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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존윌리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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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는 가난했고, 20대에는 불안했으며, 30대에는 치열하다가, 40대에는 귀찮아졌다.  뭐, 내 인생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그렇다.  그렇다고 쭈~욱 그러했던 것도 아니다. 시드니 셀던이나 제프리 아처의 책부터 시작하여, 이 책 '스토너'에 이르기까지 나는 읽고 느끼고 쓰기를 반복하면서 어떻게 살야하는지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었으리라. 어느 때에는 홍신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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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에는 가난했고, 20대에는 불안했으며, 30대에는 치열하다가, 40대에는 귀찮아졌다. 

뭐, 내 인생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그렇다. 

그렇다고 쭈~욱 그러했던 것도 아니다. 시드니 셀던이나 제프리 아처의 책부터 시작하여, 이 책 '스토너'에 이르기까지 나는 읽고 느끼고 쓰기를 반복하면서 어떻게 살야하는지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 많은 고민을 했었으리라. 어느 때에는 홍신자처럼 자유를 꿈꾸기도 하였고, 또 어느 때에는 어두운 상점을 돌아다니며 대책없이 우울해 하기도 하였고, 폭풍이 치는 날에는 괜히 밖에 나가 언덕배기에서 비라도 쳐맞아야 직성이 풀리기도 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렇게 그렇게 살다보니 오늘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러했구나...' 혹은 '그런가보다..'가 이 책에 대한 나의 느낌이다.

도입부에 스토너가 의지랑 상관없이 대학에 진학 하였고, 본인의 의지에 따라 전공을 바꾸는 부분은 참 인상적이다. 7막7장의 배경이 아닌 이상, 우리의 삶에 처음부터 어떤 목적을 갖고 태어나 육성된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 

이상한 여자와 결혼하는 부분은 결혼에서 배우자를 구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해주었다. '왜 굳이...'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뭐 그것도 제 팔자지,하고 생각하면 그냥 저냥 넘어갈만하기도 한데... 기나긴 인생에 저런 여자랑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몹쓸 짓인지 생각하면 답답했다. 

캐서린과의 부분은..그냥 그랬다. 뭐 이젠, 그런 것은 사건 축에도 못끼지 않나 싶다. 정상적인 부부관계에서라면 몰라도,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뭐 조금 다른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그게 정당화 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건 우리가 배운 윤리와 도덕 기준이지...정신나간 배우자랑 살면...글쎄. 

장애인이 육체에만 장애가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얼마나 치졸하고 비열해질 수 있는지 보여진 부분도 좋았다. 어쩌면 '장애인은 천사'일 것이라는 생각 조차도 편견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밉상으로 나오는 로맥스의 반성없이 일관되는 독선과 경멸은 마음에 든다. 사람이 한결 같기도 힘들텐데, 소설의 주인공이 스토너라서 그렇지, 로맥스가 주인공이라면 또 하나의 다른 스토리가 완성될 수도 있으리라. 

아쉬운 부분은 딸의 육성이 제대로 되지 못했던 부분. 가장이 바로서지 못했고, 엄마가 또라인데...그런 환경에서 제대로 바르게 성장하기란 여러모로 어려울 듯. 그 부분에서 살짝 반성만 있고, 딱히 뭘 한 것도 없는 스토너는 조금 밉다. 

그리고 그의 죽음. 

 

옮긴이의 후기를 보면 누구는  스토너가 실패한 삶이였고, 그래서 슬펐네 어쨌네 했는데, 나는 공감은 되지 않았다. 그건 그냥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평가일 뿐. 우리는 책을 통해서 남의 삶을 엿본다. 그러고서는 내가 살아가는 방향에 대해 길을 내고 그 길을 따라가게 마련인데...내가 생각하는 바와 다르다고 해서 그게 실패한 삶일까? 과연? 

어느 시골에 홀로사는 농부도 죽고, 이건희도 어쨌거나 제 명이 다하면 죽는 세상이다. 

살다가 태어나 죽는거는 매 한가지이고, 그 과정에서 전 지랄하고 살든, 대충 대충 살든... 뭐 본인이 만족하면 되지 않을까? 그리고, 죽을 즈음에는 살아온 세월들은 가 꿈만 같을 것 같다. 

공부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문구가 있었는데, 밑줄을 그어 놓았다.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하게 쓰여진 것이 마음에 들다. 끝. 

 

 

 

c******m 2021.01.16. 신고 공감 40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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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스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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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의 『스토너(STONER)/RHK/김승욱 옮김』는 ‘1965년 미국에서 발표된 후, 오랜 시간 동안 독자들에게 잊힌 작품’이었다가 50년 후, 작가 존 윌리엄스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 만에 비로소 제대로 된 세상의 평가를 받게되었다.(출판사소개) 초판이 출간 1년 만에 절판되었지만 2010년대에 와서 유럽 전역에서 재출간되며 역주행 베스트셀러 신화(출판사 소개)를 일으킨 작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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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리엄스의 『스토너(STONER)/RHK/김승욱 옮김』는 ‘1965년 미국에서 발표된 후, 오랜 시간 동안 독자들에게 잊힌 작품’이었다가 50년 후, 작가 존 윌리엄스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 만에 비로소 제대로 된 세상의 평가를 받게되었다.(출판사소개) 초판이 출간 1년 만에 절판되었지만 2010년대에 와서 유럽 전역에서 재출간되며 역주행 베스트셀러 신화(출판사 소개)를 일으킨 작품이라는 특이점은 비현실적이다. 이 비현실성이 저자인 존 윌리엄스를, 그리고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를 사라진 흔적으로써가 아니라 시간을 초월해 숨쉬는 인물로 불러낸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p.8) 작품의 첫 문장은 책의 줄거리이자 그의 일생을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작은 농가에서 농부의 외아들로 태어나 아주 어려서부터 집안일과 농사일을 돕던 스토너는 ‘집에서 하는 어드렛일보다 조금 덜 피곤한 허드렛일을 하듯이 학교에서 공부’(p.10)를 한다. 날로 척박해가는 땅의 수확에 도움받기 원하던 아버지는 그를 컬럼비아의 농과대학으로 보낸다. 그는 처음 캠퍼스에 들어섰던 때를 잊지 못하듯 아처 슬론 교수의 영문학 개론 시간,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를 질문받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그후, “모르겠나, 스토너 군?”(p.31)하고 물었던 슬론 교수는 스토너를 새로운 세계, 문학의 세계로 이끈다. 문학은 이제 그에게 새로운 소명이 된다. 슬론 교수 덕분에 ‘처음 시작한 곳에서 다시 출발’(p.42)하는 기회를 잡고 ‘땅’에 메였던 부모의 기대와 행로로부터 다른 길로 들어선다.

