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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의 하나는(음악도 마찬가지이지만) 자기와 코드가 맞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데에 있다. 얘기를 나누다 우연히 이야기가 책 쪽으로 흘러가고 좋아하는 작가나 최근 읽고 있는 책에 대해 얘기하다 둘이서 이야기에 완전히 빠져들어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아 이 사람이 이런 작가를 좋아하는 사람인지는 몰랐는데‘라고 감탄하는 것도 잠깐. 둘은 서로의 교집합 밖에 있는 또 다른 작가들을 찾아내기 위해 열심히 탐색한다. “그러니까, 그런 스타일로 추천 하나 해줘.“라고 말하면서.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는 그렇게 해서 내게 들어온 소설이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은 영원히 내 시야에서 가려져 있었을 터. 그는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이 소설을 가끔 꺼내 읽으며 ‘작품을 쓰려거든 이런 작품을 써야 하는데 말이야…‘라고 중얼거린다고 했다.
나는 어땠냐고? 그와 코드를 공유하고 있었던 만큼, 대 만족이었다. 마치 구성이 완벽한 한 편의 멋진 영화를 본 느낌이랄까. [Old Boy] 혹은 <유쥬얼 서스펙트>를 봤을 때처럼.
이지형이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작품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못내 속상하다. 영화판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일까? 시나리오든 소설이든 뭐든 좋으니, 이런 감성으로 한 번 더 나와 그를 열광하게 해달라. 부디. [인상깊은구절] "유키코, 하도 궁금해서 묻는 거니까 양해해주십시오. 당신은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을 배반하고 있는데 당신의 심정은 도대체 어떻습니까? 그러니까, 제 얘기는 여자가 남자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은, 단지 더 이상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란 이유로밖에는 설명이…….” 유키코는 답답한 내 질문을 시원하게 잘라주었다. “여자들은 흔히 남자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데, 완전 사기죠.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운동회 날 비가 올 때나 하는 말이고…… 여자들은 대개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어서도 물론 아니고, 다 필요해서 하는 일입니다. 왜, 해명씨는 상처받는 게 두렵습니까? 사람들은 상처에 대해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상처 받는 걸 때로는 즐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상한 일이죠? 사랑은 주고 받지 못해 환장을 하면서 상처는 당연히 자기 혼자만의 것으로 알다니. 넘어온 공을 받아치지 못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다니, 바보들 아닙니까?” |
| 사실 만난게 행운... 한국소설을 많이 읽는다고 할 수는 없는 나지만 한국소설에 대한 불만은 있었다. 우선 왜 우리나라는 거장, 노장으로 불리는 작가나 여성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들을 제외하면 나같은 사람들이 이름을 기억을 할 만한 작가는 없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해봤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 소설가가 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지 않을까? 첫째, 신문사나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신인작가 공모전에 적어도 한 번은 입상을 한다. 둘째, 소설을 열심히 쓰면서 쨍하고 해뜰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소득상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호프만처럼 직업을 2개 가지고 생활하는 이중 생활을 하는 수도 있겠다. 이런 가정으로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제까지 유명작가의 소설이라는 것을 읽을 것을 잘 생각해보면 소재에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소설을 읽게 된 것은 상당히 행운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독특한 소재의 소설이 선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말이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의 무대는 심각하기 그지 없는 일제하의 경성일지 모르지만 잘 생각해보면 공상과학소설에 버금가는 상상의 날개를 보여준다. 우선 소재 자체가 그렇다. 일제하의 조국을 위해 싸운다고는 하지만 알고보니 아무 것도 아닌 독립투사 아가씨와 이 아가씨를 사랑하는 애인을 구하는 것이 나라를 구하는 것보다 힘들다고 생각하는 얼간이 같은 총독부에 근무하는 청년의 러브스토리라... 