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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이십사 친구블로그들에서 많이 보여 궁금해하며 구입해 읽었다. 오랜만에 그림을 다룬 책을 읽어서 좋았다. 특히 저자인 채운 선생님이 고미숙 선생님과 비슷한 느낌이어서 책장이 잘 넘어갔다.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말 걸듯이 가벼운 문체로 글을 쓰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내내 곱씹어보고 싶을 만큼 의미심장하다. 구매, 소장하길 매우 잘했다.
힘든 일을 겪은 올케를 위해 썼다는 이 책은, 항간에 청춘을 '병자'로 만들며 우리가 겪는 고통을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긍정적인 자세'로 "괜찮다"고 여기라고 세뇌시킨 힐링 열풍 맥락과는 다르다. 고미숙 선생님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건 이 때문이었다. 개인 고통의 저변에는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다(사회 구조 문제이든, 인간이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고통이든). 고통을 없앨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니체처럼 운명을 사랑하며 고통까지도 손님으로 환대하라. 이러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저자는 그림들을 가져와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오디세이아"에서 반복되는 흥미로운 테마 중 하나는 '환대'입니다. 오디세우스가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리스의 오랜 전통인 '이방인에 대한 환대' 때문이었습니다. 외부에서 온 타자는 배척해야 할 이방인이 아니라 무조건 환대해야 할 손님입니다. 낯선 자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그를 맞아들이고 이부자리를 내어주는 것, 알고 보니 그가 손님을 가장한 도둑이었다 하더라도 그를 기꺼이 친구로 맞아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능동적 관계를 형성하는 '자유로운 자'들의 행위 양식이라는 얘기죠. 난 어쨌든 너를 맞아 친구로 삼겠다, 내 친구가 되어달라! 이런 환대의 전통에서 본다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던지며 타자를 향해 문을 걸어 잠그는 사람들은 자신의 세계에 고립되기를 자처하는 셈이지요.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타자'란 우리가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늙음, 질병, 파산, 이별 죽음 등등 우리는 한시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고통을 증오하고 배척하고 완전히 몰아내기만을 꿈꿀 뿐, 고통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유나(cf. JTBC 드라마 "유나의 거리" 주인공)가 살던 거리처럼, 우리가 사는 거리에도 거짓과 배신과 죽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인생에서 우리와 공존해야 할 것들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청결의 기술이 아니라 공존의 기술이지요. 적절한 균이 없으면 살 수 없듯이, 아프지 않으면 건강을 알 수 없듯이, 적이 아니면 인내와 용서를 배울 수 없듯이,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우리 아닌 모든 것들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타자들과 더불이 타자들 속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지요." 300-301쪽. ㅂㄷ교수님의 자기중심, 타자중심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작년에 '죽음'이라는 주제로 전체제안수업을 준비했던 기억도 난다. 게다가 재미있게 보았던 JTBC 드라마 "유나의 거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고 있어서 반가웠다. 반갑지 않은 타자까지도 사랑하고 환대하는 경지는 대체 어떤 걸까.
"우선 공부의 영역에선 '쓸모'라는 게 별 쓸모가 없습니다. 자기 사고의 한계를 넘어가기가 힘들긴 하지만, '이 정도'라는 일괄적 기준이 따로 없거든요. 게다가 계급이나 나이의 차별이 없습니다. 배움의 관계만이 있을 뿐이죠.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월요병'이 없다는 겁니다. 공부를 업으로 삼다 보면 사실 공부의 놀이가 잘 구분되지 않기도 합니다. 공부하면서 놀고, 놀면서 공부한달까요. '이것밖에는 길이 없다'라는 전제를 버리고 나면 의외의 다른 길이 열리기도 합니다." 153-154쪽. 학점을 부여받는 정규 교육과정 말고, 수유 너머 같은 연구공동체에서 함께 읽고 쓰고 싶다고 생각하곤 한다. 대학원에서 하는 공부도 의미가 있겟지만 아무래도 공부 이외의 것들, 즉 의미 있는 결과물을 생산해서 남 앞에 내놓아야 한다는 압박과 그 과정에서 겪을 순수한 공부 어려움 외의 이런 저런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다소 걱정이 된다. 적어도 정규 교육과정이 아닌 학문공동체에는 배움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둔 사람이 비교적 많지 않을까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다. 공부하면서 놀고, 놀면서 공부하는 경지는 또 어떤 걸까. 저자가 함께 공부했다던 어느 성실한 남자분의 끈기에 대해 생각한다. 처음에는 한 페이지를 쓰기도 힘들었지만 인내하며 꾸준히 읽고 쓴 후 지금은 일곱 페이지도 쉽게 써 내려간다던 그 분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다.
