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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 피플 존 > 리뷰 2025년의 최고의 소설집입니다. 처음엔 흥미롭고 공감하면서 보다, 중반부 넘어가면서 서늘해지고, 종반부의 이야기들은 끔찍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무언지. 또 관계는 무언지. 등등 생각할 거리가 많은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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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속에 실려 있는 9편의 이야기에는 어딘가 에서 만났을, 어딘가 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예상되는 익숙한 캐릭터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실패'를 공유하지만 실패라는 것은 바라보는 사람의 시각과 경험에 따라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 살아오면서 언젠가 한 번은 만나봤을 듯한 <언니>의 주인공 같은 선배 언니. 혹시 나의 실수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상황을 정당화해버리고 싶어하는 마음. 가장 가까운 사이라 생각했는데 내 의도와는 상관없는 일들이 일어나버려 관계가 어그러지는 일. '돌봄'이라는 것이 꼭 가족만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질 수 있는데 그것이 고용 노동이 되는 환경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처 받을 수 있는 객체들의 이야기. 그 외에 폭력, 계급 등의 사회문제를 현실의 삶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것으로 묘사하여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여러 상황이 연출 된다. 정이현의 글은 도회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면서 시끄럽지 않고 명료하면서 뭔가 공감을 느끼게 되는. 작가의 이미지도 그렇게 느껴진다. 글 속의 인물들은 도시의 어딘가에서 살아가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불합리한 것들을 합리화 하기도 하고 때로는 맞서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그런 것들을 보면서 나를, 주변의 인물을 그리고 내 삶을 돌아보게 된다. '"실패에 관한 여러 격언이 있지만, 제가 가장 좋아하는 건 사뮈엘 베케트의 말이에요. 다시 시도하라. 다시 실패하라. 더 나은 실패를 하라. 그 말은 결과보다 실패하는 과정과 반복 그 자체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알게 해 주거든요. 실패 또한 창조적인 과정의 일부죠. 저는 계속 도전할 겁니다.('실패담 크루'中) p. 30' '모든 멈춘 것은 퇴색하고 틈이 벌어지고 낡아간다. 움직이지 않는 바위는 제자리에서 조금씩 바스러지고 있다. 어느 날 회색 재로 풀썩 무너져내려 실체조차 없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는 사랑도 언젠가 그처럼 소멸하리라는 희망만이 그동안 설을 버티게 했다. (p. 219)' '그때 나는 멀리 가면 빨리 갈 수 있다고, 빨리 가면 멀리 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빠르게 멀리 가는 것만 이 삶의 유일한 이유라고. 아주 멀리 온 것 같은데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었던 기분이다.('사는 사람'中) p. 304' '내가 거대한 거미줄의 한 귀퉁이에 얽혀버린 날벌레인지 아니면 둔한 공모자인지 영원히 가려낼 수 없을 것이다. 모르는 새 내가 팔아버린 것과, 내가 빼앗긴 것을, 그리고 잃어버리지 않은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오래도록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사는 사람' 中) p. 3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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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날카로운 필치로 현대 사회의 소외와 계급적 욕망을 서늘하게 파헤친다.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과 단절의 공포 사이에서 방황하는 현대인의 모순을 정확히 관찰한다. 세대 간의 단절부터 부동산과 돌봄노동 등 현실적인 모순까지 아홉 편의 단편에 담아냈다. 도시의 세태를 밀도 있게 기록해 내어 서늘한 위로를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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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트리는 뜻밖에 정치적인 빵이다. 겹겹이 쌓인 층과 층 사이, 선처럼 얇은 틈이 숨어 있다. <노 피플 존> 실패담크루 9page 겹겹으로 이루어져 페이스트리라는 하나의 빵을 만들어낸다. 먹기 전까지는 그 겹들이 똑같은 겹일 뿐이다. 하지만 먹는 순간 느끼게 된다. 안의 겹은 버터 향이 풍기지만 바깥의 겹들은 부스러기로 쏟아진다는 것을. 페이스트리처럼 우리 또한 자본주의 관계를 살아가는 우리들 또한 마찬가지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지만 장소와 신분에 따라 그 겹들이 드러난다. 누군가는 은은한 향을 내지만 누군가는 부스러기 같이 떨어져나간다는 것을 말이다. 정이현 작가의 소설 『노 피플 존』이 바로 관계 속의 페이스트리를 드러내는 소설집이다.
