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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작가 산문집이다.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소수자에 대한 배려,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인간다움’에 대해 작가가 가진 생각들을 거침없이 잘 표현한 책이다. 구성은 4부로 나누어져있다. 1부에서는 17년 동안의 교사생활을 접고 섬으로 들어간 작가가 농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농사를 업으로 하지 않으면서 시골에서 살고 있는 동질감이 조금은 느껴져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가 펴낸 첫 장편소설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가 중쇄를 거듭해서 수백만 부가 팔려나갔다. 저자는 생각지도 못한 거금의 인세를 받고 고민하다가 더 나은 책을 쓰자고 마음먹고 섬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저자의 귀촌일기가 시작된다. 벼농사를 지어서 자급자족할 만큼의 쌀을 얻고 밭농사로 찬거리를 얻는다. 닭을 길러서 계란과 고기로 단백질을 섭취한다. 그러면서도 온전한 농부가 되지는 못한다. 농사지은 걸로 현금화할 수 있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일본의 모습이지만 현재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서 쓴웃음이 났다. 2부는 저자가 겪은 여러 가지 일들을 모아놓았다. 어린이들이 시를 통해 보여주는 아버지의 모습, 교과서에 실리는 작품들에 대한 문제점, 아이들의 건강을 해치는 가공식품들, 자신을 감동시킨 장애인, 오키나와 사람들의 비애 등에 대한 글들이다. 자신은 작가이기 때문에 부당한 일에 대한 표현을 마음껏 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수 없는 처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의 모습과 다른 게 하나도 없다. 3부는 교직생활 중에 겪은 여러 가지 일들 중에 기억에 남는 것들을 모았다. 그 중에서 교사의 횡포 때문에 상처 받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많아서 이 부분은 초급 교사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잘못된 교육방식을 주입시키는 현재의 교육법에 대해 비판한다. 아이들의 시를 읽으며 아이들 마음속에 있는 상냥함에 깊은 감동을 받은 작가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워야한다고 말한다. 병, 나에게 주세요 2학년 니시모토 고조 선생님, 아파요 아프면 언제든지 그 병 나에게 주세요 나는 아파도 괜찮아요 선생님이 안 아프면 나는 그걸로 가슴이 뻥 뚫려요 내가 재미있게 읽은 시 한 편, 거꾸로 나라 여기가 거꾸로 나라라면 재미있을 거야 부자가 가난뱅이고 돈 한 푼 없는 사람이 엄청난 부자야 도둑이 들어오면 ‘손들어’하지 않고 ‘발 들어’해서 엉덩방아를 찧겠지 그리고 도둑이 돈을 줄거야 아이의 상상력이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어서 소개해보았다. 마지막 행이 재미있다. 4부는 문학에 대한 생각과 경험들을 적어놓았다. 누가 자신에게 한 권의 책을 뽑으라고 한다면 어떤 책을 말할 것인가. 그 답으로 자신의 삶의 방향을 제시해준 책들을 말해주고 있다. 아이들의 진솔한 시에서 삶의 참다운 모습을 발견하려는 저자는 이런 아이들의 시를 모아서 엮는 작업도 했다. 저자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전반적인 사회 문제들이었다.그 중에서 주입식 교육과 환경문제, 그리고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계속 나오는 ‘상냥함’에 대해 어떻게 정의해야할지 고민을 하게 된다. 물론 책 뒤편에는 상냥함을 “생명에 대한 근원적인 경외심이며 무거운 삶을 짊어지고도 세상을 살아가게 하는 어마어마한 힘의 원천이다”라고 적어놓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해도 한 눈에 저자가 말하는 상냥함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본문에서는 이렇게 적어놓고 있다. “상냥함은 인간이 조건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길’로써 존재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상냥함이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보았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정말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낀다. 저자가 일본인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이라고 해도 어색한 점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만큼 사회와 문화가 서로 닮아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소박하게 살 때 작가가 말하는 ‘상냥함’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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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도둑' 33쪽
고작 딸기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속 좁게 구느냐고 말하는 사람은 뭔가를 정성껏 만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떠돌이 닭' 37쪽
2부부터 교사였고 동화 작가답게 아이들과 교육에 대한 이야기기 많다.
얼마전 IS에 인질로 잡힌 일본인에 대한 일본 당국의 대처에 관한 인터뷰에서, 일본 다큐작가는 일본과 한국은 냉정함이 닮았으니 사이좋게 지내기 바란다는 말을 듣고 헛웃음이 났다. '상냥하게 살기'에 나오는 교육 현장 얘기도 어쩜 그리 똑같은지. 내가 생각하는 '상냥하게'란 친철함 정도인데, 책에서 말하는 '상냥하게'에는 인간애가 들어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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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 익숙한 이름이다 생각했는데, 예전에 읽은 책 선생님이 좋아요를 쓰신 분이라고 한다.
