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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면 중국과 관련되서 수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와있다. 경제가 대세인 지금은 중국관련 경제서적이 주류를 이루지만 불과 10년전만해도 중국의 현대사와 관련된 책들이 많이 출간됐다. 최근에는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 1.2.3' 을 재미있게 읽었다. 글이 지나치게 단편적이어서 호흡이 끊어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사진과 함께 읽는 재미도 쏠쏠했고, 특히 이 책 덕분에 루쉰,심종문에 관심을 갖게 되어 그분들의 주옥같은 글들을 다시 읽는 기회도 생겼다.독서의 힘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어 끝없는 독서의 마력에 빠지게 만든다. '혁명의 맛'은 최근에 읽었던 윤태옥의 '길위에서 읽는 중국현대사 대장정'과 또다른 재미를 주는 책이다. 정치와 음식을 묶어서 이렇게 재미있게 쓸수 있는 것은 저자의 방대한 지식때문이다. 특히 5장 '공산당과 혁명의 맛'에 나오는 '거민식당' 스토리는 읽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왜 중국요리가 프랑스 요리와 함께 세계 2대요리인지 이책을 보며 비로서 이해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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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맛]음식으로 탐사하는 중국 혁명의 풍경들
요리는 인간의 삶과 공존한다. 사회변화와 함께 한다. 생활이 풍요로워질수록 요리 종류는 다변화되었고, 세상이 빨라질수록 음식도 인스턴트화 되었고, 불안한 사회일수록 자극적인 맛을 찾았다. 중국에서도 수많은 왕조의 변화, 혁명의 역사와 함께 음식의 변화들이 있었다고 한다. 음식의 역사를 탐험하다 보면 중국 혁명의 역사를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중국에서 미식을 즐기는 문화의 발달은 송나라 때부터다. 강남의 싱싱한 나물과 향신료가 더해지면서 다양한 요리가 등장하게 된다. 청나라 때는 만주족과 한족 문화가 융합하면서 만한전석이 더욱 화려해지기도 한다. 문화혁명기에는 소박한 요리인 ‘노동병 메뉴’가 등장하고, 등소평의 개방 이후에는 음식점의 다양화가 이뤄진다.
책에서는 음식과 관련된 흥미로운 단면들을 보여준다. 양고기 요리를 즐겼던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칸, 쌀밥을 즐겼던 주원장, 강남을 8차례나 방문했던 건륭제 때는 ‘만한전석’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고, 닭과 오리 요리를 좋아한 건륭제, 중국 역사에서 항상 국가 흥망성쇠의 열쇠를 쥐고 있었던 환관들이 미식가가 된 사연들, 상어 지느러미를 즐겨 먹었던 서태후, 달걀 하나가 서태후의 입에 들어가기까지 여러 명의 환관을 거쳐야 할 정도로 까다로웠던 서태후 이야기 등 역사의 이면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청대에 내성의 후퉁(뒷골목)에서 팔던 바이미저우(흰 쌀죽), 유타오(막대기 모양의 튀긴 빵), 싱런차(살구씨 속을 갈아 쌀가루와 설탕을 넣고 끓인 차), 더우장(두유), 소금에 절인 달걀, 더우츠(중국식 청국장) 등을 팔던 행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마치 예전에 골목마다 외치던 ‘찹쌀떡 사려~~’처럼 말이다.
오늘날 베이징 명물로 자리 잡은 ‘솬양러우(양고기 샤브샤브)’나 ‘카오양러우(양 불고기)’ 같은 요리는 몽골 지배의 흔적이라는 이야기, 중국 궁중 요리인 ‘만한전석(滿漢全席)’에 담긴 통치술, 홍위병의 혁명적 요리, 서역 후이족에서 온 볶음밥인 차오판이, 곡식을 빻아 먹는 화베이 지역의 요리, 쓰촨요리인 매콤한 비빔국수인 단단몐(擔擔麵) 의 인기가 쓰촨 출신인 덩샤오핑의 인기로 오른 이야기, 마오쩌둥의 시대엔 매운 요리가 유행했던 이야기, 중국을 대표했던 광둥 요리, 중국에서 시작한 라몐, 왕조가 세워질 때마다 요리에 대한 요구가 달랐던 중국, 서양요리와 융합하는 상하이 요리, 쑤저우 요리와 한저우 요리의 융합 등도 사진과 함께 소개한다.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이자 리얼리즘의 대표인 루쉰이 베이징 장발여관에 묶으면서 쓴 읽기를 통해보는 뒷골목 음식문화도 볼 수 있다. 베이징에서 중국 경극의 황금 시대를 연 경극 스타 메이란팡이 즐기던 신맛이 강한 더우즈(豆汁, 콩국)도 소개 한다. 문화혁명기엔 베이징의 고급 음식점에선 ‘노동병 메뉴’만을 내놓아야 했는데, 노동병 메뉴는 요리 하나와 옥수수 만터우, 건더기가 거의 없는 국으로 된 식단이었다. 노동자, 농민, 병사를 위한 소박하게 차린 식단이었다.
