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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 부분에 이런 멀이 써져 있다. '빛나는 청춘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 저자 유순하씨는 1943년생으로 '당신들의 일본'이라는 책 등을 통해 우리 사회 여러 문화 현상들을 비판해 온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책은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내용들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시작한다. 청년들의 직장 1위는 공무원이다. 밥벌어먹으면서 그냥 그렇게 살기 좋은 직업이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짤릴 염려 없고, 나라에서 돈이 다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과연 미래가 존재하기나 할까? 저자는 요즘 젊은이들은 야성을 잃은듯 하다고 말하면서 순응주의를 비판한다. 사실 우리나라 부모가 자식을 자신들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 청년들을 나약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보이지는 않지만 젊은이의 속내는 이미 이 세상을 부모에게 기대고 살겠다는 심리를 부모들이 제공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x세대, y세대, z세대를 거쳐 오면서 마마보이가 한때 사회문제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다시 말해 본인 혼자의 힘으로 그 어떤 것도 해 낼 수 없는 빈약한 성격과 자세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헤쳐 나갈 수 있으며, 나답게 살 수 있느냐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직장에 들어간 청년들은 회사에 할 수 없이 길들여져 있다. 자신을 위해 살지 않으면 언제든지 노예로 전락하는 수모를 당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다. 청년들이 숨쉴 공간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술, 담배, 복권에 의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청년들은 더 이상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다. 청년들은 세상이 주는 스트레스와 긴장감과 결코 다른 자신만의 객체를 완성시켜 나아가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자립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또한 이십대의 나이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동기부여를 제공받고 싶은 사람에게도 이 책이 필요할 것이다. 나를 자극하고 나 답게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20대때 대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을 항상 부러워했었다. 그리고 대학캠퍼스를 동경했다. 왜냐하면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가야만 했기 때문이다. 집도 가난하였을 뿐만 아니라 대학 등록금은 도저히 마련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잘했다면 좋았을것을 환경탓만 하는 나에게 이미 공부는 나를 떠난 님처럼 저멀리 멀어져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상고를 들어가게 되었고, 학교에서 타자를 치고, 부기를 배우며, 주산을 열심히 두들겼다. 나는 청년시절 늘 아팠다. 청춘이기에 아파도 참아야 했고, 아프기 때문에 청춘인 줄 알았다. 나는 그 때 그시간이 아깝다. 스스로 시간들을 허비한 면도 있지만 세상의 피해자인것도 사실이다. 나는 인생을 너무 늦게 알아 챘다. 미숙아였다는 것이 아주 적당한 표현이다. 나는 순간 순간 이런 생각이 들때가 있다. 왜 나는 내가 성장하는 과정속에 누군가가 나의 길을 비추어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까? 어쩌면 나를 거쳐간 수많은 사람들 중에 내 꿈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은인들을 내가 알아보지 못한 채 무시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내 기억속에서 그 분들을 잊은 채 이기적으로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린다. 물론 이해는 한다. 왜냐하면 이 거지같은 자본주의 세상이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놓고 있기에 그렇고, 상대방을 짓밟으며 자기계발을 하여야 한다는 무언가의 압박을 주기 때문이다. 나는 20대 시절 조금 폐쇄적이었다. 그리고 사람을 많이 가리는 편이었다. 그러다보니 움직임은 둔했고, 사람들을 넓게 만나지 못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내가 정말 후회하는 것 중 하나다. 환경적인 이유도 있었고, 종교적인 면도 있었다. 내 성격이 이것 저것 일을 벌리는 것을 싫어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 결정하는 것을 두려워했고, 남의 선택과 결정을 의지했다. 나는 내가 선택한 것을 항상 의심했다. 저자의 말처럼 나는 세상에 나약하게 순응하는 존재자였다. 저자는 또 청년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면서 저자는 암기 중심의 주입식 교육에 대한 대처에 있어 청년들의 지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세상에 따른 결핍들을 알아차리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그리고 꼭 이기기를 바란다며 응원의 메시지로 마무리한다. 나도 현실에 갇힌 젊은이들을 향해 어줍잖은 언어로 응원해 주고 싶다. "이 세상에 저항하고 용기를 내어 살아가라" 이 책은 그렇게 용기를 내고 싶은 청년들과 용기가 없어 세상에 지고 있는 청년들 모두에게 유익한 책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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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 포효하다』를 읽고 내 자신 나름대로 책을 많이 대하는 입장에 있다. 