"삶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의식은 삶과 죽음을 대립적인 것으로 파악하지만, 아이가 잉태되는 과정부터 태어나 자라고 늙고 죽기까지의 과정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빠르게 돌려본다면 '나'로 머물러 있는 순간은 단 한순간도 없을 겁니다. 매 순간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접속함으로써 다르게 생성되는 '과정'만을 볼 수 있을 테지요. 잉태의 순간을 '바로 이때'라고 정지시킬 수 없듯이, 죽음의 순간 역시 '바로 이때'라고 정지시킬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없다가 있다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사실은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게 아닐까요? 다시 말해, 오로지 한순간에서 다른 순간으로 넘어가는 '사이'로만 존재하는 게 아닐까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흘려보내는 이 '순간들'이야말로 실은 유일한 '영원'이 아닐까요?" 236-237쪽. 형체가 뭉그러진 모네 말년의 그림들을 '전형적인 인상파 그림이군'이라고 생각하며 쉽게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반 고흐와 뭉크의 마지막 자화상을 보며 '유명한 그림이라 반갑다'고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좀 더 깊이 그림을 읽을 수 있도록 훈련 시켜준다. 과도하게 개인적인 해석이 될 수도 있지만, 보는 이가 자신의 마음을 투영해 읽을 때 또 하나의 의미 있는 감상이 되지 않겠느냐는 차원에서 분명 그림 보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역량이다. 나도 아이들에게 종종 그림을 보여주곤 하는 이유는 그들이 그림을 좀 더 자기 것으로 향유하고 음미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뭉크 자화상에서 시계와 침대와 뭉크 자신의 얼굴에 대해 다른 사람도 함께 공감할 만한 의미까지 부여할 줄 알면 더욱 좋겠다.
"에드바르 뭉크, 침대와 시계 사이의 자화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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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하면 이상하게 왜 어렵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지.. 우리의 삶에 대한 깊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철학적인 물음을 답은 책 '철학을 담은 그림'은 그림을 통해 세상의 잣대와 고정관념,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잡은 생각들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놓는 이야기를 통해 닫혀 있던 내 마음을 펼쳐놓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게 돌아보게 한다. 저자가 심사숙고해서 고른 그림을 통해 풀어놓는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이라 읽다보면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에 나온 앤드루 와이어스의 그림의 주인공 크리스티나는 실존 인물로 소아마비로 들판을 기어 저 멀리 보이는 집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우리는 마음 편히 그림을 보기 힘들다. 크리스티나의 뒷모습 속에 피로에 찌든 우리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된다고.. 맞다.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와 더 나은 조건을 쫓아 맹목적으로 달리기 선수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넘어가기 직전까지 피로에 지쳐 있지만 온전히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우리들... 목표물을 향해 나아가는 중간 힘들면 쉬어도 좋다. 그래야 한다. 당연한데 왜 숨을 고르고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 누구에게나 필요함을 새삼 느낀다. 요즘 카페에 가면 흔히 보는 풍경이 분명 연인 같은 사람들, 친구들 등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만났지만 극히 제한적인 대화 몇 마디만을 나눈 뒤에는 너무나 당연스럽게 핸드폰을 뒤적인다. 대화를 하면서도 핸드폰에서 손을 놓지 못하거나 얼굴도 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럴 거면 왜 만날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나 역시도 한 번씩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에드워드 호퍼의 <객실>의 책읽는 여성과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의 시선을 확인하는 요즘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과의 대화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결국에는 자신과의 대화를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 '무례'라는 저자의 글에 충격을 받으며 자신의 감정, 행복에 당당해 질 수 있도록 조금 더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는 글에 공감하게 된다. 