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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점을 먼저 찍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떠올랐던 것은 회화 기법중 ‘점묘법’이었다. 점묘법이란 회화의 기법 중 하나로서, 점 또는 점과 유사한 세밀한 터치로 묘사하는 기법을 말한다. 그러니 수많은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말하는데, 이 소설이 바로 그렇다. 각각의 이야기들은 화가가 캔버스 위에 붓으로 하나 하나 점을 찍어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내용이 짧아서일까, 아니면 그저 잠깐 스쳐 지나가는 듯 해서일까. 그러나 그 점들이 모여 캔버스 위에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듯이, 이 점 같은 이야기들이 결국 모여서 장관을 연출하고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그런 이야기의 성격은 무엇일까? 저자가 말한 바, 저자의 ‘자전적인 회고록’이 아니다, 라는 말을 믿기로 했다. 설령 그것이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라 할지라도 그것이 단순히 개인사로 끝이 나는 게 아니라, 우리 역사를 그려내고 있기에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 주인공중 한 명인 민효의 이런 발언을 한번 들어보자. <작년에 정치학과 수업을 들었거든. 교과서가 무려 8백 페이지였어. 거기에 우리에 대해서도나오더라. 우리가 세계의 모든 것인 줄 알았던 사건들이 단 한 페이지로 정리되어 있었어.>(486쪽) 그렇게 주인공들 앞에 펼쳐졌던 세계가 단 한 페이지로 정리되는 게 바로 역사인데, 다행이 이 책은 한 페이지가 아니라 500여 페이지나 되니까, 역사책도 그렇게 상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읽어볼만 하지 않겠는가? 2. 점은 선이 되고, 선은 .... 다시한번 말하자. 이 책은 하나의 이야기가 점처럼 그려지고 있다. 그런데 그 점들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그 점들은 이윽고 선이 되고, 선들은 면이 되며, 면들은 이윽고 입체가 되어 독자 앞에 드러난다. 그러니 그 점들이 혹시 띄엄띄엄하게 보일지라도 참을성을 가지고 읽어나가야 한다. 그런 이치를 소설 속 강정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빗줄기라는 표현은 틀렸어요. 빗방울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한 줄기처럼 보여도 띄엄띄엄 내리지요. 실은 세상 모든게 띄엄띄엄 존재합니다.>(28쪽) 그렇게 사건 하나하나가 띄엄띄엄 존재하지만, 그래서 그것이 사건들이 방울방울 이어지는 것 같고, 또 그것이 사실 맞지만, 어디 사람 눈에는 내리는 비가 빗방울로 보이나, 빗줄기로 보이듯이, 이 소설의 이야기들도 이야기가 점처럼 하나하나 그려지지만 결국에는 사건의 줄기가 보이고, 결국은 그게 바로 우리의 역사인 것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역사를 그려내고 있는 역할을 하는 주인공들의 얽히고설킨 이야기이다. 주인공들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시대와 부딪히며 갈등하는 사이에 그들이 지나가는 궤적이 점이 되고, 점은 선이 되고 이윽고 그 선들이 면을 이루어 입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3. 이 세계가 입체적으로 보이는가 그런데 여기에서 저자는 하나의 암시를 심어 놓는다. 바로 주인공의 한 명인 진우의 눈 말이다. 한 쪽 눈을 잃은 진우에게 세상이 어떻게 보이나 <이제 진우의 눈은 사물들이 떠도는 세계를 영원토록 평면으로만 인식할 것이다. 진우는 입체로 구성된 세계의 한 축을 잃은 대가로 누구도 비난하지 못할 자유의 권리를 얻었다.>(474쪽) 저자의 이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주인공 진우가 한쪽 눈을 잃은 다음에 이 세계를 입체적으로 보지 못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두 눈이 멀쩡한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저자는 진우를 이렇게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은 대가를 우리에게 치르게 하고 있는 것이다. 진우는 한 쪽 눈을 잃은 다음에서야 이 세상을 평면으로 보게 되었는데, 당신들은 두 눈을 번연히 다 뜨고 살면서도 이 세상을 그렇게 평면으로만, 아니 면이 아니라, 단선으로만 보고 있느냐고? 이 질문은 더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당신 앞에 보여지는 이 사건을 왜 그렇게 조각 조각으로만, 점 하나로만 보느냐고! 4. 음수사원 (飮水思源) 그래서 이 소설은 ‘모든 일의 원인을 묻는 소설’이다. 저자가 주인공 태의에게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공연히 읽힌 것이 아니다. <아퀴나스는 주장했다.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다. 그렇다면 원인에도 원인이 있을 것이다. ...>(483, 505쪽) 저자가 이 부분을 두 번 씩이나 인용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주인공 태의가 빨강색 점퍼를 입고 시위에 나가고, 그 시위장면이 채증사진에 찍혔고, 그 사진을 들이대며 네가 맞냐고 추궁하는 문경사에게 오리발을 내밀지 못하고, 맞다고 대답하고 결국은 그것이 진우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더 한걸음 나가 진우가 한 쪽 눈을 잃게 되는 사건에 이르기까지. 원인은 결과를 낳고, 그 결과는 또 다른 결과의 원인이 되는 무한궤도처럼 끝없이 달려간다. 그렇다면 그 이야기를 읽은 독자인 우리는 지금 우리 앞에 보이는 어떤 현상에 대하여 거슬러 올라가 그 원인 A를, 또 그 현상 A를 거슬러 올라가 원인 B를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 결국 우리 앞에 놓인 어떤 현상을 만들어 놓은 근본적인 이유 Z를 생각해 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음수사원, 지금 물을 마시면서 그 물의 근원을 생각하라는 평범한 이치, 그 이치를 우리 현상에 대입해 보라는 것일게다. 5. 역사는 이렇게 평가된다 저자가 역사에 등장하는 사건들을 평가한 대목을 보자 <황우석이 증명한 것이라고는 논문 검증 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밖에 없다.>(489쪽) 대학에서의 학사관리가 엄정화 - 여배우 이름이 아니다 - 되고 난 변화는 <그 곳 캠퍼스에서는 오리가 한 줄로 서서 횡단보도를 건너 다녔다.>(490쪽) 6. 아포리즘 몇 개 이 책에서 가장 빛나는 아포리즘, 하나! <“돈이 많으면 행복하지 않아?” “행복하지, 그래도 내 행복 때문에 누군가 불행을 느끼는 건 싫어. 그렇게는 내가 충분히 행복할 수 없는거야.”>(101쪽) 미주의 말이다. 그것 하나로는 섭섭하다, 하나만 더 들어보자.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우리 모두가 살아남으려면 누군가는 보트에서 뛰어내려야 하지 않겠냐고. 제가 의아한 건, 왜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장롱에 침대까지 챙겨들고 보트에 탔느냐는 것입니다.>(154쪽) 대석 형의 말이다. 형(兄)이 말하는 것이니까, 새겨 듣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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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손아람/자음과모음]서울대 운동권을 배경으로 한 젊은 청춘들의 잃어버린 시간들
간혹 지나간 푸른 청춘의 시절을 잊고 산다. 간혹 성적에 저당 잡힌 학생의 때를 잃어버린 듯 억울해 하기도 한다. 살다보면 잃어버리는 게 어디 한둘인가. 때론 잃어버려야 얻는 게 있는 법이다. 때론 비워내야 채워지는 게 있는 법이 듯. 사노라면 누구나 사회체제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저 묻혀 사는 게, 남들에 묻어가는 게 점점 편해진다. 그래도 생각과 행동이 가장 자유로운 때가 푸른 스무 살이 아닐까.
