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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때때로, 버릇처럼 보게 되는 연주 동영상이 있다.
일본에서 플래시도 도밍고의 지휘 아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장영주.
장영주가 연주하는 비제-사라사테의‘카르멘 판타지’는
어떠한 수식을 붙여도 채워지지 않는 항아리이다.
2002년 출시된 장영주 앨범 <Fire & Ice>에 실린 첫 곡 ‘카르멘 판타지’의 뮤직비디오는
그 해 한국인이 뽑은 최고의 음악영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 도심과 집시풍의 우울한 하늘, 그리고 장영주는
바이올린으로 하나가 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빨려들게 하였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고?
나는 지금까지 비제-사라사테의‘카르멘 판타지’가 전부인 줄 알았다.
20세기 슐레지엔 태생의 미국 작곡가 왁스만이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을 주제로 ‘카르멘 판타지’를 완성한 줄은 모른 것이다.
리투아니아 바이올리니스트 줄리안 라클린의 선율로
비제-왁스만의 ‘카르멘 판타지’를 만난 것이다.
고백하건대, 프로그램북을 보면서도 의당 사라사테이겠거니 여겼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고개를 가로젓다가 나도 모르게 빨려들어갔다.
집시소녀가 관람석에서 뛰쳐나와 무대에 오를 것만 같았다.
현(絃)이 끊어질 위기로 몰고 가는 줄리안 라클린의 격정 앞에서
멋들어지게 플라멩코를 출 것 같았다.
열락에 빠진 소녀의 붉은 볼이 눈앞에 선하다.
줄리안의 등에는 수많은 물줄기를 만들어내고 있을 터.
몸에서 품어 나오는 열기로 인해 공연장이 뜨겁다.
그는 음악으로 우리에게 말하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관객이 다 빠져나간 무대의 허전함도 이 순간이 있기에 참을 수 있다고!
우리는 줄리안의 마음을 읽었다.
그래서 다 함께 영원 같은 박수를 보냈다.
무겁고 진지한 슈베르트 소나타에도,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오를 것 같은 크라이슬러의 아름다운 로즈마린에도.
줄리안 라클린은 82억 상당의 엑스 카로두스로 연주하였다.
내 귀는 270여 년 전 제작된 명품의 소리를 구분할 수 없으나
줄리안 라클린이 설사 82만원짜리 바이올린으로 연주하였다고 하여도
82억의 가치로 받아들일 수 있는 감동하는 힘이 있다는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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