼 보일 수도 있겠구나, 즉 정통성이 없이 권력을 탐해 나라를 망하게 이끈 역적으로 비출 수도 있겠구나 새롭게 생각이 된 것이었다.
사실 나는 한나라와도 관계가 없고 그 이후에도 생긴 나라들과는 관계 없는 이웃나라 한국의 국민이기 때문에 한나라의 정통성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유비를 왜 이렇게 긍정적으로 묘사하고 조조를 왜 이렇게 나쁘게 묘사할까 싶은 마음이 컸던 것이다. 오히려 조조가 더 실리적이고 그의 전략과 사고 방식을 지금 더 높게 치고 있지 않은가 왜 이렇게 부정적이지 생각했는데 한나라의 정통성의 관점에 생각해보니 그렇게 비쳐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물론 나라가 망하는 과정에서 지도층의 성찰과 문제해결의 대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른 세력에 의해 전복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세워지면서 그런 과정을 이미 거치지 않았는가? 만약 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고 좀 더 오랜 시간 통치가 이루어졌다면 촉나라를 정통으로 인정하는 모종강본과 같은 관점이 아예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또 오래 가지 않아 멸망하고 이후 수나라가 등장할 때까지 혼란스러웠으니까 그런 과정에서 이렇게 서로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책에 대한 느낌을 종합해보면 삼국연의의 명칭과 그 문학적 가치 등에 대해 상세히 서술하고 새롭게 알 수 있었던 점이 많아서 유익했다. 그렇지만 가독성이 떨어져 읽기에 수월하지 않다는 단점이 있다. 이 단점은 단점인 동시에 장점인데, 책의 원문을 살렸기 때문에 삼국연의의 이야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원래의 이야기에 보다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다는 매력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메타인지적으로 접근하게 하는 모종강의 협평은 정말 명확한 저자의 관점이 드러나기 때문에 그 관점을 살펴보고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도 생각해볼 수 있으며 그런 과정에서 이야기의 맥락을 더 자세히 살피고 이해하게 되는 것이었다.
2권까지 읽으면서 조조에 비해 역량이 부족했던 원소를 살펴보았고 어려움을 거쳐 유비, 관우, 장비가 간신히 모이게 되어 세력을 점차 확장하려는 노력을 살펴볼 수 있었다. 아직 제갈량이 나오기 전 부분인데도 몹시 흥미로웠으며 이야기가 점점 제대로 진행되려는 부분이어서 더 궁금했다. 이후 기회가 된다면 나머지 권들도 살펴보고 더 읽어보고 싶었다. 나중에 한문을 찾아보지 않고도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게 되어 수월하게 이 책을 금방금방 읽을 수 있게 된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삼국연의 이야기 내부 자체에서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무엇을 고려해야 할 것인가를 등장인물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며 이로 미루어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 책의 진행방식이 주로 이런 식이다. 책 소개에 한문을 공부하려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구절이 이런 뜻이었다니!! 그나마 타산지석은 한문을 잘 모르는 나같은 사람들도 많이 아는 것이지만 여기는 그런 건 별로 안나온다..)을 깨닫게 해주어 더 고마운 독서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