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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대운하 ; 인권, 나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수나라의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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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대운하 ; 인권, 나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수나라의 정책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제는 훌쩍 뛰어 넘어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인공지능, 빅 데이터(Big Data) 기술로 이제 인류는 새로운 시대에 도달하려 한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들이 셀 수 없을 만큼 쏟아지고, 이를 융합한 정보 역시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생겨나고 있다. 무-예측의 혼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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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대운하

; 인권, 나눔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수나라의 정책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제는 훌쩍 뛰어 넘어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인공지능, 빅 데이터(Big Data) 기술로 이제 인류는 새로운 시대에 도달하려 한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들이 셀 수 없을 만큼 쏟아지고, 이를 융합한 정보 역시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생겨나고 있다. 무-예측의 혼란기 속에 우리는 나와 다른 이들의 생각, 행동들을 더욱 받아들이기 힘들어진 상태에 있다. 그래서인지 이러한 무질서한 혼란 상태를 개개인의 도덕성을 함양하는 방법보다는 외적인 강제력을 동원하는 식으로 그러한 불균형을 해소시키려는 국가, 집단, 사회들 간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점점 더 많은 제도들, 법규들이 우리들의 이러한 도덕적인 능력들을 저해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에서 구속받지 않으려면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은 ‘역사’를 배우는 데에 있다고 생각을 한다. 이 땅의 지구의 역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다간, 피와 땀과 눈물, 엄청난 고난과 투쟁의 연속, 다양한 사람들의 각각의 사유(思惟)와 사상, 감정들이 공존해 있던 시간과 공간의 집합이다. 우리는 그러한 역사를 배우고 탐구함으로써 우리가 오늘날 지녀야 할 태도 및 자세를 배우게 될 것이다. 이제는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데에 머무르면 안 될 것이다. 과거를 통해 어떤 정보를 배우는 데 있어 자신만의 사유와 감정을 가지고 가치 있는 내용들을 만들어 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본 보고서가 단순히 수행평가를 위해서 창작된 결과물일지라도 수나라의 정책을 통해 오늘날 국가와 국민, 현세대와 미래세대 간의 관계를 고찰하는데 조금의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의미 있는 행위라고 생각을 한다.」

Ⅰ. 서론

① 주제 선정 이유

오늘날 한 국가의 정책은 국민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을 정도로 현대의 국가는 복지 국가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즉, 국가의 정책이 국민들 개개인의 삶을 편리하게 할 수도, 힘들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긋난 정책들, 공권력의 옳지 못한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피해를 보는 이들이 많았다. 본 연구자는 이를 생각하며 최근에 읽은 ‘내 곁의 세계사’ 라는 책에서 본 ‘세계 여성의 날’을 떠올렸다. 우리가 그렇게 많이 알고 있지는 않은 이날은 3월 8일은 1911년 뉴욕 맨해튼의 트라이앵글 블라우스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대대적인 인명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 사고로 인해 1912년 미국 로렌스 시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섰고, 그때 그들이 외친 “우리는 빵을 원한다. 또한 장미도 원한다,” 라고 외친 구호는 노동자들의 생존뿐 아니라 존엄성도 회복되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엄연히 공권력에 의한 인권 침해, 인간 존엄성 침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몇 백 년 전에는 백성들이 국가에 예속되어 어떻게 보면 국가의 소유물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국민을 위하는 일보다는 왕실과 국가를 위하는 일이 우선시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연구자 본인은 먼 과거에서 일어난 일들 중 오늘날의 시선에서 백성들의 인권을 소홀히 한, 침해한, 그들을 괴롭힌 국가적인 정책을 조사하여 이를 반성적 사고에서 비판하고픈 마음이 있었다. 그러한 생각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역사적 사건이 바로 수나라의 대운하 건설 작업이었던 것이다.

 본 연구를 통해 국가가 공권력을 행사함에 있어 유념해야 할, 최소한의 윤리적인, 생존권적인 기본권을 보장할 수 있기를 바라며, 또한 현대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대운하 건설 작업을 토대로 전문가들이 정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귀감이 되기를 바라며 본 주제를 선정하였다.

② 자료 수집 과정

본 연구는 수나라의 정책들 중 대운하 건설 작업과 그 이후의 개통식 과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는 수나라를 떠올릴 때 많이들 떠올릴 고구려 등의 대외 원정에 관한 자료에는 중점을 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관련 도서를 참고하고, 블로그 및 웹사이트를 살펴보며 대운하에 건설작업에 관한 전반적인 자료조사를 하였음을 알린다.

