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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서평은 '대한민국 역사 컨텐츠 대표 카페 "대하사극 매니아 카페"의 서평단으로서 작성한 글입니다. 조선을 양분할 수 있을정도로 조선시대 역사를 나누는 큰 기준이 되는 임진왜란. 우리는 그 임진왜란을 떠올리면 바다에서 일본을 격퇴시킨 성웅 이순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이순신의 역량을 일찌기 알아 그를 발굴하여 조선의 바다를 지키게 한 사람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서애 류성룡'이다. 2008년, 당시 한 단행본을 통해서 필자는 류성룡에 대해서 처음 접했었다. 물론 이전에 드라마나 게임을 통해서 그를 보았었지만, 류성룡이 어떤 사람이었나에 대해서 보게되는건 그때가 처음이었었다. 그렇게 류성룡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그가 남긴 저서인 '징비록'을 알게 되었다. 사전적 의미로 '징비(懲毖)'는 '혼날 징, 삼갈 비', 전에 있었던 잘못과 非理(비리)를 경계하여 삼간다는 뜻이다. 쉽게 풀자면 참회록과 회고록의 합본이라고 해야될까. 그런 제목을 가진 만큼이나 임진왜란 전부터 전쟁 이후까지의 류성룡이 겪었던 모든 이야기들이 바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물론 본 책에서는 징비록 그 자체를 순수하게만 언급하지는 않았다. 실질적인 책의 내용에는 선조실록과 선조수정실록의 내용들이 많이 언급이 된다. 하지만, 징비록의 내용은 책 내용 중간중간에 쉽고 재미있게 간단히 서술하고 있어서 이런 부분들은 독자들에게 있어 책의 내용에 빠져들게 하는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류성룡의 인간적인 모습이다. 류성룡의 인품은 다들 잘 알듯이 역시 온화하여 화내는 법이 없고, 얼굴 빛이 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단순히 재상의 타이틀을 쥐고 거들먹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청렴하고 검소하였으며, 현재 정치인들이 필히 지켜야 될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며 나라를 운영하였다. 학식 또한 동서고금을 망라하여 문반인데도 불구하고 <증손전수방략>, <축성방략>과 같은 병서들도 써냈다. 무엇보다도 임진왜란 당시에 일본에 대한 방어책과 함께 특히나, 나라를 버리고 명나라로 도망가려는 선조와 이를 따르는 대신들을 막고서 나라를 구하려는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나라를 사랑했는지 알 수 있다. 이와함께 류성룡은 면천법, 작미법, 전매사업법 등 군역을 비롯한 토지와 조세정책을 실현하였다. 지금으로 치면 '백성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모토로 신분제 사회를 부정하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단지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고, 자신들의 지위와 재산유지에만 힘을 쏟았던 선조와 당시 사대부들과는 상반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실사구시'라는 실학을 누구보다도 먼저 적용하여 피폐해진 조선을 일으키려던 우리시대의 한 천재 재상의 아이디어는 반대파의 농간과 비판으로 인한 실각으로 그 꿈을 실현시키지 못한다. 아마 류성룡의 정책이 무조건적으로 채택되었었다면, 우리나라의 근대사는 한일합방과 같은 엄청난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역사는 단지 과거 옛날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돌아보고, 그를 통해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 바로 역사의 교훈이다. 본 책의 저자는 책 앞머리에 이런 말을 적어놨었다. '중국과 미국, 일본이라는 세계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대한민국! 당쟁으로 왜국의 전쟁 준비 상황도 파악 못하고, 전쟁 발발 후에는 명나라에 기댈 생각만 하던 조정 등 임진왜란 당시와 작금의 상황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똑같다. 반복되는 위기 앞에 반성없이 성급하게 전진만 해온 한국 사회. 지금이야말로 성찰과 자각의 의미로 쓴 <징비록>과 류성룡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를 되새겨야 할 때이다.' 필자는 이 말을 듣고 류성룡이 얼마나 애국심이 강하고 자립심이 강한지 읽을 수 있었다. 류성룡은 전쟁 중에도 원군을 청하는 한편으로는 우리 것을 우리가 자주적으로 지키려고 하는 노력을 엄청나게 기울였다. 이는 그가 병서를 쓴 것과 훈련도감을 비롯한 여러가지 전략을 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현재 우리는 어떤가. 아니 본인 자신은 어떤가. 자기 자신을 한번이라도 돌아본 경험이 있는가. 