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의 저자인 강준만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인물과 사상'이라는 씨리즈로 '실명비판'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강 교수의 책은 우선 재미있다. 싸움질 구경하는 것과 사람 욕하는 일만큼 재미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딴지일보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상우 교수, 송병락 교수, 임지현 교수 등 미디어를 통해 사회적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모든 보수세력들의 똥구멍을 찔러대고 있다. 하지만, 읽다보면 좀 지친다. 열 살 난 기지배들처럼 말만 무성하다. 인문학적으로나 또 사회학적으로 별 배경지식이 없는 나로써는 "그래, 그 녀석들 극우인건 알겠는데,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콩나무값이라도 내려간다는건가?" 뭐 그 이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국민들의 가치관을 배후에서 조정하는 언론들에 대해서 감시하고 비판하자는 강준만 교수의 침튀김에는 나도 공감하지만, 지식인의 영향력을 너무 과대평가한 나머지,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딴지를 걸어가며 열변을 토해내는건 좀 우스워 보인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어느 사회, 어느 시대에서나 있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역사를 순환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강준만 교수의 이 책이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보수와 진보간의 勢싸움의 본질과 실체를 일반인이 깨닦도록 하는데에는 큰 도움이 되겠지만, 강준만 교수의 진보성향에 마취되어서 비판없이 읽는것은 좋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무튼 강준만 교수나 그가 비판한 극우 세력의 사람들이나 우리 사회에 균형감을 제공하는 필요한 존재들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강준만 교수에게 부탁하고 싶은 점은 진보세력들 중에서 미디어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비판해주셨으면 한다. 그래야 균형미가 있고 또 설득력도 있지 않은가? |
| 강준만교수님의 저서 <<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 라는 책을 잘 읽었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교수님이 월간 <인물과 사상> 에 이미 기고했던 글입니다. 저 같은 경우 예전에 월간 <인물과 사상> 을 통해 이 책에 실린 교수님의 글을 이미 다 읽었기 때문에 책을 구입한지는 오래되었지만 최근들어서야 교수님의 글에 대한 복습차원에서 이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글을 다시 읽어도 새로운 느낌이 드는게, 예전에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보다 세세한 부분들이 다시 새롭게 느껴지는 것이, 다시 한번 교수님의 글을 읽어도 책 내용이 재미있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겠거군요. 교수님의 책을 읽은 느낌이 외국 영화를 다시 한번 본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외국 영화를 보면 사람들의 생김새가 비슷비슷하다보니까 영화가 끝날 때 까지 어떤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제대로 구분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영화를 다시 한번 더 보면 보다 더 영화의 세세한 부분들이 잘 이해되듯 교수님의 책도 그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의 내용 중 임지현 교수의 글을 다시 한번 읽어니 그 때나 지금이나 씁쓸한 마음은 지울 길이 없더군요. 진지하고 성실하게 논쟁에 임하기 보다는 뭐라고 할까요, 잔머리를 굴린다는 느낌이라고나할까요, 여하튼 임지현 교수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읽으면서, 분명 '일상적 파시즘' 에 대한 교수님의 반론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임지현 교수는 자신의 이론에 대한 반성은 커녕 용가리 통뼈 식으로 자신이 결코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지식인의 이런 식의 태도라면 한국 지식계가 후진성을 벗어나기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교수님. 교수님은 이 책 47쪽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요. "나는 '형님' 이라는 단어에 대해 참 할 말이 많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그걸 거부해 왔기 때문에 내가 개인적으로 당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상하게 '형님' 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엄격한 상명하복 체제를 자랑하는 '패거리' 가 싫었다." 교수님의 주장으로봐서는 교수님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철저하게 '형님' 이라는 단어사용을 안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 같은 경우도 '형님' 이라는 단어를 쓰는 경우나, 후배한테 '형님' 이라는 표현을 듣는 경우 모두 별로 유쾌하지 못한 기분을 느겼는데요. 어떻게하면 교수님처럼 사회생활을 하면서 '형님' 이라는 표현을 안 쓸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 같은 경우 교수님과 거의 연배가 비슷한 그러니까 40대 초-중반의 분들에게 '형님' 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제가 만약 '형님' 이라는 표현을 강준만교수님처럼 거부할 경우, 그 분들에게 '아저씨' 라고 표현한다면 좀 어색하고 이상할 것 같거든요. 이 점 <<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 를 읽고나서 교수님께 궁금한 사항입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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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이름이 적지 않게 유명한 측면도 있지만 사실 제목에 끌려 손에 잡힌 책이다.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이며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크게 복잡한 물음보다는 단순한 궁금중으로 책을 보았으나 실상 책의 내용은 생각했던것과는 다른 부분이 적지 않았다. 출판된 년도가 꽤 지났기에 큰 효용가치는 없을것이라는 생각에 일단은 빌려보았던 책인데 빌려볼만한 것 이상으로 출판된 당시라면 구입할 만한 가치가 있었을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많은 논쟁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이름들중 대표적인 이름일 것인데 그의 이름만으로도 한번쯤은 봐도 손해는 아닐만한 책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을듯 싶다.