 

 

‘무남독녀였기 때문에 일찍부터 고독이 삶의 일부로 자리 잡았’(p.79)던 이디스 보스트윅을 향한 스토너의 구애와 결혼은 자연스럽게 진행된 듯 보였다. 이디스의 어머니 보스트윅 부인을 보았을 때 스토너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금방 알아차렸다.’(p.85) 습관적 불만과 앙심과 절망이 베어나오는 목소리까지. 그날 밤 ‘그는 어둠 속을 빤히 바라보며 자신의 삶이 왠지 낯설고 이상해졌다는 생각을 했다.’(p.88) 자신의 행동이 현명한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던 그가 이 결혼이 실패작임을 깨닫는데는 한 달이 걸리지 않는다. 그녀와의 결혼 생활은 살얼음판처럼 위태롭고 낯설고 두려운 무엇으로 변해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슬픈 것은 딸 그레이스 스토너, 태어나 처음 1년동안 오직 아버지의 손길과 목소리, 사랑으로만 자랐던 아이,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얼굴에 ‘그 내면에서 움직이고 있는 지성이 드러나’던 아이, 스토너의 서재에서 온전한 충만함으로 서로에게 기쁨이었던 아이와의 분리다. 이디스는 두 부녀를 있는 힘껏 떼어낸다, 전략적으로, 철저히.

 

 

이디스는 적의 얼굴을 하고 스토너를 공략한다. 그의 거처를 서재에서 일광욕실로, 결국 학교의 좁은 공동 연구실로 몰아내기까지 수위를 높여가는 행동은 충격적이다. 결국 ‘그래서 그는 가끔 이만하면 살 만하다고, 심지어 행복하기까지 하다’(p.180)고 생각하는 스토너의 포기와 수용과 합리화의 단계들은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적의 얼굴이 이쯤에서 끝나면 좋으련만 스토너의 세미나 추가 수강을 요청하던 찰스 워커, 그의 지도교수이자 노골적으로 워커를 변호하면서 기이할 정도로 스토너에게 적대적이던 로맥스 박사까지 스토너를 이중 삼중으로 애워싼다. 부모님의 쓸쓸한 죽음 또한 물론이다. ‘이제마흔 두 살인 그의 앞날에는 즐겁게 여길 만한 것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뒤를 돌아보아도 굳이 기억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다.’(p.254) 그런 가운데 그의 세미나를 들었던 젊은 강사 캐서린 드리스콜과의 만남은 위안이고 다행이고 슬픔이며 그럼에도 다시 다행이 아니었나 하는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p.274) 캐서린과의 마지막 선택 또한 서로에게 최선이었고 다른 여지는 없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고든 핀치의 사무실을 나선 순간부터 그는 알고 있었다. 존재의 작은 중심에서 자라난 무감각한 공간 속 어딘가에서 자기 인생의 일부가 끝나버렸음을, 자신의 일부가 거의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이라서 다가오는 죽음을 거의 차분한 태도로 지켜볼 수 있을 정도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p.301) 스토너는 ‘일이 망가질 것’을 ‘우리 자신이 파괴될 것’과 동의어로 생각한다. 그만큼 어느날 그에게 다가왔던 문학은 모든 것을 불구하고 지켜져야 할 가치이자 유일한 삶의 의미다. 그는 공격을 회피하는 법이 없다. 고통을 호소하는 법 없이 시선을 고정하고는 묵묵히 견뎌낸다. 그의 딸 그레이스 또한 그녀가 될 수 있었을 모든 가능성에 도달하지 못한 채 도망치는듯한 삶을 감수한다. 인간이 인간을 해롭게 하는데는 이유도 끝간데도 없어보인다. 작품의 마지막, 작가는 ‘죽음’을 묘사한다. 노쇠와 쇠약, 병과 죽음으로의 긴밀한 바통터치는 익숙하고 보편적인 경로를 보여주면서도 특별한 대단원의 막을 그려낸다. 이 마지막 장면들, 그 먹먹함은 『타타르인의 사막(디노 부차티/문학동네)』‘ 의 끝 페이지들을 연상시킨다. 조반니 드로고가 ’인류 공동의 적‘을 대면하는 순간의 밀폐된 공간, 드로고의 마지막 몫인 ’별들‘처럼 스토너는 ’그 자신의 책‘에 손을 뻗는다.

 

 

작가가 그려낸 윌리엄 스토너라는 인물은 무엇보다 ‘투명하다’는 단어의 인간화처럼 보인다. 그가 열정적으로 소망하는 순간이나 무기력하게 구석으로 내몰리는 순간이나 스토너는 외부의 것들을 투명하게 통과시킨다. 스토너를 통과해 곧바로 독자에게 닿는 충격은 그래서 더 이상 캐릭터의 것, 작중 인물의 것이 아니고 아림과 통증으로 되살아나고 증폭된다. 왜 이런 일이,이럴때는 어떻게 등의 대안과 처방과 방책을 끌어모으다가도 기대했지만 헛될 수 있고 헛되리라는 ‘인간 조건’을 인정하게 만든다. “그는 온전한 순수성, 성실성을 꿈꿨다. 하지만 타협하는 방법을 찾아냈으며, 몰려드는 시시한 일들에 정신을 빼앗겼다. 그는 지혜를 생각했지만, 오랜 세월의 끝에서 발견한 것은 무지였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그는 생각했다. 또 뭐가 있지?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자신에게 물었다.”(p.388)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의 마지막 성찰은 시처럼 노래처럼 유연하게 흐른다. 어쩌면 그를 처음 이끌었던 ‘소네트’만큼이나 완벽하다. 역자가 인용한 작가 인터뷰에처럼 스토너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 일에 애정을 갖고 있고, 의미도 있다고 생각했다(p.395)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작가는 그를 ‘진짜 영웅’으로 생각했다고 밝힌다. ‘진짜 영웅’,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사랑이었건 고난이었건 불평도 핑계도 없이 감당했던 스토너는 그런 면에서 영웅이었음은 분명하다. 또 한 편의 시처럼,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가 적절한 인사인지 모르겠다.