자신의 준비 상황도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남에게만 기대려는 생각을 하고 다니지는 않는가. 징비록의 이야기는 단지 나라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다. 이완용과 민병석의 업적 아닌 업적으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류성룡의 활약으로 조선은 이 강토를 침략한 일본군들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에는 자랑스럽고 빛나는 부분도 있지만, 숨기고 싶고 치욕스러운 부분도 있다. 단순히 빛만을 이야기 할게 아니라, 그림자도 함께 말하면서 다시는 이러한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만드는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와 관련된 답은 바로 류성룡이 기록한 이 징비록에 아주 잘 남겨져있다. 본 책의 저자가 소설가이다보니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여 소설과 같은 형식의 이야기 전개가 거부감없이 머릿 속에 그려진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책들 보다도 쉽고 재미있게 천재 재상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더욱이 2월에 KBS에서 정도전에 이어서 바로 이 징비록을 통해 대하사극이 방영된다고 한다. 모름지기 배움에 있어서는 아는 만큼 보이고, 느낀다는 말도 있듯이 사극이 방영되기 전에 본 책을 통해서 류성룡에 대해서 공부하고 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다. 이 책을 읽고서 본인이 어떤 삶을 살건지에 대한 결정은 결국 본인에게 달렸다는 것을 필자의 마지막 말로 하고서 이만 본 책의 서평을 마칠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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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최대의 국난이었던 임진왜란.... 우리는어릴때부터 임진왜란하면 이순신 장군을 떠오른다.. 교과서이며 드라마이며 임진왜란하면 이순신 그리고 거북선. 그리고23전 23승.세계전쟁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라는 것만 알 뿐 그 안에 들어있는 영웅 이순신과 거북선은 알아도 그 전쟁 안에서 류성룡의 '징비록'은 잘 알지 못한다.. 류성룡의 징비록(懲毖錄) 징비란 시경(詩經)의 소비편(小毖篇)에서 “豫其懲而毖後患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며. 비슷한 고통과 아픔을 다시 겪지 말아야한다는 절실함과 자기성찰에서 쓰여진 류성룡 선생의 마음이 담겨진 책이리라. 임진왜란.... 왜군과 우리와의 관계...그리고 우리를 도와 주는 척 하면서 우리를 삼키려고 하는 명나라. 임진왜란을 바라보는 그 시선과 역사적 의미는 조.명.일 세 나라는 각각 달라진다. 선조는 나라는 내팽개치고 도망다니기 바쁘고.. 그 밑에 있는 신하들은 당쟁에 자기 잇속 챙기기에 바쁜 와중에. 류성룡 선생은 묵묵히 자기 일을해 나가면서....면천법, 작미법, 전매사업법을 시행하여서 인진왜란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간다.... 그리고 우리나라를 사이에 두고 다잡은 물고기를 놓아주려는 명나라.. 그러면서 명나라는 왜군과 협상을 하여 우리나라를 분할하여 삼키려는 것을 류성룡선생은 경계하는 한편. 후일 임진왜란과 같은 국난이 생길 것을 우려해 여러 방책을 세웠지만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하고 병자호란 정묘재란이라는 양대전란을또다시 겪게된다. 씁쓸한 건 500년전이나 지금이나 기득권은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해 모함과 비리를 일삼고 왕의 눈을 흐리게 만들면서.. 정작 앞에서 묵묵하게일하는 이를 가로 막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는건 우리에게씁쓸함을 안겨준다 류성룡의 징비는 중학생도 읽기 쉽도록 쉽게되어있으며임진왜란 이외에 그당시의 사회상을 함께 읽을수있다. 이번 KBS 새 사극드라마로 징비가 선택 되면서 류성룡 선생의 재조명이 이루어졌으면 하고기회가 된다면 원본 징비록도 읽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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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에 관한 책은 전에 한 권 읽어 보았다. 징비록에 적혀 있는 내용을 거의 그래도 쓰고 다른 책의 내용을 좀 더 보충해놓은 책이었다. 이 책도 징비록에 관한 책이지만, 좀 다른 구성으로 되어 있다. 일단 이 책은 읽기가 쉽다. 우리의 역사이지만, 어찌 보면 소설같은 느낌으로 쓰여져 있어서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물론 내용면에 있어서 쉽게 넘어갈 책은 아니지만 일단 읽는다는 것 자체에 부담은 없다. 