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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리학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트롤리학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내용보기
우리는 이상적인 과학자 같은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이상적인 과학자는 완전히 초연한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는 방식은 "도덕적인 고려 사항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도덕적인 렌즈를 통해 세계를 본다. p.109아무 정보도 없이 제목만 읽게 되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사실 이 책은 트롤리학,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얘기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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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상적인 과학자 같은 역할을 하지는 못한다. 이상적인 과학자는 완전히 초연한 관점에서 세계를 이해하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이해하는 방식은 "도덕적인 고려 사항들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도덕적인 렌즈를 통해 세계를 본다. p.109

아무 정보도 없이 제목만 읽게 되면 당황스러울 수 있다.

사실 이 책은 트롤리학,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얘기로 끝까지 채워져있다.

<먼저 온 미래>에서 이 책에 대한 내용이 짧게 나왔는데 흥미를 끌어 읽게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선로 바꾸기에 대한 내용을 얕게라도 알 것이다.

트롤리가 달리고 있는 선로 위에는 5명의 사람이 누워있고 갈라진 다른 선로에는 1명의 사람이 누워있다.

그리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는 트롤리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레버 앞에 있다, 라는 가정 하에 나의 선택에 대한 문제이다.

그리고 뚱뚱한 남자는 이것이 변형된 사유 실험에 등장한다.

트롤리는 똑같이 5명의 사람이 누워있는 선로를 달린다.

하지만 이번에는 선로가 하나로, 대신 육교 위에 나와 뚱뚱한 남자가 있고 그의 무게라면 그를 밀어서 트롤리를 멈출 수 있다는 설정이다.

이 때 당신은 뚱보를 밀겠는가?

두 사유 실험 모두 5명을 살리기 위해 1명이 죽는다는건 다르지 않다.

하지만 놀랍게도 많은 사람들이 선로 바꾸기는 찬성하며 뚱보 밀기는 반대했다.

이는 '이중 효과의 원리(DDE)'로 이해할 수 있는데, 이것은 의도함과 예견함의 차이를 얘기한다.

첫 번째 사유 실험의 경우 한 사람이 죽을 것은 예견되어 있지만 의도하지 않았고, 두 번째 사유 실험의 경우 한 사람이 죽도록 의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루프선' 상황이 제시된다.

5명이 누워있는 선로와 뚱보 1명이 누워있는 선로, 대신 그 선로 둘은 돌아서 다시 이어져있다.

여기서 트롤리를 멈춰 사람 5명을 살리려면 단순히 선로만 바꾸면 되는 것이 아니라 뚱보의 죽음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선로를 바꾸는 것이 정당화 되는가, DDE와 충돌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앤스콤)은 어떤 행위가 한 가지 표현에서는 의도적이지만 다른 표현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처음으로 지적한 사람이다. 뚱보를 육교 아래로 추락하게 만든 사람의 행위는 "뚱보를 밀다"라는 표현에서는 의도적일 수 있지만, "그가 삼두근을 쭉 펴다"라는 표현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p.101

조지의 시나리오에서 윌리엄스는 공리주의가 인격의 고결함을 설명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중략) 그 철학자의 용어법에 따르면, 공리주의자는 '행위자'를 고려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공리주의자가 관심을 갖는 것은 무엇이 최선의 결과를 만드느냐이다. 그 결과를 누가 만드는가, 또는 그 결과가 어떻게 일어난 것인가 등에는 관심이 없다. (중략) 윌리엄스의 견해에 따르면, 공리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우주적인 관점"에서 행위를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실수를 저지른다. p.127


책은 이런식으로 계속해서 변형된 갖가지 트롤리 사유 실험들과 실제 도덕적 딜레마의 상황인 사건들에 반박에 반박을 더하며 수많은 철학자들까지 다룬다.

철학 초보인 나에게는 도덕적 딜레마라는 한가지 큰 주제로 묶어놓고 다양하게 읽을 수 있는 철학 모둠같은 이 책이 너무 재미있게 읽혔다.

칸트나 벤담 등 유명한 철학자들의 이론으로 해석해볼 수 있고 제시되는 다양한 논쟁거리들이 흥미로워 함께 쭉 고민하게 된다.

게다가 작가가 결코 글을 어렵게 쓰지 않았다.

전체적으로 글에 유머가 함께 느껴져 웃지 못할 어려운 주제에도 픽픽 웃으면서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다.

