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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빨간 색의 표지를 가진 책 속에 담겨 있는 글은 '상상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풍부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었다. 책을 펼치면 앞부분에는 기발한 패러디 소설이 세 편 실려 있다. 맨 앞의 '오징어 행성 왕자의 수련 보고서'는 외계에서 탐사를 나온 오징어 왕자가 시종 흐느적과 함께 학교상황을 인류학적으로 관찰하는 내용이 나온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관행들을 뒤집어 놓는 패러디다.
두 번째 소설인 '새로 쓰여지는 연애 왕국의 역사'에는 연애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다녀야만 하는 '연애센터'이야기가 나온다. 짝짓기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거리가 많이 담겨있는 이 글은, 자유롭고 풍부하게 추구할 수 있는 '배움'을 학교 안의 활동으로만 가둬놓는 우리 사회의 교육제도에 대해서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음미해볼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한다. 세 번째 소설인 '미스터리 연쇄 살인에 관한 노트'는 심전일이라는 형사가 연쇄살인의 범인을 추적하면서 암호를 풀고 범죄자 관련 인물과 접촉하는 가운데,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 내용인데, 학력 인플레이션의 상황을 교묘하게 빗대어 놓은 흥미진진한 글이다.
저자는, 읽는 사람에게 가지고 있던 가치관들을 뒤집어 보게 하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펼칠 때에는 엄밀한 논증에 근거하고 있다. 2부의 '학력폐지, 우회할 수 없는 길'에서는, 학력의 사회적인 기능에 대해 실증적인 자료를 동원하면서 '학력은 노동시장에서 사람을 고용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능력표지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도출한다. 그리고 역사가 채 1세기도 안된 학력주의의 정착 메커니즘을 밝혀 내면서, 학력 인플레이션의 나선형 고리까지 분석한다.
학력주의는 노동시장의 평등과 교육의 성격 모두를 훼손하는 제도라고 조목조목 비판한 뒤, 저자는 학력 인플레의 '나선형 고리'를 획기적으로 끊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안은 '학력 폐지와 자격증 검사에 관한 특별법'이다. 말하자면, 교육을 받는 것은 그 자체로 족한 것으로 남겨두고, 능력을 알아볼 수 있는 자격증명은 '민주적'으로 규제되는 새로운 제도를 통해서 하자는 것이다. 학력이 아니라, 경력이나 추천서, 그리고 필요분야와 관련된 자격증 제도가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2부의 또 다른 글에서는, 학교가 '교육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조직인가?'라는 질문을 철저하게 검토한다. 우리사회는 은연중에 지금처럼 커리큘럼과 학년제, 의무출석과 시험, 졸업장이라는 요소로 이루어진 학교가 '교육을 가장 잘 할 수 있다'고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근거 없이 정당화하는 것은 비판의 칼날을 벗어나지 못한다. 저자는 교육제도의 목적을 '배움을 보다 풍부하고 자유로우면서도 평등하게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라 정의하고, 학교제도와 같이 경직된 '위계제도'는 평등성과 자유를 침해하고 배움의 범위를 협소하고 빈곤하게 만들어 버린다고 비판한다. 근거는 제도주의 경제학과 경제사회학의 조직이론이다.
저자는 '학회' '학습공동체' '벽이 없는 학교'와 같은 '네트워크 형' 조직이 평등하면서도 풍부한 배움을 추구해 줄 수 있는 조직 형태라고 보고, 이를 중심으로 교육환경 전반을 다시 짤 것을 제안하고 있다. 한편, 교육재정의 분배와 관련해서도, 높은 학력을 따는 사람에게만 지원을 집중하고 부자나 가난한 사람 상관없이 똑같이 지원하는 상황을 '실질적인 평등'이라는 가치기준에 비추어 신랄하게 비판한다.
