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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선생님은 여성에 대한 사랑에 대해 시대상을 뛰어 넘는 것 같다. 잘못된 결혼이지만 기혼여성에 대한 사랑을 그리시는걸 보면 말이다. 꼭 주인공에 대한 얘기뿐아니라, 그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에 대한 스토리를 보면, 꼭 지금의 모습을 보는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 소설이 그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말들을 낳았겠는가. 주인공 인희는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자포자기로 아버지의 빚을 해결해주는 나이든 남자에게 시집을 간다. 하지만 원하지 않던 사람과의 결혼생활, 그 남자 가족과의 관계속에서 힘들어하던 주인공은, 아버지의 죽음과 남편의 외도를 목격하고, 자신의 인생을 찾아 도망치듯 떠난다. 남편의 추적을 피해, 직업을 가지고 친구네 집에 얹혀 살면서, 결혼전 몇번 만나지 않았지만 사랑했던 진호를 찾아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부분은 다소 소극적이지만 그 행동 자체는 굉장히 진취적인 여성임을 알게 하였다.
대체로 박경리 선생님의 소설은 한순간의 실수나 선택으로 어그러지는 주인공과 주인공을 둘러싼 인물의 갈등, 슬픔 스토리를 이끌어가다, 대체로 불행한 결말을 그리는 반면 이 책은 여주인공 인희는 해피엔딩(?)을 맞는다. 남편에게 들켜 끌려가다 난 사고에 남편은 죽고, 인희만 살아 남는것이 끝이니 말이다. 결국 이 소설의 가장 악인이였고,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유일한 인물인 남편이 죽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호와의 결혼을 허락받기위한 부모님의 설득, 시대 정서와의 싸움등 많은 부분들이 남긴하겠지만, 어찌됬든 법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사이가 됬으니. 이것 만으로도 해피엔딩 이지 않은가.
선생님 소설을 읽고는 매번 뭔가 뜨뜨미지근한 느낌이였는데, 간만에 좀 시원한 느낌이랄까. 우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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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습을 벗어나 주체적 삶을 찾아가는 여성 전환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화의 충돌은 어쩔 수 없이 겪어야만 하는 필수 과정과도 같다. 이전 시대의 특성은 아직 남아 시대를 지배하고 있지만 새롭게 등장한 흐름 앞에서 흔들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전환기의 특징은 일제 강점기나 해방 전후, 386으로 대표되는 시대 등과 같은 사회적 격변기와도 그 맥을 같이한다고 보여 진다. 이런 사회의 특징적인 모습으로 사람들의 가치관의 혼란이 우선적으로 주목받게 된다. 문학작품에서는 바로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적 갈등이나 삶의 태도 등에 주목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경우가 많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사후 묻혀져 있던 작품들이 발굴되어 새롭게 독자들과 만나는 기회가 있어 반갑다. 2013년‘표류도, 파시’와 2014년 ‘은하’와 같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미발표 작품이나 발표되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품들을 새롭게 단장하여 독자와 작가를 이어주는 출판사의 노력이 귀하여 여겨진다. 1950년대를 살았던 젊은이들의 가치관의 변화를 담고 있는 ‘은하’는 1960년 대구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이다. ‘은하’는 대학생이라는 신분이면 사회적으로 상당한 대우를 받았던 시대를 살아가는 여대생과 그 주변 인물들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기존 세대의 가치관과 새롭게 대두되는 가치관이 혼재된 시대를 그려내고 있다. ‘기성관념의 소산과 위선에서 벗어나 주체적 가치관을 지닌 현대적 여성의 삶을 제시’하고 있는 작품이다. 유학 간 애인으로부터 소식이 끊기고 친한 친구는 탈영한 애인을 하숙집에 숨겨주며 불안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런 어느 날 애인의 친구라는 사람이 찾아와 그 애인은 유학하는 동안 만난 여자와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방황하면서 시골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라는 편지를 받고 시골로 내려간다. 집안을 살리기 위해 재취 자리이지만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말에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결혼하고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계모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한축으로 살아가지만 현실로부터 벗어나지도 못한다. 그러다 남편과 계모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고 난 후 도망치듯 서울로 올라와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여전히 과거로부터 발목이 잡힌 상태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에게 애인의 결혼소식을 전해준 남자와 새로운 삶의 희망을 꿈꾸게 되면서 막을 내린다. 