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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글쓰기를 둘러싼 오해 중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이것일 터이다. 글이란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도구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이번에 읽을 기회가 있었던 언어학자 김진해가 제시하는 글쓰기의 본질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그에게 글쓰기란 홀로 완성되는 작업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을 전제로 한 공동 작업이다. <쓰는 몸으로 살기>다. 매주 칼럼을 써내는 그조차 글을 쓸 때마다 난리법석을 떤다고 고백한다. 서재의 책들을 바닥에 쌓아놓고, 집 안을 휘젓고 다니며,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기를 반복한다. 이런 혼란스러운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글쓰기가 단순히 머릿속 생각을 옮겨 적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독자와의 대화를 준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글쓰기는 독자를 상대로 한 간절한 부름이다. "당신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으니 잠깐 시간을 내어주세요!"라는 마음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이때 글쓴이는 독자의 머리끄덩이를 낚아채거나 멱살을 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 자세를 낮추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곡진하게 말해야 한다. 김진해님은 좋은 글의 조건으로 '힘을 뺀 글'을 꼽는다. 이는 모든 운동에서 코치가 선수에게 가장 많이 하는 조언이기도 하다. 국민타자 이승엽의 타격 자세를 보면 손과 허리에 힘을 빼고 바람을 가르듯 방망이를 휘두른다. 축구에서도, 농구에서도, 심지어 역도나 유도에서도 힘을 빼라고 한다. 힘을 빼야 상대방의 움직임을 살피는 여유가 생기고,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빠르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서 힘을 빼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느끼려고 하는 것이다. 눈앞에는 공책이나 모니터밖에 없지만,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듣고 있다고 상상하며 써야 한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마구 내뿜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기운을 느끼면서 그에게 간절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야 한다. 이런 글쓰기에서는 독자가 건너편 자리에 앉아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좀 더 자세히 말해봐", "그 얘긴 좀 긴걸?", "그건 말이 좀 안 된다", "다음 얘기가 궁금하군!" 등등. 진정한 글쓰기는 이처럼 처음부터 독자가 곁에 있는 상태에서 시작되는 대화의 과정이다. 좋은 글의 또 다른 특징은 구체성이다. 김진해는 두 가지 예문을 통해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라는 추상적 표현보다는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두 번 인사한다.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고개를 숙이고 상대가 '안녕하세요'라고 답하면 다시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고개를 숙인다"는 구체적 묘사가 훨씬 강력하다. 구체적인 글은 독자의 머릿속에 생생한 장면을 그려준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글을 읽으면 글의 주인을 만나보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백과사전이나 요리법처럼 정보만 전달하는 글에서는 글쓴이가 궁금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글 속에 글쓴이의 목소리와 체온이 담긴 글을 만나면, 그 사람의 삶이 궁금해진다. 확고한 글보다는 흔들리는 글, 배회하고 찾아 헤매는 글, 삶의 두께가 느껴지는 글이 더 매력적이다. 그런 글을 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알고 싶어진다.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이야말로 진정 독자에게 가닿은 글이다. 저자의 글쓰기 철학은 '말의 본성'과 '몸의 움직임'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말에는 드러내면서 동시에 감추는 특성이 있다. 뭔가를 쓴다는 것은 뭔가를 드러내는 일이지만, 동시에 다른 뭔가를 감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말의 본성을 이해하면 글이 차분해지고 겸손해진다. 몸의 움직임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합기도를 8년간 수련하면서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내 몸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한다. 특히 힘을 빼라는 가르침이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몸의 감각을 통해 배운 것들이 글쓰기의 자세를 만드는 데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전혀 다른 모양과 재질의 글감을 손재주를 부려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만드는 일이다. 