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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해야 하는 것은 자신이 경험한 한정된 세계를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경험한 세계를 바탕으로 어떤 무엇보다도 완전히 진실하고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래서 필립 로스는 미국계 유대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을 바탕으로, 밀란 쿤데라는 다성적인 음악의 구조를 바탕으로, 오로한 파묵은 터기를 배경으로, 이언 매큐언은 동시대의 병리학적 현상을 바탕으로, 그리고 다른 작가들은 다른 무엇인가를 바탕으로 하여, 허구임에 틀림없지만 매우 진실하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우리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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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책은, 이전에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세상을 묘사하는 책입니다. 서사 능력이나 성격 묘사, 문체 같은 특징을 제외하고 하는 말입니다. 그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사회에 대해서나 정서적인 면에서, 아니면 둘 다에 대해 새로운 진실을 말해준다고 인식되는 책이지요. 전에는 입수할 수 없었던 진실, 즉 공식적인 기록이나 정부 문서, 신문이나 텔레비전에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 진실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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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창작의 길로 이끌었으며,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가, 자신이 생각하는 대표작은 무엇이며, 작품들은 어떻게 썼는가. 작가이지만 또한 독자로서 다른 작가들을 어떻게 읽고 평가하는가. 독자와 비평가. 편집자들에 대한 생각은 무엇인가. 덧붙여 창작을 제외한 일상의 시간은 어떻게 채워지며 가족들과의 관계는 어떠한가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우리는 작가들이 책을 쉽게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매일 규칙적으로 일하고 끊임없이 수정하며, 조각가처럼 생각의 돌덩어리들을 수없이 깎고 또 깎고 다듬습니다. 작가들이 수정하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가 간직하던 ‘천재’작가의 이미지가 수고하는 장인의 이미지로 바뀝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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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아니고서는 멀리 사는 저로서는 절대 들어볼 수 없는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자기만의 길을 가는 작가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만의 색으로 길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벤트중인 에코백을 받지 못한 것은 너무너무 아쉽지만 일찍 읽음으로서 얻어지는 것들이 있었으므로 그것으로 만족하렵니다. ㅜ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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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책이 출판되고 상을 받았을 때 다른 작가들도 만나기 시작했습니까. - 아니요, 전혀.
당시에 작가 친구는 없었습니까. - 한 명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친구나 동료가 된 작가가 있습니까. - 아니요. 한 명도 없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작가 친구는 한 명도 없나요. - 없다고 생각돼요.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보여주는 사람도 없습니까. - 전혀요.
<작가란 무엇인가>에 실린 하루키의 답변 중 한 대목이다. 사실 나는 위로 받고 싶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내가 사랑하는 일이지만, 내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니까. 주변에 내 글쓰기를 응원해주는 사람도 별로 없어 지칠 때가 많았다. 여러 작가들의 인터뷰에 내게 위로가 될 만한 답변이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다행히 이 책에는 그런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한 답변들이 충분히 담겨있다. 예컨대 이런 답변. “글쓰기는 너무나 힘들어서 다른 명성에 대해 염려할 시간이 없다” 이 말은 한 사람은 다른 작가도 아니고 입만 열면 소설이 술술 세상으로 흘러나갈 것만 같은 작가 살만 루슈디다.
