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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소위 말하는 문학소년이었다. 소설보다는 시가 더 끌려 여러 편의 시도 습작을 했었고 간단한 스토리의 소설도 구상한 적이 있었다. 그와 함께 고전의 반열에 오른 소설들을 여러 편 읽었는데 그 중에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것은 카뮈의 ≪페스트≫와 카프카의 ≪변신≫이다. 문제는 그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때 읽었던 소설의 내용이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페스트≫에서는 페스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는 장면만이 어렴풋이 떠오르고, ≪변신≫에서는 주인공이 벌레로 변신하여 가족들이 두려워하는 장면이 유일하게 기억나는 장면이다. 그 변신을 거의 20여 년만에 다시 읽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벌레가 되어있었다는 소재는 다분히 추리소설이나 스릴러의 느낌을 준다. 하지만 벌레로 변한 한 가족 구성원이 다른 가족들에게 버림을 받고 죽어가는 이야기의 큰 스토리에는 카프카의 생존 시절이나 지금이나 존재하는 가족의 문제, 사회와 공동체의 문제가 내포되어 있다. 이렇게 버림받아 죽어가는 사회 구성원들이 얼마나 많은가. 고등학교 때는 단지 스릴러의 느낌으로 읽었다면 지금은 가족과 사회를 생각하게 된다. 물론 지금도 여전하 카프카의 모든 작품을 읽은 상황에서 그가 이 작품을 통해 하려던 말을 100% 이해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10년 쯤 뒤에 다시 읽어볼 작정이다. 10대에 읽었던 작품을 40대에 다시 읽어보니 느낌이 달랐던 것과 같이 10년 사이에 변신해 있을 나 자신을 상상해 본다. 북로드에서 발간된 이번 시리즈에서는 변신 이외에 ≪판결≫, ≪시골의사≫, ≪굴≫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20세기 최고의 문제작가라고 일컬어지는 카프카의 작품들을 읽어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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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중당 문고가 생각이 난다. 요즘은 문고판 책들이 아예 자취를 감추어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다는 대형서점에서도 문고본을 본 기억이 없다. 그렇지만 내가 학창시절이었을때는 문고본들이 다양하게 존재했었다. 돈없는 학생이어서 그랬는지 아마 내가 중고등학교 학생시절에 사서본 책들은 죄다 문고본이었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당시 가장 많이 인기를 끌던 것이 지금은 이름이 예스럽게 느껴지는 삼중당 문고 였다.
카프카의 책도 그무렵 문고본으로 읽은 기억이 나니 십중팔구 삼중당 문고본으로 읽었을 것이다. 세상에 관해 영민한 감각을 지녔다고 나름 잰체를 하고 살아왔지만, 그래봐야 중고등학생 시절. 인생을 알지 못하니 소설에 나타난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이해가 얇을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는 소설을 통해서 인생을 이해하려고, 그래서 이렇게 형편없는 성인이 되어보려고, 그래서 그토록 젊고 찬란하던 시절을 어두컴컴한 불빛 아래서 문고본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학 시절. 문고본으로 섭렵한 독서목록들을 기반으로 철학개론이니, 문학개론이니, 인문학 나부랑이 들을 아는 척하면서 술꽤나 들여마셨었다. 쓸데 없는 시간낭비였으나, 그나마 그런 객기를 한떄의 추억으로 끝낼수 있었으니 그 덕분에 지금의 나는 시골구석에 박혀서 이렇게 책이나 읽으면서 시간을 보낼수 있는 팔자가 되었는가 보다.