저자는 이를 퇴비간 만들기에 비유한다. 공사장에서 얻어온 팰릿, 산에서 주워온 나뭇가지, 무료 나눔으로 얻은 목재 쪼가리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튼튼한 퇴비간을 만드는 것처럼, 글쓰기도 손에 잡힌 글감들을 적절히 배치하는 기술이다. 구성은 서론-본론-결론 같은 정해진 틀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내 손안에 잡힌 글감에서 출발한다. 부엌에 있는 식재료만으로 요리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라면 한 봉지밖에 없다면 간단하지만, 대파와 양파와 달걀이 있다면 순서를 달리할 수 있다. 있는 것을 빼는 것도 배치다. 과감한 포기도 구성의 중요한 전략이다. 좋은 구성은 다음 문장이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글을 만든다. 독자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며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주제보다도 더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글을 읽는 것은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주제 때문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이 이어지고 작은 에피소드끼리 맞물려서 더 큰 이야기에 합류하는 흐름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다. 김진해님은 다시 쓰기야말로 글쓰기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글 쓰는 사람이 인간적인 사람일 확률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 쓰기를 거듭하면서 "나는 확고하지 않다. 언제든 뒤집어엎어질 수 있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미련 없이 버릴 수 있고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가장 나답다고 생각한 것을 버리면서 중심을 잃고 쓰러질락 말락 하는 기우뚱함, 가장 견고하다고 믿었던 내 안의 체제를 스스로 무너뜨릴 때의 희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생각하던 찰나에 주머니에 든 것을 몽땅 잃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되는 경험. 이런 감각이야말로 글쓰기를 통해 삶에 새겨야 할 것들이다. 다시 쓰는 과정을 거듭하다 보면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내 속에 이런 면이 있구나 하며 놀라고, 버리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긴다.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않게 되고, 꽃은 사랑해도 지고 잡초는 싫어해도 핀다는 삶의 이치를 배운다. 글쓰기를 통해 삶과 생명을 긍정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글은 오감을 동원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를 담는다. 저자는 '사진 찍듯이 포착하기'라는 연습법을 제안한다. 시간을 멈춰두고 그 순간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시간을 멈추지 않으면 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 중심으로 쓰게 된다. 하지만 시간을 멈춰 세우면 냄새, 감촉, 바람, 햇빛, 향기 같은 것들까지 묘사하게 된다. 신나게 놀다가 곤히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냥 쳐다보기만 할까? 아이의 손과 발을 만져보고, 뺨과 머릿결을 쓰다듬고, 냄새도 맡아볼 것이다. 어지럽혀진 방을 둘러보고,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느껴볼 것이다. 시간을 멈춰야 나에게 눈 말고도 코, 귀, 입, 피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인간적인' 글쓰기다. 인간적인 사람은 '시작하는 사람'이다. 관조하는 삶이 아닌 행동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사건을 만들고, 예상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이다.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머리가 아닌 몸을 써야 한다. 내 몸의 기억을 믿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우리 몸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게 하는 바탕이다. 왠지 모르게 하고 싶은 일과 왠지 모르게 하기 싫은 일을 구분하는 능력도 몸을 움직여 계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기를 수 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용서하는 힘'과 '약속하는 힘'도 여기서 중요해진다. 용서는 우리가 행한 일의 결과로부터 우리를 해방해주고, 약속은 미래라는 불확실성의 바다에 안전한 섬을 세우는 일이다. 환원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삶의 조건에서, 용서와 약속은 다른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세우고 새로운 행위를 시작하는 능력이 된다. 저자의 글쓰기론은 삶의 자세에 대한 철학이다. 글쓰기란 타자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전인적 활동이다. '쓰는 몸'이란 고착화된 표현과 통념을 넘어 말해지지 않는 것을 살피는 눈, 세계와 타인의 흔적을 섬세하게 감지하는 감각, 내 글에 기꺼이 타자의 자리를 만드는 유연함을 갖춘 몸이다. 