이런 책은 사두고 몇번씩 더 읽으며 주기적으로 머리속에 새롭게 담아보고 싶다.

d***a 2026.04.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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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꼭 읽어야 할 책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꼭 읽어야 할 책" 내용보기
다음 물음에 답해 보시오."제동장치가 고장 난 기관차가 돌진해 온다. 앞쪽에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철로에 묶여 있는데 당신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그들은 기차에 치여 죽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선로 조종기를 조작할 수 있다. 조종기를 돌리면 기차의 경로를 바꿔서 다른 선로로 보낼 수 있다. 그런데 그 선로 앞에는 한 사람이 묶여 있다. 기차의 선로를 바꾸게 되면 이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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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물음에 답해 보시오.




"제동장치가 고장 난 기관차가 돌진해 온다. 앞쪽에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철로에 묶여 있는데 당신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 그들은 기차에 치여 죽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은 선로 조종기를 조작할 수 있다. 조종기를 돌리면 기차의 경로를 바꿔서 다른 선로로 보낼 수 있다. 그런데 그 선로 앞에는 한 사람이 묶여 있다. 기차의 선로를 바꾸게 되면 이 한 사람이 죽는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것은 약 2년 전 마이클 샌델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가 큰 인기를 끌면서 한국의 대중들에게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물음일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이 트롤리(trolley: 시가전차) 문제를 첫 물음으로 자신의 강의 '정의 Justice'를 시작하기도 했다. 사실 마이클 샌델의 강의로 유명해진 문제이지만 이것을 처음으로 소개한 사람은 필리파 풋이라는 영국의 철학자이다. 이 책의 저자는 처음 트롤리 문제를 고안해 낸 철학자와 그 동료들을 소개하고 답하기 힘든 도덕적 딜레마를 다뤄왔던 인류의 역사를 압축해 설명해 준다.


사실 처음 트롤리 문제를 접하게 되면 도대체 어쩌란 말인지 답답함이 몰려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작위적인 설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 속에서도 그리고 현재 매일의 일상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우리의 도덕적 직관을 시험해 보고 우리가 가진 도덕 원리를 발달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물음에 대답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이와 같은 물음에 답하는 경험을 통해 얻는 직관과 원리들을 현실 세계의 문제에 실질적으로 적용할 수 있게 된다면 인류 사회에 유익이 될 것이다.


도덕적 딜레마 상황과 인간의 불완전한 반응


책에서는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 대한 우리의 반응을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누었다. 도덕적 의무와 당위를 강조하는 의무론과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공리주의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나 아퀴나스처럼 품성 혹은 덕에 초점을 맞추는 반응. 세 가지 모두 주장에 나름의 정당한 논거를 가지고 있으나 트롤리 문제를 처음 도입했던 필리파 풋은 결정을 내릴 때의 의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아퀴나스의 경우 살인일지라도 의도가 자기방어에 있었다면 그것은 도덕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고 하고 이것을 ‘이중 효과의 원리’라고 했다. 일면 수긍이되기는 하지만 이는 책임을 전가하거나 변명하려는 목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역사적으로 도덕적 딜레마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답을 구하려 해왔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도덕적 반응 혹은 선택이 문제를 조금만 바꾸어도 상당히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철학자들은 트롤리 문제에서 선로에 묶여 있는 다섯 명을 구하기 위해 철로 위에 있는 육교 위 뚱보를 밀어서 떨어뜨리겠는가?라고 변형시켰다. 이 경우엔 다섯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일지라도 한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잘못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우리는 공리주의처럼 일련의 규칙을 만들고 그것을 지켜보려 했지만 그 규칙들은 현실에서 빈번하게 충돌하는 것을 경험했다.


영국의 철학자 버나드 윌리웜스는 공리주의가 우리의 도덕적 삶의 다양한 본질을 담아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공리주의는 가끔씩 마주치는 자기 희생과 같은 인격의 고결함을 설명하지 못하고, 결과를 만들어 낸 행위자를 고려하지 않는다. 일상에선 우리가 한 일 뿐만이 아니라 하지 않은 일에도 책임을 질 때가 있다. 이에 존 롤스는 최소 수혜자에게 이득이 될 때에만 불평등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반성적 평형 개념을 도입해 공리주의에 수정을 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개념으로도 때때로 불안정하고 불합리한 우리의 직관을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약간의 조작만으로도 사람들에게서 다른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은 다양하게 변형된 트롤리 문제들을 통해서도 확인되었다. 또한 행동경제학 실험에서도 충동에 좌우되고 비 논리적이고 혼란스럽고 때론 어리석기까지 한 인간의 직관이 확인되어 왔다. 인간은 상황에 영향을 받아 비이성적으로 판단하기도 하는 것이다. 뇌에 관한 연구들을 통해서도 우리의 행위가 그리 합리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들이 확인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트롤리 문제와 같은 윤리적 판단에 우리 몸속의 특정한 호르몬 수치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들도 인간의 불완전성을 확인해 주었다. 


