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라이의 이론이 도식적이라는 것은 그 비판자들은 물론이고 프라이 스스로도 인정한 바이다. 사실 연구를 위해서는 얼마쯤 추상화와 도식화를 피할 수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도식화가 비판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은, 그 도식에서 벗어난 사례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준오는 "토도로프는 프라이의 장르론을 '이론적 장르theoretical genre'라고 규정하고 그의 이론의 연역적 성격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 토도로프에 의하면 장르는 순전히 사변적으로 연역적으로 규정된 이론적 장르의 개념과 구체적 작품을 관찰한 결과로서 귀납적으로 규정되는 '역사적 장르historical genre'라는 두 개념이 있다"는 말로 일면 프라이의 한계를 지적했다. 프라이가 도식적이라는 것은, 또다른 뜻으로서 그가 형식주의적이라는 뜻도 될 것 같다. 그가 '서술적 작품'과 '주제적 작품'을 나누고는 있지만 실제로 주제에 대해 깊이 파고드는 모습을 보기는 어렵다. 문학에서 큰 부분을 갖는 상상력과의 관련성은, 원형상징archetype을 다루는 신화와의 관련성에도 불구하고,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와 그 '장르의 이론'의 논지가 거의 갖지 못하고 있는 부분인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표면적으로만 그런 것일까, 실제로도 그런 것일까. 만약 실제로 그런 것이라면 「도전적 서론」에서 우려한 대로 비평은 문학과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엉뚱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덧말> 프라이가 "아리스토텔레스도 『시학』에서 렉시스의 문제에 이르게 될 때, 이 문제는 수사학에 속하는 것이 한층 더 적당하다고 말하고 있다."(467쪽)고 한 부분은 오류인 것 같다. 천병희가 옮긴 『시학』의 6장에서는 "제 3은 사상이다. 사상이란 상황에 따라 해야 할 말과 적당한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다. 대사에 관한 한, 이 능력은 정치학과 수사학의 연구분야에 속한다."(1450b)고 하고 있으며 19장에서는 "사상에 관해서는 수사학 에서 말한 바를 여기서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하자. 왜냐하면 사상에 관한 연구는 시학보다는 수사학의 연구분야에 속하기 때문이다."(1456a)라고 하고 있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보다 수사학에 적합하다고 말한 것은 렉시스가 아니라 디아노이아이다. 프라이가 464쪽에서 밝힌, 아리스토텔레스가 섬긴 비극의 여섯 요소는 뮈토스, 에토스, 디아노이아, 멜로스, 렉시스lexis/言辭, 옵시스인데 천병희는 이것을 플롯, 성격, 사상, 노래, 조사措辭, 장경으로 옮기고 있다. 보다 확실하게 말하자면, 천병희는 그가 옮긴 {시학} 52쪽 본문 아래의 옮긴이 주註에서 "조사의 원어는 λεξιζ인데 대부분의 영역본에서는 diction으로 번역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구텐베르크 기획(http://www.gutenberg.net/)'에서 새뮤얼 버틀러Samuel Butler가 영어로 옮긴 Poetics를 찾아봐도 6장의 것은 "Third in order is Thought,--that is, the faculty of saying what is possible and pertinent in given circumstances. In the case of oratory, this is the function of the Political art and of the art of rhetoric"이라고 되어 있고 19장의 것은 "Concerning Thought, we may assume what is said in the Rhetoric, to which inquiry the subject more strictly belongs."라고 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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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를 읽지 않은 사람이 '서양 미술사'를 강의하는 것과 똑같은 경우를, 프라이의 "비평의 해부"를 읽지 않은 사람이 '비평 이론'을 강의하는 경우와 댈 수 있을까. 앞쪽의 경우가 좀 황당하게 여겨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뒤쪽의 경우도, 말하자면, 경우가 아닌 듯하다. 그럼에도, 과연 우리나라에 프라이의 이 저서를 잘 읽고, 잘 씹고, 잘 소화시킨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좀 의심스럽다.
비평 이론 같은 것을 가르칠 입장이 아니므로 참 다행이긴 한데, 어쨌든 소박하기 짝이 없는 독자임에도 나는 이 대저를 통틀어 세 번쯤은 넘봤었다. 그리고 그 중 한 번은, 통독에 성공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워낙 '비평'같은 걸 할 리가 없는 환경인만큼 당연히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며 무엇을 알았고 무엇이 기억에 저장되었는지 말하기가 참 어렵다. "어려웠다" "무척이나 어려웠다"는 기억만이 남아 있다고 할까. 덧붙여서, 그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쓴 프라이의 의도, 가 정말이지 얼마나 야심찬 것인가에 대하여 놀라고 한편 감명받기도 했다, 는 기억도 있다.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책을 두고서, "이 책을 읽지 못했으면서 비평을 논할 수는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말해도 된다는 얘길 어느 교수님에게서 들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물론), 힘겹게 더듬더듬이라도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 중에, "과연, 비평이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도 있기 때문. 역자인 임철규 교수도 역자의 말에서 "프라이의 책은 어쩌면 프라이처럼 박식하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을만큼 고도의 백과전서적 지식이 요구되는 책"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간만에 어려운 (그러나 진도가 나갈만큼씩의 이해는 시켜주는 어려움이다) 책을 읽으며 진빼고 싶은 독자라면 기꺼이 권하고 싶은 책. [인상깊은구절] 프라이의 문학이론은, 구조주의 이론을 공박하는 것과 똑같은 식으로 하나의 신화, 현실과 역사를 무시하는 낭만적 도피의 한 형식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역자가 그의 글을 옮기면서 다시 느낀 것은 문학장르의 이론에 있어서도 그만큼 체계적으로 논의를 전개시킨 글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 역서가 문학이론을 전공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이런 점에서도 값어치가 있으리라 본다. (역자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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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비평을 읽다보면 사회학적, 철학적 개념이 자주 등장합니다. 저 역시 그런 개념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서양 현대철학을 다루는 수업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문학은 철학과 사회학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까?'라는 질문이 내내 머릿속을 멤돌았습니다. 문학이 문학만으로 우뚝 서있을 자리는 없는 것인지, 조금은 침울한 마음으로 생각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것이 비평(과 문학)을 향해 수렴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 어쩐지 조금은 마음이 놓입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문학도인지라, 문학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니까요. 프라이의 책 『비평의 해부』는 제가 비평을 더 알고싶게 해주는 확실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비평이 단지, 소설 뒷 편에 달려있는 주석이 아니라는 것 역시 프라이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