작가는 세 가지 이상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글을 계속 쓰는 일, 교사로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 육체노동으로 노동의 의무를 직접 실천하는 일이다. 그래서 떠난다. 자연과 인간관계를 생각한다는 중요한 과제를 갖고 떠난 아와지 섬으로......그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이웃과 어울리고, 소박한 삶을 사는 모습이 글속에 고스란히 배어 있다. 요란한 장미꽃보다 배추꽃이나 들풀을 더 반기고 좋아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웃음 짓게 만든다. 자연에서 피어나는 생명을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알고, 그 생명이 시들어가는 앞에서 슬퍼할 줄 아는 모습을 보면서 나의 가슴이 너무 무디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자급자족의 삶을 원해 모를 심어 쌀을 재배하고, 텃밭에 감자, 고구마 양파등 채소를 길러 채워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마트에 나가면 너무 쉽게 구해지는 각종의 것들을 편리함으로, 무심코 구입했는데, 부지런함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급자족하는 삶이 결코 쉬운 삶이 아니란 생각을 하기에......
조금이나마 자금자족을 지향함으로써, 도는 자연식을 지향함으로써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배울 수도 있고 무엇 하나도 허투루 쓰지 않는 다는 당연한 일을 몸에 익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다.
농민들이 풍요로워 질 수 있는 정치를 지향하는 정치가는 더 이상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요즘 농사짓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책에도 언뜻 언급했듯이 도박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열심히 농사를 지었지만 결국 손에 남는 건 빚뿐이라는 푸념이 들린다. 농사를 지으며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느낀 점도 공감하게 된다.
책 전반에 따스함이 넘친다,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이 보인다. 자연과 벗하여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 우리가 바라는 모습일 수 있으나 쉽지 않다. 그런 쉽지 않을 삶을 실천하며 따뜻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인간이 아름다움을 잃지 않도록 우리에게 격려를 해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상냥함은 인간의 조건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이기 위한 ‘길’로써 존재하는 것.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욱 아름다운 인간이고자 하는 정신을 지닌 인간. 이 아름다운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큰 용기를 주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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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의 제목만 보았을 때는 타인을 배려하는 상냥하게 사는 삶을 추구하는 책인 줄 알았다. 하지만 표지의 내용들도 그렇게 앞에 몇 장을 읽었을 때, 나는 이 책을 겉표지만 보고 판단하는 편견을 가졌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작가에 대한 소개부터 읽어보기 시작했다.
이 책의 저자 하이타니 겐지로는 일본의 국민작가이자 교육자이다. 어린 시절 가난과 전쟁을 겪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교사가 되어 17년동안 아이들과 함께하다가 형의 자살과 어머니의 죽음으로 좌절감을 느껴 교직을 떠난다. 하지만 여행을 통해 사람들의 낙천성을 깨닫고 다양한 어린이 문학을 만들게 된다. 자신의 삶 속에서 굵직한 사건들이 많았지만 이를 이겨내고 문학으로 승화하는 작가의 모습이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나타나서 독자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이럴 때는 가끔 생각한다. 문학은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깨달음을 준다. 독자들에게 이러한 것을 선물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고통과 좌절과 같은 아픔이 내재되어 있다. 조금은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상냥하게 살기>는 3부분으로 나뉜다. 섬에서의 자급자족 생활 이야기, 일본의 정치, 사회, 교육의 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 마지막으로 작가의 대선배로서의 글쓰는 방법.
섬에서 살다
하이타니 겐지로는 1980년 아와지 섬으로 이주해서 논과 밭에 쌀과 콩 갖가지 채소를 기르고 닭을 키우며 자급자족 생활을 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며, 바다 건너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고 사는 현대인들을 바라보고 비판하는 글들을 썼다.
조용할 것 같은 아와지 섬을 찬찬히 바라보며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떠돌이 개에게까지도 시선을 내준다. 해 보지 않았던 농사를 아기 기르듯이 보살피고 자연물에서 배우는 것을 보이 이러한 그의 자세가 상냥함이 아닌가 싶다. 그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중시했다. 물질 만능주의에 휩쌓여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사회에 따뜻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그리고 겐지로 자신부터 상냥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태양의 눈 / 아이들에게 배운다
10년 전에 쓴 작품들이다. 하지만 이것이 일본을 쓴 것인지, 한국의 모습을 보고 쓴 것인지 분간이 안갔다. 가격이 저렴해야지만 좋은 물건이라고 생각하는 시각,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의 먹을거리부터 교육까지 점점 위험해지는 현실, 그리고 차별. 지금 옆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고, 어쩌면 지금 내가 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종종 한국의 이야기, 한국 여행 이야기를 쓴 대목에서는 그가 우리나라에 왔다는 것과 이를 이야기로 써주어서 더 애정이 갔다. 일본인이 한국의 모습을 이렇게 따뜻하게 본 것은 오랜만인 것 같았다.
그는 나라의 실정에 대해 이야기 하며, 애국심에 대한 정의를 내린 부분이 인상깊었다.
장애인이 웃는 얼굴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는 마음, 길을 걷다가 나무 그늘에서 쉴 수 있는 나라를 만들려는 마음을 우리는 애국심이라고 부른다. (p115)
문학과 나
많은 사람들은 예시를 들 때,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을 사용한다. 하지만 겐지로는 달랐다. 학생들의 시를 보여주며 글을 쓰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아이들에게 배우는 그의 자세가 고스란히 나타났다. 문학과 나에서는 아이들과 더불어 아이들을 위한 문학을 하는 작가들을 한명 한명 불러냈다. 그 작가에 대한 기억들과 작품들을 보여주었다.