맨 마지막 장의 고추와 쓰촨요리의 탄생에서는 조선을 거쳐 들어간 고추가 둥베이를 통해 조선족과 여진족이 즐기던 맛이된 사연, 중국의 매운 맛에 합류하는 과정, 마오쩌둥의 출생지인 후난에 고추가 최초로 전파되면서 혁명을 위해 매운 것을 먹자고 외쳤던 마오쩌둥 이야기까지 흥미롭다.
사실 청나라 중기까지 귀족, 지방 호족, 부유층의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고급 요리는 비밀에 붙였기에 기록이 없었고 구전요리라고 한다. 문화혁명기에는 요리명칭이 바뀌기도 하고, 신중국이 건국되는 시기에는 번체자를 간체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오자가 생기기도 하고...
지금은 전반적으로 매운 요리가 대세라고 한다. 기존의 매운 요리로는 쓰촨 요리였는데, 지금은 매운맛 요리가 인기라고 해서 지역별 전통 요리의 특색이 무너지고 있다고 한다. 4대요리인 베이징, 광둥, 상하이, 쓰촨 요리 등 전통적인 조리법과 요리가 조금씩 해체되고 융합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일본의 요리 평론가이자 미술감정가인 가쓰미 요이치다.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 한창일 때 미술품 감정과 국제적인 가격 판정을 의뢰받아 중국을 방문했고,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중국 음식 맛을 탐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를 음식 탐사를 하다보면 중국의 왕조의 흥망사와 중국 혁명의 풍경, 개방 이후의 음식의 변천사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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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해체와 파편화, 융합의 시대다. 마찬가지로 중국 요리도 해체와 파편화, 융합의 과정을 거치며 변모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왕조의 변천, 혁명의 역사와 함께 한 중국 음식의 해체와 융합의 맛있는 이야기다. 읽는 내내 음식의 맛이 어떨지 호기심을 자극하고 군침을 돌게 하는 탐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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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대국인 중국은 음식에서도 세계인의 미각을 돋굴 만한 요리들이 많다.세계 제1위의 인구와 세계 제4위인 광활한 면적 그리고 56개의 소수민족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인간의 기본 3대 욕구는 의.식.주라고 하지만 가장 원초적이고 본능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식(食)문화가 아닐까 한다.허기를 채워야 신체의 근육이 살아나면서 거동과 사회생활이 가능한 것이다.그런데 중국과 같이 광활한 나라에서는 음식의 종류가 셀 수가 없을 정도이면서 지역마다,기후대마다 음식의 특색이 다를 것이다.
중국은 역사적,문화적,생활환경적인 차원에서 음식의 종류가 정해졌다.내륙은 짜고 매운 맛이 많고 해안가는 담백하고 달콤한 맛이 많은 것이 특색이다.이것을 기후대별로 분류하면 황하 유역을 중심으로 위쪽은 북방의 맛,아래쪽은 남방의 맛으로 분류하고 있다.베이징을 중심으로 한 북방요리,상하이를 중심으로 한 저장요리,홍콩을 중심으로 한 광둥요리 그리고 쓰촨을 중심으로 한 쓰촨요리가 발달했다.
이 글은 요리 평론가인 가쓰미 요이치 저자가 1960년대부터 30여 년간 중국 현지의 음식 탐방을 하면서 풀어낸 중국 음식의 전반적인 특색을 다루고 있다.당연 역사와 문화,(혁명적)인물들과 관련한 요리가 소개되고 있다.모든 분야가 시시각각 변화하고 있는 가운데 중국의 음식도 전통적으로 분류되고 있는 음식에서 차츰 퇴색되어 가고 있다.이것은 중국의 정치권을 이끌어 가고 있는 정치지도자의 혁명기에 홍보되었던 음식 맛을 되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이를테면 마오저둥이 국공합작 기간에 매운 맛을 중점 홍보하고,덩샤오핑의 고향 쓰촨의 매운 맛이 어우러져 현대적인 감각으로 중국 어느 곳에서든 재현하고 있다.요리도 유행과 스타일에 민감하듯 중국 요리도 지방색을 고수하되 전통 맛에서 살짝 벗어난 감각으로 기울어 가고 있는 것이다.