습관은 무섭습니다. 오로지 하나의 방향만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 거기에도 관성의 힘이 강하게 작동합니다. 미워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더욱 미워하게 되고, 사랑하지 말자 하면서도 계속 집착하게 되는 것처럼요. -p105-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습관에 길들여지는 면이 있습니다. 좋은 습관이 있을 수 없느냐의 질문에 그 자체로 영원히, 절대적으로 좋은 건 없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 깊다. 좋은 습관은 결국 나쁜 습관에 제어장치가 되지만 그마저도 습관처럼 굳어지면 집착이 된다고... 무섭다. 우리는 아니 나는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나쁜 습관은 하는 사람들을 흔히 찾게 되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이 가진 나쁜 습관을 다른 사람들이 발견할까봐 두려워서인지... 하나의 고정된 습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현실인은 강하다.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의한 것이 더 크게 작용하는 사회.. 마리솔 에스코바르의 그림 이야기에 저자의 조카, 자신의 현재 사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저자 채운 씨가 어떤 사람인가 잠시 생각해 보며 백수라고 당당히 말하며 삶이 부럽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인생에서 갈림길을 만나면 그저 갈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길을 가면 된다고요. 원래 길이란 없었다고, 걸어가니 길이 되었다고요. 혹 선택ㄱ의 기로에 놓였다고 생각한다면 뒤뷔페의 <풍경>을, 그리고 루쉰의 말을 떠올려보세요. 누구나 결국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돼 있습니다. 정말 할 수 없다면, 그때 가서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으면 됩니다. 다만 어떤 길을 가든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p204-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진 마음은 두 가지 선택 중 하나의 방법을 은연중에 포기하고 있다고... 우연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 우리 자신의 숨은 욕망과 행위가 들어있다고... 맞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많은 사람들은 죽을힘을 아니 자신이 가진 최선을 다하지 않고 시대가, 상황이 맞지 않다고 무언가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그러하다. 목표를 가진 일도 그렇지만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망이 크기에 나의 감정을 속이는 일은 너무나 흔하다. 가장 허물없이 지내야 할 가족에게조차도... 모든 것을 들어내고 사는 것이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하얀 거짓말 보다는 조금 아프지만 진실이 필요할 경우가 있다. 현재의 내 모습은 나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앞으로의 미래는 지금의 내가 모여서 만들어질 것이다.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일상의 반복적인 습관, 행동, 관계들로 인해 지쳐있는 것은 아닌지... 새삼 고민하게 된다. 저자 채운 씨는 이 책을 쫓기듯 삶을 살고 있는 두려움을 가진 K란 인물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라고 말한다. 여기에 덧붙여 말한 두 가지 중 하나의 이야기에 유달리 마음이 간다. 바로 저자 자신의 남동생의 아내.. 올케와의 관계 아니 저자의 살갑지 못한 성격 때문에 서먹한 관계를 이어오는 올케에게 자신의 이야기의 일부라도 들려주고 싶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공감하게 된다. 나 역시도 남동생의 올케와 나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순전히 나의 생각일 수 있다. 다른 집 시누이들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 세자매는 생일, 명절 때도 크게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살라는 주의다. 나름 올캐를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남동생의 성격을 생각할 때 올케의 삶이 어떠했을지.. 우리의 이기적인 무심함이 올케를 가족과 거리를 두게 한 것은 아닌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그림과 함께 풀어낸 이야기라 쉽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장자, 법정스님, 니체, 루쉰 등과 저자가 팬이라고 밝힌 조용필, 미생 이야기 등으로 풀어내는 철학이야기... 