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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1542~1607)이 임진왜란을 맞은 때는 그의 나이 쉰의 일이었다. 그는 황해도 관찰사 유중영의 둘째로 태어나 이황을 사사했다. 그는 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징비록을 저술했다. 予其懲而毖後患(여기징이비후환) : 내가 경계함은 후환에 대비함이라네
* 정상홍 옮김, 《시경》 (을유문화사) 11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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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은 서애 유성룡 대감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기록한 전쟁 기록물이다.
‘소설 징비록’은 ‘징비록’과 관련하여 올해에 내가 읽은 3번째 책이다.
첫 번째 징비록은 ‘서해문집’에서 출간한 ‘징비록’이었다. 이 책은 징비록 상하 2권과 녹후잡기로 이루어진 판본을 번역 원본으로 삼았던 것으로 역사적 기록물로서 시대를 생각해 가며 담담히 읽을 수 있었다.
두 번째 징비록은 ‘알마’에서 출간한 ‘징비록’으로, 국방군사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을 역임한 임홍빈님의 해설이 달린 것이었다. 징비록은 전쟁에 대한 기록물이어서 군사운용과 지리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 책은 각 챕터 중간 중간에 당시 격전지에 대한 지도와 전략적 측면에서의 설명이 있기 때문에 징비록의 배경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마지막 세 번째가 바로 ‘소설 징비록’이다. ‘소설 징비록’은 다른 어떤 책보다 선조 이균에 대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이는 ‘호종일기’에 기록되어 있는 선조 이균에 대한 성향이 반영된 것인지, ‘선조’에 대한 저자의 개인적인 생각이 반영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소설 징비록’에서 ‘선조’는 임금으로서 자질이 없는 자로 그려진다. 선조 이균은 왕권의 정통계승자가 아니다. 그는 중중과 명빈 밀양박씨의 소생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명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죽자 양자로 들어와 왕위에 오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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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기반한 소설이나 드라마를 감상할 때 과연 어디까지가 역사적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각색한 내용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그때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소설이나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소설이나 드라마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이 소설을 읽어보았습니다.
작년 한해 명량으로 이순신 장군이 많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에 비해 서애 유성룡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면이 있었는데요.. 이번 기회에 징비록을 읽어볼 기회가 있어 임진왜란의 새로운 측면에 대해 알게되었습니다.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낀 점은 조선의 정치인이나 현재의 정치인들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것을 구하는 것은 이름없는 수많은 백성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왕과 문관들이 전란의 위기에 처했음에도 당파싸움이나 하면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다 결국 도성을 버리고 피난가서 제살길만 찾으려는 동안 왜군과 맞서 싸운 것은 수많은 의병들이었습니다.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가 무능하다면 백성들이 얼마나 고통받게 되는지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그가 이 책을 남기며 그 이름을 '징비록' 즉,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는 이름으로 남긴 것 역시 우리에게 교훈을 남겨주려 한 측면이 크다고 봅니다. 과연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건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어서 더욱 의미를 더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이겠죠. 앞으로 드라마로도 징비록이 제작된다고 하는데 소설과는 어떤 부분이 다른지 기대하며 감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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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뜨겁다
국사교과서 국정화로...
말이 생각보다 어렵지만, 국사 교과서를 나라에서 만들겠다는거다.
찬반을 한다해도 영향이 있을까 싶지만.