확실히 소재가 특이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흥미있게 읽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결말까지 읽고 난 후의 느낌은 뭐라고 꼭 꼬집어 이야기는 힘들다. 소설이 내포하고 있는 주제가 심각한 것이라 내가 못찾은 것일 수도 있으나, 역사책의 한 페이지인 일제시대도 현대와 같은 시대로 혼란스럽고 살아가는 것이 참 우스꽝스러운 일이라는 정도의 느낌 밖에 들지 않는다. 재미있게 읽고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도 참 우스운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블록버스터라고 재미있게 보고나서 감동이 없다는 둥 예술영화라고 보고 나서 재미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이 소설을 만난 것 자체가 행운이라는 것 외에 더 자세한 평가는 다음 소설이 나온 뒤에 가능할 것 같다. |
| 이 소설을 접하게 된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방학도 했겠다... 그동안 읽고 싶은 책을 골라 담는데 문학동네 신인상 작가의 책을 덤으로 한권 더 준다는 것이다. 문학동네 신인상 작품은 한번도 읽어 본 적이 없었기에 이 기회에 읽어보자.. 하는 심정으로 구입을 했고, 책을 받자마자 나는 이 특이한 제목의 책을 제일 먼저 집어들었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냐라니? 도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그런데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제목만큼 강렬한 그 무언가를.. 책을 계속 읽어야 한다는 그런 끌림을 느낄 수는 없었다. 이해명식 사랑방법도 이해가 되지 않았고, 조난실의 어처구니 없는 사랑법도(그녀가 사랑을 했었기나 했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이해할 수 없었다. 중간중간에 작가 특유의 기질이라고 느껴질 만한 구절들이 눈에 띄기는 했으나, 전체적인 내용은 글쎄... 이곳에 들어와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분들의 리뷰를 보고 적잖이 놀랐던것이 생각난다. 어..? 이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은거야? 나랑 같은 책 읽은거 맞아? 좋은 얘기, 작가에 대한 칭찬만 쭉 늘어져 있는 이곳에 나쁜 말은 쓰기 싫어 그냥 나와버리고 말았는데, 오늘은 맘을 다잡고 다시 컴퓨터를 켰다. 신인이라고는 하나 특이한 전개방식도 맘에 들고.. 특이한 사랑법도 정말 특이하다고 느꼈으니, 작가의 정진을 기대한다..로 축약되는 다른 리뷰들을 제쳐놓고라도, 내가 느낀 점을 그냥 솔직히 얘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혹시 또 모르겠다. 요 며칠간 읽은 책들이 꽤나 삶의 심각성을 논하며 살고 싶은 욕구를 말살시키는 것들이어서 이 책이 내게 더 힘겹게 느껴졌는지도.. 독자 리뷰를 쓰며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꽤 쉽지는 않겠지만... 근데.. 망하거나 죽지않고 사랑할 수 있겠냐면...? 글쎄.. 죽어도 난 이해명같은 사랑은 못할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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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거나 죽지않고 살 수 있겠니는
한 모던 보이의 불안한 첫사랑과 파고들수록 알수 없는 모던 걸 조난실의 이야기 이다.
이들 말고도 우울한 정조위에 신문물이 넘실대는
경성거리에 활보하는 생동감넘치는 캐릭터들....
멋지지만 소년같은 심성의 모던 보이 이해명을 움직이는
즐겁고도 경쾌한 일제시대의 이 죽일놈의 사랑!
망하거나 죽지않고 살수 있겠니를 원작으로한 영화 모던보이도
한껏 기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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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하거나 죽지않고 살 수 있겠니'를 낄낄 거리며 보다가 마지막
에는 우울해진 독자 -
당신이 이 소설을 읽고, 복잡하고 산만한 구조라고 느낀다면 당
신은 영화를 보면서 중간에 어? 저게 어떻게 저렇게 돼? 라고 묻을 사람.
당신이 이 소설을 읽고, 내용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아직은 사랑이 외로움의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다는 걸 깨닫지 못한 사람.
당신이 이 소설을 읽고, 주제의식의 부재와 가벼움을 느낀다면, 당신은 아직, '하면 된다' 라던가 '휴지는 휴지통에' 라는 표어류를 보고는 긴장으로 손에 땀이 나고 있는 사람.
만약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이해명이 폭탄을 뒤집어 쓰고, 서대문행 전차를 탔다면, 이 소설은 (그 읽는 재미는 둘째치고) 시대극 형식의 3류 러브스토리가 되었겠지만, 다행히도 이해명은 가벼운 마음으로 청량리 행 전차를 탄다.
독자로서 읽는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기쁨과 일상에 갇혀 사는 내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게 하며 우울함도 준다.
좌파도 우파도 될 수 없는, 될 마음도 없는 젊은이들. 결코 극단까지 갈 수 없는 대부분의 보통 젊은이들.
(한국 소설은 주로 삐뚤어진 극단을 향해 달린다 -_-)
대의명분은 누가 처음으로 만들어 낸 걸까? 아마 그 젊은이들이 나이들어 먹고 살기 위해 만들어 낸 거겠지...