소설의 제목인 ‘은하’는 사람의 수와 같이 많은 별이 무수히 흘러간다는 낭만적인 대화체로 통속적인 연애 소설로 여겨진다. 개인의 운명과 시대적 관습에 얽매여 자신의 주체적 삶을 포기해버렸던 은희가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던 위선으로부터 벗어나 주체적 삶을 살아가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1960년대 시대적 격변기에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낭만적 고뇌를 담고 있는 작품으로 여겨지지만 시대적 상황이나 정치적 환경의 변화 등으로부터 시각을 벗어난 작품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삶에 치중한 작품으로 여겨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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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은하 : 박경리의 향기처럼 값싼 아메리카노를 찾다보니 수많은 카페들을 재치고 가장 저렴한 커피를 파는 곳으로 발길을 향했다. 오직 커피값은 1500원을 넘기면 안된다는 신념과 함께 나는 학교 카페를 자주 애용했다. 항상 지나치는 골목길에 위치한 길카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3천원이라는 부담 때문에 1년 동안 단 한번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던 중 어쩔 수 없이 그 카페를 가게 된 계기가 있어 그 곳을 가게 된 이후로, 매번 그 카페만을 가고 있다. 젊은 사장님들의 친절함에 반해(아메리카노도 한잔 더 주고.) 발길을 끊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단골카페가 임대를 올려 주인이 바뀌게 되었다. 그토록 피해다녔던 그 카페가 이토록 정들어 버릴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우연한 인연이 아쉬운 운명으로 된다는 것은 누군가 서정적인 추억으로 돌리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한없이 슬프기만 하다. 이처럼 살다보면 운명이나 인연으로 여겨질 일들이 존재한다. 이는 의도하거나 조작할 수 없는 것들이다. 헤겔은 이것을 정신의 진보하지 못한 단계라 칭했고, 니체는 주사위 게임처럼 어떤 일에도 긍정하라 했것만 매번 이는 어려운 것임을 느낀다. 그러한 비극 속에서 문학을 꽃피우는 작가가 소설가 박경리다. 소설가 박경리 선생과 나는 실재적으로 재회한 적은 없지만, 지역 특성상 그녀를 알게 될 일들이 많았다. 이는 나는 그 사람을 알지만, 그 사람이 나를 모른 것처럼 그리고 내가 그녀를 자세하게 알 때쯤 고인이 돼버린 선생님과의 관계도 운명이라 한다면 운명일 수도 있겠다. 박경리 선생이 살았던 토지문학관과 우리 학교는 멀지 않은 거리였고, 학교 안에도 선생이 강의하시거나 녹취한 흔적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가까이 있는 관광명소를 지역사람이 더 자주가는 것이 아니 듯, 나는 그녀를 너무도 몰랐다. 그녀의 유명한 작품 중 어떤 것도 직접적으로 일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 유명하다는 대하소설 『토지』 또한 오세영 화백의 만화로 보았으니 안다고 하는 것이 민망해 진다. 결국 모처럼 재대로 그녀의 작품을 읽어보게 된 것이다. 책 겉표지를 뛰면 이렇게 그녀의 전신을 볼 수 있다. 이 소설을 읽기 전 작품해석을 먼저 읽었는데, 소설을 읽고 난 다음은 작품해설은 인용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해석에 대한 의미가 읽음으로써 크게 달라졌기도 하고, 내가 집중한 부분은 그러한 시대상에 따른 해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먼저 소설의 캐릭터를 만들어내는데 능숙한 박경리 선생의 테크닉에 맞게, 인물들은 큰 그림으로 엮여 있다. 이 소설이 씌여진 시대는 1960년 4월 1일부터 1960년 8월 10일까지 『대구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이다. 시대의 영향도 있겠지만, 이 소설은 전반적으로 운명론과 인연의 어긋남이 주를 이루는 작품이다. 제목으로 나타난 ‘은하’는 소설에 딱 한번 나온다. 이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데, 긍정적인 결말을 복선으로 깔고 있기도 하지만 운명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하다. 주인공 인희의 모습은 이러한 운명 앞에 갈등하면서도 무기력한 존재로 보인다. 여기서 나온 모든 캐릭터는 결국 은희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은희는 이들에게 의지된다. 이렇둣 소극적 의지는 결국 작가의 세계속에서 투영된 자아라는 생각을 벗어나기 힘들었다. 소설 속 그녀와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생애는 페르소나와 같은 인물로 느껴졌다. 소설가 박경리는 어떤 식으로 평가하는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좀 더 그녀의 작품과 더불어 생을 찾아가 알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녀가 풍기는 향기의 메시지는 결국 운명은 받아들이데, 그 속한 운명을 얼마나 질겁게 이겨내는가가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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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