저자의 이십대인 잃어버린 10년의 이야기로 판을 펼쳐놓은 이야기엔 154편의 작은 에피소드들이 연결되어 있다. 누구에게나 스무 살, 그 새파란 나이에 한 번쯤 경험했을 이야기가 접점을 이루는 일화들이다.
저자인 손아람은 1980년에 태어나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서울대 미학과 학생인 주인공 박태의를 통해 1997년에서 2007년의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의 뜨거웠던 자취를 투영하고 있다. 그가 잃어버린 10년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기에 공감 되거나 생생하게 기억되는 사건들이다. 저자가 미학과 출신이어서 일까, 대화 속에 떠다니는 언어의 유희를 낚는 즐거움도 있다.
살다가 보면 이자가 붙기도 하고 부채가 늘기도 한다. 대단한 이자가 붙기도 하고 엄청난 부채가 붙기도 한다. 학생에게 성적은 부채 일까. 자신을 위해 투자해주는 부모나 사회에 대해 갚아야 할 최소한의 채무의식이 있다면 그건 부채일 것이다. 그러니 디 마이너스라는 성적표는 그런 부채를 갚을 수 있는 마지노선일 것이다.
이야기는 군대에 가지 않았던 서울대 공대생 진우의 청첩장을 받았지만 결혼해서 살면서 어쩌다 보니 결혼식 날짜를 넘기게 되었고, 불현 듯 태의가 옛 일을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태의는 철학연구학회라는 서클을 통해 학생운동을 하는 선배들을 알게 된다. 서클에는 어릴 적 미국에서 살았다는 예쁘면서도 터프해 모두에게 인기가 많은 미쥬 선배, 술을 마시면 자작시를 안주 삼는 현승 선배, 공대생이지만 주체사상 등 철학에 관심 있어 하던 진우, 한 때 미쥬 선배의 남자 친구이기도 했던, 부조리한 세력에 체 게바라적인 조리 있는 폭력을 숭배했던 대석 형, 도지사 아버지를 둔 경수 등이 있다.
이들은 인문학적 논쟁을 하다가 잠깐 주체사상의 정서적 호소력에 호기심을 느끼기도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이야기 하다가 상대적인 약자들 편에 서겠다고 나서기도 한다. 수업도 듣지 않으면서 시험을 치르는 대석 형은 특유의 궤변으로 성적을 받아내기도 한다. 상대적 약자들 편에 서겠다며 농활을 떠나고, 가진 자의 횡포에 맞서 약자들 편에서 데모하기도 한다.
때로는 학생운동에 모든 것을 쏟느라 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학생들은 원칙대로 F를 주려는 교수에게 D⁻를 달라고 농성하기도 한다. 전공 필수 수업에서 수업에 들어온 적도 없는 학생에게 D⁻를 줄 수 없다는 교수를 상대로 농성을 벌이는 학생들의 모습, 이건 정당하지 않다. 불의를 위해 싸운다는 학생들의 이면에 있는 또 다른 불의를 보게 된다. 모순의 양면성은 언제나 함께하는 걸까.
D⁻를 주세요, 교수님! 싫어.
어쨌든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 시위대를 조용히 제압하는 교수의 모습에서 완력보다 강한 원칙의 힘, 기본적인 양심의 힘을 보게 된다. 정의를 위해 시위농성을 한다면, 출석은 수업에 대한 학생의 최소한 예의인데......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가 일어났다며 새해 선물로 전원 A⁺을 날렸던 띄엄띄엄 철학의 지존인 강정환 교수, 성추행의 전력이 있지만 미인대회의 심사위원이 되기도 하는 안민 교수, 학생 시위 전력이 있었다는 소문만 무성한 학교의 전설인 미친 사람,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떠돌이 개, 교정을 돌아다니는 길고양이 등도 추억의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데모, 화염병, 경찰특공대, 대공분 실, 월드컵, 공장의 파업농성, 해고 노동자 농성, 미군 궤도 차량에 치인 여중생 미선이와 효순이, 노무현 대통령 당선, 황우석 교수 사태, 이명박 대통령 당선, 서울대 출신의 현직 연예인인 이적, UN의 김정훈, 김태희가 대중예술의 경험이 없는 교수의 대중예술론을 들으러 오는 아니러니 등 154편의 이야기에는 우리 모두의 청춘의 역사가 들어 있다.
