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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히 다가오는 슬픔
"잔잔히 다가오는 슬픔" 내용보기
얼마 전, 학교 도서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다. 사실 책을 많이 읽는편도 아니고 이런 종류의 책은 더욱 읽어 본 기억이 없다..사랑과 관련된 책들.. 이 책 같은 경우에는 읽어보기 전 머릿속으로 읽을까 말까 고민을 할 때, 어쩐지 고전적이고 딱딱한 내용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열심히 굴려서 이해하고 내용을 파악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나
"잔잔히 다가오는 슬픔" 내용보기
얼마 전, 학교 도서실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이었다. 사실 책을 많이 읽는편도 아니고 이런 종류의 책은 더욱 읽어 본 기억이 없다..사랑과 관련된 책들.. 이 책 같은 경우에는 읽어보기 전 머릿속으로 읽을까 말까 고민을 할 때, 어쩐지 고전적이고 딱딱한 내용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열심히 굴려서 이해하고 내용을 파악하면서 재미를 느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나 스스로 지쳐있는 상태이기도 했고 그 순간 슬픔이란걸 느끼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책은 얇은편이었고, 제목에서 느껴지는 호기심과..또, 우울하고 슬펐던 그 감정을 이 책와 공감하고 싶었고 또 책의 도움을 받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번쩍 들어서 당장 책을 뽑아들고 대출을 했던 기억이 난다. 조금 과장해서 말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결정적인 계기는 이 책을 썼을당시 작가의 나이가 나와 비슷했다는것이고 주인공 역시 나와 나이가 같았기 때문에 무엇이든 통하는게 있을거라고 믿었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내용상의 큰 변화는 없었다. 그저 쭉 지켜보는 식으로- 가끔씩 주인공의 생각에 공감을 하면서, 또 가끔씩 이해할 수 없는 그 아이의 행동에 의아스러워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상깊었던 것이 마지막부분이 아니었나싶다. 글의 전개상 거의 절정부분에 달했고 또 책 전체에 큰 의미를 가져다준 `그 사건` 때문일 것이다-, (자세히 말하면 재미없으니까 이렇게 밖에 못 쓰겠다.) 아무튼 이 책 덕분에 무언가에게 무겁게 짓눌려져있던 내 마음이 한결 누그러진거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가볍게 읽힐수 있었던 점이 가장 좋았던 것 같다. 글의 문체와 마무리가 깔끔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y****2 2003.11.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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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의 그림자 속에서 방황하고 성장한다.
"우리는 삶의 그림자 속에서 방황하고 성장한다." 내용보기
순식간에 읽어내렸다. 열 아홉의 소녀가 뭐 얼나마 대단한 글을 썼느냐 하는 약간의 비아냥과 함께 시작된 독서는 어느새 나를 황금빛 해변가로 데려다 놓았다. 작렬하는 태양아래, 한 줄기 휴식같은 그늘이 이었고, 그 그늘은 안느였다. 태양빛의 화려함과 그 눈부심에 익숙한 세실과 세실과 영혼을 그대로 나눈듯한 바람둥이 아버지. 두 사람은 그늘에서 안락함을
"우리는 삶의 그림자 속에서 방황하고 성장한다." 내용보기

순식간에 읽어내렸다.

열 아홉의 소녀가 뭐 얼나마 대단한 글을 썼느냐 하는 약간의 비아냥과 함께 시작된 독서는

어느새 나를 황금빛 해변가로 데려다 놓았다.


작렬하는 태양아래,

한 줄기 휴식같은 그늘이 이었고,

그 그늘은 안느였다.


태양빛의 화려함과 그 눈부심에 익숙한 세실과

세실과 영혼을 그대로 나눈듯한 바람둥이 아버지.


두 사람은 그늘에서 안락함을 찾으면서도,

계속해서 환한 태양빛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빛을 쫓는 불나방과도 같은 충동일 것이다.


우리는 때로, 어리석은 결과가 돌아오게 될것을 알면서도 행동한다.

무지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지를 넘어서 삶의 순환과 자연의 이치에 대한 무모한 반항심 때문이기도 한다.


인간의 충동은 날 때부터의 본능적인 것인데,

우리의 역사가 그런 인간의 충동에 의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또 충동을 억누르고 업악하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어쨌든,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다.

