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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국가, 독재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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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라는 부제는 아마도 후대에 붙였을 것이다. 모든 독재자는 자신이 현명한 지도자로 기억되리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물러나야만 하는 적절한 시기를 외면하는 것일 게다. 이와 같은 그릇된 확신은 혼자 만드는 게 결코 아니다. 독재자의 주변에는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존재한다. 개개의 노력은 옳다는 신념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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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라는 부제는 아마도 후대에 붙였을 것이다. 모든 독재자는 자신이 현명한 지도자로 기억되리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물러나야만 하는 적절한 시기를 외면하는 것일 게다. 이와 같은 그릇된 확신은 혼자 만드는 게 결코 아니다. 독재자의 주변에는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많은 노력이 존재한다. 개개의 노력은 옳다는 신념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친일파의 변명이나 상부의 명령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라는 나치 군인의 증언 등이 모여 그릇된 역사를 이룬다. 

지난 세기 인류는 많은 것을 이루었다. 동시에 지난 시대는 명암이 분명하기도 했다. 인류를 절멸로 몰아넣으려 작정이라도 한듯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그 중심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을 꼽자면 나치즘 그리고 파시즘일 것이다. 유대인 대학살로 대표되는 참혹한 결과를 낳은 나치즘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의 비교적 잘 알고 있다. 마치 2차 세계대전을 히틀러 혼자 일으키기라도 한 것마냥 사람들은 그 이름을 입에 담는다. 반면 파시즘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이해가 떨어진다. 둘이 비슷한 성향을 지녔다는 식의 막연한 생각이 전부일 때가 많다. 나치즘과 파시즘 정권은 서로 연대했다. 둘은 위험했다는 측면에서 동일했다. 하지만 전적으로 같지는 않았다. 
외부에 공동의 적을 제시하는 건 어려움에 처한 조직이 택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다. 그다지 적이 구체적이지 않더라도 적의 퇴치를 위해 사람들은 일단 뭉치고 본다. 경기가 침체에 빠졌을 때 제3 세계 노동자들을 마치 일자리를 앗아간 주범마냥 몰아가는 것 또한 같은 이치다. 지난 시절 독일과 이탈리아 등에서 생겨난 움직임 역시 그러했다. 상권을 주름잡고 있던 유대인은 게르만족에게 빈곤을 선사하는 적일 수밖에 없었다. 나치즘은 민족의 문제에 집중했고, 비게르만족을 내쫓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무솔리니의 자서전을 읽으며 나는 파시즘은 곧 국가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산업혁명 등을 통해 거침없이 발전가도를 달리던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이탈리아는 뒤쳐진 상태였다. 모두의 혼을 쏙 빼놓을 정도의 공통된 적을 설정하는 게 나치즘의 전략이었다면 파시즘은 자신들이 가진 유구한 역사를 주목했다. 로마를 언급할 적마다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있으니 바로 제국이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는 영국이기 이전에 로마였다. 찬란한 역사를 박제된 과거로만 간직하는 건 옳지 않다. 역사는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증명해 보이는 증거임과 동시에 우리가 달성해야만 하는 당위적인 위대함이기도 했다. 포르자 이탈리아! 위대한 이탈리아로의 도약은 역사가 이미 예비해놓은 이탈리아의 운명이었다. 