③ 연구 방법

;보고서를 읽는 데 있어 도움이 될 만 한 참고적인 사항

이 보고서는 국민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한 개인의 일생에 있어 기본권(넓게는 인권)보장과 관련이 밀접한 국가의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사고를 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이에 대한 사고는 본 연구자가 최근에 읽은 도서에서 본 1911년 미국 트라이앵글 블라우스 공장 화재를 떠올리게 했고, 더 나아가 왕실과 국가가 우선이었던 전근대 시대에는 과연 국가의 정책으로 인해 국민의 인권이 침해 받은 역사적 사건이 무엇이 있는지에 관한 물음에 대한 보고서라고 생각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연구자가 이렇게 평화와 인권, 나눔, 타자의 측면에서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소설가가 TV프로그램에서 말했듯이, 이야기의 힘이 크다고 생각을 한다. 이야기,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공감하게 만들고, 감동하게 만들고, 심지어는 개미 같은 곤충에게도 관심을 갖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역사가 축적되면서 더욱 더 발전을 한 것이니, 전근대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보다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시선으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더욱 더 심도 있는 반성적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하였다. 지금부터는 수나라 대운하 건설 작업에 초점을 맞춰서 그에 관한 심도 있는 논의로 귀결될 것이다.

Ⅱ. 본론

① 수 왕조 이전의 혼란기

수 왕조 이전의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한나라가 분열되고 위·촉·오의 삼국 시대가 흘러가다 진(晉)에 의해 잠시 동안 통일되었던 중국은 5호(흉노, 선비, 저, 갈, 강)의 북방 민족에 의해 16국으로 다시 분열이 되고, 이는 유목 민족과 한족에 의해 각각 북조와 남조로 나뉘어 있는 형국이었다. 이러한 위·진·남북조 시대의 혼란기를 끝내고 다시 통일 왕조를 일궈낸 수나라에게 있어 행해야 할 조치는 북부와 남부 간에 생긴 균열을 메우는 것이었다. 그 특단의 조치가 바로 황하와 양자강을 운하로 이어 남과 북을 하나로 연결시키려 한 것이다. 남북조라는 명명 자체에서 중국 남부와 북부가 서로에게 가진 이질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수 왕조의 구상은 꼭 필요한 정책이었다. 사실 대운하 건설은 초대 황제 문제 때부터 나온 아이디어였다. 다만 재정문제 등으로 인해 그 다음 황제인 양제 대에 이르러 첫 삽을 뜰 수 있었던 것이다. 양제는 즉위 이듬해부터 약 6년 동안, 500만 명 이상의 인원을 동원하여 공사를 벌였다. 그렇게 수 왕조 이전의 혼란기를 해결하기 위해 수나라의 대운하가 건설되기 시작한 것이다.

② 대운하의 건설 과정

대운하 건설 현장은 정말 지옥 그 자체였다고 한다. 양제가 하루 빨리 신속하게 운하가 건설되기를 원했기에, 수나라의 관리들은 건설 인부들에게 쉴 틈을 주지 않고 작업을 강행해 나갔다. 이 때문에 물속에서 작업하던 사람들은 밖으로 나와 몸을 말릴 시간도 없다보니, 하반신에 구더기가 들끓는 상태에 빠져 연일 죽어나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일을 쉬엄쉬엄 할 수도 없었는데, 작업이 순탄치 않을 경우에는 과중한 처벌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 수로가 얕게 나와 작업에 차질이 생기자, 수양제는 약 5만에 달하는 인부와 관리들을 생매장 시킬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어쨌거나 6년에 걸쳐 대운하는 황하에서 화하를 잇는 통제거, 화하에서 양자강을 잇는 산양독, 양자강에서 항주를 잇는 강남하, 탁군에서 황하를 잇는 영제거, 그리고 황하에서 대흥성을 잇는 광통거로 구성이 되었으며, 폭은 약 30에서 60미터, 깊이는 약 3미터, 총 길이는 2,000킬로미터에 달했다. 그렇게 가혹한 토목 공사 속에서 가끔씩 땀방울을 닦으며 먼 산을 바라봤을 사람들에게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③ 문제(問題)는 대운하의 개통식이었다.

실제로 수양제의 대운하 사업이 백성들을 고통 속에 빠뜨린 것은 공사 자체가 아니라 완공 이후 시작된 어마어마한 개통식 때문이었다. 대공사가 끝나자 수양제는 운하 전 구간에 걸쳐 화려하고 매우 찬란한 개통식을 거행했다. 황제가 된 이후, 수양제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토목공사를 통해 자신의 막강한 권력을 천하 만민에게 과시하고자 했다. 이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집권한 정통성 문제와 함께 그의 개인적인 성향과도 관계가 있었다. 엄격한 어머니였던 독고가라 황후의 교육아래 성격과 맞지 않는 근검절약 생활을 수십 년이나 해야 했던 수양제는 권력을 얻자마자 곧 자신의 욕망을 분출하기 시작했다.  「수양제(미야자키 이치사다 저. 전혜선 역. 역사비평사)」 참고