진정한 글쓰기는 완결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은 것'을 계속 발견하고 찾아가는 여정이다. 편지를 부치고 나서 다시 쓰는 편지 같은 것이다. 다 썼다, 다했다는 말이 도무지 성립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글쓰기의 모습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글쓰기는 자기 완성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열어가며 타자와 만나는 방식이다. 그런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좀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될 수 있고,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글 쓰는 용기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마지막 당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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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화제의 '평어 수업'과 <말끝이 당신이다> 산문을 쓴 김진해 교수님의 책, <쓰는 몸으로 살기>를 소개한다. 한글을 가르치고 그림책을 읽히고 논술 수업을 보내는 수순으로 슬이의 글쓰기 교육을 대충 떼워왔다. 내년에 중학교 입학을 앞둔 슬의 글은 심각하다. 아직도 ‘재미있다’, ‘맛있다’, 어이없었다‘로 끝나는 일기를 쓰는 슬이다. 무엇이 잘못인지 돌이켜 생각해본다. 논술 학원을 바꿔야 하나, 애꿎은 논술 선생님의 탓으로 돌리고 싶다. 그렇게 책과 글쓰기를 싫어하는 어른이 될 것이다. 운이 좋아 롤모델을 만난다면? 나는 아이의 독서 인생에 기적을 바라는 못난 부모가 되어 있다. 이제 아이에서 ’나‘로 돌아온다. 나도 꽤 많은 책을 읽어왔다. 별점을 짜게 주는 편으로 나의 속좁음을 대신하는 8년차 독서동아리 회원이다. 인내심이 짧아 완독율이 낮아 입회한 동아리였다. 어느 덧 시간은 읽은 책을 글로 옮겨적어보는 수준의 ’나‘로 끌어올렸다. 문제는 글쓰기였다. ’책‘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인 몇백 페이지라는 종이에 쓰인 문장들은 내가 나의 언어로 골라 쓰기 어렵게 개성이 강했다. 책들이 가진 버라이어티한 정체성을 몇 자 안의 글쓰기로 묶어보려는 시도는 어려웠다. 같은 방법으로 묶자니 뻔하고 재미있지 않았다. 그런 어려움에 봉착되어 있을 때쯤, 이 책 <쓰는 몸으로 살기>를 만났다. 이권우 도서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나는 행운아다. “이 양반은 글쓰기를 잘 쓴다. (...) 그런데 글쓰기도 잘 가르친다. 글쓰기가 왜 중요한지 모르는 애송이들을 오랫동안 가르쳐와서이다. 드디어 고수가 나타났다. 만국의 글쓰기 낭인들이여, 기뻐하라. <쓰는 몸으로 살기> 덕에 당신은 곧 ’쓰는 사람‘으로 거듭나리라.” 아멘!하며 책을 펼친다. “머리가 아닌, ’몸으로 쓰는‘ 사람을 위한 글쓰기”라는 제목의 프롤로그를 만난다. 제목이 ’무적의 글쓰기‘가 될 뻔한 이 책은, 적이 없다는 의미의 무적이 아닌, 소속이 없다는 뜻의 무적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고향이 없기에 ’쓰고, 떠나고 다시 쓰고, 다시 떠나고.“(p.5) ”무적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반복을 통해 ‘쓰는 몸’을 만들어야 합니다.(...) 탈바꿈하기 위해 꾸준히 앉아있어야 만들어집니다.(...)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기 위해 막막함 속을 헤엄치면서 끝내 문장을 바느질하듯이 한 땀씩 이어갑니다.“(p.6) 그렇게 쓰는 몸을 만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는 글들로 4부가 쓰여있는 책이다. 1부 ‘당신에게는 어떤 문장이 있나요’에서는 타자와의 공명을 꼽는다. 2부 ‘좋은 글은 어떻게 구성될까요’에서는 퇴고와 적확한 단어를 찾아 헤매는 과정을, 3부 ‘말해지지 않은 것을 써볼까요’에서는 나는 보았지만 독자는 보지 못한 것과, 나로부터 나오는 언어를 독자에게 잘 전달하는 법이 쓰여있다. 마지막 4부 ‘쓰는 듯 살고, 사는 듯 읽으세요’가 인상적이었다. 많은 책을 읽어 제끼기보다 그 책 중에 자신을 통과하는 그 느낌을 사로잡는 연습을 반복하라고 조언한다. 이 과정을 통해 글쓰기가 상대를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내 쪽으로 끌어당기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인간적인 사람은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관조하는 삶이 아닌, 행동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아무 목적 없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세요. 그런 사람이 글을 썼으면 좋겠습니다.”(p.245) 글쓰기란, 그저 자신의 짧은 문장으로 세상을 정의하고자 관조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하는 자들만이 향유할 수 있는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임을 이 <쓰는 몸으로 살기>를 통해 배운다. #쓰는몸으로살기#김진해#하니포터#한겨레출판#하니포터11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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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면 글쓰기가 물 흐르듯이 자연스러워질까. 매번 글을 쓰는 순간이 되면 두려움부터 앞선다. 어떤 문장으로 시작해야 할지 무엇을 써야 할지 내 감정을 어디까지 넣어야 할지 등등 수많은 고민거리 때문에 글을 써야 하는 순간이 되면 온몸이 긴장감에 휩싸인다. 