얼마 전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가 있다. 초등학생이 쓴 잔혹동시이다. 학원 가기 싫은 마음을 잔인하게 표현해 아이의 심리 상태를 의심했다. 나중에는 시인인 엄마가 손을 썼다는 것도, 노이즈 마케팅을 이용한 것도, 그리고 그의 경험이 아니라는 것도 밝혀졌지만, 나는 그 시에서 요즘 그 또래 아이들이 학원을 정말로 가기 싫다는 말을 많이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진중권씨의 호평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이런 문학을 만든 것을 어른들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어제는 스승의 날이었다. 스승의 날이 처음 생기게 된 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은퇴하고 아픈 선생님들을 찾아가는 모습들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급식비가 없어서, 육성회비가 없어서 못낸 학생을 위해 대신 내주는 선생님, 내 인생에 그 선생님을 만났기에 인생을 바꾼 선생님 등 다양했지만 요즘에는 그런 감동 이야기를 듣기는 어려운 것 같다. 교편이 무너지고 있다고 하지만, 선생님의 지위는 벌점을 주면서 학생들에게 높아진다. 대등한 관계가 아니다. 선생님은 높고 늘 옳다는 현실이 인간 교육을 후퇴시키고 있는 것이다. 선생님들이 자신의 사명의식과 누군가의 영향력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겐지로처럼 학생들에게 때론 배우며 성장할 수 있었으면 한다.
10년 전에도 어려웠지만, 지금도 똑같이 어렵다. 어쩌면 지금이 더 어렵다. 스마트폰의 발전으로 아이들이 이제는 책보다는 핸드폰과 더 친하다. 겐지로가 다시 살아 돌아와 이 모습을 보면 무슨 말을 해줄까? 스마트폰보다 더 재미있는 책을 써서 아이들과 함께 하지 않을까? 재미와 철학이 동반한 어린이 문학.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문학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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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하게 살기 -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책을 읽기 전 표지와 소개글이 땀흘리는 삶, 최소한의 노동의 의무를 실천 하는 삶을 살려고 했던 교육자이자 아동문학가 하이타니 겐지로의 '상냥하게'보다는 '성실하게'에 가까운 내용처럼 보였다. 1부까지는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2부에 접어들면서 편집자가 원제목 '섬으로 가다', '섬에 살다'를 한권으로 묶으면서 책 제목을 '상냥하게 살기'로 바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섬으로가게 된 취지와 그곳에서 적응하는 정도로 이 책을 귀향 혹은 자급자족하는 삶으로 전부 포괄할 수 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낭만적이다. 혹시라도 정치이야기나 제도의 불합리성에 대한 비판 혹은 고발 등의 내용이 버겁다면 1부까지만 읽는 게 나을 것 같다. 각각 소제목을 달긴 했지만 1부를 제외하고 나머지 2,3,4부는 자기반성과 죄책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도시에 살면서 편리한 삶에 물들지 말고 자급자족 하고 생명을 중시하며 먹거리에 신경쓰자고 떠들어봐야 똑같이 혜택을 누리는 까닭에 별 소용이 없다. 글과 아이들에게 전하는 교육을 통해 정신만큼은 다르다는 것을 보이더라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떠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교통수단이 크게 발달하지 않아 불편할 게 뻔한 섬으로 들어간 그는 농사를 시작했다. 섬으로 간다길래 고기와 조개를 캐러가는구나 했는데 의외로 밭에서 농작물을 키우는 내용이었다. 그 종류도 다양하다. 콩, 딸기, 아욱, 배추, 당근, 파, 양파 등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데다 닭도 치고 오리도 기른다.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첫 수박농사에 맛도 빛깔도 좋은 수확물을 거둔 장면에서는 농사에 소질있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곳에서 원하는 자급자족 생활을 하며 전쟁이 나도 1년 정도 걱정없겠다 하는 내용에서 나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었는데 그 바로 아래 문장에 나처럼 피식 웃는 사람들에게 경고아닌 경고를 남겨 반성했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내가 감히 전쟁을 경험 한, 전쟁을 경험했다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불손한데 웃음이 난 것은 설마 그럴일이 있겠냐 하는 생각이 깔려있기 때문이었다. 분단국에 살면서, 휴전상태인 나라에 살면서 경솔한 웃음이었다. 저자의 글은 곳곳에 그런 웃음을 밖으로 내보이며 안으로는 반성과 깊은 고민에 빠지게 만드는 글이었다. 손과 머리위로 오르내릴 만큼 정을 붙인 닭을 잡아먹은 일도 다른 독자들처럼 다른 닭을 먹지 굳이 그 닭을 잡았어야 했을까 못마땅했는데 그 닭 아닌 어떤 닭이든 생명으로 보자면 소중하지 않은 생명이 어디있겠는가.
48쪽 수많은 생명에 둘러싸여 사는 것은 분명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수많은 이별도 맛보아야 한다.