역사는 기록된 사실이라고 누누히 배워오지 않았던가
때문에 기록은 한번만 쓰일수 없는거다. 단 한사람에 의해서 쓰여서는 안되는거다
전해내려오는 역사들중에서도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찾아내어져 알게된 사실들도 많을것이다
이제껏 역사가 한사람의 기록으로 전해내려져 온것도 아닐진대,
내 생각이다
에효 =3
어떤 생각때문에 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는지 알수가없다
오히려 국정화하면 국민들이 이렇게 화를 내고 득달같이 반대하여
역사에 관심을 생기게끔하는 그런 뜻이 있는건가 싶다
어쩄든 임진왜란이 말로만 전쟁이가보다. 생각했었다
전쟁이라하면 나또한 총들고 탱크밀어 부치고 하는 전쟁으로만 생각했었지만
그것이 아님을 알게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러 주위 나라의 이해관계때문에 전쟁이란것이 이해관계때문에도
벌어질수있구나 싶었는데
그옛날 임진왜란때부터도 명나라와 일본과 서로 체면치레로 할수있는 그런 전쟁일수도있구나
일본 내국상황에서도 그럴수있겠구나 싶었다
나오는 단어들이 워낙 어렵지만 조금 참고 읽다보면 외우진 못하더라도
읽는데에 큰 지장은 없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안타까워만 하지말고
나 한사람이라도 역사에 대해 오히려 더 관심갖고 배워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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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은 미리 허물이나 잘못을 뉘우쳐서 뒷날의 걱정과 근심이 될 만한 것을 경계하라는 가르침으로 7년간의 임진왜란의 기록을 적은 기록물이다. 이 책은 서책으로 드물게 국보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역사기록물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두해에 걸쳐 위인에 대해서 신드롬이 일어나고 있다. 2014년 이순신장군에 이어 2015년에는 유성룡의 징비록이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우연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징비록을 읽으면서 정말 소름끼치게 놀란점이 있다. 바로 지금 대한민국의 현 위치가 징비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때문이다. 징비록신드롬이 과연 우연의 일치라고는 말 할 수 없을 것같은 생각이 들어서다. 현재 KBS에서 대하드라마로 징비록이 방영중이다. 이 책은 징비록을 소설로 유성룡과 이효원의 임진왜란의 기록에 대해서 대화형식으로 지난 과거를 돌이켜보는 형식으로 진행되어 있다. 그 당시의 왕은 선조. 200년의 태평성대로 인해 무기와 군사훈련은 그저 형식상이요. 그저 서로간의 잇속을 지키기 위해서 당파싸움과 왕과의 팽팽한 권력싸움으로 인해 백성들의 생활은 안중에도 없고 왜군이 처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져도 그저 묵살하고 결국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왕 선조. 선견지명으로 미리 이순신장군과 권율장군을 천거하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조차하기도 싫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난 년도가 1592년 423년밖에 되지 않는다. 조선시대여서 왠지 느낌이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의 아주아주 오랜 옛날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렇게 오래되지 않은 일인 것이다.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공간속에서 이같은 전란이 일어났다는 것이 후세인 우리는 이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피로 지켜낸 이 땅을 과연 우리는 잘 지켜나가고 있는것일까? 그리고 난 이 역사기록문화물인 징비록을 작년에 알았다. 미국은 이 책을 대학교에서 교재로 사용한다고 한다. 난 초,중,고,대 다 합쳐서 이 책에 대해서 잘 몰랐다. 부끄러웠다. 남들은 다 아는데 정작 주인이 모르는 격이지 않는가. 다행이도 지금에서라도 알았기에 징비록의 뜻처럼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하는 정신을 잊지 말아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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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를 뜨겁게 달구었던 영화가 있다. 바로 한국 영화 사상 1700만이라는 최고의 관객 동원을 한 <명량>이다. 이 영화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12척의 배로 300척이 넘는 왜군에 맞서 싸운 전쟁 일화를 다룬 작품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임에 틀림없다. 나라와 백성을 위하는 대나무처럼 곧은 한결같은 충신으로서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사랑을 받고 존경을 받고 있다. 심지어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우리나라와 적대관계를 끊지 못하는 일본에서도 존경받는 인물이다. 우리가 임진왜란의 역사를 돌아볼 때 누구나 이순신 장군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인데 이순신 장군 못지않게 임진왜란 당시 중요한 인물이 있다. 그가 바로 유성룡이다. 책 표지에 언급된 '전시 재상'이라는 말은 사실 그 당시 적국이었던 일본에서 유성룡을 일컫는 말이라고 한다. 그만큼 유성룡이 전쟁 당시 적국에 대한 영향력이 컸다는 점을 증명한다. 그가 후세에 남긴 <징비록>은 임진왜란 7년간의 전쟁에 대한 기록이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전쟁이 조선에 남긴 것은 무엇인지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누구보다 전쟁 당시 중심적 위치에 있던 그의 자필 기록이다. 소설 <징비록>은 그것을 바탕으로 임진왜란을 소설로 재 탄생 시킨 작품이다. 현재는 이 작품을 비롯 징비록과 관련된 원작을 바탕으로 하여 드라마로도 방송되고 있다.