언어학자가 쓴 이 책은 '쓰기란 상대를 밀어내는 게 아니라 내 쪽으로 당기는 일'을 설명한다. 나를 다듬고 타인과 공명하는 어른의 글쓰기를 보여주며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쓰는 일을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쓰는 몸이란 무엇일까. 하나의 글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성찰하고 새로운 글로 흐르는 몸이다. 이 책에서는 쓰는 몸이 되기 위한 과정을 보여준다. 첫 번째 시작은 힘을 빼는 것이다. 힘이 잔뜩 들어간 글은 진부하고 거부감이 든다. 저자는 글쓰기란 혼자만의 작업이 아니라 작가와 독자의 대화라 말하며 독자의 기운을 느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간절하게 풀어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어서 말의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 말의 특성을 알고 적절한 더하기와 빼기를 적용하여 글맛을 좋게 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럴 땐 과감히 포기하는 것도 하나의 전략이 될 수 있다. 2부 마무리에 소개된 '인간적인 글쓰기를 위하여'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한다. 글을 잘 쓰게 되는 순간은 그냥 오지 않는다. 자신만의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다.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신체적 감각과 기본 체력을 길러야 하는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내가 쓴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그리고 앞으로 나만의 글쓰기가 나아갈 방향성에 대해서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글쓰기를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점과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점에 대해서도 떠올려볼 수 있었다. 쓰는 몸으로 살아간다는 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다. 아기가 첫 걸음마를 떼듯 나의 글쓰기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갈 거란 기대해 본다. #쓰는몸으로살기 #하니포터11기 #도서리뷰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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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몸으로살기 #김진해 #한겨레신문 #하니포터11기 #하니포터 #서평단 한겨레신문 칼럼리스트 김진해의 <쓰는 몸으로 살기>는 말의 본성과 몸의 움직임이라는 두 줄기로 저자만의 글쓰기 노하우를 담아내고 있다. 저자는 글쓰기란작가로서 있어 보이기 위한 장식이 아니라 몸으로 익히고 수련해야하는 하나의 무술처럼 설명한다. "몸의 움직임을 아는 사람은 글을 대하는 자세도 좋아집니다."(p.21)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이미 책상에서 글을 쓰고 있는 자신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남다른 감각으로 글감선택부터 구성과 내용의 방향성까지 알려준다. 여러 사례와 실전에서 캐낸 실용적인 방법을 어렵지 않게 펼쳐내고 있다. 저자는 쓰기에 관해 놓치고 있는 것들을 보여준다. "말에 가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을 찾으려고 더듬거리는 마음으로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글을 쓸 만한 재료를 빨리 발견하여 매끈하게 표현해보라는 말이 아니다. 무엇을 선택할까 고민하는 동시에 "나는 무엇을 선택하지 않았는가"(p.25)를 검토하란다. 그래야 선택된 어휘와 표현들도 겸손하게 돌아볼 수 있다. 적절한 선택에만 집중했는데 불필요한 선택과 미선택까지 볼 수 있는 시야를 키워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나쁜' 글이 남는다" 꽤 도발적인 소제목이다. 당연하다는 섣부른 판단에서 벗어나라고 강조한다. "기존의 상식에 반하는 발견, 도덕을 거역하는 글이 좋은 글입니다" (p.41) 즉, 기존의 강력한 논리를 뒤집고, 약한 관점에 힘을 실어주는 전복적 사유를 해야한다. 한번도 의심을 받짐 않던 생각에 질문과 의심을 초대하는 일, 그것이 글쓰기라고 한다. 나는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글을 쓰려고만 했다. 주류와 다른 의견을 내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다. 뻔하고 맞는 말, 흔한 문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쁜 글을 쓸만한 생각의 폭과 용기를 가지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저 그럴 듯하게 글을 잘 쓰고 싶었다. 작법서들을 찾아 읽고 핵심내용을 정리하곤 했다. 근사하고 독창적인 표현을 외우고 변형해서 적용하려고도 했다. 하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좁고 뻔한 관점과 둔한 움직임은 여전하다. 나만의 생각을 캐어내려는 몸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결과물은 그 전과 동일할 뿐이다. 쓰는 몸이 되어야 한다. 