내용을 보자면 이 책에 나오는 지식인은 그 이름이 실명으로 자세하게 거론되어 있으며 그들이 주장한 내용에 대한 비판과 반론 및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는 내용이 주된 형식이며 중간중간에 비판자로 거론된 사람의 기고문이나 저서의 인용에 대해 반박으로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자 하는데 결국 그의 주장에서 가장 큰 중점이 될것은 지식인들이 좌파와 우파의 구분을 떠나 한국사회의 주류에 편입하기 위해 행하고 있는 모순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러한 고민이 다시한번 제기되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들이 한국에서 누리는 특혜와 이익에 비해 그들의 주장은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지 못하며 이중적 행태를 담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특정 한국 최대 신문사인 조선일보를 비롯하여 좌파임을 자처하며 조선일보에 일조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비판하는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이 책의 중요점이라 생각된다. 정권역시 당시와 지금은 다르다. 하지만 그때 있던 주류인물들 및 자칭,타칭 지식인임을 자처하며 대중들을 선동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저자는 무언가 자연스럽지 못함을 느끼는 것은 일리 있는 말이다.
소위 이름좀 있는 지식인들의 행태와 과대평가 되어있는 유명세와 영향력 그리고 그들이 사회에 편승하며 누리는 모든것이 결국은 위선일수 있음을 알려주는것 그리고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중 하나 일것이다. 현정권에서도 많은 유력인사들이 있다. 보통 지식인의 모습을 갖추고 후에 많은 편승과 적당한 글로 기고좀 하고 다시 유명해지면 정치적 본성을 드러내는 지식인들은 곳곳에 볼 수 있다. 책을 팔아 먹던, 기고로 유명해지던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 어찌보면 간단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지식인들은 대부분 많은 모순을 안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찌되었건 이 책에서 얻을점은 내용이나 주장보다는 그러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생각, 유명하고 진보적인 지식인이라고 결코 그들의 행동까지 진보적이지는 않다는 사실, 좌파임을 자처하지만 결국 주류에 편승하고 하는 그들의 콤플렉스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가치를 알려주는 측면일 것이다. 사실 그 밖에도 각종 분야에서 지식인의 권력(문화, 경제, 정치등)과 그들의 입장(행위)을 파악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다. 현재도, 앞으로도 계속 되어질 좌파와 우파의 논쟁 속에 그들의 모순을 파악하는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한국에선 이데올로기보다 더 무섭고 강력한 게 학벌과 학연인지라 ''주류''가 아니어야 마땅한 성향을 갖고 있는 지식인들조차 ''주류''로 편입돼 자신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신 ''극우 헤게모니''의 졸(卒)로 기능하는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 그걸 정당화 하기 위해 편을 가르는 ''성채의 정치'' 대신 열린 ''광장의 정치''를 하자는 주장을 내놓는 건 아닌가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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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의 책을 읽는 것은 어떤 면에서든지 자기에게 이로운 점을 제공한다.소설에서는 재미와 감동을, 교양서적은 상식을 보다 넓혀주는 기능을 한다.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어떤 책이든지 그 책의 주제가 있고,독자들이 그 주제를 이해한다면 책으로써의 목적은 달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옛말에 "세 살쩍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있다.어릴적에 책을 읽는 습관을 가지지 못하면 커서도 책을 멀리하게 된다.나 또한 위의 속담에 해당되는 사람이라서 책과 그리친하게 지내지 못했지만 이번에 굳은 결심을 하고 책을 읽게 되었다.역사소설과 같이 쉽게 책장이 넘어가는 책을 읽는 것으로 시작해서 좀더 독서의 폭을 넓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나름대로 경제학도라는 자부심(?)때문인지 의무감(?)때문인지모르겠지만 항상 경제관련서적을 짚어들곤 했던 나로선 이 책은 색다른 책이었다.