내가 이렇게 평소 잘 사용하지 않는 반어법에 반어가 겹치는 묘한 문체를 사용하는 이유는 방금까지 읽은 카프카의 문체가 내 몸속에 일정한 리듬처럼 스며들어 있고, 나는 그 리듬이 채 사라지기 전에 그 리듬의 흥에 맞추어 서평을 쓰기로 마음을 먹은 때문이다. 카프카를 읽은 소감을 내가 체득한 카프카식의 문장으로 써 보는 것이 가장 적절한 서평은 아닐지 몰라도, 나 나름의 성의를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카프카. 전설같은 작가이다. 어두운 카페의 구석자리에서 하얀 얼굴을 하고 세상을 쏘아보는 그 여린 눈초리로 기억되는 작가. 프라하. 동구.... 이런 이미지의 조각들이 모자이크처럼 구성하던 죽어 있던 카프카가 이 책으로 오랜 세월을 건너 다시 그의 작품을 접하는 순간 생생하게 살아 있는 숨결로 느껴진다. 이제 나는 그가 세상을 바라보던 그 시선을 조금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학창시절 그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세상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풍경을...
역시 카프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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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이라는 제목을 들어도 보았고, 카프카란 이름을 들어도 보았지만 아직까지 카프카의 변신을 읽은 적은 없었다. 북로드의 세계문학 컬렉션으로 나온 카프카의 변신을 비롯한 판결, 시골 의사, 굴의 단편을 읽으면서 카프카란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카프카는 프라하에서 유대인 상인 아버지와 부유한 집안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여섯 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고 한다. 카프카의 총명함과 문학성은 어머니를 닮은 것이라고 하는데, 가정부와 가정교사의 손에서 외롭게 자란 유년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는 허약한 체질탓에 젊은 나이에 폐병에 시달려야 했으며, 늘 불면증에 고달폈다고 한다. 아버지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닌 것은 작품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고 한다. 책은 뒷자락에 작가에 대한 설명과 작품의 해설을 담아내고 있어, 카프카의 단편을 만나는 일을 더욱 쉽게 다가설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어지러운 꿈 속을 헤매다 깨어난 그레고르는 자신이 사람이 아닌 흉측하기 이를데 없는 벌레로 변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이를 어쩌나! 오늘은 이른 출장을 해야하기도 한데, 회사에서 뭐라고 할지 걱정스러움이 밀려들고, 시계는 이미 출근 시간을 한참 지나 있다. 이것은 꿈이야, 꿈이길 바라보지만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는 자신의 벌레로의 변신된 모습은 여러 개의 다리를 움직이는데 익숙을 요하고 있다.
출근 시간이 지났음에도 방에서 나오지 않는 아들, 몇 번을 방문에 두드림을 해보아도 소리가 없다. 급기야 아들 회사의 지배인이 찾아왔고, 왜 출근을 못 하고 있는지 그 사정 이야기를 듣고자 끈질지게 기다리고만 있다. 이미 벌레로 변신되어 있는 자신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그레고르, 얼마나 충실히 회사 생활을 해 왔건만 몇 시간의 지각을 참아주지 못하는 회사가 원망스럽다. 문을 두드리다 열기까지한 지배인, 물론 그레고르 역시 문을 열기위해 한참을 시도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리고 가족을 비롯한 지배인은 그레고르의 변신한 모습을 보고야 말고 그 충격에서 놀람을 일으킬 수 밖에 없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던 그레고르였지만, 변신한 그는 무능력한 상태일 수 밖에 없고 점점 가세가 기울어가고 힘들기만 한 가족들은 점차로 그레고르를 괴물취급하게 되고마는데....
마른 하늘의 날벼락을 두려워하듯, 두려움을 갖고 있는 그는 굴을 파기 시작한다. 아무도 찾을 수 없고 그래서 공격해 들어올 수 없는 철옹성같은 절대반지처럼 절대 성을 꿈꾸며 굴을 파고 있는 그. 포위될 것을 걱정하여 굴 속에 광장도 마련해두고 있다. 그리고 굴의 입구를 몇 날 지켜보면서 아무도 입구를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는지, 진정 적들로부터 발견되지 않는지 꼼꼼한 확인까지 해보는데....