 그래서 황제가 되자마자 규모가 큰 사업을 연이어 벌이기 시작했다. 대운하 개통식을 위해 먼저 대운하 구간에만 40여개의 행궁을 지었고 운하 옆에는 대로를 건설해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심었다. 행궁 주변에는 궁녀들이 비단으로 꽃잎을 오려 나무에 가득 뿌리게 했고 중국 전역에서 유명한 악단, 광대 등을 모두 모아 3만 명 규모의 행사 단을 꾸민 후에 대규모 공연을 거행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미 상당한 재정을 낭비한 셈인데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본격적인 개통식은 대용주(大龍舟)라 불리는 궁궐만한 배를 만들어 낙양에서 강남으로 순행을 떠난 이후부터 시작됐다. 이 용주란 배는 상하 4층, 높이가 45척, 너비 50척, 길이 200척의 초호화 요트로 배 안에 전각을 꾸몄으며 황후, 비빈, 대신, 승려, 도사들도 모두 배를 타고 용주를 수행, 수행선이 1000척을 넘었다. 용주는 얼마나 무거운지 사람들이 강 양편에서 끌어서 움직여야했는데 이를 위해 운하 전 구간에 8만 명의 장정을 세워두고 배를 끌게 했다. 또한 운하 주변에 보안을 위해 병사들을 파견, 호송시켜 대운하를 낀 500리 이내의 지역들은 도로를 정비하고 꽃과 나무를 심어야했으며 지방관이 나와 온갖 진귀한 물품과 산해진미를 갖다 바치도록 명을 내렸다. 이에 따라 수양제의 개통식 선단이 지나가는 곳마다 경제가 초토화됐다고 한다. 이렇게 수탈한 재물들은 다시 경성으로 실어 냈고, 남은 음식들 중 못 먹은 것은 그냥 구덩이에 묻어버리고 떠나니 민심이 악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양제의 용주가 지나간 곳은 해골이 바닥에 널린다는 소문이 퍼졌으며 당시 백성들은 홍수, 가뭄, 메뚜기보다 양제의 배가 더 무섭다고 할 지경이었다. 개통식 이후에도 이 어마어마한 규모의 뱃놀이를 수시로 행해 대운하는 중국 역대 공사 중 가장 많은 인력이 동원됐음에도 가장 쓸데없는 사업으로 변질됐다. 이후 수양제가 고구려 원정에 나서면서 대운하로 인한 백성들의 피해는 줄어들었으나 곧바로 고구려 원정에 장정들이 동원되면서 고통은 가중됐다. 결국 수나라가 붕괴된 후, 대운하는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구간 곳곳이 토사로 막혀 쓰지 못할 지경이 됐다. 그래서 원나라와 명나라 때 걸쳐 경항 대운하가 다시 지어지게 됐다.

④ 대운하 건설 작업의 이점

수나라의 대운하 건설 작업이 그토록 가혹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왕실이 생각 없이 대운하 건설 작업을 추진한 것은 아닐 것이다. 대운하 건설 작업은 그 자체로 많은 이점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우선, 황허 강와 양쯔 강을 연결함으로써 북부와 남부 간 물류를 원활히 할 수 있었다. 수로는 육로보다 많은 물량을 움직이기가 훨씬 더 수월한 만큼, 운하의 활용은 운송비를 절감하여 장거리 대량 교역이 가능하게 해 주었다고 한다. 장거리 대량 교역이 가능해지니  특정 품목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지역들이 나왔다. 과거에는 지역마다 필요한 물건을 자체적으로 공급해야 하므로 어떤 경우는 생필품 생산으로 돌려야했는데, 교역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필요한 물건들은 다른 지역에서 조달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따라서 각 지역은 자기네가 가장 잘 재배할 수 있는 작물에 집중하여 수출을 최대한 끌어 올렸다. 그로 인해 전국적으로 생산량이 크게 늘었다. 

 또한 교통로 개설은 남부 지역에 대한 수도의 정치적 장악력도 높여 주었다. 수의 황성은 서북 지방에 있는 대흥에 있었다. 양쯔강 이남의 사람들은 왕실 근처의 황허 강 등의 북쪽 지역 사람들과 사뭇 달랐다. 따라서 이 지역까지 제대로 통치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이질감을 줄이고 황제가 직접 관리들과 지역 주민을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어야 했다. 운하는 이렇게 지역 간 이동 시간과 통치 거리를 줄임으로서 중앙의 대 지방 통제력을 강화시켜 주었다. 수의 바로 후대 왕조인 당의 경우를 보면 안녹산의 난 이후부터는 번진들이 지배한 황하 유역으로부터의 물자 보급이 사실상 끊겼는데, 그럼에도 왕조가 그로부터 150년간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남쪽에서 생산된 물자가 운하를 타고 황성까지 보급된 데 있다고 한다. 송 이후부터는 아예 강남의 경제력이 북쪽 지방을 능가했으며, 강남에서 생산된 곡물과 물자가 정치수도인 개봉(카이펑)이나 북경을 부양했다. 즉 강남에서 올라오는 물자 없이는 정권 유지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대운하와 중국 상인(조영헌 저. 민음사. 2011)」참고

 지금까지 수나라, 정확히는 수양제의 대운하 건설 작업 정책을 살펴보고 그 과정들을 살펴보았다. 이제는 이 수나라의 대운하 건설작업을 다시 살펴보면서 인권과 나눔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공권력 행사를 위한 국가적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로 돌아올 것이다.