잠시 쉬면서 나의 모습을, 내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유익한 시간이 될 책이기에 지금 먹고사는 문제를 비롯해 삶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아픈 여동생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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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부분에서 부터 저자는 요즘사회를 만성 피로에 시달리는 사회라고 했다. 모두가 턱밑까지 피로가 차있는 사회란다. 그런데 저자는 냉정하게 이렇게 말한다. 누구도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고 말이다.피로하고 초라해 보이고, 인생에서 가장 비참하고 불행한 바로 그 순간, 넘어진 그 자리야 말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고 , 무언가를 시작해야 하는 순간이란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불면증과 소화불량을 달고 산다고 전제한 저자는 생각으로 인한 불면의 밤을 <숙면의 밤>으로 바꾸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한데, 그건 생각을 내려 놓는 것이라고 했다. 생각에 실체가 있는게 아니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면 <저 사람은 나한테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기 떄문인데 전제를 내려 놓으면 갑자기 홀가분 하단다. 저자는 인생이 원래 의지대로 되는게 안란걸 40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단거리>를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안내하는 내비는 없단다.인생은 어쩌면 육지가 아니라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일지 모른다고 말한 저자는 인생이 바다기에 내비가 무용하다고 했다. 우리의 가장 확실한 내비게이션은 바로 <우리 자신>이란다. 햄릿에 나오는대사를 인용하여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실존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사는 생존의 문제라는 점에서 현대는 햄릿보다도 한층 비극적이라고 했다. 저자의 열네살된 조카가 학원 가기 너무 싫다며 한숨을 쉬기에, 학원을 왜 가야 하느냐고 물었단다. 조카는 좋은 고등학교에 가서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단다. 저자가 꼭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공부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했더니 조카가 그랬단다. <그럼 어떻게 먹고 살아 ! > 이제 겨우 열네살 짜리 입에서 먹고 살아야 하는 걱정이 나오는 시대. 조카의 그 한마디가 바로 현대인의 <절규>가 아닐까 생각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철학적인 얘기가 마음에 들었다.너무 어려워 이해가 잘 안되는 고차원의 철학이 아니라서 더 마음에 와닿았다. 평소 그림에 관한 책을 즐겨보는 편이다. 이 책은 <지친 당신의 마음속에 걸다>라는 구절에 끌려 읽게 되었다. 책에 나온 그림은 크기가 작아 좀 실망했는데, 에세이 형식으로 쓰인 글의 내용이 참 진솔하여 ,그림보다 글에 빠져 들어 읽게 되었다. 마음이 힘든 날에 다시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
철학과 그림의 융합을 담아내고 있는 이 책은 흥미롭게도 철학적 사유를 미술 작품을 통해 이끌어내고 있다. 그렇기에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철학을 익숙한 화가와 익숙한 미술작품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쉽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그림에 담겨진 철학적 고찰을 하고 있는 책이라고 해도 좋을텐데, 그런 과정을 통해서 지친 이에게 위로를 건내고 있는 책이기도 하니 색다른 방법으로 힐링을 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책속에 소개된 미술작품만 감상해 보는 것도 충분히 괜찮은 독서 시간이 될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책의 구성을 보면 각 미술작품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에 이어서 이 미술작품과 관련한 철학을 바로 우리들의 삶과 연결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저 예쁘다거나 아름답다라고 생각했던 미술작품도 이렇게 접근하니 의외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과 동시에 마치 새로운 미술작품 하나를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에드워드 호퍼 <객실>
에드바르 뭉크 <재>