그리고 인간 류성룡에 관해서 더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류성룡의 어린 시절 이야기도 나오고 특히 류성룡의 인간관계에 대한 내용들이 꽤 나온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역시 사람은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떠올랐다. '류성룡의 인맥'이라는 부분을 보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다들 역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모두 근면하고 청렴결백하며 나라를 사랑했던 자랑스러운 인물들이다. 학봉 김성일, 오성 이항복, 이원익, 한음 이덕형, 이순신, 이귀...... 책에도 쓰여있다시피 유유상종으로 이들의 우정은 목숨을 넘어서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동안 깊이 알지 못했던 류성룡에 대해서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정말 감탄하게 만드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왜란의 침략을 미리 예견한 류성룡이 전쟁을 준비하기를 간곡히 청했지만, 자신의 자리 지키기에 급했던 관리들이나 백성들이 따라주지 않아서 소용이 없게 되었다는 부분을 읽을 때는 정말 안타까웠다. 이때라도 그의 말을 따라서 조금이라도 준비를 했더라면 그렇게도 쉽게 우리의 온 국토가 왜의 발 아래 짓밟히지는 않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정말 치밀하게 모든 것을 준비한 류성룡이 있어서 그나마 우리 국토가 유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반대파의 탄핵으로 조정에서 물러나게 되었을 때도 류성룡은 스스로 낙향을 택한다. 이순신의 죽음과 류성룡의 파직당한 날이 같으니 이 얼마나 서글픈 날인지 모르겠다. 류성룡은 전쟁 전에도, 전쟁 중에도, 또한 전쟁 후에도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또한 지난날을 경계하여 미래의 후환을 대비하라는 의미로 7년 전쟁을 책으로 남기는 일까지 아낌없이 자신을 내놓았다. 이렇게 나라를 위하는 사람이 몇 사람만 있다면 이 나라의 미래가 훨씬 밝아질텐데 아쉬움에 입이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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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의 징비] 참회와 반성의 임진왜란 기록…….
임진왜란 때 이미 대동아공영을 꽤했던 왜적은 욱일승천기까지 준비하고 철저하게 준비하고 저지른 전쟁이었다. 하지만 조선은 왜적의 침입을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고 방관했으며 당쟁에 휩쓸렸던 때였다. 임진왜란이 허술한 군사체제, 국제 정세의 무지가 낳은 결과였기에 더욱 아쉬운 전쟁이었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없었더라면, 의병과 의병장, 민초들의 저항이 없었더라면, 만약 류승룡이 전시재상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망으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징비록』은 당시 전시 재상이었던 류승룡이 남긴 7년 전쟁의 원인과 경과, 그 결과와 참회의 기록이다.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는 볼 수 없는 국제적인 정세와 조정의 움직임, 전국 백성들의 형편, 전쟁을 지휘했던 자신의 느낌까지 솔직하게 담겨 있기에 임진왜란에 대한 진정한 전쟁기록인 셈이다.
전쟁 전의 일본을 보자. 일찍이 일본은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 통일 전쟁을 펼치면서 일본의 경제와 상권을 장악했다.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 총을 보급하게 되면서 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하고 있었고 일본군의 군사력도 신식으로 강성해지고 있었다. 노부나가의 뒤를 이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의 다이묘들의 불만을 분출시키고자 조선을 넘어 명을 정벌하는 대동아 공영을 야심차게 준비하게 된다, 조선 통신사를 통한 꾸준한 조선 탐색전과 철저한 전쟁 준비를 마친 히데요시는 일본사신으로 온 황윤길과 김성일에게 명나라를 침입한다는 ‘입대명’의 답신을 주기에 이른다.
한편 전쟁 전의 조선을 보자. 임진왜란이 있기 전 류성룡은 조선의 6대 임금을 모신 정승이었던 신숙주와 성종의 대화록에서 큰 예지력을 발휘한다. 일본과 사이가 나빠지지 말라는 신숙주의 권고를 보며 왜를 예의주시하게 된다. 그리고 이순신을 전라도 좌수사로, 권율을 의주 목사로 천거했다. 왜적의 침공의도를 알고부터는 명나라에 알리고 전란에 대피하자며 선조에게 청원하기도 한다. 또한 조선의 방어체제를 제승방략에서 진관제로 환원하자는 건의도 하고……. 조선 최고의 명장인 신립과 마주한 류성룡은 왜놈들의 전쟁 준비에 대한 소문을 대해 만일 변란이 생긴다면 어떻게 대처할 지를 묻기도 한다. 하지만 신립은 왜놈이 조총으로 얼마나 맞힐 수 있겠냐며 왜놈을 무시한다.
