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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적 이상국가를 향한 조선의 꿈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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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러기에 올바른 역사인식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 등을 보더라도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있어 올바른 역사란 어떤 것 인가를 반문해 보면, 그것에 대해 답을 해줄 만한 책들이 별로 눈에 띄지를 않는다. 그런 목마름이 역사책이 간행될 때마다 나로 하여금 그 책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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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규정한다. 그러기에 올바른 역사인식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최근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 등을 보더라도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있어 올바른 역사란 어떤 것 인가를 반문해 보면, 그것에 대해 답을 해줄 만한 책들이 별로 눈에 띄지를 않는다. 그런 목마름이 역사책이 간행될 때마다 나로 하여금 그 책들을 기웃거리게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민음사에서 발간하는 한국사시리즈가 그런 역사인식하에 쓰여졌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다만, 그런 논란을 피하고자 상대적으로 논란이 적은 조선시대부터 간행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역사를 왕조를 중심으로 한 연대기적 서술이나, 아님 통사로서 배우고 이해하였다. 그러다 보니 그 시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나 나라를 구성하는 백성들의 삶을 헤아리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지 왕조 전체의 흥망성쇠와 관련 있는 지배체제나 제도와 같은 지배계급 위주의 사건에 연연하였고, 그것이 역사의 전부인양 배워왔다. 또한 우리를 중심으로 한 역사에 치우치다 보니, 시각은 동아시아를 벗어나지 못하고,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위치를 찾고자 하면 늘 막막하기만 하다. 민음사의 한국사시리즈는 그런 역사를 100년 단위로 구분하여 동아시아는 물론 당시 세계사의 흐름을 살펴보고, 그 흐름을 우리의 역사와 연관 지어 생각하게 하고 있다. 분명 기존과는 다른 역사읽기이고, 그만큼 역사를 보는 안목을 넓혀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이 대립하는 시기의 역사는 과연 어떻게 다룰지 지금부터 관심이 간다.

 

18세기, 서유럽에서는 절대왕정이 퇴진하고 시민사회가 태동을 하던 시기이다. 이탈리아에서 처음 발명된 피아노는 새로운 예술형식을 출현시켰고, 이는 음악을 궁정과 교회에서 해방되게 만들었다. 귀족과 사제를 위한 바로크음악이 시민계급을 위한 고전파음악, 즉 클래식에 자리를 내주었고, 이는 음악의 대중화를 가속시켰다. 시민계급의 등장은 그들의 사상인 계몽주의가 무르익게 만들었으며, 그들의 눈을 유럽 밖으로 돌려 노예무역과 서세동점의 시대가 시작되게 만들기도 하였다. 반면 동아시아에서의 18세기는 번영의 시기로 엄청난 문화적 역량을 발휘한 시기이었다. 또한 16세기말과 17세기 양대전란 이후, 별다른 전쟁 없이 태평성대를 누리던 시기이기도 했다. 조선은 청에는 연행사, 일본에는 통신사를 보내며 동아시아 평화를 견인했고, 이는 16-7세기 사대부들에게 주도권을 내주었던 왕들의 귀환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사대부들의 붕당정치가 초래한 분열과 혼란을 수습하고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영조와 정조가 바로 그들이다.

 

18세기 들어 조선의 과제는 양란의 후유증으로 몰락 직전까지 갔던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이었다. 영조는 이를 위하여 파탄에 이른 붕당정치를 극복하고 국왕중심의 정치를 이끌어내기 위해 탕평책을 펼쳤다. 또한 붕당의 위기를 낳은 사림정치와 연결된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는 개혁의 일환으로 전세기의 대동법을 이어받아 신역에 대한 부담을 고르게 하는 균역법을 실시하는 등, 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국가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한 개혁을 이루어 나갔다. 이와 함께 영조시대의 최대의 치적이라 할 수 있는 청계천 준천 사업은 조선이 사림정치의 한계를 넘어 아직도 유교의 기치아래 존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이후 정조는 영조의 유지를 이어받으면서도 척신세력에 의존하지 않고, 사대부의 공론을 존중하는 의리의 탕평을 추구하여 정국을 운영하였다. 아울러 규장각과 장용영의 설치로 신료들과 군영을 장악하였고, 화성의 건설과 사도세자의 추승을 계기로 정치권 통합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런가 하면 18세기의 조선은 새로운 사회경제질서의 성장과 함께 기존체제와의 갈등이 싹트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명에 대한 의리도 중요하지만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고 국가의 부를 확충하기 위하여 청과 서양의 문물을 배우자는 북학파, 교리연구 수준이 아니라 신앙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천주교, 그리고 자신들만의 연희세계를 개척하기 시작한 광대패의 등장은 사회계층이 분화되며 신분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함을 의미했다. 또한 양반으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세상에 대한 욕망으로 꿈틀거렸고, 이들은 각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선의 지배층은 이러한 모순을 인식하고 있었으며, 일련의 개혁으로 갈등을 극복하려 하였다. 영조와 정조가 민중의 삶을 정치의 중심에 두고, 기존의 중간지배층을 배제하고 국왕이 모든 백성들을 통치하고자 하는 강력한 왕권을 구축하려 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처럼 조선이 국왕과 만민이 소통하는 성리학적 이상국가를 향해 나가고 있던 18세기 말, 미국과 프랑스에서는 이제 막 출발한 공화정이나 체제수호에 실패한 절대왕정이 혼돈 속에 오랜 내전과 전쟁상태로 들어가고 있었다. 18세기는 동서양 모두 경제가 발전하고 문화가 꽃피던 시대였지만 상대적으로 발전동력은 동아시아가 더욱 충만한 시기였다. 그럼에도 조선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100년 후 오히려 서양세력에게 침략을 당하게 된다. 이는 정조의 때이른 죽음으로 개혁의 구심점이 사라진 것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도 있지만, 19세기 조선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키기도 한다.