 

 

문학, 언어, 정밀하고 기묘하며 뜻밖의 조합을 이룬 글 속에서 그 무엇보다 검고 그 무엇보다 차가운 글자를 통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는 마음과 정신의 신비, 이 모든 것에 대한 사랑을 그는 마치 위험하고 부정한 것을 숨기듯 숨겨왔지만, 이제는 드러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다가 대담하게, 종내는 자랑스럽게.(p.159)

그는 다시 숨을 쉬었지만, 그의 몸 안에서 뭐라고 꼭 집어 말할 수 없는 차이가 느껴졌다. 자신이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떤 지식 같은 것을. 세상 모든 시간이 자신의 것인 양 느긋해도 될 것 같았다.(p.390)

하지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원한다면 그들을 무시할 수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그의 것이었다. (p.391)

 

 

 

 

 

k*******n 2021.09.11. 신고 공감 34 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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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는가'와 '어떻게 사는가'의 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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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서 공감을 받는다는 건, 인류의 보편적인 무언가를 건드리고 이야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50년의 세월과 문화를 뛰어넘는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는, 작가와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와 다른 삶에서도 똑같이 울려퍼진다. 삶에서 무엇을 기대했는가. 인류가 기억하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남기지 못한 삶은, 실패한 삶인가. 이 소설의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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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서 공감을 받는다는 건, 인류의 보편적인 무언가를 건드리고 이야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50년의 세월과 문화를 뛰어넘는 소설이 던지는 메시지는, 작가와 주인공이 살았던 시대와 다른 삶에서도 똑같이 울려퍼진다. 삶에서 무엇을 기대했는가. 인류가 기억하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남기지 못한 삶은, 실패한 삶인가.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담백하면서도 도파민이라고는 터질 구석이 별로 없다. 마치 땅의 일부인 것처럼 평생을 땅에 바치며 농사일을 하던 그의 부모, 그리고 지금의 기준으로는 다소 이해하기 힘든 가정 환경에서 자란 스토너의 부인 이디스, 급하게 정해진 진로와 결혼. 그리고 불행한 그들의 신혼생활, ‘생산’을 위해 잠시 터졌던 욕정, 농사일을 하듯 묵묵히 평생 열정을 바쳤지만 대학 내 정치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한 그의 강의 인생, 중년의 나이에 생기를 잃은 가정생활을 잊게 해 준 젊은 여성과의 불륜, 학과장과 대학원생 워커와의 대립, 우정을 쌓은 듯 하면서도 애매했던 친구 관계, 딸 그레이스에 대한 연민과 그녀의 삶, 마지막 죽음까지.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중년 남성의 일대기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상황은 각기 조금씩 다르겠지만, 평생 일하느라 바쁘신 부모님 밑에서 자라 별다를 것 없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가 결혼을 하고 가정을 얻었으며, 원만하지는 않지만 이혼한 것도 아닌 결혼생활을 보내다 잠시 사랑에 빠지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묵묵히 할 일을 하고 소신을 지키는 듯 보이다 암에 걸려 그간의 삶을 회상하고 자신의 책을 어루만지며 떠나는 그의 삶은, 목적어만 바꾸어 오늘날 대한민국의 중년 남성의 삶에 대입해도 크게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스토너가 다른 이들에 비해 좀더 우직하고, 괴짜에 가깝고, 소신을 지키는 삶을 살았던 것은 사실이나 여러 차례의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그의 일이나 연구가 세계 정세의 변화와는 크게 상관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대한민국에서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이들이 이야기는 개인의 이야기가 사회의 원동력이 되었으나, 스토너는 전쟁에 참여한 이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쫓지만 자신이 직접 뛰어들 용기까지는 미처 내지 못한다. 책을 읽고 나서 대학 강의의 디테일이나 폐쇄적인 대학 사회의 모습이 꽤 생생해서 작가의 이력을 찾아보고는 이해가 되었다. 스토너는 작가 존 윌리엄스의 자서전이나 다름 없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을 정도로, 작가의 삶와 스토너의 삶은 궤적이 비슷하다. 작가도 30년 넘게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쳤고, 스토너가 다닌 미주리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았으며, 태양볕이 내리쬐는 텍사스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윌리엄 스토너라는 이름조차 작가의 이름에서 절반 빌린 것 같은데, 40대에 벌어진 그의 이야기가 가장 중심이고 작가가 이 소설을 집필했을 당시의 나이가 40대 중반이라는 걸 감안하면, 아마 작가 자신의 인생을 스토너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이해하면 스토너의 행동과 생각이 와닿는 부분이 있다. 소설을 읽는 여러 독자들은 이 소설에서 스토너가 착하고, 우직하고,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열심히 삶을 살다간 인생이라 평한다. 반면 그를 정교수로 승급시켜주지 않은 학과장과 애정 없는 아내 이디스 등은 스토너와 대립하는 ‘빌런’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좀더 다른 시점에서 소설속 인물을 이해하자면, 스토너는 이디스의 행동을 ‘관찰’할 뿐, 그녀의 감정이나 본심을 파악하는데는 실패한다. 딸을 키우고, 집안일을 거들지만 (아마 높은 확률로 산후우울증에 시달린 듯한) 이디스를 내버려둘 뿐이다. 그리고는 평생 그녀와 거리감을 두며 그녀의 노력을 가면을 쓴 것이라고 묘사하고, 그녀가 자신을 집에서 내쫓았다고 생각한다. 반면 이디스의 입장에서 스토너를 보면, 멀리 떨어진 곳에 와서 아는 이도 없이 혼자 갇힌 채 생활하다 우울증에 걸렸고, 취미생활을 통해 활력을 얻지만 그마저 열정을 잃고, 자신의 감정을 (물론 잘못된 방향이긴 하지만) 투영한 딸아이와는 관계가 어긋난데다 남편은 불륜을 하는 삶에서 어떤 의미와 행복을 찾을 수 있었을까. 이디스와의 결혼이 잘 되지 않은 것을 스토너의 입장에서는 이디스 개인의 문제로 넘기고, 그로 인해 불륜이 정당화(말이 통하지 않는 이디스와 달리 자신과 연구 방향성이나 지적인 면에서 여러 모로 유사한 젊은 대학원생)한다는 이야기는 로맨틱하게 보일지 모르나 진부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이 책은 평범한 남자의 평범한 이야기를 촘촘하고 담백하게 그려내면서 세월과 공간을 초월해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었다. 분명 그러한 요소가 많은 이야기였고, 스토너가 자연의 변화와 사람들과의 관계, 자신의 연구에서 예민하게 감각하고 열정을 담아 삶을 꾸려나간 것 그 모습 자체에 의미가 있다는 주제는, 결과만이 중요한 사회에서 많은 이들에게 위안을 주지 않을까 싶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n 2025.07.04. 신고 공감 20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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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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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벽한 삶을 산 가장 완벽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   1. 개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기간 동안 미국에서 학생과 교수로 살아간 윌리엄 스토너에 대한 이야기다. 부인은 이디스. 딸 그레이스. 스승 아처 슬론. 대학친구 매스터스와 고든 핀치. 사랑 캐서린 드리스콜. 앙숙이 된 동료교수 로맥스. 못된 학생 찰스 워커. 난 원래 괜찮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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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벽한 삶을 산 가장 완벽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

 

1. 개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는 기간 동안 미국에서 학생과 교수로 살아간 윌리엄 스토너에 대한 이야기다. 부인은 이디스. 딸 그레이스. 스승 아처 슬론. 대학친구 매스터스와 고든 핀치. 사랑 캐서린 드리스콜. 앙숙이 된 동료교수 로맥스. 못된 학생 찰스 워커.

