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에 오에 겐자부로를 좋아했어요. 솔직히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중 말년의?( 생존인이니 말년이라고 하면 안되나..?) 최근작품을 더 좋아하는데.. 요즘엔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이 없네요. 만연원년의 풋볼. 이건 오에 겐자부로 선생이 젋었을적..아마 20대 초반에 쓴 작품이예요. 글을 읽다보면 아무래도 최근작에 비해 약간 미숙한? 듯한 느낌이 들죠..정돈되지 않은듯한... 핀치러너 조서를 한번 읽어보세요. 개인적 체험도 아마 30대나 40대에 쓴 걸꺼예요. 핀치러너 조서는 느낌이 좋답니다. 오에 겐자부로의 작품은 내면적 슬픔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직관적이고...글을 읽다보면 글귀가 좋아 일기장에 필기를 해 놓은것도 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도 정말 멋지지만. 오에 겐자부로의 글을 깊이와 슬픔이 있어서 너무 좋아해요. 멋있다기 보단 원숙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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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 놓은지는 굉장히 오래 되었는데 웬지 선뜻 손이 가지 않아 오랫동안 보류 상태로 있었던 오에 겐자부로의 <만연원년의 풋볼>을 오늘 읽었다. 작품의 분위기는 거장답지만 뭔가 무겁고 머릿속이 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주인공 '미쓰사부로(작중에서는 미쓰라는 호칭으로 불린다)'와 아내, 그리고 '전향한 학생 운동가'의 역할과 마찬가지인 동생 '다카시(작중에서는 다카라는 호칭으로 불린다)', 동생의 '친위대원'들인 호시노와 모모코 등의 골짜기마을에서의 생활. 증조부의 동생과 화자의 동생 '다카'는 무의식중에 동일시되는 느낌이었다. 만연원년으로 돌아가기 위한 젊은이들의 풋볼 합숙...
3. 시코쿠의 고향 골짜기마을로 돌아간 것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함이었는데, 그들의 증조부가 연관된 농민 봉기에 대해 비행동적인 형과, 폭동이 다시 일어나기를 원하는 동생이 팽팽히 맞서는 것이 이 소설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결말은...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결말이지만, 읽고 나서는 머릿속이 무거웠다. 또한 작품 속에는 '슈퍼마켓의 천황' 등 조선인들에 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굉장히 초현실적인 캐릭터다. 또한 예전에 주인공의 집 일을 봐주던 '진'이라는 여자도 끊임없이 먹고 몸이 불어나는, 초현실적인 캐릭터이기는 마찬가지다. 전반적인 분위기가 약간의 환상소설적인 느낌과 동시에 암울한 느낌이었다.
4. 이 책은 고려원에서 발간한 <오에 겐자부로 전집 24권>중의 한권인데, 나머지들도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절판되어 구하기가 힘들겠지만...그리고 만연원년의 풋볼도 한번 읽어서는 이해가 잘 안된 느낌이라 몇번을 더 읽어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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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말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나가지 않으면 안되는걸까. 과거의 참혹한 기억과 대면하고 그걸 극복해 나가는 것은 분명 보람된 일이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닐것이다. 다카와 미쓰, 서로에 대한 '대항'을 품고 살아가던 형제는 예정된 파국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나간다. 사람들은 '진실'에 대해 세상을 좀 더 안온한 곳으로 만들어주리란 희망을 품고 그것을 추구하지만, 아무리 들춰내며 파고들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려 한들 참혹한 과거는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고. 어떤 대수로울 듯한 의의를 발견해낸다한들 애초의 기억은 새로운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과거의 과오에 대해서, 실은 그런게 아니었음을 증명해보이고 싶었던 아무리 대단한 노력이라도 실재했었던 실수에 대해 변명해 주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 사실이 무척이나 슬프다. 내면에 남겨진 기억과의 화해, 그것과 관련된 모든 제스츄어란 결국, 소설 속 미쓰사부로와 그의 증조부처럼 달콤함과 안정을 숨긴 '지옥도'에 위안받는 일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어떤 '위무'도 가능하지 않다. 세상속에서 완전히 고립되어, 스스로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리듯 이 세상을 떠나가버린 사람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자신으로서 '위무'를 바란다는 것 자체가 죄악이자 또 하나의 참혹한 기억을 생성하는 과정에 불과한 건 아닐까. 동생을 치욕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도록 만든 장본인이 자신이란 걸 뒤늦게 깨달은 주인공 미쓰처럼 당장이라도 모든 걸 내버리고 '좀더 마음 편한 어둠속으로' 도망쳐 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어떤 치욕스런 기억이 당신의 마음을 두드려 격심한 고통을 느낄 때 무얼 할 수 있을까. 낡게 쌓아올려진 먼지들과 망막을 괴롭히는 어둠과도 같은 곳간채의 지하 따위에 틀어박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차근차근 곱씹어 보는 일 정도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가 아닐까. 아무리 당신의 인생을 플레이백 시켜본다 한들, 눈앞에 남는 것은 부패한 먼지의 향기 정도겠지만. 아니면 석류처럼 피어오른 동생의, 형제의, 소중한 기억 속 누군가의, 치욕과 고통 속에서 죽어간 주검이거나. 계속해서 살아나가기 위해선 치사한 방법을 쓰는 수 밖에 없을지 모른다. 때늦은 한탄과 자조 따위는 결국 모두 나를 위한 것, 결코 그들을 위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사랑한다고 미리 말해주었으면 훨씬 명료했을텐데. 당신은 사랑한다고 말했나? 나는 하지 못했다 아쉽게도, 멍청하게, 이렇게 시간을 소요하면서도. <만연원년의 풋볼="">은 '치유'란 개인 고유의 권한이지만, 그것이 근본적으로 비겁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속죄할 수 있을까, 불가능한 과거와의 화해를 위해서 뚜벅뚜벅 걸어나간다. 어떤 결론을 내리든 성공적인 탈주란 없다. 기억은 영원히 당신을 찾아들 테니까. 다만 최선을 다해서 지옥을 향해 걸어가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일지 모른다.
[인상깊은구절] 그들 자신의 지옥을 극복한 이들의 확실한 존재감에 비해서 나는 얼마나 애매하고 불확실한 침울한 날들을, 아무런 적극적인 의지도 없이 계속 살아나가야 하는가. 그것을 포기하고 좀더 마음 편한 어둠 속으로 도망쳐 들어갈 길은 없는가? (p.440)만연원년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