 

기존에 우리가 배워왔던 조선의 역사에서 18세기는 영조와 정조에 얽힌 왕조이야기가 실학과 개혁에 대한 담론을 압도했다. 이상국가를 향한 조선의 꿈이 물 건너간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당시 지배층이 내부의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려 했던 노력마저도 외면하지 않았나 싶다. 근대와 만나는 19세기, 조선에서는 과연 무슨 일들이 벌어졌으며, 그런 역사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지 [19세기]가 기다려진다.

k*****1 2015.01.30. 신고 공감 6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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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한국사 조선 04 : 18세기 왕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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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과 2015년를 가로지르는 밤은 어떤 책과 보내야 뜻 깊고 좋은 책 읽었다고 뿌듯할까?  손대기 시작한 책이 몇 권 있었지만 다 뒤로 물리고, 나오자 마자 뽑아온 민음 한국사 시리즈 조선 네 번째 책인  "18세기 왕의 귀환"이 선택되었다.17세기 소빙하기속에서 해마다 쏟아지는 자연재해에 조선은 무력해졌다. 이어지는 기근에 무력해진 조선은 청나라 침입에 좌절을 겪었으며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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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과 2015년를 가로지르는 밤은 어떤 책과 보내야 뜻 깊고 좋은 책 읽었다고 뿌듯할까?  손대기 시작한 책이 몇 권 있었지만 다 뒤로 물리고, 나오자 마자 뽑아온 민음 한국사 시리즈 조선 네 번째 책인  "18세기 왕의 귀환"이 선택되었다.


17세기 소빙하기속에서 해마다 쏟아지는 자연재해에 조선은 무력해졌다. 이어지는 기근에 무력해진 조선은 청나라 침입에 좌절을 겪었으며 전쟁 패배후 이어지는 정체성의 혼란속에서 소중화라는 잘못된 길을 태한다. 청나라의 발전된 모습을 애써 무시하며 오직 의리만을 내세운다. 다행히 18세기 들어 점차 안정된 기후와 동아시아 평화속에서 조선도 제자리를 잡아간다.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영정조 시대다. 18세기 드높게 발전되어 가던 조선은 왜 갑자기 19세기 들어 나약해지고 무너졌을까? 세도정치? 쇄국정치? 삼정의 문란? 그 원인을 19세기가 아닌 18세기에서 찾아본다. 

영조의 개혁정치는 사림정치의 한계를 넘어 조선이라는 나라가 아직도 유교의 기치 아래 존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청에서 강희제가 시작한 전성기를 손자인 건륭제가 이어 나갔던 것처럼 영조가 시작한 조선 후기의 부흥은 손자인 정조에게 이어져 18세기를 지탱 할 수 있었다.

개혁은 잘 나가고 있을 때 해야한다. 조선은 17세기에 대동법과 18세기에 균역법이라는 개혁을 성공적으로 시도했다. 그리고 정조 때 신해통공등 상업적인 개혁도 이루었다. 하지만 이 모든 개혁에도 소수 권벌의 입지는 흔들리지 않았다. 시전 상인과 경강상인은 집적이익을 얻었지만 그 이익은 조선내부에서 제로섬게임의 결과로 이룬 것 뿐이었다. 그나마 이룬 부는 도로 권벌들에게 착취당하기 마련이었다. 권력과 연결된 상업적 부는 외부로 나아갈 유인이 없었다. 외부와 단절되어 있던 조선의 이익은 한정되어 있었고 무역이라는 큰 시장을 내다 보지 않고 있었다. 그나마 청이나 일본과 이루어지던 한정된 무역은 외부환경에 취약했다. 일본이 중국과 직접 무역을 하자 조선의 중계무역은 무너졌고 다시 조선 내수에만 몰두 할 수 밖에 없었다. 무역없는 부는 모래성일뿐이다. 19세기 다시 돌아오는 자연재해와 기근속에서 조선의 개혁은 존재감이 없어졌고 제대로 무너질 기회를 갖지 못한 조선은 망국의 길로 간다.