항상 경제학서적을 짚었지만 한권을 완전히 독파 못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면서 이제 한권의 책이라도 완전하게 다 읽어보자라는 마음 속 오기심이 발동한것이라고 고백한다.책 제목이 지식인이 들어가므로 혹시나 지식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조금이나마 배울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욕심?. 그것이 내가 이 책을 읽은 동기인 것 같다.책을 읽을 때 항상 처음부터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박혀있는 것 같다. 나 역시도 다르지 않아서 처음부터 읽을려고 했지만 왠지 관심없는 부분이라서 중간에 있는 경제학자 관련 부분부터 끝까지 읽고 앞으로 넘어와서 나머지 부분을 다 읽었다.
이책은 독서습관이 잡혀져 있지 않은 나를 도서관에 앉아서 4시간동안 움직이지 않고 독서를 하게 만든 책이다.쉽게 말해서 어려운 말 싫어하고 무시한 내가 4시간동안 책을 계속 읽었다는 것은 한마디로 지금까진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심오한 철학을 다루는 책이 아닌 만큼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한계는 있었다. 항상 나 자신은 무식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더욱더 그러한 생각을 많이 하게되었다.좌파,우파,파시즘이라는 단어는 나에겐 생소한 단어였고,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인터넷 국어사전을 많이 참고했다. 위에서도 밝혔지만 한권의 책은 독자에게 주는 효용이 있다.그러한 효용을 가지고 있지 못한 책은 사람들에게 외면되고,묻혀질 것이다. 이 책은 나에게 두가지의 효용을 가져다 주었다.그것을 지금부터 말씀드리겠다.
첫째,나에게 ''비판''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가르쳐 주었다.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수많은 정보를 보고 듣는다. 정보를 취하는 통로는 우리가 소위 메스컴이라고 하는 TV 뉴스,신문,잡지등 다양하다.나의 경우를 살펴보더라도 신문을 통해 사설,뉴스등을 많이 읽게 된다.그렇지만 그동안 읽으면서 "그렇구나"라는 말만 되샘김질 했을뿐 그 사설의 내용이 "틀렸다"라는 비판은 할수가 없었다.고등학교에서 비판의 의미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실제로 우리생활에서 실천해 옮길수 있는 ''비판''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알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라는 이 책에는 비판에 대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그 비판이 옮은지 그른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비판을 가르쳐 주었다는 것이 중요하다.미국에 가서 석,박사를 밝고 온 유명한 교수라고 하더라도 오류를 범할수 있고 말과 행동이 일치 하지 않을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교수,기자,아나운서 같은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를수 없는 엘리트''라는 생각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신문을 보든 뉴스를 보든 무비판적인 수용자가 되고 자신이 정립해야 할 나름대로의 주관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무비판적 수용자가 되지 않게 하는 비판을 가르쳐 주고 있다.