우리가 도덕적인 사고를 알고리즘으로 바꿀 수 있다면  인간의 실수 혹은 잘못된 선택들을 줄일 수 있을까? 그렇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감정의 분출로 인한 인간의 실수는 줄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어떤 도덕 규칙에 합의하고 그것을 따라야 하는 규율로 정하는지가 더 중요한 문제이다. 트롤리 문제에 답하려 하는 목적을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사유 실험을 통해 우리의 불완전한 반응을 이해하고 도덕성의 본성에 관해 무엇인가 알려줄 수 있는 원리를 도출해 내야 할 필요가 있다.


사유 실험을 현실의 문제에 적용해 본다면?


최근 제한적 자동운전 시스템을 탑재한 미국 테슬라 모터스의 차량이 자율주행 모드가 켜진 채 운행하던 중 트럭과 충돌해 운전자가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는 자동운전 시스템 운행 시 최초의 사망사고로 기록될 것 같다. 사고 소식을 전하는 여러 매체들에서 눈에 띄는 건 '운전자도 자동차도 빛이 비춰서 트럭을 인지하지 못했다'라는 표현이다. 제한적인 기능임에도 자동운전 혹은 자율주행 기능이 적용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말이 가능한 것이다.


기술발전 추세를 보면 과거 미국드라마 전격제트작전에서 만났던 키트와 같은 완전 자율주행자동차의 출현이 얼마 남지 않은 듯 하다. 완전 자율주행자동차가 일반 도로를 달리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사고 시 책임의 문제이다. 책임 여부를 물을 때 결국 자동차 운전 시스템을 어떻게 프로그램했는가의 문제가 핵심적인 이슈가 될 것이다. 특히 위험한 인명 사고 상황, 이를테면 횡단보도를 건너는 다섯사람을 피하기 위해 중앙선을 넘어 운행하는 선택 등의 판단을 해야할 상황에서 어떻게 운전되도록 할 것인가?


이젠 자율주행자동차나 인공지능 로봇 등에 적용되는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엔지니어들에게 윤리적 사고 혹은 사유 실험이 절실히 필요한 시대가 도래했다. 철학 영역에선 이와 같은 주제를 트롤리학이라는 이름으로 일찍이 다뤄왔었다. 철학이나 윤리학 등의 강의에선 단골 주제이기도 했던 문제가 이젠 그 고유한 영역을 벗어나 과학기술 분야 공학자들이 처절하게 다루어야 할 이슈가 된 듯 하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아래와 같이 묻는다. 이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지 함께 생각해 보면 좋겠다.