'교육 공공성 의미 뒤집기와 채우기'에서는, '교육의 공공성'을 '학교의 독점성'과 분리시켜, '사회구성원들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평등하게 받으면서도 교육내용이 공적인 비판과 교류에 열려 있는 공공영역'이 되는 것이 바로, '교육의 공공성'이라고 정의한다. 이것은 3부의 '학교 붕괴 시대의 청소년과 진보운동'의 내용과도 연결되는데, 청소년들의 의식세계를 실증자료를 통해 검토한 후, '전통적인 학교활동을 강화하는 것'이 학교 붕괴 시대의 대안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다. 저자는 교육을 학교에 한정된 것으로 남겨두지 말고, 사회운동세력들이 다양한 영역에서 '교육공간'을 직접 창출하여 교육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마지막의 인터뷰-선녀와 했다는 인터뷰-도 흥미롭다. 저자는 '교육'이라는 말 자체부터 시작해서 패러디 소설의 의미까지 독자들이 던질만한 질문에 대해 사례를 들며 흥미롭게 대답하고 있다.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풍부한 상상력의 지평을 활짝 열어 기존 교육제도의 의미를 전복하도록 돕는 한편, 근래에 나온 교육관련책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실증자료와 엄밀한 논증을 통해 대안을 주장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저자 자신의 개인적인 가치관과 선호를 강조하고 일률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기 보다는, '자유로운 사회에서 평등하게 배움을 추구해나갈 권리'라는 가장 기초적인 논제로부터 차근차근 대안을 쌓아올리는 방식을 쓰고 있다.
'탈학교'라는 말은 파괴적이고 일탈적인 변화를 연상하게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학교는 아주 옛날부터 존재해 왔고, 미래에도 계속 존재할 필수품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얼마 되지 않았고 인위적인 생긴 '학교제도'라는 벽을, 당연한 권리의 실현을 위해 필요에 따라 '변형하고' '해체하고' 새로운 제도를 세우는 것일 뿐이다. 학교의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듯이, 학교의 미래도 장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듯이 컴퓨터 통신 기술의 발달이, 배움의 본질을 침해하는 교육제도의 잘못된 점을 고쳐주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대안적인 배움의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들을 계속 창출해 나가고, 올바른 제도적 변화의 방향을 유념하는 일이다. 한겨례 신문에서 읽었던 서평에서는 '이상적인 측면'이 있다고 되어 있었다. 그렇다. 이상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학교의 신화를 계속 신봉하는 한에서만 그러하다. [인상깊은구절] 흐느적이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각지를 돌아다니다 여기와 게임 상황이 아주 비슷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래? 어디야? 거기가 어디야?" "아, 직접 가실 것 까지는 없습니다. 물론 쉽게 찾아갈 수도 있습니다. 저기 학교 근처 놀이터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거기서는 이 곳 주민보다 더 어린 주민들이 비슷한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 게임의 유아적 형태인 것 같습니다." "그래? 그 게임의 이름이 뭔가?" "소꿉놀이입니다. 놀이가 진행되는 동안에 주민은 그 관계가 마치 진짜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부모 역을 맡은 아이가 실제로 돈을 벌어 오거나 아기 역을 맡은 아이가 실제로 부모에 의해 양육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어머, 아기에게 먹일 분유 좀 사다줘요' '빨래는 내가 할테니 밥은 당신이 하구려' 등의 말을 합니다. 그리고 그 말이 좀 더 리얼하면 리얼할수록 소꿉놀이의 재미는 더해 갑니다. 이 곳 학교를 보십시오. 선생님 역할을 맡은 인간이 있고 제자 역할을 맡은 인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인류 역사와 철학을 살펴본 결과,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제자가 되고,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 사람이 선생님 |
| 이한 97학번! 그런데 그가 써내려가는 이론은 교육학을 전공으로 하는 나보다도 월등하다. 이제 학부를 졸업한 사람의 책을 대학원 과정에서 읽어야 한다니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게다가 그의 해박한 경제학적, 법학적 지식 앞에서는 손을 들수 밖에 없었다. 탈학교라는 개념은 이반 일리치가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지만 그가 말하는 것은 학벌이라는 것을 어떻게 벗어나야 하고 홈스쿨링이나 대안적 교육시스템이 어떻게 마련되어야하는지 그리고 국가는 학벌을 가지고 사람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줄 좋은 자료가 되리라 믿는다. 나는 남들이 입시제도를 이야기할때마다 그것은 국가가 국민을 통제하기 위한 자작극이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그런 다음의 논리적 이론 구성에 한계를 느끼지만 이 책은 나의 이런 열등감을 해소해준다. 그것도 명쾌하게 또 한번 쓰라린 좌절감을 느끼게 하지만 그는 대단하다. 그나 나나 모두 우리나라의 올바른 교육시스템의 정착을 그리는 것이 꿈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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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20대 초반의 나이에 <학교를 넘어서>(2010. 민들레)를 발간하며 "오늘날 학교가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외치는 것은 마치 쌀을 매점매석한 뒤 모래를 섞어 팔아먹는 고약한 상인이 자기가 없으면 모두 굶어죽을 것이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고 선언하면서 '탈학교 사회'를 꿈꾸기 시작했고, 그 뒤 대안학교 등 여러가지 노력을 실제 경주했다. 이 책은 저자가 <학교를 넘어서> 초판 발간 이후 진행된 논쟁을 거쳐거 자신의 '탈학교의 꿈'을 교육 공공성, 청소년 의식과 진보운동, 교사직의 성격, 탈학교 운동 등에 대해 좀 더 논리적으로 구성한 것이다.
