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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기록한 짠내 가득한 바다 이야기
"청춘이 기록한 짠내 가득한 바다 이야기" 내용보기
언제인지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채널예스에서 '채사모'라는 서포터 비스무리한 걸 운영한 적이 있었다. 채널예스 글을 보고 의견을 내고, 채널예스에 직접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분기마다 15명 정도를 모집했고, 대략 100여 명 가깝게 거쳐 갔다. 처음에는 너도 나도 다 글쓸 것처럼 하다 정작 연재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장 스케치는 쓴 필자가 꽤 있었으나, 칼럼
"청춘이 기록한 짠내 가득한 바다 이야기" 내용보기
언제인지 확실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채널예스에서 '채사모'라는 서포터 비스무리한 걸 운영한 적이 있었다. 채널예스 글을 보고 의견을 내고, 채널예스에 직접 글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분기마다 15명 정도를 모집했고, 대략 100여 명 가깝게 거쳐 갔다. 처음에는 너도 나도 다 글쓸 것처럼 하다 정작 연재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장 스케치는 쓴 필자가 꽤 있었으나, 칼럼이라는 건 역시나 본인만의 콘텐츠가 있기에 가능한 법. 결론적으로 총 4명이 연재를 했는데, 『바다 소년의 포구 이야기』가 그 중 하나.

바다소년이 연재하겠다고 이야기한 건 포구 이야기. 한창훈 소설가를 흠모하던 터라, 흥미가 갔다. 2009년 서울국제도서전이었을 게다. 그때 한창훈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왜 바다 이야기만 쓰냐는 물음에 그는 문학이란 소외받는 사람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답했다. 예전에도 바다는 조정에 착취를 받던 곳이고, 갈 곳 없던 사람이 벼랑까지 쫓겨서 도달한 공간. 산업화 이후에도 마찬가지. 바다는 현지인에게는 고달픈 노동 현장이고, 도시인의 감정 쓰레기나 받아주는 공간. 이후로 드미트리는 한창훈 소설가가 쓴 작품을 하나둘씩 읽어갔고, 그는 지금도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 중 한 명이다. 그래서 바다소년이 풀어낼 이야기가 궁금해졌고 채널예스에서 연재를 하기고 결정. 

그렇게 약 2년.

『바다 소년의 포구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채널예스 담당 편집자로, 의리상 한 권 사야 할 것 같은 불안한 느낌적 느낌. 출판사에서 따로 증정용 책을 한 권 받기도 했으나, 나중에 친필 사인 받으려면 한 권 사야겠다 싶었다. 자주 어기는 원칙이긴 하나, 내 돈으로 산 책에만 사인 받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증정용 책에 사인 받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여하튼, 책을 샀고. 산 책은 읽어야지. 채널예스 연재 시절에도 간간이 원고를 보긴 했으나, 처음에 몇 회만 그랬고, 나중에는 그냥 스치듯 시야에서 사라졌다. 관리하는 필자가 꽤 많고, 스스로 써야 할 원고도 꽤 있는 데다, 사이트 운영과 관련하여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일이 항상 발생하기에, 모든 글을 꼼꼼이 볼 여력이 없다.

정성스레 읽은 『바다 소년의 포구 이야기』는 그러니까 내가 처음 보는 글이었다. 위 사진이 증명하듯, 포스트잇을 꽤 여러 장 붙여야 할 만큼 인상적인 글귀가 가득한 책이다. 최근에 읽은 『청춘의 낙서들』과 비슷하다면 비슷하지만 - 청춘이 잉여라고도 할 수 있는 행위에 몰두한다 - , 문장력으로만 보면 오성은이 한 수 위. 하긴 뭐 문학에 우열이 어디 있겠느냐만. 계속 드미트리가 이러쿵 저러쿵하기보단 글쓴이의 문장을 직접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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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삶의 방식이 있다. 그 방식은 리듬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모두 숨을 쉰다. 하지만 들숨과 날숨, 즉 호흡의 속도가 다르고, 세기가 다르며, 길이가 다르다. 그것을 음표로 그려놓으면, 하나의 악보가 된다. 우리는 늘 소리를 만들어 내고, 마디를 끊으며, 잠시 쉬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악보를 그리고 있다. 바쁜 날은 스타카토, 비가 오는 날은 레가토, 눈부신 날에는 16분음표로 하루를 채우는 것이다. (16쪽)

포구에는 여러 형태의 삶이 있다. 포구는 만선으로 돌아온 노선장의 입가에 띤 작은 웃음이며, 그물을 당기는 선원의 주름이다. 생선을 판매하는 아주머니의 앞치마이며, 바닷물 먹은 서너장의 지폐다. 새벽부터 호루라기를 부는 경매인의 목젖이며, 포구는 위판장을 뒹구는 얼음덩어리다. 끝없이 육지로 코를 박는 뱃머리다. 팽팽하게 때론 느슨하게 배를 지탱하는 밧줄이다. 노동자들이 새벽일을 마치고 마시는 커피에서 오르는 뜨거운 김이며, 아니 그제야 간신히 펴는 그들의 허리, 그 굽고 휘어진 만의 형태가 곧 포구다. (19쪽)