한국 소설계의 거목 박경리님의 미출간작이 담긴 책이라 해서 얼마나 고대하고 기다렸는지 모른다. 사실 좀 더 당당하고 자신의 세계를 개척해나가는 여주인공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소설이 보여주는 그 시대인 50년대 60년대를 살아간 보통의 여성의 한 단면을 보여준 작품이 아니었을까 한다. 지금 우리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방식과는 다르다고 비난하거나 질타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인생을 좀 더 소중하게 여기고 행복을 찾아갔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 당시로는 드문 최고의 인텔리 신여성인 인희는 미국에 유학 간 남자친구의 배신과 결혼 소식 그리고 잇따라 들이닥친 아버지의 사업 실패 등 좋지 않은 상황에서 나이 많은 남자 거기다 다 큰 아이들까지 있는 남자와의 결혼을 너무나 쉽게 결정해버리고는 곧 후회하게 된다. 또 전 남친의 친구인 진호와 썸을 탄다. 여주인공의 모습이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어서 좀 갑갑했다. 그 반면 탈영한 남자 친구와 동거를 시작하며 자신의 삶의 방향을 바꾸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에 충실한 여주인공의 친구 모습은 여주인공의 모습과 마치 대치구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여주인공이 당대 사회의 여성의 한 모습을 보여주듯 이러한 설정도 당대 사회의 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라 하는데 간절하게 기다리며 연재를 찾아읽는 이들도 있었을 것 같다. 오래된 흑백 텔레비전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책 제목이 왜 은하일까 궁금해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야 깨닫게 되었다. 수많은 삶의 타래 안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수많은 인연들, 깨알 같은 별을 담은 크고 넓은 은하처럼 무수한 인연들. 그 중 하나를 만나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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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박경리 선생님의 책을 만나게 되서 너무 반가웠다. 선생님의 책은 거의 다 읽은 것 같은데, 이렇게 또 소설 한편이 나왔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토지>를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 라고 생각했던 참이었는데 말이다. 이 책 <은하>는 1960년 4월 1일부터 8월 10일까지 '대구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이라 한다. 이렇게 박경리 선생님의 글을 만나게 해주셔서 마로니에북스에 감사드리고 싶다. <은하>의 시대적 배경은 한국전쟁기간으로 거슬러 간다. 그 시대에 대학생들에게는 징집보류라는 특혜가 있었다. 그러니까, 대학생들은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징집기피자가 늘어남에 따라(그당시 5만명) 정부에서는 1956년에 징집 보류 제도를 폐지하게 되는데, 그에 따라 한꺼번에 많은 대학생들이 군대에 입대 하게 된다. 소설은 그 시대상황속에서 방황한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 인희의 대학교 단짝 친구 은옥의 남자친구 이정식이 이런 경우이다. 그는 징집 보류가 해제되고 난 후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지만,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나온다. 그는 군범을 어긴 자신의 행동은 정당하다며 여자친구의 집인 은옥에게 얹혀 살다가 끝내는 헌병에게 잡혀가 폐병에 걸리고 나서야 군대에서 벗어나게 된다. 상당히 보수적인 인희는 은옥의 상황을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청춘 남녀가 같이 산다는 것에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친구에게 책임감을 안겨주는 이정식이 못나보였다. 하지만 인희의 인생도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그녀의 은옥에 대한 생각은 바뀌어간다. 인희를 좋아한다며 줄곧 따라다녔던 송건수가 미국으로 간 뒤 몇개월 동안이나 소식이 없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의 자취집에 한 남자가 찾아와 송건수의 결혼소식을 알리며, 그녀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한다. 인희는 상실감을 안고 아버지의 편지한장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게 된다. 왜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 소극적이었나? 오랫동안 자신의 집에서 일했던 할멈이 새어머니에게 쫒겨나 살고 있는 사위의 집엘 찾아가 오십만 환을 할멈에게 건네면서 할멈도 이제 정신을 차리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했던 그녀가 왜 정작 자신의 삶에는 희망을 가져보지 않았던 것인지. 누가 나를 구하여 줄 수는 없을까? 나를 여기서 구해줄 사람은 없을까. 라며 우물 속 달에게 아무리 말을 건네봐도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바꿀 힘을 갖지 않았다. 자신보다 은옥이 옳았다고. 그녀의 사랑은 진솔하다며 은희는 말한다. 시대상황이 그렇다 해도, 스스로 얼마든지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할멈과 은옥,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조언을 해도 은희는 그들의 말을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였다. 