난 원래 괜찮은 소설을 읽고 나면 주인공뿐만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에 대해서도 나름 여러 각도로 생각해보곤 한다. 이 소설을 중반까지 읽었을 때만 해도, 이디스나 로맥스에 대해서 이 인간들을 어떻게 봐야되는지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소설을 다 읽은 뒤에는 전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오로지 스토너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싶어졌다. 너무 완벽한 인간을 보았기 때문에, 그 외 인생은 위의 소개로 끝낼란다.

 

2. 스토너는 실패한 인생인가 

 

1> 사회적 실패 

 

스토너는 교수로서 학문적 성과가 아주 높이 평가받지는 못했고, 대학내에서의 지위도 높은 위치로까지는 가지 못했다. 그러면 실패인가 

치타는 초속 29미터로 달린다고 한다. 인간은 이 정도 속도로는 못 달린다. 그러면 인간은 실패한 것인가? 아니잖어. 아이큐가 180에 달하지 못한 인생은 실패한 것인가. 아니잖어.

그 직업에서의 업적. 사회적 지위. 부의 축적의 정도가 인생의 성패의 척도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러한 것들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기준일 뿐이다.

삶의 평가는 그 사람 자신만이 자신만의 기준으로 할 수 있다고 본다.

 

2> 결혼의 실패 

 

스토너는 이디스에게 끌려 바로 결혼했으나, 결혼생활은 순탄치도, 결코 행복하지도 못했다. 이디스는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계속 혼란만 겪는 어린아이같은 여자였다. 가정 청소부였다가 욕정에 집착했다가, 예술가놀이 했다가, 딸엄마 놀이 하는 등.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몰라 갈팡질팡만 해대면서, 스토너가 자기를 버리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그럴까봐 은연중 두려워하며 삐딱하게만 구는 아이였다.

그러므로 스토너의 결혼은 실패인걸까 

 

결론부터 말해, 난 아니라고 본다. 첫사랑은 대부분 상대가 아니라 자기 환상을 사랑한다. 첫사랑은 대부분 미숙한 사랑이니까. 스토너는 자신에게 찾아온 그 첫사랑의 감정에 충실했다. 비록 이디스가 그 환상에 맞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 결과 결혼생활이 결코 행복한 시간은 되지 못했지만, 그게 어때서?

첫사랑의 감정이 두려워서 고백 한 번 제대로 못해보고, 그저 막연한 기억으로만 남기고 사는 게 잘한 짓도 아니지 않나.

스토너는 자신의 알 수 없는 감정 앞에서 정말 용기있는 남자였던 거다. 그리고 이디스에게 남편으로서 헌신하며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삶을 산거다.

 

3> 사랑의 실패 

 

42세 연애고자 스토너,, 불륜의 길을 걷다.

 

나는 불륜은 나쁜 짓이다라는 매우 엄숙한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내가 스토너의 불륜만큼은 응원하게 됐다.

굳이 사회윤리적 관점에서 좀 더 얘기해보자면, 자기에게 충실한 배우자를 외면하는건 매우 부도덕한 잘못이지만, 혼인관계가 사실상 파탄난 상태에서 배우자가 이혼만 거부하고 있는 상태라면 이때의 외도는 사회윤리적 비난가능성이 매우 약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불륜을 변호하다니....

 

스토너는 자기보다 한참 어린 이십대 후반의 드리스콜과 사랑에 빠진다.

그 사랑의 시작도 참......

불행한 결혼 생활 때문인지 남녀관계에 있어 자존감이 팍 낮아진 우리 스토너 아저씨는 드리스콜이 자기 좋아하는지도 모르고, 자기한테 화가 나있는 걸로 생각하거나, 자기가 방해가 된다고 여기며 헤어지려고 고민하다가 극적으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서야 연애를 시작한다.

 

그런데 또 이 아저씨가 상대의 마음을 확인한 뒤부터는 그 사랑에 열심히 직진한다. 40대의 연애놀이...그것도 어린 여자와의 불륜이라면 제3자의 관점에서는 추하고 더러운 것으로 여겨져야 보통인데, 내가 이 소설에 빠져버린 것인지, 너무도 응원하고픈 사랑이었다. 아마도 스토너가 이디스하고의 관계에서 희생과 헌신을 다했기 때문일 것 같다.

 

그러나 이 연애는 결국 세상에 들킨다. 마누라는 진즉부터 알고, 대학에도 들키고.. 스토너 못갈궈 안달인 로맥스한테도 들키고......

, 이제 스토너는 사랑의 도피를 감행할 것인가......헤어질 것인가.......

스토너는 헤어지는 것을 택한다. 스토너와 드리스콜 모두 사회적 삶을 가지고 있고, 이를 포기하고 사랑의 도피를 행하게 되면 둘은 결코 행복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그 둘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스토너는 사랑에 실패한 것인가.?...

내 답은 역시 no...

 

스토너는 두려워서 사랑을 시작도 못하지 않았고, 무모해서 사랑을 정리하지 못한 것도 아니다. 스토너는 사랑에 충실했다. 그거면 됐지.

 

4> 아버지로서 실패 

 

스토너의 딸, 그레이스는 결코 행복한 유년기를 보냈다고 할 수 없고, 어린 나이에 임신하고, 결혼하자마자 남편 잃고, 젊은 나이에 술에 빠져서 파삭 늙어버린 인생이다.

그랬으니, 스토너는 아버지로서 실패한 것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단락에서 다루겠다.

 

3. 스토너는 소심한가?

 

아내 이디스의 불성실과 이기적인 태도에도 스토너는 불만을 토로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이디스한테 모든 것을 양보하고 끌려다닌다. 부당한 행패를 부리는 로맥스에 대해서도 굳이 다투려 하지도 않는다. 이런 모습들을 보면 스토너는 왜 이렇게 소극적인가하는 생각이 들 수가 있다. 그런데 스토너의 다른 모습들을 보면 스토너가 그저그런 소심한 인간이 아니라는 건 너무 분명하다.

 

1> 소심하지 않은 스토너.