첫 번째 단편 「실패담크루」 에서 나는 인턴으로 일했던 로펌 대표의 연인이었던 성지연의 초대로 '실패담크루'에 함께 하게 된다. 서로의 실패담을 발표하며 나누는 모임. 하지만 이 곳에서 성공과 실패라는 개념조차도 신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라는 사실을 나는 알지 못했다. 가진 게 없는 나는 실패란 치명적이며 아픈 상처이지만 이들에게는 친목회 정도로 소비된다. 그래서 그들은 실패를 담백한 공유라고 말하고 조언이나 피드백을 주지 않는다. 실패조차도 취미로 소비되는 부유한 이들의 모임에 나는 동화될 수 없고 떨어져 나갈 수 밖에 없다. 현대 사회는 많은 플랫폼을 만들어냈다. 배달 플랫폼은 기본이고 각종 다양한 플랫폼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단 하나의 아이」 에서는 놀이 가정교사 플랫폼인 '케이 파라디소' 가 소개된다. 아이들과 놀아주는 놀이선생님. 사진과 학력을 올리고 채용된 한나는 담당실장으로부터 절대 인간적인 교류를 하면 안 된다고 교육받는다. 하지만 어디 그게 쉬운가. 선을 지키고자 하지만 너무 쉽게 선을 넘으며 한나에 대한 정보를 묻는 할머니. 한나의 부모님이 이혼한 사실을 알자마자 조용히 칼같이 교체된다. 다시 하유라는 아이의 선생님으로 채용되며 긴 시간을 함께 한다. 테리라는 친구와 자주 통화한다는 하유의 문제점을 알게 되며 순수한 감정으로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부모에게 어렵게 말을 꺼내지만 돌아온 건 조용한 차단이었다. 플랫폼 채용에서의 관계는 존재하지 않아도 존재하고 존재함에도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이는 그런 관계임을 소설은 말한다. 그저 필요에 따라 존재할 뿐 어딘가에 남아 있는 흔적만을 남길 뿐이다.
『노 피플 존』은 제목 그대로 사람들이 함부로 다가오지 않도록 테두리를 치는 관계들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사는 사람」에서 김다미는 유명 입시학원에서 일한다. 김다미를 아는 사람들은 학원이름만 가지고 김다미를 평가한다. 남자친구 우재 또한 '어디에 살고' '어디에 근무하는지'로 김다미를 마음에 들어한다. 함께 부유한 동네 임장을 다니며 있어보이려 하는 우재. 뻔지르르하게 옷을 입지만 김다미는 우재의 구두를 바라본다. 그리고 끝내 숨길 수 없는 게 있음을 드러낸다. 똑같은 척하지만 다를 수 밖에 없는 관계. 그게 바로 자본주의 사이에서의 관게의 차이였다.