작가들의 답변을 읽고 있으면, 작가이기 전에 다들 지독한 인간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글쓰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 집을 나가서 목을 매야 합니다. 그리고 가차 없이 목매는 밧줄에서 끌어내려져야 하고, 죽을 각오로 남은 삶 동안 최선을 다해 쓰도록 스스로 강요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는 최소한 목매는 이야기로 시작할 수 있겠지요.” 헤밍웨이 특유의 시니컬한 말투가 있긴 하지만, 작가들이 글쓰기를 대하는 태도가 이 답변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순진하게도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작가들에 대한 어떤 환상을 지니고 있었다. 이를 테면 술에 취해 골아 떨어졌다가 겨우 일어나 번뜩이는 영감이 떠올라 소설 몇 문단을 뚝딱 해결해 버린다는 식의 환상 말이다. 이 책은 그런 환상을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게 일깨워주었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 가운데 태어나면서 글 쓰는 능력을 지닌 작가도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평균보다 더 많을지 모른다. 왜, 얼마 전 트위터에서 화제가 되었던 하루키의 다음과 같은 말도 있잖은가. “글을 쓴다는 것은 여자를 말로 꼬시는 것과 똑같아서 어느 정도까지는 연습으로 잘하게 되지만 기본적으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야 합니다. 뭐 어쨌든 열심히 하세요.” 그렇지만 이 책에 실린 작가들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았다고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 “저는 하루 종일 글을 씁니다. 아침, 오후, 거의 매일 글을 씁니다.” 내가 사모해 마지않는 필립 로스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무얼 더 보탤까. 그저 우리는 멈추지 않고 계속 쓰는 이들을 일러 작가라고 부른다고 말할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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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책더미에 파묻혀 숨쉬는 독서가라면 작가를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선명하게 눈 앞에 펼쳐내는 마법사 쯤으로 여길 것이고, 무수한 수사 표현 따위를 공부해야하는 수험생이라면 의미 없는 일에 매달려 골치아픈 글로 두통을 유발하는 악당 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한편 글 감옥에 갇혀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날을 꿈꾸는 문청들에게 작가란 듣기만 해도 설레는 연인의 이름일 것이다.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작가는 작품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이 책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이야기되는 분야로 범위를 좁히면, 작가란 말하자면 소설을 창조하는 사람인 것이다. 자신의 독서취향이 소설에 편중된 것 같다고 개탄하는 소리가 종종 들린다. 소설을 읽는 취향은 책을 통해 재미를 추구한다는 말일 테고, 그 재미란 우리 삶에서 더 중요하고 심오한 그 무엇에 반하는 가치라는 인식이 암암리에 자리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이유로 보다 높은 소양을 요구받는 이 사회에서 소설 읽기란 무척 조심스러운 길티 플래져로 치부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높은 소양을 삶과는 괴리된 추상적인 관념들에서 찾으려는 시도에 비한다면 소설 읽기야말로 우리 삶을 이해하기 위한 가장 실질적인 노력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삶을 이루는 거의 모든 것은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소설은 제외하고라도 영화, 만화, 드라마 등 인간이 재미를 얻고자 기웃거리는 거의 모든 것들은 이야기가 핵심이다. 그뿐인가. 우리 삶 자체도 이야기다. 사회면 기사 한 꼭지 조차도 인물이 특정한 배경 속에서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따라 일으키는 일련의 사건들이 아닌가. 소설은 이러한 도처에 있는 이야기들을 실어나르는 수많은 형식 중에서도 정수에 해당한다. 심지어 올더스 헉슬리는 이렇게 말한다. "도스토옙스키는 소설을 쓰기 때문에 키르케고르보다 여섯 배는 더 심오하지요." 그런 소설을 읽는 것이 부끄럽다니! 도대체 이야기가 이런 취급을 받는 마당에 최고의 이야기를 만들어 내려고 애쓰는 사람들, 즉 소설가란 무엇이란 말인가. 작품을 통하지 않은 거장들의 목소리에는 주저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매일 몇 시간이고 작업실에 틀어박혀 원고지나 타자기, 혹은 컴퓨터와 고통스러운 싸움을 벌이는 동안에도 그들은 소설의 효용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 존 치버는 소설의 중요한 요소로 '거짓'을 들면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삶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가장 깊은 감정을 표현해주는 교묘한 속임수"라는 말로 소설의 존재가치를 역설한다. 어슐러 K. 르 귄의 말을 들어 보자. "소설은 오직 인간만이, 특정한 상황에서만 쓰는 것이죠. 어떤 목적 때문에 써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목적 중 하나는, 우리가 전에 알지 못했던 것을 인식하도록 이끌어준다는 거죠." 한편 모순이야말로 소설의 핵심이라고 하는 옴베르트 에코의 주장은 과연 설득력이 있다. "늙은 노파를 죽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윤리학 논문에서 그 생각을 표현하면 F를 받겠지요. 소설에서라면 그 생각은 '죄와 벌'이라는 산문 걸작이 됩니다." 요컨대 소설은 거짓과 모순이 허용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다 자유롭게 보여준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소설을 쓸 때보다 기사를 쓸 때 진실을 더 적게 말한'다고 하는 줄리언 반스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생각도 비슷하다. "저널리즘에서는 기사가 가짜라는 한 가지 사실만이 기사 전체에 편견을 갖게 만듭니다. 