개인사가 모여 사회의 역사가 되는 법이다. 하루하루가 모여 시대 역사가 되는 법이다. 살다보면 잃어버리는 게 어디 한둘인가. 잃어버려야 얻는 게 있다. 하지만 누구나 푸른 청춘 시절의 뜨거웠던 시공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법이다. 잊고 싶지 않는 법이다.
살다보니 세상의 부조리에 점점 무신경해지고, 세상의 불의를 돌아볼 틈이 없는 삶이지만 그래도 시절은 있다. 그런 잊지 말아야 할 뜨거웠던 이십대에 대한 오마주다. 이십대 청춘의 자화상을 그린 에세이 같은 소설이다.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의 다큐를 보는 것 같다. 지금도 우리의 삶은 디 마이너스의 언저리에 불안하게 놓인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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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를 모티브로 한 손아람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소수의견'이 완성되고도 2년 가까이 개봉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용산참사 6주기를 맞이하는 한국 사회의 풍경이다. 도심 재개발지구의 망루에서 벌어진 두 건의 살인사건을 두고, 이를 은폐하려는 국가권력과 진실을 밝히려는 변호인단의 공방을 다루었던 '소수의견'의 임팩트가 워낙 강렬했던 지라 이번 신작에선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내심 궁금했었다.
내가 맡은 학생은 5학년인 남자아이였다. 두 자릿수 곱셈. 아이 엠 어 보이. 그런 것들을 열심히 가르쳤다. "궁금한 거 있어?"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면 뭐가 좋아요?"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일하러 올 수 있어서 좋지." 나는 어른스럽게 대답했다.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버스만 타면 언제든지 일하러 올 수 있잖아요."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실제 손아람 작가 또한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고, 극중 주인공 태의 역시 서울대학교 미학과에 다닌다. 그는 자신이 입학하고 졸업한 학교, 서울대학교에 대해 당당하게 언급한다. "으스댈 뜻은 없다. 굳이 그 이름을 피하고 싶지 않을 뿐. 이 이야기의 아름다운 면과 지저분한 면을 모두 이해시키려면 반드시 그 괴물 같은 고유명사와 맞닥뜨려야만 한다." 라고. "겸허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어야 하지, 단어를 선택하며 발휘하는 게 아니다" 라고 말이다. 그렇게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주인공 태의, 그리고 그가 만난 대석 형, 미쥬, 진우, 담당 교수들과 노동자, 경찰... 들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고, 대우자동차의 부당 정리해고, 한일월드컵, 미선이 효순이 사건, 용산참사, 촛불 시위 , 한미 FTA 협상 타결,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이르기까지의 시절을 통과하면서 대한민국의 과도기이자 그들 청춘의 과도기를 겪어 나간다. 제목인 디 마이너스는 낙제인 F를 간신히 면한 학점 D-를 뜻한다. 이 작품에 실린 154편의 이야기들은 용산 참사를 비롯해서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10년의 시간을 들려준다. 극중 에피소드 중에 공대학생회장 당선자인 윤구는 학생운동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느라 수업에 거의 들어갈 수가 없었고, 대부분의 과목에 F를 받는다. 다른 교수들은 그의 성적을 D-로 올려주어 낙제에서 복권시킴으로써 정치적 신념을 위해 희생된 제자의 학업 혹은 젊은 날의 추억에 최소한의 존중과 경의를 표시한다. 그런데 단 한 명 재료공학부의 구민용 교수는 수업에 들어온 적도 없는 학생에게 D-를 줄 수 없다며 F를 준다. 여러 번 교수의 방에 찾아가 정중하지만 간곡하게 하소연했지만,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는 구민용 교수는 그래야 자신의 교수 생활에 후회가 남지 않을 것 같다며 학생의 사정 보다 자신의 경력과 신념을 완성하고 싶은 욕망에 충실한다. 결국 문제는 D-를 받느냐, F를 받느냐. 혹은 합격이냐, 낙제냐의 기로인데, 이것은 사실상 지금의 우리들이 처해있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항상 그렇지 않던가, 이것을 포기해야 저것을 얻을 수 있지만 우리는 모두 갖느냐, 모두 잃느냐로 한번쯤 선택의 기로에 서기도 한다는 것을. 주인공 태의는 이야기의 시작에서 진우에게 받은 청첩장에 대해서 떠올린다. 보고 싶다. 진심으로. 꼭 와줘. 라고 손 글씨로 쓰인 그 청첩장을 현관 앞 협탁 위에 잘 보이게 두고 매일 집을 나서거나 돌아올 때마다 그는 망설인다. 가야 할까? 갈 수 있을 까? 그러다 결혼식 날짜가 훌쩍 지나가버리고 만다. 그렇게 미루다 내심 지나가 버리기를 바랬던 걸 수도 있고 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 위로 삐뚤빼뚤 책들이 쌓이고, 그 책들을 묶어 이사를 하고, 결혼을 하고, 더 큰 집으로 또 이사를 하며 짐이 불어나고. 그렇게 모든 삶에는 이자가 붙는다. 보잘것없는 삶에도 보잘것없는 이자가. 태의는 그렇게 진우의 결혼식에 가지 않았고, 자신의 결혼식에 진우를 초청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밤 진우를 만나게 된다.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태의가 진우를 만나는 것은 잃어버린 한 시절에 대한 사죄이자 죄책감 같은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한 시절을 잃어버리면서 어른이 되곤 한다. 누구나. 예외 없이.