땀을 흘리고 숨이 차서 헉헉 거려야 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쓰는 몸으로 살기>는 글을 잘 쓰고 싶었던 욕망을 되짚고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그럴 마음과 몸이 준비되었는지 생각하게 한 책이다. **출판사 제공도서로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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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쓰는 몸으로 살기'는 독특한 의미로 다가와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주었다. 글쓰기 안내서라는 핵심어를 달고 마주했을때 과연, 글쓰기만큼 그 사람이 확고히 드러나는, 바꾸기 어려운 습관같은 이 행위를 교정할 수 있는 힘이 있을까 궁금했다. 읽을 때는 그렇구나 싶다가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늘 하던 습관을 버려나가도록 만드는 것은 어렵기 때문이다. 이 안에도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는 구태의연함이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결론만 말하자면 그렇지 않았다. 처음엔 다른 책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여겨졌는데 읽다보니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계기는 " 당신은 어떤 스타일의 사람인가요? 95" 하는 질문에서부터 였던 것 같다. 짧게 쓰기와 길게 쓰기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고(126), 고쳐쓰기(158)를 종종 생략했던 요즘 나중에 오탈자를 발견하고 황급히 고쳐야했던 때를 떠올리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쓰는 몸으로 살기'의 매력에 마침에 눈을 떴다. 덧붙여 책에서 소개한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235)은 정말 인상깊게 읽은 책이라 함께 추천한다. 책을 읽다 그동안 몰랐던 것을 한가지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은 " '쓰기 싫다'에서 출발하는 쓰기(148)" 단락에서 시작했는데, 무심결에 '쓰기가 싫은 적도 있었나' 생각해보니 한번도 '쓰기 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뭔가를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뭘 써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써야할 게 너무 많다'거나 '쓰려던 걸 까먹었다'는 상황은 있었을지 몰라도 쓰기 싫었던 적은 없었다. '쓰기'가 싫었던 유일한 상황은 빽빽이 과제를 받아서 통으로 책 내용을 손으로 전부 옮겨 적어야 했을 때 뿐이었다. 쓰는 행위 자체만을 지나치게 많이 해야했을때 였는데 요즘은 필사에도 관심이 있으니 그조차도 싫지 않아졌다. 책까지 낸 저자가 왜 '쓰기 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내용을 살펴보니 자신이 쓴 글에 그만큼의 무게가 지워지기 때문이었다.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글에 가치가 매겨지는 것에 대한 책임감 등이 압박이 되었던 것 같다. 반면 먹은 것, 소소하게 경험한 사건, 갑자기 떠오른 생각 같은 것들을 그냥 쓰고 싶어서 쓰는 동안 혹은 과제나 일을 하는 동안에도 밑준비를 하는 과정이 버거웠던 적은 있어도 쓰는 것이 싫었던 적은 없었던 것에는 그런 무거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쓰기 싫었던 적이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발견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되었다는 의미에서도 좋았지만, 이 점이 글쓰기를 대할 때 내가 가진 가장 큰 이점이겠구나 싶어서 의미있었다. 글을 쓸 때 되도록이면 불분명한 표현을 쓰지 않도록 하고, 가급적 외래어를 섞어쓰지 않으려 하고, 짧게 쉬운, 그게 어렵다면 정돈된 문장을 쓰려고 한다. 대단한 사람도,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지키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이를 평가하는 것도 아니다. 그동안은 그저 지나치게 어지럽거나 읽기 힘든 글을 쓰지 않도록 스스로 정한 선으로 여겼는데 '쓰는 몸으로 살기'를 읽으며 왜인지,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저 스스로 최소한의 노력을 들여야 할 지점을 만들어놓았다는 것이 결국은 '쓰는 몸으로 살'고 싶어서 였다. 책을 읽으면서 자신에 대해서 많이 생각했다. 나와 나의 글쓰기를 빈번히 떠올리면서 부족함과 낯선면을 발견하며 읽었는데 그게 부끄럽기만한 것이 아니라 새롭고 재밌기도 했다. 책에서 알려주는 글쓰기에 대한 조언들은 쓰기의 기술적인 면이나 부담을 줄여주는 데 분명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거기에 더 나아가 나와 나의 글쓰기를 염두에 두고 내용을 파고들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몰랐던 자신을 마주치는 지점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더 잘 쓰고 싶어서, 어떻게 써야할지 알고 싶어서 '쓰기'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이 책을 선택한 다른 독자들도 쓰기에 대한 도움을 얻는 것은 물론 자신의 글쓰기를 들여다보는 흥미로운 시간을 가지게 되길 바란다. 📚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게시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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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날 남겨둔 감상을 들춰볼 때가 있다. 대체로 예전에 보았던 작품의 내용이 기억나지 않을 때이다. 