대조적으로 소설에서는 이야기가 진짜라는 한 가지 사실이 작품 전체를 정당화해줍니다." 그리고 그는 "소설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야기가 진짜라고 믿게 만들 수 있는 한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말하자면 저널리즘이 실어 나르는 사실 속에는 종종 진실이 결여되어 있으며, 본질적으로 거짓인 소설은 역설적으로 진실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소설은 인간을 즐겁게 한다. 필립 로스는 "소설을 읽는 것은 깊고 독특한 기쁨이며, 성(性)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정치적 정당화를 요구하지 않는 흥미롭고 신비로운 인간 활동"이라고 지적한다. 이러니 소설을 쓰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누군가는 가구를 만들고 누군가는 자동차를 만들듯이, 작가는 소설을 만든다. 일관적인 메뉴얼이 있는 가구와 자동차도 생산자 혹은 소비자의 취향이나 용도에 따라 그 모양과 크기가 셀 수 없이 다양할 것인데, 인간의 인식과 감성에 호소하는 소설의 다양하기는 이루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작가가 가진 신념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 혹은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요구에 따라 작가들이 만들어내는 세계도 다양하다. 예컨대 가즈오 이시구로나 무라카미 하루키는 음악 속에서 이야기를 찾아낸다. 오르한 파묵은 서구에 대한 문화적 열등의식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승화했고, 폴 오스터는 타인의 경험을 듣는 일을 통해 바깥 세상의 역동성을 체험한다. 표현에 있어서도 정해진 것이 없다. 밀란 쿤데라는 문학적 예술 형식을 완성하기 위한 수사적 기법에 깊이 몰두하는 모습이다. 반면 잭 케루악은 '기교'보다 '느낌'을 좋아하여 숙고를 거듭하기보다 즉흥적 문체를 사용하기를 즐겼다. 세상에는 이야기되지 않은 것보다 이야기된 것이 더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매번 이야기 속에서 새로움을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수많은 작가들의 수많은 인식 속에서 어떤 것도 똑같이 묘사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살만 루슈디는 "글이란 작가가 쓴다기보다는 작가를 통과해 나오는 것"임을 강조했다. 소설은 스스로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작가라는 한 타인의 전체를 거쳐 탄생하는 것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역동적인 생산물이다. 이처럼 수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자면, 우리 세상을 둘러싼 이야기들의 풍요로움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그러니 왜 소설을 읽지 않는가 말이다. 소설가의 인생과 사상, 창작 방법과 작업 스타일에 대한 밀도 깊은 인터뷰는 단순히 한 개인에 대한 이해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자칫 표현론적 관점의 문학 해석을 강요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크게는 작가 개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그들의 생산물로 귀결된다. 작품이 탄생하기까지의 각자의 방식들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줌으로써 그 작품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상기시킨다. 그러니까 작가는 결국 그들의 작품을 통해서만 이야기되는 존재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롤리타'가 유명한 것이지 제가 유명한 게 아니지요. 저는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가진 무명의, 그것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에 불과하지요." 작가가 없으면 작품이 없는 것이 자연법칙에 따른 선후관계지만, 예술적 진리에 따르면 이는 반대다. 작품이 없다면 작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작가가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내던지는 작업에 몰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의 이야기를 탄생시키기 위함이다. 인종주의의 억압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토니 모리슨의 삶도, 최악의 전쟁을 체험했던 커트 보네거트의 삶도 그들의 인생을 관통한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된다. 작가적 정체성과 정치적 입장 사이의 미묘한 긴장의 줄타기를 벌여야 했던 오르한 파묵이나 살만 루슈디 같은 작가에게 있어서도 그 삶의 굴곡은 결국 소설을 통해 말해진다. 작품이 없다면 개인의 경험이나 나아가 민족적, 국가적, 전인류적 현상에 대한 문제제기는 시작될 수 조차 없을 것이다. 헉슬리는 "작가는 우선 관찰하는 사실에 질서를 부여하고 삶에 의미를 불어넣고자 하는 갈망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결국 작가란 세상으로부터 취한 온갖 것을 끌어 안고서 자신의 작품에 그 모든 것을 내어준 뒤 그 뒤에 숨어 모습을 감추어 버리는 순교자와 같은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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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된다는 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사막을 걷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게 있어 작가가 되는 꿈이란 사막에서 만나는 신기루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갈 수 없고 잡히지도 않는 그런 의미이다. 나는 글쓰기에 대한 갈증을 가지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사막을 헤매는 중이었다. 그러다 뜻밖에 만난 오아시스가 바로 이 책 ‘파리 리뷰_인터뷰’이다. 이 책에는 ‘작가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말해주는’이 아니라 꼭 ‘보여주는’이라고 해야 한다) 36인의 작가 인터뷰가 있다. 