 

스토너는 자기 인생의 진로를 결정함에 있어, 자기를 대학보낸 부모와 일말의 상의도 없이 스스로 결정한다. 첫사랑의 감정을 느낀 여인에 대해서는 과감히 들이대서 결혼도 하고, 대학이 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입대하지 않은 자를 비겁자로 모는 환경에서도, 자기가 선택한 인생길을 밀어붙인다. 좋게좋게 넘어갈 수도 있었을 찰스워커의 자격 심사에서도 곧이곧대로 평가하고, 불륜으로 비난받을 사랑에도 자신의 사랑에 솔직할 줄 알며, 주위의 압박에도 아랑곳 않고, 정년 후 연장할 수 있는 권리도 당당히 주장한다.

 

2> 이디스에게는 왜 

 

이토록 소심하지 않은 스토너가 왜 이디스한테는 끌려다니는 모습만 보인 걸까.

이디스는 스토너의 첫사랑이었다. 비록 결혼하고보니, 이디스가 자신이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었다고 해도, 결혼은 그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오히려 이디스를 더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결혼생활에 대해 스스로 희생과 책임을 다한거라고 본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는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느냐라기보다는 자기 선택에 책임을 지려하느냐에 달렸다고 볼 때, 그런 점에서 스토너는 지나칠만큼 너무 어른스웠던거다.

 

3> 로맥스에게는 왜 

 

스토너에게 대학생활에서 중요했던 건 출세가 아니라, 종신 교수직이었을 뿐이었으니까. 로맥스가 뭔 짓을 하든 스토너에게 그것을 뺏을 수는 없었기에, 로맥스는 그저 상대할 가치가 없던 인간이었던 거다. 로맥스는 자신의 수치심을 스토너에 대한 행패로 대체하려 한 어린애였을 뿐이니까.

 

4> 딸 그레이스에 대해 왜 좀 더 적극적으로 아빠로서 다가가지 못했나.

 

이디스가 그레이스를 자기 맘대로 만들려고 하는 것에 대해 스토너는 적극적으로 막아서지 않았다. 이는 일견 스토너가 아빠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한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데 그러면 스토너가 어떻게 했어야 했을까.

이디스와 그레이스를 대상으로 아빠가 좋아,엄마가 좋아싸움을 해야했을까.. 그레이스한테 자기 엄마를 상대할 가치도 없는 여자로 만들어야 했을까.

그레이스가 어린아이답게 스토너에게 매달렸다면, 아마도 스토너는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그레이스를 지켰을 거다. 그러나 그레이스는 그러지 않았고, 스토너는 그레이스의 그런 선택을 존중해준거다. 딸도 자기가 그 생각을 알 수 없는 타인이고, 이디스는 딸에게 엄마지, 적은 아니니까. 스토너는 자기 생각대로 딸을 이끌려고 하지 않은거다.

그리고 그레이스도 그런 스토너를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마워했을 뿐이지. 그런데 누가 스토너를 그 딸과의 관계에서 비판할 수 있단 말인가.

 

4. 내가 보는 스토너

 

앞서 쭉 얘기했듯, 난 스토너의 삶을 실패나 슬프다라는 말과 연결짓는 것에 공감하지 않는다. 반대로 영웅이나, 위대함 같은 말로 포장하고 싶지도 않다. 스토너가 어떠한 존재가 되기 위해, 거기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산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인간은 신이 아니고 완전하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백지 상태로 인생을 시작해서 기껏해야 백년 살다가 인생을 끝내는 존재다. 그러면 완벽한 인간은 어떤 사람일까? .가장 신에 가까웠던 인간이거나 결과적으로 봤을 때, 가장 이상적인 결과를 만들어낸 사람일까?

그러나 어떠한 결과를 위해 한 인간의 인생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생의 각 순간에 그 존재로서 충실했으면 됐다고 본다. 내게 완벽한 인간이란 그런 사람이다.

 

스토너는 자기가 속한 집단의 소수가 된다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았고, 형식적인 사회윤리적 가치기준에 자기 삶을 구속시키지도 않았고, 자기 인생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으며, 자기의 직업적 양심을 꿋꿋이 지켰고, 사랑의 감정 앞에 용감했고, 치기어린 인간들의 시비에 결코 자기 인생을 흔들리게 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존중할 줄 알았고, 자기의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스토너는 인간으로서 가장 완벽한 삶을 산 가장 완벽한 인간이었다.

5. 추가하는 글
 
리뷰를 다 쓰고 나서 다른 리뷰들을 읽어봤다. 스토너에 대해 일단 답답하다. 평범하다. 누구나 스토너등의 말로 평가하는 리뷰들이 많은 것 같다. 물론 그러고 나서 다르게 해석하는 식이긴 하지만 말이다. 
 바로 전 단락에서 내가 살펴봤던 스토너의 삶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선 과감하고, 결단력있는 반면, 타인의 삶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고 너무나 정중했다. 그런데 보통사람들은 이 반대지 않나. 자기 삶에 대해서는 머뭇머뭇하거나, 남탓 세상탓하는 반면, 타인의 삶에 대해서는 쉽게 말하고 쉽게 참견하는 것 같은데...스토너가 어떻게 평범한거지??
  죽음을 앞둔 스토너의 독백 '너는 뭘 기대했나'라는 구절에 의미를 두는 리뷰들도 많은 것 같은데, 일반적으로 삶에 대한 회한으로 해석하는게 맞겠지만,..나는 그 말이 꼭 신이 인간의 삶을 살아보고 하는 말같게도 들렸다. (그런데 난 솔직히 스토너 암선고 이후부터 내용은 거의 넘어가다시피 읽었다. 내게는 별로 집중하고픈 내용이 아니어서.)
 인간으로 산다면 식욕, 성욕, 수면욕만큼. 사랑, 외로움. 명예욕 등 인간관계에서의 욕망 역시도 자연스러운 건데, 스토너는 그런 욕망에 대해 자신에게 솔직하고, 상대에게 고마워했다. 
  그에 반해, 보통사람들 특히 어른들은 솔직하지 않지, 고마워하기 보단, 자기가 타인의 뭐인양 행세하려 들지...
 
6 추가2..
 
로맥스에 대항하는 법
 
학장이 된 로맥스는 치졸하게 스토너의 강의 시간표를 스토너에게 매우 불리하게 그리고 스토너가 원하지 않는 강의로 채우게 했다. 
이에 대해 스토너는 어떻게 대응할 수 있었을까?
즉시 이의를 제기를 하는 방식으로 맞섰다면, 오히려 스토너가 자기 좋을 대로만 강의계획표를 만들고 싶어하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매도당했을 가능성이 크다. 재량권 남용은 객관적인 입증이 어려우니까..피해자쪽에서 대응하기가 쉽지 않지..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이런 문제를 조율해줄 수 있는 합리적이고 중립적인 기구의 도움을 받는건데, 그 무렵의 미국사회가 그정도의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었을 것 같지는 않고. .....
 