Ⅲ. 결론

  수나라의 대운하는 위·진·남북조 시대의 혼란기를 끝낸 수 왕조가 북부와 남부 지방의 이질감을 없애고, 사회·경제·정치적인 통합을 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토목 공사는 백성들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았으며, 공사가 끝난 뒤에 행해진 개통식은 수양제의 막강한 권력 과시욕의 분출이었을 뿐 오히려 봉건적인 수탈의 전형이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수많은 관리들, 궁녀들, 백성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행태였음을 확인하였다.

  우선 대운하 건설 작업은 예로 보나 지금으로 보나 명백한 인권 침해였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당대 가치관에 비추어 봤을 때, 아무래도 ‘왕실과 국가를 위하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러나 현대의 가치관은 바뀌고 있다. 물론 국가적인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경제적 성장을 이뤄내는 것이 고려 사항 중 하나일 수 있고, 실제로 수나라 대운하 건설 작업은 2. 본론 4)에서 살펴봤듯이 생각보다 많은 이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 개개인의 생존권, 행복추구권 등을 국가로부터 보장받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침해받지 않기를 바란다. 이러한 관점에서 수나라의 대운하 건설작업은 시작은 좋았을지 몰라도, 그 과정에 있어서, 또 이후에 이루어진 관리 측면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음에 분명하다.

 물론 위의 문단에서 언급한 내용이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우리가 역사를 살펴봄에 있어 앞으로라도 고려를 해야 할 것은 역사는 승자의 역사로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역사를 지탱해 온 것은 이 땅을 살다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었다. 수나라가 대운하를 건설하고 나서, 후대 왕조들이 많은 이점을 본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은 승리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일 테다. 그러나 조금만 시선을 낮춰서, 대운하 건설작업을 관리한 관료들, 궁녀들, 그리고 백성들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들의 정책이 마냥 지향해야 할 것은 아님을 확인해야 한다.

  인권의 측면에서 살펴 본 대운하 건설작업은 이렇다. 한편,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수나라 대운하 건설작업을 다른 측면에서 살펴봐야 하는데, 바로 ‘나눔’의 측면에서이다. 수양제의 대운하 건설은 당시 민중들을 대상으로 한 봉건적 수탈인 동시에 중국의 통합과 국민경제에 기초를 놓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 이외의 생명에 대한 별다른 고려 없이 환경을 파괴한 일이 된다. 대운하 건설은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었고, 동식물 등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음과 더불어 후대 그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터전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역사학자들이 과거 군주들의 대 토목 사업을 평가함에 있어서 이러한 현대적 가치관을 반영한다면, 국가가 인간만을 위한 무분별한 환경파괴를 범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에 일정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정책을 펼칠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 이외의 모든 생명도 정치공동체의 주권자이며 수혜자라는 사고가 현대적인 가치관으로 대두되면서, 인권뿐만 아니라 타자의 측면에서 나눔까지 고려한 정책을 펼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너무 과하게 나간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인권의 측면에서만 수나라 대운하 정책을 비판한다면, 이는 과연 그렇다면 건설 인부들의 인권을 충분히 고려를 하였다면, 위와 같은 건설을 무분별하게 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윤리관을 바탕으로 수나라의 정책을 이와 같이 평가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수양제의 대운하 건설작업은 인권적인 측면에서 보았을 때 오늘날의 관점이 아니더라도 반드시 비판받아야 할 사안이며, 타자의 나눔 측면에서 현대적인 가치관을 대입하여 바라보면 오로지 인간만을 생각한,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사안이라 비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인간만을 생각하지 않고, 나를 둘러싼 타자를 함께 고려하여 생각을 해봐야 하는 것이다. 수나라 대운하 건설 작업 역시 이러한 측면에서 이해를 하면 오늘날 정책을 세울 때 귀감이 되어 기여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는 복지국가를 실현하는 오늘날에서 중점적으로 고려해야 할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가장 중요한 점은 다시는 이렇게 가혹한 방법으로 정책이 흘러가지 않도록 반성적인 사고를 해야 하지 않을까.


d********2 2020.03.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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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는 역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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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저서는 술술 읽히면서도 역사적 사건을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역사적 인물에 대한 행동을 분석하고 자신의 해석을 덧입혀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대학교 때 과제로 "과거:중국의 시험지옥"을 읽고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책이라면 무조건 읽어보는 편입니다. (이 책도 다시 나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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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저서는 술술 읽히면서도 역사적 사건을 심도있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인 사건을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며 역사적 인물에 대한 행동을 분석하고 자신의 해석을 덧입혀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대학교 때 과제로 "과거:중국의 시험지옥"을 읽고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책이라면 무조건 읽어보는 편입니다. (이 책도 다시 나왔으면 좋겠네요.)