카프카라는 명성을 생각하여 언젠가는 그의 책을 읽고싶다는 생각을 해왔었는데, 변신을 비롯한 그의 다른 단편들까지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게 되어 기뻤다. 처음 만나게 되는 카프카였지만 그가 왜 세계적인 문학가인지를 알만한 시간이었고, 작품 해설이 나와 있어 더욱 그의 글을 꼼꼼히 살필 수 있는 시간이었다.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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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문학을 제대로 읽어본적이 없던 나는 변신이라는 책이 카프카가 쓴 책이고 어느날 갑자기 주인공이 거미로 변신해서 벌어지는 내용을 담은 책이라는 사실만 알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제대로 읽어보게된 카프카의 변신. 문학적으로 대단한 가치를 지닌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기에 모르긴 몰라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접한 감상이 여기저기 남겨져 있을 것이다. 리뷰를 넘어선 논문도 여럿일듯.
생각보다 짧은 분량이었다. 왜 그레고리가 갑자기 아침에 느닷없이 거미로 변신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만한 배경설명도 전혀 없었다. 그냥 변신... 이라기 보단 저주를 받은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도 안통하는 거대한 거미로 순식간에 변해버린 주인공은 서서히 가족들이 자신을 대하는 달라졌음을 느꼈는지 못느꼈는지 자신의 다른 틀안에서 제대로 적응을 하기도 전에 허무하게 세상과 작별을 고하고 만다. 책 말미에 작품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있긴 하지만 문학적 해석능력이 부족한 나는 일단 아직 나는 카프카를 논하기에는 부족하다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같이 읽고 있는 강신주의 철학관련 책에서 이런 문구가 나온다. 배우자가 다른 남자/여자와 손을 잡는 것에 질투를 느끼기 보다는 카프카를 내가 아닌 다른사람과 논하는 것에 질투를 느껴야한다고. 일단 이해는 둘째치고 주변사람들에게 카프카의 변신을 읽어봤는지 부터 물어봐야하지 않을까 싶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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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로 바뀐 나는 나보다 주변을 더 걱정한다. 그레고르는 왜 변했을까. 개나 고양이도 아니고 왜 하필 벌레로 변했을까. 벌레로 변함으로 직장과 가족들에게 그레고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폭로'한다. 가족의 행복이란 것이 누구의 관점에서 보는 행복일까. 겉은 벌레지만 내적으로는 더욱 인간다워진다. 그런 그레고르를 누구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레고르는 있을 자리가 없어진다. 하이라이트는 그레고르의 죽음. 그는 원망도 분노도 없이 평화로운 생각속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그의 방 안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모든 관계가 차단 당하지만 그는 불행하지 않았다. 그의 죽음에 나는 울컥한다. 너무 이해가 가서. 그냥 나 같아서. 여러 해석이 있지만 벌레로의 변신은 ''어느 날 갑자기''가 키워드다.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모르고 '왜' 라고 물을 상황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불구가 될 수도 있고 어느 날 갑자기 말기 암 진단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게 누구나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왜 모르는 척 살아가는가.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나는 어쩌면 이미 '벌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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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도대체 몇 번이나 읽었을까. 10대에 처음 만났던 <변신>은 20대, 30대를 맞이할때마다 읽게 된다. 학창시절에는 수업 때문에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해 읽었지만 그 뒤로는 10년마다 한번씩 자의적으로 읽고 있다. 솔직히 특별한 이유는 없다. 이 책을 이렇게 꾸준히 읽고 있는지 나조차 알지 못하지만 가끔씩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책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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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어지러운 꿈속을 헤매다 눈을 뜬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몸이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있는 것을 발견했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변신. 한번쯤 사람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태어나는 상상을 해볼 것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가 나와 여러번 본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나무가 되고 싶다라는 말을 한것이 생각난다. 이렇듯 사람이 아닌 다른 생명으로 태어나길 상상하지만 흉측한 해충으로 다시 태어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해충이 아니더라도 어느날 아침 눈을 떠보니 다른 생명으로 변해있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평범한 샐러리맨 그레고르 잠자의 변한 모습을 보고 본인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도 충격을 받는다. 가족들의 충격은 더 크다. 아들의 모습을 처음 보게 된 엄마는 사람 살리라며 소리를 지르며 달아난다. 이런 상황과 마주한다면 우리들은 자신있게 해충을 보듬어주며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힘들지 않을까. 정말 현실적인 반응들이기에 우리들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지 모른다.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던 그레고르 잠자가 그런 모습으로 변했으니 그레고르 잠자를 걱정하기보다는 당장 생활을 걱정하지 않았을까. 슬픈 현실이다. 그렇지만 모습은 변했더라도 자신의 아들이자 오빠인 그레고르 잠자를 잘 보살펴 준다. 하지만 나중에는 귀찮은 일이 되어 버린다.