마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감정과 심리를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는것 같은 미술작품들로 이 책을 만들어낸 점도 상당히 대단하다 싶은 생각이 들고, 바로 이 과정에서 저자의 역량이 느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책은 총 4장으로 나누어서 각기 5~6개의 작은 이야기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에는 한 두개의 미술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앞으로 하게 될 철학적 사유와 참 잘 어울리는 미술작품이 아닌가 싶어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정말 나 자신으로 살고 있을까?'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답으로 진정한 자아와 마주하기 위한 방법으로 에드워드 호퍼의 <객실>이라는 작품이 소개되는데, 저자는 흥미롭게도 자신과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 바로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것, 즉 무례라고 말한다. 게다가 충분히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타인에서 벗어나 자신과의 대화를 시작함으로써 진정한 자아와 마주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그림에 대한 해석을 하는 듯,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 아니면 상처받은 우리를 위로하는 듯, 진정한 나의 행복을 위한 방법을 이야기 하는 듯, 참으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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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든, 소설이든, 그림이든, 조각이든, 음악이든 사람이 만든 것이면 모두 그 사람의 철학이 들어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아무 생각 없이 보아넘기는 것들에서 무언가를 찾아내서 그것을 시로, 소설로, 그림으로, 조각으로, 음악으로 키워나가는 데는 철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그 철학을 잘 알아봐 주는 눈이 상대에게 없을 수 있다는 것이 문제다. 아무리 큰 내용을 담아놓아도 읽거나 보거나 듣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다면 의미가 휘발되는 것이다. 이런 작품을 이해하는 방법을 익히기 위해 우리는 십여 년간 학교에서 국어, 미술, 음악을 배우지만, 전과를 벗어나 해석해주는 이 없는 작품을 날것으로 대하니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슬그머니 해석의 고통을 외면하고, 아무것도 해석할 필요 없이 즐기기만 하면 되는 TV며 게임에 빠지고 만다. 서평에 앞서 말이 길었다. <철학을 담은 그림>(2015, 채운 지음, 청림출판 펴냄) 때문이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 박사 과정 수료라는 화려한 학력의 저자는 '고전비평공간 규문'의 연구원으로서 고전을 공부하고 있다. 저자의 주위에는 '안전한 삶을 준비하느라 삶을 잃어버리는 대신 멍에를 내려놓고 자신의 삶을 실험하는 사람들'(257쪽)이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그림과 이야기에는 안전함 대신 치열함이, 생활보다 삶이 담겨 있다.
그림은 형태뿐 아니라 색채에도 의미가 담긴다. 저자는 인생의 목적, 타자라는 거울, 고통을 마주하는 방식, 모든 것과의 공존 등 철학적인 키워드를 제시하면서 그에 어울리는 그림 한 점을 내건다. 그리고 키워드를 풀어나가는 데는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삶에다 문학 작품도 더해진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서 전혀 기반이 없는 지금 직업을 택한 것에 대해 가끔 후회하는 내게, 3장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에서 '순간의 선택이 정말 미래를 결정할까?'라는 항목은 마음 깊이 들어왔다. 이 키워드로 선택된 그림은 장 뒤뷔페의 <풍경>이다. 그림에는 많은 물체가 중첩되어 있는 듯한 풍경을 펜선으로 그려져 있다. 우리나라 달동네처럼. 저자는 이 그림에서 '선택과 집중'을 이야기하면서, 지금 선택을 하게 되기까지 우리가 만들어온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뒤뷔페의 작품에서 수많은 선들이 모여 풍경을 이루듯, 루쉰이 '인생에서 갈림길을 만나면 그저 갈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길을 가면 된다'고 말했듯, 카를로스 카스타네다가 <돈 후앙의 가르침>이라는 책에서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다면 그 길은 좋은 길이고, 담겨 있지 않다면 쓸모없는 길이다'라고 했듯, 선택에 대해 너무 큰 부담과 미련을 느끼지 말고, 선택한 것에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한다. 선택한 것이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았을 때는 다른 것을 택하면 된다고. 중요한 것은 마지막 문장, '그렇게 마음을 담아, 당신이 가는 길이 당신 자신이 되게 하시길!'(205쪽)이다.