 

수양제는 살수대첩으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물입니다. 국사시간에 단순히 대운하를 건설하고 고구려를 침략하다가 국가를 2대만에 망하게한 인물이라 단순하게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수양제라는 인물과 그의 행동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수나라의 건국과정, 수문제와 수양제의 인간적인 됨됨이 등이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건의 전개과정과 인물에 대한 묘사가 매우 흥미롭기 때문에 흡사 역사 소설을 읽은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역사책입니다.

 

그리고 특히 일본인의 입장에서 본 일본과 수나라의 외교관계, 고구려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어서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인이 썼으나 일본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았으며 나름 객관적인 분석을 통해 균형있는 시각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자료나 도표, 지도도 컬러는 아니지만 적절하게 제시되어 그 시대와 인물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요소였습니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면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다른 저서도 읽어볼 것을 추천합니다.

k***c 2015.09.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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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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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이치사다 교수의 책이 하나 번역 출판되었습니다.이전에 이산 출판사에서 나온 옹정제는 일반인들이 편하게 읽을수 있는 대중 역사서 였습니다.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어서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이번에는 수양제에 관한 책인데 양제는 당나라에서 붙인 시호로 양(煬)'은 여색을 좋아하고 예를 무시했으며 하늘의 뜻에 거역하고 백성을 착취했다는 뜻이랍니다.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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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이치사다 교수의 책이 하나 번역 출판되었습니다.
이전에 이산 출판사에서 나온 옹정제는 일반인들이 편하게 읽을수 있는 대중 역사서 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게 읽어서 저자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수양제에 관한 책인데 
양제는 당나라에서 붙인 시호로 양(煬)'은 여색을 좋아하고 예를 무시했으며 하늘의 뜻에 거역하고 백성을 착취했다는 뜻이랍니다.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떠했을지는 익히 짐작이 가실 것 같습니다.
또한 무모한 고구려 원정으로 우리에게는 잘 알려진 황제입니다.

수 제국은 중국 역사상 의의가 적지 않습니다.
남북 중국을 다시 통일하여 장기간 이어져 온 혼란을 종식시켰습니다.
이 제국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무래도 진제국과 동일한 모습이 대단히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중국을 통일하고 강력한 통합 정책, 과도한 토목공사, 대규모 원정, 그리고 대규모 지방 시찰 등이지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욕을 대단히 먹고 있지만 생각해 볼만 부분이 있습니다.
왜 진시황제와 수양제는 이러한 비슷한 정책을 펼쳐야만 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단순히 둘다 폭군 또라이여서 그렇까요? 하지만 그렇게 해야될 필요성이 있었을까요?
개인적으로 그러한 공통 분모의 정책에는 필요성이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진시황제의 만리장성이나 수양제의 대운하는 이후 왕조에서도 계승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제국은 흉노와 전쟁을 했고, 당나라는 고구려 원정을 지속했습니다.
이러한 정책의 지속성을 본다면 이들이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만 평가하기에는 과하다는 생각입니다.

호화찬란하다는 대규모 지방 시찰은 제국 통합성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봐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과 수는 둘다 짧은 통합 기간을 이루었지만 다시 분열되고 대규모 내전을 겪은 이후에야 통합이 이어지게 됩니다.
그만큼 중국의 통합은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다고 수양제가 문제가 없었을까요?
진시황제는 그가 살아있을때 반란을 일으키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반면 수양제는 제국의 분열을 목도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차이는 두 사람의 자질과 능력이 차이로 봐야 겠지요.
진2세 황제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통합을 유지할 능력이 없었다고 봐야겠지요.

부친을 시해하고 후궁을 범했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저자도 좀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분들은 진짜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상하게 폭군에 대한 비난에서 공통적으로 보이고 있기 때문이지요.

개인적으로 수양제가 아버지의 후궁 선화부인을 탐낸 점에서 의심이 가는게 하나 있습니다.
수나 당의 중심 세력은 무천진 군벌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과거 북위 시절 6진을 지키던 무장 집단이고 호한 융합 세력이고 선비족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데..
이러한 북방민족의 기풍이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갑니다.
이들 민족은 아버지의 여자들을 물려받는 습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중국은 진시황제에 대한 재평가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장이모우의 "영웅" 처럼 진시황제를 통일의 영웅으로 재평가 중이지요..
그런데 수양제는 어떻게 할런지 좀 흥미가 가는 부분입니다.