이른바 국가지상주의. 무솔리니의 사상을 요약하자면 그러했다. 그는 직업적인 정치인으로서 대중 앞에 나서기 이전에 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로 짧으나마 재직했으며, 강력한 정치적 색채를 지닌 매체를 운영하며 자신의 사상적인 기반 확장에 나서기도 했다. 이탈리아 사회당 당원으로 가입을 하고, 스위스에서 대규모 초파업을 이끄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그 시점까지도 그에게서 파시스트의 색채는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발칸전쟁 때는 반전운동을 펼치기도 한 걸로 보아 태초에 그가 파시스트가 될 운명은 아니었지 싶었다. 
파시즘은 사회주의에 민족주의의 색채를 가미한 독특한 노선이다. 아마도 육군에 자원 입대해 근무함서 별볼일 없는 이탈리아라는 국가를 개조할 필요가 있음에 눈 떴던 게 아닌가 싶다. 그다지 인지도도, 인기도 없던 파시스트당이 급속도로 성장한 건 이왕이면 힘을 지닌 국가의 국민이고파 한 사람들의 마음을 간파한 덕택이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다른 정당에 대해서는 배척하는 움직임을 보이면서도 국왕의 권위는 적어도 겉으로는 존중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사람들의 반발을 잠재우는 치밀함을 선보이기도 한다. 성직자의 존재도 마찬가지로 인정했다. 이는 로마 제국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명분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맑시즘을 신봉한 사람들이 지닌 종교 배척 태도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그럼으로써 기득권층의 반발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던 듯하다. 

그는 자신의 말초신경까지도 모조리 국가에 쏟아붓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다. 위대한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지도자가 초창기 대중들이 지닌 무솔리니에 대한 인식이 아니었을까 한다. 파시즘의 위험함에 눈을 뜬 이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그를 공격하려 든다. 직접적인 위해도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고, 악의적인 소문은 곧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많은 독재자들이 타락을 일삼은데 반해 무솔리니는 적어도 이 자서전이 쓰여지던 시점까지는 뭇매를 맞을 정도의 부정축재는 아니 한 듯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대중의 지지를 보다 확고히 하는 동시에 위대한 이탈리아를 이끄는 데 있어 자신보다 더 나은 인물은 없다는 식의 주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모든 파시스트들이 전적으로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했다는 식의 언급을 반복하며 그는 마침내 일인독재체제를 확고히 구축하게 된다. 그 즈음 이미 대중들은 무솔리니의 모든 행동은 더 나은 국가를 위한 것이라는 강한 신념에 사로잡힌 상태였다. 

만일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행보를 벌이지 않고 그가 물러났더라면 어땠을까. 이미 그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뭉쳤으며, 구체적인 방법론은 결여된 상태로 그저 강성한 국가의 확립을 기대하는 상황이었기에 쉽진 않았을 것이다. 전쟁은 선택 가능한 수많은 항목중 하나이자 자국의 힘을 구체적으로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사람들은 전쟁 자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의지가 전혀 없었다. 무솔리니아 함께라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으로 전쟁마저도 기꺼이 수용했을 것이다. 

전쟁은 옳지 않다는 절대진리는 현재도 얼마든지 부정당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품고 있는 위대한 국가의 꿈이 또 다른 무솔리니를, 또 하나의 파시즘 국가를 양산하지 말란 법은 없다. 집단과 국가를 위한 헌신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는 하는 우리로선 더더욱, 개개인의 가치를 상실하지 않기 위한 깨어 있음이 필요하다.

q*****2 2016.07.2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무사장의 자서전 《독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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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무대리" 또는 "무사장"으로 불리는(아마 굽시니스트의 영향일듯) 무솔리니는 제2차 세계대전 매니아들에게는 대체적으로 "진따"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죠.   ​ 알만한 사람은 아는 웹툰 작가이자 패러디의 대가 굽시니스트 "무솔리니의 야망"편에서 나오는 무사장. 개인적으로 꽤나 감명깊게 본 작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무솔리니는 거의 정신줄을 놓았다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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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무대리" 또는 "무사장"으로 불리는(아마 굽시니스트의 영향일듯) 무솔리니는 제2차 세계대전 매니아들에게는 대체적으로 "진따"의 대명사로 통하고 있죠.