인간의 나쁜 장난을 하고 싶다는 충동과

정해진 레일안에서 완전해져가며 안정을 쫓길 원하는

이면성 속에서 방황하며 성장한다.


주인공 세실역시 뜨거운 한 여름을 겪었고,

그 여름을 통해 내면적 성장을 이룬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그 그리움과 함께 찾아오는 슬픔에 안녕을 고하면서.

슬픔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게 된다.

p******2 2015.12.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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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의 아픔,슬픔이여 안녕/프랑수와즈 사강
"성장기의 아픔,슬픔이여 안녕/프랑수와즈 사강" 내용보기
'울적함과 달콤함이 한데 뒤엉킨 이 낯선 감정을 슬픔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지, 나는 망설인다.'처음 시작부터 무언가 무겁다. 울적함과 달콤함, 그에 반하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것만 같아 빨리 읽고 싶어지는 부피가 작은 책이다. 프랑스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을 읽어본다는 것이 아직 읽지 못했다. 그러다 만난 그녀가 19세에 발표한 18세 소녀의 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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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적함과 달콤함이 한데 뒤엉킨 이 낯선 감정을 슬픔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지, 나는 망설인다.'
처음 시작부터 무언가 무겁다. 울적함과 달콤함, 그에 반하는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것만 같아 빨리 읽고 싶어지는 부피가 작은 책이다. 프랑스와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을 읽어본다는 것이 아직 읽지 못했다. 그러다 만난 그녀가 19세에 발표한 18세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슬픔의 무게처럼 무겁기도 하면서 한참 사춘기의 그녀가 겪어야 했던 사랑이 담겨 있어 달콤한 이야기에 금방 빠져들게 되었다.

마흔이 넘은 바람둥이 아버지와 18세 소녀 세실은 엄마를 잃어 둘만의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 15년 동안 홀아비로 살아온 아버지는 늘 여자가 있었고 지금 또한 엘자라는 스물 아홉의 여자가 있다. 세실은 기숙사에 생활하다 나와서 아버지와 엘지와 함께 휴가를 간다. 그런데 그 휴가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엄마의 친구인 패션일을 하는 안느를 부른 것이다. 엘자라는 여자가 있으면서.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딸 세실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다가도 모르겠다. 안느는 마흔이 넘어서 아버지와 비슷하지만 결혼실패후 혼자 사는 그야말로 정숙하면서도 틀에 박힌 것처럼 완벽함을 추구하는 여자로 한때 세실이 그녀에게 가서 머무르기도 했다. 

그들이 휴가를 간 곳은 남프랑스 어느 해변, 아버지와 엘자는 역으로 안느를 마중나가고 세실이 그곳에서 사귄 대학생 오빠인 사릴르와 달콤한 시간을 보낼때 그녀가 도착한 것이다,자신의 차를 운전해서. 그렇게 그녀가 도착하고 역에 마중나갔다가 허탕을 치고 돌아온 아버지와 엘자, 아버지는 안느를 보면서 표정이 너무도 확연히 달라졌다. 밝은 얼굴의 아버지,옆에 있는 엘자를 생각지도 않고 새로운 여인에 흡족한 아버지를 세실은 못마땅한듯 받아 들인다. 그렇게 시작된 그들의 이상한 휴가생활은 계속되고 세실은 뜻하지 않게 만난 옆 별장의 시릴르와 점점 가까워지게 되고 어느날 아버지는 파리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즐기고 오자고 한다. 야유회복으로 갈아 입은 안느의 모습은 정말 고혹적이면서 엘자와의 젊음과는 확연히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야유회에서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와 안느, 세실과 엘자는 아버지를 찾아 보다가 세실이 그 둘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의 사이가 이상하게 발전한것을 감지하게 되고 엘자는 그런 그들 곁에서 떠나겠다고 선언하게 된다. 