1부는 웃다가도 이내 심각해지는 묘한 풍경을 자아내며 읽었다. 그래도 한 마디로 말하자면 땀흘리는 저자의 모습을 응원하고 내심 부러워하며 읽었다. 바로 2부 부터 시작인데 1부에서도 잠시 그가 교과서 편찬 위원회에 소속되어 있고 그의 작품 하나가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좀 더 구체적으로 현 일본사회의 부조리와 잘못된 관습 등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시작된다. 초반에 얼마전 읽었던 '나의 조선미술 순례'저자 서경식님의 형제 이야기도 나오는데 누구의 탓이라기 보다는 행동하지 않고 비판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는 내 탓이려니 싶었다. 저자도 어쩌면 그 점이 가장 못마땅한 것일지도 모른다. 잘못되었다고 불평만 할 뿐 나서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심지어 섬까지는 못가더라도 편의를 떠나 진정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교과서문제는 밖에서 볼 때는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몰아서 비난했는데 그 안에서도 저자처럼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서글펐다. 교과서 문제가 왜 이권다툼으로 변질되고 있는지 답답하다. 3부에서는 2부에서 강조한 아이들이 미래다라는 점을 제대로 부각시켜준다. 중간 중간 어린이들이 직접 지은 시 작품을 보여주는데 내용이 기가막히다. 세계 어디를 가도 아이들만큼 솔직하게 그리고 거리낌없는 문학을 창작할 수 있는 존재는 없어 보인다. 저자의 대표작을 읽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해 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아이들의 의견이 현 사회에서는 환영받을 수 없다는 점을 애석해한다. 이 책에서 거듭강조하는 자립적인 삶, 자신을 표현할 줄 아는 삶을 모토로 하기에 아이들의 설 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기성세대들의 소망대로, 만들어놓은 제도아래 쫓아오기에도 버거운 세대들이 지금의 아이들이다. 교과서문제에서도 잠시 나왔던 내용으로 아이들은 그저 부모에게 효도하고 단체생활에서 튀지 않으며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는 그야말로 하나의 부품이나 도구로 성장한다는 내용이 현실이었다.
226쪽 가족 붕괴의 원인과 양상은 저마다 다르므로 방관자적인 제삼자의 입장에서 비판만 하는 일은 삼가야겠지만, A의 가정처럼 사소한 일상속에서도 아이와 함께 '삶'을 살아가는 어른들이 있다면 아이들의 불행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리라.
마지막 4부는 문학가로서의 저자세계를 보여주며 앞에서 추천하거나 언급했던 작가, 삽화가, 출판사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의 현실과 작품이 어떻게 조화를 이뤄냈는지 자신의 작품이 쓰여지기 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도 말해주는데 마지막 글, 태양의 아이를 집필 한 후에 마사유키와 구니히로에게 쓴 편지는 이 책의 전체를 축소한 느낌이었다. 메멘토모리. 지난 해 읽었던 강상중 교수의 '마음'이라는 책에서의 핵심주제가 메멘토모리였다. 하이타니 겐지로 역시 마지막은 누구나 피해갈 수 없는 죽음, 하지만 그 절대적인 죽음에 그저 순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형의 죽음을 통해 사회에게 말하고 싶었던 부분, 아이들에게 거는 기대 그리고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할 자세가 담겨 있었다.
313쪽 마사유키, 그리고 구니히로. 나는 젊은이들의 감수성을 소중히 여기고 싶어.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열아홉 살 때 오키나와의 '오'자도 몰랐단다. 젊은이들의 감수성이 언젠가 죄인의 나라 '일본'을 단죄하고, 그리고 부활시키리라고 나는 믿어. 너희는 태양의 아이니까......
일본, 그리고 유사한 나라의 문제와 희망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간파했던 저자 하이타니 겐지로는 이미 세상에 없다. 하지만 그가남겨준 보물같은 책들이 있어 그나마 위로가 된다. 이제 겨우 그의 책 2권(이 책은 한권으로 묶은 것)을 읽었을 뿐이니 참 다행이란 생각한다. 잠깐 잠깐 지나치게 자신의 생각에 빠져있는 듯한 작가로서의 고집도 엿보이지만 바로 그런 고집이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며 타인을 설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상냥하게 살기. 단순하게 친절한 삶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는 정도로는 한없이 부족한 상냥함, 그런 삶을 추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땀과 노력이 필요할지 어깨가 은근히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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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소위 '문제아'들의 개성을 존중하고 하찮은 미물의 목숨도 소중히 해야 한다는 외침은, 낡아빠지고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라고 치부되기 쉽다. 작금의 우리 사회는 너무 선두의 입장에 맞춰진 채 흘러가는 세상인 것 같다. 인간 중심적이고 어른 중심적이며, 취약계층이 발생하는 곳이라면 어디서나 아이, 장애인, 농부(농업), 여성부터 시작해 자연에서는 생태계 피라미드의 아래쪽이, 지구촌에서는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의 위상과 그 나라의 국민이 천대받기 쉬운 현실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이 책의 저자 하이타니 겐지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일본에서 태어나, 전후 어렵고 가난한 시절의 유년기를 보내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현실에 대한 비관으로 얼룩진 청춘을 보내다 교직 생활에 몸을 담게 되면서 아이들의 순수함과 낙천성,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깨우치는 전환점을 맞게 된다. 