아직은 난 나이를 안 먹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청량리행 전차를 탄다.
이 소설 - 영화로 만들어 진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후속작을 기대.
[인상깊은구절] 나는 전차에 올라탔다. 땡땡땡 종소리와 함께 나를 태운 청량리행 전차는 경쾌하게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전기의 영혼을 타고 이제 막 깨어나기 시작하는 경성을 가로질렀다. 나는 점점 '나의 둥그런 푸른 무덤'과 멀어지고 있었다. 어쭐 수 없었다. 나는 결국 조난실과 한패가 될 수는 없었다. 공범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서로의 아픔에 무감각해지는 것은 슬픈 일이니까. 그녀가 나를 더욱 아프게 한다고 해도 나는 그대로 느껴야만 하는 것이다. 슬퍼지지 않기 위하여. 그러나,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실은 진짜 이유가 따로 있는데, 아무래도 총독보다 멋있게 보이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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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파탈.프랑스어로 여자라는 뜻의 femme와 치명적이라는 뜻의 fatale을 합쳐서 만든 판도라 이후 수많은 남자들을 울고 웃게 만든, 요부라는 으시시한말로도 통용되는 단어인 팜므파탈이 등장하는 소설.
#1. 이해명. 조선총독부에서 일하고 있으며 도시 계획을 위해 경성에서 일어나는 시시콜콜한 일들을 정리하고 줄을 긋는 작업을 한다. 어느날 난데없이 한 여자를 사랑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팽개치고 그 여자를 사랑하는 데 아낌없이 시간을 낭비한다.처음엔 멀쩡하다가 점점 우스꽝스러워지더니 결국에는 안 멀쩡하게 된다.거짓말을 용감무쌍하고 순수하게 해대는 팜므파탈을 연인으로 두는 경우 어떻게 되는지를 몸소 보여주는 비감한 캐릭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바보짓은 하지 않음으로써 애써 주인공이라는 제 체면을 지킨다.
#2. 조난실. 단독 주연은 아니지만 주연인 이해명을 통해 낱낱이 드러나버리는 통에 누가 주연인지 헷갈리게 하는 우리의 팜므파탈. 낮에는 양장점의 점원으로 밤에는 카페의 여왕으로,그리고 조국 독립을 위한 테러집단 시애단의 일원으로, 중국에 망명중이며 거사를 위해 경성에 잠입한 테러박의 부인으로도 살아가는 우리 마음 속의 요부. 수없이 많은 애인들 중 특히 이해명이 자기를 괴롭히는 바람에 이런저런 일들이 꼬이게 되는데 이를 수수방관하지 않고 끈질기게 이해명을 구박하고(옛정이 조금 남아있기는 하지만), 팽개친다. 게다가 테러 박이라는 존재하지 않는 남편을 내세워 자신을 보호하는 지능적인 팜므파탈의 면모를 보인다.
#3. 배경. 독특하게도 소설은 일제치하의 경성을 무대로 하고 있다. 모던걸과 모던보이들이 한껏 멋을 내고 심야의 지하 댄스홀을 들락거리며 양장점 쇼윈도에 자신을 비추이는 그런 경성. 작가는 철저한 (제맘대로 이런저런 배경을 변조하기 위해서 당시의 시대적 유물들에 대해 나름대로 조사를 했다는 생각이 들만큼 어색하지 않다) 자료 조사를 통해 사물들에 고색창연한 분위기를 덧씌우거나 고색창연한 사물들을 이용한다.
#4. 묘사.누구나가 꿈꾸고 있는 독특한 방식으로 치사하거나 어정쩡한, 이란 독설에 매이지 않을만큼 잘하고 있다.
확실히, 친구의 정부를 만난다는 건 거스름돈을 더 받는 것처럼 약간 떨리는 일이었다.(p 99)
물론 거스름돈을 더 받은 것처럼 왕기쁜 묘사라고 생각이 되는것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허리 제끼고 웃으며 볼 수 있는 정도의 묘사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척 거만한 진술이다.솔직히 말하면 글을 읽으면서 이런 유쾌하고 유머러스한 묘사를 한다는 것 무지 어려운 일이다, 싶은 곳이 자주 눈에 뜨인다.) 치열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그 시선을 소설 내부로 옮기고, 또 그것을 작가 내부의 여과장치에 거르는 과정을 충실히 해낸 것처럼 보이는 묘사들이다. 이러한 묘사를 통해 배경은 현실성을 갖고, 인물은 입체적인 것이 되며, 사건은 폭발 직전의 그것으로 비추어지고, 소설은 나름의 의미를 갖게 된다.