동아시아 3국의 시장경제는 적어도 18세기까지는 새롭게 해외시장을 개척하거나 적극적인 상업 상인 보호정책을 시행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내적 발전 동력이 충분했다. 그래서 상공업 발전을 배경으로 새롭게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계층의 이해를 보호하고 그들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변화를 이루어 내지는 않았다. 특히 조선은 18세기 이후 나타난 사회경제적 변화를 건국이래 유지해 오던 기존체제 안에서 수용하려 했다. 따라서 사회전체의 내적 발전 동력이 한계점에 도달하게 되는 19세기를 별다른 준비 없이 맞이하게 되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18세기 영정조시대의 개혁과 르네상스는 좋아진 환경을 누렸을 뿐인 허울 좋은 개혁이었고 발전없는 소비의 시대였다. 안정된 기후와 발달된 농업기술 속에서 늘어난 농업생산량을 잠깐 나누고 백성들에게 덜 거두어 들였을 뿐이다. 


좋을땐 모든 조직이 장점을 발휘하며 유기적으로 가동하지만 나쁠땐 장점이 단점이 되고 단점들이 서로 엉켜 나아갈 수 가 없게 된다.


이번호(?)에는 대형 화보까지 넣어 주었다.

옥의 티 : 서론부분에 나오는 세계사 개괄인데 이 부분은 종이 색이 애매해 읽기 불편했다. 









YES마니아 : 골드 l****0 2015.01.01. 신고 공감 4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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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을 주도한 영조와 정조,성리학적 군주의 귀환-18세기 왕의 귀환 | 전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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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왕의 귀환이란 제목이 낯익다 싶더니. 영화 '반지의 제왕' 3편 소제목이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영화에서는 곤도르의 왕 '아라곤' 비고 모텐슨이 사우론에 맞서 용맹스럽게 싸우는 활약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면 18세기 조선 '왕'의 귀환은 정국의 주도권을 잡은  영,정조의 엄청난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18세기의 세계사적 흐름을 보면 서구에선 시민과 계몽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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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왕의 귀환이란 제목이 낯익다 싶더니. 영화 '반지의 제왕' 3편 소제목이었다는 것이 생각났다. 영화에서는 곤도르의 왕 '아라곤' 비고 모텐슨이 사우론에 맞서 용맹스럽게 싸우는 활약상을 감상할 수 있었다면 18세기 조선 '왕'의 귀환은 정국의 주도권을 잡은  영,정조의 엄청난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18세기의 세계사적 흐름을 보면 서구에선 시민과 계몽의 시대, 이성과 인권에 눈을 뜬 시대였고, 동시에 그 이면에는 노예무역이란 야만과 서세동점이라는 힘의 논리가 관철되는 시대이기도 했다. 신 그리고 왕과 귀족, 사제의 지배에 저항한 부르조아와 시민들이 등장해 변화를 이끌어갔다면 조선의 18세기는 왕과 사대부의 지배체제 속에서 신분 분화가 나타났고, 천민부터 중인, 사대부까지 그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욕망을 꿈꾸던 시대였다. 조선의 부흥기였던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탕평, 경제적으로는 균역, 민생으로는 준천을 추진한 영조, 정조는 영조의 탕평책을 이어받는 한편 상업과 유통을 촉진하는가 하면, 화성을 통해 미래 지향적인 제도를 시험하려고 했다.  조선의 사회경제 그리고 문화가 융성하는 중심에 왕이 우뚝 서 있었던 것이다.

왕은 당쟁으로 얼룩진 정국에서 탕평을 통해 정치적 통합을 지향하며 백성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워졌던 사회경제적 부담을 일부나마 분담하는 정책을 수립했다. 이렇게 수립된 균역법은 17세기에 실시됐던 대동법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며 엄청한 파급력을 선보였고, 사회경제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냈다. 농업위주의 조선에 시장경제의 싹을 틔울 수 있었으니. 