그가 1980년 아와지 섬으로 이주해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 생활을 시작하게 된 건 교직생활, 동심으로부터 얻은 생명에 대한 경외심, 겸허함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여지는데 35여년이 흐른 지금이말로 나는 우리 인간들에게 이러한 만물평등, 차별타파 의식이 물질만능, 자본주의가 판치는 가운데서 살아나야 한다고 본다. 먹을만큼만 씨를 뿌려 거두고 풀뿌리 하나 벌 한 마리도 그 성장 속에 어우러짐을 즐겨하는 그의 귀농생활은 대량생산과 소비생활에 찌든 도시인들에게 많은 귀감이 된다. 현대의 농업과 축산업은 돈벌이에 급급한 인간의 욕심에 의해 뿌듯함을 느낄 새도 없이 그저 수확과 가치환산의 대상으로만 취급된다. 거기에 투여되는 농부들의 노동과 자연의 도움은 도외시되고 정작 땅을 일구는 게 뭔지, 식물의 종자구별도 할 줄 모르는 자본가들의 배만 불려주는 비정상적 순환의 상업적 농업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열매만을 향해 달려가는 농사에서, 과실이 꽃을 피우고 '쿨'한 야생성을 지켜주는 가축사육은 동식물과의 교감, 결실의 보람을 더욱 북돋아 주는 소박하고 친근한 삶이다. 햇빛과 바람, 새들은 성장의 조력자로서 자연의 일원으로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그들과 나누는 것 역시 거둠의 대가로 바라봐야 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과거 17년 동안의 오랜 교직생활은 그에게 이러한 자연에 대한 소중함, 대등함을 어린이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이자 반성의 시간이었다. 물들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의 눈은 책 속에 소개된 여러 편의 시를 통해 정제되지 않고 때묻지 않은 깨끗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한편, 지금의 잘못된 교육의 흐름을, 어리석은 교사들과 개성을 무시한 천편일률적인 학습과 수준별 수업에 그 원인이 있음을 지적하며 부모와 선생의 기대에 부응하고 그에 맞춰 길들여진 불행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수칙과 규율, 경쟁을 최소화하고 평등과 자유가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육이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육의 현장에서 정작 어른과 교사들에게서 종종 발견되는 차별과 편견, 고정관념, 불신등은 장차 사회로 나아가 살아가게 될 아이들에게 소심함과 주눅 든 삶, 그리고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생으로 치닫게 만든다. 학급 내 분실사건, 폭행, 취약계층 아동에 대한 배려에서 교사의 역할이란 그야말로 한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거나 혹은 비뚤어질 수도 있게 만드는 중요한 것이다. 교사가 되기 위해 임용고시를 치르고 안정된 직장에 안주하겠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교단에 몸 담는 사람들이 많은 요즘, 이 책은 '교사'라는 직업에 대해 깊은 사명감과 남다른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 우리는 인간이란 이유만으로 모든 만물에 있어 우위에 있지도 우월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교사의 입장에서도 아이를 가르친다기 보다 함께 배우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여든 먹은 노인도 세살짜리 아이에게 배울 점이 있다고 했다. '넌 아직 어리니까 몰라도 돼'라며 올바른 지식주입을 회피하고 때로는 권력의 수단으로 타락하여 시대의 노리개가 되는 교육현장. 그 속에서 과거, 아이였던 우리는 숱한 상처와 억압의 고통을 겪으며 자립과 해방의 구원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이런 교육의 대물림은 옳지 않다. 모범적 실천이 본보기가 되는 올바른 교육,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아이들의 웃음을 지켜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지향하고자 하는 미래의 상냥한 삶의 주인공을 키워내는 방법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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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자주 '상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 말은 '친절하다'는 말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듯하다. 내가 듣게되는 그 말이 나쁜 의미는 아니라는데서 칭찬같은 느낌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친숙한 단어여서 그런지 '상냥하게 살기'라는 책 제목이 궁금증을 일으켰다. 우선 하이타니 겐지로라는 작가에 대한 느낌을 적어야겠다. 쟁기를 든 표지의 모습이 얼마나 낯익고 친숙한지 금방 손을 뻗어 악수라도 나누자고 다가올듯하다. 그는 직업 칸에 문필업이라고 써넣을때 저항감을 느낀다고 하면서 섬에서 농사일에 매진?하는 모습을 이 책에서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각되는 것은, 작가는 어디에 살면서 무엇을 하든 경험하는 모든것들을 글로 완성시키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결국 어쩔 수없이 써넣어야 하는 문필업이 그의 본업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이 책의 강점이라면 무엇보다도 너무너무 편하게 읽힌다는 것이다. 