책 자체는 읽기 쉽게 잘 정리가 되어 있습니다.
깊이 연구한 학자가 일반인들을 위해서 쉽게 잘 쓰여진 책이라는 느낌이 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일본인 학자이기 때문에 일본과의 교류 부분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일본 역사에서 견당사가 차지 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이런저런 말이 나오기는 하나 본데..

중국이 일본은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책봉을 보면 됩니다.
조공을 바쳤느니 마느니로 말이 많은데, 실제 조공과 책봉은 같이 움직입니다.
중국적 대외질서에서 책봉은 중국을 중심으로 항렬을 정해주는 중요 행사인데
조공만 있고 책봉이 없었다면 극히 의심스러운 일이지요.

말이 좀 길어졌네요..

수나라에 관한 대중서로 읽기 좋을 듯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9***d 2015.04.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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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운하에 미친 중국 최악의 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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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관심을 갖는 분야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갈수록 독서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사에 관심을 갖고 있어 동양사는 관심사와 그리 무관하다 할 수 없는 분야이지만, 독서에 소홀해진 것은 동양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책, <수양제>도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다.   우선 저자는 일본의 동양사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라는 사람이다. 1990년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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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관심을 갖는 분야가 한정되어 있다 보니 갈수록 독서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개인적으로 한국사에 관심을 갖고 있어 동양사는 관심사와 그리 무관하다 할 수 없는 분야이지만, 독서에 소홀해진 것은 동양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 책, <수양제>도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되었다.

 

우선 저자는 일본의 동양사학자 미야자키 이치사다라는 사람이다. 1990년대에 타계했고, 1960년대까지 교토대학 사학과 교수였다고 한다. 잘은 모르겠으나 동양사의 대가 중 한 명임은 분명한 것 같다. 책을 읽은 후 저자에 흥미가 생겨 좀 찾아보았는데 이 책의 배경인 남북조와 수, 그리고 송에 근세로 내려오면 청조까지 그의 저술이 있다. 전근대 중국사의 상당한 부분을 포괄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광범한 연구영역은 학문의 세분화가 점차 진행된 요즘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되어버렸지만 그렇기에 그에게서는 근대학문 개척과정에서 대가의 풍모를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내용도 무척 흥미로웠다. 요즘 책 하나 잡으면 다 읽는데 며칠은 걸리는 게 보통이었는데 이 책은 한나절만에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위 책소개에도 있는데 무엇보다 사실만을 엄밀히 추려낸 역사학자의 역사서임에도 불구하고 어렵지 않다는 게 책의 최대 미덕인 것 같다. 저자가 대중서를 염두에 두고 평이한 문체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는데, 번역서임에도 그 점에서 왜 호평을 받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다른 이유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생각해볼 거리였던 것은 인물사라는 분야였다. 이 책은 제목처럼 수나라 2대 황제였던 양제를 중심으로 남북조-수-당으로 이어지는 시기를 살펴보고 있다. (물론 그것이 주인 것이지 그것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저자는 인간의 삶이란 결국 인간관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역사학의 최종 목적은 인간관계를 규명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조와 개인은 모두 역사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축이고, 그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는 제각기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오랜 논쟁거리이지만 '인물'의 중요성을 새삼 간과하고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최근 어떤 정치인의 자서전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상황에서, 진실을 외면한 자화자찬격의 자기홍보가 아닌 엄밀한 사실 고증을 토대로 한 진정한 인물사가 더 많이 필요로 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대중적으로뿐만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그럴 것 같다.

l*******j 2015.0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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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히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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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공자가 아니다. 하지만 역사에 늘 관심이 많아 역사 소식을 찾아 늘 기웃거렸다. 그러자면 중국사를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교수가 있었는데, 이 책의 작가 미야자키 이치사다이다. 이름이 좀 특이해서 단번에 외워졌다. 오히려 특이하니까 금방 알게 된 이름이다. 이 작가는 많은 책을 냈지만, 옹정제나 수양제와 같이 인물을 다룬 책도 잘 냈다. 일본작가이기 때문인지 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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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전공자가 아니다. 하지만 역사에 늘 관심이 많아 역사 소식을 찾아 늘 기웃거렸다. 그러자면 중국사를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교수가 있었는데, 이 책의 작가 미야자키 이치사다이다. 이름이 좀 특이해서 단번에 외워졌다. 오히려 특이하니까 금방 알게 된 이름이다. 이 작가는 많은 책을 냈지만, 옹정제나 수양제와 같이 인물을 다룬 책도 잘 냈다. 일본작가이기 때문인지 책이 두껍지 않고 굉장히 얇다. 그래서 오히려 초심자, 초보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고, 책이 어렵게 저술되지 않고 소설읽듯 술술 읽히는 문장이어서 우리 역사를 배울 때면 가장 가슴뛰던 장면, 고구려와 수나라의 전쟁을 떠올릴 때면 늘 함께 등장하던 수양제에 대해서 이 기회에 드디어 제대로 배울 수 있었다. 아, 참 좋은 책을 만났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t**j 2015.10.0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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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듯한 역사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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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제는 당태종만큼이나 우리나라 국민에게 익숙하다. 고구려와 전쟁을 치렀고 패했기 때문이다. 학생시절 국사시간에 한번쯤은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수나라는 남북조시대를 통일했다. 한족이 아닌 선비족이 세운 국가다. 때문에 중국인들은 수나라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다. 당나라도 선비족의 후예인데 한족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좋아하고. 암튼 양제는 수나라를 건국한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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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제는 당태종만큼이나 우리나라 국민에게 익숙하다. 고구려와 전쟁을 치렀고 패했기 때문이다. 학생시절 국사시간에 한번쯤은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수나라는 남북조시대를 통일했다. 한족이 아닌 선비족이 세운 국가다. 때문에 중국인들은 수나라를 그다지 인정하지 않는다. 당나라도 선비족의 후예인데 한족의 피가 섞였다는 이유로 좋아하고. 암튼 양제는 수나라를 건국한 양견의 둘째아들이다. 형이자 태자인 형을 향락에 빠진 정신병자로 몰아 자신이 태자가 되었다.