운전하면서 내비게이션을 조작할 때, 앤드루 와이어스의 그림 <크리스티나의 세계> 속 여자처럼 피로에 지쳐 쓰러질 지경일 때, 습관에 끌려다닐 때,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할 때, 자기비하와 자책에 압도될 때, 죽음을 생각할 때. 외면하고 넘길 것이 아니라 내 삶과 마음을 들여다보자. 그림과 함께여서 더 풍성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꽤 위안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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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동하는 순간 한장씩 꺼내 읽어 볼 생각이였다.그런데 나도 모르게 그만 앉은자리에서 다 읽어 버리고 말았다. 지친 당신의 마음속에 걸어 놓으라는 부제와는 달리 위로 보다는 충고(?)의 메세지가 더 강렬한 느낌도 없지 않아 들었지만 아무렴 어떤가..지금 내게 필요한 건 위로 보다 충고인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풀어 놓는 수많은 화두가 현재 나의 고민인 동시에 잘못하고 있는 것들의 투성이여서 위로가 아닌 충고로 들렸는지도 모를일이고.무튼 딱딱한 글로 채워진 위로아닌 위로 였다면 지칠법도 했겠지만 그림의 등장으로 편안한 느낌으로 읽어낼 수 있었다.나와 다른 시선으로 그림을 보기도 하고,그림 속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끄집어 내는 시선들은 앞으로 내가 그림을 보면서 해 보고 싶은 것들이기 때문에 퍽 흥미롭게 읽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올 겨울 보게 된 전시 가운데 나의 시선을 사로 잡았던 그림이였다.그림의 일부를 부각시킨 까닭은 여인의 시선에 닿아 있는 검은 연기때문이였다.화가의 의도인지 아니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멀리서 보았을때는 한없이 우하해 보였던 여인이였는데 그림의 제목이 '작별'인 까닭을 짐작하게 한 부분이여서 그랬을 게다.안나카네니나의 명대사와 찰리채플린의 명언이 동시에 생각나게 한..멀리서 보면 한없이 우아할 것 같은 여인에게도 우리가 모르는 슬픔이 있을수 있다는 것.덕분에 나는 이 그림을 무조건 아름다운 그림으로만 보게 되지 않은 동시에,인생에 대해서,수많은 시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철학을 담은 그림>을 흥미롭게 읽을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그림을 보는 것 자체가 때로는 위안이 되고 즐거움이 될 수도 있지만 가끔은 그림과의 교감이 나를 돌아보고,성찰하는 시간으로 퍽 매력적인 순간이라는 사실 말이다.첫장에 소개된 앤드루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는 저자가 바라본 시선과 내가 느꼈던 시선은 달랐지만,그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고,외젠들라크루아의 그림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을 통해 결핍에 대한 화두는 비슷한 생각을 공유한 탓에 한껏 즐거움이 더했다.그러나 이 책이 하고 싶은 주제는 결국 스스로 다단해 지기 위해 필요한 것에 무엇이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였던 듯하여 다른듯 비슷한 내용의 반복성에서 오는 불편함이였던 것 같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통해 자신을 성찰하는 방법은 매력적이란 생각을 했다.