왜 모르는 사람을 위해 이타적이기는 쉬운 걸까? 가까운 사람에게 이기적으로 상처를 입히기 쉬운 만큼. 나는 얼굴도 모르는 노동자들을 위해 싸웠고, 내 친구를 팔아먹는 배신을 저질렀다. 어쩌면 양심이란 스스로 초월적이며 초계급적인 존재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태도일지도 모른다. 세상을 고고하게 내려보며 탓하는 말들. '나'를 세상에서 제외할 수 없다면 그런 문장은 입에서 나오는 즉시 논리적 모순을 범한 것이니까. 나는 내가 저지른 짓을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논리적으로 변호해야 할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나는 깨우쳤다. 인간은 논리적일 수 있을 때만 논리적이다. 인간은 이기적이다.
우선 책을 읽기도 전부터 의아했던 것은 이 작품의 형식이다. 분명히 '장편소설'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뒷면에 소개된 글에는 154편의 이야기들이라고 설명되어 있고, 띠지에 적힌 작가의 말에는 '느슨하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수십 명의 사람들에 의해 쓰였고,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결코 소설이 아니다'라고 써 있다. 단편이라 하기에는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것 같고, 장편이라 하기에는 각 소제목의 호흡이 짧고 내용이 그저 생각의 편린이나 단상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의 전작으로 인한 기대감이 있었기에 그냥 이야기를 읽어나갔고, 중반부쯤 이르러서야 이 책이 왜 여러 명의 이야기이자, 하나의 장편 소설이 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특히나 내가 작가와 비슷한 학번으로 대학을 다녔던 나이라 그런지 그가 그려내던 인물들의 대학시절, 청춘의 시간들이 매우 공감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작가가 그리고 있는 시간은 90년대 초반부터이기에 내가 겪지 못한 시대도 많았지만, 직접적으로 겪지 못한 학생운동의 마지막 세대들이 풀어내는 에피소드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역사의 한 시절이므로 그리 낯설지도 않았고 말이다. 이야기가 끝나고 책의 마지막에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연표가 정리되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무심코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대한민국을 흔들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한번씩 되 집어 보면서 기억해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떠나는 일종의 순례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이 책을 읽는 이들은 작가가 왜 인물들의 지난 시간에 디 마이너스라는 성적을 매겨두었는지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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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이 이야기가 수십 명의 사람들에 의해 쓰였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결코 소설이 아니라고. 나 역시 읽어나가며 혼돈이 왔다. 이것은 어쩌면 나의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태의와 미쥬, 대석, 진우의 대학시절과 그들이 처했던 사회환경. 그 시절, 학생이라는 신분의 그들은 치열하게 저항했지만 누군가는 살다 보니 무력하게 적응해갔고, 또 누군가는 결국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고, 또 누군가는 여전히 대항하며 살아낸다. 내가 대학을 입학했던 시절만 해도 운동권, 투쟁 뭐 이런 단어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처럼, 전설처럼만 전해져왔던 시대였다. 너무 실감 나고 사실적인 이야기들에 나는 저자가 그 시절 학교를 다닌 줄만 알았다. 그런데 저자는 뜻밖에도 80년생. 나보다 어린 나이. 하긴, 이들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아닌 각종 사회적 사태에 대항하고 있었지만... 소설을 읽어나가며, 다 읽고 나서도 가슴이 답답해져 옴을 참을 수 없었다. 노동자들의 시위 현장에서 전경을 상대로 부조리한 폭력에 맞서 싸우는 그들을 보며, 이런 실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것에 슬펐고, 대공회의실에서 결국 친구의 이름을 불고 마는 대석이 형과 태의를 보면서, 사실은 나도 그런 상황이 오면 그렇게 행동하고 말 것 같아 두려웠고, 아니 애초에 나는 그런 곳 주변은 가지도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아 서글펐다. 그저 평범하게, 나의 안위만을 위해 지내온 대학시절이었다. 나의 행복이 누군가의 불행을 담보로 할 수도 있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채, 그저 즐겁고 활기 가득 찬, 그러면서 취업 준비, 토익, 자격증 등 각종 스펙에 힘쓰던 시기였다. 대학은 과거처럼 학문의 상아탑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더 이상 취업의 등용문도 되어줄 수 없었던 어정쩡한 시기. 이미 선배 세대에서 민주화니 표현의 자유니 하는 격렬한 투쟁의 시대가 지나갔고, IMF 이후 경제, 자신의 스펙이 중요시되던 시절. 그러나 지금처럼 88만원 세대까지는 아니었던 뭐 그런 어중간했던 시절.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한때는 비슷한 가치관과 신념으로 함께 했었던 그들이, 이제는 생활에 묻혀 모두 제각각 나름의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문득, 이 사회는 누가 바꿔나가는 것일까 궁금해진다. 혹 남들의 삶 따위 관심 두지 않으며 나만 돌아보는 사람들로 인해 조금씩 침몰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변화되는 것처럼 보일 뿐, 사실은 그냥 늘 돌고 돌며 계속되는 것일까. 세상을 바꾸려 했지만 바뀌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차라리 세상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그렇게 세상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향해 또 세상을 바꾸고자 투쟁하는 사람들을 보며 끊임없는 윤회 같다는 문 경사의 말이 와 닿아서 마음이 아팠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에 무감각해지고, 나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괜찮다는 방관자적 입장. 그런 무관심 속에 나는 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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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상하게 책 제목을 아무 생각없이 보나보다. 처음 책을 받았을때부터 어제 새벽 다 읽어내기 전까지 나는 이 책 제목이 뭘 뜻하는지 전혀 감을 못 잡는 바보스러움을 발휘했다. "디 마이너스" 그야말로 말그대로 D-쟎아. ㅠㅠ 표지에도 아예 대놓고 그렇게 돼 있구만 나는 왜 아무 생각이 없었을까? 에고나, 제 정신 좀 차리자.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의 삶이 정말 디 마이너스 밖에 안되는 건지 의심스럽긴 하다. 어마무시 치열하게 살아온 자 이기에 A+을 주고 싶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치열함속에서도 앞뒤 안재고, 자신의 삶을 제대로 돌보지 않은 면도 있으니 거기에 좀더 마이너스를 가하긴 하자. 이건 그냥 책 읽고 난 나의 작은 궁시렁 거림이다.