별장에 돌아온 세실에게 아버지는 안느와 결혼하겠다고 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자유로운 생활에 젖어 있던 세실에겐 아버지의 정착이 믿어지지 않았고 그동안 엘자와 살고 있었기에 갑자기 나타난 안느를 정말 사랑하고 있는지 의심이 되기도 했지만 결혼 결심후에 달라진 안느의 태도에 무척 반향심을 가지게 된다. 사춘기의 특성이 나타나듯 세실은 안느를 아버지에게서 떼어 놓으려 작전을 짠다. 자신의 공부와 모든 것에 시시콜콜 참견을 하는 그녀가 밉기도 하다가 의지가 되기도 하는 세실, 아직은 그녀의 본심을 모르기에 어린 세실은 엘자와 시릴르를 이용하여 아버지에게서 안느를 떼어 놓고 엘자와 함께 하던 예전의 자유로운 생활로 돌아가고픈 생각에 집착한다. 그런 어느날 엘자가 옷가방을 가지러 오고 시릴르와 그녀에게 자신의 작전을 모두 이야기를 하여 총지휘자로 나서며 안느를 떼어 놓기로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녀가 좋기도 하여 점점 자신의 의도했던 대로 돌아가는 작전을 멈추고도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급기야 엘자에게 눈을 돌린 아버지가 그녀에게 키스하는 장면을 안느에게 들키게 되고 안느는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려 차에 오른다. 그런 그녀에게 비로소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세실, '안느, 가지 말아요. 잘못했어요. 내 탓이에요. 이제부터 모른 걸 설명할 테니..... 우린 당신이 필요해요.' 했지만 그녀는 '너에겐 아무도 필요치 않아. 너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하며 안느는 기어이 떠나고 만다. 

안느가 떠난 후에에 비로소 자신들에게는 안느가 필요했음을 절실히 느끼지만 안느를 돌아오게 할 방법이 없다. 세실은 아버지에게 안느에게 편지를 쓰자며 함께 후회의 편지를 쓴다. 그런 도중에 전화를 받게 되고 안느가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말을 전해듣게 된다. 그렇다면 그녀의 죽음은 교통사고를 가장한 자살이란 말인가. 실연의 아픔에서 오는 감정의 폭발을 주체하지 못한 그녀가 스스로 택한 죽음 앞에서 비로소 안느가 자신들에 했던 모든 것들이 진심이었고 진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세실과 아버지, '안느! 안느!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그 이름을 나지막히 불러 본다. 그러자 무언가가 내 안에서 솟아오르고, 나는 그것을, 눈을 감츤 채 '슬픔' 이라는 이름으로 맞이한다. 이제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슬픔이여, 안녕!.' 이라고 말하는 세실. 그들은 안느의 죽음 이후 예전과 같은 자유생활에 돌아간다. 슬픔을 뒤로 한 채.

세실이라는 소녀가 숙녀로 성장하면서 겪는 성장통과 같은 이야기와 아버지의 재혼문제가 얼히면서 그녀는 격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 자신 또한 옆 별장의 대학생 오빠인 시릴르와 육체적인 사랑까지 나누게 되면서 아버지와 안느의 사랑에 대하여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안느가 죽고 난 후 시릴르와 자신의 사랑은 진실한 사랑이 아닌 육체만 원했던 것이란 것을 깨달게 된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그동안 누렸던 자유생활,방탕함 속에서 정착하려 했던 여인인 안느는 그들에겐 자유스런 삶을 종지부를 찍게 해주는 그런 울타리가 될 수 있었는데 그런 삶이 이제 막 성장을 하려는 세실에겐 그동안 누린 자유를 한꺼번에 박탈당하는 듯 하여 싫었던 것이다. 엄마의 죽음이후 그녀가 누렸던 자유가 하루아침에 울타리가 쳐지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그것이 또한 그녀가 마주해야 하는 인생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슬픔이여 안녕' 은 소녀 세실 뿐만이 아니라 안느나 그외 인물들에 대한 감정 묘사가 탁월하다.19세가 썼다고 보기엔 정말 성숙한 소설로 1950년대 전쟁후 젊은이들이 겪어야 했던 공허와도 일맥상통한다니 다시금 소설속을 들여다보게 한다. 만약에 안느가 죽지 않고 아버지와 연결이 되어 세실의 새엄마가 되어 새로운 삶에 그들이 갇히게 된다면 소설은 어떻게 전개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하지만 슬픔도 이별도 인생의 한 길인 것처럼 그녀의 죽음을 뒤로 하고, '슬픔이여 안녕' 을 고하고 다시금 그들만의 생활로 돌아가는, 다시 시작되는 인생 이야기가 얼마전 아버지와의 이별을 한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슬픔이여, 안녕!'.

