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3)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33%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33%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7.0
  • 50대 6.0
리뷰 총점 종이책
지나친 낙관주의?!
"지나친 낙관주의?!" 내용보기
남성과 여성의 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고 앞으로 더욱 좁혀져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남성, 여성 존재가 모든 면에 있어서 같다고 볼 순 없으며, 이 차이점의 적지 않은 부분은 생물학적인 측면으로부터 기인한다. 인류는 역사를 통하여 이러한 차이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가치 판단 체계를 통하여 특정한 성이 지닌 특성에 중요
"지나친 낙관주의?!" 내용보기
남성과 여성의 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있고 앞으로 더욱 좁혀져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여 남성, 여성 존재가 모든 면에 있어서 같다고 볼 순 없으며, 이 차이점의 적지 않은 부분은 생물학적인 측면으로부터 기인한다. 인류는 역사를 통하여 이러한 차이에 대해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가치 판단 체계를 통하여 특정한 성이 지닌 특성에 중요성을 부여함으로써 다른 성이 지닌 특성을 간과하는 경험을 해왔다. 이 과정은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안에 내재화 되어왔다. 그렇기에 역사 안에서 여성은 스스로 자신의 신체를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하고,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통제해왔다. 하지만 인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우리는 하나 둘씩 해방을 맛보고 있으며, 젠더와 관련된 부분 역시 그 조류를 따르고 있다. 물론 여성의 변화 정도가 남성의 그것에 비해 급격하기 때문에 오늘날 많은 부분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말이다. 여성 스스로 자신이 지닌 특성을 재평가하고, 스스로의 가치에 대해 인정하는 것은 지금까지 저평가되어오던 여성의 가치를 높이는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쓰여졌다. ‘제 1의 성’이라는 제목은 충분히 도발적이다 못해 도전적이기까지 하다. 여성을 둘러싼 많은 환경이 변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공적 영역보다는 사적 영역에 적합한 주체로 평가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보면 이는, 페미니즘이 원하는 것은 남성이 지금껏 차지하고 있던 첫째 라는 위치를 여성이 점령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양성 평등이라는 페미니즘적 전제에도 어긋난다 할 수 있다. 물론 저자는 말미에서 제 1의 성이 남성인지 여성인지의 여부가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언급하긴 했지만 말이다. 많은 부분 저자는 남성과 여성의 특징에서 엿보이는 차이점을 생물학적인 부분으로부터 도출한다. 태아의 성은 임신 중 호르몬의 영향에 의하여 태아의 성은 결정되게 된다. 출생 이후에도 프로게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의 영향으로 인하여 남성과 여성은 서로 다른 특징을 소유하게 되고, 이 차이점은 성격에서부터 시작하여 특정 영역에서 보이는 능력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나타나게 된다. 보다 공격적이고 위계서열 매기기에 익숙한 남아의 특성이나, 관계지향적인 여아의 특성은 물론 이들 호르몬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인간은 임신 그 시점부터 남아와 여아를 구분 지으며, 남아는 남아답게, 여아는 여아답게 자라길 사회적으로 기대한다. 그렇게 우리는 삶의 과정 과정을 통해 남성이나 여성의 모습을 하나 둘씩 갖추어 나가게 된다는 점에 대해 저자는 조금 간과하고 있는 듯 하다. 물론, 이러한 남녀의 차이는 서로 각기 다른 영역에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보다 넓은 사회의 관점으로 보았을 땐 이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이, 전통적인 성 역할에 기초한 직업을 선택하였을 경우, 거의 모든 여성은 남성에 비해 불안정한 고용, 저임금을 감당해야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성의 특성이, 그것이 아무리 생물학적으로 결정된 것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여성이 제 1의 성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생물학적 이해 못지 않게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상의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가사 노동의 경제 가치를 인정하는 급진적인 흐름까진 아니더라도, 당분간 혹은 앞으로도 계속 많은 여성이 노동하게 될 ‘돌보는 영역’에 속하는 직업들에 대한 가치 재평가는 이런 면에서 중요하다고 하겠다. 