더구나 조정을 혼란케한 것은 일본사신으로 갔던 황윤길과 김성일의 보고는 전혀 상반된 보고였다. 왜국이 전쟁 준비를 마쳐놓은 듯하다는 서인인 황윤길의 보고에 동인이었던 김성일은 그런 낌새가 없으니 괜히 두려워하지 말라는 보고를 올리게 된 것이다. 당파적 논쟁이 극에 달했던 시기이기에, 일본의 상황을 알면서도 황윤길의 보고와 전적으로 반대되는 보고를 하는 김성일의 보고에 혼란스런 조정은 무사안일을 택하게 된다. 명나라를 침입하겠으니 조선을 길을 내어 달라는 왜에 대한 보고를 제대로 했더라면, 이런 혼란을 막을 수는 있었을 텐데...... 두 사람의 보고가 상반된 이유가 당쟁 때문이라니. 반대를 위한 반대였다니. 기가 막히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전쟁이 터지자 조선의 초기 대응은 부실했고 정보도 엉망이었다. 새벽을 틈타 침입한 왜적 앞에 부산은 금방 쑥대밭이 된 것이다. 군사 20만에 4~5만 척의 왜선에 대한 정보를 군사 1만, 적선 400척으로 보고되기도 한다. 쑥대밭이 된 부산의 초전 상황이 조정에 제대로 보고되지도 않았다. 더구나 초기의 전투 상황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은 가짜 병부와 훈련되지 않은 병사들이었고, 오합지졸에 엉성한 지휘체제여서 싸움조차 못하고 도망가기 일 수였다고 한다. 급기야 선조를 탓하는 양반들의 상소가 이어지고, 백성들의 원망과 비난의 목소리는 거세지고, 부산, 충주, 한양까지 삽시간에 뚫리고, 왜가 한양에 당도하기 전에 도성은 성난 백성들에 의해 불에 탈 정도였을 정도다.
의주에 가서 기다리다가 명나라로 가자는 이항복, 북도로 가자는 윤두수의 건의가 있었지만, 국토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말라는 류승룡의 만류로 겨우 위기를 모면하게 된다. 당시에 선조가 명나라에 들어가서 조선을 비웠다면 조선의 운명이 온전했을까. 임란 후 조선이 명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일은 쉬운 죽 먹기였을 것이다. 어쨌든 권위와 체통에 연연하던 선조는 자신의 안위만 생각하는 속물이 되어 버렸고, 최적의 요새지라는 조령을 포기하고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친 신립의 패배로 한양은 순식간에 뚫렸고, 백성들의 궁에 대한 방화로 평양 진격은 더욱 빨라졌으니, 왜군이 조선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을까.
그나마 광해군의 활약과 결사항쟁으로 싸우는 병사들, 평양까지 순식간에 진격한 왜의 보급을 끊은 이순신 장군의 활약으로 진군을 멈추게 된 왜군, 조선을 넘보려던 여진족 누르하치의 구원병 제의를 거절한 류승룡은 명의 이여송과 함께 평양성을 탈환하게 되고, 전쟁 중 이순신의 하옥에 대한 부당함을 상소 등 긴박하게 흐르는 전쟁의 기록들이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역사란 지나간 흔적을 되새기도 오늘의 삶에 교훈을 얻기 위한 기록일 것이다. 그렇다면 임진왜란이라는 난리를 치르면서 조선의 역사가들은 어떤 기록을 남겼을까.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서애 류성룡의 『징비록』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록 유산을 중시하던 조선에서 그 많은 학자들은 왜 임진왜란에 대한 글을 남기지 않았을까. 막을 수도 있었던 난리, 일찍 끝낼 수도 있었던 전쟁이기에 가슴에 사무치는 회한이나 반성의 기록이 분명 필요했을 텐데 말이다. 혹시 가보로라도 남겨진 개인 기록은 없을까. 보다 많은 징비의 기록들이 전해졌다면 일제 강점기를 그리 허망하게 맞이하진 않았을 텐데……. 임진왜란이 일제강점기의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는 생각이 들기에......