y******2 2010.12.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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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이의 손
"원숭이의 손" 내용보기
난 이책에서 슬픔이여 안녕보다는.. 원숭이의 손이 더 기억에 남는다.. 난 아무래도 좀 무서운것을 좋아하는가보다. 아무튼 여기에 나오는 원숭이의 손은..소원을 들어준다. 하지만 그 소원을 들어줄때마다 불행이 생긴다.. 예로 누가 죽거나.누가아푸거나.. 머 이런식이다. 그 부부는 아주 작은 돈을 원했다가..자기 아들이.죽는다. 그리고 그 아들이 죽었는데.그 돈이 위로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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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책에서 슬픔이여 안녕보다는.. 원숭이의 손이 더 기억에 남는다.. 난 아무래도 좀 무서운것을 좋아하는가보다. 아무튼 여기에 나오는 원숭이의 손은..소원을 들어준다. 하지만 그 소원을 들어줄때마다 불행이 생긴다.. 예로 누가 죽거나.누가아푸거나.. 머 이런식이다. 그 부부는 아주 작은 돈을 원했다가..자기 아들이.죽는다. 그리고 그 아들이 죽었는데.그 돈이 위로금이었다. 아무튼 별로 좋지 못한것이었다. 그러자.그 부인은 죽은 아들을.원숭이 손으로 부른다. 아들이 문앞에까지 다다르자.. 가까스로 남편이.원숭이손한테.. 아들이 다시 원래대로 죽게 해달라고 외친다. 사람은.분수대로 살아야겠고, 원숭이같은 저주스러운게 없는 게 다행이다..
u***o 2001.08.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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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의 대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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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가 유독 별나게 여겨지는 이유는, 여느 시기와는 달리 처음으로 자신의 성장을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그것을 '성장'이라고 받아들일 만한 능란함은 갖추지 못했기에 모든 변화에 그저 혼란스러워 할 줄 밖에 모르는 곤란함이 수반되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열여덟 소녀일 때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 시기가 아니고서는 짚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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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가 유독 별나게 여겨지는 이유는, 여느 시기와는 달리 처음으로 자신의 성장을 인식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그것을 '성장'이라고 받아들일 만한 능란함은 갖추지 못했기에

모든 변화에 그저 혼란스러워 할 줄 밖에 모르는 곤란함이 수반되는 시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열여덟 소녀일 때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 시기가 아니고서는 짚어낼 수 없는 감정묘사가 묘미다.

 

 

그렇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안느를 비난하는 점이었다.

그녀는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방해한 것이다.

나는  이렇게도 자연스럽게 행복을 위해서, 

친절을 위해서, 평온을 위해서 태어났는데,

나는 그녀의 덕분으로 비난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어버렸다.

내성적인 것 따위에는 도무지 낯선 나는 어리둥절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나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던 것일까?

 

*

 

냉소적인 생각은 나에게 일종의 자신과 도취적인 자기 자신과의 공모감을 준다.

*

 

나는 자신을 비하시켰고, 그것이 나로선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것에 익숙해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좋든 나쁘든 간에

나 자신에 대해 판단을 내리는 일이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

 

나는 점심식사 때까지 아름답게 닳아빠진 조가비를 손에 쥐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행복의 마스코트로 여름내 놓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사실 내가 어째서 이 조가비를 잃지 않았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무엇이든 잃어버리고 마니까.

오늘, 이 조가비는 도화색으로 따뜻하게 내 손에 남아 있어서

나를 울고 싶게 한다.

 

 

 

 

 

 

 

자신에게 드는 변화의 징후와 혼란한 감정 마저도,

그것들을 인식하는 자신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납득 불가능한 시기.