이 소설집에서 가장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언니」에서의 인회 언니다. 늘 이름으로 기억하며 이름으로 불러주는 사람. 일을 도와주는 1학년생들에게 사비로 음식을 사 주면서 늘 분위기가 아닌 원하는 음식을 선택하도록 도와주는 사람. 인회언니에게는 신분이나 위치가 중요하지 않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겹을 만들어놓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임에도 자본주의 관계에서는 사람의 선한 성품을 이용하고 내팽개쳐질 뿐이다. 상황에 따라 쉽게 바뀔 수 있는 여러 관계들. 그 관계들을 누군가는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누군가는 끝까지 변화를 시도하기 위해 용기를 낸다. 인회 언니도 피해자로 전락하지만 단순한 피해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래도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노 피플 존』 을 읽으면 지금 나의 위치에서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시 만나게 된다. 부부관계에서도 우리는 같은 겹을 이루나 아니면 한 쪽이 희생하는 부스러기 같은 겹인가. 직장 및 공동체 관계에서 그 틈을 다시 보게 하는 소설이다. 이왕이면 똑같은 관계이길 원하지만 다른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내는 쌉싸르한 소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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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노 피플 존』은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고립과 불안, 관계의 단절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소설이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인간의 이기심과 외로움, 그리고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담담하면서도 날카로운 문체가 인물들의 감정을 더욱 생생하게 전달했으며, 평범한 삶 속에 숨겨진 사회적 문제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읽고 난 뒤에도 우리 사회와 인간관계에 대한 깊은 여운이 오래 남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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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패담 크루 실패마저 저런 사람들에게는 서사의 일부구나 싶었다. 그들에게 실패는 안전이 보장된 롤러코스터였고, 주인공에게는 줄 없는 번지점프였다. 2. 언니 읽을 때는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후기까지 다 읽고 나니 이해되더라. '그 언니는 하고 싶은 건 기어코 하는 사람이야. 언니 어머니도 그렇고.' 참 얼마나 모순적인 문장인지. 관습과 시스템에 저항하는 여성이 쉽게 받는 취급을 잘 보여주는 문장이었다. 3. 선의의 감정 코로나 시국의 묘사를 현실적으로 잘 담아냈다. 뭐랄까, 시스템의 압박 속에서 부조리에 순응하게 되는 직장인의 부채감이 절절하게 느껴져서 슬펐다. 주인공에게 이입해 "그래, 그래. 네 잘못은 아니야." 하다가도 마지막의 캔커피와 감사 인사 장면에서는 숨이 턱 막히더라. 4. 빛의 한가운데에 하... 진짜... 자식을 키우는 감정노동이 결국 화자의 몫이라는 걸 은은하게 보여주다가, 결국 아들놈의 딥페이크 사건으로 터져 버린다. 그러고도 "네가 엄마잖아"라는 말에는 "그러고도 네가 인간이냐"라고 되받아치고 싶었다. 5. 단 하나의 아이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이야기하니 좋게좋게 대해주다가도 뒤에서는 태도가 뒤집는 모습이 소름이었다. 방치당하는 아이에게 시스템상 손을 내밀 수 없었던 점도 안타까웠다. 6. 우리가 떠난 해변에 그냥 그랬던 단편. 7. 가속궤도 진짜 숨이 턱 막히던 단편. 실연당한 비극의 주인공 자리에 심취한 남자와, 원치 않게 히로인이 된 화자가 겪은 폭력의 기억이 너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소름 돋았다. '이런 히로인은 죽어야 교체된다'는 식의 서사도. 주인공이 우연히 본 댓글 하나에 트라우마를 겪는 것도, 잡힌 범인이 겉과 속이 다른 채 여성 교사들에게만 악플을 달던 사람이었다는 것도 섬뜩했다. 8. 이모에 관하여 『빛의 한가운데에』, 『가속궤도』와 함께 가장 인상 깊었던 단편. 내 마음속 1위다. 나도 결혼 생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아이를 낳는 건 무섭다. 