전시 재상 유성룡이 우리에게 남긴 <징비록>은 결코 가볍지 않은 선조의 유물인 듯하다. 요즘처럼 역사에 대한 의식이 난무하고 친일 역사를 종용하고 찬미하는 사태를 볼 때면 더더욱 그러하다. 앞서 작가의 말에서 느끼는 바가 크다. 일본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의 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 임진왜란 당시 재상 유성룡과 이순신 장군을 앞세워 왜적을 물리쳤다. 나라를 살린 그 두 사람을 필두로 한 여러 공신들을 삭탈관직시키고 역적으로 내몰아 죽음으로 몰아갈 때 적국인 일본은 오히려 그들의 명민한 전략 전술을 분석하여 후에 30년이 넘는 씻을 수 없는 치욕의 일제 치하의 역사를 안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작금의 현실을 돌이켜봤을 때 날로 심각해지는 일본의 국제 정세에 대한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의 변화와 참여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가 미래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에 범했던 과오를 반복하지 않도록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에 잘못된 점을 고쳐 나갈 때만이 가능할 일일 것이다. '아직 왜란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작가의 말이 그런 우리들에게 새로운 동기부여와 자극을 주는 말이 되기엔 충분할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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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에 징비록의 열풍이 불었다. TV 드라마로도 방영중이라고 한다. 각양각색의 징비록 중 내가 읽은 것은 소설 형식으로 된 징비록이었다. 유성룡과 승지 이효원의 대화 형식으로 묶어져 나온 책이어서 딱딱한 느낌이 덜했다. 일본군의 이름이 많이 나와 헷갈리기도 했지만, 주요 내용을 파악하는데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임진왜란과 관련된 영화 <명량>을 보고 싶었는데 학교 생활을 하느라 보질 못했다. 미리 영화를 보고 온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 신에게는 아직 13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라는 유명한 명대사를 - 신에게는 아직 봐야할 13권의 책이 남아있습니다 라고 패러디하면서 우리끼리 웃곤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맹활약한 이순신도 아니요, 위기를 지혜롭게 넘기고자 동분서주하며 노력했던 광해군도 아니었다. 역사책에서 봐왔던 명장군들도 주인공은 아니었다. 그들은 다만 글자로서 남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어 기록될 수 없었던 백성들이었다. 궁을 버리고 북으로 향하는 왕에게 분노하는 백성들. 그러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창을 든 의병들. 불경을 외우다가 뛰쳐나와 선봉에 선 승려들. 단숨에 한양까지 추격해온 일본군들은 당황한다. 전쟁이란 이기고 질 수도 있는 법일진데, 왜 조선인들은 항복하지 않는것인가. 책에서 이런 구절을 발견했다.
왜 조선인들은 굴복하지 않느냐는 장군의 물음에 조선의 사정을 잘 아는 일본인 장수가 대답하는 장면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봐도 신기한 전쟁이었다. 승승장구하던 일본군의 사기를 꺾은 것은 용맹한 무장들만의 공이 아니었다. 전쟁터에서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남편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한 사람의 일본군이라도 더 죽이려고 살기를 띄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조선의 여자들이었으며 주인이 죽었으면 노비는 마땅히 이긴 자의 손에 맡겨져야 하는 것이건만 일본군을 죽임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뒤바꾸겠다며 날뛰는 조선의 노비들이었다. 추위를 겪어보지 못한 일본군들에게 한반도의 혹한은 더없이 매서운 것이었다. 그보다 더 매서운 것은 꺾이지 않는 백성들의 기개였다. 왕이 버린 나라를, 대신들이 버린 나라를 백성들은 그렇게 지켜냈다. 징비록은 앞으로 이러한 일이 다시 생겨날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이다. 10만 양성설에 대해서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으나 결국 전쟁이 발발했듯이, 스스로를 엄하게 꾸짖고 반성하기 위해서 쓰여진 책인 것이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잘못을 기록하려고 노력한 류성룡의 지혜가 놀라웠던,, 그런 책이었다. 나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갖을 수 있도록 관련 서적들도 꼼꼼히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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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극 <징비록>이 주말 안방극장을 조선시대로 데려가고 있다. 그래서 요즘 유성룡의 <징비록>에 대한 인기는 뜨겁고, 이러한 모습은 서점가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소설, 그림 등등 다양한 출판사에서 '징비록'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어 있다. 사실 <징비록>에 대한 관심은 작년부터 나타났다. 다음 달이면 1주년이 되는 세월호 사건과 임진왜란과의 공통점, 영화 <명량>의 대성공 등 임진왜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임진왜란 기간에 선조 옆을 보필하던 재상 '유성룡'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작년에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라는 책을 통해 징비록을 읽어 보았다.