  스토너는 이런 부조리함에 참고참다가 그냥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강의해버리는 식으로 대응해서 결국 자기가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다.  종신교수직이라는 유일한 무기를 잘 활용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원하는 결과는 얻었을지언정, 스토너의 인생관과는 맞지 않았을 것 같다. 
냉정히 말해, 이런 방법은 재량권남용에 대해 재량권남용으로 대응한거니까 말이다. 
 스토너는 자기보다 약자인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해서 자기의 권익을 지킨거니까. 
 
이렇게 논리적인 정공법이 아닌 우회적인 방법은 뭔가 문제가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7 추가 3
 
평범함?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함과 내가 생각하는 평범함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범함이란 소위 사회적으로 잘나지 않음을 의미하는 듯. 
 최근에 이제 이혼합니다란 소설을 읽었는데, 거기서 여고동창들이나 주인공의 남편이 사람을 보는 시선과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e********g 2023.09.27. 신고 공감 1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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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스토너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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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컨텐츠로서는 빵점이다. 관객들이 사이다가 없으면 절대 보지 않으려고 하는 시대에 <스토너>를 읽는다는 건 얼마나 답답한 일일지. <스토너>에는 사이다가 단 한 방울도 없다. 물조차 없이 삶은 계란을 연이어 먹는 기분이 든다. 그런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읽게 된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 교과서에서나 존재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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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컨텐츠로서는 빵점이다. 관객들이 사이다가 없으면 절대 보지 않으려고 하는 시대에 <스토너>를 읽는다는 건 얼마나 답답한 일일지. <스토너>에는 사이다가 단 한 방울도 없다. 물조차 없이 삶은 계란을 연이어 먹는 기분이 든다. 그런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읽게 된다.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모든 생명은 존엄하다. 교과서에서나 존재할 법한 이 문장이 실제하는 문장이라는 걸 술술 넘어가는 <스토너>의 페이지를 지켜보며 느꼈다. <스토너>는 주인공 윌리엄 스토너의 인생이 곧 줄거리이다. 그의 청소년기부터 시작해 죽을 때까지의 여정을 흡사 이 책이 소설이 아니라 전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담백하게 그려냈다.

 

<스토너>는 그 담담하고 약간은 딱딱한 듯한 서술 방식을 볼 때에는 전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책이 주인공으로 앞세운 스토너라는 인물을 보게 되면 이게 소설임을 단박에 알게 된다. 이 책이 전기였다면 특별한 서사가 없는 우리 주변에서 한 두 명은 흔히 있을 법한 그런 인물을 주인공을 내세우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윌리엄 스토너는 특별한 사람과는 거리가 멀다. 그가 살면서 거둔 성과에 비춰보면 그렇다. 그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한 대학의 영문학과 교수로 죽는다. 죽음까지의 여정에서 그의 인생에 빛나는 성취는 딱히 없다. 그다지 화목한 가정도 아니었고, 학자로서 빼어난 연구 결과를 낸 것도 아니다.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다. 그의 인생을 하나 하나 따져보면, 성취보다는 실패가 더 많았다. 그래서 죽고나면 모두의 기억 속에서 금방 잊힐 법한 인물, 그게 <스토너>의 스토너다.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 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 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마우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런 인물의 인생 이야기 앞에서 바삐 움직이는 눈을 막을 도리가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자들이 윌리엄 스토너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 아닐까. 앞서 말했듯이 <스토너>의 주인공 스토너는 전기로 만들어지기에는 부족한, 어찌 보면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다. 순탄하게 흘러가는 일이 거의 없는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우리와 사는 모습이 별반 다르지 않은 스토너에게서 독자들은 그런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스토너는 가정에서, 일터에서, 인간관계에서, 숱한 좌절과 실망을 경험하지만 인생이 그런 것이겠거니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건지, 왜 내 인생만 이 모양 이 꼴인지 한탄하는 모습, 또 자신의 앞에 닥친 문제들을 필사적으로 해결해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스토너에게서 볼 수 없다.

 

이런 스토너의 태도가 처음에는 답답하게 느껴졌다. 왜 저런 와이프랑 계속 사는 거지? 왜 이혼하지 않아? 왜 딸하고 관계를 회복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지? 계속해서 자기한테 부당한 일을 저지르는 직장 동료한테 그만하라는 말조차 하지 않는 거지? 왜 자기가 겪는 부당함을 다른 곳에 알려보려고 하지도 않지? 아, 답답해. 

 

"그렇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살다 보면 그런 일도 있는 법이죠. 세월이 흐르면 다 잘 풀릴 겁니다.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에요." 이 말을 하고 나자 갑자기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자기 말에 담긴 진실을 느낀 그는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절망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 문장을 읽고서 그가 소극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방관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자기 앞의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도 더 적극적인 태도로 삶을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윌리엄 스토너는 깨달은 자처럼 살았다. 이 모든 것이 내 앞을 지나갈 것임을 명확히 알고, 그것들이 자신을 거쳐 흘러나갈 수 있도록 관찰했다. 

 

우리는 삶 속에 닥친 문제들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한다. 문제가 내 삶에 있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지를 못한다. 묵묵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도 자기 문제 앞에서는 조급증을 내고 만다. 어떻게든 내 문제를 없애버리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고, 내 마음을 더 괴롭게 만들었던 경험이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삶은 평안함과 고요함과는 먼 삶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윌리엄 스토너가 인생에서 대단한 성취를 거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의 인생은 다른 이들의 인생과 마찬가지로 소란으로 가득했지만, 그는 소란스럽게 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것들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대신에 관찰자로서 지켜보며 자기 내면의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스토너와 같이 살고 싶다. 심심하게, 소란스럽지 않게. 

 

YES마니아 : 플래티넘 s*********2 2023.08.06. 신고 공감 1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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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남자의 담백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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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와이프와 낭독 독서를 하고 있다. 한 책을 서로 돌아가며 한 페이지씩 낭독한다. 첫 책으로 위화의 <인생>을 읽고 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스토너>가 생각났다. 중국소설인 <인생>과 영미소설인 <스토너>  전혀 닮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소설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8p 윌리엄 스토너는 1910년, 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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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와이프와 낭독 독서를 하고 있다한 책을 서로 돌아가며 한 페이지씩 낭독한다첫 책으로 위화의 인생을 읽고 있는데읽으면 읽을수록 스토너가 생각났다중국소설인 인생과 영미소설인 스토너>  전혀 닮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이 두 소설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8p 윌리엄 스토너는 1910열아홉의 나이로 미주리 대학에 입학했다. 8년 뒤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그는 박사학위를 받고 같은 대학의 강사가 되어 195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강단에 섰다그는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했으며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중에도 그를 조금이라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그가 세상을 떠나자 동료들이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중세 문헌을 대학도서관에 기증했다이 문헌은 지금도 희귀서적관에 보관되어 있는데명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영문과 교수 윌리엄 스토너를 추모하는 뜻에서 그의 동료들이 미주리 대학도서관에 기증.”

