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4)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50%
  • 리뷰 총점8 5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9.0
  • 50대 8.0

포토/동영상 (1)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몸젠의 로마사 3권
"몸젠의 로마사 3권" 내용보기
로마사를 다룬 몇몇 서적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포에니 전쟁과 카이사르의 원정이었다.    포에니 전쟁사는 세기를 넘기며 3차에 걸쳐 진행된 전쟁에서 어떻게 로마는 승리했고 왜 카르타고는 패망했을까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 생각하는데 '테오도르 몸젠'이 바라본 포에니 전쟁은 어떤 모습일지 호기심을 가지고 읽게 됐다.        첫 번째
"몸젠의 로마사 3권" 내용보기


 

 

 

 

로마사를 다룬 몇몇 서적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포에니 전쟁과 카이사르의 원정이었다. 

 

포에니 전쟁사는 세기를 넘기며 3차에 걸쳐 진행된 전쟁에서 어떻게 로마는 승리했고 왜 카르타고는 패망했을까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라 생각하는데 '테오도르 몸젠'이 바라본 포에니 전쟁은 어떤 모습일지 호기심을 가지고 읽게 됐다. 

 

 

 

첫 번째 포에니 전쟁은 팽창하려는 로마와 이를 억제하려는 카르타고의 대립이었다.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한 로마는 자신들을 둘러싼 섬과 바다가 카르타고에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에 위기감을 느꼈고 로마가 더 팽창하기 위해서든,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본토를 보호하기 위해서든 국경을 넓힐 필요를 절감했다. 반면 지중해 제해권, 특히 동부 지중해 제해권을 소유하고 있던 카르타고는 로마의 빠른 팽창이 내심 불편했고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자신들이 장악하고 있는 해상으로 넘어오는 것을 견제했다. 

 

전쟁은 로마와 가깝고 카르타고가 절반 정도를 점유하고 있던 시킬리아에서 시작됐다. 해상무역으로 성장한 국가답게 카르타고는 해군전력이 강성한 반면 로마는 잦은 전쟁으로 다져진 강한 육군을 보유하고 있었다. 각자 명분에 따라(엄밀히는 이해관계에 따라) 메사나에서 격돌한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은 시킬리아 전역으로 번졌고 이탈리아의 서부 해안 그리고 아프리카 북부 해안에서도 펼쳐졌다. 20년 넘게 진행된 전쟁에서 로마는 승리했고 카르타고는 시킬리아와 사르디니아 등을 로마에 넘겨줘야 했으며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제 1차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 - 기원전 241)을 통해 로마는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막강한 교두보를 마련했고 카르타고는 살점을 일부 떼줘야 했지만 그래도 견딜만 했다. 제 1차 포에니 전쟁 중 총사령관으로 복무하며 용병을 모아 게릴라전을 펼쳐 로마군을 괴롭혔던 하밀카르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로마에 대한 깊은 반감을 가졌다. 로마에 대한 그의 복수심과 설욕에 대한 의지는 그의 아들들(한니발, 하스드루발, 마고)에게로 전승되었다. 전쟁 직후 발생한 용병들의 반란과 소요를 진압한 후 하밀카르는 히스파니아로 향한다. 카르타고에서는 한노를 필두로 한 정적들로 인해 운신의 폭이 좁았고 로마의 감시를 의식해야 했기 때문에 새로운 터전을 개척해 로마에 대항할 군대를 양성하고자 하는 마음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밀카르는 히스파니아의 상당부분을 카르타고에 복속시켰고 용병이 아닌 정규군을 양성했다. 그가 사망(기원전 228년) 하자 어린 한니발을 대신해 하밀카르의 사위(하스드루발)가 히스파니아를 통치했으며 그마저 죽자 한니발이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았다. 당시 한니발은 이미 히스파니아 전장에서 용맹과 지략으로 명성을 떨쳤고 로마에 대한 반감도 아버지 못지 않았다.  기원전 219년 한니발은 히스파니아에 있는 로마의 동맹국인 사군툼을 공격함으로써 로마와의 전쟁을 결정한다. 이전의 전쟁과 달리 전장을 로마 본토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던 한니발은 부대를 이끌고 피레네 산맥, 갈리아, 그리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 북부에 도착한다. 한니발의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파견된 로마군을 무찌르고 트라시메누스 전투와 칸나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둠으로써 로마를 위기에 빠뜨린다. 한니발은 이탈리아 중부와 남부를 종횡무진하며 이탈리아의 동맹국과 식민지를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 일부를 로마를 등지고 돌아서게 한다. 카르타고로 돌아서는 이탈리아의 도시가 늘수록 로마의 위기감은 고조되었다. 