《징비록》에는 임진왜란 이전과 이후의 참상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1562년(선조25)에서 1598년까지의 그 당시의 상황이 세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제132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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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일본이 15만 이라는 대군을 이끌고 부산 앞바다에 나타났다. 지금으로 치면 선전포고도 없이 남의 나라를 침략한 것인데 UN과 같은 협력이 존재한 것도 아니고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니 대비를 못한 나라의 잘못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조선왕조 건국 후 200년간 지속된 평화속에서 너무 방심한 탓이겠지. 그래도 당시에 인구가 얼마인데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을까? 그보다 훨씬 오래전 카르타고의 한니발 장군은 그 보다 훨씬 적은 병력으로 로마를 유린한 것을 보면 방비가 있었더라도 당할 수 밖에 없었겠지만 문제는 나라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나의 안위만 생각했던 지도층이 문제이다. 세계사를 공부하다보면 전쟁이 빠지지 않는다. 물론 인간의 욕심 때문에 어쩔수 없다고는 하지만 백성들을 버려둔채 나 혼자 살겠다라고 도망한 임금은 드물 것이다. 그리고 왜군을 맞아 싸우는데 제대로 된 전략과 전술을 구현하지 못해 완전히 무너져버린 장군들. 용맹하게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신립 장군으로 떠 받들어지지만 실상은 직무유기인지도 모른다. 험준한 지형을 버려두고 평지에서 배수진을 쳤다. 그리고 자신의 주 무기인 기마병을 위주로 진흙탕 속에서 전투를 벌인다. 영화 300을 보면 뻥이 많이 가미되었지만 300명이서 10만인지 100만 대군을 맞아 싸운다. 물론 당시에 쓸만한 병력들은 죄다 도망을 쳤다고 하는데 한나라의 방어를 책임지는 장군이라면 수하에 쓸만한 장수들이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 하지 않는가? 게다가 부산성과 동래성 전투도를 보면 부녀자들도 목숨을 아끼지 않고 지붕에 올라가 기왓장을 집어 던지며 끝까지 싸운다. 그런 기개가 있는데 험준한 지형을 막고 적에게 최대한의 타격을 입혔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일본군을 상대로 제대로 전투다운 전투도 해보지 못하고 투구를 집어 던지고 도망쳤다는 이일 장군이지만 방어에 성공하여 승리의 기반을 구축하기도 한다. 사실 우리가 알지못하는 역사속 진실들이 많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특정 임금이나 장수를 두둔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딜가나 그리고 어느 시대에나 무능한 지도자는 나오기 마련인가보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구세주는 있는 법.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더라면 역사는 그리고 세계 지도는 많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역사에 있어 만약이란 없다. 단지 해석과 평가만 있을 뿐이다.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많은 것이 변하고 뭔가 활력 넘치는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폐쇄적이고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들만이 기록될 뿐이다. 징비록을 읽으면서 우리가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 하지만 사실적으로 기록할 수는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꼈다.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울고 웃게 되지만 지구 전체의 역사 내지는 우주를 볼때면 한낱 티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전쟁 덕분에(?) 과학도 발전하고 세계 대공황을 해결한것이 세계 2차 대전이고 미국을 강대국으로 만든 것도 역시 전쟁이다. 그렇다 전쟁이란 피할 수 없다. 전쟁에 대한 대비니 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른다. 막상 닥친 전쟁 중에 어떻게 하면 빨리 그리고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누구처럼 내 안위만을 생각하고 백성들을 내 팽개치는 그런 직무유기는 범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징비록이란 기록을 남기면서 유성룡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히틀러의 말처럼 두려운 것은 오직 역사 뿐이라는데. 후세 사람들이 나를 평가할때 나라와 백성을 지키지 못한 지도자로 낙인 찍힐까 두려워하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생생한 기록으로 남겨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을까?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나도 힘든일을 겪을때마다 혹은 새로운 경험을 할때마다 기록을 남긴다. 