과연 육아에 대한 시혜적인 태도 없이 감정노동과 경력단절에 대한 두려움을 함께 겪고 이해해 줄 동반자를 만날 수 있을까. 이모에 대한 두려움을 찬이 전혀 이해하지 못할 때 숨이 턱 막혔다. 9. 사는 사람 상급지 임장을 위해 배역을 흉내 내던 우재의 모습을 꽤 현실적으로 묘사해서 인상깊었다. 조금 해석이 갈린 포인트는 정원이. 나는 정원이가 미국에 간 후 보답한 것도 '보은'으로 읽혀서 흐뭇하게 봤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이 갑자기 "공범으로 굴러떨어졌다"는 식이라 엥? 싶었는데, 해설을 보니 미국 유학으로 극복할 수 있는 정원이의 재력 역시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시스템의 수혜자며 주인공과의 격차를 보여준다 이런 뉘앙스더라. 이해가 갈듯 말듯....다만 나는 점수 1점 떨어진만큼 1대 맞는다고 매달리던 정원이의 말이 기억에 남아 가정폭력 피해자로 읽어서인지, 여전히 안쓰러운 마음이 더 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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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들어는 봤으나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작가. 그러다가 작년 말에 '소설가 50인이 뽑은 올해의 소설'에 작가의 작품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주문. 그런데 내내 방치하다 최근에서야 읽었다. 매우 좋다. 좋은 작가다. 이제서야 안 것이 후회될 정도로. '실패담 크루', '언니', '선의 감정', '빛의 한가운데', '단 하나의 아이', ' 우리가 떠난 해변에', '가속 궤도', '이모에 관하여', '사는 사람' 이렇게 9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그래서 작품 하나하나 짧게나마 감상을 남긴다. '실패담 크루' - 소설을 이렇게 시작된다. '페이스트리는 뜻밖에 정치적인 빵이다. 겹겹이 쌓인 층과 층 사이, 선처럼 얇은 틈이 숨어 있다 <중략> 당신은 이미 어디에든 속해 있다.(9쪽)' 변호사인 '나'가 실패담 크루에 입성한다. 모든 면에서 세련된 성지연의 도움으로. 돌아가면서 실패담을 말하지만 그것은 내가 가진, 내가 위치한 그 모든 것을 더욱 볻보이기 위한 장치일 뿐. 실패조차 교묘한 언술에 의해 포장되고 그 포장을 거리낌없이 받아들이는 사회지배층의 위선과 기만을 폭로한다. 애초 '나'는 어쩌면 층과 층 사이의 틈에만 존재하는 사람인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스트리의 전체를 아는 것처럼, 아니 나도 틈이 아니라 빵 자체라고 섣불리 믿으려 노력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그 실패탐 크루의 잔류에 실패하고 만다. '언니' - 두 번째 소설 '언니'의 공간은 상아탑이다. 지성의 집합처라고 불리는 그 곳에서 한 여인(인회)의 꿈과 희망이 좌절된다. 교수라는 억압과 권위에 의해서. 하지만 인회는 물러서지 않고 그 불의에 저항한다. 그리고 그 저항의 몸짓을 하는 언니의 곁을 지키는 소수의 사람들 중 내가 있다. 그 겨울, 추운 날들을 함께 하며 중국어 번역일을 했던. 하지만 대학원생과 교수, 개인과 집단(대학)의 대결의 결과는 뻔하다. 그럼에도 소설은 결코 절망만을 말하지 않는다. 인회 언니의 어머니가 만든 벙커, 허섭스레기들을 모아 얼기설기 엮어놓은 방. 그곳에서 인회언니는 비로소 숨을 쉰다. 그리고 인회언니는 나에게 그 방에 놀러오라고 한다. 의례적 인사가 아니다. 그렇게 그 둘의 느슨한 연대와 이해는 이어진다. '선의 감정' - 병원 블랙리스트에 오른 안복희 환자가 '나'에게 배정되었다. 치료는 잘 됐고 약간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무사히 퇴원했다. 하지만 퇴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환자는 병원에 다시 왔고 결국 심근경색으로 사망하고 만다. 난 뭔가 의심쩍어 환자의 심전도를 다시 들여다본다. 하지만 어디에도 나의 잘못은 없다. 오히려 두 번째 심전도에 '비특이성 변화'라는 말이 나를 안심시킨다. 그러나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환장의 딸이 나에게 진료를 신청한다. 긴장감이 고조되고 주변에서 만류하지만 그녀와 대면을 한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감사를 표한다. 일종의 반전이라면 반전이다. 의사로서의 죄책감과 자기합리화에만 골몰하던 나에게 던진 그녀의 말은 어쩌면 나에게 던지는 말인지도 모른다. 결코 예단하지 말것이며 섣불리 자기합리화도 하지 말라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선은 線인가 善인가를 고민했다. 사실 어느 것으로 해도 무방하리라. 