작가는 문해능력만 갖춘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배했는지도 모르겠다. 어려운 낱말이나 난해한 문장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가 아와지 섬에서 농사를 통해 관계맺은 섬사람들과의 동맹과 또한 작가로서의 일상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을 친숙한 느낌으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도록 안배한 것은 그의 상냥함이 만들어낸 선물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독서의 즐거움을 배가시키느 부분은 따로 있다. 사랑스러운 자연과 뭇생명들에 대한 경외감, 순수한 사람들과의 소박한 생활에서는 한없이 친절한 그지만 부당하고 비뚤어진 사회에 대한 냉철한 판단과 올곧은 비판적 글쓰기에 대해서는 작가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윤리성이 요구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남들보다 갑절로 거짓말이 능숙하다ㅡ122P> 라는 표현에 대해 이러한 직업군에 속한 사람들은 불쾌감을 느낄 것이다. 어쩌면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찔리는 느낌이라도 받을 수 있으려나. 17년간 초등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친 경험에 의해 누구보다도 아이들의 감정과 상처를 이해하는 작가는 부패하고 무능한 교사들에 대해서도 통렬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당연히 그를 싫어하거나 비난하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하이타니 겐지로처럼 용기있는 작가도 흔치않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상냥한 사람들이 많을수록 우리가 사는 세상이 맑아질 것이고 아름다워질 것이다. 바른소리를 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는데... 부정부패에 눈감고 오히려 이득을 챙기려는 비양심적인 사람들이 득세하는 비합리적인 세상에서 그나마 하이타니 겐지로처럼 용기있는 사람과 한 시대를 살고 있음에 위로를 받는다. 상냥하게 산다는 것은 올바른 도리를 지키는 일이며, 양심적인 삶을 살고,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라고 하면 좋은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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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타니 겐지로 선생님의 새 책이 나왔다니! 돌아가셨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깜짝 놀랐다. 제목이 ‘상냥하게 살기’라니 선생님답다 싶으면서도 ‘상냥함’이 어떤 의미로 쓰인 건지 확실히 알고 싶어졌다. 열한 살 된 딸이 이가 상해서 치과에 데리고 가면서 책을 들고 갔다. 치료를 기다리며 의자에 누워 있는 딸 앞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의사선생님이 책 제목이 뭐냐고 물었다. ‘상냥하게 살기’라니까 ‘상냥하게 살면 다 된다는 이야기겠네요.’라며 무슨 자기개발서 쯤으로 이해하는데 ‘아, 제목만 보면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겠구나.’ 싶었다. 책을 읽으며 책이 점점 망가졌다. 무슨 얘기냐면, 읽다가 ‘아, 이건 정말 맞아.’ ‘참 재밌다.’ ‘아, 따뜻해.’ ‘아, 이렇게 잔잔하면서도 힘 있는 울림이라니.’ 하는 곳이 나오면 책 모서리를 접어가며 읽었는데, 접다 보니 너무 많은 곳을 접어버린 거다. 접힌 곳이 겹쳐 책장이 뜨니까 꾹꾹 눌러 얇게 만들었는데, 너무 세게 눌러 접는 바람에 곧 떨어져 나갈 것 같다. 그만큼 좋은 책이다. 아와지 섬 시골 마을에서 작물을 기르며 자급자족하는 생활을 배워가는 1부의 이야기를 읽으며, 하이타니 선생님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동안은 내가 흠모하며 우러르던 ‘스승’ 하이타니 선생님이 왠지 ‘친구’ 같이 편안하게 느껴졌다. 농촌에서 겪는 일상을 그럴싸하게 포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그려내면서도 때때로 깊은 깨달음이 담겨 있는 이야기들을 전하며 이야기 뒤에 종종 덧붙이는 ‘익살’ 때문이었다. 아, 이렇게 익살스러운 면이 있는 분이었구나 싶으면서 훨씬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았다. 고맙게도. 내 코흘리개 시절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이렇게 하나둘씩 줄어간다. 올해도 매화꽃이 피었다. 나는 희고 작은 꽃을 쓸쓸히 바라보고 있다. 이 중 어떤 꽃이 사카키바라 씨일까 생각한다. 이모는 어떤 꽃일까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매화나무 밑에 작은 생명을 묻는 버릇이 생겼다. 작은 생명은 붕어나 잉어 머리일 때도 있다. 유리문에 부딪혀 죽은 작은 새일 때도 있다. 어릴 때 많이 했었지, 생각하며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조촐한 장례식을 치른다. (94쪽) 1부에서 지인의 죽음을 전해 듣고 매화꽃을 보며 명상하는 이 장면을 옮겨 보았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선생님의 마음이 잔잔하게 전해져 온다. 사회와 교육 문제에 관한 쓴소리와 아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건져 올린 깊은 생각이 가득한 2부와 3부의 이야기는, 내가 교사이기도 해서 그랬겠지만 절절하게 공감하면서 읽었다. 읽다가 여러 번 울컥해서 눈물을 흘리고 닦고 했다.