"지난 반세기 동안 트롤리학은 우리가 타인을 어떻게 대우해야 하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에 관한 결정적인 질문들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최근에는 전쟁에서 일어나는 행위들의 적법성을 생각하는 데에 트롤리와 비슷한 문제제기가 많이 등장한다. 뚱보의 문제는 의무론적 윤리학과 공리주의 윤리학의 극명한 충돌을 드러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리주의적 본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여전히 정답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육교 위의 뚱보가 처한 상황이 열쇠인 것만은 틀림 없다. 나는 그 뚱보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e*******7 2016.07.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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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한 선택도 당당하기 힘들다
"어떠한 선택도 당당하기 힘들다" 내용보기
저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 당신은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날씬한 다섯 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뚱뚱한 한 명을 희생시키겠는가. 차마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의 그런 결정이 다섯 명의 삶을 앗아간다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당신이 떨고 있다는 걸 난 안다. 스위치를 작동하는 일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쉽지만 제 아무리 강심장일지라도 떨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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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서 기적소리가 들려온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 당신은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날씬한 다섯 명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뚱뚱한 한 명을 희생시키겠는가. 차마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의 그런 결정이 다섯 명의 삶을 앗아간다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당신이 떨고 있다는 걸 난 안다. 스위치를 작동하는 일은 눈 감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쉽지만 제 아무리 강심장일지라도 떨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열차와 철로, 약간의 사람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설정이 이토록 큰 논란을 낳으리라고 어느 누가 예측이나 했겠는가. 1967년 옥스퍼드 리뷰 지에 처음 <지선spur>의 딜레마가 등장했을 때 눈여겨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을 것 같다. 불과 14쪽의 짧은 분량을 자랑(?)하는 논문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간단한 설정은 다양한 변주를 낳았다. 처음에는 그저 스위치를 눌러 제동장치가 고장 난 열차의 방향을 결정하는 선이었다. 물론 여기에서도 어떠한 관점을 취하느냐에 따라 선택은 달라지며, 특정 선택이 다른 선택보다 우월하다는 판단은 결코 성립하지가 않는다. 하지만 이후 가정들은 더욱 우리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었다. 사람을 적극적으로 떠밀어 기차 앞에 떨군 경우, 밀지는 않았으나 떨어지려는 사람을 막지 않아 기차 앞에 떨어진 경우, 후자라면 떨어지려는 걸 알았음에도 떨어지게끔 그냥 놔둔 경우와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는데 사람이 떨어진 경우 등. 이 다양한 경우들을 정당화하기 위헤 이름만으로도 고개를 끄덕일 법한 사상가들이 거론됐다. 토마스 아퀴나스에서부터 칸트, 벤담, 밀 등이 바로 그들이다. 과연 그들이 살아 있었더라면 이 문제에 엮이길 원했을까. 논쟁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야 할 이론적 토대들은 그러나 서로 너무도 다른 나머지 또 다른 논쟁을 불러일으킬 뿐이었다. 숱한 세월이 흐른 후인 지금까지도 우리는 어떠한 결정이 더 옳다는 식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으니, 어쩌면 이는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트롤리학trolleyology’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졌을 정도로 격렬했던 논쟁이 일어났던 이유는 현실과 동떨어진 듯한 설정이 실은 우리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한다. 철도에 매인 사람의 예처럼 극단적인 경우는 물론 없을 것이다. 허나 우리가 언제나 최선과 최악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진 않다는 점만큼은 어떠한 가치에 중요도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는 트롤리학과 닮은꼴이다. 대부분의 경우 최악을 피하기 위해서라며 차악을 선택하는데, 트롤리학의 설정에서도 그런 경우가 잦다. 결국 선택은 개개인이 어느 가치에 더 중점을 두는가에 의해 다분히 달라진다. 예외적으로 악이 허용되는 경우도 존재할 수 있다는 토마스 아퀴나스,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칸트,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라는 공리주의적 관점, 의도와 결과 사이의 어긋남을 주목하는 학자 등 학문적인 용어까지 떠올려가며 고심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겠지만 대학자들의 주장 중 하나를 택하듯 우린 심오하게 고르고 또 고른다.