어쩌면, 이 책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박경리 선생님의 책들 중 가장 선정적인 글이 많았던 책이었으나 은희의 삶에 대한 태도에 화가 나기도 했고, 답답하기도 했다. 송건수에게 배반당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 애정에 배반을 당한 여자에게 진정 행복이 존재할수 있을까? 라고 회의에 찼던 그녀가 서글퍼보였다. 자, 얼마든지 우리는 운명에 거부할 수 있다고, 순응하지 말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박경리 선생님의 책. 너무 좋았다.. 괴로웠던 어젯밤 그리고 앞으로 닥쳐올 어려운 일들 그러나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다 합쳐도 그 비중을 뛰어넘는 것은 사랑의 즐거움이다. 부자연스런 이런 사랑의 행각에 부수될 무거운 부채를 염려함보다 순간의 환희를 더 값비싸게 생각하는 그들의 행동, 은옥은 그들 자신의 쾌락을 위하여 괴로움쯤은 마땅히 지불되어야 할 부채라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참 묘한 것이다. 남의 불행이나 슬픔을 볼 때 일종의 위안을 느낀다. 동병상련이란 말이 있듯이 같은 불행자가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지는 모양이고 자기가 처해 있는 불행과 비교해보는 때문이리라. 그래서 자기의 불행이나 어려움을 견디어보자는 힘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p.24) 사람들이란 돈이 생김으로써 마음이 더 인색해지고 기득 이권을 위하여 무정한 수단과 책략을 쓸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더 큰 것을 먹어보겠다고 그야말로 야차같이 날뛰는 세상에서 가난은 나라도 못 당한다는 조용한 체념 속에서 자기의 푼수를 지키며 사는 할먼. 인희는 보잘 것 없는 남의 집 하인살이를 한 할멈에게 뭔지도 모르게 인간의 귀중한 선의 본질을 본 듯 숙연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이들을 착하다고 칭송하기보다 못나고 천하다는 말로 대하여주고 벌레처럼 인간의 대접을 해주지 않는 것이다.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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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때까지는 시험 공부 때문에 제대로 책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대학생이 되면서 첫 방학을 맞게 되자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학교에서 보충수업을 할 필요도 없어서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그동안 시험 공부하느라 외웠던 작가의 작품들을 직접 읽어보자 라고 생각했어요. 유명하고 좋은 작품이라고 하는데 왜 그런지 궁금하기도 했고 읽으면서 뭔가 나에게도 변화가 찾아오지 않을까 해서요. 시간은 많으니 유명한 작품들 중에서 한국의 대하소설들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때 읽은 책이 조정래님의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과 박경리님의 토지입니다. 특히 토지는 문학 시간에 책 일부분이 소개되었던 터라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는데 정말 1권부터 하루에 한권씩 빠짐없이 읽었었네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의 근대 사회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구요. 그렇게 방학마다 책을 읽으면서 이제 더이상 박경리님의 신작은 읽어볼 수 없을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은하"라는 새로운 책을 보게 되었는데 1960년대 대구일보에 연재되었던 장편 소설이라고 하네요. 자칫하면 사라질 수도 있을뻔한 작품이었는데, 당시 연재되었던 대구일보를 샅샅히 뒤져 마침내 한권의 책으로 엮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구일보에 연재되었으니 대구, 경북 지역 독자들만 알고 있었을텐데 출판사의 노력으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네요. 그러면서 당시 생활 모습이나 사람들의 가치관 등을 파악하는데도 좋은 자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작품의 주인공인 인희가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거의 반 강제적으로 아버지 사업 상대에게 결혼을 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아버지와 연배가 크게 나지 않고 재취인데다가 자식들까지 있으니 오늘날의 결혼 조건으로 봐도 좋지는 않네요. 게다가 첫째 아이와는 몇 살 차이도 나지 않아 엄마라기 보다는 언니에 가깝구요. 이야기를 꺼낼 수 밖에 없는 아버지의 심정을 이해해 보려 하지만 이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네요. 어떻게 보면 가족보다는 자신을 위해 결혼을 주선한 것으로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당시 남녀 사이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보는것도 재미있습니다. 오늘날은 남녀가 사귀면서 동거를 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그때는 밤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남들에게 흉이 될 수 있고 얼굴 빨개지는 일이었네요. 인희의 친구인 은옥이 군대에서 탈영한 남자친구를 집에 재워주는 이야기를 하는 부분에서 알 수 있네요. 