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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아주 교과서적이라 할 알레고리 화법을 취하기 때문에, 사연의 표면에 매몰되면 안 된다. 물론 (거름만 아니라면야 ㅋ) 매몰되어도 상관 없긴 한데, 그럼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는 셈이다. 내일쯤 리뷰(아직 머리 속에만 써놓은 상태)하게 될 영화 <론썸 도브 처치>에서 '또 우화(기독교 성경의 우화들을 가리킴)군요. 아버지는 항상 그런 식이에요.'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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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아주 교과서적이라 할 알레고리 화법을 취하기 때문에, 사연의 표면에 매몰되면 안 된다. 물론 (거름만 아니라면야 ㅋ) 매몰되어도 상관 없긴 한데, 그럼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놓치는 셈이다. 내일쯤 리뷰(아직 머리 속에만 써놓은 상태)하게 될 영화 <론썸 도브 처치>에서 '또 우화(기독교 성경의 우화들을 가리킴)군요. 아버지는 항상 그런 식이에요.'란 대사가 나오기도 하지만, 정말 기독교 성경에나 나올 법한 우화의 얼개로, 도덕의 허울을 쓴 광신 상태 등 자폐적 정신을 비판한 그 의도가 재치 있기도 하고 지적인 맛이 풍겨 아직도 입가에 웃음이 머금어진다.

사연의 표면에 매몰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무슨 매몰될 표면이 있기나 했다는 건 사연 자체의 두께도 제법 볼륨이 있다는 뜻이다. 이 영화는 표면상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전형적인 '여고 괴담'류의 진행이니, 원하는 관객은 괴담으로만 즐기고 잊어도 되는 구조이다. 그런데 그렇게만 감상한 관객이라면, 대체 왜 결말이 그토록 이상하게 이뤄졌어야 했는지 못내 납득이 안 될 것이다. 어떻게 저주의 결말이 축복의 극치일 수가 있을까? 결말 직전까지만 보면 완벽한 여고괴담이었는데, 결말 때문에 무슨 설익은 코미디로만 뒤끝이 남을 수도 있는 것이다.

주인공 몰리 하틀리는 이제 18세 생일을 며칠 남겨 둔, 공부 잘하고 예쁜(글쎄, 분위가 봐서 그렇다고 밀어붙이는 것 같으니 일단) 여고생이다. 내 생각으로 미모보다는 공부 쪽에 승부를 건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이 학교(아주 학비가 비싼 고급 사립학교임)의 골빈 킹카가 몰리에게 유달리 눈독을 들이는 것 같다. 그 처지에서는 공부 잘하는 게 최상의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았겠는가. 몰리는 정서도 안정되고 집안 형편도 개인 학업 성적도 평균을 웃돌고 자상한 아빠도 곁에서 지켜 주는 등 겉으로 보아 남 부러울 게 없는 인생이다. 하는 품으로 보아 아이비리그 입학은 따놓은 당상이지 싶기도 하다. 이 배역은 헤일리 베넷이 맡았는데 외모에셔 약간 동양인 티가 나고(왜 이런지는 다음에 설명하겠음. 개인적으로 좀 조사해 본 게 있어서), 미국인들이 동양인 틴에이저에 대해 갖는 선입견을 아주 전형적으로 대변한캐스팅이라 하겠다.

이런 일류 학교에는 어설픈 선생 따위가 설 땅이 없어서, 애들이 수업 진도도 따라잡기 매우 힘들고('감정을 넣어서 읽으라고!' - 밀턴의 실낙원 수업에서 국어 선생이 하는 말이다. 하필 관련 대목이 '저주' 어쩌구 하는 그 소절이다), 심지어 일개 상담 교사가 무려 박사 학위 소지자이다(반전 있으므로 흘러가는 배역으로 보지 말 것. 이런 사소한 배역에도 낭비 없이 기능을 부여한 연출이 흐뭇). 우리 몰리는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타고난 자질대로 공부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옆에 자꾸 따라붙는 알렉시스라는 띨띨하고 광신에 사로잡힌 못생긴 여자애가 신경 쓰인다. 하지만 전학 오자마자 교내 킹카인 조셉이 기존 여친을 차면서까지 그녀에게 접근해 오는 등 기분은 최고다. 신경 쓰이는 건 오직 '그 일' 하나밖에 없다.