인간다움 혹은 인간다움의 조건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나는 선을 얼마나 지키고 있나 혹은 나는 선을 얼마나 행하고 있나? 결국 자기 자신의 인식과 행위로 사고는 귀결된다. '빛의 한가운데' - 가장 현실적이며 가장 논쟁적인 작품이 아닐까 싶다. 딥페이크 성범죄를 다루고 잇는 작품이다. 딥페이크 성범죄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믿는 이에게서 발생할 수 있으며 그 누구도 딥페이크 성범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웅변한다. 또한 바로 이 지점에서 이땅의 여성으로서 감내해야만 하는, 하지만 반드시 풀어야만 하는 여성의 성 대상화, 여성에 대한 성적 모욕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래서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 아프게 다가온다. '희미한 깜빡임조차 없는 어두움을 안희는 몰랐으나 거기서도 끝내 보아야 할 것을 알고 있었다.(153쪽)' 내 아들이 나와 가장 가까운 이를 대상으로 딥페이크 성범죄를 저질렀다. 이보다 깊은 어둠과 절망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직시해야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 인간을 여전히 존엄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시선이다. 남편은 외면한 그 시선을 안회는 알고 외면하지 않고 있다. 우리 역시 그리해야 한다. '단 하나의 아이' - 이 소설집의 제목이 여기서 나온다. '지나치게 소란스러워서 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인간이라면 그게 누구든 얼마나 어리든 또는 얼마나 늙었든 자신이 있는 곳에는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노 피플 존(157쪽)' 한나는 케이 파라디소라는 업체를 통해 어린 아이의 개인 튜터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아이의 세계로 발을 디디게 된다. 자신만의 공간을 원하던 이가 스스로 타인의 공간으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삶에까지 손길을 내미는 한나. 그러나 그것이 호의로 인한 것이라 할 지라도 타인의 영역 침범을 반기는 이는 없다. 그로부터 남아 있는 아스라한 연민과 안타까움의 감정. 그것은 단순한 인간에 대한 호의일까? 아니면 어른으로서의 도덕적 책임감일까? 타인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한나가 '단 하나의 아이'에게 보이는 감정의 결은 무엇일까? 이 작품집에서 일관되게 지속되는 인간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 놓치지 말아야 할 감정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가속 궤도' - 이 소설 역시 사회적으로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는 데이트 폭력을 다룬다. 연인에서 스토커로 결국 폭력의 가해자로 변하는 남자친구. 결국 이별을 하지만 몸과 마음에 남아있는 그 끔찍한 폭력의 기억은 여전한 공포로 자리잡고 있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떠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블로그에 남긴 덧글 하나가 그녀의 상처를 다시 헤집는다. 그래서 소설에서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하게 그려지기는 하지만) 브레이크가 작동하지 않는 차 안의 소진은 과거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재의 소진과 겹쳐 보인다. 결국 시간이 약인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름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에 낙인찍힌 상처와 공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이모에 관하여' - 재연에게 네 명의 이모가 있다. 셋은 혈연관계, 그리고 이 소설은 나머지 한 명에 관한 이야기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이모가 있었다.(259쪽)' 바로 이 이모는 의도치않게 둘째를 임신한 재연이 육아휴직을 피하기 위해 고용한 흑룡강성 출신의 유치원 교사 혹은 연변 출신의 농부이다. 이 과정에서 남편인 '찬'은 거의 방관자의 역할만 수행한다. 철저히 출산과 육아는 여성의 몫으로만 남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집에 들어온 이 도우미가 뭔가 이상하다. 결국 의도된(하지만 과정과 결과까지는 의도하지 않은) 연극을 한바탕 치르고서야 중국인 도우미는 제발로 집을 떠난다. 