저자는 전반적으로 현재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기계적이고 집권화된 조직 구조는 끊임없이 분권화되고 있으며, 노동의 유연화는 여성에게 가정 내에서 아동을 양육하면서 노동에 종사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생각에는 이미 남성 아닌 여성이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는 전통적 시각이 내재되어 있는 게 아닌지 싶다. 또한 노동조건의 변화가 보다 많은 여성에게 결혼, 출산 이후에도 노동시장에 머무르게 해준다 하여도 끊임없이 야기되는 고용에 있어서의 불안정성, 비정규직화 등의 문제를 무조건적으로 여성에게 유리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이는 여성을 보다 낮은 노동시장에 매몰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 IMF 이후 남성의 일자리를 위한 여성 인력 구조조정이 단행된 것은 이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가치를 언급하던 책은 후반으로 갈수록 마치 남성과 여성의 사랑, 섹스에 대한 차이점을 서술하는 일종의 연애서적으로 변모해 버린 것이 아쉽게 느껴진다. 물론 이들 주제에 대한 남녀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사랑하고 부대끼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다고 하겠지만 저자가 의도한 바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너무도 많은 주제를 한꺼번에 나열하면서 생긴 오류이거나 저자의 욕심이 아닌가 싶다.
q*****2 2004.12.30.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시몬느 드 보부아르를 넘기에는...
"시몬느 드 보부아르를 넘기에는..." 내용보기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 물음에 대해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49년 발표한 '제2의 성'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울러 여성은 경제 및 사회적 세력들의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류학자는 헬렌 피셔는 단호히 여성이 제1의 성이라고 말한다. 나름대로 보부아르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21세기 여성의 존재를 새롭게 정의하고 싶은 희망
"시몬느 드 보부아르를 넘기에는..." 내용보기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 물음에 대해 시몬 드 보부아르는 1949년 발표한 '제2의 성'에서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울러 여성은 경제 및 사회적 세력들의 산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류학자는 헬렌 피셔는 단호히 여성이 제1의 성이라고 말한다. 나름대로 보부아르의 학문적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21세기 여성의 존재를 새롭게 정의하고 싶은 희망에서 출발했다고 생각된다. 그는 여성이 '여성적 마인드'를 바탕으로 21세기 비즈니스, 통신, 교육, 법, 정부, 그리고 시민사회로 알려진 비영리 분야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뇌 해부, 동물 생태, 심리학, 남녀 연구, 세계 비즈니스, 인구통계학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통계들을 활용하고 있다. 저자는 수천 년 전 우리 선조들은 맞벌이가 관례였고 남성과 여성은 평등관계였는데, 농업혁명이 뿌리내리면서 남성들이 땅을 개간하고 들판을 경작하고 농작물을 거둬들이는 중요한 경제적 임무를 맡으면서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러한 흐름은 서구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 여성들이 막강한 유급 노동력으로 출현하면서, 전세계 문화권에서 여성들이 타고난 소질을 발휘해 21세기 비즈니스나 성, 가족생활에 극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얘기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서로 관련 있는 요소들을 통합적으로 생각하는 여성들의 '거미집 사고' 사고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의 힘, 육아와 자녀교육을 통한 감정과 감각의 발달 등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날의 현실은 여전히 남성이 여성에 비해 우위를 점하고 있다. 서구 선진국을 제외한다면 거의 모든 국가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차별 받고 있다. 나는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21세기는 여성의 세기가 될 것임을 의심치 않는다. 또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사회, 경제적인 차별 구조가 허물어지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저자는 주장은 진화론과 생물학에 너무 의지하고 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마도 저자는 여성학의 에베레스트인 보부아르의 아성에 한번 도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그 산은 여전히 우뚝 솟아 있다.
h******0 2002.05.2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