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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를 끓이는 사람이 떠오른다. 그는 다시마와 멸치를 넣고 육수를 먼저 낸 뒤 된장을 채에 밭쳐 풀어낸다. 그리고 같은 크기로 정갈하게 썬 채소와 두부를 넣고 끓인 뒤 맨 마지막에 곱게 썬 파를 가라앉지 않게 올린다. 이와 달리 내가 된장찌개를 끓일 때 모습은 이렇다. 나는 그냥 제멋대로 숭덩숭덩 자른 채소를 다시마, 멸치와 함께 넣고 끓인다. 가끔은 파도 처음부터 같이 넣어버린다. 된장은 귀찮아서 한 번도 채에 거른 적이 없다.
만날천날 내가 끓이는 된장찌개만 보다가 정성 들여 정석대로 끓인 된장찌개를 감상하는 기분. 박애희 작가의 ‘삶은 문장이 되어 흐른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딱 그런 기분이 나를 감쌌다. 일상의 한 장면 한 장면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거기에 흐르는 감정을 찾아내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다정함으로 재생산하는 과정이 이렇게 정성스러울 수가 없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사부작거리는 아이가 신경 쓰이는 작가에게 ‘잘 크고 있는 거’라고, ‘아이가 가만히만 있으면 어디 아픈 거’라고 말해주던 할머니를 통해 우리가 들었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 되는 말 한 마디’를 끄집어내게 한다. ‘이 나이 먹도록 잘하는 게 하나도 없다’는 흔한 탄식 속에서도 ‘사실 잘 살펴보면 누구나 잘하는 게 있고, 당신이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줄기를 뽑아낸다. 그뿐인가. 작가는 책 한 줄도 허투루 읽지 않아서, ‘나는 늙었고 엄청나게 많은 불행에 대해 알고 있지만 그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던 마크 트웨인의 말에서 불행을 견디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삶을 긍정하는 웃음이라는 이야기를 끌어내고 우리가 가장 크게 웃었던 때를 되새기게 한다. 내 생각에 작가의 눈에는 고배율의 돋보기가 달렸고, 심장에는 최첨단 센서가 달린 게 틀림없다. 그래서 이렇게 평범하게 스쳐갈 것들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거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따뜻함을 찾아낼 수 있는 거 아닐까. 나처럼 덜렁거리며 대충 사는 사람으로서는 그가 보여주는 감정의 미시적 세계가 감탄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숙제가 잔뜩 생기는 기분이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이 책은 작가가 묻고 독자가 대답해야 하므로 ‘읽는다’는 표현보다는 ‘함께 완성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텐데 그게 가능할지 잘 모르겠다. 책의 오른쪽에 붙은 파란색 질문에 일일이 답하기가 어려워서 대충 건너뛰며 책의 왼쪽 장만 다 읽은 채 지금 독후감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안드로메다로 떠나버린 청춘의 나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던지라고? 어제 먹은 반찬도 기억이 안 나는데 인생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선물과 사연을 되새기라고? ‘설렘’이란 그저 아이스크림 이름인가 싶은데 그동안 나를 가장 설레게 했던 말과 대답을 추억하라고? 작가가 묻는 말에 응답하려면 시간의 구멍이 숭숭 뚫린 나의 삶을 되짚어봐야 하는 데.. 영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이 책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스스로를 조금 촘촘하게 들여다보게 되었고, 더 나아가 앞으로는 정성 들여 순간을 기억하고 느끼고 감동하며 살아야겠다는 각성을 했다. 나도 대충 끓이는 된장찌개 말고 제대로 맛을 낸 진짜 된장찌개를 끓여보고 싶어진 것이다. 사실 나는 사람의 인생이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작은 것이라 생각해왔다. 파릇하게 한 해를 보낸 나뭇잎이 가을철 낙엽이 되어 떨어지듯 너무 힘주지도 않고 반대로 너무 기운 빼지도 않은 채 주어지는 대로 시간을 보내고 떠나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작은 모래알 속에도 온 우주가 담겨있다고, 그래서 자기 몫의 시간을 위해 훨씬 더 애써야 된다고 외치는 작가의 책을 읽다보니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이대로 살면 그에게 ‘정말 그렇게밖에 못 사냐’고 혼날 것 같기도 하다.
그리하여 나는 당분간 이 책과 함께 삶의 태도를 바꿔보려고 한다. 멀리 보던 자기 자신과 좀 더 가까이 만나 깊이 대화하고 그 속에서 따뜻함을 발견해 스스로를 격려하려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퇴. 인생이라는 싸움터에서 정처 없이 헤매는 스스로를 정돈하며 이 책을 끝까지 완성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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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앞으로만 가는데 마음이 자꾸만 따라와주지 못할 때 그런 때가 있죠? 모지라고 멍청이같았던 시간 속의 나를 끄집어 내고,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가시돋힌 마음을 날카롭게 쏟아내기도 했죠. 이런 나를 읽고나면 뭐야 이거 하며 백스페이스를 눌러버릴거야, 친해지고 싶은 사람 목록에서 제거되겠지? 하는 염려는 보기좋게 날아가버렸어요. p.100저를 '우리' 라는 이름 안에 넣어준 작가님과 글벗들의 존재는 오랜 시간 삶에서 도망쳐 고개숙이고 있던 저에게 안전지대가 되어주었어요. p.101이렇게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글로 써내려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강한 사람이라고, 좋은 사람이라고 다독여주던 그 말을 믿고싶어지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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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독이고 안아주는 따뜻한 글에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그 차분함으로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됩니다 쓸 수 있게 마음의 동기를 부여해주는 글이기에 평소 쓰기를 망설이는 분이시라면 이 책을 계기로 용기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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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희작가님 책은 언제나 잔잔한 감동을 줍니다. 마음을 울리구요. 필사책은 처음인데 다시 한번 푹 빠졌습니다, 작가님의 글에. 작가님의 마음에. 혼자 터무니없는 글만 써오다가 이렇게 필사하면서 따듯한 마음씨를 가진 작가님의 마음을 제 마음으로 옮겨낸 것 같아 읽는 내내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
| 책을 읽으며 너무나 소소한 일상들이기에 한편으로 무뎌지기 쉬운 우리의 마음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습니다. 공중에 흩어진 감정들을 하나하나 모아 다소곳이 정리히는 느낌이랄까. 중간에 작가의 제시로 사적인 경험과 감정들을 기록할 수 있어서 꽤 개인적인 기록물이 될 것 같습니다. 이 가을에 잘 어울리는 책입니다. 잘 보관해야 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