이번에 읽은 <소설 징비록>은 유성룡과 이효원이 <징비록>과 <호종일기>를 펴놓고 이야기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지난 잘못을 반성하여 뒷날의 어려움에 대비하자는 뜻으로 쓴 <징비록>, 선조와 세자의 피난 다닌 과정을 적어 놓은 <호종일기>. 이 소설에 나오는 사실은 <징비록>과 더불어 <호종일기>를 근본으로 썼다고 한다. <호종일기>가 눈에 띠는 이유는 이 책을 쓴 작가 이재운의 조상인 이효원이 낮은 직급에서 보고 들은 대로 꼼꼼하게 적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작가 이재운은 <사도세자>, <정도전> 등 다양한 역사소설을 쓴 작가이다. 다른 작가와의 차이점은 그 당시, 징비록이 쓰여진 시대의 일본 인명과 지명을 씀으로써 현장감을 더 주었다는 것이다. 징비록을 쓴 유성룡의 이름또한 그렇다. 많은 책들이 출간되면서 어느 책은 '류성룡'으로 표기되었고, 또 다른 책은 '유성룡'으로 표기되었다. 이재운 작가님이 유성룡으로 표기한 것도 한자 발음 그대로 적은 것이다. 그 당시 시점으로 데려가는 역사소설의 작가, 이재운 님의 또다른 역사소설들도 기대 됩니다. 임진왜란의 내부 이야기들을 보면 너무 속상하다. 나라를 버리고 자신의 목숨을 건지기 위해 궁을 떠나는 준비되지 않은 왕, 선조의 모습, 나라의 위급함 앞에서도 현실을 직시하기 보다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인사 관리와 정책을 펼치는 신하들의 모습, 그들이 버린 나라를 지키겠다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우리 민초들. 임진왜란 하면 사실 이순신만 생각을 많이 한다. 이순신 장군이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했지만 더 중요했던 것은 이름도 빛도 없이 나라를 위해 싸운 민중들이었다.
역사 속에서나 현대 사회에서나 너무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일이 생겨야만 그 일에 관심을 갖는 다는 것이다. '징비록'은《시경(詩經)》의 소비편(小毖篇)의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役患)”의 구절에서 가지고 온 것인데, 징비록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역사를 두려워해야 한다. 역사는 반드시 기록된다. 임진왜란의 치욕스러운 역사적 사실을 배우고자 이 책을 읽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 사실을 통해 현재를 보아야 한다. 현재의 평가는 몇년 후 역사적으로 재평가 되곤 한다. 얼마 전, 전 대통령 이명박에 대한 책들을 통해 평가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역사의 기록, 우리는 두려워 해야 한다. 왜 KBS는 정도전 이후에 징비록을 내보내게 되었을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인재상을 이야기 하는 것 같다. 백성을 중심으로 하는 신하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것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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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흥미롭고 마음아픈 귀한 책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책이름은 징비록!!! 우리 나라는 지금까지 한번도 한반도가 통일이 된적이 거의 없이 분단의 설움을 가지고 있고 분단의 아픔을 통하여 지금도 국회에서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등 나누어 여다 야다하면서 이 시간에도 전쟁을 치루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은 징비록을 통해서도 느꼈지만 태평할때는 죽일것같이 싸우지만 우리 나라가 분쟁에 휩싸일때는 어느 나라보다도 우리 민족이 단결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는 전쟁의 아픔을 겪지 않는 베이비부머세대이지만 아직까지도 우리 민족은 38선에 가로막혀 연초가 되면 이산가족찾기등 판문점을 통하여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실정입니다. 태평성대의 조선 그러나 유비무환의 정신을 가지지 않고 태평성대를 살아왔던 조선민족으로서는 무방비상태에서의 일본군이 쳐들어와 황당하고 당황되어 이북까지 올라갔지만 정신을 차리고 불굴의 민족정신으로 의병과 양반노비없이 모두 한마음 합심하여 일본군을 물리치면서 이 땅에 승리를 가져올 수가 있었습니다. 