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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인생에 부여하는 의미가 바로 이런 생각에 달려 있으며 그의 의지가 부조리라는 뿌리 깊은 강렬한 감정에서 비롯됨을 나는 잘 안다. 만일 세상이 부조리하지 않다면 그의 인생 전체는 인생의 근본적인 덧없음(따지고 보면 그를 열광케 하는) 때문이 아니라 그 어떤 희망도 찾을 길이 없다는 허망함 때문에 산산이 흩어져 버릴 것이다. 『정복자들』중에서 부조리한 세상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방법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사는 일은 매우 의미가 남다릅니다. 자기 인생을 망가트리거나 혹은 망가지는 것은 죽음보다 더 두려울 것입니다. 세상이 올바르지 못해서 자기 인생을 잃어버려야만 제대로 살 수 있는 세상은 커다란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이럴 때 부조리한 세상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최선의 방법을 고민하게 됩니다.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바에는 앙드레 말로의 『정복자들』에 나오는 가린처럼 정복자가 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복자는 무력을 불사하며 투쟁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결국 원하는 바를 쟁취하기 때문입니다. 정복자 나폴레옹! 그 이름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큼 매력적입니다. 나폴레옹은 정복을 위해 온 인생을 걸었습니다. 이렇듯 정복을 계속 갈망하며 사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요? 흔히 야심은 자신의 삶을 새로이 만드는 연금술에 있어 꼭 필요한 현자의 돌과 같다고 합니다. 하지만 야심은 어떤 구체적인 행동이 없을 때는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야심보다는 정복을 갈망하는 것이 자기 삶을 얻은 데 있어 좀 더 끈질기고 흔들리지 않는 욕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영혼이 아니라 정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혁명가와 모험가 무정부라는 말은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힘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 무정부시대에 사는 많은 사람들은 국가를 위해 일하면서도 정작 그들은 국가로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했다는 증오심이 없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정복자들에게 혁명이 꼭 필요합니다. 혁명은 증오하는 사람들을 만들고 길러냅니다. 정복자들 중에서 ‘행동하는 유형’, 즉직업적 혁명가들은 현실적으로 혁명으로 잔뼈가 굵어 사람들에게 정치적 의식을 일깨워줍니다. 그런가 하면 모험가처럼 ‘행동할 수 있는 유형’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중요한 존재임을 깨닫고 각자의 삶을 믿게 해줍니다. 모험가였던 가린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면서 마음속 깊숙이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정치적인 의식은 다소 모호했지만 사람들에게 혁명이라는 강력한 힘을 나눠주고 싶었습니다. 만약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혁명이 없다고 한다면 잃어버린 삶을 되찮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고통은 삶을 단단하게 할 뿐만 아니라 희망과 절망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고통이 삶을 공격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오히려 고통은 삶을 웃음거리밖에 안 되는 걸로 만들어 버린다고 했습니다. 결국에는 삶은 고통으로 더욱더 부조리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박꾼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고통이 없어야 하겠지만, 단순히 고통이 없는 것만으로는 삶이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행복은 저절로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내야 합니다. 그는 삶의 부조리에서 자신만의 리듬을 발견하게 되는데 반제국주의에 맞서는 혁명이었습니다. 대의라는 가치에 대한 약간은 환상도 있었지만 혁명은 그에게 숙명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혁명이라는 게 결과가 즉각적이지 않고 늘 변하무쌍하기 때문에 그는 도박꾼과 같은 마음으로 투신했습니다. 