기억을 되살려보려 예전에 써둔 기록을 스윽 훑어보면 이 자식이 '좋다~~쩐다~~~' 수준으로만 끄적여놔서 도통 어느 포인트에서 그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과거의 나여. 도대체 어디서 감동한거니... 읽는 양 대비 아웃풋이 너무 후진 거 아닌가 싶어져 괜히 글쓰기에 욕심이 생긴다. 대체 글은 어떻게 해야 잘 쓸 수 있는건가...!하고 머리를 쥐어싸매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고민을 시작하고 나니, 글쓰기에 관한 책들이 참으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쓰기와 관련된 신간이 꾸준히 나오는 것을 보면, 이 고민은 나만의 것이 아닌 게 분명하다. 『쓰는 몸으로 살기』는 이런 방법으로 글을 써봐라!하고 구체적으로 딱딱 짚어주는 점이 시원해서 좋았다. 읽으면서 오, 이거 써먹어봐야지. 싶은 방법들이 많았다. 글쓰기 책인데 제목에 '몸'을 강조한 점이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저자 이력에 합기도를 수련하고 있다고 해서 바로 납득. 본문에서도 체화(體化)를 거듭 강조한다. 반복의 힘을 아는 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내용이었다. 특히 특정한 작업이나 운동을 오래 해 본 사람이라면 더 공감할 것이다. 초반에는 일단 그냥 몸으로 부딪쳐 보는 게 좋다는 것을. 먼저 몸으로 익히는 것. 그것을 형식을 익히는 형태로 글쓰기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쓰는 몸으로 살기'라는 제목이 나온 과정을 보여주는데, 살짝만 비틀어도 괜찮은 글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제목 자체가 먼저 증명하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다. 무도인스러운 발상이 시원했달까. 이 책의 마지막에 제시된 방법은 ''다른 몸'의 감각으로'이다. (책 제목인 '쓰는 몸으로 살기'에 멋지게 응답하는 마무리, 그 빌드업에 감탄하고 갑니다) 다른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글쓰기의 기술을 넘어 삶의 태도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일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사람들 중 유독 괜찮은 이들이 많게 느껴지는 것은 그 태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책을 덮었다. 평소 작가들이 '왜'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는가에 대한 개인적인 의문이 이 책을 통해 어느 정도 해소된 것 같기도. 정말 잘쓴다!싶은 사람들 역시 글쓰기로 고통을 받는다는 점이 조금은 위안 아닌 위안이 되기도 했다.(ㅎ) 글쓰기 책들을 읽다보면 실로 다양한 노하우와 방법론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된다. 이 책 또한 다양한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글쓰기에 불변의 법칙은 없다.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많은 다양한 방식의 글쓰기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계속 편하게 편하게 살짝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써도 되지 않을까! 라는 결론을...(이거...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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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몸으로 살기>.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무적의 글쓰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가 의도한 '무적'은 싸워 이긴다는 뜻이 아니다. 적을 만들지 않는 글쓰기, 더 나아가 적도 친구로 만드는 글쓰기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선 먼저 ‘쓰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부딪히고 흔들리며 변화하는 몸, 삶이 그대로 스며든 몸. 그런 몸으로 써야 살아 있는 글이 나온다는 말이 기억에 남았다. 이 책은 저자가 6년간 연재한 칼럼 「말글살이」를 엮은 글이다. 글쓰기의 기술보다는 ‘글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저자는 진공 속이 아닌, 현실의 얽힘 속에서 글을 쓴다고 말한다. 모든 게 정리되고 평화로운 시간은 없으니 결국 흔들리면서도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완벽히 닫힌 글보다 배회하고 찾아 헤매는 글이 더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그런 글엔 삶의 두께가 두껍고 몸에 힘을 빼 더욱 솔직하고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는 것이라 했다. “좋은 글은 그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이다.” 이 한 문장은 이 책을 관통한다. 글을 쓴다는 건 결국 누군가에게 닿기 위한 일이지만, 그 전에 상대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상상하며 쓰라”라고 말한다. 추상에서 구체로, 구체에서 다시 추상으로 오가며, 말에 가려진 말들을 찾아내는 과정. 멋진 말보다 단순한 문장이 더욱 힘을 가지는 것도 그 이유인 것 같다. 저자는 ‘나쁜 글’을 쓰라고 권한다. 여기서 말하는 나쁜 글이란 도덕과 상식에 갇히지 않은 글이다. 허를 찌르고, 익숙한 틀을 흔드는 글. 글감은 어디에나 있지만, 문제는 스스로 세계를 좁히는 마음이다. 그는 “무한한 세계에서 무한히 열린 가능성을 스스로 닫지 말라”고 말한다. 낯선 언어로 나를 새로 써보려는 시도, 초고에 갇히지 않으려는 노력. 