 

황위에 오른 양제는 평소 마음에 둔 아버지의 첩을 자신의 측실로 맞이한다. 대운하를 건설하기 위해 백성을 동원한다. 게다가 고구려를 정벌한다고 3차례나 출병했으니 민심을 잃는 것은 당연하다. 전쟁이란 것이 백성의 자식을 사지로 몰고 식량을 징수하니 고역일 수 밖에 없다.

 

결국 군수물자를 책임진 부하의 반란을 시작으로 전국각지에서 군웅이 할거하고 양제는 지금으로 말하면 경호실장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혼란스런 전국은 이종사촌뻘인 이세민에 의해 통일이 되고 이세민의 부친 이연을 황제로 한 당나라가 탄생한다.

 

책 '수양제'는 수 건국부터 멸망에 이르기까지 주요 사건을 자세하게 다룬다. 사건 정리 일뿐인데 소설을 읽는 듯이 짜임새가 있다.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한번쯤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l*****0 2015.07.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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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제 - 미야자키 이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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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수양제가 떠오르게 된다. 612년에 벌어진 이 전투는 바로 수양제가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호왈 113만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지만,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30만의 별동대를 평양으로 진군을 시켰다가 바로 살수대첩에서 거의 전멸당하는 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수나라는 결국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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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을 들여다보면 자연스럽게 수양제가 떠오르게 된다. 612년에 벌어진 이 전투는 바로 수양제가 고구려를 침공하면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호왈 113만 대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침공하지만, 뜻대로 진행되지 않자 30만의 별동대를 평양으로 진군을 시켰다가 바로 살수대첩에서 거의 전멸당하는 이 역사적인 사건으로 인하여 수나라는 결국 멸망의 길로 들어섰다고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로 인하여 우리는 수양제라는 인물에 대해서 그저 고구려와의 무모한 전투로 인하여 나라를 망하게 한 폭군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 <수양제>의 저자인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말대로 역사란 인간의 무수히 많은 인간관계의 연결로 인하여 진행된 점을 감안한다면 비록 개인이긴 하지만, 당시 동아시아의 패권을 움켜쥐고 있던 수양제에 대한 고찰은 그 시대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과 동일선상에 서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수나라가 중국의 분열된 시기인 남북조 시대를 통일한 나라임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수양제 = 고구려 침공'이라는 공식에 가려져 있던 당시의 역사를 이 책을 통하여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역사에 관심이 있는 나로서도 수양제는 왠지 진시황과 비슷한 점이 많은 인물이라 생각하였다. 물자를 원활히 유통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중국의 남쪽 지방과 북쪽 지방을 연결하는 운하를 건설하였으며, 곳곳에 화려한 궁궐을 건설한 수양제의 행적은 진시황의 만리장성과 왕릉, 아방궁의 건설을 연상시킨다. 또한 비록 수양제가 직접 남북조 시대를 끝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인 수 문제(양견)의 통일 전쟁에 참여한 기록이 있으니, 6국을 멸망시키고 진을 통일국으로 만든 진시황과 비슷한 행보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마치 평행이론처럼 비슷한 길을 걸어온 이 두 인물의 차이는 어떤 것일까라는 의문이 바로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시발점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더구나 미야자키 이치사다는 책의 제목이 <수양제>이긴 하지만, 실제 수나라의 역사를 남북조 말기에서부터 시대순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수양제라는 인물에 대한 서술로도 수나라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갖게 한다.