무엇보다도 그 시기가 찬란하다고 읊어대는 나이든 어른들의 말이 가장 납득 불가능한 그 때가

그래도 찬란한 것이 맞는 이유는

 

그렇게 자신의 감정에 혼란스러워 하고 자신 이외의 모든것을 거부하는 시기보다

자기 감정에 집중할 수 있는 순간,

그 모든것들을 똑바로 바라보는 순간이 다시 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상 낯설어하는 시기가 지나면 언제 또 그마만큼 집중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온몸으로 의식하는 때가 오겠느냐 말이다.

 

 

 

나른함과 달콤함 속에서 빠져나올 수 없는 이 낯선 감정을

'슬픔'이라고 하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지 나는 망설인다.

그 감정은 너무나도 자기 자신에게만 구애되는 이기적인 감정이며,

나는 그것을 매우 부끄러워 하고 있다.

 

내게 있어 슬픔은 언제나 고상한 것이다.

 

슬픔이여, 안녕.

 

 

 

주인공은(혹은 작가는)처음으로 슬픔이라는 감정을 배우고 그 슬픔에게 인사를 건넨다.

이 이후에도 그녀는 때로 다소간 슬플 것이다.

 

하지만 프랑소와즈 사강이 

슬픔을 낯설어하는 여자애를 지나 고상하게 슬퍼하는 여인이 되어

'슬픔이여 안녕'을 썼대도 이 같은 글이 나왔을까.

 

그 시기를 지나왔다고 겪은 것을 전부 기억하고 이해하는 것은 아니더라.

 

 

 

그래서 청춘이란 소중하고 늘 뒤돌아 아쉬워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고,

되도록이면 많은 것들에 낯설어 하고 매 순간 군더더기들을 남겨두어야 겠다고 느꼈다.

 

 

i*******7 2007.08.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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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bye, sad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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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내 안에서 솟아로르고, 나는 그것을, 눈을 감은 채 '슬픔'이라는 이름으로 맞이한다. 이제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슬픔이여, 안녕! - 본문 중에서   * 책 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당연히 책 제목이 슬픔이여 안녕(good bye, sadness.) 인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제목이 슬픔이여 안녕 (hello, sadness.) 임을 알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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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가 내 안에서 솟아로르고, 나는 그것을, 눈을 감은 채 '슬픔'이라는 이름으로 맞이한다.

이제 나는,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다.

 슬픔이여, 안녕!

- 본문 중에서

 

*

책 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당연히 책 제목이 슬픔이여 안녕(good bye, sadness.) 인줄 알았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그 제목이 슬픔이여 안녕 (hello, sadness.) 임을 알게되었다.

그러고 다시 보니 불어로 봉쥬르라고 쓰인게 보인다. 덜렁대니 것도 못봤군.

안녕이라는 우리나라 말은 만날 때와 헤어질 때 같이 쓰이니 의미가 헷갈릴 때가 꽤 있다.

내가 이 책을 집은 건 순전히 제목이 정말 마음에 들어서였다. 당연히 슬픔이여 잘가라~

인줄 알고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슬픔이여 잘가라~ 가 아니라 어서 와라 슬픔아~ 이었다.

초반엔 뭐야 하고 지루한 듯 했으나 끝까지 재미있게 읽어나갔다.

방탕하고 냉소적인 17살의 세실이 느끼는 세상은 반항과 답답함과 괴로움과

사랑과 자유와 방종이 서로 혼재된 그런 날들이다.

자신이 한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어떤 사건을 일으킬지 그리고 어떤 책임을 가져야 하는지

몰랐던 세실은 일이 일어나고 나서야 가려져 있던 사실들을 비로소 볼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해서 18살이 된 세실은 이젠 어서와라 슬픔아 라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의 열일곱 열여덟은

가슴만이 아니라 머릿속도 뜨거워서 냉정한 생각따위는 하나도 할 줄 몰랐던 때다.

늘 어딘가로 떠나야 할 것 같고, 별볼일 없는 일상을 참고 견디지 못했었다.

무엇하나 결정된 것 없는 인생을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랑을 벌써 앓고 있으며,

어서 빨리 나 자신을, 삶의 비밀을 다 알아버려야 할 것 같아서 종종댔었다.

그땐 그랬다.

정말이지 딱 열일곱 열여덟. 몸도 마음도 머릿속도 내내 열기로 가득했던.

그런 날들이었다.

- 다락방서 허뭄

g*****6 2008.02.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