 

알만한 사람은 아는 웹툰 작가이자 패러디의 대가 굽시니스트 "무솔리니의 야망"편에서 나오는 무사장. 개인적으로 꽤나 감명깊게 본 작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무솔리니는 거의 정신줄을 놓았다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을 만큼 오판과 실책의 연속이었습니다. 동맹자라기보다 정치적 라이벌로 여기던 히틀러가 예상 외의 성공을 거두자, 기회주의식으로 전쟁을 시작하지만  죄다 망신만 당한 채 실패로 끝나면서 그의 정권은 히틀러의 도움으로 간신히 연명하는 처지가 됩니다. 주 전선이라 할 수 있는 북아프리카는 자력으로 뭔가를 하기보다 잠시 도와주러 왔을 뿐인 롬멜에게 전적으로 떠넘겨 놓고 자기 위신을 세우는데만 급급하다 결국 패망하여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마지막 모습조차 웃음거리였습니다. 히틀러처럼 미련없이 자결하는 대신, 따르는 측근 한 사람 없이 애첩 클라라만 데리고 스위스로 도주하려다 독일군에게 버림받은 채 파르티잔들에게 체포되어 그 자리에서 총살당했고 파르티잔들은 그의 시체에다 오줌을 갈겼습니다. 현대 역사의 수많은 독재자들 중에서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대통령처럼 국민의 손으로 처형된 이도 있고 후세인처럼 전범 재판에서 교수형을 받은 이도 있지만, 무솔리니 정도의 굴욕을 당한 이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리비아의 카타피 정도일까요.

흔히 자기 기만과 허세, 무능한 지도자로 알려진 무솔리니이지만, 사실 그는 그렇게 단순한 인물은 아닙니다. 오히려 1920년대와 30년대만 해도 국제 사회에서 그의 명성과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그동안 간신히 열강의 끄트머리에 서서 변방 취급을 받고 있던 이탈리아를 일약 주요 열강의 하나로 올려놓고 국제 연맹과 유럽 외교를 좌지우지한 것이 바로 무솔리니였습니다. 당시 주로 귀족 출신의 늙은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던 유럽 정치가들은 말이 민주주의일 뿐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들만의 사교 무대를 벌이는 것이 보편적인 모습이었습니다. 단지 명문 출신이라는 배경 하나만으로 분에 넘치는 자리에 올라 결단력도 없고 추진력이나 카리스마도, 현실감각도 없었습니다. 그로 인해 인류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전쟁이 끝난 뒤에 몰아닥친 혼란을 헤쳐나갈 능력도 없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국가가 이탈리아였습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와 달리, 이탈리아는 전승국이었음에도 어마어마한 부채와 심각한 경제 불황, 대규모 파업, 사회주의 혁명 사상이 전파되면서 바이마르 정권 시절의 독일을 연상케 할 만큼 내전 직전의 정치적 혼란에 직면합니다. 하지만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를 비롯해 지도자들은 무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무솔리니는 자신의 지지자들을 모아서 우익단체인 흑셔츠단을 만들어 로마로 진군하였고 국왕의 승인과 국민 투표를 통해 절대 권력을 위임받게 됩니다. 그의 나이 39세로, 이탈리아 최연소 수상이었습니다.

 

무솔리니의 집권은 당대 많은 정치가들과 지식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습니다. 첫째로, 무력으로 기존 체제를 전복한 것이 아니라 합법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획득한 최초의 독재자라는 점이었습니다. 두번째로, 파산직전의 기업을 인수한 격인 그는 자본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도 아닌 이른바 "국가 사회주의(National socialism)"라는 이름의 새로운 체제를 만들어 냅니다. 이는 공산주의처럼 모든 자본를 국가가 전유하지 않으면서도 국가가 자본을 통제하는 하나의 강력한 중앙집권체제였습니다. 세번째로, 정치와 대중운동을 결합시켜 대중의 지지를 끌어냈다는 것입니다.


그가 집권하자 특유의 카리스마를 통해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을 단숨에 종식시킵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지방색이 강한 이탈리아를 대중 운동을 통해 하나로 통합시키는 한편, 대규모 공공사업으로 침체된 경제를 부흥시켰습니다. 외부에서 보기에 강력한 정부의 지도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이탈리아인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고,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정치적 혼란을 겪던 많은 국가들이 무솔리니의 방식을 흉내내어 파시즘화되거나 파시스트를 모방하는 정치 세력들이 강력하게 대두됩니다. 그 중의 대표적인 국가가 독일과 일본이었습니다.

