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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고 리뷰를 쓰는 내 마음이 아주 꺼림칙할 때. 별로 와 닿지 않고, 그런데도 뭐라고 기록을 남겨 놓기는 해야겠고, 안 좋은 이유를 굳이 밝히자니 개인적 취향일 것이라 작가에 대한 예의는 아닌 것 같고. 특히나 이 작가의 초기 작품들을 좋아했던 터라 시간이 흘러간 것만 애매하게 원망한다. 무엇보다 낯설었던 것은 한자를 넣었다는 점이다. 많아 보이지는 않는데 꼭꼭 들어 있다. 마치 그 한자에 집중해 달라는 듯이. 나로서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읽기가 아주 성가셨는데. 이 구절에서 이 한자를 꼭 써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시 전체를 못 보고 한자에 매달려 시를 낭비했다. 시간도 낭비했다. 몇몇 글에서는 눈길이 멎곤 했다. 내가 왜 멈추고 있는가 살펴보니 한자 없이 우리말만으로도 충분한 시들에서였다. 얼핏 예전에 느꼈을 좋은 감정들이 떠오르는 듯도 했다. 얼룩말을 위하여, 통유리창, 도라지꽃 피는 계절, 메주. 4편을 건지는구나. 시집을 다시 펼쳐야만 읽을 수 있도록 메모는 남기지 않는다. 일생을 한결같기란 어렵겠구나, 글에서는 더더욱. 어느 쪽이 나아지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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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만들어 낸 비밀스러운 공간이자 이상향을 우리는 세계관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어떤 작가이든 자기가 만든 개성이 진하게 묻어 있는 세계관을 정립하고 있고 이를 작품에 투영함으로써 독자들은 흥미를 느끼게 되고 작가의 말들을 글을 통에 경청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번에 읽은 박라연 시인의 시집, 공중 속의 내 정원은 작가가 만든 이상적인 공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시집이었습니다. 어떤 시인이든 간에 자신이 꿈꿔오는 이상적인 것들이 있을 것이고 그것을 물리적으로 시 안에서 표현한 것이 세계관이라 생각하는데, 이번 공중 속의 내 정원 시집은 너무나 명확하게 그것이 드러나 있어 아주 흥미로운 기분으로 시들을 읽어 나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공간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시에서는 금기시되어 있는 부분인데 이런 부분을 건드리고 깨부수어 버리는 점에서 무척 인상적이었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공중 속의 내 정원에 실린 시들은 대부분 이런 시인의 생각들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들이라 한 편 한 편이 모두 인상적으로 읽을 수 있었고 작품집 한 권을 무척 알차게 읽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좋은 시집으로 공중 속의 내 정원은 기억에 남을 것이고 시인 박라연의 앞으로의 활동이 더욱 기대되게 만드는 시집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