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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만화책의 첫 장면은 <제5원소>와 판박이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높은 건물들 사이를 상하좌우로 날아다니는 소형 비행선들. 그 사이로 주인공 존 디풀이 마치 밀라 요요비치처럼 낙하한다. 이 만화책이 연재를 시작한 게 1980년이라고 하니, 이 책이 원조이고 <제5원소>가 아류인 셈이다. (뤽 베송이 단단히 영향을 받았구나 싶었는데, 책 말미의 설명을 보니 이 책의 만화가 뫼비우스가 영화 <제5원소>의 디자이너로 작업했다고 한다.)
존 디풀 일행과 대통령 복제 로봇의 결투를 마지막 순간까지 생중계하는 3D TV는, 이 만화 연재보다 10년쯤 후에나 벌어졌던 걸프전의 CNN중계를 미리 예견하는 듯하다. 전쟁의 생중계 자체가 전쟁의 전개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모습이 참으로 실제상황과 흡사하다. 여러모로 이 만화는 앞서가는 작품이다.
일본 만화나 국내 만화에 익숙해 있던 터라 이 작품에 쉽게 적응되지는 않는다. 공간과 배경묘사를 강조한 탓에 주인공들이 점으로 표현되는 장면도 많다. 이런 화면은 대형 스크린에서나 익숙한 화면이지, 만화책 속 종잇장 위에서는 상당히 낯설다. 때문에 극적인 긴장감이 좀 떨어져 재미는 덜 하다. 원색 일색의 알록달록한 색표현도 낯설긴 마찬가지다. 적당히 무채색을 섞어 색상을 좀 가라앉혀야 안심이 되는, 우리네 점잖은 색 취향때문일까? 책 속의 원색의 대행진때문에 읽다가 멀미를 날 지경이다.
그만큼 낯설다고는 하지만, 이 만화책이 심상치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앞서가는 감각이 보통이 아니다. 20년이 지난 후에 보아도 전혀 촌스러워 보이지 않는 상상력이라니! 만화 속 수많은 상징들도 예사롭지 않다. 피라미드니 남녀동체니 알이니 하는 상징들이 아주 새로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만화책 곳곳에 이러한 상징들이 자리잡고 있어 책의 주제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하고 있다. <잉칼 해설서>까지 책으로 나왔다고 하니 어디까지나 쉬운 책은 아니다.
그냥 재미로, 머리를 좀 쉬게 하고 싶어서 읽을 만화책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낯설기때문에 적응해가며 읽어야 하고, 다양한 상징들때문에 좀 머리를 굴려가며 읽어야 한다. 예술 일러스트레이션 수준의 훌륭한 그림을 감상까지 해가며 봐야하고.... 그런 점에서 한번 읽고 그만둘 책은 아니고, 적어도 두번은 읽어야 '응, 그렇구나'하고 고개가 끄덕여질 것 같다. (만원이 넘는 책값때문이라도, 한번 읽고 말기는 아깝다.)
1권의 마지막은 빛의 잉칼과 어둠의 잉칼이 합체하는 장면에서 끝을 맺는다. 바로 이 장면이 스토리작가 조도로프스키의 꿈에 나타났고 (두개의 피라미드가 얽혀진 다윗의 별 형태) 그 영상으로부터 잉칼이라는 만화가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벌써 2권이 기대된다. [인상깊은구절] 이게 문이에요! 지구의 중심으로 통하는 빛살의 원천! 각자 원의 둘레에 자리를 잡으세요. 문지기가 나에게 연락을 보내올 거예요. 문지기가 말하기를, 문을 여는 열쇠는 여러분 마음이 평화롭게 하나가 되는 것.... |
| 평소에 만화를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태어날 때부터 만화와 함께 살아왔으며 중, 고등학교때는 직업으로써의 만화가를 심각하게 고려해봤던 적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여전히 만화라면 즐기기도 하지만 약간 심각해져서 이것저것 따지게 된다. 대부분의 우리 나라의 만화를 즐기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라면 만화라면 으례히 일본 만화를 머리 속에 떠올릴 것이다. 나도 초등학교 때까지 보아왔던 한국만화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일본 만화에 넋을 잃었었다. 하지만 계속 읽다보니 일본만화에 대한 거부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내가 한국 사람 이여서 일본 문화를 싫어한다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계속 보던 가운데 세상에 일본만화만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일본 외에도 분명 만화는 존재하고 그 만화들이 모두 시사 만화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이나 다른 국가에도 시사만화가 아닌 뭔가 색다르고 재미있는 만화가 존재하리라는 생각은 맞아 떨어졌다. 