과연 우리는 도덕적으로 떳떳할 수 있을까! 트롤리학의 설정을 고스란히 따를 경우 한 사람을 살리면 다른 한 사람은 죽는 운명의 장난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현실도 마찬가지다. 하나를 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만 하는데, 내가 택한 것에는 긍정적인 측면과 함께 부정적인 측면이 존재할 것이고 내가 버린 패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여전히 정답이 무어라 나는 말하지 못하겠다. 왠지 이 경우에는 모르는 게 약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존재하는 경우의 수를 아예 인지하지 못한다거나 내가 택한 안에 내포된 부정적인 측면을 전혀 보지 못한다면 시름시름 앓는 일도 없을 거 같다. 물론 몰랐다는 설명이 나의 비도덕적인 선택을 정당화시켜주진 않을 것이다. 사람은 어떠한 이유에서건 자신의 선택에 대해 책임을 져야만 한다. 물론 알고 적극적으로 행한 경우와 의도치 않았고 몰랐음에도 하다보니 그리 된 경우 간의 가중치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다시금 철로 위에 서 본다. 어린 시절 갖고 놀았던 열차 장난감처럼 세상 일이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본능적으로 ‘이거다’ 싶은 게 있어 택하고, 그 선택이 언제나 옳다면, 아니 언제나 옳을 순 없겠지만 적어도 그로 인해 누군가가 감당해야만 하는 희생의 무게가 치명적이지만 않았으면 싶다. 지나치게 겁을 먹은 것일 수도 있으나 지금 난 삶이 두렵다. 이제까지 별 생각 없이 해온 선택들이 앞으로 어떻게 나의 발목을 잡을지 걱정이고, 앞으로 해야만 하는 선택 앞에서 망설이다 적기를 놓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q*****2 2015.06.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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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내용보기
사유의 힘은 딜레마를 다루는 고민을 통해 강화된다. 트롤리학이라 부르는 윤리학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며 깨닫도록 돕는다. 어떤 답이든 지구상에 하나만 존재하란 법은 없다. 특히 철학적 사유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철도 위에 놓은 5명의 사람과 1명의 뚱뚱한 남자를 놓고 수치상으로 1명을 죽게 내버려두는 게 차라리 이득이라는 생각은 누구는 질책하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내용보기
사유의 힘은 딜레마를 다루는 고민을 통해 강화된다. 트롤리학이라 부르는 윤리학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며 깨닫도록 돕는다. 어떤 답이든 지구상에 하나만 존재하란 법은 없다. 특히 철학적 사유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철도 위에 놓은 5명의 사람과 1명의 뚱뚱한 남자를 놓고 수치상으로 1명을 죽게 내버려두는 게 차라리 이득이라는 생각은 누구는 질책하며 비판할 것이고, 누구는 현명하다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상황을 그저 받아들이기도 할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듦으로써 사유의 힘과 윤리학적 가치관을 명백히 바로 잡아주는 데 가치가 있다. 도덕심리학을 읽다보면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 만들어놓은 사상 체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칸트와 같은 분이 없었더라면, 물론 칸트 말고 다른 분이 마찬가지 의견을 세상에 제시했겠지만, 칸트가 등장하기 전의 시대로 가정했을 때는 종교라든가 관습에 의해 판단체계가 정립되었을 것이고, 이는 정의와 윤리에 가깝다기보다 당시 지도자의 사상과 입맛에 따를 뿐이다. 인류의 발전상을 다시금 되짚어볼 수 있는 여러 정황 중 도덕심리학의 등장은 무엇보다 큰 의미를 지닌 발전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인류가 윤리를 생각하고, 이를 생활속에 짚어넣었을 때 삶의 정화 혹은 안정적 사회가 기틀을 잡는다고 생각한다. 딜레마와 선택은 우리 삶을 온전히 지배하지만, 매번 비슷하거나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지는 않는다. 현 사회에서는 인간의 생명이 과거에 비해 중요성을 띠는 모습으로 변해 다행이지만, 여전히 세상 곳곳에서는 잔혹한 살해와 사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트롤리 윤리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삶의 본질, 도덕적 의미를 부수적 양심이 아닌 삶의 본질적 수단으로 삼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는다.이러한 책은 경험이 많은 시기에 읽을 수록 도움이 되는 바가 많다. 특히 유사 경험이 있거나 이러한 상황 놀이를 통해 자신의 본 모습, 혹은 얼마나 인간이 유약한 존재인지 스스로 확인해 겸손을 내재할 기회로독 매우 적합한 용도라고 할 수 있다. 정의와 도덕은 상당히 가깝다. 이 두 가지 중요한 사항을 항상 염두에 두고 다시 한 번 이 책을 읽어야겠다. 윤리의 일상화가 인류의 역사에 언제쯤 깃들지 예상하며..

 

p*******l 2015.02.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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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내용보기
우리나라에 마이클샌델 열풍이 불었을 때 <정의란 무엇인가?>를 열심히 읽었었다. 그 가운데 기차의 기관사에 관련된 딜레마가 나온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누구를 구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궁금했지만 읽어보진 않았는데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란 제목을 다시 보면서 후속편인지 궁금했는데 이 책도 같은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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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마이클샌델 열풍이 불었을 때 <정의란 무엇인가?>를 열심히 읽었었다. 그 가운데 기차의 기관사에 관련된 딜레마가 나온다. 얼마전 인터넷에서 <누구를 구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책을 보고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궁금했지만 읽어보진 않았는데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란 제목을 다시 보면서 후속편인지 궁금했는데 이 책도 같은 문제를 소재로 다루고 있는 책이란 걸 알게 되었다.

단순히 이 한 사건의 딜레마를 다루고 있는 책인지 알았지만 방대한 철학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철학자들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었다. 오래전에 읽었던 책들이나 사상가들이 머리 속을 스쳐지나가면서 한데 모였다가 흩어지는 느낌이었다.

도덕적 딜레마를 보면 그 해답을 내놓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뚱뚱한 남자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공리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 명을 희생해서라도 다섯 명을 살리는 것이 좀 더 그럴싸하게 들린다. 하지만 그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나는 칸트의 의무론적 입장을 좀 더 지지하는 편이다. 정말 칸트가 없었다면 오늘날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어떤 근거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할 수 있었을까 싶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이런 딜레마는 해답이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어떤 것이 옳은가 기준을 정해보려 하지만 모든 상황에서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란 어려운 것 같다. 주관주의처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답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뚱뚱한 남자를 죽여도 되는지 안 되는지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유 실험들을 통해 우리의 사고를 좀 더 다양하고 단단하게 할 수 있는지는 알게 된 것 같다. 도덕적 딜레마들을 접하면서 일관성 있는 나만의 기준을 만들고 그 해답을 찾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는데 이 책은 오히려 생각할 거리 들을 던져주면서도 다양한 도덕 철학들을 알려주고 있어 좋았던 것 같다.