하지만 인희는 어려운 환경에 고생길이 훤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은옥을 부러워 합니다. 자신은 남편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참기 어려우며 남편이 외박을 하는 것을 오히려 좋아할 정도로요. 이러한 인희에게 강진호는 이성적으로 끌리는 사람이지만 자신은 이미 결혼을 했기 때문에 버린 몸이라고 자책하는 것을 볼때 너무 안타까웠네요. 그러다가 서울로 도망쳐 와서 회사를 다니며 자립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고, 강진호와 만나면서 서로 조금씩 가까워지고 마음을 터놓는 것을 보며 해피 엔딩으로 끝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행히 중간에 굴곡은 있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끝나네요. 시대에 따라 등장하는 인물들만 조금씩 달라졌다 뿐이지 요즘 연애 소설의 줄거리로 써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어떻게 보면 통속 연애 소설로 볼수도 있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나 사람들의 심리 묘사, 그리고 독자를 적당히 밀고 당기는 박경리님의 글솜씨가 더해져 조금도 멈출 수 없었네요. 신문에 연재된 소설이라고 하니 다음에도 사람들이 계속 볼 수 있도록 복선을 깔고 아쉬움을 많이 남겨야 하는게 그래서 그런지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네요. 이제는 만나볼 수 없는 작품들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뜻밖에 새로운 작품을 만나게 되어서 행복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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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변화의 경계에는 항상 '과도기적 진통'이 따르는 법이다. 최초의 자동차, 비행기와 같 은 과학기술 뿐 만이 아니라, 최초의 미니스커트, 나일론 스타킹과 같은 현대생활의 필수품도 모두 그러한 최초의 진통을 겪으면서 점차 사람들의 일상에 자리잡았다. 물론 사람들의 사고 방식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당연하게 생각하는 '상식'이 과거에는 낮부끄러운 수치스러운 일이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폭거였던 경우도 있고, 이와 다르게 당시의 가치관이 오늘날에 비 교해서 한번쯤 겪고싶은 아련한 추억의 가치관으로 자리잡은 경우도 있는것이다... 그렇다. 예를 들면, 과거의 순수한 플라토닉 사랑에 대한 환상과 같은 것 말이다.
이 소설은 이제 고전이다. 작품 속의 시대는 대략 1960년대, 2015년의 오늘날의 가치관으로 바라보면, 때론 답답~하고, 또 유치하고,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쉽게 눈에 띈다. 실 제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인 인희의 삶과 선택에 대해 많은 의문을 품었다. 믿었던 남자친구에게 배신당한 슬픔을 '스스로 망가짐으로서' 표현하려는 가련한 여인, 그녀는 계모의 음모와, 무기력한 아버지의 설득에 굴복해 나이많고 탐욕스러운 부호인 이성태에게 시집을 간다. 물론 근대식 신식교육을 받은 그녀의 상식에, 자신의 선택은 그야말로 '인신공양'에 불 과하다. 물론 주변의 친구들과, 최근 그녀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남자 '강진호'도 그 어리석은 선택을 말리며, 자신과 함께하자 부탁하기 까지 한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아버지의 빚을 대신해 팔려간다. 그리고 오로지 그녀의 몸을 탐하는 짐승 같은 남자가 기르는 '황금새장 속의 카나리아'가 되어, 하루하루를 지옥과 같은 고독과 혐오 로 버티는 삶을 산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강진호를 잊을 수 없었고, 또 자유를 잊을 수도 없 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선택한 어리석은 운명에 속박된다. 아니...달리 선택이 없다 체 념하였다는 것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르겠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의 모습인가? 그녀는 이성태의 탐욕과 불륜을 목격하면서, 집을 나 간다. 그러나 그녀의 '탈출'은 오직 그것 뿐이다. 강진호가 "아직 늦지 않았다" "그 남자 와 이혼해 나와 살자" "이 나라를 떠나 진정한 자유를 찾자" 라고 아무리 요구해도 그녀는 "나 는 이미 더러워진 몸이다" "여기는 미국이 아니다" 같은 한심한 소리만 하고있다.
"여기는 미국이 아니다." 과연 그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에 해설자는 1960년대 당시 한 국의 사회속의 여성의 지위를 말한다. 이혼 과 미망인에 대한 편견의 눈길, 개인적인 사랑 에 대한 연예결혼의 비중을 뛰어넘는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라는 형식의 결혼문화가 아직 그 만만치 않은 세력을 자랑하던 시대... 전통적 가부장 사회를 살아가는 '신 시대의 여성'들 은 이처럼 상상 속의 소설이나, 논평을 통해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계몽을 외치며, 변화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가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누리는 시대가 도래하기를, 그야말로 박경리의 '은하'는 그러한 여성들의 소망을 은연중에 표현한 소설이다. 근대의 여대생들, 신 시대의 지식을 흡수한 여성들이 바란 세상... 과연 오늘날의 시대는 그러한 소망이 가능한 세상일까?