거의 매일 좋은 책을 통해서 내 자신이 생각, 경험해보지 못한 내용들을 대신 충족케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회를 갖고 있다. 그래서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해본다. 좋은 책을 통해서 내 자신 더욱 더 발전해 나가는 것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등의 각종 전자매체들이 출현하면서부터 책들이 많이 소외당하는 듯한 모습을 많이 본다. 차분히 시간을 내어서 좋은 책들과 함께 하는 모습을 많이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활달하면서도 가장 뭔가 힘차게 도전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청춘 시기이다. 청춘 시기에는 특별하게 가져야 할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를 필요로 한다. 그 메시지를 강력하게 제시하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어투와 함께 누구보다도 당당하면서도 자신감 있게 밝히고 있는 어휘에서 청춘의 맛과 힘이 넘침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솔직히 기존의 많은 책들은 청춘을 가장 좋은 면으로만 바라보고 낭만적으로 다루는 경우가 많다. 청춘의 시대의 아픔과 함께 더 힘든 모습을 적나라하게 밝히는 경우는 그리 많지가 않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과감하게 청춘을 향해 던지는 말들을 통해서 각자 나름대로 당면하고 있는 아픈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이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제시하고 있다. 역시 노련함과 전문가답게 독특한 문체로서 톡톡 튀도록 하고 있다. 단단한 필력과 함께 거칠지만 당당하게 보여주는 저자만의 글에서 더 큰 희망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가장 빛나야 할 청춘시기에 강력한 희망의 메시지들을 전하고 있다. 그것은 크게 청춘시기에 닥치는 당면한 현실적 제 문제를 다루면서도 청년들의 멋진 힘찬 미래를 위한 여러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젊은이들이라면 책에서 언급한대로의 환골탈태의 모습으로 급변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당당한 청년으로서 가장 활달한 청춘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확실한 계기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젊은이들의 진정한 희망과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의 문제 해결과 힘차고 밝은 국가의 미래로 연결되어지는 과정들을 통해서 최고의 시간으로 확립하는 계기로 만들었으면 한다. 젊은이들이 스스로의 자각을 통해서 느끼고 행동으로 보였을 때 더 강력한 효과로 나타난다 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젊은이들이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강력한 실천을 통해서 확실한 모습으로 다져지는 그런 시간이 되리라 확신한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청춘의 시기에 꼭 필요한 희망의 메시지를 통해서 자신만의 큰 뜻을 향한 더욱 더 힘찬 출발의 계기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의미에서도 일독을 강력 권한다. 평소의 관점을 조금만 바꾸더라도 얼마든지 재도전할 수 있는 힘과 함께 최고 결실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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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이미 너무나 유명한 베스트셀러이다. 일전에 읽었던 남정욱 작가의 차라리 죽지 그래가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김난도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전혀 와닿지 않았다. 유명한 티비 프로그램에서 이런 대사도 나왔었다. 1년간의 인턴생활을 마치고 정규직이 되지 못하고 떠나는 인턴직원에게 상사가 아프니까 청춘이지라고 말했을 때 그 직원이 아프면 환자지 무슨 청춘이야!라고 외치는 장면이 훨씬 더 현실적이고 와닿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도입부분에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비판한다. 보다 현실적인 눈으로 청춘들을 보라는 말들이 수두룩하다. 전체적인 부분에서 이 부분은 부분에 지나지 않으면서도 책의 전체적인 개괄 역할을 하고 있어서 난 역시 이 첫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소설가의 눈으로 보는 세상에 대한 비평집은 꽤나 많다. 이번에 나온 조정래의 시선은 대담집이면서도 자신의 작품이나 세계관에 대해 논하고 있어서 좋았다. 한국 문학계에서 빠질 수 없는 작가인 그에게서 듣는 시선이 명쾌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도 소설가이자 문화 비평가로 많은 책을 펴냈다. 그가 보는 한국 사회의 모순들은 내가 보기에도 공감대가 많이 가는 부분들이었다.
이미 기성세대는 그들의 틀 안에 갇혀있고, 그리고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고령화가 되어 가고 있으며, 저출산의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청춘들의 앞날은 더 창창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힘겨워 지고 있다. 이미 기성세대 중에서도 한참 윗세대인 43년 생인 작가의 글들은 현실감이 넘치는 견해들이 수두룩했다. 물론 그의 모든 견해들에 공감하며 일치될 순 없었지만 거의 많은 부분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읽을 때의 어이없음과 분노들이 차라리 죽지 그래를 읽을 때 많이 해소되었던 것처럼, 이 책도 그랬다. 그저 청춘을 대책없이 예찬하지 않고 지극히 현실적인 시선에서 바라보고 기성세대들의 어이없는 점들을 지적하는 것이 통쾌했다.