#5. 대화. 이 소설의 또 하나의 장점은 인물들의 짧은 대화를 통해 유쾌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는데...... 들어주겠어? 별로 어려운 거 아냐.”
“......뭐예요?”
“지금 한 얘기 다 거짓말이라고 해줘. 당신한테는 누워서 떡 먹기잖아.”
이해명은 조난실이 사실은 지고지순한 자신의 애인이기보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뒤통수를 쇠망치로 내리치는 일을 밥먹듯이 해내는 팜므파탈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뒤에도 정신을 못차리고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조난실을 향해 그것이 거짓이었다고 말해 달라는 이 구절을 보면서 화들짝 웃지 않을 수 없게 되는데, 작가의 많은 대화에 이런 유쾌함이 묻어난다.소설에 힘을 부여하는 인물들의 대화가 침울하면 침울한 소설이 유쾌하면 유쾌한 소설이 이도저도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소설이 되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6. 감상. 간만에 지루하지 않은 소설이다.시종일관 유쾌하고 읽으면서 더부룩한 기운 느끼지 않아도 좋은. 어디서나 독특하네, 기발한 발상이네, 하길래 도대체 어떻길래 했는데 정말 발칙한 소설이다. 현실을 은근히 비꼬는 묘사들이며 허무맹랑하지만 고개 끄덕여지는 사건들이나 귀엽고 재기발랄하며 우울한 인물들까지 고루 잘 섞어 놓고 있다. 가방 맨 바깥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조금씩 읽으면 좋을 성 싶다.
#7. 주의. 주제 같은 것 찾을려면 아예 읽지 않는 게 좋다.이처럼 작가의 머리 속에서 휘황찬란하게 전개되는 주제의식으로 무장한 책을 주의집중하여서 무언가 찾아내야겠다 독한 맘 먹고 덤비면 괜스레 긁어 부스럼 당하기 십상. 그저 맘 편하게 읽고 참 재밌는 소설 읽었구나, 싶으면 그만일 듯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의 다양하고 표출되지 않은 심상들을 일제치하라는 조금은 얼토당토 않은 시대의 인물들에게 투영하여 유쾌한 상상력 마음껏 발휘하고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라는 말씀... [인상깊은구절] 맑은 봄 햇살이 쏟아지는 총독부 이층 사무실 내 책상 위에서 나는 '나의 둥그런 푸른 무덤'이 깨져라 대성통곡하고 싶었다. 서러움이 복받쳤다. 아무리 그녀가 나를 배반했다 하여도 내 이 슬픔을 그녀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런데 왜, 왜 그녀는 나를 보지 못하고, 아무 소용 없는 세상 사람들만이 나를 보고 있는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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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스러운 한 남자의 독백>
아래에 인용한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는 사랑의 열병 속에서 허우적 대는 한 남자의 짧은 이야기 이다. 책을 펴는 순간 우리는 모두 잘 만들어진 식민지 산하의 경성이라는 세트장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 속에는 30년대 경성의 모습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그 거리의 모습은 놀라우리만치 모던하고 활기 있으며, 우리가 생각하던 구질구질한 식민지의 그늘은 저기 멀리 숨어있다. 그래서 나는 마치 파리의 모퉁이에서 아니면 뉴욕의 한귀퉁이에서 일어난 Love Affair를 보는 것처럼 즐겁고 편한 기분으로 이야기를 즐길 수 있었다. 마치 한편의 액션 느와르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책을 읽어 나가는 데에 걸린 시간 또한 묘하게도 한편의 느와르를 감상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얼추 비슷하였다.
