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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무신왕(무휼왕)이 신탁에 의해 부모와 자식을 죽일 운명으로 태어났다." 이것은 고구려 초기의 역사를 골육상쟁의 왕권 다틈으로 그리려는 작의를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신분도 모르고 벽화공'으로 자란다. 이래서는 '大武神王' 될 수 없다. 대무신왕이란 우선 전쟁신이라는 의미도 있고, 신인(神人)처럼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란 뜻이다.
방영주 장편소설 <대무신왕>에서는 다르다. 유리왕의 계비와 차비간의 알력이 있다. 무휼은 차비의 아들이다. 치희를 쫓아낸 사악한 계비 화희가 무휼에 위해를 계속 가하려하자, 백의선인이 나타나 유리왕에게 무휼을 자신에게 맡기라고 한다. 백의선인은 백두산(한밝산)에서 도를 닦는 선인이다. 환웅천왕 때 무위선인, 단군왕검 때 자부선인의 뒤를 잇는 우리 한민족의 위대한 스승이며, 도인이고, 신선에 가까운 사람이다. 무휼은 백두산에 가 백호랑이 젖을 먹고 자라며 백의선인에게 왕이 되는 자질을 배운다. 단학, 우리 한민족의 장구한 역사, 그리고 무예를 배운다. 게다가 선약을 상용하며 왕이 되는데 필요한 수련에 최선을 다한다. 그래야 어린 나이(삼국사기에는 6세로 되어 있다)에 부여 사신을 제압하고, 부여군을 제압한 왕이 될 터이다. <삼국사기>에 유리왕이 해명태자를 자살하게 만들고, 무휼왕이 호동왕자를 자살하게 만든다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신채호 선생 등의 주장에 의하면, <삼국사기>는 우리 역사를 왜곡, 축소, 은폐한 사대주의 저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방영주 소설가의 '작가의 말'을 보자.
고구려 웅비의 반석을 다진 왕
대무신왕은 동명성왕(주몽)의 손자입니다. 고구려 3대 임금이지요. 역대 임금 중 대(大)와 신(神) 자가 붙은 분은 없습니다. 대무신왕(大武神王)이란 커다랗게 우뚝 선 전쟁신이란 뜻이지요. 그런 만큼 대무신왕은 중국을 정벌한 배달국 치우천왕(蚩尤天王)과 함께 아주 특별한 왕입니다. 대무신왕은 부여와 낙랑을 정벌하고, 주변 소국들을 통합하여, 고구려가 웅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분입니다. 대무신왕은 전쟁만 잘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는 대무신왕에 대해 조금만 언급하였습니다. 고구려는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적대국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구려는 끊임없이 중국과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알고 있다시피 김부식은 친중(親中) 사대주의자였습니다. 그러니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중국의 세력을 끌어들여 한반도를 통일한 신라를 높게 보았습니다.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는 될 수 있는 한 은폐, 왜곡, 축소해야 하였습니다. 중국과 적대국인 고구려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을 터입니다. 김부식은 역사를 기술하면서 고구려의 왕이나 백제의 왕은 두 가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훌륭한 왕은 슬쩍 높여 주면서 내리치는 것입니다. 우선 초기의 유리왕과 대무신왕부터 그렇습니다. 그들은 고구려의 기틀을 다진 왕이지만 인륜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그려집니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왕은 가차없이 깎아 내려 버립니다. 독자에게 혼선을 빚게 하기 위해 연령 대도 맞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대무신왕 같이 훌륭한 왕은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놓고 많이 고민하였습니다. <삼국사기>를 무시하고 작품을 쓸 것인가, 아니면 거기에 근거하여 창작할 것인가에 대해. 그러나 대무신왕에 대한 이야기는 <삼국사기> 몇 쪽 분량이 거의 다입니다. <삼국사기>를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삼국사기>의 내용을 포함하되 비판적 시각으로 썼습니다. 맞지 않는 연령 대는 그럴 듯한 논리를 갖춰 매끄럽게 연결시켰습니다. 은폐, 왜곡, 축소된 부분을 상상력으로 복원하였습니다. 소설이란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있었던, 또는 있었을 법한 이야기를, 작가의 머리로 가공해 내는. 서구화의 물결이 무분별하게 휩쓸고 있습니다. 중국의 음흉한 역사 왜곡, 동북공정(東北工程)이 중국 정부의 지원 아래, 대대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시점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선조들의 바른 모습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정체성을 찾고, 자긍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나라를 지켜 갈 힘입니다. 그런 면에서, 독자들에게 <대무신왕>의 일독을 권합니다. 2008년 초가을 지은이 방영주 배상
작가 방영주는 대무신왕의 본 모습을 찾아주려 많이 애를 썼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유리왕은 자애로운 아버지, 백성을 사랑하는 군왕으로, 무휼왕은 거기에 더해 중국을 떨게 한 왕으로 그렸다. 그래야 고구려 태조왕과 광개토대왕의 업적이 자연스럽 연결되며 우리 역사에 대한 자부심이 절로 나타날 것이다. 저 중국인들의 음흉한 동북공정에 적극 대처하는 해석이 될 터이다. 이런 부분을 방영주 장편소설 <대무신왕>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 방영주 장편소설 <대무신왕>은 우선 인터넷 서점에 나와 있습니다. 가급적 <예스24>, <알라딘>, <교보인터넷> 등에서 구입하면 좋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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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정연희 선생님의 방영주 장편소설 <대무신왕> 추천사)
작가 방영주의 치열한 작가 정신은 나이를 버린지 오래 된다.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우리 역사를 축소하거나 은폐한 듯한 의심을 불러일으킬 부분이 적지 않다. 작가는 여기에 착안, 문제의 실마리를 풀어 갔다. 작가는 대무신왕(무휼왕)이 부여군과 낙랑군을 끌어들여 중원과 전쟁을 한 왕으로 보았다. 신채호 선생도 대무신왕이 중원과 9년간이나 싸운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해야, 태조왕이나 광개토대왕의 치적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터이다. 작가는 대무신왕을 요동과 요서를 정벌하여 고구려에 바친 왕으로 그렸다. 작가의 이러한 해석과 역사의식이 결실을 맺어 <대무신왕>이라는 걸출한 소설을 만들어 내었다. 간결, 정확한 속도감 있는 문체의 힘을 빌려 역사를 복원한 것이다. 치밀한 구성과 주제 의식 또한 뛰어나다. 적절한 자리에 시한폭탄을 설치하여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독자를 궁금하게 만드는 방법도 절묘하다. 지금 대무신왕은 방영주 소설을 타고 이 땅에 위대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우리는 방영주 장편소설 <대무신왕>을 통하여 현재를 다짐하고 미래를 설계해야만 할 것이다. 역사의식이 투철한 민족에게만 미래의 문은 열릴 것이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정연희(소설가,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