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나라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고통 받고 소외당하는 사람들이 있는 세계 모든 나라의 이야기이기도 한 이야기들이었다. ‘상냥함의 근원’이란 소제목 아래 이어진 아래 글을 읽고 ‘상냥함’이 어떤 뜻인지 정리할 수 있게 됐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이 아이는 점심값을 아껴 장난감을 사고 “아기가 돌아오면 이 장난감을 줄 거다. 빨리 돌아와.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라고 소리쳤습니다. 이 아이의 상냥함 앞에, 나는 인간으로서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가혹한 상황에서도 훌륭한 인간이고자 하는 어린 영혼의 모습에 절망에서 희망으로 가는 다리를 놓는 어린 전사를 본 것입니다. 내가 그토록 찾던 인간상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고사명 씨, 세쿼이아와 임영길 씨, 그리고 아오야마 다카시의 공통점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욱 아름다운 인간이고자 하는 정신을 지닌 인간이라는 점입니다. 이 사람들의 존재가 나에게 얼마나 큰 용기를 주는지 모릅니다.(262~263쪽) 상냥하게 산다는 건, 모든 생명을 대등하게 바라보며, 차별 없이 사랑하며, 절망적인 상황에서 더욱 아름다운 인간이고자 애쓰는 것이다. 2015년을 시작하며 이 책을 읽게 되어 참 고맙다. 적어도 올해는 더욱 아름다운 인간이고자 애쓰며 살아야겠다. 절망으로 뒤덮인 이 땅에서. 끝으로 교사로서 하는 반성 하나 덧붙인다. 하이타니 선생님이 ‘보복과 본보기의 시대’에서, 학교에서 비행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리고 그 사실을 실명으로 교내에 공고하고 교내 봉사활동을 시키는 것을 비판하면서 교사들이 ‘죄를 짓는 꼴’이라고 하는 부분을 읽으며 교사로서 내 행동을 깊이 반성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상에 대해 “벌을 주어야 한다니, 얼마나 오만한 말인가. 그것이 교사의 입에서 나왔다는 사실에 전율을 금할 수 없다.(220쪽)”고 꾸짖는 하이타니 선생님의 말이 앞으로 귓가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런 선생님이 되겠다고. 이런 어른이, 이런 사람이 되겠다고. 내게도 기억나는 선생님이 있다.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 나는 배고픔을 못 이겨 학교 뒤편 밭에서 옥수수를 훔쳤다. 그리고 숙직 선생님에게 붙잡혔다. 그날 숙직 선생님은 내 담임 선생님이었던 후쿠다 선생님이었다. 후쿠다 선생님은 나를 꾸짖기는커녕 자기 집으로 데려가 흰 쌀밥을 배불리 먹여주었다. 나는 그때 다시는 도둑질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22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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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상냥한 편입니까? 우리에게 '상냥하다'는 말은 '사교적이다, 친절하다, 잘 웃는다, 말투가 부드럽다, 예의 바르다' 등의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래서 흔히들 상냥함의 반댓말로 '무례함, 표정이 퉁명함, 말투가 거침, 짜증' 등을 꼽습니다. 우리나라가 상냥함이 몸에 밴 문화라고 자처하기는 그렇습니다. 옛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이 있지만 왠지 그 말은 상냥함보다는 정숙함과 관련이 깊다고 느껴집니다. 오히려 우리의 가깝고도 먼 이웃인 일본이 상냥과 친절의 대표격 나라로 간주되죠. 우리가 '한국 사회는 더 상냥해져야 한다'고 주장하면 바로 맞는 말이라는 반응을 이끌게 됩니다. 가뜩이나 분노 조절이 잘 안 되어 일어나는 여러 흉한 사회면 소식들이 빈번하게 들려오던 차 아닙니까. 그런데 일본에서 '상냥하다'를 단지 대인관계적 예의범절 수준이 아니라 '상냥하게 살기'라는 일종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의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운동을 전개하시는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아동문학가 하이타니 겐지로 씨입니다. 그의 『상냥하게 살기』(양철북, 2015)라는 책을 접하고 난 후, 우리가 걱정하고 우려하는 일본사회의 우경화 문제에 대해 일종의 대중적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붓의 나라라면, 일본은 칼의 나라로 말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의 일반 상식에 부합합니다. 특히 일본은 자체적으로 힘과 패권을 추구하는 군국주의 문화의 경향이 심하다는 생각 말입니다. 한편, 우리가 난의 나라라면 일본은 국화의 나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국 문화의 특색을 '난과 붓'으로 요약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돌이켜보면, 일본 문화의 특색을 '국화와 칼'로 요약한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의 통찰력에 새삼 탄복하게 됩니다. 물론 난과 붓이 서로 조화로운 특징을 이룬다면, 국화와 칼은 매우 대조적인 특징에 해당합니다. 베네딕트는 그런 일본 문화의 이중성을 누구보다 심도 있게 간파한 학자입니다. 한국 문화에 비해 일본 문화는 애매한 구석이 너무 많습니다. 일본의 대중문화는 '귀여움'(카와이)을 유별나게 사랑하지만, 정작 사극 무사의 갑옷은 흉악한 악마의 형상을 즐겨 그리곤 합니다. 공적인 영역에서의 상냥함을 매우 강조하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과묵함을 중시하는 것도 대조적이라 하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남에게 폐 끼치지 말라’고 가르치는 일본의 양육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하이타니 겐지로 씨는 책에서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상냥함의 라이프스타일을 강조합니다. 