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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이십 년 전에 개봉되었던, 말론 브란도 주연의 '닥터 모로의 DNA1)'가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비윤리적인 설정, 소재 때문인지, 아니면 일본 독서계에서 관심을 덜 주어서였는지 모르나, H G 웰즈의 소설 중에서는 국내 독자들에게 덜 알려진 편이다. 지금 한국어 번역본을 찾아 보면, 이 작품이 이미 저작권 보호 시한이 만료되었음에도 불구,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단 1종뿐이다.
소재가 극악무도한 성격임은 틀림없으나, 주제는 이보다 더 윤리적, 계도적일 수 없을 만큼이다. 우선 닥터 모로는 잔인하고 비윤리적인 냉혈한이지만, 설정상 여튼 사람을 소재로 생체 실험을 하기보다는, 동물들을 대상으로 그 야수성을 제거하는 연구를 하는 학자다. 제 나름으로는 동물들을 두고, 존재론상 한 단계 높은 의식체로 끌어올려 주는 자선을 베푸는 셈이고, 이게 약물 주사 등의 수의학적(아니, 의학적) 트리트먼트만으로 달성되는 게 아니라 동물들 자신의 각성과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하는 작업이므로, 가혹한 규율과 제재를 통해 '인간되기의 머나먼 길'을 강제로 걷게 만든다.
이 작품이 쓰여진 시점은 19세기말이다. 아직 다윈의 진화론이 몰고온 충격이 유럽에서 채 가시지 않았을 무렵이기도 하다. 인간이 그 독립된 種으로서의 어엿한 모습을 갖출 무렵 당초부터 神性의 일말을 그 영혼에 지니고 있었다기보다는, 저런 半 짐승에 가까운 단계, 그것을 탈피하고, 생존에의 압박이라는 계기를 창조주의 채찍질 비슷하게 받아들여 오늘날의 그것처럼 윤리와 체면, 절제와 성찰이 가능한 만물의 영장으로 거듭났을 수 있었다는 일종의 우화적 암시인 셈이다.
닥터 모로가 아무리 주의를 주고 강제력을 행사해도, 이 동물들은 틈만 나면 야수의 본능으로 돌아가려 들지만, '아버지(즉 '神')' 모로가 매 순간 밀착하여 이들을 건사할 수 없으므로 '세이어 오브 더 로'라는 일종의 식민지 총독, 횩은 司祭 직급자를 따로 두어, 정글에 거주하는 야만 상태의 군상을 다스린다, 이는 먼 군장 체제 시절, 아니 가깝게는 암흑의 중세에까지도, 체제 그 기초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종교에 의존해야 했던 인류 문명 발달 단계를 風喩한다고도 볼 수 있고, 오지의 야만인들을 착취하며 그들 위에서 신처럼 군림하는 백인 중심 체제가 형성한 당대의 참상을 고발하는 설정으로도 볼 수 있다.
주인공의 시선, 태도는 물론 이 괴물들을 혐오하고 두려워하는 쪽이지만, 그렇다고 자연상태로 회귀하려는 이들의 저주 받은 운명에 대해 닥터 모로처럼 일방적, 편집적 신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내려준 계열을 지키지 않는 괴물에 대해 무자비한 교정을 행하는 닥터 모로에 대해 분개하기도 하고, 다 저 좋자고 하는 일을 그저 고역으로만 받아들인다며 괴물들을 멸시하지도 않은 채, 그들이 겪는 그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대해 깊은 연민을 표하기도 한다. 결국 그는 미필적 고의에 의해, 지옥도의 괴물들을 인위적 순치, 허울 죻은 구원에의 멍에로부터 해방시켜 준 것이나 마찬가지인 행적을 남기고 온 셈이다. 생명체란 몇 대, 몇 십 대에 걸친 자연스러운 진화를 통해 다른 존재로 거듭날 뿐, 당대에는 제 천한 본능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는 점을 절감하면서.
결국 에드워드 프렌딕은 천행에 힘입어 런던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여기서도, 소위 문명인이라는 자들이 얕은 잇속과 명예욕, 야만적 격정, 유치한 충동 때문에 벌이는 갖가지 아귀다툼과 무질서를 보며, 이것이 저 닥터 모로의 섬에서 반인반수의 추물들이 보이던 모습과 과연 무엇이 다를까 하는 충격, 각성을 하고선 시골에 은둔해 조용히 연구에 몰두한다는 마무리인데... 이는 마치 조나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에서 주인공이 휴이넘 왕국에서 귀환한 후, 동족 영국인들을 야후와 같은 추악한 존재로 여겨('그 냄새를 참을 수 없어') 사회와의 단절을 선언하게 했던 그 뒤처리와도 몹시 닮아 있다.
이 작품이, 직접적 영화화의 사례를 제외하고도(최소 세 차례 있었다), 이후 문예에 남긴 영향이 얼마나 클까? 이 작품이 세상에 발표되던 무렵 근대화의 길을 막 열심히 걷고 있던 (그리고 호구 청나라를 바르고 지리멸렬 반도의 병합 작업에 맹렬히 몰두하던) 일본에서 갓 태어난 에도가와 란포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그리고 한국에서 이상한 인기를 모은) '외딴섬 악마'를 구상하는 데 과연 무관했겠나 이 말이다. 절해고도에 비행기 사고로 격리되어, 여태 배운 교양과 도덕은 모조리 까먹고 오로지 생존 본능과 광기에만 휘둘리는 야수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다룬, 윌리엄 골딩의 '파리 대왕'은 또 어떻고 말이다(마침 이 작품에도 닥터 모로가 루시퍼, 즉 '아침의 아들'을 언급하는 장면이 있다. 반 세기 뒤 골딩은 베엘제불 인용으로 화답하고 말이다). 이 작품이 발표된지 근 120년이 되어가는데, 이때는 아직 알프레드 노벨이 자신의 이름을 딴 상을 제정하기도 전이다. 20년 전에 나온(따라서 해당 작품 출판 100주년 기념이 되었을) 그 영화에는, 닥터 모로가 1959년 노벨 생리학상을 수상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묘한 위화감, 아나크로니즘, 격세지감이 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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