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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발견
지난여름에는 인적 드문 산촌에 숨어 살았다. 무더위를 피한다는 핑계였지만 하나뿐인 누이가 세상을 떠나 힘들었던 탓이 컸다. 가여운 정을 재울 수가 없었다. 밤잠도 못 자고 출입도 안하니 몸이 어두워져서 찾기기 힘들었다. 그렇게 허기진 시간, 누가 부르는 소리에 밖으로 나왔다. 가벼운 바람이 얼굴을 씻어주고 물기 없는 몸을 밀어주었다. 빛이 번져오는 길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산책을 시작한 며칠, 가늘게 이어지는 오솔길에서 새똥인지 짐승의 똥을 몇 번 밟고는 고개를 더 숙이고 조심해 걸었지. 그렇게 근처의 들꽃이나 풀잎만 보니 모두 작고 연약해져 풀 죽은 낙담은 떠나지 않았다. 그런 어느 날 누이동생의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와, 여긴 웬일이지? 언제부터 길옆에 버티고 서 있는 야생 능금나무, 능금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무에 네가 서 있었구나.
정말 난데없는 한 그루 능금나무가 언덕 쪽에 늠름하게 서 있었어. 풍성한 분홍빛 능금들이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어. 능금들이 말했어. 오빠, 너무 실망 말아요. 더 멀리 보고 사세요. 뒤돌아보지 말고 외로워하지 말아요. 우리는 다시 만나요. 무심히 고개를 드니 오래 질기게 박혀 있던 깊은 상처들이 떠나가고 있었어. 쌓여 있던 절망도 바람 타고 하나씩 날아가는 게 보였어.
다음 날부터는 능금들의 인사를 기쁘게 받았지. 아침이 분홍빛으로 세상에 온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 땅이 더러운 것을 보듬어서 자신의 제 것으로 만들 듯, 누이의 능금들은 배신과 슬픈 어제를 모아 분홍빛 아침으로 만들고 있었어. 오빠 노릇을 못 해준 미안한 마음도 땀 흘리며 누이를 돕고 있었어. 그 아침들은 너무 고와서 그립게 찾아야만 보였지. 그리고 나는 안심하고 편안해졌어.
요즘은 그 산골에 겨울이 와서 눈이 내리겠구나. 잘 갔지? 언 손으로 만드는 아침이 제발 주름지지 않기를.
아침이 하늘을 연다. 네가 밤새 씻어놓아서 환하게 잘 보이는구나. 겨울이 깊었는데도 모두 건강해 보인다. 잘 잤니?
나이 여든이 넘어 쓴 시들을 모았다. 열세 살짜리 소년이 동시를 발표한 뒤 7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시를 계속 썼다. 그러는 동안 벗들이 먼저 먼 길 떠나고, 시인이 살던 미국으로 부른 남동생이 총 맞아 죽고, 하나뿐인 누이동생마저 죽었다. “너무 착해서 평생 손해만 본, 그래서 이루지 못한 꿈이 많았던 누이”였다. 놀랍게도 시인이 장례식장에서 본 광경은 누이를 위해 우는 정든 사람들. 장례식에 온 많은 이가 하나같이 누이의 온정과 용기를 말했다고 한다. “가난한 마음으로 종신한, 아름다웠던” 누이동생을 보내며 시인은 “당신이 오시는구나. / 소리도 형체도 없이 오시는구나. / 밝게 한세상 잘 살아냈다고 / 내 동생 따뜻이 안아주시는구나”(「누이동생의 이별」) 라고 느낀다. 사방에 사랑의 향기를 풀며 떠나는 누이동생을 보낸다.
「아침의 발견」은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쓴 시라고 여겨진다. 「누이동생의 이별」이 누이를 잃은 당혹감과 슬픔이 진하게 배어 있는 반면에 「아침의 발견」은 조금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였겠지. 「누이동생의 이별」을 읽으며 몇 년 전에 먼 길 떠난 큰누나가 오버랩되었다. 생애 내내 식구들 돌보며 정을 나누었던 누나. 남편 병수발을 한 뒤에는 늙은 어머니 모시며 고운 옷 사다 날랐지. 힘들고 어려울수록 스스로 먼저 웃으며 환한 옷 입고 춤추러 다녔지. 밝고 환한 기운을 일터든 가정이든 친구들 만나는 자리든 어디라도 흩뿌렸지. 그 나라에서도 그런 역할 하고 있을까. 누나를 떠올리며 그예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정작 누나는, 내 누나는 새 나라에서도 지상에서 겪은 당신의 험난한 삶을 소재로 천국이 뒤집어질 만큼 떠들썩한 웃음을 만들어 함께 웃고 있을 테지만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