베이징 2대 요리인 솬양 러우(양고기 샤브샤브)와 카오야(오리 구이)는 둥라이순과 췐쥐더가 오랜세월 베이징 시민의 벗이 되었다.베이징의 양대산맥인 솬양 러우와 카오야가 현재는 베이징 솬양 러우,베이징 카오야식으로 브랜드명이 바뀌면서 옛명성이 많이 퇴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대신 앞서 말했듯 중국 현대사에 정치 거물인 마오저둥,저우언라이,덩샤오핑의 미각을 살려 음식 맛을 개발하고 소비자의 구미를 당기고 있는 것이다.특히 베이징 요리는 청말 중국 산둥성에서 올라온 요리사들에 의해 다양하게 개발되었다.또한 중국은 지역에 따라 특색 있는 요리가 줄을 잇고 있는데 공통점이라고 하면 밀가루와 관련한 음식이 많다.기름에 튀기고 볶고 찐 음식은 색,향,맛으로 식객들의 입맛을 돋구고 있다.그중 최고 요리는 상어 지느러미와 제비 집을 최고급으로 여긴다고 한다.(大師級)
청대 건륭제에 의해 한족까지 평정하면서 중국 요리는 만한전석(滿漢全席)으로 격상되면서 진귀한 호사스러움과 고급스러움이 요리에 나타나게 되었다.요리 평론가인 가쓰미 요이치 저자는 중국 각지역의 요리 문화와 정치적 과도기의 음식과 관련한 에피소드를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어 중국 음식의 과거,현재의 주소를 가늠하는 시간이 되었다.특히 중국 음식의 풍경은 다채롭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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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 음식은 극히 한정적이다. 최근 중국 현지 요리를 다루는 프로그램이 많이 나오면서 더 많이 알려졌지만 익숙한 것들은 홍콩이나 화교들이 외국에서 만들어 판 음식들이다. 중국 특유의 과장법이 덧붙여진 요리들은 일단 시선을 확 잡아당긴다. 실제 맛은 알 수 없지만 시각적으로는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대만이나 중국이나 홍콩 등을 짧게 여행하면서 그곳 음식을 맛보면 그때의 환상이 깨진다. 향신료 등이 너무 달라 새로운 맛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 중국 음식을 중국 역사와 연결시킨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이다.
혁명의 맛이란 제목보다 중국 요리의 미궁이란 표현이 더 맞다. 문화 혁명을 거치면서 중국 음식이 많이 퇴보했지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음식들이 역사와 실제 상관없는 것들도 상당하다. 대표적인 것들이 향신료와 광동 요리로 대표되는 음식이다. 사천 요리에 대해서도 매워서 한국인의 입맛에 맞다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고추와 연결시킨 장에서 이 맛이 실제 알려진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것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도 음식의 많은 부분이 조선 말기나 일제 시대에 개발되고 발전한 것이다. 전통에 기댄 마케팅에 의해 윤색된 것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조금 아쉽다. 문헌에 이름만 나오고 요리법이 적힌 것이 사라진 요리의 경우는 더욱 더.
저자는 요리와 중국 현대사를 엮어내었다. 중심에 있는 것은 요리고, 역사 속에서 요리와 음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고찰하고 있다. 그 유명한 만한전석도 있지만 북방의 후이족이나 몽골족들이 가져온 요리나 향신료들이 북경 등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말할 때 나의 기존 인식이 무너졌다. 몇 가지는 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알았지만 생각 이상으로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 특히 후이족의 영향은 정말 대단하다. 이 요리가 시중에서 산동요리와 섞여 서민과 귀족의 요리로 발전했다고 하는데 이것들이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많이 사라졌다. 저자가 실제 경험한 문화혁명 당시 음식 맛은 개성도 맛도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전통의 식당들조차 문을 닫았고, 재료는 구하기 힘들어진 시대였으니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마오쩌둥은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고 말하고, 평생 고향의 음식을 주로 먹었다고 한다. 한때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먹었던 적이 있는데 이것을 상상하면서 서슬 푸른 문화혁명 당시 중국을 생각하면 어떠했을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혁명 후 농민을 우대하고, 음식 맛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그를 생각하면 실제 음식의 암흑기였을 것이다. 마오쩌둥의 죽음 이후 다시 식당이 문을 열고 다양한 식재료를 사용해서 맛난 요리를 만들었지만 혼란과 과도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토마토케첩이 들어간 전통요리란 것도 나올 정도였다니 두말할 필요도 없다.