그 덕분에 아버지도 그레고르가 지금 아무리 비참하고 역겨운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한 식구인 이상 원수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듯 했다. 가족이라면 혐오스럽더라도 마땅히 참고 또 참는 것외에 별 도리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 본문 74쪽
가족은 무엇일까.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지언정 품어주는 것이 가족일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는 것은 견딜수 있지만 가족들에게 버림 받는 사람들은 삶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흉칙한 해충으로 변한 그레고르 자바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의 가족이 아닌 것일까. 이것이 우리의 진짜 모습인 것일까. 가족조차 외면할수 밖에 없는 현실일까.
몸은 해충으로 변했지만 분명 인간의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혼란스럽다. 해충의 몸으로 인간의 생각을 하는 것이 문제일까? 생각이 먼저인 것인지, 몸이 먼저인 것인지 그레고르 잠자조차 혼란스럽다. 더 슬픈건 가족들의 무관심으로 자신이 죽어간다는 것이다.
아버지, 저것이 오빠라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우리가 이제까지 너무 오랫동안 그렇게 믿어온 것이 불행이었어요. 저것이 어떻게 오빠일 수가 있죠? 저것이 정말 오빠라면 사람이 저런 짐승하고 같이 살 수없다는 것쯤은 벌써 깨닫고 자기 스스로 나갔을 거예요. - 본문 96쪽
같은 내용의 책을 나라는 같은 사람이 읽지만 매번 읽을때마다 느낌은 달라진다. 학창시절 처음 읽었을때는 단순히 한 남자가 벌레로 변하고 결국엔 가족들에게 버려진다는 피상적인 내용들이였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날때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작가의 삶을 들여다 보고 이 작품에 미친 영향까지 들여다 보게된다. 물론 지금도 온전히 내가 그레고르 잠자와 프란트 카프카를 이해하자 못했다는 생각이다. 그렇기에 몇 년이 흘러 다시또 변신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여전히 나에게는 기분 좋은 숙제로 남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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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가 보는 '인간'이란 존재 - 변신 _ 스토리매니악
얼마만인가 싶다. 카프카의 '변신'을 꽤 오래 전에 읽었다. 유명 고전이기도 했지만, 사람이 벌레로 변한다는 충격적인(?) 발상이 끌렸던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고 한 동안 카프카의 글에 빠졌었는데, 그 감흥이 오래 되어 무뎌졌는데, 이번에 다시 그 기분을 살릴 수 있었다.
이 책에는 표제작 '변신'을 비롯하여 '판결', '시골의사', '굴'의 총 4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수록된 작품들이 카프카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카프카의 공상적 내용과 사실적 문체, 서술된 사실의 부자연성, 서술 방법의 자연성 등 카프카 문학의 기본 구조가 되는 것을 이 작품들에서 잘 찾아 볼 수 있다.