비록 무솔리니의 방식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고 명백히 폭력에 의한 독재를 지향했지만(여기다 무솔리니의 문란한 사생활과 난봉질까지 있었음에도) 당대 좌파 지식인들에게는 프랑스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처럼 "불가피한 산고"라고 여겨졌습니다. 자유주의자들, 공산주의자들조차도 파시스트를 배워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습니다. 자유주의의 상징이었던 루즈벨트 정권 역시 미국 헌법이 허용하는 선에서 국가 주도의 경제 정책과 언론 통제 등 미국 역사상 보기 드문 파시즘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히틀러가 그를 흉내내어 독일식 파시즘인 나치정권을 수립하고 추파를 던지지만 무솔리니는 그를 경계하였고 1935년 4월 영국, 프랑스와 반 독일동맹이라 할 수 있는 '스트레자 조약'을 체결합니다. 또한 히틀러가 오스트리아 돌푸스 수상을 살해하고 무력으로 합병하려고 하자 군대를 급파하여 이를 저지하였습니다. 이 시기가 그의 인생에 있어서 절정에 달했을 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에디오피아 침략을 놓고 영국과 갈등을 빚으면서 이탈리아는 국제연맹에서 탈퇴하였고 히틀러와 손을 잡게 됩니다. 그때부터 히틀러와는 동맹자이자 라이벌로서 경쟁을 벌이게 되었고 경제 불황과 장기 집권으로 인해 지지도가 저하되자 무리하게 인기성 치적에만 매달려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그 결과가 몰락이었습니다.


 

올초에 현인 출판사에서 무솔리니의 자서전인 《독재는 어떻게 태어나는가(원저 : My autobiography)》가 출간되었습니다. 1928년에 무솔리니가 쓴 책으로 한창 자신감 넘치던 리즈 시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정치판에 어떻게 뛰어들었는지, 1차 세계대전의 참전, 로마 진군과 정권의 장악까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물론 정치가들의 자서전이라는 것이 늘 그러하듯 주로 자기 자랑 일색입니다.

하지만 히틀러 자신도 부끄러워 할만큼 헛소리와 모순 투성이인 《나의 투쟁》에 비한다면 무솔리니는 나름대로 당대 명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던 사람인 만큼 이탈리아 근대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꽤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입니다. 무솔리니의 자기 자랑은 빼고라도 그의 사상과 제1차 세계대전 직후의 이탈리아의 상황이 어떠했는지, 아무런 정치적 기반도 없었던 그가 어떻게 지지자들을 모아서 정적들을 몰아내고 정권을 잡게 되었고 파시즘 체제를 구축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책은 평전이 아니라 자서전이기에 이 책 한권만으로 무솔리니와 파시즘을 전반적으로 알기에는 부족합니다. 영어권이나 하다못해 일어판으로도 파시즘의 창시자인 무솔리니 평전은 많이 나와 있습니다만, 국내에는 한권도 없습니다. 사실 모 출판사에서 언젠가 출판하려고 번역까지 했지만 도무지 돈이 안될 것같아서 결국 출간은 포기했다는 얘기도 있더군요. 그만큼 무솔리니와 이탈리아가 국내에서는 관심밖의 존재이기 때문이지만 근본적으로 국내 인문학 시장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느낌입니다.


번역도 괜찮은 편이고 역자가 간략한 주석을 달아 이해를 돕습니다. 대신 가장 큰 단점은 요즘 나오는 책답지 않은 편집 상태입니다. 책 사이즈가 작다보니 활자 또한 작아서 가독성이 별로 좋지 않습니다. 왠만큼 관심 있는 분이 아니라면 손 가기가 어려울 듯. 저가로 내놓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인지.... 

a*****1 2015.04.13.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