영화 맨처음에는, 지금까지 내가 소개한 사연의 이 본줄기와는 전혀 무관한, 웬 어린 남녀의 밀회 장면이 나온다. 이 여자애야말로 헐리웃 틴에이저 주인공 배역의 전형을 다 갖춲다 할 진짜 미인이며, 저 공부만 잘하게 생긴 몰리하고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고, 얘한테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애도 아이돌 그룹에서 잠시 개인활동이나 하러 나온 듯 잘생긴 녀석이다. 희한하게도 이 소녀 역시 며칠 뒤 18세 생일인데, 비록 후미진 헛간에서 이성과 만나는 중이지만 누가 봐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은 진행이고 분위기이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한데, 갑자기 현장을 급습한 게 소녀의 아버지이며, 남자애한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딸을 끌고 나간 후, 함께 닷지 트럭을 몰고 동반자살이라도 하려는 듯 난폭 운전을 하며, 그 전에 딸의 목을 흉기로 찌르려는 시도까지 한다. 딸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그러나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주여 용서하소서'이며, 눈에서는 하염없이 고통의 눈물이 흐른다. 결국 딸을 '죽이지' 못한 아버지는 본인이 절명하고 마는데....

기독교 구약 창세기에 나오듯 가장 이상적이라 할 교인상은 신의 뜻을 따라 외아들까지 제물로 바칠 수 있는 아브라함 같은 인물이다. (아 물론, 모세 이후에는 그들의 신이 이런 인신공희 관습을 단호히 거부한다면서 개화된 문명, 고등종교로 한 걸음 나아가는 티를 여러 대목에서 두드러지게 내긴 한다) 아담과 이브 모티브(처음에 설화라고 썼다가 고침)를 아주 단순하게 해석하면, 순수했던 영혼이 성관계 이후에 비로소 육욕에 눈을 뜨고 죄를 짓고 수치심을 알았다는 건데, 어쩌면 그 두 남녀도 마악 18세를 넘길 시점이었을지 모른다. (스포일러) 여기서 '18세의 저주'란 사실 별것이 아니라, 성인(애덜트)으로서 성의 쾌감을 맛보고 비로소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아이를 낳게 하거나 낳을 수 있으므로) 관문을 상징하는 것이며, 영원히 죄 안 짓고 어린이처럼 순수한 상태에 머물려면 동정을 지키거나 관문을 넘지 말고 죽는 수밖에 없다. 이 영화에서는 대단히 흥미롭게도, '동정은 곧 죽음'이란 설정을 취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겠는가. 인생에서 가장 개체에 짜릿한 쾌락을 안겨줄 순간, 계기를 거부하고 외면한다면 그게 죽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여기서 살아도 죽은 듯 사는 인간은 예컨대 저 못난이 광신도 알렉시스 같은 애다.

참 재미있는 게, 사춘기 때에는 희한하게 부모가 막 미워지는 게 애들 심리다.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해서가 아니라, 그 이전부터 그냥 미워지고, 애정의 제스처와 배려도 하나같이 짜증난다. 애들이 바라는 건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멋지게 인정 받고, 멋진 이성을 골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너무나 슬프지만 이것이 누구나 겪고 겪어야만 할 인생사의 위대한 공통 원리 중의 하나이다. 이 영화에서 그 부모들이, 딸들이 18세의 문턱을 못 넘게 하고, 착한 마음(곧 동정)을 지킨 채 죽이려 드는 것(마치 아브라함의 자식 봉헌을 연상케 하지 않는가?)은, '성숙= 이성에 눈뜸= 곧 죄악'의 등식을 애들 입장에서 극단적인 단순화, 상징을 시도한 것이라 봐야 한다. 물론 또 어느 부모가, 딸아이의 성경험과 죽음을 (아무려면) 맞바꾸려 하겠는가. 어디까지나 애들 입장에서 부모의 걱정과 배려가 '날 죽이려 드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이다. 또한 이는, 내면으로야 육적 쾌감을 간절히 바라면서도 한편으로 죄책감을 떨칠 수 없는 심리를 정확히 캐치한 결과이기도 하다.

거의 수학적으로 에누리없이 나눠떨어지는 구조의 미학이 돋보였으며, 영화 감상이 개운한 건 꼭 감독의 세계관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정확히 메시지를 접수했다'는 완전한, 개운한 소통의 결과일 수도 있다. 물론 그 메시지에 관객이 동의를 하고 안 하고는 또 별개의 문제겠고.

s****o 2023.05.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