이 소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의 대부분이 역사의식의 부재를 지적하고 나선다. 약간 서툰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꼭 사랑얘기만 등장하였다고 해서, 힘을 들여 설교하지 않았다고 해서 역사의식이 부재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식민지 치하의 경성을 파리나 뉴욕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을 정도의 재기발랄함이 가져온 불경죄와도 같은 것이리라. 예전 같았으면 잔뜩 힘을 주고 긴장하여 풀어나갔어야 할 시대의 이야기를 이렇듯 가볍고 거침없이 가지고 놀듯이 다루었으니... 이 소설의 미덕은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시대를 가볍고 생생하게 우리 곁에 재현하였다는 것, 그것도 인류의 영원한 테마인 사랑이야기로 멋지게 은유하고 때로는 조롱해 가면서 거침없이 이야기를 풀어나간 약간 삐딱하면서도 재치가 넘치는 진행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흠.. 쓰다보니, 온갖 수식어를 남발한듯도 하지만 ^^;;) 새롭게 등장하는 식민지 경성의 모습에 적응하는 단계만 무사히 거친다면 당신도 얼마든지 어깨에 힘을 빼고 웃을 수 있으리라. [인상깊은구절] 용서를 하는 것과 용서를 하지 않는 것, 둘다 소중한 한 가지씩을 포기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용서를 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포기해야만 하고 용서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재를 포기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두 개의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 순간 티스푼이 고분고분히 눕는 모습을 보는 순간 갑자기 잠시 놓고 있던 화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조난실 앞에서 티스푼과 나는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달콤한 혀 안에서 잠시 황홀해하다, 뜨거운 차안에서 잠시 허덕이다 이제 테이블 위세 녹슨 삽자루처럼 누워있다. 사람들은 그런 재수없는 여자는 그만 잊고 좋은 여자 만나 잘살면 그게 최고의 복수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전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게 무슨 복수입니까. 예? 복수란 적어도 칼로 한번 찌르고 열걸음은 도망가야 복수 아닙니까? 어떻게 지금 잘 사는 것이 앞으로 잘 사는 것이 복수가 될 수 있습니까. 내가 받은 상처는 과거의 것인데 과거는 그만 잊어버리라니 정말 답답해서 미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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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계속 제목을 보면서 내용이 절망적인 소설일 거란,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언뜻 보기에 꼭 그럴 것 같지 않느냐 말이다. 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망하지 않고도 둑지 않고도 잘 살던 모던 보이와 모던 걸 들의 쿨한(!) 연애담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물론 연애담이라고 단칼에 자르기엔 당시 상황과도 연결되어 있어, 등장인물들과 결말이 좀 억울할 수도 있지만 대체적으로 그렇게 보였으니 할 수 없다.
작가 이지형은, 이젠 이지민이라는 이름으로 얼마 전에 <그 남자는 나에게 바래다 달라고 한다>를 발표한 작가다. 너무나 현재스러워서 진부하기까지 했던 작품집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신선도에 있어서도 이 작품이 훨씬 재밌었다. 물론 20세기 초, 경성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고 해서 꼭 그렇게 느낀 것만은 아니다. 신선하면서도 독특하고 그러면서도 사랑과 연애에 대해선 지금이나 그때나 보편적인 감정을 잘 그렸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갖게 된 것 같다.
실제로 경성이 그 시절에 어땠는지 난 모른다. 늘 그렇듯이 영상매체나 글로써만 짐작을 할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이 그리고 있는 당시 경성은 마치 내가 그 시절을 살았던 것만큼이나 리얼하게 다가온다. 흔히 그 시절은 우리에게 독립투사나 친일 둘 중 하나로써 다가오게 마련이다. 그런데 글을 이끌어가는 이 주인공 이해명은 겉으로 보기엔 친일이다. 부유한 조상에다 제국대학까지 나오고 총독부에 근무하는 잘 생기고 멋진 모던 보이다. 그렇다고 이 남자가 알고 보니 독립투사다, 뭐, 그런 어설픈 반전 같은 건 없다. 비스무리한 건 조금 있지만…
이해명, 그는 자신을 떠난 여자, 알고 보니 모든 것이 거짓말에다 천의 얼굴을 가진 여자, 조난실을 찾아 헤맨다. 곁엔 양심에 찔려하면서도 경성에서 멋쟁이 바람둥이로 통하는 신스케와 총독부 총무국 인사국장의 부인이면서 자신의 부정까지도 우아하고 유쾌하게 즐길 줄 아는 유키코와의 관계,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랑과 연애, 배신 등등 모던 보이 모던 걸들이 벌이는 세상이다.
“여자들은 흔히 남자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하는데, 완전 사기죠.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운동회 날 비가 올 때나 하는 말이고…… 여자들은 대개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어서도 물론 아니고, 다 필요해서 하는 일입니다. 왜, 해명씨는 상처받는 게 두렵습니까? 사람들은 상처에 대해 일종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상처 받는 걸 때로는 즐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상한 일이죠? 사랑은 주고받지 못해 환장을 하면서 상처는 당연히 자기 혼자만의 것으로 알다니. 넘어온 공을 받아치지 못하고도 부끄러워하지 않다니, 바보들 아닙니까?”