그것이 재연에게 질린 것인지 아니면 위장 취업인 것인지는 명확치 않다. 명확한 것은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을의 위치에 있던 재연이 역시 을의 위치에 있던 도우미를 내친 것이다. 서로 공존해도 괜찮았을 이 둘이 이렇게 갈라지는 것은 여전히 남아있는 여성의 독박 육아, 출산과 육아를 위해 자신의 경력을 희생해야 하는 사회 구조,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의 처우 문제 등 여러 영역에 걸쳐져 있는 문제이다. '사는 사람' - 책을 읽다보면 '사는'이 '살다'에서 온 것인지 '사다'에서 온 것인지 애매하다. 사실 이 둘 다를 포함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강남에서 잘 나가는 사설 학원의 상담실장인 다미. 그녀에게 학생의 부정한 청탁이 온다. 사실 부정의 여부는 명확하진 않지만. 정원이란 학생은 학원 자체 시험지를 한 시간 전에 자신에게 보내달라고. 보상을 하겠다고 한다. 다미는 내키지 않지만 학생에 대한 동정심으로 이를 허락하고 이후 정원의 성적은 눈에 띄게 향상된다. 문제를 사고 파는 현장이다. 그런데 그렇게 동정어린 시선의 대상이던 학생이 어느 날 학원을 나오지 않느다. 가정폭력일까라고 의심했지만 웬걸. 그는 유학을 떠난 것이다. '사는(살고 있는)' 공간의 이동. 이것은 결국 자본의 힘이다. 또한 다미와 애인인 우재. 상급지의 임장을 다니던 이들에게 노골적인 요구가 담긴 임장 계약서가 제시된다. 이에 우재는 자격지심의 발로인지 열띤 화를 내고 임장은 실패하고 만다. 임장 하나를 하기 위해서 통장의 잔고가 중요시되는 오늘날의 현실인 것이다. 결국 나와 우재는 상급지 아파트를 '사는' 사람은 커녕 '보는' 사람도 될 수 없는 현실. 씁쓸한 현실이다. '빛의 한가운데'는 특별히 더할 말이 없어 생략한다. 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한결같이 어둡고 우울하며 경우에 따라 냉정하기까지 하다. 그렇기에 소설을 다 읽은 후의 입맛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 묘하게 독자의 도덕과 윤리, 가치관을 자극한다. '너는 어떠냐고' 소설 속 대부분의 인물처럼 사회의 주도층이 아니라 약자, 을의 위치에 있으면서 그 위치를 자각하고 있느냐고, 그 위치의 모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느냐고, 너보다 더 낮은 약자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있느냐고, 무조건적으로 위로만 시선이 향하고 있지는 않느냐고 묻는 것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욕망의 동물이다. '실패담 크루'의 변호사도, '사는 사람'의 다미와 우재도 그 여타의 인물도 마찬가디다. 그렇기에 자신의 현재보다 높은 위치와 공간으로, 굳이 작품의 제목을 인용하자면 '선 안의 공간'으로 이동하기를 원한다. 바로 이 본능적이면서도 사회구조적인 욕망에서 인간 사회의 수많은 문제와 갈등이 잉태된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바로 인간다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아닐까? 씁쓸한 현실과 공조화하기 어려운 인물을 대하면서도 여전히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결국 인간인 것이다. 아주 만족스러운 작품집이었다. 그리하여 이후에 정이현의 소설이 출간된다면 기꺼이 두 팔 벌려 맞이하리라. |
| 노피플존 책 제목부터 뭔가 나를 강하게 책을 읽고싶은 욕망을 끌어당겼다. 읽어보니 역시나 제목에 부합하게 너무 좋은 책이었다. 이책 요즘 너무 핫하다 근데 살짝 나는 핫하고 지난 후에 읽었는데 재밌었네요 역시... 정이현 작가님 다작해주생~ |
| 처음에는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궁금함으로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많은 생각속에 차근차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의 이야기에서는 성공을 위한 과정으로 보는 실패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그냥 가볍게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실패담의 크루의 모임이라는 것에서 크게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
| 처음에는 사람이 없는 구역에 대한 책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읽어보니 사람이 없는 구역이 아닌 경제 육아 의료 교육 등 분야에서 빈틈을 나누고 찾아가는 냐용이었습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익히 알고있었던 것을 뚜렷하게 드러내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