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다니. 기원 전 그때에도 이상 국가를 세우기 위한 열정과 철학과 토론이 있었다니 놀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이후로 2400여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모든 국민이 인정하고 박수 보내고 적극 동참하는 국가 체제는 왜 아직도 완성되지 않고 있는지 많이 궁금하다. 국가론은 소크라테스가 대화를 나누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국가에 있어서의 정의가 무엇인지 따져보는 것으로 대화 방향을 먼저 정한다. 소크라테스는 국가는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고 본다. 인간은 다양한 욕망을 갖고 있음에도 각자의 능력은 아주 제한되어 있고, 그래서 한 사람만의 힘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란 어렵다. 결국 사람들이 힘을 합치게 됐고, 이러한 집단이 모여 국가가 된 거라 피력한다. 독립된 개인으로 세상을 살아가기는 너무 어려웠을 테니까. 최소한의 국가가 완성되면서 계층이 형성되는데 통치자, 보조자, 생산자 계급으로 나눈다. 정의란 이 세 계층 사이의 관계를 조화롭게 유지하는 것이다. 그럼 정의란 무엇이냐? 정의란 맡은 바의 자기 일을 열심히, 잘하는 것이다. 국민 각자는 자신의 성향과 소질에 맞는 일을 찾아 일해야 한다는 것, 즉 각자의 소임을 다하는 것이며 이는 국가나 개인에 있어서도 동일하다. 또한 정의는 인간의 내면과 관련되어 있다. 자신의 내면을 잘 조절하고, 지배와 복종, 협력을 마치 조화로운 음정을 통해 아름다운 선율을 이끌어내듯 변주해내는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그러한 것이 절제고 그 절제의 결과물이 인격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정의의 문제를 개인에게도 그대로 대입하여 세 가지 요소로 구분한다. 인간의 행동은 지식과 기백과 욕구에서 흘러나오는데, 지식에서 이성과 지혜가, 기백에서 열정과 용기 등이, 또 욕구에는 물욕, 식욕 등 여러 욕망들이 나온다. 이러한 성질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어떻게 인성을 계발하고, 절제를 가르쳐 유익한 사회 구성원이 되게 할 것인가 하는, 교육의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 국가를 관리하는 자들이라면 무엇보다 교육에 신경을 써 바람직한 교육제도를 확립해야 하는데, 음악과 체육은 절대 과목이다. 신체 단련은 건강한 정신의 기초를 만들고, 음악은 감정을 순화시키고 성격을 형성해서다. 교육이란 각 개인의 선한 의지를 촉발시키는 것에 목적을 두어야 하고, 억지로 시켜서는 안 되며, 어릴 때의 학습은 오락처럼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래야만 타고난 소질을 파악해 올바른 길로 이끌 수 있어서란다. 열 살이 넘은 국민은 모두 시골로 보내, 그들이 아직 세상에 때 묻지 않았을 때 이제껏 우리가 얘기해 온 방식과 법률에 따라 훈육하면 된다는 주장은 너무 아득한 꿈과 같다. 한 걸음 나아가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 세상을 보되 보이는 것만 보지 않고 그 너머의 세계까지 보는 이데아론을 접하게 된다. 우리 대중들은 눈에 비치는 것들만 본다. 그리 볼 수밖에 없다. 그 너머의 세계를 보는 일은 시인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시인을 추방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상상의 유토피아 세계에서 살고 있어서다. 그러다보니 호메로스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시는 인간의 온갖 행위와 감정을 모방해서이고, 시인은 어쩔 수 없이 진리로부터 세 단계나 떨어져 있는 모방자로 보여서다. 원형도 만들 수 있고 그림자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원형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나 시인에겐 그럴 능력이 없어서다. 시인은 결국 언어라는 물감을 가지고 시에 색칠한 화가에 불과할 뿐이고, 존재의 본모습에 대해서는 무지했다고밖에 볼 수 없어서다. 소크라테스와 제자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는 다소 황당하지만, 그들이 주장했던 꿈을 멈추지 않고 끈질기게 추구하는 철학의 태도는 배워도 좋지 싶다. 아름다운 가치여서다. 옳다고 수긍할 수 없는 주장이 또 있는데, 최선의 국가 체제는 귀족 체제이며 잘못된 국가 체제 중 하나가 민주 체제라는 거다. 그 시대를 반영하여 주장했겠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된, 제대로 된 민주정치를 하는 게 쉽지는 않겠지만, 가장 바람직한 정치 체제는 민주 체제라고 믿어서다. 무엇보다 서로의 의견을 거듭 개진하고 고민하고, 싸우면서 답을 찾아간다. 지루하고, 재미없고 때론 소모적으로 보여도 그게 민주적 의사결정이다. 책을 접으면서 가슴에 와 닿은 구절이 있다. 바로 국가 수호자의 자세이다. 선을 향해 나아가도록 하되, 다 올라가고 충분히 보았을 때는 그대로 머물러 있도록 해서는 안 되고, 위에서 내려오도록 해야 한단다. 동굴로 돌아와 동료들과 함께 명예와 노고를 나누도록 해야 해서다. 이러한 지도자가 있다면 정말 만세다.
[뒷이야기] 국가론을 공들여 읽어야 할 이유가 생겼다. 지금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선 그들이 정독해야 한다. 서로에 대한 험담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바르고 옳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길을 정확하게 알고 행동해 주었으면 참 좋겠다. 또한 정책과 사람과 미래를 찾는 일을 우선하고. 아니면 나훈아의 ‘테스형‘을 들으며 잠시 마음을 다스려라 권하고 싶다. ‘...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
이환 편, 돋을새김 출판사의 <국가론>은 플라톤의 국가론을 현대 독자의 관점에서 재구성한 책이라고 할 수있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국가를 이끌고 운영하는 법에 대해 여러 철학적인 관점을 펼쳐내면서 이상적 목표를 제시했는데, 수천년 전 그리스의 이야기를 현대 독자들이 별다른 배경지식 없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적절하게 재구성하고 풀이하고 있는 책이다. 술술 잘 읽힌다는 것도 장점이며, 원전에 충실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