d****h 2015.02.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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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롤리학이라고 들었는 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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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을 읽고 난 후의 나의 감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철학 교과서가 이 책이었다면 나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국사 같이 실존 인물, 역사를 다루는 과목을 좋아하면서도 철학에 흥미를 잃었던 이유는 단 다섯줄을 읽는데 사람 이름(그것도 아주 긴 이름)만 여덟 명이 나오는데 질려서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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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을 읽고 난 후의 나의 감상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철학 교과서가 이 책이었다면 나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국사 같이 실존 인물, 역사를 다루는 과목을 좋아하면서도 철학에 흥미를 잃었던 이유는 단 다섯줄을 읽는데 사람 이름(그것도 아주 긴 이름)만 여덟 명이 나오는데 질려서다. 나는 원래 사람 이름에 약하다. 물론 얼굴도 약하다. 얼굴과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해서 이런 사람을 요즘엔 ‘얼굴맨’이라고 부르는 명칭이 있는 걸 보면 나 같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데 위로를 삼는다. 그 이후 나이가 들어 하나둘 철학과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 나름 기본 수준의 상식을 갖추긴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고등학교 철학교과서가 내 스타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국사 교과서처럼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이 ‘이야기’에 담긴 반면 철학은 역사적 사실과 인물들이 똑같이 등장하지만 사상의 ‘나열’이었던 것이다. 원래 이야기를 좋아하는 내게 철학교과서는 재미없는 것이었다.

반면에 아주 재미있는 제목의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란 이 책은 아주 묘하다.

예전에 아주 감명 깊게 읽었던 <정의란 무엇인가>, <왜 도덕인가>를 생각나게 하는 책이면서 그보다 훨씬 재밌다가 어렵고, 그보다 훨씬 가볍다가 무겁고, 반대로 어렵다가 재밌고 무겁다가 가볍기도 하다.

무고한 다섯 명의 목숨과 뚱뚱한 한 남자의 목숨을 비교하는 문제가 여러 가지 스타일로 제시되며 독자에게 도덕적인 기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처음에는 그저 가볍게 답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어려웠다. 그리고 어느 순간 트롤리학이라고 한 분야가 되어버린 이 문제가 지난 세월만큼 앞으로도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시간에 많은 문제를 풀게 하는 수학시험보다 한 문제를 고찰하는 능력을 키워야 제대로 된 수학실력이라고 생각한다. 마찬가지로 철학교과서에서 학파와 철학자들 이름을 줄줄이 나열하는 것보다 수업 시간에 이런 책을 교재로 채택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에 이런 책으로 부족한 우리의 토론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싶다.