새롭다는 신세대들은 이미 경제적, 사회적으로 안정된 기반을 다지고 있는 기성세대들의 그물 속에서 성장한다. 요즘은 IT기업이 성공적으로 떠올라 겨우 10,20,30대의 젊은 신세대들의 활약이 돋보인다고는 하지만, 그들의 수가 과연 그리 많은가. 언론에서 조명받고 성공하는 이들이 과연 상위 몇프로나 되겠는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보고 위로받을 것이 아니라 좀 더 현실적인 눈을 기를 수 있는 책들을 보는 것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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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저자 스스로 논란이 되고 있다고 말하는 자자의 글 [당신들의 일본]을 읽은 적이 있다. 친일적인 글때문에 안티팬들과 안티글들이 굉장히 많았다고 하는데,,,내 개인적인 생각은 저자의 글은 정말 공정한 객관적인 글이었다.. 고 생각한다. 저자의 생각을 제대로 읽기는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사자, 포효하다]라는 책 제목은 정말 끌리지 않는 제목이다. 끌리지 않는 제목임에도 유순하님의 글이기에 주저없이 택한 것은 먼저번 책이 주관적이지만 상당히 공정한 글들로 엮어졌기에 마음에 닿았기 때문이다. 프로로그 글로 당신들 속을 좀 긁어주려 한다... 는 표제를 달고 시작한 글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에 대한 걱정스런 시각과 아픈 청춘에 대한 대안이 없는 글이 죽은 글임에도 서점가에선 베스트셀러가 되는 현상을 비꼬는 언어가 가득하다. 청춘이란 어쩌면 반항적이고, 행동적이여야 하는데, 청춘임데도 3포시대라는 시대의 언어를 만들어내고 현실에 순응하는 청춘들이 아프다고만 표현하는 어떤 저자를 맹공함에 너무나 공감한다.. 그렇지만, 정말 내가 봐도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제목이 그럴 듯 한 반면에 [사자 포효하다]는 뭔가 시선을 멀리하게 만듦을 보면서, 왜 이런 제목을 붙였나? 책을 보면서 제목에 대한 아쉬움이 너무나 컸다. 모방적이지만 <아파야만 청춘이냐?> 하는 제목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오랜시간이 지났지만,, 김형석 교수님 글 중에 독서에 대한 글이 아직도 머리에 남는다.. 책을 선택할 때에 3/5는 아는 내용의 책을 읽고 2/5는 몰라야 배울 것이 있는 책이다. 전부 아는 책은 배움이 없으니 읽을 필요가 없고, 너무 어려운 것은 나에게 와 닿지 않으니 읽지 말아야 한다...는 이런 말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분명 유순하님의 글은 배울 점이 있고 뭔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항상 외침을 당해서인지 순응주의에 물들어 있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비판, 그리고 침묵으로 일관되는 잘못된 교육현장과 사회에 나와서도 침묵으로 전달만 받는 회의 등과 강연들. 과잉보호속의 마마보이가 되어가는 청춘들, 갑질을 하는 사회지도층에 대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잘못을 지적하면 왕따로 만들어 버리는 사회구조와 그런 것들이 관행으로 인식되어지는 세상을 비판해 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지만, 잠시 반성하던 여권은 선거에서 승리를 하자 단순사고로 몰아 붙이고 이상스레 종북이란 단어를 들고 나와서 국론을 분열시키는 혼탁한 현실은 분명 큰 슬픔이며. 사회가 흘러가는 모습을 보면 매일 누군가와 싸워야만 하고,, 싸울 상대를 일부러라도 만들어야 할 듯이 흘러가는 정치권과 사회를 보면서 대화보다는 이해를 , 상대에 대한 인내보다는 이해를 덕목으로 꼽는다..