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라면 꼭 한번쯤 이러한 주제를 생각하고 그 답을 구할 필요 성이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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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로 유명한 박경리 작가의 소설이다. 1960년 4월 1일에서 8월 10일까지 《대구일보》에 연재된 장편소설로 조윤아 교수와 마로니에북스에서 신문으로부터 원고를 되살렸다고 한다. 그냥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박경리'라는 이름만 보고 편 소설이었다. 처음에 읽어내려가는데 시대 상황을 보고 마치 KBS1에서 하는 아침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았다. 어쩌면 요즘 말로 막장같은 내용을 담기도 했고, 남녀간의 연애를 다룬 것이어서 요 즘의 독자들에게는 내용이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그러한 내용이어서 재미는 있다. 하지만 시대적인 상황들을 엿볼 수 있고, 박경리 작가만의 한 여인의 심리와 행동을 덤덤한 문장으로 섬세하게 표현해낸 데서는 충분히 구별 될만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소설과 드라마(영화)가 다른 점에 대해서 생각해게 되었다. 만약 이 책이 현재 드라마로 나왔더라면 사람들의 흥미와 관심을 이끌어낼만할까?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지만, 내용의 경우에 충분히 흥미롭지만, 구성이나 사건들이 기존 우리가 보아왔던 드라마의 스토리와 특별히 다르게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은 특성상 다루어질 수 있는 은밀한 심리묘사와 가치, 사회적 인식 등을 드라마와는 달리 읽음으로 알 수 있기 때문에 단지 막장 드라마나 소설로 치부할 수는 없다. 이 소설은 그래서 그렇게만 볼 순 없다. 주인공 인희의 상황 그리고 판단은 내게 충분히 이입되어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는 어떤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나를 쫓아다니던 그래서 사귄 남자는 미국으로 유학 후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버지는 사업의 어려움으로 다른 사업가의 도움이 절실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인희는 물론 자신의 상황을 비관하고 그마저 돌아간 고향에서도 마음 붙일 사람 한명 없음을 인식한다. 오히려 장연실이라는 아버지의 첩이 집에서 안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그녀의 선택은 아버지의 사업을 위해 인생을 포기하다시피 하여 아이셋을 둔 50대의 홀아비와의 결혼을 선택한다. 사실 나는 어땠을까 생각하며 살짝 비참한 느낌도 받았다. 1960년대의 상황에 따라 지은 소설의 주인공의 선택이 내가 할 선택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경우 장녀이고, 아버지의 고통을 분담한다는 뜻에서 혹여나 그 당시라면 충분히 인희와 같은 선택이 가능했으리라 생각이 된다. 현재라면 아마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지금이면 '해결이 꼭 그 사업가와 결혼하는 것에만 있나?' 다른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했을 것이며, 절대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하지 않으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당시에 실연과 가족의 상실감을 겪은 인희가 선택한 것은 물론 감정에 휩쓸려서 판단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당시 시대적인 상황에서 여자가 그런 존재(사업에 충분히 이용될 수 있을만한)였음을 보여주며, 유교적인 한국 사회에서 가정을 지키고자 했던 당연한 희생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인희의 상황이 이에 그치지 않고 그녀의 감정과 당위성 사이의 충돌을 보여주고, 그녀를 끝없이 절망의 나락으로 끌어내린다. 그러면서 작가는 인희를 내세우며 서서히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시대의 변화를 따라서 그 당시 갖고 있는 인식과 통념에 문제를 제기하려든다. 친구인 은옥과 새로운 남자인 강진호를 통해 인희는 자신의 심리와 상황들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가 가진 것은 기성 관념이며 그것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설득받는(?)다. 그 과정을 통해 끝내는 열지 않으려고 하는 인희의 여리고 안쓰러운 버팀의 문이 조금씩 열리는 상황에서 소설은 끝을 낸다. 나는 이러한 내용이 그 당시에는 조금 파격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지금이야 자신의 감정을 따르라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그 당시는 한창 광복과 6.25전쟁을 지나서 혼란스러운 시기가 안정되어져 가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과 사회에서 여성이 자신의 감정과 인생을 위해 사회적인 고정관념을 뛰어넘어 살아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에 인희의 변할 수 없는 변하지 않으려는 애씀은 이해가 되기도 하다. 씁쓸하게 끝나지 않을까 안쓰러우면서도 궁금하고 초조했지만 다행히도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는다. 