결국 글쓰기란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쓰는 몸' 훈련이다. 언어에 대한 그의 관점도 흥미롭다. 언어는 세상을 그대로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세상을 만들어내는 힘이라고 했다. 그 문장은 마치 내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생각한 바를 글로 다 담아내지 못하는데 왜 '글'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을까? 내가 기존에 생각했던 것들이 주입된 고정관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라는 것이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나름의 자유를 글 안에서 펼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학습된 '글쓰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이질적인 것들이 부딪히며 만들어지는 공동의 결과물인데, 왜 글쓰기만은 하나의 단정한 생각으로 정리되어야 하냐는 생각이 모여 나 또한 지금과는 다른 '글쓰기'를 실천해 보아야겠다. 읽기에 대한 태도 역시 인상 깊다. 저자는 “포도주의 특징을 알기 위해 한 통을 다 마실 필요는 없다”라고 말한다. 글을 쓰기 위해 억지로 읽는 것보다 즐거움을 위해 읽는 걸 권한다고 강조한다. 읽는 즐거움이 결국 글의 숨결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은 글이라고 읽어보라고 추천하는 글이 항상 나에게 재미있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완독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다. 저자가 그랬듯이 읽는 과정이나 경험이 중요하기 때문에 책 읽는 '즐거움'을 찾는 게 더 우선이라는 것이다. 읽는 것 자체가 경험하지 않은 경험을 경험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나만의 방식으로 책을 '즐겁게' 다니엘 페나크 방식으로 읽는 것을 추천했다. 쓰는 몸을 위해서는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가지고 있던 읽는 것에 대한 강박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이 책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부딪히는 고민에 대해서 언급한다. 잘 쓰려고 할수록 그 안에 담기지 않으며 그 무게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것을 언급한다. 완성된 문장을 향한 집착보다, 미완의 움직임 속에서 자신만의 문체를 찾아가라고 말한다. 글은 완성되는 게 아니라 늘 다시 써내려 가는 것임을 강조한다. 무엇이든 해보고 써 내려가고 거듭 단련하여 자신을 쓰는 몸으로 만들어보았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기에게 멀어질수록 자신을 잘 알게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써내려 가는 과정, 쓰는 몸으로 살기는 그렇게 하나, 하나 체득할 수 있는 단련의 기록으로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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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책을 읽기 전, 제목만 봤을 때는 ‘일기를 쓰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 책은 일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책을 읽다 보면 저자와 대화를 나누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말한다. 단순히 “글을 쓰는 게 중요하다”, “이렇게 써야 좋은 글이다”라는 식의 진부한 조언이 아니다. 글을 쓰고 싶지만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에게
이 책을 읽고 나니 나 역시 다시 펜을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 본 리뷰는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된 리뷰입니다. |
글이란 본디 머리로 생각하고 논리를 세워 손으로 옮기는 지적인 활동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이 책을 넘기면서 생각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몸으로 쓴다는 것은 고착화된 표현이나 상투적인 문법, 머릿속에 박제된 생각의 틀에서 벗어나 온몸의 감각을 열어 세상을 느끼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행위를 말한다. 마치 합기도에서 힘을 빼야 상대의 움직임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듯이 글쓰기 역시 어깨에 힘을 빼고 유연한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우리는 늘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나'의 언어로 글을 쓴다. 하지만 저자는 마음을 움직이는 단 하나의 문장은 바로 이 당연함의 균열로부터 탄생한다고 말한다.
내 몸에 타인의 시점을 초대하고 기꺼이 타인이 되어보는 낯선 경험을 통해서만 쓸 수 있는 문장이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감정이입과 공감이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공감이 내 입장을 지키면서 상대에게 동의해주는 것이라면 감정이입은 나를 내려놓고 타인의 자리에 앉아보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다면서 공감과 감정이입을 과연 몇 번이나 해봤을까. 상대의 말을 경청하기보다 내 의견을 말할 타이밍을 재고 있던 것 같다. 글쓰기는 결국 타인의 향한 태도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나를 지키려는 본능을 이겨내고 타인이 되어보는 용기를 가져야겠다.