수시로 꺼내 보고 싶은 그림들이 참 많이 소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선 그 중 하나~
"우리는 아는 만큼만 아는 대로만 세계를 봅니다.또 보이는 것만을 가지고 앎을 구성하지요.때문에 '객관적 판단'이란 애초에 불가능합니다.우리의 모든 앎은 이미 '해석된 것이죠. 예컨대 오늘 날씨가 춥다 처럼 중립적익고 사실적으로 보이는 진술조차 춥다고 느끼는 나의 감각에 따른 해석입니다.그래서 같은 사건을 두고서도 전혀 다른 해석을 할 수가 있습니다. "/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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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의 독서. 그림과 철학,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이다. 마치 작가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으로 글이 쉽게 잘 읽혔다. 인생과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으며 주변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마음에 위안이 되는 구절들이 종종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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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담은 그림. 부제 지친 당신의 마음속에 걸어놓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짐작했던 내용은 학부의 전선 혹은 전필 과목이었다. 제목을 넘어 표지를 찬찬히 훑어보고 푸른 색 물감이 종이에 물드는 바탕을 보고서야 학술적인 의미의 철학이라기 보다 사람의 살아가는 방향, 삶의 지혜라는 의미의 교양과목 같겠구나 깨달았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프롤로그를 읽는데 저자의 느린 호흡덕분에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따라갈 수 있었다. 프롤로그 첨언에 적힌 글을 쓰게 된 목적은 '시'자를 가진 가족이 있는 여성들이라면 더욱 이 책을 반기겠거니 싶었다. 흔히 하는 말로 '많이 배운'저자인데도 그런 내색 없이 상처받은 영혼을 이끌어가려는 모습이 시작부터 맘이 놓였다.
목차를 찬찬히 훓어보는데 낯익은 화가들이 많이 보인다. 에드워드 호퍼, 얼마전 영화를 통해 만날 수 있었던 윌리엄 터너, 두 말하면 잔소리인 반 고흐 등 낯설은 화가들 속에 반가운 이들이 보여 안심한다. 1장 첫 작품은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라는 작품인데 저자의 설명 없이도 보자마자 한숨이 나온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담긴 작품을 볼 때 느낌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뒷모습까지 매력적인 사람이거나 뒷모습을 통해 느껴지는 좌절과 안타까움. 이 작품은 안타까움이다. 그림의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흑인 인권 운동가 로자 파크스의 이야기를 오버랩시키더니 다시 그림 속 크리스티나에게로 돌아온다. 책의 구성은 크게 4부로 나뉘었지만 그림을 대하는 방식과 독자에게 전달해주고 싶은 말들이 이런식으로 이어진다. 작품을 탄생시킨 예술가와 대상에 얽힌 이야기, 자신이 하고싶었던 내용을 강의, 영화, 드라마 등을 통해 독자가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한번 더 언급하며 우리가 깨달아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마음속에 걸어주어야 할 작품이 어떤 내용인지 이끌어주었다. 저자가 소개 해준 작품 중에 와닿았던 몇 가지를 고르면, 움베르트 보초니의 마음의 상태들-걷는 자들 이다. 그림을 보자마자 어지롭고 혼란스러웠다. 강한 붓향에 사라지는 집들의 창문과 문은 절규하는 사람의 표정을 닮아 있었다. 아마 책을 중구난방으로 먹어치우듯 읽는 사람들이라면 이 그림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었으리라.
"저는 생각이 너무 많아요"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대개 불명증과 소화불량을 달고 살지요.-중략-5분만 눈을 감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한번 지켜보세요. 그러면 우리가 얼마나 무수한 생각들에 끌려 다니는지를 단박에 알 수 있을 겁니다. - 37쪽-
기도할 때 조차 무수한 잡념들로 피곤 했던 터라 저자의 말에 시도하지 않아도 그게 어떤 상태인지 잘 알고 있다. 그런 마음 상태를 이 그림은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런 어지러운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저자는 달마대사 일화를 소개해준다. 생각을 잡지 못해 괴로운 혜가에게 마음을 가져오라는 달마대사. 실체화된 것이 아니기에 가져올 수 없는 마음, 즉 스스로가 키워낸 그 불안한 마음은 자신 밖에 없애지 못한다는 것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그림과 달마대사 일화를 얹혀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저자의 능력이 부러우면서도 정말 고마웠다. 이번에 기억에 남는 그림과 이야기는 르네 마그리트의 자연의 은총 그리고 에드거 루빈의 루빈의 잔, 이렇게 두 작품, 우리는 믿고 싶은 것만을 믿는다 였다. 루빈의 잔은 두 장의 그림이 한 작품으로 왼쪽에는 노란 잔, 반대쪽에는 얼굴을 마주한 두 사람의 옆얼굴이 보인다. 같은 그림을 시선을 어디에 두고 보는지에 따라 전혀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마그리트의 그림 또한 잎과 새가 이어진 모습에 새인지 식물인지 헷갈린다. 그냥 단순하게 새나무, 잎새 하면 되는 것을 우리는 고민하게 된다. 작품 하나는 그저 익숙한, 자신의 편의대로 보는 닫힌 시선을 말해주고 새와 잎의 경우는 우리가 본 적없는 사실, 믿고 싶지 않으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보고들은게 많아질 수록 이런 실수가 줄어들어야 하는 데 무엇을 보았는지에 따라 중심을 잃고마는 나를 발견 한 것 같아 씁쓸했다.