작가가 꿈인 사람이라면 36인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터질 듯이 벅차야 한다. 그러나 나는 36인이 많이 아쉽다.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슈테판 츠바이크, 발자크, 체호프, 찰스 디킨스, 에밀 졸라, 프루스트 등의 작가들도 살아생전 이런 인터뷰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이룰 수 없는 꿈 때문에 아쉽고, 파리 리뷰에 우리나라 작가의 인터뷰가 없다는 게 아쉽고, 인터뷰한 세기의 작가 250명을 36명으로 추려서 아쉽다. 36인에 속하지 못한 작가가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덜한 작가일 수는 있겠지만, 파리 리뷰에 선정되었다면 분명 36인 못지않은 작가일 것이라는 짐작에 모두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난다. 오직 36인뿐이어서 이 책을 더욱 더 아껴 읽고 곱씹고 보고 또 보려 한다. 언제라도 이 시리즈가 더 이어지길 기다리며 내 모든 책들 중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이 책들을 두었다. 세 권의 책 속 36인의 인터뷰 중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질문에 ‘작가란 무엇이다’로 단언하는 정답은 어디에도 없다. 문학에 관련한 질문부터 관련 없는 질문의 답까지 모두 합한,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삶 그 자체가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이었다고 나는 보았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작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내 삶까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도 작가란 무엇인가에 답하고 싶다. 하지만 내 삶으로는 답할 수 없음을 안다. 나는 작가가 아니니까. 작가가 아닌 이유는 작가가 될 만큼 글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되고 싶고 작가로 살고 싶다면 어떤 변명에도 불구하고 글을 계속 써야만 함에도 나는 게으르고 비겁하다. 그래서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살아왔다. 이 책들을 읽고 나서 절실히 깨달은 건 글 쓰는 삶을 살아야 ‘나는 누구인가’에 답할 수 있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답을 구하는 과정이 바로 ‘작가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의 답이 되리라는 것도. 36명의 인터뷰도 역시 그렇게 만들어진 답이었다고 생각한다.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 글을 쓰는 작가로 살아야 한다. 삶은 필연적으로 고독과 불행을 그림자처럼 동반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고독조차 의미를 부여하며 불행에 맞서는 한 방법임을 이 책은 보여주고 있다. 책 속에서 인터뷰어와 살만 루슈디가 묻고 답하는 부분이 섬광처럼 빛났다. 「그럼 이제 우리 모두가 살만 루슈디가 된 셈인가요?」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는 살만 루슈디처럼 파트와를 선고받은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빈곤의 양극화로 치닫는 신자유주의와 부패가 만연한 체제,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문화와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가 우리 삶에 ‘처형’이라는 파트와를 선고하고 있다.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고 도피가 답이 될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만의 소설을 쓰길 바라는 마음이다. 소설을 쓰고 싶은 마음은, 좋고 나쁜 모든 경험을 소중히 다루게 하고, 타인을 이해하게 하며, 생의 모든 순간을 의미 있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록 글쓰기란, 결과를 기대하지 않으면서 기대해야만 하는 마음으로 써야 하고, 못 쓰지만 잘 쓸 수 있을 거라 믿어야 하고, 잘 써도 못 썼다고 말할 수 있어야 더 잘 쓸 수 있는 모순이 있더라도 말이다. 어차피 삶 또한 모순투성이가 아닌가. 그래서 글쓰기는 삶을 닮아 있다. 삶 그 자체이다. 우리는 도피하는 삶이 아닌 맞서는 삶을 살기 위해 글을 써야 한다. ‘작가란 무엇인가’는 삶에 맞서는 우리에게 칼보다 더 강한 펜을 선물하는 책이다. 우리가 이 펜을 놓지 않는다면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과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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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란 무엇인가 1권을 읽고 작가들의 마음과 머리의 구조를, 시간 사용과 창작 시 노하우를 알 수 있어서 좋았다. 2, 3권이 한꺼번에 나오자마자 내가 즉시 구입한 이유는 더 많은 작가들의 마음과 머릿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어서다. 한 문장을 적는 것이 어려워 며칠 씩 고민하다가 한 문장을 적어놓고 너무 이상한 문장이라는 것을 곧바로 깨달아 지울 수 밖에 없는 참으로 창작이 재능이 없는 내가 왜 끝까지 작가가 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데, 이 책을 통해 작가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그들도 나만큼은 아니지만 적지 않게 창작의 고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위안이 되고 희망이 샘 솟았다. 위안이 되고 희망을 주는 그들의 인터뷰를 계속 읽다보면 인간이 글을 쓴다는 것이, 그 인간이라는 존재가 작가이든 그렇지 않든 글을 쓴다는 것은 글을 쓸 때 손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의 모든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므로 적당한 단어를 골라 문장을 만드는 것이 작가가 아니라 모든 삶과 경험, 실패를 통해 깨달은 소중한 가치들이 이야기라는 틀 안에서 문장과 단어로 표현되는 것이 글이고 그런 글을 쓰는 사람들을 직업에 상관없이 작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윌리엄 포크너와의 인터뷰에서 진 스타인이 이렇게 물었다. - 말씀하신 기준에 이르기 위해 어떤 기법을 사용하시나요?