p******2 2015.02.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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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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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 이전에 책의 표지에 나온 이야기와 그림을 다룬 다른 책에 관심이 있다가 사정 때문에 보지 못하게 되면서 이후에 비슷하게 나온 이 책에 관심이 가게 된 것이다. 그 책도 이 책과 같은 주제를 다뤘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이 책은 그야말로 표지에 나온 이야기와 그림에다 '저 뚱뚱한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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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에 대한 사전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 이전에 책의 표지에 나온 이야기와 그림을 다룬 다른 책에 관심이 있다가 사정 때문에 보지 못하게 되면서 이후에 비슷하게 나온 이 책에 관심이 가게 된 것이다. 그 책도 이 책과 같은 주제를 다뤘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이 책은 그야말로 표지에 나온 이야기와 그림에다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이 가능한 도덕적 딜레마와 그 딜레마와 관련된 실화들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트롤리로 불리는 일종의 도덕적 딜레마에 빠지는 순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볼 수 있는 선택적 상황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는데,예를 들면 <다크나이트>에서 악당 조커가 배트맨과 검사 하비 덴트에게 여주인공과 일반사람들 중 한쪽을 구해야만 하는 딜레마를 주는 것과,<어벤져스>에서 초토화된 도시를 구하기 위해 일부의 희생이 필요한 상황에서 핵을 발사하는 상황의 딜레마 등 수많은 액션영화에서 이런 딜레마가 끊임없이 응용되고 있다. 이것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다수와 소수의 희생에 대한 싸움과 선을 위해서는 악을 행해야 할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선택을 다루고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책의 초반부는 이런 트롤리와 딜레마에 대한 설명을 통해 쉽게 이해시키려 하고 있는데,그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바로 철로에 묶여 있는 뚱뚱한 사람과 다섯 사람 사이에서 선택해야하는 딜레마다. 이 딜레마는 책을 읽어가면서 여러가지 상황들이 추가되면서 더 복잡하고 선택하기 까다로워지는 전개로 나타나는데,읽으면서도 이해되는 부분도 있었고 이해하기 쉽지 않을 만한 부분도 더러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 내가 이런 상황을 접해보지 않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중반부에 나온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에 조금씩 대입시켜본 것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이 쉽게 이해할 만한 책이 아닌데다가 자칫 이 딜레마와 관련 실험이 어떤 철학의 정의를 내리기 위한 가벼운 이미지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물론,철학이라는 분야가 우리가 쉽게 이해할 만한 분야도 아니고 책을 읽어도 완벽하지 않은 부분들이 많다는 약점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런 딜레마가 누군가의 한순간의 선택에 따라 이후의 상황과 결과가 결정될 수 있다는 것과 누군가가 이런 딜레마를 만들어놓고 정작 책임지지는 않고 그 책임을 그 딜레마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전가시키고 있다는 점은 이 딜레마가 과연 완벽하게 해결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만든다. 좀 더 쉬운 내용과 더 많은 실화들과 한 가지가 아닌 여러가지 딜레마 실험에 대한 내용을 실었더라면 이해가 빨리 되었을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 책이었다. 내 생각에 이런 딜레마는 현실에서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쉬운 해결책을 찾는 것은 힘들 것이다.

 

2015/2/21

l*****3 2015.02.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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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이란 무엇인가,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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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 옳고 그름에 대해서 쉬이 대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도덕적인 물음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쉽게 생각하고 설명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으나, 이 안의 트롤리 실험들을 마주하는 순간, 과연 무엇이 답이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로 한창을 머리를 굴리게 된다. 그저 답이 있는 문제라면 어떻게든 풀어가겠지만,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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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s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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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고 그름에 대해서 쉬이 대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도덕적인 물음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고 쉽게 생각하고 설명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으나, 이 안의 트롤리 실험들을 마주하는 순간, 과연 무엇이 답이고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들로 한창을 머리를 굴리게 된다. 그저 답이 있는 문제라면 어떻게든 풀어가겠지만, 아니 무조건 선택해야 하는 것이 그저 문제라면 안된다면 어느 것이든 찍어서라도 답을 고르겠지만 사람의 생명을 담보하여 답해야 하는 이 문제들은 쉬이 답을 할 수가 없게 된다.

이 책이 지나간 궤적을 따라 시체들이 즐비하고 핏자국이 흥건하게 남겨질 것이다. 본문 속에서 고통을 겪을 동물은 딱 한 마리뿐이지만 인간들은 많이 죽을 것이다. 그들은 대개 아무런 죄도 없이 기괴한 상황 속에 사로잡힌 희생자들이다. 어떤 거구의 남자는 육교에서 떠밀려 떨어질 수도 있고, 또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본문

도덕적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시체들이 즐비하고 핏자국이 흥건한 이 이야기들이 대체 필요할까.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느냐는 이 질문은 책을 펼치고 있는 내내 독자들을 따라오는 질문으로 트롤리를 멈추기 위해서 한 명의 사람을 죽여 다수의 사람을 구하느냐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이 상황을 방광하고서 바라만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게 되는데 하나의 답을 구했다 싶으면 또 다시 도래하는 질문은 과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물음이 계속되게 하고 있다.

딜레마라고 하기에는 가혹한, 꼭 누군가가 죽어야만 답이 나오는 이 문제들을 과연 풀어나가야만 할까, 라는 질문을 되내보기도 하지만 죽음을 기반으로 하지 않다고 한다면 이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는 것일까. 선로 위의 여섯 명의 남자와 병원 위의 여섯 명의 남자는 다르지 않을 운명 속에 있지만 그들에게 내리는 선택은 어찌하여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일까. 합리적이라는 인간인 우리는 어떤 선택들을 할 수 있고 그 선택의 기로에서 무엇을 고민하게 되는지에 그 다양한 이야기가 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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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 마이클 샌덜저

독서 기간 : 2015.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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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 2015.02.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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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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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덜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선로에 묶인 사람들과 한 사람의 뚱보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처음 들었다. 샌덜 교수의 책에서는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이야기를 했지만 과연 이 문제에 정답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현실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그저 사유적인 실험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실제 현실에서도 똑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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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덜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선로에 묶인 사람들과 한 사람의 뚱보 중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처음 들었다. 샌덜 교수의 책에서는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이야기를 했지만 과연 이 문제에 정답이 있을까 생각하면서, 현실적인 이야기라기보다는 그저 사유적인 실험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실제 현실에서도 똑같지는 않지만 이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의 두들버그 공습에 대처한 처칠의 결정, 2002년 독일에서 일어난 유괴 살인 사건 등이 있다.