둘째,재미를 느낄수 있다.나와 같이 책과 친하지 않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은 이유는 책이 재미없다는데 있다. 책은 딱딱하고 문어체 형식으로만 표현되어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등학교때배우던 국어교과서에서 나와 있는 그 지루하고 짜증나는 문어체 형식의 글을 싫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좀 다르다.우리가 평상시에 하던말. "짜쯩나네" "미쳤네"같은 말들이 출현한다. 이는 작가의 과격한 비판방식 때문이라고 할수 있는데,공부를 많이 하신 교수님도 이런 말을 할줄 알고 또 즐겨 쓰신다는(?)것은 우리에게 만화책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재미를 선사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이 책은 "한명씩 한명씩"데리고 와서 죽도록 패는(?) 책이라고 할수 있는데 서로 글이라는 수단으로 자신의 주장을 표현하고 반박하는 것이 또한 재미를 느낄수 있게 한다. 구경하는 것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싸움구경''이듯이 이 책에서도 글을 통한 싸움이 한층 재미를 더해준다. 책 한권을 읽고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나름대로의 사색을 한다는 것은 참 의미있는 행위인 것 같다. 자신의 생각이 더 풍부해진다는 것을 느낄수 있을 뿐 아니라 좀더 유식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시작인 것 같다. 이 책 한권 읽었다고 해서 지식인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무조건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가 아니라 가슴 깊숙히 우려나오는 책을 읽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어디 그 뿐인가.누가 자길 건드리면 자기가 "아이놈"의 처지 인데도 어른의 멱살잡는 짓도 서슴치 않는다. |
| 비판은 비난과는 다르다. 강준만은 비난꾼이 아닌 비판꾼이다. 그의 비판은 실랄하다. 읽은 이로하금 옳거니..라는 탄성을 자아내게한다. 그는 무조건 비판하지는 않는다. 그에 비판은 확실한 근거를 바탕으로 조목조목 비판꺼리를 찾아낸다. 때문에 그에게 호되게당하고도 쉽사리 그에게 대응하지 못함이 여기에있다. 그는 칭찬에 인색하지 않다. 여기까지는 이책에서 내가 볼수있었던 `비판꾼 강준만의 비판철학(?)이다. 인물과 사상에 실렸던 그의 글들을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은 `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는 그동안 내가 알고있었던 내노라하는 지식인들, 대중에게 지지를 얻고 있는 그들의 이중성을 여실이 보여주고있다.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들... 자신이 존경하는 지식인이있는가? 있다면 그들을 왜 존경하고 지지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생각하던중에 그가 보여주는 모습때문에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우쳐줘서? TV에서 보면 옥의티를 찾으라는 코너가 있다. `티끌`의 수준을 이미 넘어서버린 주류에 끼기위해서라면 자신의 말의 일관성쯤은 무시하는 미디어 지식인들...이 책을 읽다보면 옥의 티를 찾는것보다 더 재미있고 얼토당토 않는 코미디를 볼수 있을것이다. 사람이기에 완벽할 수 없다고? 물론 비판꾼인 강준만조차도 털어서 먼지 나지 않을수 없고, 이 리뷰를 쓰고 있는 나 역시도 그렇다. 하지만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는 사람이라면 대중을 대표해 신문에 의견을 내놓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이 어느정도 일치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시대 모든 지식인이 그렇다는것이 아니라는것 정도는 이 책을 찾는 사람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니 괜한 오해 없으시길... 우리는 이름있는 사람이 어떤 말을 하면 있는그대로로 믿는다. 그리고 박수를 보낸다. 그것에 대해 어떠한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왜? 그사람은 나보다 더 많이 배웠고 많은 사람에게 인기있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그들의 속임수에 자신이 놀아나고있다면 어떻겠는가? 아직도 자신이 지지하는 지식인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지못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당장 이책을 카트에 담기를 클릭하고 구입해 읽길바란다. 우리가 이름만 믿고 지나쳤던동안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에게 속았는지를 알수 있을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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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그의 이름과 <인물과 사상>이라는 잡지를 알게 된 지는 이제 겨우 서너 개월. 하지만, 난 지금 '강준만'이라는 안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 나만의 독창적인 시각을 갖고 있지 못하기에, 나는 진중권, 김규항, 고종석, 유시민, 강준만 등의 견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 중에도 엄청난 저작 활동을 하는 '강준만'이라는 안경을 주로 애용한다. 물론 24살 내 나이에 잠깐 끼는 안경이 될지, 영원히 애용할 안경이 될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지만, 분명 최근 나의 인식을 넓혀 주는 데에 '강준만' 교수님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인물과 사상>이라는 잡지를 쭈욱 구독하신 분이라면, 이 책의 상당 부분이 이미 눈에 익을 것이다. <한국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는 여러 매체에 발표한 글들을 묶은 일종의 테마 에세이집이기 때문이다. 테마는 두 가지다. '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와 '미디어 지식인'이다.