여자가 남자를 왜 배신하느냐는 이해명의 질문에 하루도 빠짐없이 남편을 배반하고 있는 유키코가 대답한 내용이다.
사실 이 책에 모던 보이 모던 걸 들의 연애담만 있는 건 아니다. 그 부분이 제일 커 보여 거기에 초점을 맞춰 읽었을 뿐이다. 당시의 시대적인 멋과 분위기가 정말 생생하게 살아 있어, 독립이냐 친일이냐의 이분법적인 소설에서 벗어난 것이 이 작품의 또 하나의 약점이자 장점처럼 보였다. 결말의 이해명의 태도가 이해가 잘 안 가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멋스러운 작품이었다.
‘시간은 언젠가 한번은 기회를 준다’는 말이 이 책을 다 읽고 내가 마음에 담은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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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독특하다. 제목도 너무 특이하고, 문학동네 신인작가상 수상작이기에 골라 봤는데, 첫장부터 특이했다. 시대적배겨이 1930년대 일본 식민치하다. 최근 3~4년간 읽었던 소설중에 일본 식민치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은 김영하의 [검은꽃]을 제외하곤 처음이었다.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이면서도 언어적 지평은 2000년대에 놓여잇다. '이십세기모던이미지댄스구락부', 카페 '스타박스' 등 곳곳에서 느낄 수 이는 작가의 재기발랄함은 등장인물의 캐릭터, 상황들, 이야기 전개 등에서 곳곳에서 들어난다. 좀 뜬금없기도 싶고, 좀 황당하기도 하면서도 꽤 신선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이해명이 그렇게 찾아다녔던 조난실의 남편 테러박의 존재를 알고나서는 더욱 황당하기도 하고, 나름 반전이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31일까지 맞춰서 없는 시간 쪼개서 빨리빨리 읽느라, 다른 책들에 비해 좀 건성건성 읽은 감이 없지 않으나, 간만에 읽어본 재미&황당 소설이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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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한마디로 재기발랄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바람 빵빵하게 들은 공같이...그런데 다 읽고나면 "이거 거짓말이야.. 어때? 근데 꽤 그럴듯하지?" 라고 말한다. 한일합방이라는 역사적 배경이라는 독특하고 낯선 미장센 속에서 현대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약간 덜떨어진 그러나 아버지를 잘 만나 출세한 틈에 속해있는 이해명과 대단한 거짓말로 모두를 등쳐먹고 다니는 조난실의 코믹러브로망인 것이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무대 장치는 이들의 활극을 위해서 매우 적절하게 '이용'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소설이 현대나 미국에서 이루어져서는 절대 안 되는 이유이다. 독자들도 이 소설이 다 "뻥'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소설은 원래 허구지만 여기서 '뻥'이 뜻하는 것은 시대적 개연성이 전혀 없다는 말-너무나 교묘히 이용되는 시대적 배경에서 펼쳐지는 주인공들의 연기에 몰입하고 마는 것이다. 사실 주인공 이해명의 직업이 애들 장난인가?? 총독부에 그런 인간들만 있었다면 조선의 독립은 바로 이루어져야 했다. 그런 진지하고 엄숙한 시대를 "그런 것 따위는 신경도 안 써" 라며 아예 무시해 버린다.
이 소설의 또 하나의 놀라운 특징은 바로 문체이다. 여기서도 재기발랄하다는 용어가 다시 한 번 적용된다. 정말 재기발랄하다. 김광균이 신선하고 이국적이며 어딘가 애수를 띤 시어를 조탁하기 위해 노력한 것 처럼 이 작가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 같다. 그런 신선하고 인상적인 묘사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과 김승옥의 '무진기행' 과 맥을 같이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수백 마리의 회색 나비 떼가 나를 향해 날아 왔다. 작고 투명하고 세모난 날개를 세차게 파닥거리며, 나는 얼른 팔을 들어 얼굴을 막았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고 날개들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조심스럽게 다시 눈을 떴을 때. 난 그것들이 나비 떼가 아니라 실내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입에 물고 있는 갖가지 종류의 담배에서 피어오른, 어디로 흘러가지도 못하고 녹아버리지도 못한 채 스스로 사라질 때까지 전등 주위를 돌며 퍼덕거리고 있는 희부연 담배연기란 걸 알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