이 책은 내내 읽으면서 진짜 소설이 맞을까? 라는 의심을 무지 했다.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그대로 이야기이기도 한대다 큰 사건들 역시 나도 보고 들었던 이야기고 실명이 그대로 나열되기도 하니, 아 진짜 왠지 에세이를 읽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띠지에서도 소설로 치부하기엔 여러사람의 인생이 담겨있는 진짜 이야기인듯 소개가 돼 있다.
나는 자꾸만 의심한다. 주인공이 진짜 손아람 본인 이야기 아님? 진짜 그런거 아님?
어쩌면 말이다. 읽으면서 역사란 대체로 반복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면 우리 청춘들의 삶이 반복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 뭔가 데자뷰를 보는 기분.
1970~80년대 엄청나게 일어났던 학생운동의 기운을 지금 이 책에서 느낀건, 2000년대임에도 불구하고 똑같았거든.
똑같이 그때처럼 각목이 휘둘려지고, 화염병도 던져지고, 돌멩이도 던져지고...... 달라진 거라면 촛불이 새로 나타났다는 거? 예전에 눈물, 콧물 엄청나게 쏟아내던 화염병보다는 강한 수돗물이 나타나기도 하는거?
나는 어떤 신념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 못되고 이리저리 회색분자, 혹은 박쥐처럼 그저 조용히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종족인지라 뭔가에 대해 투쟁하거나 토론하거나 가열차게 참여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들의 글을 읽으며 청춘을 느끼지만 어디까지 공감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한다. 그래도, 뭐랄까. 그냥 이 젊은 대학생들의 삶이 치열하지만 열정적이라는 것에, 청춘의 이름을 붙여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해본다. 그들이 가진 신념이 어떤지, 저떤지 따지기에 앞서 그들의 이야기는 아프면서도 곧 우리시대 젊은이들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새벽잠을 설쳐가며 읽게 만든다.
이시대의 아픔이나 정치적, 혹은 사상적 이야기가 깊지만 나는 그냥 그들의 청춘을 이야기했다고 이해하려 한다. 그들의 치열하면서도 가열찼던 한순간으로 음미하고자 한다. 한사건 한사건, 한챕터씩으로 읽어나가기가 참 쉬우면서도 무거운 책이다. 책장은 잘 넘어가되, 생각거리는 많은..... 그러나, 나는 어디에도 역시 속하지 못한 생각으로 그저 그들의 젊은 청춘 이야기를, 대학에서의 투쟁을 관망하는 입장이 되고만다.
이야기가 아픈데, 그 아픔이 다가 아닌 이야기다. 그리고 뭔가.... 흠, 지성미도 철철 흐른다. 물론 나는 그런 지성을 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미학.. 아름다움을 연구하는 학과... 그냥 그저 이 청춘들의 삶 자체가 고달프지만 아름다움이 아닐까. 그 시절 그 순간이......
이제 나이를 먹어가는 나는 그 수많은 사건과 이야기 속에서도 "청춘"이라는 단어들만 깊숙히 파고드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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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마이너스는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소설이 된 이야기다. 주인공은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박태의란 청년으로 19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근현대사 10년의 굵직한 사건들과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금은 좀 다르겠지만 그 시대에는 정치적 성향을 보이는 학생들을 만나기 어렵지 않았다. 동조하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공감하는 이야기들이라 빠져 들어 읽었다. 박태의는 학교를 졸업하고 한 집안의 가장으로 아내와 다섯 살 된 귀여운 딸과 함께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은 부끄러운 과거를 가지고 있다. 진우... 남자의 친구이며 여전히 그의 친구로 남기를 바란 인물이다. 진우가 보낸 청첩장은 태의에게 있어 복잡한 심정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지만 참석하지 못한 결혼식 청첩장을 버리지 못하고 가지고 있을 만큼 남자에게 있어 진우는 특별한 존재이며 훌륭한 사람이다. 아름다운 학문인 미학과에 입학한 박태의... 새내기 대학생이 되어 인문대학 환영식에 참석했다가 여성주의자인 미쥬란 선배와 현승 선배를 만나게 된다. 현승 선배의 물음에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선배들의 질문이 쏟아진다. 그는 그들을 좋아하고 함께 할 것이란 것을 예감하게 된다. 태의는 당당하고 당찬 미쥬 선배를 숭배하여 그녀가 속한 철학연구학회에 들어간다. 그곳에 주인공의 인생에 평생 무거운 마음의 짊을 갖게 할 공대생 새내기 진우가 들어온다. 사실 진우란 인물이 전투적인 모습을 가질 거라는 느낌을 처음에 주지 않는다. 그는 PC방에서 컴퓨터 게임에 몰입하거나 좋아하는 무협지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개인적으로 무협지를 거의 읽은 적이 없기에 황당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에 빠져든 진우의 모습은 혈기 왕성한 20살 청년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허나 진우의 진면목은 전혀 다른 곳에서 발견되고 그의 강한 의지와 실천력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뛰어나다. 농촌 봉사 활동에 갔다가 미쥬 선배의 신체 일부분... 움직이는 우리 신체 기관에서 가장 힘든 노동력을 제공하는 부분을 보고 성폭력적인 발언을 한 시골남자에 격분한 그들... 기필코 사과를 받아내는 과정에서 태의의 과 동기인 경수란 청년이 힘을 보태지만 그의 아버지가 개입되면서 오히려 그는 그들 곁을 떠나게 된다. 옳지 못하다고 여겨지는 현실에 학생들은 시위를 벌인다. 대우자동차를 둘러싼 시위에 참여하게 된 태의... 당시 오너인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을 습격하기 위한 자리에 따라 나선 태의로 인해 미쥬 선배와 그녀의 남자친구 대석 선배는 위기를 맞는다. 시위로 인해 대석 형이 잡혀가고 다시 돌아온 그는 정신적으로 피폐해져 있는 상태다. 어느 날 경사 한 사람이 태의를 찾아오고 태의는 대석 형의 정신이 왜 그렇게 변했는지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살기 위해서, 두렵기에 그들이 알고자 하는 것에 이해해 줄 거란 작은 바람으로 친구의 이름을 댄다. 자신이 왜 잡혀갔는지 느끼게 된 태의는 대석 형을 용서할 수가 없다. 미쥬 선배에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 이에 격분한 헤어진 연인 대석 형이 나서며 사건은 엄청나게 커진다. 순수하기만 할 것 같은 학생시절... 