광대한 중국은 각 지역마다 요리의 특징이 다르다고 배웠다. 세계적인 요리라고 배웠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명성이 너무 과장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80년대만 해도 중국요리라는 것들은 화교나 대만이나 홍콩 등을 제외하면 제대로 맛을 볼 수 없었는데 이 음식들은 기존의 전통 요리와 다르다고 한다. 전설과 과장과 거짓이 뒤섞여 만들어낸 음식들은 그곳만의 특징이 아니라 다른 지역의 요리법을 혼합한 것도 상당하다. 홍콩 요리를 프랑스 요리와 엮어 설명한 부분은 이것을 잘 드러내준다. 그리고 중국 현지는 혁명과 반혁명의 요리로 나누어진 적도 있다 보니 단절된 역사가 분명히 존재한다. 아니면 저자처럼 혁명 당시나 이후 멋진 요리를 맛봤다고 한다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것이다.
문화혁명이 중국 요리의 암흑기라면 청 말기는 부흥기다. 그 유명한 만한전석도 이때 만들어졌고, 고급요리가 많이 개발된 것도 이때다. 북경에서 만주족과 한족이 뒤섞이기 전보다 후에 더 많은 음식이 대중에게 흘러나왔는데 이때 큰 역할을 한 것이 환관이다. 자금성에 재료를 납품하던 것이 환관들의 연줄로 이루어졌고, 밖의 대규모 레스토랑의 고문이 모두 환관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국 요리의 역사는 어떤 측면에서 환관 요리의 역사라고도 말한다. 한때 한국에서 궁중요리라고 하면서 유행했던 것을 생각하면 좀더 이해하기 쉽지 않을까.
정확한 미각과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요리가 있다. 바로 그 부분에서 저자는 표현이나 경험이 탁월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중국 요리에 대한 환상이 사라지고, 다시 되살아난다. 환상이 사라지는 것은 역사와 과장된 표현들에 대한 것이고, 다시 되살아나는 것은 되살아난 경제와 더불어 과거의 맛들이 재현되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상하이에 가면 늘 먹는 음식이 한정적인데 한 번 정도 맛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통 상하이 요리가 어떤 것인지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전제 조건이 있지만.
요리는 그 시대와 함께 호흡한다. 자주 보는 요리 프로그램에서 셰프들이 멋진 요리를 하는 것도 그 재료나 이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런 것을 생각하면 문화혁명과 공산당의 맛을 표현한 장에서 느낀 저자의 안타까움과 절망은 당연한 것이다. 만한전석 등이 만주족과 한족을 뒤섞는 통치의 맛이라면 혁명의 맛은 평등의 맛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이 평등의 맛은 맛이 없다. 마오의 죽음 이후 부활하는 맛도 있지만 사라지는 맛도 있다고 하는데 문외한이 나는 잘 모르겠다. 이것을 홍콩 요리와 화교와 연결해서 풀어내었고, 고추의 매운 맛을 한국인들을 위해 덧붙여 낸 장에서는 앞에서도 잠시 말했던 사천 요리의 환상을 깨부순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펼쳤지만 그 내용이나 무게가 무거워 생각보다 어렵게 읽었다. 아직 제대로 소화시키지는 못했는데 중국 요리를 다른 시각에서 새롭게 보는 기회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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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맛을 읽은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중국 요리에 많은 관심을 가져서다! 현재 중국요리의 진화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놨다고 할 수 있겠다. 중국요리의 탄생 진화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현재 세상에 가장 잘 알려진 요리가 되었는가를 너무도 자세히 알수있었다. 각 지방의 유명요리와 요리의 기원, 중국 지도자들의 입맛과 혁명과 관계된 요리...이후 문호혁명과 대약진운동을 겪으면서 변화되는 요리에 대해 알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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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에 필요한 매운 맛. 이 귀절을 보며 한국 축구를 이기기 위해, 또는 한국처럼 운동 경기에서 의지를 다지고자 매운 김치나 고추를 먹는 일본 운동 선수가 떠올랐다. 마오쩌둥도 쓰촨의 매운 맛을 혁명에 활용했다는 점에서 맛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책의 내용은 맛을 초점으로 둔 역사서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의 혁명 전후를 맛의 변화로 바라본 시도가 상당히 신선했다. 사실 맛만 놓고 보면, 기술할 내용이 너무나도 많아 이 책의 두께로 감당이 안 되었을 것인데, 역사를 아우르며 맛에 대한 기술을 축소 압축해 지루하지 않고 의미 있는 독서를 할 수 있었다. 중국 혁명기에 발생한 맛에 대한 중국인의 압제는 정말 끔찍하다. 밥을 먹는데 마오쩌둥 어록을 암송해야 불순분자로 낙인찍히지 않을 수 있고, 심지어 그 맛도 싱겁고 전혀 미각적 쾌감이 없었다고 한다. 식사 앞에서 무엇을 암송하거나 주절대는 건 종교적으로나 사상적으로 너무나도 싫어하는 까닭에 마오쩌둥 치하의 중국인의 답답함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맛은 중국의 권력과 민족 혼합의 역사를 통해 점차 발전했고, 현재와 같은 다양성을 폭발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광동요리라고 하면 누구나 감탄을 할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다. 프랑스와 견주어도 당당하다고 평하는 중국 요리를 저자는 일찍이 맛보았고, 당시 레시피를 원론적으로 따른 정통 요리를 실컷 맛볼 수 있었을테니 상당히 즐거웠으리라 예상한다. 음식 탐사는 누구나 해보고 싶은 일이지만,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저자처럼 역사를 얹는 각고의 노력이 없으면 그저 누구나 써내려가는 블로그 맛집 탐방정도에 그칠 것이다. 