그것이 '상냥하게 살기'이고 타인에 대한 깊은 배려라 할 수 있는 이런 상냥함의 문화적 기원을 오키나와 문화에 두고 있습니다. 오키나와 문화는 기실 19세기까지 존재했던 독립왕국 류큐(琉球)문화를 가리킵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은 일본 지배층 사회의 패권적인 우경화에 대항하여 오키나와 특유의 '상냥함'과 인간과 자연의 화(和)의 문화를 내세우는 대립구도라고 봐도 될 정도입니다. 겐지로 씨는 사회적 약자와 성 소수자, 빈민층 어린이, 외국인 노동자, 장애인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호소하고, 또한 "인간만이 주인공인 곳에 아름다운 풍경은 없다"고 말하면서 "인간과 자연의 유대에 대한 장편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하기도 합니다. '상냥하게 살기'의 세계관은 '거꾸로 보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전복적이고 낙관적이죠. 이런 긍정적인 저항의 힘은 아이들의 동심에 귀기울일 줄 아는 마음에서 싹트는 법입니다. S라는 한 아이가 쓴, 234쪽에 나온 시 '거꾸로 나라'를 소개해볼까요. 거꾸로 나라
여기가 거꾸로 나라라면 재미있을 거야 부자가 가난뱅이고 돈 한 푼 없는 사람이 엄청난 부자야 도둑이 들어오면 ‘손들어’하지 않고 ‘발 들어’해서 엉덩방아를 찧겠지 그리고 도둑이 돈을 줄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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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타니 겐지로를 일본의 권정생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분이 있다. 올곧은 동화작가로서 살았고, 가난하거나 약한 사람의 편에 서서 글을 썼으며, 대중의 사랑을 크게 받았다는 공통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타당한 지적이다. 그러나 권정생 선생님보다 이오덕 선생님과 더 닮은 작가가 아닌가 싶다. 17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하며 바른 ‘글쓰기’를 하고, 아이들의 글을 엮어 책을 펴냈다. 아이들이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글을 쓰게 한 뒤 그 글을 귀하게 여긴 것이 이오덕 선생님과 매우 닮았다. 어린이를 가르칠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서로 배우는 관계로 여긴 것도 마찬가지다. 그렇다 보니 하이타니 겐지로의 글에는 이오덕 선생님 글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뛰어난 글이 중간 중간 인용되어 있다. 권정생 선생님 글에서는 보기 어려운 지점이다.
하이타니 겐지로가 40대 무렵에 발표한 64편의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간디가 타고르에게 했던 말인 “타고르, 육체노동을 해서 빵값을 버시오. 그 누구도 노동의 의무로부터 자유롭지 않소.”를 직접 실천하기 위해 아와지 섬으로 이주해 스스로 몸을 움직여 먹고 살아가는 이야기다. 섬 생활에서 느끼는 자연의 경이로움과 생명 존중을 느낄 수 있다. 2부는 애국심이나 교과서 문제 같이 점점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정치 사회 상황을 비판하고 있다. 거꾸로 가는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과 많이 닮았다. 3부는 어린이한테 배운다며 어린이가 지닌 상냥함에 대해 풍부한 사례를 보여 주고 있다. 천상 교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4부는 자신의 문학 작품에 관한 이야기나 좋아하는 작가 등 문학론이라 할 수 있다. 소설 속의 상상력은 한마디로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이다.”는 말이 깊이 와 닿는다.
공통어(나는 표준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는 숙명적으로 차별성을 갖는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흔히 ‘사투리 되살리기’라는 말을 하는데, 원래 모든 말은 사투리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일본어가 엉망이 되는 것이다. (149쪽)
나는 젊은 선생님들에게 교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풍부한 전문적 지식이 아니라 자신을 미숙한 인간이라고 인정하고 아이들과 함께 성장해나가겠다는 결의가 아니겠냐고 곧잘 말한다. (237쪽)
어린이가 지닌 상냥함의 근원은 모든 생명을 평등하게 느끼는 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평등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그런 사상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생활 속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해 보입니다. (244쪽)
하니타니 겐지로의 글을 읽는 재미도 좋지만 중간 중간 소개하고 있는 아이들 글이 더 재미있다. 이를테면 6학년 다키나미 게사오는 「욕조의 모래」에서 “아빠가 목욕을 하고 / 나왔다 / 내가 그다음에 들어갔다 // 욕조 뚜껑을 여니까 / 욕조에 모래가 조금 있었다 / 우리를 위해 / 일했기 때문이다” (109-110쪽)하고 썼다. 어린이의 깊은 마음이 감동을 준다. 2학년 구로다 마코토는 「흉내」에서 “모두가 몰래몰래 옆 사람의 / ‘그림’이랑 ‘시’를 흉내 내지만 / 나는 흉내 내는 게 제일 싫어 / 남이 발명한 것을 / 그대로 따라 하는 건 나빠 / 모두의 마음속에는 / 검은 옷을 입은 흉내쟁이 귀신이 / 히히히 웃으며 살고 있을 거야” (272쪽) 하고 썼다. 마코토는 학교에서 포기한 아이였다고 한다. 덤프트럭이 다니는 찻길에 드러눕기도 하고 홈통을 타고 올라가 선생님들을 질겁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문제아가 이런 멋진 시를 썼다. 이오덕 선생님의 제자라고 해도 좋을 어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