변화를 바라기에 신념에 따라 행동에 나선 학생들... 태의는 숨듯이 군대로 들어가고 미쥬 선배는 유학길에 오른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중학교 때 한국에 온 미쥬... 그녀는 잘못되었다고 믿는 것을 위해 싸우지만 그녀를 둘러싼 환경에 속해 있기에 벗어나지 못한다. 짧지만 숭배하던 미쥬 선배와 연인이 되어 모든 것의 처음을 그녀와 함께 했던 기억만이 태의에게 남겨진다. 신념에 따라 행동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그들은 세상에 물들어 살아간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청춘을 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는 같은 시대에 살아 그들을 보았기에 충분히 공감이 간다. 동창회를 통해 같은 시간을 보낸 그들이 모인다면 그들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외국생활로 떠돈 미쥬 선배의 예상 밖의 결혼, 신념을 여전히 지키면서 사는 친구, 자신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심판할 수 있는 위치에 선 선배, 성정체성을 가진 인물을 향한 어린 숙녀의 마음, 평범함을 넘어선 교수님이 변하는 모습 등등 다양한 인물과 이야기는 역사의 한 페이지 속에 담겨져 있는 이야기로 보아도 무방하다. 재미가 없는 것은 아닌데 충분히 매력적이고 지나간 나의 20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하며 읽을수록 차분히 가라앉는 분위기에 휩싸인다. 그만큼 책이 주는 무게감이 느껴지며 짧은 소제목 속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재미로만 읽는 것을 넘어서는 소설로 탄생 되었다는 것이 흥미롭다. 저자의 작품 디 마이너스가 처음인데 소수의견이 저자의 작품이라고 한다. 인터넷에 화제된 영화의 원작소설이라 조만간 읽어 볼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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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view - 수리와 간디, 그리고 강풀의 운동화 이 책은 읽을거리가 많다. 더하여 생각할 거리도 많다. 여기 244쪽에 또 하나의 주인공인 수리의 운동화 한쪽이 갯벌에 빠져 사라진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수리의 몸이 갯늪에서 끌려 올라올 때에 한쪽 발에만 운동화가 신겨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것을 바라보던 ‘나’ 태의는 수리가 벗어 놓은 한쪽을 집어 들어 갯벌 위로 힘껏 던졌다. 그 이유를 묻는 수리에게 이렇게 이유를 설명한다. “정말로 누군가 신발을 찾을 수 있다면, 한 짝보다는 한 켤레가 더 쓸모 있는 것 같아서.”(244쪽) 그 에피소드를 읽고 있노라니, 간다의 일화가 떠올랐다. 마하트마 간디가 남아프리카에서 변호사로 활동을 한 뒤 귀국했을 때다. 간디가 열차에 올라서는 승강대를 딛다가 그만 실수를 해서 한쪽 신발을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열차는 막 속도가 붙기 시작했으므로 떨어진 한쪽 신발을 주울 수 없었다. 옆에 있던 동료가 떨어진 신발을 포기하고 차내로 들어가자고 권했다. 그 순간 간디는 얼른 신고 있던 한쪽 신발을 마저 벗어 들더니 금방 떨어뜨렸던 신발을 향해 세게 던지는 것이었다. 동료가 의아해서 그 까닭을 물었다. 간디는 미소 띤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한쪽 신발로는 누구도 신고 다닐 수가 없네. 누군가 떨어뜨린 저 신발을 줍는다면 두 쪽이 다 있어야 신을 수 있을게 아닌가˝ 그 뒤를 이어 강풀의 만화 한 컷이 떠오른다. 이야기의 무대는 한국 서울의 지하철 승강장이다. 만화의 주인공은 지하철에 올라타다가 그만 운동화 한쪽이 벗겨지고 말았다. 그 주인공 그러한 급박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간디의 일화가 생각이 나, 나머지 운동화 한쪽을 벗어 마악 닫히려는 그 문 틈 사이로 집어 던졌다. 누구라도 그 신을 온전하게 신으라는 착한 마음씨(?). 그런데 같은 순간, 그 승강장에 또 한 명의 착한 마음씨가 있었으니! 오지랖 넓은 청년 한 명이 거기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올라탄 사람이 신발 한쪽만 들고 안타까워할까봐 승강장에 떨어진 운동화 한쪽을 얼른 집어 들어 안으로 집어넣었는데, 그 나오고 들어간 순간이 거의 동시! 아뿔싸! 주인공이 던진 운동화는 승강장으로 떨어지고, 오지랖 청년이 던진 운동화는 지하철 안으로 무사히 들어갔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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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나에게 왔다. 오는 도중 택배가 분실되었다. 출판사 측에서 다시 보내주긴 했지만 처음 보낸 택배의 향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힘들게 온 책을 나는 정말 힘들게 읽었다. 3일이라는 긴 시간동안 읽었다 말았다를 반복하며....책이 재미없어서가 아니다. 나는 나를 떠올리느라 그때의 나를 소환시키는 그의 글 때문에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글 속의 인물들이 만들어낸 인물이 아닌 살아있는 존재들 같다. 나의 대학시절에 한 번쯤 만날을 법한 사라들이었다. 진우도, 태의도, 대석선배도, 선봉대장도, 그리고 미쥬도 그래서 사실 나에게 이 책은 분석이라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저 발가벗겨지는 느낌이었다. 그때는 내가 했던 고민을 서울대 생도 한다는 희열도 있었고 그들만큼 깊게 고민하지 않고 그저 선배들이 하자는대로 너무 단순하게 움직였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와 내 친구들의 삶이자 저자의 삶이었을 이야기에 나는 그 어떤 코멘트를 달기가 무섭다. 하여 어쩔 수 없이 요점정리하듯 말 할 수 밖에 없다. 1. 마지막 학생운동가들의 삶을 너무나 잘 표현했다. 그들이 겪었던 그 사건들과 그들의 고뇌가 당시 학생운동의 종점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그 모습들이 별다른 미사여구없이 잘 보여준 듯 하다. 2. 가장 마음에 남는 인물은 미쥬다. 그가 여성운동가여서가 아니다. 나는 마주의 마지막 때문에 그녀가 보였다. 알기 때문이다. 미쥬가 인도식 커리를 20가지를 배워 요리하게 되기까지 그녀가 겪었을 내적 갈등을 작가가 남자기에 그렇게 단 한 줄로 담을 수 밖에 없었을텐지만 그렇게 덤덤히 태의에게 까발리기까지 싸워도 봤을테고 무너져도 봤을테다. 그리고 스스로 위로도 했을테니 그들의 웃음이 자신를 행복하게 하는거라고 3. 시크한 문체가 글의 내용과 더할나위없이 어울렸다. 그의 문체는 뭐랄까? 일기를 훔쳐보는 듯 하기도 하고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듯도 했다. 술에 취해 오버하지 않고 지극히 차갑고 냉정한 .......