- 작가가 기법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는 수술이나 벽돌쌓기를 해야겠지요. 글을 완성하는 데에는 어떤 기계적인 방법도 없으며 지름길도 없습니다.
이론을 좇아 글을 쓰는 젊은 작가는 바보라고 해야겠지요.
「작가란 무엇인가 1 _ 446쪽」
위대한 작가가 작문의 기법이 필요없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더 좋은 이야기를 더 좋은 방법으로 표현하는 길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런 길은 없다는 포크너의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다. 충격을 가라앉히고 호흡을 가다듬어 생각해보면 포크너의 말이 맞다. 왜냐하면 글은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잘 배워서 기계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영혼과 삶, 경험과 실패를 통해 배운 소중한 가치를 이야기 속에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표현하는데 필요한 것은 끈기와 자신감 밖에 없다. 어떤 문단에서 어떻게 문장을 나열하고, 이야기의 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손쉬운 방법같은 것은 없다. 오직 주인공들의 삶을 성찰하고 그들을 둘러싼 혼란과 그들의 무너지는 영혼에서 쏟아지는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 좋은 작품을 쓰는 유일한 길이다.
움베르토 에코와의 인터뷰에서 라일라 아잠 잔가네가 이렇게 물었다.
- 작품이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가요? 당신이 남길 문화적 유산에 대해서 자주 생각하십니까?
-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 쓴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글쓰기는 사랑의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지요. 무엇인가 소통하기 위해서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기 위해서요.
「작가란 무엇인가 1 _ 57쪽」
글쓰는 글을 쓰는 사람의 독립적인 행위이다. 그런데 그 행위는 누군가를 향해 손짓을 한다. 그리고 그들을 글 속의 이야기로 불러온다. 글의 손짓을 받은 독자들은 글을 읽으면서 작가의 사상과 경험 속으로 들어가 감정과 이야기를 공유한다. 작가에서 시작된 글이 독자의 영혼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작가는 사랑의 행위로 글을 써야한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기 위한 글쓰기가 좋은 글쓰기이다. 아무도 읽지 말아야 할 것을 굳이 쓰는 작가는 없다. 심지어 개인적인 일기도 누가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쓴다. 아주 비밀스럽고 본인에게 치욕스런 이야기는 생각 속에서만 머무를 뿐 글로 표현되지 않는다. 어쨌든, 글쓰는 사랑의 행위이고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기 위한 것이다. 내 말이 아니라 움베트로 에코의 말이니 고개를 끄덕일 필요가 있다.
작가들은 여린 마음을 가지고 강한 필체를 사용한다. 어떤 방해에도 멈추지 않는 그들의 글쓰기는 한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고 제도와 사상에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작가는 가장 작은 공간에서(작가의 작업공간) 가장 넓은 세상을 변화시키는(작가의 책이 출판되는 모든 곳) 사람이다. 아무나 할 수 없고 아무나 해서도 안되는 작가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또 작가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작가가 될만한 사람들이다. 글을 쓰고 고치고 읽고 다시 쓰고 또 다시 고치면서 우리들의 경험과 실패 속에서 배운 참된 가치를 이야기로 표현해보자. 그 이야기가 이 세상을 지금보다 더 좋은 곳으로 만들 거라는 밝은 꿈을 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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