 

이런 변화는 세계사적 변화와 방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변화는 그 한계가 뚜렷했다. 전후의 피폐를 복구하고, 사회경제적으로 활기를 띠게 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시민혁명이 수반됐던 서구와 달리, 여전히 성리학적 사고 틀에서 신분제를 비롯한 봉건성에서 탈피하지 못했다. 합리적 사고와 개인의 존재가 뿌리내리지 못함으로써 근대성을 획득하지 못했고, 19세기 이후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이후 눈부시게 성장한 서구와 격차가 벌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대동법과 균역법의 실시에서 엿볼 수 있듯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개혁은 지배층의 기득권을 줄이고 백성들이 짐을 덜어주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세금과 역의 부담이 조금은 가벼워진 백성들은 생산력 향상을 이뤘고, 문화적으로 자신들의 욕망을 표현하고 드러내면서 조선사회는 활기를 띨 수 있었다.

18세기 조선은 현안을 해결해가는데,왕 개인의 정치력 역량에 크게 기대고 있었다. 실사구시의 실학이 일부 수용되는가 하면 천주교의 평등 사상이 파란을 불러 일으켰지만 조선사회의  성리학은 여전히 견고했고,18세기에 이루어진 왕의 귀환 역시나 성리학적 사고를 하는 왕의 귀환이었다. 왕은 민생을 걱정했지만 여전히 하늘의 뜻을 대리하는 군림하고 통치하는 존재였다. 

e****0 2015.01.31. 신고 공감 3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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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왕의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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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왕의 귀환 민음사 조선편의 4번째. 5권부터 거꾸로 읽고 있는데 역사는 거꾸로 읽으니까 맥이 끊기는 것 같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책을 거꾸로 산 바람에..ㅜㅜ 그래도 19세기와 18세기를 끊어서 설명하고 있어서 책을 읽는데는 별 어려움은 없다. 18세기에 걸치는 왕은 숙종-경종-영조-정조 이다. 하지만 주로 영조와 정조에 대해서 다룬다. 영조의 3대 정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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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왕의 귀환

민음사 조선편의 4번째. 5권부터 거꾸로 읽고 있는데 역사는 거꾸로 읽으니까 맥이 끊기는 것 같아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책을 거꾸로 산 바람에..ㅜㅜ

그래도 19세기와 18세기를 끊어서 설명하고 있어서 책을 읽는데는 별 어려움은 없다.

18세기에 걸치는 왕은 숙종-경종-영조-정조 이다. 하지만 주로 영조와 정조에 대해서 다룬다.

영조의 3대 정책이 탕평책, 대동법, 청계천 준천이라는 것은 처음 알았다. 영조하면 탕평책과 대동법만 외웠었는데^^ 탕평책, 대동법, 청계천 준천 등 어쩌면 모두 백성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더 안정시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북학, 실학, 천주교등이 조선사회에 유입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의 사회질서도 흔들리게 되기 시작한 것도 18세기 이다. 영조의 뒤를 잇는 정조는 규장각, 화성 축성 등으로 왕권을 강화하고 금난전권을 폐지하는 등 많은 개혁적 조치를 단행하였지만 그의 재능과 역량에 비해 짧은 재임기간으로 18세기를 마감한다. 정조가 영조만큼 살았더라면 조선은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 19세기의 무력한 조선은 되지 않았을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청도 비슷하지만 최고의 전성기 다음에 바로 추락해서인지 그 아픔은 더 큰 것 같다.  

l******t 2016.01.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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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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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를 볼 때면 늘 마음 한 구석에 아쉬운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공존하였다. 18세기 조선의 역사는 그런점에서 조금의 위안 혹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이다. 그 중심에 정조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마지막 불꽃이 되어 개혁을 진두지휘해 나가는 정조 그리고 그의 사람들의 역사다. 이런 관점에서 왕의 귀환이라는 제목이 제법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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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사를 볼 때면 늘 마음 한 구석에 아쉬운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공존하였다. 18세기 조선의 역사는 그런점에서 조금의 위안 혹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기간이다. 그 중심에 정조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마지막 불꽃이 되어 개혁을 진두지휘해 나가는 정조 그리고 그의 사람들의 역사다. 이런 관점에서 왕의 귀환이라는 제목이 제법 잘 어울린다.

YES마니아 : 골드 c***b 2015.05.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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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왕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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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 관련한 중립적 시선을 갖춘 최고의 책입니다 지난 가을 17세기 대동의 시대가 발간된 이래 쭉 기다려온 책입니다 천천히 나오는 만큼 그리고 여러분의 작가분들께서 쓰시는 만큼 내용이 대단하네요   입체적 시각으로 보는 조선사라 더욱 새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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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역사 관련한 중립적 시선을 갖춘 최고의 책입니다

지난 가을 17세기 대동의 시대가 발간된 이래 쭉 기다려온 책입니다

천천히 나오는 만큼 그리고 여러분의 작가분들께서 쓰시는 만큼 내용이 대단하네요

 

입체적 시각으로 보는 조선사라 더욱 새롭네요

k****8 2015.01.0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