일본군에 고개 숙이지 않고 대항하면서 그들은 조총으로 무장하였고 우리는 칼과 화살로 대항을 하였으나 조총은 장전하는데 시간이 걸렸으나 우리는 과녁을 잘 마춤으로 승리를 이끌수 있었다는 점에 모든 일은 장단점이 있어 무슨 일을 만나든지 정신차리고 일에 임한다면 승리하고 성공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가 있었습니다. 공직자의 한사람으로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이순신장군의 모함받는 장면을 그려볼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속상하고 화가 났었지만 그런 일은 지금도 이 사회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의 경우에도 예산을 줄이고자 제안기획서를 제출하면서 담당을 맡겨주면 년 이천오백만원정도를 예산절감할터이니 업무를 맡겨달라고 하였으나 한번에 묵살하고 위 아래직원들에게 모함하고 자기는 아첨하는 상사 너무나 속상하고 또한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복지행정을 하기위해 자원을 연계하려고하였으나 자기에게 연계하고 나는 빠지라고하니 너무나 황당하였습니다. 임진왜란당시 아니 일본군이 쳐들어와서 수군이 승리하는 이순신장군님도 저와 같은 심정이리라 태평성대에서는 아첨과 아부하는 사람들이 승진하고 대접받고 정말 필요한 전쟁시에는 모두 도망가는 장면을 떠올리면서 지금 이시대에도 변하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38선이 그어져있고 지금도 휴전상태라 언제나 김정은정권이 남으로 내려올지 모르는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물론 북한뿐만아니라 더 나아가 중국과 일본도 경제적인 전쟁으로 호시탐탐 빈틈을 노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징비록은 이 땅을 먹기위한 전쟁이지만 지금은 이땅을 먹기위해 문화의 전쟁 경제의 전쟁을 벌리고 있습니다. 이제는 놀고 먹고 아부와 아첨에 익숙한 민족이 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공부하고 연구하여 이 땅 대한 민국이 사회문화 정치 경제에 앞서나가 더욱더 잘 사는 민족이 되어가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조선 전쟁시기의 재상 유성룡을 통하여 역사를 조명하고 비교해 볼 수가 있어 좋은 시간을 가질수가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보이는 전쟁이었으나 이제는 보이지 않는 전쟁속에서 살아남기위해서는 정신차리고 준비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고 모든 일에 임하여야겠다고 봅니다. 인맥과 아부와 아첨의 조직생활에서 인정받고 책임지고 지금보다 더욱더 잘 살고 행복한 이 나라 이 민족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조선의 전쟁을 통한 대한민국의 역사현실을 재 조명할 수가 있어 행복하였습니다. |
![]() 이재운 정통 역사소설, 소설 징비록. 징비록은 아이들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고전입니다. 전문은 읽어보진 못했고 유성룡이라는 재상이 임진왜란 기록을 통해 후세에는 이런일이 없기를 당부하고자 기록했다는 취지만 알고 있었죠. 다른 저자의 소설 명량을 보고도 워낙 감동이 깊었던 터라 정통 역사소설 징비록에 대해서는 받아들고서부터 기대가 컸습니다. ![]() 임진왜란을 겪은 임금 선조. 임진왜란에 대해서는 일본 통신사의 교류로 이미 준비를 해야 한다는 측과 태평성대에 그 무슨 말이더냐 하는 안주하자는 파가 있었지요. 선조는 움직이지 않는 편을 택합니다. 전쟁 준비를 하는 곳은 없고 다들 망궐례를 하면서 엎드린 다음, 저희들끼리 뇌물을 주고받기 바쁘다. ![]() "군사를 훈련시키다니, 그렇게 할 일이 없나?" 군대정비를 하는 것이야 전시상황이 아니더라도 당연한 일이었건만 선조는 편안함을 선호했던 것이죠. 군사훈련, 정비 등의 일은 사실 백성들에게는 번거로울 수 있으니 그로인해 지지도가 내려가는 것은 싫으니깐요. 그렇게 안일했던 선조 치하 조선은 풍신길이의 명나라를 치고자 한다는 궤변의 주장으로 공격을 받게 됩니다. 일찌기 풍신길이가 조선에 총을 보내온 적이 있으나 조선은 그 물건을 넘겨버리는 우를 범했지요. 일본은 그 신식 무기로 조선군을 당혹케 하며 힘을 싣고 점령해 갔으니 말이죠. ![]() 한편, 여태의 원균에 대한 평가는 장군 이순신에 대한 빛을 위해 항상 절대악인것으로 보이곤 했더랍니다. 그런데 소설 징비록에서는 원균이 어찌하여 그러한 인물로 비춰지게 된 것인지를 보여주지요. 원균은 수군을 맡은 장수였습니다. 이순신은 육군 출신의 장수였고, 원균이 전세에 밀려 지원요청을 하고서야 이순신이 처음으로 수군에 힘을 합해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는 일단 원균은 서인출신이라 하여 이순신에 억한 감정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에서의 평가는 원균은 어리석고 비겁한 인물인 것처럼 강조되어잇습니다. 