 가끔 어떤 학생이 이 이름을 우연히 발견하고 윌러엄 스토너가 누구인지 무심히 생각해볼 수 도 있겠지만그 이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애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스토너의 동료들은 그가 살아 있을 때도 그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고지금도 그의 이름을 잘 입에 올리지 않는다노장교수들에게 스토너의 이름은 그들의 기다리는 종말을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고젊은 교수들에게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일깨워주지 않고 동질감을 느낄 구석도 전혀 없는 단순한 이름에 불과할 뿐이다.

   

소설의 첫 부분이 부분만 읽으면 이 두꺼운 책이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스토너의 이야기로 채워질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하지만 책을 다 읽고 처음으로 돌아와 몇 줄로도 적을 수 있는 그의 삶을 다시 읽어보면전혀 다른 삶이 보인다

   

스토너는 농부인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잘 배운 농부가 되고자 대학에 입학한다조용하고차분한 그는 대학에서 기본교양과목을 듣는 중 문학을 만난다스토너는 세익스피어의 시를 통해 문학을 사랑하게 되고전공을 바꿔 부모님을 떠나 문학 교수로 대학에 남는다

   

스토너는 교내의 정치나 출세보다 학문 자체에 대한 성취가 더 중요하다그는 교육자로서 삶을 살아가며사랑하게 되는 이디스를 만나 결혼한다이디스에게 스토너는 성에 차지 않는 인물이다대저택에서 풍요히 누리며 살고 싶어 하는 이디스와 소박해도 자신의 상황에 맞게 살아가는 스토너는 맞지 않고그의 가정은 흔들린다딸 그레이스의 탄생으로 가정생활에 잠시 행복을 경험하지만이디스는 스토너에게서 그레이스를 빼앗아버린다애증의 이상한 부부관계는 스토너의 인생 내내 이어진다.

   

167p 사실 그녀가 이렇게 새로운 삶의 방향을 찾게 된 책임은 그에게 있었다그녀가 그와 함께하는 결혼생활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해주지 못했으니까따라서 그녀가 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곳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 그를 따라갈 수 없는 길을 가는 것은 옳은 일이었다

   

이런 스토너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다하나는 장애인인 로맥스 교수와의 대립이고다른 하나는 캐서린과의 만남이다.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스토너의 수업에 로맥스의 장애인 제자가 들어 온다그는 유쾌하고 실랄한 태도를 갖춘 로맥스와 비슷하다그 학생은 수업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임기응변식의 달변으로 그럴듯한 발표 수업을 마치지만그런 모습은 스토너에게 통하지 않는다결국좋지 않은 성적을 받게 된다스토너는 이 학생의 이의 신청을 통해 평가위원회에서 로맥스와 대립하게 되고둘은 갈라진다정치에 관심이 많은 로맥스는 스토너가 사양한 학과장이 되어스토너에게 부당한 대우로 평생 조교수 이상 올라가지 못하게 만든다이 스토너와 로맥스의 평가위원회에서의 대화는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다

   

캐서린은 스토너의 수업을 듣는 학생으로기막힌 수업 준비와 문학에 성실한 태도는 스토너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그녀는 스토너에게 사랑이란 무엇인지 알게 한다.

   

274p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재미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그리고 당황스런 향수(鄕愁)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캐서린과의 사랑은 이디스로 인해 사라지고스토너는 더욱 문학에만가르치는 것에만 몰두한다


 

353p 앞으로도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무감각무심함초연함 밑에 그것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강렬하고 꾸준하게옛날부터 항상 그곳에 있었다젊었을 때는 잘 생각해보지도 않고 거리낌 없이 그 열정을 주었다아처 슬론이 자신에게 보여준 지식의 세계에 열정을 주었다그게 몇 년전이더라어리석고 맹목적이었던 연애시절과 신혼시절에는 이디스에게 그 열정을 주었다그리고 캐서린에게도 주었다그때까지 한 번도 열정을 주어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그는 방식이 조금 기묘하기는 했어도인생의 모든 순간에 열정을 주었다하지만 자신이 열정을 주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했을 때 가장 온전히 열정을 바친 것 같았다그것은 정신의 열정도 마음의 열정도 아니었다그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하는 힘이었다그 두 가지가 사랑의 구체적인 알맹이인 것처럼상대가 여성이든 시()그 열정이 하는 말은 간단했다나는 살아 있어

   

스토너의 삶을 보고 있으면 먹먹한 마음이 든다사랑 없는 가정을 끝까지 이어가며 자신의 공간(서재), 자녀(사랑(캐서린)을 서서히 잃어감에도 끊임없이 자신의 역할을 이어가는 모습은 -물론 이해할 수 없는 모습도 있지만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삶과 겹쳐 보인다

   

이 소설이 비록 출판된 지 50년이나 지난 지금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아마도 무엇인가 잘하기를 요구받고 다른 사람보다 뛰어남을 추구하는 지금의 사람들에게 스토너의 좌절과 슬픔외로움이 더 공감을 받기 때문인 것 같다그럼에도 그러한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나아가는 스토너의 모습은 인생이란살아간다는 것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다위화의 인생을 보면서 이 책이 다시 떠오른 건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YES마니아 : 로얄 l******4 2020.06.06. 신고 공감 5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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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스토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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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탄식의 연속이다.답답하고,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언제까지 참을건가..이젠 지를때가 되지 않았나..이쯤에서 한번 폭발해줘야 하지 않나..끝까지 사이다는 없는건가..없다. 고구마가 하나, 둘 더해 갈 뿐이다.딱 두번,질식사를 막아주는 숨 쉴 구멍을 제공해 주긴 했다.(바람을 가장한) 캐서린과의 지독한 사랑의 스캔들이 그랬고,중세영어 상급과정을 1학년에게 가르치며 스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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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탄식의 연속이다.
답답하고, 답답하고, 또 답답하다.

언제까지 참을건가..
이젠 지를때가 되지 않았나..
이쯤에서 한번 폭발해줘야 하지 않나..
끝까지 사이다는 없는건가..
없다. 고구마가 하나, 둘 더해 갈 뿐이다.