멋 훗날 이 시대를 평가하는 후손들이 참고할 수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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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계할 징, 삼가할 비, 기록할 록 시경 에 나오는 말로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라는 뜻에서 서애 류성룡이 지은 징비록이라는 명저 를 읽게 되었다 1592년 동아시아 를 흔든 임진왜란 이라는 전쟁속에서 영의정 및 도체찰사 등 여러 관직은 물론 군수물자 보급 및 군량조달 그리고 면천법 실행 및 전쟁 이전에는 이순신 장군 과 권율 장군을 추천하여 전쟁에 대비한 서애 류성룡이 지은 이책은 제목 그대로 임진왜란 때의 교훈을 토대로 반성하고 후환을 경계하자는 뜻에서 지은 책이다 이책은 책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는데 그 이유는 역사속에서 전쟁이후에 전쟁상황에 대해 회고하면서 반성하자는 뜻의 취지로 그 시대를 겪은 사람들이 책을 낸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이러한 점이 징 비 록 을 읽고 접하며 나에게는 여러가지 의미로 다가왔다 어쩌면 임진왜란 이라는 전쟁에서 초반 무기력하게 무너진 조선이라는 나라 그리고 선조의 몽진길에 평소 성리학을 운운하며 기득권을 유지했던 그 세력들의 도주... 그리고 그런 참화를 막지도 철저히 대비하지도 못했던 조정.. 그리고 그 속에 있던 류성룡 본인도 책임이 없지는 않았을것이고 지우고 싶은 기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책을 냈다는것은 역시 그는 위인이었다 라고 느꼇었다 서애 류성룡 의 뜻대로 결국은 훗날 징계하고 후환을 경계하지 못해 " 정묘호란 " 과 " 병자호란 " 이라는 참화를 겪게 되는 역사의 슬픈일이 되었지만 말이다.... 이 징비록 이라는 책속에는 임란 이전의 상황들 그리고 임란 당시의 상황들 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데 주로 류성룡 개인의 시각으로 본것이기 때문에 몇몇 사람들은 " 징비록 속에 류성룡 본인의 책임회피의 느낌이 있다 " 와 같은 서평을 이책을 접하기 전에 여러번 접해보았다 하지만 어느책이건 개인의 생각이 들어있는건 당연한것이라고 생각하기때문에 이책을 순수히 임진왜란을 직접 겪고 느낀 현장당사자이자 당시에 도체찰사로 군사 와 영의정으로 국정운영 그리고 군수물자 및 무역 과같은 경제 분야까지 두루 관여하고 성공적으로 이끈 류성룡이라는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서 읽었다 그리고 임진왜란 속 이순신 및 의병들의 활약도 있었지만 조정 에서는 류성룡 과 같은 위인도 있었다라는 사실도 느낄수있었고 말이다 당시로써는 파격적인..면천법 즉 노비도 공을 세우면 신분을 벗어나게 해준다는 생각과 그리고 국가가 점유했던 소금전매를 해제한 그의 생각의 전환에 놀랐고 말이다 물론 그런 전시상황에서도 기득권세력들은 그의 이러한 생각에 반대했다는 사실에 또 여러가지의미로 놀랐지만 말이다.....쩝 개인적으로 임진왜란사를 정말 좋아하고 특히 전쟁사를 좋아했는데 이 징비록이라는 책을 통해서 문신의 시선으로 보는 임진왜란에 대해 느낄수 있었고 교과서에는 간략하게 표현되있어 아쉬운 류성룡이라는 인물에 대해 입체적으로 접근할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좋았다 현시대에 있었으면 하는 관료상을 보는 느낌도 있었고 그리고 과거의 잘못을 징계한다라는 생각을 가진 류성룡과 같은 정치인 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도 들게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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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미국, 일본이라는 세계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어 있는 대한민국! 침략군에 맞설 힘이 없었던 나라, 자신의 땅을 전쟁마당으로 내줄 수밖에 없었던 나라, 왜와 명의 싸움에 제 나라 백성이 죽고, 제 나라 가축과 곡식이 강탈당하는데도, 도망가기 바쁜 왕과 신하들, 싸울 엄두를 내지 못한 장수와 무기조차 없는 병졸들, 조선은 그런 나라였다. 율곡이 상소문에서 송곳처럼 지적한 대로 조선은 ‘오랫동안 고치지 않고 방치해둔 만간대하萬間大廈’로 기둥을 바꾸면 서까래가 내려앉고, 지붕을 고치면 벽이 무너지는 그런 형국이었다. 그렇게 나라라고 말할 수 없는 나라였던 조선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간 ‘조선분할’을 노리는 침략자 왜와 조선을 ‘요동방어 울타리’로 삼으려는 명으로부터 처절하게 유린당해야 했다. 뼈아프고 부끄러운 역사이지만 이것은 가감 없는 임진왜란의 진실이다. 이 책은 안동 출신으로 LG그룹 홍보팀장, 국제신문 기자,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사무국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양대 국제문화대학 겸임교수와 소설가로 활약하고 있는 박기현이 조선시대 문신 서애 류성룡이 쓴 수기로 임진왜란을 전후로 펼쳐지는 국제 정세부터 전쟁의 발발과 진행 상황, 정유재란, 전쟁이 끝난 이후의 상황까지를 종합적으로 다룬 일종의 보고서다. 7년 임진왜란의 전시 수장 류성룡이 남긴 반성과 교훈을 담았다. 