맛평론가들이 기술하는 내용도 그다지 와닿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넓게 보는 역사의식 없이 그저 그 지역에 대한 소개가 배경지식의 전부인 경우가 많다. 혁명의 맛은 그런 점에서 혁격히 다른 지위를 지닌 책이다. 서태후의 등장, 상어지느러미 요리, 궁중의 맛 봉쇄 작전, 청나라 시대, 혁명에 의한 중국 전역의 변화 등을 먼저 알고 난 후에 맛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하기 때문에 왜, 어떻게 에 대한 설명을 스스로 파악할 수 있다. 한국의 맛도 너무나도 쓸 게 많을 것이다. 한국전쟁, 일제식민치하 시대, 조선 시대 등을 관통하는 맛과 역사는 흥미로우리라 예상한다. 가쓰미 요이치의 평론가적 감각이 잔뜩 담긴 혁명의 맛을 읽으며 역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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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의 맛이란 책 제목부터가 특이하고 남다릅니다. 중국의 음식으로 인한 문화, 정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데 놀라운 것은 중국 작가가 쓴 글도 아니고 일본 작가가 쓴 글이라는 것이 놀라운 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음식에는 어떤 문화가 담겨져 있고 또 그 문화에 따라 음식의 재료, 조리법이 다양하기에 그 음식을 보면 그 시대의 상황이 짐작이 가능합니다. 이 책에서는 중국 근현대사를 중심으로 음식의 맛을 중심으로 내용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중국에서 역사적으로 미식 문화가 발달하게 된 것은 송나라 시대라고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 보다는 꽤 오래 된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 선조들은 그 시대 어떤 식문화가 있었는지도 궁금하기도 합니다. 또한 중국이 라멘의 원조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오늘날 세계 시장에서는 한국 라면이 인기가 높습니다. 고유의 맛이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중국의 황제라고 하면 높은 지위가 있으니 최고의 음식을 먹고 살 수도 있으니 황제들에 의해 궁중 요리가 발달되기도 합니다. 예로 청나라 4대 황제였던 강희제는 한족과 만주족의 화합을 위해 두 민족의 산해진미를 모아서 만한적석이라는 궁중 요리를 탄생시켰지만 정작 자신은 소박한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청나라 6대 황제 건륭제 또한도 음식을 통해 만주족과 한족의 문화 융합의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역시 음식은 사람들을 하나로 만드는데 큰 몫을 차지하는 중요한 역할입니다. 또한 황제 뿐 아니라 환관도 음식 문화 발달에 큰 작용을 하게 됩니다. 그 시대 환관들은 황제 못지 않는 보이지 않는 큰 권력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최고의 식재료와 최고의 요리로 그들의 식생활은 유지가 되어 왔던 것입니다. 혁명의 맛에서 중심적인 내용은 혁명과의 연관성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혁명에 의해서 음식의 맛도 변화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청나라는 1911년 신해혁명으로 붕괴되었고 공산당은 베이징을 수도로 택하고 베이징에 여러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매운 맛과 단 맛이 음식에 맛을 내어오게 되었습니다. 역시 혁명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는 맛은 매운 맛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매운 맛은 본래 맛이라기 보다는 혀의 통증이라 볼 수 있는데 그 맛을 통해 힘든 일을 잊기도 하고 분위기를 새롭게 전환하는 특유의 맛입니다. 가끔 매운 맛을 찾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이 책과 같이 우리나라의 전통 요리를 쉽게 설명해 주는 책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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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중국 요리를 논하고자 한다면, 광둥 요리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전 세계 중국 요리는 광둥 요리의 지배 아래 국제적인 성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홍콩요리와 더불어 전 세계에 흩어진 화교의 광둥 요리만이 중국 요리중에서 유일하게 프랑스 요리와 이탈리아 요리 그리고 일본 요리와 나란히 설만한 현대적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의 저자인 가쓰미 요이치씨가 처음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한 것은 문화대혁명 즉, 문화혁명이 한창이던 때였다고 한다. 오늘날의 중국 본토의 요리를 논하려면 다른 외국 요리를 논할 때와는 다른 좌표축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세계라는 무대에서 바라보자면 중국의 광둥 요리가 중국 요리의 대표라고 할 수 있지만, 중국의 관점에서 바라볼때에는 결코 광둥 요리만이 중국 요리의 대표 주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이후 자유국가들의 각국의 대표요리들을 경연했던 일에 중국 대륙 각지의 '본고장의 맛'은 참가하지 못했었다. 인민공화국이었던 중국은 모든 음식점이 국가 소유였기때문이기도 했으며 그때에는 민간 레스토랑등이 아직 영업을 허용하지 않던 시대였다. 혀를 도려내는 것처럼 초라하고 빈곤한 그 맛에 저자는 남 몰래 '문화 혁명의 맛'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한다.