사실 사람의 죽음, 상실감, 실연 등에서 생성된 감정과 상황에서 초연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이성을 찾고 나의 주관을 또렷히 갖고 대처해나가기란 쉽지 않다. 이런 인희의 계속되는 비참한 현실은 그 당시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은 한국의 상황과 비슷하게 보인다. 여러 아픔의 상황에서 인희라는 나약한 여성을 강하게 강제로 바꾸려 하거나 사회에 수동적으로 물러서기를 두지 않았다. 인희 그대로를 두면서도 서서히 인식과 가치를 변하도록 이끌어낸 것은 어쩌면 그 당시 나약할 수밖에 없는 한국의 여성들이 조금이나마 감정의 자유를 갖길 바라고, 자신의 선택에 주관을 갖는 등 여성들의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고자 생각했던 저자의 의도되고 진정 말하고 싶었던 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여담으로 하나 주목하고 싶은 것은 인희를 제외한 여성들(은옥, 연실, 선자 등)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상당히 능동적이었다. 비록 악하고 추잡한 탐욕이 능동적이라는 긍정적인 요소를 다소 흐리게 하지만 그 자체는 혹시나 생각될 수 있는 여성에 대한 비하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시대적인 관념이나 통념에 물흐르듯이 흘러가지 않고 자신의 주관과 의지(?)를 따른 것은 인희와는 상당히 대조되면서도 남자들을 오히려 휘두름으로 개인적인 통쾌함을 느낄 수 있어서 내 개인적으론 긍정적으로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란 참 묘한 것이다. 남의 불행이나 슬픔을 볼 때 일종의 위안을 느낀다. 동병상련 이란 말이 있듯이 같은 불행자가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지는 모양이고 자기가 처해있는 불행과 비교해보는 때문이리라. 그래서 자기의 불행이나 어려움을 견디어보자는 힘이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11% "불가피했던 것이 아니었을 거예요. 인희 씨는 핑계를 삼았을 뿐입니다. 인희 씨는 자기의 사정보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반발하는 것입니다. 좀 더 시간을 기다려 냉정히 자신을 정리해보실 수 없을까요?" "...." "감정으로서 긍정하는 일은 좋습니다만 감정으로서 부정하다는 것은 퍽 위험한 일입니다. 인희 씨는 아마 이 순간에도 후회를 하고 있을 거예요." 37% "시간을 기다리십시오. 시간이 흘러가면 최인희 씨는 자기가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서둘러서 자기를 버리는 행위만은 보류하셔야 합니다."37% 그리고 강진호에 대한 잠재적인 감정을 엄폐하려 드는 자기 자신의 본질이 전혀 외부에서 강요당한 기성 관념의 소산이라는 것을 인희는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을 통렬히 비판하면서도 자기의 감정의 올바른 발로를 굳이 제지하고 있는 인희였던 것이다. 41% "감정을 밀폐하며 사람은 살아야 합니까? 그것이 인간을 행복하게 질서 있게 하는 겁니까? 인희씨는 자신의 감정을 억제했기 때문에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남까지 고통을 주지 않았습니까? 인희 씨가 감정에 충실하였다면 더 손쉽게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먼 길을 둘러서 우리가 만나지 않아도 좋았을 것입니다. 원망스럽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감정에 충실하여야 합니다." 76% "언제까지나 낡아빠진 소리만 하구 있어. 감정은 자유야. 좋으면 좋은대루 표시해야지 왜 억젤 하니? 아무튼 그따위 생각을 하다간 넌 또 실패한다. 평생을 두고 후회를 해야 하는 실패를 한단 말이야. 허긴 나도 인생의 실패자지. 그러나 후회를 하지 않아. 유감은 없어. 최선을 다했으니까. 인력으로 될 수 없는 일이야. 하는 수 없지. 그러나 넌 인력으로 자꾸만 자기의 운명을 막는단 말이야. 처음부터 강진호 씨하고 결혼을 했으면 이런 복잡한 사태가 되지는 않았잖아. 83% "난 너 마음을 잘 알지. 넌 얌전하구 싶은 거야. 나같이 사는 게 마땅치 않는 거야. 그러나 인희, 내 말 잘 들어. 행복이란 순간이야. 그 순간을 놓치면 영원히 행복을 잡지 못한다. 넌 첫번째 순간을 스스로 피했고 이번이 두 번째 기회야. 잘 생각해. 나도 이정식 씨 이제 생각 안할 테야. 내 앞에 기회가 온다면 난 서슴치 않고 잡는다. 그리고 그것에 열중하는거야. 이정식 씨와의 역사는 이미 끝났거든. 넌 처음 기회가 있을 때도 송건수와의 역사가 끝난 것을 명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이 빗나간 거야. 강진호 씨는 송건수 씨보다 모든 면에서 낫다. 널 생각하는 정열도 그만하면 송건수 이상이야." 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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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계의 거목,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미출간작이자 첫 단행본이라길래 이책이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이 어찌나 고급스러운지,,,내 품으로 들어오자마자 기분이 참 좋았던 이책,,,그런데 책속 내용은 나를 한참이나 답답하게 만들었으니,,,간단하게 미출간작이자 첫 단행본인 [ 은하 ]를 소개하자면,,[은하]는 1960년 4월 1일부터 8월 10일까지 < 대구일보 >에 연재된 장편소설이였단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른뒤 2014년이 되어 첫 단행본으로 나왔으니 박경리님의 숨겨진 소설을 읽는 맛에 기대가 많이 되었다. 자! 그럼 책속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저와 함께 책이 참 고습스럽고 양장으로 이쁘게 나와서 60년대의 이야기와 매치가 안되었는데 책장을 펼치자 아! 