화자인 태의가 딱히 냉정한 이도 아닌데 철저하게 객관적으로 읊어대는 듯한 문체가 묘하게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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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아람의 장편소설『디 마이너스』는 자음과모음 4기 서평단에서 아홉 번째로 받은 책이다. 책을 받았을 때 내 마음은 기쁨이나 설렘보다는 부담감이 더 컸다. 독서의 상당 부분이 걸으면서 이루어지는 나로서는 분량이 두꺼운 책은 부담스럽다. 들고 다니기에는 무겁고 책을 펼치기도 힘겹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은 526쪽이나 된다. 또한 『디 마이너스』라는 제목이 그리 정겹지 않았다. 무거운 주제를 담은 무거운 책을 무거운 마음으로 읽어야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책장을 덮을 때는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몇 가지만 적어 보겠다. 첫째, 옛 앨범을 보듯 편안하면서도 애틋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부담스러운 마음은 30쪽도 넘기기 전에 사라진 것이다. 이 책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던 1997년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던 2007년까지 10년 동안 서울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학창 생활이 담겨 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학생운동권에서 투쟁가로 활약하던 주인공과 벗들의 투쟁기이기도 하다. 내가 그 시기에 학창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학생운동권에 깊숙이 관여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권위적인 권력가나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더라고 우기던 수사관은 어느 시대 어느 정권에서나 존재하지 않았던가? 안녕하지 못했던 사회에서 번민하거나 방황하던 청춘도 어느 때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주인공들을 이해하면서 책장을 넘길 수 있었다. 둘째, 장소와 인명이 실명으로 표기되고 있어서 현실감을 느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의 대학이름을 비롯하여 전대협·한총련 등 운동권 단체 NL(민족해방)·PD(민중민주) 등을 그대로 쓰고 있다. 김대중·노무현·이회창 등 정치인들이나 인기 연예인인 김태희·UN(김정훈) 등도 실명으로 나온다. 물론 주요 등장인물은 허구적인 가명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를 모델로 한 것이 아닐까, 라고 추측을 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아, 저자는 실제로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인 박태의와 같은 학과다. 학창 생활의 시기도 비슷하고……. 이 작품 속에 저자의 체험이 포함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작품으로 말하고, 독자도 작품으로 느끼면 그만 아닌가 내가 현실감을 느낀 것은 장소와 인명이 실명으로 표기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젊은 시절에 우국지사라도 된 듯 사자후를 토하던 이들이 나이가 든 뒤에 저마다의 변명 속에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학생운동권의 기수에서 검사나 대기업 직원 되고, 외국으로 가서 귀족적인 생활을 하기도 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이 책의 10년이 우리 역사의 축소판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때로는 공감이 되면서도 한편으로는 아쉽기도 했다. 셋째, 지나고 나니 아름답듯이 현실 그럴 것이라는 위안도 되었다. 이제 이 책속의 투사들을 더 이상 찾기 힘든 세상이다. 그러나 ‘별을 보고 길을 찾던 시대가 아름다웠다.’고 해서 관성항법장치나 위성항법장치로 길을 찾는 시대가 된다고 낭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옛 세대가 모르는 고민을 하면서 방황을 하기도 하고, 나름의 낭만과 추억을 남기고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잃어버린 10년’이란 표현이 궁금했다. 책의 말미에 이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97~2007년의 주요 사건이 연표 형식으로 소개되었다. 그 연표의 이름이 왜 ‘잃어버린 10년’일까? 좌파의 입장에서는 ‘영광의 10년’일 테고, 우파의 입장에서는 ‘빼앗겻던 10년’이어야 할 텐데……. 작중 화자의 입장에서는 그때가 ‘잃어버린 시절’이었을까?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보았다. 뜬금없이 다음 대선에서 어떤 인물이 당선될지 궁금했다. 우파가 집권했을 때는 이승만 정권에서는 전직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는 김구 선생과 경쟁자라고 할 수 있는 조봉암 선생이 비명에 갔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장준하 선생의 의문사가 있었고, 이명박 정권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이 있었으며, 박근혜 정권에서는 통합진보당이 말살되었다. 그런데 좌파라고 불리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는 무엇을 했던가? 이도저도 아무것도 못하고 임기 내내 당하기만 하다가 보복만 당한 것이 아닌지……. 다음 대선에서는 어떤 인물이 당선되고, 그는 경쟁자들을 어떻게 대하게 될까? 불현듯 김영삼 정권이 떠올랐다. 전직과 전전직 대통령 두 사람에게 푸른 수의를 입히던 모습을…….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자신의 입장이 어느 쪽이든 관계없이 편안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더듬을 수 있는 낭만도 있다. 1997~2007년도의 캠퍼스 생활을 공유했던 이들은 물론 그 앞뒤 세대 모두 흥미를 느끼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제목의 의미가 궁금한 이들도 있을 것이다. 대학의 학점이다. A학점이나 B학점이 아니고 D학점도 겨우 턱걸이를 한 '디 마이너스'다. 