'요리는 인간이 만든다. 그 요리가 유통되고 사람들의 혀를 즐겁게 했을 때, 사회는 활력이 넘치고 그런 분위기에 세련미가 더해지면 그것이 문화다.' <본문 30페이지>
원래 중국이란 나라는 청나라 중기까지는 왕후 귀족이나 지방 호족, 소수의 민간인 부유층은 가문에 전해져 내려오는 고급 요리를 바깥에 새나가지 않도록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그러했기에 요리법을 글로 남기지 않고 입에서 입으로 전수했고 그랬기에 제대로 된 조리법이 기록된 문헌이 남아 있을리도 없었던 것이다.거기에다 중요한 원전마저 문화혁명 때 분실된 것이 많다는데 그 중에 청나라 시대의 궁중 주방 어선방의 기록(어선방당책)도 후세에 호사가를 겨냥하여 가짜가 여러 권 만들어졌으며 고궁에 남아 있던 책들은 환관들이 반출하거나 바꿔치기를 했다고 한다. 참으로 중국이란 나라도 어지러운 나라였구나. 더구나 중국이란 나라처럼 왕조가 몇 번이나 다른 민족으로 바뀌는 역사를 경험한 국가는 달리 유례가 없다는데 중국이 변화를 겪을 때마다 문화가 성숙해진 역사를 지닌것은 참으로 내나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중국이라는 나라에서 가장 수준 높은 요리를 자랑하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중국요리가 근대적 정신 구조를 갖추기 시작하던 모습을 만나게 되는 때는, 청나라 시대에 한족문화와 만주족 문화가 격렬하게 뒤섞였던 그때에 다른시대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청나라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정보공개'였다는데 청나라때는 중국 가지의 요리사들이 이름을 떨치고자 수도로 몰려왔고, 요리의 명인들은 자연스레 조정이나 관리와 환관에게 고용되었다. 정보공개의 분위기에 휩쓸려 이름난 요리사들이 비결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현재의 인터넷에서 많은 블로거들이 레시피를 자랑삼아 드러내듯이 그랬었나보다. 이러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면서 그러한 풍토에서 청나라 제6대 황제 건륭제(재위1735~1796)는 만주족이면서도 한족요리를 애호햇고, 특히 강남 요리를 편애했다. 그는 건륭제는 미식가였다. 건륭제는 닭과 오리 요리를 좋아했는데, 아침부터 닭이나 오리고기를 구워먹을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상어 지느러미와 해파리는 연회에는 내놓았어도 건륭제는 먹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청나라 왕조에서는 후대 황제가 선대 황제의 생활방식을 존중했기에, 건륭제 이후의 다른 황제들도 상어 지느러미를 꺼렸다. 하지만 이 관습을 뒤집은 것이 바로 서태후였다는데 서태후는 몽골계 만주족 출신이자 하급관리 예허나라 혜징의 딸이었는데 몽골계 이슬람교도와 혈연인 한족의 피가 섞였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의 말에 의하면 서태후가 정말 상어 지느러미를 좋아했다기보다도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목적에서 상어 지느러미를 즐겨 먹었으리라는 것이다. 권력이란 이런 음식에서도 이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중국 역사에서 음식의 역사에서 '풍택원'이라는 이름이 빠질 수야 없다. 1930년에 문을 연 이 음식점은 중국 공산당과 함께 걸어온 역사의 현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사회주의에 삼켜진 곳이라고도 할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청기와와 벽돌로 지은 건물 내부에는 사철 언제나 난시먼 밖 꽃집 두 곳에서 싱싱한 꽃을 배달시켜 꽃병에 장식했다. 테이블과 의자를 최고급 자단으로 만들었고 잔과 과일 그릇, 숟가락, 젓가락 받침등은 순은으로 만든것으로 썼다. 젓가락은 상아에다 잔에는 건륭제 시대에 만들어진 칠보를 장식하고 호화로움을 자랑했으며 풍택원 요리의 섬세함은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요리사는 모두 산둥성 출신이었다. 하지만 1936년 풍택원 반장은 주변 음식점들이 인플레이션때문에 한숨을 푹푹 쉬고 있을 때도 일본군과 친밀했던 덕에 괜찮은 이윤을 내고 있었고, 그 시대에는 요리사는 고소득 직종이 아니었으며 그러한 대우에 불만이 있었던 요리사들이 '혁명'을 일으켰고 구력(음력) 8월 15일에 직원들은 전부 그만두고 말았다. 그 일이 있은 이후로 요리사의 권리가 인정되고 가게는 쇠퇴하였다. 산둥요리 전문점인 '풍택원'은 베이징의 대표 음식점이 되었었다.