다르게 보기 위해서는 다른 존재가 되어야 하고, 다른 존재가 되면 다르게 보인다는 애깁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세계에 자신의 앎을 그대로 투영해버립니다. - 91쪽-
책을 읽다보면 마음에 남는 작품과 이야기가 있는 것처럼 반대로 대면대면 하게 되는 페이지도 있었다. 책이 부족하거나 내용에 공감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지금 내 마음 상태가 앞으로의 불안과 현재에 불만족하기 보다는 그저 피로하고 방향을 알면서도 지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미래의 어떤 때에 노력해도 무언가 이뤄지거나 해놓은 것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이 책을 읽는다면 그때는 3장이나 4장이 깊게 와닿을 수도 있다고 느낀다. 지금 내 마음상태가 어떤지 궁금하거나 상태는 알겠는데 어찌해야 좋을 지 모를 때 이 책을 펼치면, 그림에 그림 하나만 걸어도 분위기가 달라지듯 마음이 정화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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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걸작에 관하여>라는 책을 읽었다. 책 내용 중에 위대한 작품이라 일컬어지는 걸작은 과연 누가 결정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있었다. 그 책의 저자는 걸작을 결정하는 사람들 중에는 비평가, 학자, 독자, 그리고 저자가 있다고 말한다. 이는 책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그림에도 같은 규칙이 적용된다.
<철학을 담은 그림>의 저자 채운님의 글을 보면서 그림을 보며 이렇게 많은 생각들을 할 수 있고, 이런 생각들이 또한 그림에 더 많은 의미들을 부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철학도 그림도 잘 모르지만 이 글을 보면서 그림 속에 담긴 삶의 모습들이, 삶에 대한 사고들이 깊이 다가왔다.
책 속에 수록된 작품들 중에 예전부터 알았던 작품은 거의 없었지만 저자의 설명을 듣고 작품들을 다시 보니 그 속에 담긴 화가의 속삭임이 내 귓속에서 울려 퍼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저자의 생각과 다르게 보인 작품들도 있었다. 책과 마찬가지로 그림도 보는 사람에 따라 생각과 느낌이 다를 수 있으니까.
그 중에서 뭉크의 그림 속 남자와 여자는 연인의 느낌이라기보다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에 힘들어하는 딸의 모습을 보면 힘들어하는 아버지의 모습. 물론 화가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저자의 말처럼 연인 사이에 생긴 후회의 모습일 수도 있고, 부녀간의 아픔일 수도 있고. 그 의미가 무엇이든지 그 속에는 사람이, 사람 간의 관계가, 아픔이 담겨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림 속에는 인간과 인간들이 살아가는 삶, 즉 철학이 담겨있다.
그림은 우리가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 우리의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감상하며 힐링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 속에서 자신을 오롯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의 내용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저 느끼는 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그것이 쉽지 않다면 이 책을 한 번 들쳐보기 바란다. 그림 속에 담긴 우리네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찾아 떠나는 즐거운 여행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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