스스로 느끼는 자신의 삶이 디 마이너스 학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감회를 느끼는 제목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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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없는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만약에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행로의 과정을 점수나 등급으로 나타내기를 묻는다면 당신은 과연 스스로에게 얼마만큼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어떤 사람은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면서 그동안 성실한 자세와 근면한 정신으로 다른 이들로부터 모범이 되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왔고 아울러 법 앞에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면 넉넉한 점수를 줄 것이고,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인생으로 살아왔다면 그에 훨씬 못 미치는 박한 점수를 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자신의 인생을 평가함에 있어 그 평가의 기준을 딱히 점수로 구분하여 확정할 수도 없는 일이고, 객관화하여 포괄시키는 것도 쉽지는 않은 일이기에 어찌 보면 무의미한 일이 될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를 통해 지나온 자신의 과거를 곰곰이 되새겨 보면서 향후 보다 바람직한 자신의 삶을 위해 반성과 성찰의 계기로 삼을 수는 있을 듯하다. 표지의 제목이 마치 대학교의 성적표의 등급을 암시하는 것 같은 이 작품은, 1990년대부터 2000년대 후반까지의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당시 우리 정치사회의 문제점을 부각시켜 사회개혁을 부르짖었던 운동권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지성인으로서 사회를 향한 그들의 열정과 이상,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방황과 좌절을 겪으며 훗날 평범한 소시민으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흥미롭게 그려낸 일종의 자전적 회고록 방식의 소설이다. 이 작품이 이채로운 것은 단순히 작중 인물들의 개인사에 국한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지난 우리 현대정치사의 전반적인 부분을 구체적으로 둘러볼 수 있어서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품 속에 전개되는 줄거리는 지금은 가정을 이루고 다섯 살 딸아이를 둔 한 집의 가장이 되어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 박태의가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하는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부터 시작한다. 미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막연한 생각으로 설레는 신입대학생활을 하던 그는 학과 선배를 따라 철학연구학회라는 동아리에서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부유한 집안배경을 숨기고 자유로운 삶과 페미니스트에 가까운 성격을 지니고 있는 미주, 공대출신이면서도 평상시의 겉모습과는 달리 운동권 투사의 이미지가 풍기는 진우, 시인의 기질을 지녔으면서도 다소 엉뚱한 면을 보이는 현승과 같은 학우선배나 동기를 만나 함께 대학생활을 보낸다. 이후 그는 선배들의 영향으로 정치적 성향을 띤 운동권학생으로 점차 거듭나게 되는데, 대우자동차 매각을 둘러싼 시위를 비롯해 노사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는 이곳저곳의 현장을 돌며 투쟁의 대열에 함께 동참하게 되고, 방학기간동안에는 농촌을 찾아 농활의 경험을 갖기도 한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는 대우그룹의 해체와 관련하여 김우중 회장의 집을 점거하는 일에 가담하면서, 그 일이 있은 직후 학교 선배가 경찰에 체포되었던 것처럼 자신도 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중에 형사에 의해 대공 분실로 끌려가 취조를 받게 되는 암담한 현실에 처하게 된다. 당시 동조했던 동료의 이름을 알려주면 단순한 훈방조치로 풀어준다는 조건으로 그는 진우의 이름을 알려주었고,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도 자신이 신뢰하던 선배가 밀고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되면서, 친구에 대한 죄책감과 아울러 선배를 향한 배신감이 공존하는 다사다난한 학창시절 개인의 다양한 체험의 소회가 밀도 있게 그려져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 태의라는 인물을 통해 운동권으로 활약하던 자신의 대학시절의 경험담이 구체적으로 펼쳐져 있지만, 그 이면에 대우자동차의 해외매각, 월드컵, 이라크 파병과 같은 현실정치사에 맞물린 여러 사건이 중첩되어 있다. 그래서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이제는 점점 잊혀져가는 우리 과거사의 다양한 부분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저자는 이 작품에 관하여 이 소설 속 이야기는 수십 명의 사람에 의해 쓰였다면서, 주인공 태의를 주목해보면 그와 친분관계에 있는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한 몸에 녹아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한 시대의 일지를 기록하고 싶었고, 하나의 이야기에 대한민국을 담아보고 싶었다는 개인적인 피력과 함께, 운동권 조직을 해부하다 보면 대한민국의 민얼굴을 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작품을 대하는 독자들마다 체감되는 부분은 각기 다르겠지만, 이 작품을 접한 개인적인 느낌을 말해본다면, 작가의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이 가지 않나 싶은 생각을 해본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을 통해 젊은 시기에 지성인이라는 정의에 입각한 순수한 열정에서 우러나온 그들의 진보적인 신념과 이상이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퇴색해져가는 소시민의 모습은 한편으로 안타깝고 쓸쓸하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만큼 우리의 사회문화가 다소 경직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 작품의 제목이 의미하는 디 마이너스의 수치는 바로 우리의 자화상을 평가해놓은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따라서 이 작품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보다 성숙한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살아가려는 의욕의 매개체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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