인간이란 나고 자란 곳의 맛, 바로 어머니의 손맛을 결코 잊지 못하기 마련이다. 문화혁명은 결과적으로 봤을 때, 산둥요리와 상하이 요리의 대결이라는 측면도 담겨 있다.
혁명의 맛은 바로 문화혁명 시기의 중국을 저자가 직접 체험한 역사의 현장을 탐사하여 마오쩌둥 시대의 맨 얼굴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2015.2.22.소지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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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전통은 오래될수록 대접받는다. 그러나 인간의 '입맛'은 그렇지 못하다, 인간은 언제 나 최고를 지향하고, 최신을 추구하며, 단 몇년만에 새로운 음식문화를 가꾸어 나아가는 존재 인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 생각하는 많은 전통요리들도 알고 보면 알게 모르게 '오늘날의 입맛'에 맞추어, 그 나름의 변화를 꾀한 흔적이 보인다. '맛' 이것에는 영원한 정체란 없다.
그야말로 '미식'은 인간의 역사와, 그 속의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빠른 부흥도, 몰락 도 할 수 있는 가치관이다.
그 증거로 '맛의 제국' 중국의 역사에 있어, 가장 비참한 혁명으로 불리우는 '문화 대혁명'을 살 펴보자, 당시 중국은 지도자 마오쩌둥의 가치관에 따라, 평등의 가치관 아래 중국을 변화시키 려고 했다. 때문에 과거 청나라의 몰락 이후로도 '고급식당' '전통식당'으로서 그 맛과 역사 를 지켜오던 많은 식당이 강제적으로 문을 닫았고, 그 속에서 일하던 많은 요리사들과 관계자 들이 '부르주아의 앞잡이' 라는 명분아래 탄압받았다. 10년... 그야말로 혁명은 10년 가 까이 계속되었고, 그 때문에 중국의 구세대와 신세대는 '맛'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많은 차이점 을 가지게 된다.
평등을 강요하는 공산주의 속에서, 대중들은 점점 하나된 맛, 평등화된 맛에 길들여 져 갔다. 특히 어린시절부터, 평등화 된 맛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점차 자라면서 과거의 맛 을 알지못하는 진정한 공산주의 전사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렇기에 조금만 더... 한 10 ~20년 더 마오쩌둥이 집권하고, 또 그 정책을 유지하여 나갔다면 중국의 전통의 맛은 그야말 로 괴멸의 길을 걸었음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분리된 홍콩과, 권력자의 식탐은 그 괴멸을 막아준 최고의 '타임캡슐' 이 되어, 중국의 맛을 되살리는 씨앗의 역활을 하였다. "부흥" 이 단어에 걸맞게, 오늘날 중 국은 '맛'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다. 그 증거로 오늘날 중국의 음식은 일찍부터 세계로 뻗어 나아가, 많은 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 아니한가? 그야말로 중국은 맛으로 진정한 중화를 이루었다. 그러나 문화 대혁명 이전부터, 그 이후까지의 역사를, (중 국 현지에서) 혀와 피부로 접한 일본인 저자는 그때와 오늘날의 맛을 비교하면서, "아직 중 국은 과거의 맛을 완벽히 되찾지 못했다" 주장한다.
오늘날 중국의 맛은 요즘 중국에서 유행하는 '복원사업'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역사, 전통, 당위성 따위는 상관없이 대표격 간판을 앞세운 체, 되도록 '화려하게' '크게' '놀랍게' '확 실하게' 만을 추구하며 시멘트, 페인트, 있는 것 없는 것 다 때려 넣으며 존재감만 과시하는 그 어리석음의 극치를 말이다. 그야말로 중화요리에 있어서, 역사와 전통의 맥은 희미하다. 아 니...애초부터 중국의 본연의 맛이란 무엇인가? 그 근본은 어디인가? 그 정의는 참으로 아리 송하다.