 

책을 다 읽은 후에도 내 입장을 정확하게 정리하기가 어려웠다. 어떤 면에서는 다수를 위한 선택이 옳은 것 같기도 하고 다른 면에서는 그 어떤 논리도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물DDE(이중 효과의 원리)라는 측면에서 의도함과 예측함에 따른 결정이 분명히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견 이런 윤리적 사유가 정말 필요한 걸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트롤리 사유를 거부한 철학자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사유를 통해 한 가지 분명하게 느낀 것은 정의, 윤리, 선, 악, 가치의 순위 등 평상시에는 어쩌면 저 멀리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것들이 이런 사유를 통해 다시 수면으로 올라와 깊은 사유의 세계로 이끌어준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겐 정답이 아니라 답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r******3 2015.02.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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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리학, 도덕적 딜레마의 불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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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을 보면서 왜 이런 제목을 지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데이비드 에드먼즈의 책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이마)는 그런 궁금증과 부제로 나온 '당신이 피할 수 없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질문'이란 문구에 호기심이 발동해 읽기 시작했다. 머리말에서부터 접하게 되는 처음 듣는 말 '트롤리' 그게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 궁금증의 크기는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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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제목을 보면서 왜 이런 제목을 지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데이비드 에드먼즈의 책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이마)는 그런 궁금증과 부제로 나온 '당신이 피할 수 없는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질문'이란 문구에 호기심이 발동해 읽기 시작했다. 머리말에서부터 접하게 되는 처음 듣는 말 '트롤리' 그게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해 궁금증의 크기는 커져갔다. 하지만 1장과 2장을 읽으며 이 책에 전반적인 딜레마에 대해 감이 왔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이냐 소수를 위한 다수의 희생이냐에 대한 딜레마...영화에서 본다면 지구 종말 즈음 소수의 특권층만 자신들이 살아갈 공간을 마련하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들의 희소성에 때문이기에 이 문제들은 어떻게 그 문제를 다루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고장나 질주하는 전차(트롤리)로 인해 다섯 사람과 한 사람의 사이에서 누구를 살릴지에 대한 문제들은 난감함을 가져온다. 왜 제목이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인지는 책을 읽다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섯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이 올바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답하기 어렵다. 그와 관련하여 현실에서 있었던 문제들을 가져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중 효과의 원리', '삼중 효과의 원리' 등의 이론 또한 접하게 된다.

  만약 묶인 사람들 중 내가 아는 사람이 있다면 선택이 과감하며 다른 것을 생각 못하게 될지 모르나 모두 모르는 상태에서 다섯 사람과 한 사람의 목숨은 부담감을 준다.

  <지선> 문제에서는 다섯 사람과 한 사람 중 택하게 된다면 나 또한 소수를 희생할 것이다. 멀리 떨어져 있다면 말이다. 눈에 보일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다면 그 결론은 바뀔지도 모른다. 내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를 살리고 다섯명을 희생시킬지 모르겠다(어떻게 보면 아는 사람 축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책에서 나오는 <뚱보> 문제라면 나 또한 '뚱보'를 다리에서 밀지는 못한다. 그것은 정말 한 사람에게 내가 직접적인 해를 끼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보며 정말 다양한 트롤리 사례가 있음을 볼 수 있었다. 하나도 고민인데 그곳에서 파생된 상당수의 트롤리 사례들은 골치가 아프다. 하지만 현실에서 마주하게 된다면 아마도 소를 희생시키는 방법으로 실천을 하고 있지 않을까?

  책은 질문으로 끝을 맺는다.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저자와 같다. 트롤리학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그리고 갈수록 골머리를 썩게 됐다. 왜 이 문제에 대해 나 또한 놔버리고 싶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책은 역시나 이것저것 고민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나 또한 장담하긴 어렵다. 리뷰를 마무리 하며 트롤리학이 무엇인지 궁금한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우리가 알 것 같지만 또 다른 도덕적 딜레마로 가득한 책 『저 뚱뚱한 남자를 죽이겠습니까?』.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나는 책이었다.

a******s 2015.02.1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