카프카를 이해하는데 있어 '소외'라는 단어를 빼놓을 수 없다. 인간은 소외된 존재라는 주제를 잘 파고든 작품이 그 유명한 '변신'이다. 실존주의 소설이며 객관적, 사실적인 이 소설은, 벌레로 변한 주인공을 통해 인간의 고독과 인간 실존의 허무를 다루고 있다. 변신을 보면 재미난 점이 참 많다. 우선 작가는 벌레라는 실체를 통해 인간과의 소통이 단절된 소외 상황을 암시하고 있다. 또한 주인공 그레고리가 생활비를 버는 동안은 그에게 감사하던 것이 그가 벌레로 변해 생활 능력을 잃자, 그의 존재 자체가 문제시 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가정적 역할에 대한 의문 또한 제시된다. 즉, 존재와 의식이라는 문제로 압축되는 이야기는 말 그대로 현실의 소외 문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내내 서늘했는데, 이는 작가의 문체가 너무나 냉담하다는데 있다. 이것이 소외라는 문제에 대한 작가의 시선을 더욱 빛나 보이게 한다.
'판결' 또한 변신과 비슷한 맥락의 주제를 이야기한다. 판결은 특히 아버지와의 갈등을 다룬 작품이다. 카프카는 아버지에 대한 공포심을 안고 자랐는데, 이것은 그의 작품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아버지와의 불편한 관계는 독일어를 쓰는 유대인으로서의 불안정감과 함께, 소외와 이중의식이란 카프카의 작품주제에 대한 뿌리를 형성하고 있다. 이 작품은 그런 카프카의 심리상태와 존재의식에 대한 상징이 가득하다. 작품 속의 게오르크가 늙은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려 대항하는 모습에서 작가 자신이 아버지에 대항하고자 그리고 그 공포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이 여실히 느껴졌다.
'시골의사'는 좀 난해하다. 우선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이는 전개가 그렇다. 맥락을 자칫 놓치면 이야기의 핵심을 놓치기 쉽다. 이 글은 예전에 읽었을 땐 잘 몰랐는데, 요즘에 읽으니 그 다가오는 바가 많이 틀리다. 이야기는 안정된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이 사회적 책임을 벗어나 욕망을 따르려는 충동에 사로잡힌 현실을 이야기하는데, 나이가 들어 안정된 삶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다 보니, 이야기 속의 상징들이 의미하는 바를 좀 더 이해하게 된다.
'굴'은 이번에 처음 읽은 작품인데, 참 인간이라는 생물을 잘 관찰했다는 느낌이 드는 단편이다. 동물이 자신의 집을 더욱 안전한 공간으로 만들려 할 수록 그 공간에 집착하여 근심과 불안에 떠는 이야기인데, 이는 인간의 숙명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단어를 대입해보면 딱 우리의 모습과 같다. 끝없는 불안, 여기저기서 시달리는 삶, 이런 것들에 희생당하면서도 지키려 하는 그 무엇... 카프카라는 작가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철저히 분해하고 분석했나를 볼 수 있는 단편이었다.
작가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때로는 우울해지기도 한다. 소설 속의 인물이 또는 동물이 또는 벌레가, 나 자신의 모습과 비슷해 보이기 때문이다. 현실에 아등바등 버둥거리고, 원하는 것을 얻고자 그만큼 무언가를 희생하고, 결국엔 나 혼자가 된 듯한 소외감을 느끼는, 현대인의 모습 그대로의 내 모습 말이다. 현실에 힘든 이들에겐 카프카의 작품을 꼭 읽어 보라 권하고 싶다. 이 책의 단편들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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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때 문학 교과서에서 앞분분만 읽었던 기억이 가물 거리고 아이들 키우면서 변신이라는 아동서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과 주변의 강의 팁을 듣고 있노라니 고전은 완역본에 충실한 것을 읽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 지론이 되었다.