 

이탈리아 본토 뿐 아니라 시킬리아, 히스파니아, 사르디니아 등지에서도 로마와 카르타고는 격돌했으며 서로 일진일퇴를 반복하다 결국 로마쪽으로 승기가 기운다.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고군분투했지만 병력 충원과 보급이 원활히 이루어지는 로마와 달리 한니발 군은 보급과 징병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점차 수세에 몰린다. 카르타고로 돌아섰던 도시들이 다시 로마에 점령당하거나 자발적으로 돌아서면서 한니발의 입지는 더욱 곤란해진다. 카르타고 본국으로부터의 미비한 지원, 마케도니아와 동맹하여 로마를 공격하려던 계획의 실패, 동생 하스드루발의 군대가 한니발과 조우하기 전 괴멸, 시킬리아에서의 카르타고의 패배 등 한니발은 점점 고립되었고 로마 군단이 아프리카로 넘어가 카르타고를 직접적으로 위협하자 결국 이탈리아를 떠나야 했다.  기원전 202년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군에 맞서 한니발의 카르타고 군이 자마에서 결전을 벌였고 이 전투에서 로마군이 승리함으로써 17년 가량 진행된 제 2차 포에니 전쟁이 막을 내린다. 카르타고는 스킬리아아 히스파니아 등에서 완전히 물러나야 했으며 막대한 전쟁배상금과 함께 전쟁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로마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는 굴욕을 받아들여야 했다. 

 

기원전 149년부터 기원전 146년까지 진행된 제 3차 포에니 전쟁은 지중해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로마의 계략으로 인해 발생했고 이미 제국으로 변모하는 로마의 공세를 예전에 비해 현저히 약해진 카르타고로서는 막을 수 없었다. 제 3차 포에니 전쟁으로 카르타고는 완전히 멸망하게 된다. 

 

 

 

<몸젠의 로마사 3권>에 담긴 포에니 전쟁은 승자(로마) 편이 아닌 중립적 시각이거나 한니발에 약간의 동정심을 가진 측면에서 기록되었다고 생각한다.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고 옳음이란 강자의 이익에 복무한다는 격언들을 다소 빗나가는 전개이다. 한니발 개인의 재능은 발군이었고 그가 보여준 용맹, 지혜, 끈기, 기지, 전략, 전술에서 위대한 장군을 떠올리게 된다. 만약 카르타고가 한니발을 적극 지원할 수 있는 상태였더라면 역사는 크게 변모했을 것이다. 하밀카르와 한니발이 대를 이어 치룬 두 차례의 포에니 전쟁은 모두 카르타고의 정쟁에서 비롯된 미온한 태도에서 실패요인을 찾게 된다. 대국이 되고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와 민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을 수 있는 대목이다. 

 

어쩌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원정에 버금가는 업적으로 칭송받았을 수도 있는 한니발의 도전은 개인적으로는 한니발의 실패가 아닌 카르타고의 실정으로 돌리고 싶다. 작은 일을 치루는 데는 개인의 역량만으로도 가능하지만 보다 큰 일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능력에 더해 운과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로마가 카르타고에 승리함으로써 제국으로 가는 여정에 박차를 가하게 되는바 이어질 4권에서 로마 제국의 성장을 어떻게 적고 있을지 기대하게 된다. 

YES마니아 : 로얄 t******8 2021.04.1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