즉 임진왜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조명한 책으로 역사적 사실과 함께 류성룡의 활약상과 초유의 국난을 온몸으로 치러야 했던 치열한 세 가지 전쟁을 여실히 보여준다. 첫 번째 전쟁은 건국 후 200년 동안 전쟁이 없어 해이해진 조정과 무너진 군을 추스르며 한편으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순신과 권율을 천거하여 16세기 당시 세계 최강 전력을 자랑하던 침략자 왜군과의 전쟁을 진두지휘한 것이다. 두 번째 전쟁은 국정 책임자로서 지원군으로 참전한 명나라 대군에 군량을 조달하고, 그들의 온갖 횡포를 감내해야 했으며 조선을 전쟁의 울타리로 삼으려는 저의를 간파하고 ‘조선 분할 획책’을 저지한 것이다. 세 번째 전쟁은 전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사대부와 당쟁을 일삼으며 백성을 돌보지 않던 뿌리까지 썩은 조정과의 전쟁을 말한다. 류성룡은 선조가 명나라로 도망치려 하자 신하들 중 유일하게 “한 발자국이라도 벗어나면 이 땅은 우리 땅이 아닙니다”라며 선조를 막아선다. 자기 안위만 생각하는 선조와 달리 류성룡은 민심이반까지 우려했던 것이다. 또 류성룡은 명나라 군대가 조선을 도우러 오자 군량도 빈틈없이 조달한다. 그러면서 명나라의 조선 분할 획책을 저지하는 노련함도 보인다. 다시 평가해보자. 류성룡은 전쟁`행정`외교 등 1인 3역을 맡아 임진왜란을 극복한 인물이다. 류성룡은 이 짧은 기간에 전쟁 수습에 대한 다양한 시무책을 임금에게 올렸고, 왜군과 싸워야 할 명군을 먹일 군량을 조달하도록 하는 한편, 조선 내부의 반란과 난민들의 약탈을 막으려고 갖은 애를 썼다. 장수는 전쟁을 하는 데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고 관리는 행정을 처리하는 데 신경을 쓰기 마련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류성룡과 같은 인물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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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화제의 인물이라면 누가 뭐라고 해도 당연 조선을 설계한 정도전과 한국 영화 사상 최고의 흥행기록으로 앞으로 몇년간 그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기록을 세운 '명량'의 주인공인 이순신일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 재미도 있었지만 그들의 인기는 혼란한 정국의 상황과 맞아 떨어졌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작년과 별반 다를봐 없는 2015년의 한국.이런 상황에서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작년의 연장선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다.정도전, 이순신과 마찬가지로 조선시대의 인물로 임진왜란하면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류성룡이다. 단편적으로만 알았던 류성룡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아야 겠다는 생각에 만나게 된 책 '시루'출판사에서 출간된 [류성룡의 징비]를 만났다.
여전히 리더십의 부재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 류성룡과 같은 인물의 출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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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그렇다면,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면 안 되는 걸까? 아니다.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칠 것을 말하는 것이지, 소 잃은 후에 외양간을 고쳐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을 잘 간수해놓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외양간을 잘 간수하지 못해, 소를 잃었다면 그 이후에는 마땅히 외양간을 고쳐놓아야 한다. 그래야 다음에 또 다시 소를 잃는 일을 반복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류성룡은 바로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강조했던 뛰어난 정치가였다. 그는 수많은 백성이라는 소를 잃기 전에 조선이라는 외양간을 고치기 위해 애를 썼다. 하지만, 당시 조정은 아무도 그의 외침에 반응하지 않았다. 도리어 변화를 주려는 그를 달갑지 않게 여기던 자들이 더 많았다. 그 일로 인해 결국 조선은 소를 잃고 만다. 왜적의 침입 앞에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우리 역사의 가장 부끄럽고, 뼈아픈 역사인 임진왜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도처에 시체가 썩어가며, 수많은 백성들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겨버린 사건이다. 물론 이런 뼈아픈 혼돈의 역사는 그에 상응하는 영웅을 우리에게 선사하기도 하였다. 그 대표적 영웅이 바로 이순신장군과 권율장군이다. 그런데, 바로 이 두 영웅이 그 자리에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세워준 사람이 바로 류성룡이다. 류성룡 그는 어쩌면 이 시대가 가장 갈급할 법한 사람, 인사에 성공한 정치가다.