<학교를 넘어서>에서 저자는 "학교의 진짜 역할이 다름 아닌 '사회통제' 작업과 '사회계층화' 작업"이고, 학교는 "폭력의 피해자가 아니라, 그 두 가지 본분을 다하기 위해 폭력을 생산해 내는 가해자"라고 주장하였다. 학교교육은 무늬만 '공교육'일 뿐 그 실상은 블평등하고 억압적인 교육이라고. 저자는 이 책에서 다시 한 번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점, 문제의 근원을 지적한 후 그 근원을 해결하기 위한 궁극적인 대안이 '학력의 폐지'와 '직무 능력 평가 제도의 사회화'임을 밝힌다. 그는 이 책에서 학력이 노동 시장에서 능력의 지표로 사용되고 있는 상황이 교육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이러한 관행과 제도가 과연 합리적이고 정당한지를 살펴본다.
나는 저자가 제기하는 '탈학교 사회'는 이반 일리히의 'Deschooling Society'와 어느 정도 비슷한 개념이자 문제의식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근대 산업사회가 필연적으로 가져오는 '가치의 제도화'라 할 수 있다. 학습을 학교제도로, 건강을 의료제도로, 이동을 교통제도로, 정의를 사법제도로, 행복을 상품소비로 만들어 내는 가공할 산업사회의 장악력이다. 하지만 이반 일리히의 '가치의 제도화'와 저자의 '탈학교 사회'는 다른 면도 제법 보인다. 그라고 한국사회의 교육에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의 근원적인 원인이 '학력사회'라는 저자의 진단은 약간 빗나간 것 같다. 물론 학교를 사회계층화와 사회통제의 도구로만 생각하면 저자의 지적이 타당할 수도 있지만, 무한입시경쟁과 교육의 붕괴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의 구조화라는 측면에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분석하면 저자의 진단은 어긋난다. 그 부분에 대한 근원적인 원인은 학벌사회와 대학서열체제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학력 사회의 문제점을 주로 제기한다. 그는 실제 학교가 직무 훈련을 제공해 주는 효과적인 장소가 아님을 지적하며 학교 교육기간을 수료하였다는 증표인 졸업장은 직무 활동에 필요한 지식, 기술의 소지를 판별하는 직접적이고 유용한 증명서가 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지능이나 학교 성적은 학교 내 상황에서의 성공이나 실패를 예측할 뿐 실제로 직무 수행 능력을 예측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력 사회는, 대학 졸업자가 늘어나면 졸업증만으로 고용하는 측이 고용을 질에 대한 판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취업희망자들이 자신의 경쟁력이 남들보다 나아지지 않기 때문에 더 높은 학력이나 추가 증명서를 준비하여 학력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이 발생하고 확대된다.
또한 서열화된 대학체제 속에서 지대 딱지가 생겨나고 교육의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학력폐지법' 제정과 추진을 주장한다.
그리고 학력 폐지에 대한 대안으로 '대안적인 교육 조직과 서비스'의 생산, 분배를 제시한다. 그는 교육애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네트워크'임을 말하면서 그 속에서 교육을 생산하고 습득하고 분배하는 시스템이 기능해야 함을 말한다. 그와 더불어 공교육 예산을 수요자들에게 교육 보조금으로 그리고 누진적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교육 공공성은 평등과 자율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현재의 학교는 그와 반대로 독점과 불평등, 억압과 수동성에 기초한다고 비판한다. 또한 그는 현시개의 청소년들이 깔끔한 근대적 주체로 성장하지 못하고 균열을 보이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 기존의 가치 질서에서 탈각된 부분들은 상품 소비의 질서에 채워짐으로써 '저항적 주체'가 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당시 사회 일각에서 제기했던 '교실 붕괴에 대한 저항'이라는 해석을 거부한다.
[ 2012년 8월 0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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