나는 지식인이 되고 싶다. 그래서, 부지런히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사색을 한다. 좀 더 정확히는, 책을 읽다보니 지식인이 초기 형상이 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고, 또 그러한 삶이 갈망된다는 게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그저 막연한 '지식인'이라는 꿈을 좀 더 현실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책이 바로 강준만의 책이다. 그는 이 땅에서 지식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각도로 낱낱이 파헤쳐 준다. 지식인의 실존적인 문제를 날카로운 비판으로 드러내어 논쟁을 일으킨다. 이 책에서는 지식인의 실존적 문제의 큰 화두인 '인정 욕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아 나간다.
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는 어떻게 해서든 주류에 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말한다. 주류에 끼려면 이 시대 주류 미디어를 통하지 않으면 무척이나 힘들다. 이 것은 인물과 사상이라는 잡지를 통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과 3대 신문사 조중동의 하나를 통해 칼럼 하나를 쓰는 것의 영향력을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강준만은 조선일보에 글을 쓰면서 당당하게 생각하는 좌파 진보적 지식인들을 '뜨기' 위해 미디어에 얼굴을 자꾸 보이는 연예인들에 빗댄다. 그들을 '미디어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미디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미디어의 요구와 필요에 응하는 최소한의 타협을 해야 하기에, 이 타협을 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인정에 대한 욕망'이라고 말한다.
인정에 대한 욕망을 생각하면서, 나는 한 사람의 지식인이 되기에 앞서, 한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인생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가정, 내 나라를 초월한 삶에 대한 동경(간디, 마틴 루터 킹), 개인만을 위한 안일한 삶을 뛰어 넘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삶에 대한 명상, 인간으로서의 욕심을 억누르고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는 삶 등을 생각했다. 왜냐면, 겉으로 보기엔 훌륭해 보이는 수많은 지식인들도 많은 거짓과 권위주의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단순히 돈 많고, 인정받는 것이 최고의 인생이 아님을 느끼기 때문이다. 나는 지식인들의 논쟁을 보며, 나의 미래를 보다 철저히 디자인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강준만의 책을 읽으면 또한 지식인의 시장(?)을 파악할 수 있다. 좌파와 우파가 무엇인지 모르던 내가 그를 통해 그 기준을 배워 나갔고, 어렴풋이 구분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시장을 구분하고,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지를 생각할 수 있기에 나는 계속 강준만의 책을 읽는 것 같다.
나는 그를 한국 지식인 분석가(또는 지식인시장 분석가)로 일컫고 싶다. 이 시대 주류 언론에 의해 부풀려 있는 지식인의 모습을 제대로 독자들에게 전해 준다. 물론 강준만의 시각이 다 옳다는 얘기가 아니라, 평시민에게 보다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게 또 하나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인물과 사상> 구독자가 아니라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이문열, 김용옥, 임지현, 정운찬 등 이름만 들어도 부러움이 이는 그들의 또 다른 모습을 알 수가 있다.
YES24에 올라와 있는 <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의 목차를 한 번 보라. 혹여나 이 지식인의 리스트에 당신이 존경하는 사람의 이름이 있다면 꼭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정말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존경하는 사람도 분별력을 가지고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 분별력을 키우는 데 강준만의 잣대도 꼭 포함시키길 바란다.
(참고로, '책내용'에 'three star'를 준 것은, 교훈성과 재미는 있지만, 작품의 완성도는 조금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미 발표한 글들이고, 강준만 씨도 모든 글들이 '미디어 지식인'이라는 주제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11명의 지식인에 대한 각각의 글이 다소 별개의 느낌을 가져 전체적 구성면에서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얘기지, 낱개의 글에 대한 완성도가 낮다는 애기는 아니다.) [인상깊은구절] 한국에서 좌파라는 게 뭔가? 그건 마땅히 비주류여야만 하는 것이다. <조선일보>를 상종하는 일부 좌파들의 주장대로 한국 사회가 워낙 극우적이기 때문에 <조선일보>가 1등 신문이 되는게 불가피하다면, 더더욱 좌파는 비주류여야 맞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강단 좌파는 차라리 좌파 이념은 포기할망정 비주류가 되는 건 포기할 수 없다는 강한 욕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아니 그건 그들의 본능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