딱 두번,
질식사를 막아주는 숨 쉴 구멍을 제공해 주긴 했다.
(바람을 가장한) 캐서린과의 지독한 사랑의 스캔들이 그랬고,
중세영어 상급과정을 1학년에게 가르치며 스토너 특유의 권태와 무관심으로 로맥스를 엿먹여 준 것이 그러했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온 몸에 퍼진 암세포로 죽음을 앞두고 있던 스토너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이다.

난 무엇을 기대하는가?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살아가며,
다가오는 상황과 감정을 거스르지 않고 물 흐르듯이, 
하지만 무심하지 않고 따뜻함을 잃지 않는 삶.

너무 담담해서 지루하기까지 한 스토너의 삶이 어느 시점에서부터인지 나의 가슴 깊숙한 곳에 너무나 가치있고 의미있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소설이 가진 신비한 힘이다.

온갖 수모와 박해를 감내해 내는 '우리가 조국'이었던 것처럼,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 자신만의 길을 걷는 '우리 모두는 스토너'이다.
j******l 2025.03.25.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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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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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분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스토너의 인생이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지만 뒤로 갈수록 그의 인생이 그렇게 우리가 사는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아 덤덤하게 읽었습니다 세상 모든 스토너가 좀 더 행복하길 응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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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분 추천으로 읽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스토너의 인생이 너무나도 무기력하게 느껴져 마음이 무거웠지만 뒤로 갈수록 그의 인생이 그렇게 우리가 사는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아 덤덤하게 읽었습니다 세상 모든 스토너가 좀 더 행복하길 응원해 봅니다
YES마니아 : 로얄 a****k 2024.09.24.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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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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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생의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p.9   이 책은 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이다. 많은 독자분들의 인생 도서로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책인데 그동안 너무 자주 들어왔던 터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구매했었는데 구매하고 나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우선순위에 밀려 책장에 꽂아두고 있었다. 주말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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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생의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p.9

 

이 책은 존 윌리엄스의 장편소설이다. 많은 독자분들의 인생 도서로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책인데 그동안 너무 자주 들어왔던 터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한동안 고민하다가 구매했었는데 구매하고 나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우선순위에 밀려 책장에 꽂아두고 있었다. 주말이 되어서 읽을 책을 고르고 있다가 이상하게 끌려서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스토너라는 인물이다. 스토너는 농사를 짓는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시골에서 자랐다. 원래는 구청 직원의 권유로 컬럼비아 미주리 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했다. 당시 가정 환경에 유복한 편은 아니어서 근처에 사는 어머니의 사촌 집에서 숙식을 해결해야만 했다. 물론, 아침에는 집주인의 일을 조건으로 말이다. 졸업한 이후 부모님의 농사를 도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님 역시도 그 부분을 원하시는 듯했다.

 

대학에 입학한 스토너는 예상과 다르게 영문학의 매력에 빠졌다. 필수 과목으로 듣게 된 영문학 개론을 수강하면서부터였는데 담당 교수인 아처 슬론을 만나게 되면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결국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학원 과정을 밟고, 우연한 계기로 첫눈에 반한 여성을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다.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사로, 가정에서는 남편과 아버지로서 묵묵히 역할을 보여 주고 있는 스토너의 일대기를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주위에서 들었던 것처럼 잔잔한 매력이 있는 작품이었다. 큰 사건이 있는 이야기도 좋아하지만 마치 물결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는 스토리도 좋아하다 보니 취향에 맞았다. 꽤 늦은 시간에 페이지를 열었던 작품이었는데 단숨에 끝까지 읽을 정도로 꽤 몰입력이 있었다. 다 읽고 시간을 보니 이미 자정을 넘어 새벽이 되었다. 그만큼 푹 빠져서 읽었고, 스토너의 인생을 하나하나 집중했고, 또 공감이 되기도 했다.

 

스토너가 살아온 삶을 보면 그렇게까지 특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서 거대한 자본을 지니신 분들도 아니었고, 그렇게까지 비상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막강한 사교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거느리는 사람도 아니었다. 흔히 자기소개서 처음에 "성실하신 아버지와 인자하신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아"로 시작되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지점에서 스토너에게 마음이 움직였다.

 

그저 성실과 정직을 미덕으로 살아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꽤 오랜 시간을 대학 강단에 섰음에도 조교수의 위치로밖에 오르지 못한 부분이 그렇다. 이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읽는 내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번쯤 자신의 신분 상승을 위해 눈감고 타협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실력이 되지 않는 오만한 학생을 시험에 통과시켜 주겠다는 학과장과 대립했다. 누가 봐도 스토너가 옳은 쪽이었다.

 

스토너는 예민한 부인과 불화를 겪으면서도 딸에게만큼은 자상한 아버지이기도 했다. 물론, 중반에 이르러 윤리적으로 어긋한 불륜을 저지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입장이 이해가 되었다. 사실 불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 스토너가 부인과의 사이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 느낌을 받았기에 개인적인 서사가 담긴 측면에서는 뭔가 모르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스토너가 한 행위 자체는 부인뿐만 아니라 자녀에게도 큰 상처라는 점에서 예의가 없는 일이라는 생각만큼은 변함이 없다.

 

스토리 자체는 되게 잔잔한 호수처럼 흘러가지만 읽는 내내 바다를 보는 듯했다. 내면의 파도가 흘러가고, 누군가 돌을 던지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여운이 남았고, 또 울림이 있었다는 뜻이다. 영문학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직업조차도 스토너와 다른 삶을 가지고 있지만 나 또한 어느 부분에서는 스토너의 삶을 따라가고 있었다는 게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그렇다고 스토너처럼 대쪽같은 성격은 아니지만 말이다. 책을 덮고 나니 50년이 흐른 이후에 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는지, 명작이 되었는지 증명이 되었다. 소개에 나오는 "사는 삶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라는 문구가 무척이나 공감이 되었던 작품이었다.

YES마니아 : 골드 이달의 사락 m*******6 2023.08.20.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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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라는 한 남자의 일생에 관련된 내용인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좀 우울하면서도 잔잔한...? 느낌이네요. 애초에 막 흥미롭고 궁금함을 일으키는 내용이 아니라 한번에 읽지는 못했고 조금씩 나눠서 읽고있어요. 그래도 읽어볼 만 하니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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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라는 한 남자의 일생에 관련된 내용인데 전체적인 분위기가 좀 우울하면서도 잔잔한...? 느낌이네요. 애초에 막 흥미롭고 궁금함을 일으키는 내용이 아니라 한번에 읽지는 못했고 조금씩 나눠서 읽고있어요. 그래도 읽어볼 만 하니 추천합니다!
t**********1 2024.09.06.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