좋은 글이란 보편적인 진리를 담아 많은 사람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글이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하지만 저자는 글이 보편성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각자의 삶과 경험이 가진 '유일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글쓰기의 목적이 설득이나 교훈이 아니라 내 안에서 좋은 문장 하나를 길어 올리는 것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남의 문장을 흉내 내는 것을 멈추고 나의 고유한 경험 속에서 나만의 단어를 찾고 나만의 문장을 조립해나가는 것이 내 글을 쓰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을 기록하는 행위를 넘어 삶의 축을 단단히 세우고 세계를 이해하는 나만의 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내 것만을 고집하기 쉬운 시대다. 불완전함의 자유를 누리는 글쓰기의 태도는 곧 삶의 태도로 확장된다. 나의 삶 역시 늘 쓰이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쓰는 용기를 잃지 말고 글을 쓰면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인생도 문장도 시작해야겠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쓰는몸으로살기 #김진해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11기 #글쓰기 #에세이 #인문학 #책추천 #북리뷰 #어른의글쓰기 #직장인글쓰기 #말과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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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의 <쓰는 몸으로 살기>는 제목 그대로 '쓰는 몸'으로 살기를 권유하는 책이다. 글쓰기는 내 전공과도 깊은 연관이 있어 더욱 집중해서 읽었다. 그동안 글쓰기를 대하던 태도, 습관 등을 떠올리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도 가졌다. 글쓰기 방법, 글의 의미 모두 서술하고 있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읽기에 딱이다. 천천히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글의 매력에 빠져있다. 쓰는 몸으로 사는 사람, 살고 싶은 사람 모두 읽기 좋은 책. 38쪽 "반전은 다짜고짜 막무가내로 반대하고 뒤집는 게 아닙니다. 반전은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것입니다. 통념을 뒤집고 관습을 혁파합니다. 기존의 가치와 관점을 뒤바꾸는 겁니다. 확신을 연기하는 것입니다. 당연하다는 섣부른 판단을 미루는 겁니다. 움직일 수 없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는 겁니다." 확신을 연기한다는 말이 인상 깊다. 쉽게 느껴지기도, 오히려 더 어렵기도 하다. 108쪽 "문체에 대한 감각은 말에 대한 감각입니다. 말은 외국어처럼 쓰려고 해야 합니다. 술술 나오는 걸 과신하지 말고, 머뭇거리거나 더듬거리며 어렵게 나오는 말을 더 신뢰해야 합니다. 미처 나오지 않은 말을 갈망해야 합니다. 다행히(!) 생각에 비해 글은 느립니다. 되돌릴 수 있습니다. 지우고 고치고 다시 쓸 수 있죠." 평소 머뭇거리게 되는 말은 그대로 남겨두었는데, 이젠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지금껏 너무 편하게만 글을 쓰고 있지 않았나? 나오지 않은 말을 갈망하며, 애를 쓰며 써야지. 생각에 비해 글은 느리고 되돌릴 수도 있다는 말이 힘이 된다. 다시 쓰면 되니 어렵다고 해서 금방 포기해선 안 된다. 214쪽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인 언어는 우리에게 '기쁜 소식'입니다. 언어가 이 세계를 온전하게 담는 것이라면 우리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들이 쓴 글이면 충분할 겁니다. 잘만 썼다면 덧붙일 게 없겠죠. 말하는 족족 세계를 거울처럼 비추는데 뭘 더 보태겠습니까. 하지만 언어는 태생이 불합리하다고요! 허술하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니까요. 그래서 용기가 납니다. (중략) 그러니 우리의 글쓰기는 부끄럽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자유로울 뿐입니다." 272쪽 "목표를 성취하는 일에만 골몰하는 사회에서 목표 없는 글쓰기에 헌신하는 일은 쓸모없어 보일 겁니다. 그러라지요, 뭐. 우리는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확인하는 미묘한 차이와 변주, 그리고 우리 안의 무한한 가능성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글쓰기는 뭔가가 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글쓰기 자체가 목적이고, 그 목적조차 지워버리는 일입니다. 글쓰기란 언제나 겁나는 일이지만, 쓰기를 반복하다 보면 겁이 약간 덜 납니다." 언어와 글쓰기가 좋은 이유. 위의 두 문단으로 모두 설명 가능하다. 그동안 부끄러워 진심을 다해 쓰지 못하고, 겁을 내던 모습을 떠올랐다. 글은 충분히 좋아하는데, 글쓰기와는 친하게 지내지 못했던 거 같아 아쉽다. 이제 <쓰는 몸으로 살기>에 나온 방법을 참고하여 천천히 글을 써보려고 한다. 쓰는 몸으로 살기, 참 멋진 일이다. -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은 도서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