청춘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가? 를 가르쳐 주는 글이기에 조금은 노인네의 잔소리 같은 흐름도 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선택'이라는 앙드레지드의 언어를 빌려와서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서의 청춘을 값지게 만드는 일에 대해서 제대로 된 선택을 권하고 있다..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행복추구라면,, 행복추구를 위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열정적이고 도전적인 청춘의 모습, 책을 즐겨 읽음에서 저절로 얻어지는 수신과 인격함양 등 이 시대의 어른으로서 젊은 후대에게 말하고픈 권고의 내용들로 책은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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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우리나라 나이로 73세인 저자가 미래를 개척할 용기가 없는, 가장 쉬운 것만 추구하는, 편한 것만 찾는 청춘들에게 마음 놓고 미래를 위해 도전해 보라고 외치는 책이다. 저자가 살던 시대의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동란을 거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의 한 나라였다. 그때는 국민의 대부분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워 감히 희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기도 부끄러웠던 시정이었다. 그런 우리나라가 60년 대부터 시작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는 희망이라는 것을 가져도 되는 나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이제는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의 근면성은 세계가 알아준다. 올해로 광복 70주년이 된다. 수 많은 산업 전사들이 지금의 대한민국을 가꿔왔다. 그들의 후대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에 걸쳐 노력해 왔다. 그 덕분에 청년들이 세계로, 세계로 나아가서 산업의 동력을 일으켜왔다. 우리가 어렵게 살던 그 시대에도 희망이라는 발판을 구축하고자 세계로 나아갔던 청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고 본다. 저자가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처럼 야성을 잃어버린 젊은이들도 있다. 그렇지만 희망을 노래하며 포효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편한고 쉬운 것만을 추구하는 젊은이들도 넘쳐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희망을 노래할 여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어렵게 들어간 대학이지만 비싼 등록금 때문에 학비를 마련하느라 부모에게 도움받는 학생들도 있지만 학자금 대출이라도 받지 않으면 학업을 계속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알바 자리라도 얻으려고 사투를 벌이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실을 사는 젊은들에게 빛나는 청춘이라고 마냥 부를 수만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어려웠던 가난도 떨치고 힘차게 일어서고 있으니 좀 더 용기를 내서 마음것 미래를 개척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포효해도 된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보통 청년기를 아픈 세대라고 말하지만 그들이 마냥 아프지 말고 야성을 가지고 사자처럼 포효하기를 바란다. 이 책을 쓴 노작가는 잘 못된 것을 보고도 무심하기만 한 패기없는 요즘의 젊은이들이 보면서 아다깝기만 하다. 물론 현실은 녹녹치 않다. 200만 청년 실업 시대에 직면한 젊은이들이 취업을 준비하는 것조차 쉽지 않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해서 젊은이들은 일어서야 한다. 잃어버린 야성을 되찾아 사자처럼 힘차게 포효하자. 미래의 희망을 찾아서 그렇게 힘차게 외치자. 아무도 그대들이 가는 길을 막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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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대해 문제시화하고 날선 비판의 의미를 빛나는 |
조정래의 시선 / 조정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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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남들이 본다면 사자 포효하고 있구나 곡해할 수도 있을것 같다. 나는 기성세대라서 그런걸까? 그가 목에 핏대 올리며 적나라하게 직설적으로 외치는 모습에 주눅이 들기 보다는 꼭 그렇게까지 외쳐야 하는가라는 다소 심드렁하는 생각도 했다. 난 벌써 이모습에 절여진 상태이고 벗어나려는 노력도 안했고 그렇게까지 잘못된 상태라고 생각지도 않았으니까 자연히 그가 외치는 부분을 완전 수긍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반론을 제기할만큼 억하감정을 가진것도 그의 주장이 옳지 않노라고 외치지도 못한다. 그의 말 속에는 뼈가 있고 감정이 있고 무엇보다 젊은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차고 넘치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니까 말이다. 어줍잖게 들먹거리는 모양새를 담았다거나 거들먹거리는 어깨가 보였다거나 짓누르고 내려다보는 천하게 여기고 다른 부류의 인간들처럼 대한다는 그 어떤 느낌도 받지를 못했으니까 말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말이 무슨 진리처럼 되어버린 지금이지만 난 그렇게까지 생각지는 않는다. 아프기도하면서 자라는 거라고 딱 거기까지만 생각하고 그럴지라도 희망을 갖자는 생각을 가졌기에 아프다고 징징거린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겠지만 청춘은 꼭 아파야만 한다는 것처럼 들려서 말이다. 나는 좀더 희망적이고 좀 더 위로해주고 위안이 되어주는 말을하고 어깨를 빌려주고 시선을 같이 바라보는 그런 젊은이들이 되기를 바란다. 현교육의 패단을 들추어 악의축인 것처럼 매도하는 분위기로 몰아가고날선 직언들만 쏟아낼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이러이러한 방법이 가미된다면 더 좋겠다는 희망적인 성장을 바라기 때문이다. 선악처럼 민주주의와 공산주의가 구분되던 시절의 우방을 지금처럼 세계가 하나인 시대에 자국의 이익우선주의에 철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동일한 잣대를 세우는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과하면 아니한만 못하다고 하지 않는가 쥐에게도 나갈 구멍은 주는거라고 하지 않는가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피력하는것을 뭐라고 하진 않지만 그래도 희망적이고 그래도 거부감이 덜한 필터들을 사용하는게 좋겠다는 느낌이다. 젊은이들이여 우리나라가 이런 모습인 것이 미안하지만 그래도 우리들의 부모님들 그리고 그 윗대들이 그나마 그렇게까지 살아주셨기 때문에 이만큼이란걸 잊지는 말아주길 바래본다. 우리에게도 젊은이들에게도 그 시대가 갖는 아픔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또한 후대를 생각하는 마음도 동일하게 가져주기를 그리하여 우리나라가 참 좋은 행복한 나라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보자고 희망을 잃지 말자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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