참 옛날의 이야기구나 실감하게 된다,, 주인공인 (최)은희가 학교에서 돌아와 옷을 갈아입는데 외출복을 벗고 한복으로 갈아입는 모습에서 ,,와~~ 한복이 일상복이였던 그 시절,,,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의 이야기구나,,,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시 읽기 시작,,, 은희는 시골에서 상경하여 서울 K대학에 입학하여 3년이 넘는 하숙생화을 하고 있는 여대생이다. 자신을 줄기차게 쫓아다니던 남자와 연애를 시작하다 2년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남친 송건수가 있으나, 사흘이 멀다하고 서로 주고 받던 편지는 어느새 은희의 일방적인 편지가 되었고 8개월전부터 송건수의 편지는 뚝 끊어져버린 상태다,,, 혹 그의 마음이 변심을 한것은 아닌지 내내 불안하던 마음차에 송건수의 미국생활의 친구였다는 강진호라는 남자가 찾아와 송건수는 미국에서 심한 홈시크에 걸려 몹시 고독감을 느끼던 중 중국여자를 만나 연애를 했고 그녀가 임신을 하는 바람에 결혼식을 올렸다는 그의 소식을 전해준다. 은희는 아버지의 여자문제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하신 엄마가 돌아가신 후 그자리를 꾀찬 새어머니때문에 나름 불행한 가정환경을 송건수의 애정이 있었기에 버텼는데 그가 자신을 배반하고 결혼을 해 버렸다니,,,애정에 배반을 당핞 여자의 자포자기한 될 대로 되라는 식이였을까? 일종의 체념상태로 사업에 실패하고 빚만 잔뜩 짊어져있는 가정형편으로 팔려가는 식으로 시집을 가라는 아버지의 말에 수긍하고 받아 들인다. 아이가 3명이 있고 큰애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있는 늙은 남자의 재취자리라니,,,,,게다가 소문도 굉장이 안 좋다,,기생첩도 있고 오입쟁이라고 나쁜 소문이 한가득인 이 남자,,,아버지가 강제적으로 강요한 것도 아닌데 그 당시 대학교를 다니는 깨어있는 신여성인 은희가 너무나 쉽게 결혼을 받아 들이는 것이 요즘 시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뭐,,60년대엔 그런 상황이 많았겠지만 그래도 여대생의 독립적이고 자취적인 모습을 기대했던 나로썬 조금 은희행의 행동이 실망스럽다,,게다가 지금 막 마음속에 피어나는 강진호를 향한 알수없는 떨리는 마음과 강진호도 은희를 향한 마음이 심상치않아 보이는데,,,, 그녀의 불행의 시작은 결혼식 당일부터 뭔가 잘못 선택되었다는 생각을 함으로써 시작된다.. 책 읽는 내내 답답했다. 어째서 은희는 그런 선택을 하는 것일까? 아마도 작가는 독자들이 바라는 그런 여성상보다는 그 당싱 보편적으로 여성들이 선택할수 밖에 없었던 현실적 선택과 사랑을 보여 주고 싶었나보다. 아버지가 강압적으로 강요한것도 아니니 거부하고 서울로 올라가 공부를 마치고 직장을 구한뒤 자신의 짝을 찾았으면 더 좋았을것...어쨌든 책장은 술술 잘도 넘어가고 낭만적인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었지만 21세기를 사는 여성의 입장에서 이책은 좀 많이 답답했다. 그리고 읽는 내내 참 재미있게 다가오는 것은 그 당시 문체이다,, 인희, 좀 생각해보아~~~. 요런 말투,,,정말 오래전 몇십년전의 영화를 한편 본것만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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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 최인희는 미국으로 건너간 애인의 결혼소식을, 그의 친구인 강진호로부터 듣고 큰 충격에 빠진다. 무남독녀인 인희는 사업을 하는 아버지와 여우같은 계모와 같이 살고 있다. 아버지의 사업이 위기에 처하게 되자 집안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아버지는 인희를 희생양으로 계약형 결혼을 언급한다. 장성한 자식이 있는 중년의 이성태와의 결혼이라니 정말 가당치도 않는 일이건만 인희에게 선택의 권한이 없어 보인다.
1950년대에는 대학생이라는 타이틀이 귀했을터인데 배울만큼 배운 그녀가 왜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 나가지 않았는지 안타깝기 그지 없다. 소설 은하는 대구일보에 연재되었는데 당시의 신문을 찾아내는 출판사측의 노력으로 이번에 출간이 되었다. 세대차인지 몰라도 인희의 행보와 마음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만약에 그녀가 아버지가 권유를 뿌리치고 이성태와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녀의 인생은 탄탄대로였을까? 인희는 세상물정에 밝지도 관심도 없어 보였다. 당시의 사회적인 분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약자였던 여성(or주인공 인희)의 삶은 수동적이었고 답답해보인다. 하지만, 여자로 살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밀고 나가는게 인생을 누릴 수 있는걸 용기라고 해야할까. 나 역시, 누군가가 네 의지대로 선택하고 후회 없는 삶이냐고 물어본다면 자신 있게 대답할 자신이 없다. 매우 오래전에 발표된 소설이다보니 상황과 감성면에서 공감이 힘든 부분도 있다. 그리고, 마치 드라마 단만극처럼 급하게 마무리 되는 결말도 당황스럽다. 예를 들면 우연히 절묘한 순간에 연고지도 아닌곳에서 누군가를 우연히 만난다거나, 갑작스런 사고로 갈등을 마무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주인공 인희를 필두로 인물들의 심리묘사와 갈등의 짜임새 뛰어나고 몰입도도 좋다. 주인공 입장이 된 듯한 가시감으로 인희가 불이익을 당할때는 흥분지수로 두 주먹을 불끈 쥐고서 읽을 정도였다. 책을 읽기전에는 제목인 은하가 여주인공의 이름인 줄 알았다. 은하의 뜻은 비로소 마지막에서야 나온다. 이 제목의 은하가 그런 뜻의 은하일줄이야. 다분히 주인공 인희를 위한 이상적이고 판타지가 내포된 엔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