그런데 소설 속에서는 그에 대해 그렇게만 보여주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지원을 받고서는 무관으로서의 소임을 다하고자 우직하게 승리를 가져오지요. ![]() 일찌기 선조는 옥체를 보존하고자 몽진을 감행합니다. 그러면서 차남인 광해군에게 왕세자로서의 지위를 부여하지요. 왕세자 광해군은 내 몸 살겠다 도망친 선조와는 달리 일본군이 점령한 곳까지 행차하여 조선군 장수와 의병을 격려하고 표창하고 벼슬을 내리며 사기진작을 꽤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천대받던 노비, 천민, 평민들까지도 악착같이 달려들지요. 물론 책 속에서 일본군이 조선인을 말하기를 일본군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면, 이기는 싸움이 아니더라도 온 백성이 다 튀어나와서 죽기살기로 달려든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은근 자랑스러운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잘 살겠다 하는 정신이 아니라 누가 돌봐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내 나라가 무너지면 내가 없다는 정신으로 단결이 되니 말이죠. ![]() 광해군이 독려하며 사기진작과 민심을 수습해가는데 그러면서 승려들도 군이 되어 나라를 위해 뭉치게 됩니다. 그러한 그들의 단결에 광해군이 벼슬을 내린다 하니, 선조 곁을 지키는 고고한 대신들은 또한 이것이 불만이라며 격이 안맞다는 타령입니다. 무기력한 선조도, 광해군과 백성들의 용맹에 대한 대신들의 비겁한 태도에는 소리를 지르게 됩니다. "그렇게들 잘났으면 당신들이 창 들고, 칼 들고 나가 싸워요!" 그렇게 왕은 광해군의 결정에 힘을 싣게 도와주는 최소한의 역할은 하고 있었습니다. ![]() 이순신이 서인이 당권을 쥐었던 조정에서는 미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순신은 유성룡,권율 등의 동인들이 단단히 지지해주고 있었지요. 원균은 서인 계열이기는 하지만 끈끈한 후견인이 있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원균의 입장에서는 같은 공을 세웠다는 생각이었기에 평가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지요. 그러던 차에, 수군 전략에 관한 전략이 도지사 권율을 비롯하여 선조의 명령으로도 강력히 하사되기를 승산이 없거늘.. 하는 생각이 들고나니 원균으로서는 등떠밀린 전략을 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명을 어기느냐 나라를 위험으로 몰아가느냐의 판단에서 이순신은 어명을 어기는 쪽을 택했으나 원균은 위험한 어명을 따르는 쪽을 택하게 되지요. 그리고는 또 다시 조선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 우악스러운 풍신수길은 2차 임진왜란 중 갑자기 죽게 되지요. 풍신수길의 죽음에 대해 소문이 빠져나가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미 일본 내에서는 그와 경쟁관계인 덕천가강이 이미 노리고 있었던 터. 풍신수길의 임종 후, 임진왜란은 조용히 마무리되지만 일본은 다시 전장이 되었습니다. ![]() "임진왜란 7년간 왜구와 싸웠다지만, 정작 내가 재상으로서 싸운 상대는 적괴인 풍신수길이나 가등청정, 소서행장이 아니라 고비마다 발목 잡는 이 나라 대신들이고, 위기 때마다 무기력해지는 국왕 전하였지"
결국 이렇게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이미 막을 수도 있었을 기회가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아마 조금 더 일찍 마무리 되었을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고요. 역사로 넘겨지니 지금에야 진정하고 이야기하지만 당시 백성들은 어떤 고생이었을지요. ![]() 유성룡의 마무리 대화들을 보면서, 징비록에 대해 뜻을 다시 세겨보는데 그러면서 마지막. 승지 이효원은 유성룡으로부터 <징비록> 필사본 한 질을 받아 이마께로 올렸다가 내렸다. ..... 임란 중 국왕과 세자 광해군을 호종하던 승지 이효원은 광해군 치하에서 대사간이 되지만 유성룡의 앙숙이던 대북 정인홍과 다투다 파직되고... 나는 그의 후손이다. 작가 이재운씨는 이효원의 후손이기에 그래서 이 책을 더 정성들여 완성하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임진왜란 한 토막만이 아니라 그 임진왜란과 관련하여 조선 조정, 일본의 사정, 명나라의 행동 등 포함하는 영역이 더욱 넓다보니 보는 재미가 더했던 스케일 큰 정통역사 소설 징비록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