바로 이런 류성룡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책이 『류성룡의 징비』란 책이다. 이 책은 소설은 아니며, 그렇다고 징비록을 그대로 다루고 있는 책 역시 아니다. 독자들로 하여금 류성룡에 대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잘 서술한 역사서라고 말할 수 있겠다. 류성룡이라는 큰 산이 어떤 인물인지를 잘 알 수 있는 좋은 책이다.
무엇보다 나라의 중흥을 위해 애썼던 류성룡, 그는 나라를 중흥시키기 위한 선결 조건은 무엇보다 백성들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랬기에 수많은 가진 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많은 개혁을 감행했던 개혁가였다. 대표적인 것으로 그는 백성들의 삶을 살려내기 위해 ‘작미법’을 시행하게 되는데, 이는 후에 대동법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니, 대동법의 원조는 류성룡이라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는 틀을 존중하되 틀에 얽매이지 않던 사람이었다. 학문의 깊이가 있으면서도, 실리를 가볍게 여기지 않던 정치가였다. 원칙을 존중하면서도, 융통성과 합리성을 가진 자였으며, 학자였으면서도 군사적 식견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당시 백성보다는 자신의 안위와 체면을 먼저 생각했던 왕이었던 선조를 생각할 때, 류성룡이 없었다면 아마도 조선이란 나라의 역사를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역사에서 만약이란 가정은 무의미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균형 잡힌 정치가이며, 청렴하여 은퇴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마저 변변치 않았던 그런 깨끗한 정치인. 이러한 두루두루 갖추고 균형잡힌 정치인이 이 시대에도 다시 세워지길 소망해 본다.
치욕의 역사는 임진왜란만으로 끝내길 원하며, 류성룡은 징비록을 기록하지만, 여전히 소를 잃어야만 했던 역사, 망가진 외양간을 보면서도 외양간을 고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우리 역사를 들여다볼 때, 안타까움이 인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떤가? 과연 우리는 반복되는 위기 앞에 무엇을 고치고 있을까? 여전히 외양간을 고치지 않아 소를 잃었노라 한탄만 하는 모습은 아닌지. 그러면서도 끝내 외양간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는 어리석은 모습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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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의 역사는 잊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부끄럽더라도 기록하는것이 좋을까? 아마 후자를 고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역사는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원치 않는것이라도 기록해놓아야만 후대 사람이 그것을 반복하지 않을것이기 때문에...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징비(懲毖)'의 의미는 '전에 있던 잘못과 비리를 경계하여 삼간다는 의미'로 시경의 소비편(小毖篇)의 '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予其懲而毖後患)'에서 왔다고 한다. 이 말은 곧 서애 류성룡이 후손에게 남기는 징계와 성찰의 의미를 담고있다.
우리는 임진왜란을 기억할때 크게 두 인물을 기억한다. 아마 첫번째는 이순신이고, 두번째는 류성룡일것이다.
이순신에 대해서서는 얼마전 개봉한 '명량'을 본 사람도 많을 것이고 난중일기가 세계 기록유산에 올라간 것도 알고 있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에 비해 아직 류성룡은 그만큼 알려지지는 않았는데 곧 KBS1 대하드라마 '징비록'도 방영 예정이라고 하니 이 책을 읽은 나로서는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책 내용으로 돌아가보면 이 책은 소설책이 아니다. 총 14장으로 되어있고 징비록에서 중요한 사건이나 중요한 날짜를 골라 그 내용을 적고 그에 대한 현재의 평가나 의미를 담은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다큐멘터리나 역사 스페셜을 보는것 같은 느낌도 있어서 좋았다.
역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하지만 현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 역사를 돌아보고 배움을 갖는 중요한 시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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