볶고, 튀기고, 굽고, 찌는 중화의 마법... 그리고 '신맛' '매운맛' '단맛'이 중화의 맛으로 정착 한 참된 이유는 과연 무엇 때문인가?중화의 마법속에 숨어있는 획일화의 망령, 과거의 아픔, 잃 어버린 입맛의 이야기. 그야말로 이 책은 맛의 제국 '중국의 황혼'을 이야기 한 가장 재미있고 도 흥미로운 근.현대사 서적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책을 보면서, 생각없이 중국요리라 생각 했던 많은 요리들의 진 면모를 발견하며, 알면 알수록 흥미로웠던 '암흑기'의 중국을 새롭게 발 견하고 또 이해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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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의 매운맛을 즐겼다던 마오쩌둥이 「매운 것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할 수 없다」라고까지 했다던데, 일단 혁명은 차치하고라도 지금의 중국요리는 세계적인 성격까지 갖출 정도로 성장했다. 누가 그랬던가, 중국인들은 식탁 다리 빼놓고 네발 달린 것은 다 먹는다고. 그러나 본디 저 옛날부터 미주(美酒)는 있었어도 미식(美食)이란 것을 즐기는 문화는 송대에 이르러서야 발달했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환관의 이야기가 흥미로운데, 권세를 부리기 쉬운 환관들이 비정기적인 수입, 즉 뇌물을 비롯해 산해진미와 진귀한 식자재에까지 눈을 돌렸다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잃어버린 남성성을 대신한 보상심리였을까? 바깥에서 궁으로 들어오는 고급 식자재는 환관이 관리하는 민간 중개업자를 거쳐 끝에는 엄청난 가격을 자랑했다. 이를테면 서태후가 먹는 달걀 하나는 단계적으로 여러 환관의 손을 거치게 되는데 그 금액은 오늘날의 물가로 보면 대략 십만 원에서 이십만 원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환관들이 당대 요리 발전의 단초가 되기도 했다는 것에서 어느 정도는 그들의 기여를 인정해주어야 할는지도 모르겠다. 그들 덕에 질 좋은 식재료의 경로가 확립되고, 고급 식자재가 요리법과 더불어 시중 음식점으로 퍼졌으며, 궁중에서 만들던 요리가 진화해 더욱 세련된 음식의 형태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니 말이다ㅡ 글쎄, 아무리 중국요리의 역사가 환관 요리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고는 해도 너무한 처사일지도. 어쨌든 다소 지난했던 시기를 건너뛰어 공산당 정부의 베이징 그리고 국민당 시대로 가 보면 중국요리는 물론이거니와 세계 각국의 요리 또한 인기를 모으게 된다. 미군이 있었으니 관련 물자가 여기저기서 흘러들었던 탓이었을 거다. 뜻밖에도 여기서 내가 한 가지의 '꼰대스러움'을 느끼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첫머리에 언급한 마오쩌둥에게서였다. 그는 생선 머리 탕인 다터우위탕(大頭魚湯)을 즐겨 먹었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좀 우습다. 생선 머리를 먹으면 대뇌가 발달하여 똑똑해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탈이 난다거나 하는 식이라면 이해가 간다. 그러나 마오쩌둥의 생선 머리 탕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문화혁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늘날 대통령이 똑똑해지고 싶다며 총명탕(聰明湯)을 들이켜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혁명의 맛』은 이후에도 대기근과 홍위병, 덩샤오핑, 홍콩요리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음식과 맛의 여로에 오른다. 자, 다소 신기하게도 보이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동침이 가능해진 중국(특히 베이징)이라고 하면 언뜻 개혁이나 개방과 같은 단어들이 떠오르는데, 때로는 옛 맛을 잃어버려 탄식을 자아내게도 하지만 동시에 보다 세련되어지고 또 새로운 맛의 탄생이라는 점에서도 유의미한 대목이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은 사회경제적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변하는 것이겠으나,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초라한 음식을 먹는 것이 부르주아 계급 타도를 위한 혁명적 행동으로 인식되던 때는 지났다. 저자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나라에서는 경제와 미각의 발달이 동시에 진행된다고 보았는데 이 책이 아니더라도 기꺼이 그렇다고 느낄 수가 있다. 문화의 흐름이란 거대한 강물과도 같아서 인위적인 간섭으로는 막기가 어렵다. 그렇다면 그의 물음대로 과연 음식 문화를 지탱하는 것은 무엇일까? 적어도 여기서 중국의 여러 풍경들을 통해 그 답을 어렴풋하게나마 제시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