 한족에 의한 왕조들이 들어선 남조와 북방 유목 민족이 세운 북조가 서로 대립한 남북조시대(420~589)의 종결은 북주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사실 남조는 통일에 대한 의지보다 현상 유지가 목표인 양, 여러 왕조들이 정권을 교체하면서 폭군들이 수도 없이 등장을 하게 된다. 사치와 향락을 일삼는 남조의 여러 황제들을 본다면 전체적인 분위기가 그저 현재 상황을 유지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추측을 하게 된다. 물론 고구려를 비롯한 신라, 백제와 외교적인 관계를 통하여 북조를 견제하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소극적인 측면에서의 대응이지 적극적인 것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하여 북주는 만리장성의 서쪽 지역의 무천진 군벌들의 결속력으로 성립된 국가로서 초기에는 북제에 비하여 약소하였기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조와 달리 폭군의 등장이 상대적으로 거의 없었으며 점차 그 힘을 길러 북제마저 제압하고 남조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저자는 왜 이러한 남북조 말기의 역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일까? 사실 양제의 아버지인 양견(후에 수문제)은 북주에서 군벌 귀족 출신이긴 하지만, 선비족이 세운 우문씨의 북주 정권에서는 그다지 명망있는 가문은 아니었다. 양견의 아버지인 양충이 독고신 가문과 함께 우문씨 정권을 성립하는데 기여를 하였기에 수국공이라는 작위를 받기는 하였지만, 자칭 한족 출신인 양견의 지위는 높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책은 양견이 어떻게 수 문제로 등극하는지를 자세히 설명을 하고 있다. 분명 책의 주인공은 수 양제인데, 왜 이러한 내용들을 먼저 설명하고 있는 것일까? 수나라의 역사 자체가 길지 않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서술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수 양제에게 크나큰 영향을 준 것이 바로 그의 집안 내력과 그의 부모인 수 문제와 독고황후였기 때문이다. 



 선비족이 세운 정권하에서 한족 출신이라 일컫는 수 양제의 가풍은 선비족과 한족의 장점을 모두 취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유리하게 보여진다. 실제 북주 말기에 양견은 선비족 군벌 귀족 출신인 독고 가문의 여자와 결혼을 하여 선비족으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얻었으며, 본인은 한족이기에 역시 한족으로부터도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선비족과 한족의 유리한 부분을 이용하여 수나라를 건국한 양견의 모습은 분명 자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어야 한다. 더구나 독고황후의 질투인지 아니면 가족간의 끈끈한 정을 강조해서 그랬는지 몰라도 수 문제는 첩을 들이지 않고, 각각 5명의 아들과 딸을 모두 독고황후 사이에서 갖게 된다. 이렇게만 본다면 수양제의 형제들은 서로 의지하며 협력해야 하는데, 사실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문제와 독고황후의 의도와는 어긋나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수 문제가 비록 독고황후에게서만 자식을 가졌지만, 정작 그는 황제의 자리를 든든히 하고자 자신의 형제들과 사촌들을 적대시하였으며, 독고황후도 황태자인 장남보다는 차남인 양광(수양제)을 편애하기 시작하였다. 



 폭군의 모습을 보여준 수양제의 비뚤어진 심성을 저자는 바로 수문제가 왕위를 찬탈하고 수나라를 세우면서 행한 비정한 행동이 영향을 주었음을 넌지시 비추고 있는 것이다. 황제에 등극한 수양제는 아버지인 수문제가 쌓아온 치적을 사치와 향락, 무리한 토목공사와 고구려 정벌로 낭비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게 된 동기인 시황제와 수양제의 차이는 이 시점에서 바로 외교정책이 아닌가 생각된다. 만리장성을 쌓으며 아예 이민족과 접촉을 하지 않으려는 시황제와는 달리 수양제는 패권국으로서 주위의 모든 국가들에게 사신을 보내어 순종할 것을 강요한다. 돌궐족들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부족과 국가가 이러한 시황제의 요구를 받아들이지만, 바로 고구려가 거부하면서 그 유명한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도 무려 3차에 걸쳐서 이루어졌으며, 이는 결국 수나라의 직접적인 멸망으로 연결된다. 집안 내력을 통하여 형성된 비뚤어진 성격과 오만함으로 인한 수양제의 실정은 바로 수나라의 멸망을 불러온 것임을 이 책을 통하여 깨닫게 된다.



 <수양제>는 비록 한 인물을 내세우고 있는 책이지만, 중국 역사상 단명 왕조 중 하나인 수나라의 역사를 물흐르듯이 보여준다. 황제의 행적으로 모든 것이 설명이 되는 역사이니 그의 독단에 의한 억압적인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강력한 왕권으로도 비춰질 수 있겠지만, 그의 개인적인 성향과 시대적인 착오로 인하여 국가의 멸망이라는 역사적인 기록으로 남는 것을 본다면 저자가 말한 인간관계의 연속으로 인한 것이 역사임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또한 수양제가 우리 역사인 고구려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이 책의 저자가 일본출신의 학자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좀더 중립적인 위치에서 이 책이 쓰여져 있기에 읽어볼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g*******7 2015.03.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