과학의 발전에 따라 우리는 바다에 더욱 가까워졌다. 어쩌면 바다는 근대의 소산이라 할 수 있다. (72쪽)

잘 모르는 거리를 걷거나, 오르막 계단에 앉아 잠시 쉬고 있을 때, 지나가는 주민들이 인사를 건네고 행선지를 물어봐줄 때, 좁은 골목길로 아이들 몇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릴 때, 멀어진 아이들 뒤로 작은 바람이 불어올 때, 나는 여행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곤 한다. 그곳의 공기에, 그 공간에 스며,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것. 그때 떠나왔다는 실감보다는 기어코 다녀왔다는 느낌이 든다. (82쪽)

우리 집 식탁에서 멸치는 주인공을 차지한 적이 거의 없었다. 육수를 우려내다 건져졌고, 김치를 만들기 위한 젓갈로 쓰여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으며, 도시락 반찬에서도 소시지에 밀려 구석을 차지하기 일쑤였다. (중략)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조용한 힘, 바로 소시민적인 삶의 태도가 멸치의 쓰임과 많이 닮아 있다. 멸치가 있어 국물이 진해지고, 김치 맛이 깊어지며, 도시락이 풍성해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는 멸치가 좋다. 멸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 멸치처럼 사는 사람이 참 좋다. (88쪽)

말이 얼마나 빨랐기에 그림자가 끊어진다는 이름이 붙었을까. 그렇다면, 주인을 잃은 그림자는 어디로 가버린 거지. 절이라는 글자와 함께 사라져 버린 것일까. 달리는 말은, 나의 울음과 그 시절의 빛과 바람과 냄새와 모든 게, 어디로.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거지. 흐르는 것은 바다이며, 남은 것은 섬이다. (120~121쪽)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선풍기를 돌리는 모터도 아니며, 전구를 깜빡이는 필라멘트도 아니다. 손가락으로 모든 걸 해결해주는 스마트폰은 더더욱 아니며, 나의 타자 속도는 말할 것도 없다. 그것이 빠르지 않다는 이유는 언젠가 이것들을 느리게 만들어버릴 기술이 우리의 상상과 현실 속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148쪽)

포구를 여행하다보면, 평소 친숙하지 않았떤 어떤 감정이 불쑥 솟구칠 때가 있다. 내 안에 잠복해 있었음에도 나도 잘 모르는 그 감정은 워낙 돌연해서 그리 반갑지만은 않다. 오히려 낯설고 거북스럽기 일쑤다.
이를테면 해진 그물을 기우는 녹슨 바늘에서 방파제 사이로 바다를 가르며 돌아오는 한 척의 배와 수평선 너머로 숨어드는 붉은 태양 속에서 나는 그 감정에 매몰되고 만다. 물질을 마친 해녀의 빈 그물을 보았을 때도 어김없이 표정이 굳곤 했다. 내가 만난 해녀들은 한 포구에서 오래도록 물질을 해 은퇴를 앞둔 사람들이 많았다. 건네는 인사말도 잘 들리지 않아 나의 입모양을 주의 깊게 읽으려 하는 할머니도 있었다. 그네들의 감각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183쪽)

노을이라는 것은 원래 어중간함에서 오는 아름다움이다 . 밤과 아침 사이, 낮과 밤 사이, 어둠과 빛 사이, 개와 늑대 사이의, 그 어정쩡한 시간에서 오는 것은 아름답고 또한 이유 없이 슬프다. 사실 인간도 태어남과 죽음 사이의 순간들을 살아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205쪽)

세상 어느 곳이나, 바다가 있으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겠는가. 하물며 그곳에 바다가 없다 한들 누구라도 시드니의, 모스만의, 발모랄 바다의 주인이 아니라는 법도 없다. 위대한 유산이란 이런 것이다. 나는 벤치에 앉아 두꺼운 책을 읽는 노신사를 한참이나 바라보았고, 해변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 한 여자를 힐끔 쳐다보았다. 모든 게 여유롭고, 모든 게 느렸다.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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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그가 쓴 글은, 청춘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느끼는 불안을 포구를 배경 삼아 이야기하는 에세이인데. 불안과 불만이 바다라는 절대적인 공간에서 해무처럼 짙어졌다 옅어졌다를 반복한다. 뻔한 비유이긴 하지만, 그래서 그의 글쓰기는 허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와 닮았다. 그 끝은 결국 허무이겠으나, 부디 허밍웨이처럼 스스로 포기하진 말게나, 바다소년.
YES마니아 : 플래티넘 l****i 2014.08.0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