북로드에서 나온 변신은 양장본으로 푸른색으로 마치 풀속에 들어와있는 몽환적인 기분이 드는 표지이다. 어느책을 보아도 내용의 삽화이 있는것을 못본듯 하여 오로지 나의 상상력으로만 읽어야 하는 이야기이다.
길지도 않다. 소리를 내어서 읽어도 한 3시간하고 조금은 더 걸린듯 하다. 짧다고 하면 한 단편소설로 카프카의 대표적인 작품이어서 다른 작은 작품도 함께 수록이 되어있다.
원단세일즈맨 그레고르는 잠자고 일어난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다. 몸이 벌레로 변한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도 벌레처럼 느껴지게 말도 하고 가족은 커다란 공포에 빠지고 만다. 회사에세 결근을 한 그레고르 때문에 집에 왔던 직원조차도 놀라서 동망가버린다. 그동안 그레고르가 벌어온 돈으로 먹고살았던 가족들은 생계의 위협에 처하게 되면서 가족은 벌레로 변한 그레고르를 보살피면서 생계에 힘들어지고 자신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고 오히려 해가 되는 한 마리 벌레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아버지가 던지 사과로 인해 몸에 상처가 나고 몸이 죽어가는데
읽어내면 읽어갈수록 어찌 그를 집안에 돈벌이 수단으로 느끼고 또한 그를 돈벌이의 기능을 잃어버리면서 부담적인 존재로 느끼고 그 여동생 조차 부담스러워하고 존재감은 점점 소멸되어지는 돠정을 보면서 가족들의 무관심과 냉대 속에서 그레고르는 외롭게 죽음을 맞이하게 하는 변신 내용이 이해하기 힘든 포커스를 가진 소설이이라고 생각을 하게 한다. 더욱이 이 변신이라는 소설이 서울대,연대 ,고대의 필독 권장도서인데다가 미국대학위원회 추천도서라는 사실을 보면서 변신을 다시금 곱씹어 가면서 읽도록 할 기회가 되는데.....
책 뒤부분에 저자의 약력부터 배경까지 설명하다보니 왜 변신이란는 소설이 주요 도서인지를 가늠하게 만들고 있다.
단편이지만 인간세계속에서 이 벌레적 존재를 느끼게 하는 것이 마지막에 등장한다. 그가 죽자 몇 개월 동안 그 때문에 마음고생하던 가족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교외로 소풍을 갔다. 그들은 전차 속에서 얼른 기분전환을 한 뒤 잠자의 시체와 짐을 빨리 처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하기로 계획까지 세운다.
벌레로 변신된 그를 통해 자신의 방을 벗어나려는 벌레의 몸짓의 시도도 다심금 생각하게 만든다. 자신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달라는 처절한 몸부림 가족간의 소통에 대한 것을 상징적으로 말하고 픈 소설인것이다.
변신은 카프카의 문학 세계가 가장 뚜렷이 드러난 작품이라고 하니 다시금 그의 일대기적 작품을 읽고 싶게금 만드는 시대적 반영을 찾아보고 싶게 되어있는 구성을 가진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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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 실존주의 소설!
프란츠 카프카(1883~1924) 체코 프라하에서 독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자수성가한 다혈질의 아버지보다 조용하고 사색적인 어머니의 유전자를 많이 받았다. 어린 시절 형제들이 죽으면서 자신에 대한 아버지의 기대가 컸기 때문일까.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도록 강하게 키우고 싶었던 아버지와 마찰을 빚으면서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그는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 널 생선 토막 내 버릴 거다." 라는 아버지의 말은 병약하고 감상적인 그를 더욱 우울하게 했을 텐데……. 독선적이고 다혈질의 폭군이었던 아버지 아래에서 대항하지 못하던 자신이 비루한 벌레로 느껴졌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문학 대신 법학을 배우고 자신이 좋아하는 소설쓰기 대신 노동자재해보험국에 취직해서 샐러리맨의 삶을 살아야 했던 카프카. 그가 자신의 삶을 투영한 이 작품은 타성에 젖어 만족도 없는 샐러리맨의 생활의 비루한 종말을 그리고 있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하고 싶었던 내면적 갈등을 드러낸 실존적인 소설이다.