물론 일본은 만화왕국이라 불릴 만큼 그 출판량이 대단하지만 미국이나 프랑스에서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매체에서 접하게 되었고 그 중 하나가 바로 내가 리뷰를 쓰는 '잉칼'이다. 그린 이 뫼비우스는 미국 만화 잡지 '헤비메탈'의 원조가 되는 '메탈 위를랑'에서 활약하는 프랑스에서 아주 유명한 작가로 알고 있다. 나는 외국서적을 많이 취급하는 헌 책방에서 한때 '헤비메탈'을 수집하고 다녔었다. 그런 가운데 양키들한테도 이런 만화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헤비 메탈에서는 역시 원조가 되는 잡지인지라 뫼비우스에 대한 언급이 많았고 나는 뫼비우스의 그림이 매우 궁금해졌다. 글쓴 이 조도로포스키는 사실 영화감독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yes24에서 '잉칼'을 검색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잉칼'의 스토리 작가가 조도로포스키라는 것을 알았다. 한때 영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을 때 컬트 감독으로서의 조도로포스키의 이름은 익히 줏어 듣고 있었다. '엘포토'나 '성스러운 피' 그리고 아깝게 데이비드 린치에게 넘어간 '듄(국내 비디오 출시 제목 '사구'로 원작은 SF 소설의 대작이다.)'으로 유명한 그 조도로포스키가 만화 스토리를 썼다니... 놀라 자빠질 만한 일이었다. 나는 아직도 조도로포스키의 듄 프로젝트를 잊지 못한다. 에일리언과 프레데터 스피시즈의 디자인으로 유명한 H.R 기거의 화집 네크로노미콘에서 보았던 그 엄청난 청사진들은 만약 조도로포스키가 듄을 감독했더라면 어떤 괴작(걸작이 아니다. 괴물같은 작품)이 되었을까 하는 긍정적인지 부정적인지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는 모호하지만 압도된 그런 감정을 느꼈다. 그런데 이 '잉칼'이 그 드림팀이 모여 만든 만화책이라는 것을 비로소 yes24에서 검색해본 결과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조도로포스키의 스토리와 뫼비우스의 그림이 궁금해서라도 주문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리뷰로 들어가보자. 우선 이 만화책은 어느 정도 자신이 일본만화에 좀 염증이 난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는 신선한 충격일 수 있다. 그러나 유럽, 프랑스 만화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만약 우리나라나 일본만화에 익숙한 독자가 이런 종류의 만화를 보게 되면 충분히 생소함을 느낄 수 있다. 몇가지 특징을 들자면 우선 우리가 보아오던 여느 만화와는 달리 올 칼라에 칸나누기에 있어서 한 칸에 보다 많은 사실과 함축적인 정보를 제공하려 하기 때문에 인물의 행동이 중심이 되는 일본만화에 비해 보다 더욱 소설적인 특색을 갖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그림이 섬세하고 배경의 스케일이 크다. 하지만 일본만화가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고 등장인물들의 동작에 촛점을 맞춰 화면 가득히 인물들을 담는 다면 잉칼은 카메라를 멀리 떨어뜨려 동작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을 강조한다. 일본 만화에 비해 박진감이 약간 떨어지는 감이 있다. 이것은 취향의 차이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훌륭하고 어느 쪽이 아니라고 말 할 수 없다. 이야기의 진행에 있어서도 여느 일본만화는 선악의 확실한 대비 가운데 잘생긴 주인공의 멋진 액션을 강조하는데 비해 잉칼은 약간은 추레한 주인공에 멋진 액션도 없다. 하지만 잉칼에는 단순한 여느 만화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가지 환상적 상징체계들을 통해 단지 만화 그 이상의 것을 표현하려 애쓴다. 이런 시도는 내가 봐왔던 만화들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것이었다. 만약 기존의 여느 만화들에 지친 누군가가 뭔가 색다르고 신선한 충격을 원한다면 프랑스 만화 특히 '잉칼'은 그 요구에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취향에 따라 약간 이질적일 수 있다는 것 역시 말해두는 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