고집스레 온 힘을 다해서 놀음만 생각하는 도박꾼처럼 말입니다. 혁명이 노름과 다른 점이 있다면 훨씬 판이 큰 도박이라는 것입니다. 혁명을 하기 위해서는 노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공산주의자 혹은 현실주의자라고 불릴 만한 노선이 없었습니다. 노선이 없다는 것은 결국 쿠데타나 항명 선언에 불과합니다. 정복자들에게 부르주아지가 상징하는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증오심은 선명했습니다. 증오심은 보통 광적인 열정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그는 너무나 인간적이었기 때문에 개인주의자로 냉대를 받았습니다. 이런 냉대를 오래 받다 보면 스스로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비참한 세상에서 오직 현재만을 집착하는 달콤한 악마에 빠지는 것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희망이 전혀 없는 폐병 환자 같은 현실주의자들을 보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익숙하지 않아서야. 비참함도 적당해야 인간적으로 되지. 마치 죽음에 대한 생각처럼 말이야. 대부분의 정복자들은 피 한 방울을 흘리지 않고 세상을 손에 쥐는 것이 가능한가를 의심합니다. 그러니 투쟁은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하지만 폭력적인 방법을 쓰지도 전투를 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정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정치를 넘어서 인간 영혼을 올려야 가능합니다. 인생은 거대한 삼각형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삶은 분명해지고 자기 삶을 더욱 냉철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그는 혁명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삶의 부조리에 맞서 투쟁했고 마침내 혁명에서 승리했으나 이제는 권력이라는 부조리한 힘에 끌려 다녀 다시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게 됩니다. 클레이본 카슨이 엮은 마틴 루터킹의 자서전『나에게 꿈이 있습니다』에서 마틴 루터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은 거대한 삼각형입니다. 한쪽 각에는 개인 자신이 서 있고 다른 한쪽 각에는 다른 사람이 서 있으며 맨 위쪽에서 위치한 각에는 신이 서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적절히 연결되고 조화되지 못한 인생은 불완전한 인생입니다. 인생보다 가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정복자들이 단순히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데 그쳐서는 곤란합니다. 그보다는 사람들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럴 때 꿈은 인간적이 될 것입니다. 신을 향한 진실한 마음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거대한 삼각형의 세 각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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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접하게된 세계문학전집 시리즈, 매번 접하면서 느끼지만 고전이라는 개념 그리고 고전을 읽는다는 또 다르고 색다른 느낌이 이번 작품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네요. 앙드레 말로의 아시아 3부작중 가장 먼저 선보인 <정복자들> 은 제목도 눈낄을 끌지만 우선 1925년 중국혁명을 그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독자들에겐 또 다른 관심을 보일 것으로 보입니다. 뭐 항상 고전을 접할때 가장 먼저 작품의 제목을 깊이 들여다 보는 버릇이 생겼는데요, 이번 작품도 왠지 제목에서 부터 범상치 않는 느낌을 주죠. <정복자들> 이라는 제목 자체가 던져주는 아우라가 왠지 작품전반을 지배하는 하나의 힘으로 작용할 듯 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합니다. 그런데 막상 내러티브속으로 들어가면 다소 맥이 빠지네요. 뭘랄까 처음 제목에서 느꼇던 강력한 힘이 서서히 바람빠지는 튜브를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어 이러다가 물속으로 빠지지는 않을까라는 우려도 가져보게 되고요. 첫 시작은 상당히 지루한 느낌을 몰고 옵니다. 홍콩과 그 주변국들을 배경으로 이국적인(물론 오리엔탈리즘적인 시각으로 볼 수 는 없지만요) 시각과 그런 시각들을 다루는 작품의 시점이 물에 물탄 듯 별다른 무미건조한 맛 마저 느끼게 합니다. 