어느 날 아침 어지러운 꿈속을 헤매다 눈을 뜬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의 몸이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딱딱한 등껍질을 침대에 대고 벌러덩 드러누워 있었다. 머리를 조금 쳐들자 활 모양으로 불룩하게 휘고 마디진 갈색 배가 보였다. 배 위에는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릴 듯 이불 한 귀퉁이가 간신히 걸쳐 있었다. 그리고 몸뚱이 다른 부분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이 눈앞에서 한들거렸다. (중략) 분명 꿈은 아니었다. 조금 작기는 해도 사람 사는 방임에 틀림없는 그의 방은 낯익은 벽으로 아늑하게 둘러싸여 있었다. (책에서)
샐러리맨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바퀴벌레 같은 해충으로 변신한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가족을 부양하던 그는 여전히 출근생각을 하고 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타성에 젖은 사고방식은 벌레로 변신한 지금도 자신을 조종하고 있다. 회사의 일, 가족의 부양문제가 그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아침을 깨우려던 식구들은 커다란 해충으로 변해 있는 그의 모습에 놀라서 기겁을 한다. 이상한 소리를 내는, 바퀴벌레를 닮은, 쇠똥구리를 닮은 벌레가 자신들의 아들이고 오빠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리고 그레고르는 자신의 방에 갇혀서 여동생이 주는 음식으로만 배를 채우거나 벽을 기고, 천장을 기고, 바닥을 기면서 해충의 삶에 적응해 나간다. 그리고 아버지가 의도적으로 던진 사과에 맞아 상처가 나기도 한다. 결국 자신이 사라져야 가족이 행복할 수 있음을 알고 시계탑의 종소리와 함께 죽음을 맞게 된다. 스스로 선택한 최후의 삶이다.
마지막까지 가족들에게 그의 존재는 의미가 없었던 걸까. 그의 죽음을 확인한 가족들은 개운한 기분으로 피크닉을 떠나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딸의 성숙해진 모습을 새삼 느끼며 좋은 짝을 찾아 결혼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아들의 죽음보다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는 모습이 소설의 끝 장면이다.
식구들을 부양하는 밥벌이 신세인 주인공은 외계인이 된 듯 가족들의 무관심과 냉대를 받아 왔다. 그런 대우가 자신을 버러지만도 못하다고 느끼게 한 걸까.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던 자신의 모습이 결국 바퀴벌레로 변신했다니.
100여 년 전에 쓴 소설이 지금 현실과 맞닿아 있음이 놀랍다. 밥벌이의 설움 등 속마음을 털어 놓을 수 없는 현실이라면 벌레만도 못한 생활, 버러지 같은 생활이라는 생각이 들 텐데…….
알고 보니, 예전에 읽었던 소설이다. 아마 여고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밥벌이의 설움을 이해하지도 못했고 실존의 의미, 작가의 생활을 잘 알지 못했기에 그저 기묘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세월이 흐른 뒤에 읽으니 일상과 환상의 조화를 꾀하고 불가사의한 상황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들을 했다는 평가가 이해가 된다. 고전의 힘은 세월이 흐를수록 주는 메시지가 더욱 강력하다는 것 아닐까. 일상과 감정적인 흐름에 대한 세세한 묘사에 빨려 드는 책이다.
만약 실존의 삶이 된다면,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삶이 된다면 그는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걸까. 자신의 존재는 없고 자신을 돈 버는 기계로 도구화하는 삶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고 싶은 실존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밥벌이로 타성에 젖어 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작품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버러지 같은 그의 삶을 녹인 소설이다. 자신의 현실과 내면의 갈등이 투영된 소설이다.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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