독자들은 대충 앙드레 말로의 자전적인 작품으로 인식하고 작품의 시점 역시 1인칭내지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끌어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는데요. 사실 초장의 스토리 전개는 이도 저도 아닌 그저 그런 시점이라는 자체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단순한 "관찰자" 의 입장을 여실히 보여주므로서 '접근'이라는 부제와 일맥상통한 맛을 선사하네요. 뭔가 터질듯한 분위기는 분명히 감지 되는데 그냥 물 흘러 가듯이 진행되는 내러티브에 다소의 당혹감마저 들게 합니다. 왜 중국혁명이라는 역사적 팩트가 인지되어 있는 상태에서 왠지 영웅주의 같은 것을 기대하기 마련인데요. 말로는 이러한 배려를 칼로 물 베듯이 단절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이번 작품의 가장 매력적이고 빼어난 부분이기도 하죠. 대체로 역사소설이라는 장르에서 영웅과 그 활약상 그리고 뒷담화로 구성된 영웅주의가 없다면 왠지 맹탕 같은 느낌을 주죠. 사실 이러한 영웅과 역사적 배경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끌어가는 내러티브는 장대하고 활기차며 힘을 느끼게 하죠, 여기에 책의 제목처럼 정복자들이란 타이들마저 곁들이게 되면 스펙타클한 뉘양스를 뿌리게 마련인데, 앙드레 말로는 가장 분위기를 띄울수 있는 바로 영웅주의를 눈도 깜작하지 않고 외면해 버립니다. 방대한 스케일과 그 속에서 부딛히는 인간들의 암투라는 거시적인 시각을 배제해 버리고 모든것을 단순하게 미시적으로 축약시켜 버립니다. 그러면서 대게의 역사소설에서 팁으로 제시하는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사전지식 내지는 힌트같은 팁을 제공하지 않죠. 축약과 축약 그리고 갑작스런 역사의 흐름을 역사적 인물과 가공의 인물들의 심리상태나 대화를 통해서 집중해 버리는 것입니다. 자연히 1부에서 관찰자의 위치로 작품을 오버랩햇던 시점이 상당한 힘을 가진 1인칭 내지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돌변하면서 독자들의 몰입감을 증폭시킴니다. 그런데 말이죠 뭐 사실 이러한 몰입감이라는게 독자들 내부에서 서서히 이해의 강도가 깊어지면서 내러티브의 진행방향을 감지해서 발생하는 감정이 아니다는게 더 당혹스럽게 만들죠. 스토리상의 역사적인 흐름의 이해는 상당히 난해하게 진행됩니다. 왠만한 중국근대사를 인지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죠. 달리 말하면 사전적인 역사지식이 없이는 내러티브를 따라잡기가 녹녹치 않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다만 독자들이 몰입하게는 되는 것은 가린과 쩡다이, 보르딘, 홍이라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주고 받는 대화 그리고 나(작가의 현현이라고 봐야 타당할듯합니다. 물론 가린이라는 가공의 인물에도 작가 자신을 투영하기도 했지만요. 뭐 정확하게 보면 모든 인물들에게서 작가의 모습들을 면면히 볼 수 있기도 합니다)가 바라보는 이들에 대한 시각과 판단, 이러한 부분들이 역사소설이라는 개념을 잊게 만들어 버리면서 니체의 초인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킵니다. 또한 이러한 관찰자적인 시점 그러니까 사건의 중심에서 한발자국 벗어나서 전체를 그저 처다보는듯한 느낌을 주는 시점이 바로 앙드레 말로 자신의 정확한 시각이자 담론의 표현이 아니였을까라는 생각도 가져보게 합니다. 자신의 억울한 재판과정과 그 이후 투쟁의 최일선에 나아가게 되는 자전적인 요소들을 상당히 객관화할려고 하는 의지이자 동시에 독자들에게 평가받고 싶어하는 의중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네요. 사실 내러티브가 숨막히고 연출적이면서 서스펜스한 느낌을 전해 전달해 주지 않습니다. 역사소설이라는 큰 범주에서 보면 상당히 지루하고 재미없는 작품이라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흥미롭지 못한 점 인정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그래도 분량이 작다는 것 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듯 하기도 하고요. 오히려 철학서라고 하면 더 타당할 정도로 상당히 깊이감 있는 담론을 다루고 있는 작품임에 틀림 없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드레 말로의 <정복자들> 은 뭔가 색다른 맛을 선사하는 작품이라고 부인할 수 없기도 합니다. 권력을 향한 인간의 욕망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자의 이념투쟁 그리고 인간성 자체에 대한 고찰과 삶의 허무감이 가져다 주는 담론등 많은 생각들을 던져주는 작품입니다. 단순한 읽을거리와 재미와 여기에 허리우드식의 블록버스터에 노출이 많이 된 요즘의 독자들에게 삶과 인간과 그리고 나아가 권력등 다소 무거운 주제이지만 분명하게 한번쯤 생각해 볼 메시지를 선사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