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문한 책을 받아보고 일단 생각보다 컴팩트한 사이즈에 놀랐습니다. 딱 휴대용으로도 좋네요. 비평이 어떤 장르인지, 어떻게 글을 쓰는지 알고싶었는데 우연히 이 책이 눈에 들어와 주문했어요. 전형적인 이론서의 설명방식은 아니네요. 사실 처음부터 그런접근은 부담스러운데 비평에 대한 친절한 안내서의 역할이라고 보면 좋을 듯 합니다. |
| 단순한 감상을 넘어, 내 생각을 명확한 문장으로 다듬는 비평의 손맛을 일깨워주는 친절한 가이드북입니다. 소설이나 영화를 보고 "재밌다"는 한마디 뒤에 숨은 나만의 사유를 어떻게 분석하고 설계할지 기초부터 차근차근 짚어주네요. 어렵게만 느껴졌던 비평을 작품과 깊게 소통하는 즐거운 놀이로 바꿔주어, 콘텐츠를 소비하는 독자에서 생산적인 창작자로 거듭나고 싶은 분들께 훌륭한 입문서가 될 것입니다. |
|
인터넷과 같은 공간에서 글을 쓰거나 읽다 보면, 종종 이런 경우를 겪는다. "이 작품이 너무 너무 좋은데,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그냥 좋다는 말만 하는 바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너무나도 좋은 작품을 접하게 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런 상태에 빠진다. 근래에는 조은영 작가의 웹툰 <저궤도인간>을 읽어나가면서, "좋다, 이거 정말 좋다. 근데 도대체 어떻게 이 감정을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중얼대며 스스로에게 자괴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자신의 안에서 분출하는 작품에 관한 애정을 표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을 찾았다. 기타무라 사에의 『처음 시작하는 비평 수업』이다. "처음 시작하는 OO 수업"과 같은 제목을 달고 있는 책들은 그 제목과 다르게 입문서로써의 역할에 실패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특히나 철학 같은 경우에는 한 철학자나 특정 사상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입문서가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발간되고 있다. 다루려는 내용 자체가 원체 어려운 탓이다. 하지만 기타무라 사에의 『처음 시작하는 비평 수업』은 다행히도 이름값을 넉넉히 해내는 책이다. 작가 본인의 전공 분야인 "셰익스피어"의 희곡과 연극을 중심으로 무하마드 알리의 명언인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를 비롯해, 각종 대중음악 가사, 그리고 크리스토퍼 놀란과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마션>, <어벤저스>, <미드 소마> 등 정말 폭넓게 소재를 선택하여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기타무라 사에는 비평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한다. 그럼 비평이란 무엇을 하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양하고도 복잡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간략히 정리하면 작품을 한 번 본 것만으로는 단번에 알기 어려운 숨겨진 의미를 끌어내는 것(해석)과 그 작품에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떤 수준인지를 판단하는 것(평가)이 비평이 성취해야 할 가장 큰 역할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 하에서 기타무라 사에는 크게 네 가지 단계로 나눠 비평쓰기에 접근한다. 1. 정독하기 1. 정독하기 비평가는 탐정이며, 텍스트는 범죄 현장입니다. 기타무라 사에는 본격적인 비평의 준비 단계로 '정독'의 중요성에 대해 설파한다. 우리는 흔히 마음에 쏙 드는 소설이나 문구를 읽게 되면, 이런 표현을 한다. "활자 하나 하나를 핥아먹는 심정으로 읽었다." 이보다 정독의 속살을 드러내는 표현은 찾기 어렵다. 이와 같은 자세는 완전 범죄 현장을 마주한 셜록 홈즈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셜록 홈즈가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탐정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 이유는 다름 아니라 누구보다도 예리한 관찰력 때문이다. 아주 작은 단서들을 찾아내고, 이를 조합해서 사건의 진상을 완성해낸다. 비평의 과정도 유사하다. 그 시작점이 바로 '정독'인 것이다. 그렇다면, 단순히 '샅샅히 읽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일까? 위에 인용한 켄달 월튼은 허구란 참가자가 '상상하도록 지시된 규칙'에 따라 행하는 '믿는 체하기 게임'이라고 규정합니다.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나 독자에게 들어오는 순간, 해석은 온전히 읽는/감상하는 사람의 몫이다. 그러나 이 해석이라는 게임에도 최소한의 규칙은 존재한다. "선해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해(善解, Charitable reading)'란 저자의 의도나 텍스트의 의미를 최대한 긍정적이고, 합리적이며, 타당하게 해석하려는 태도다. 마찬가지로 '관용의 원칙(Principle of Charity)'이 있다. 타인의 주장, 논증, 혹은 예술 작품을 해석할 때 가장 합리적이고 강하며, 진실에 가까운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방법론적 태도를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작가의 의도를 곡해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명확한 잘못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이와 같은 이해 부족은 대개 얕은 해석으로밖에 이어지지 않습니다. 독자는 작가의 텍스트 사이에서 비어있는 공간을 임의로 해석해낼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러가지 해석 중 최악의 것들을 소거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최선의 것을 작가의 의도로 짐작해야 한다. 예를 들어본다면, 소설이나 영화에서 특정 범죄 행위가 나오는 경우, 작가가 그 행위 자체를 정당화하려 한다는 식의 단편적인 해석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해의 원칙에 발을 딛고서야 롤랑 바르트가 말했던 것처럼 작가를 죽일 수 있다. 우선 작가를 죽이자. 자유로운 해석의 지평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작가의 의도는 잠시 제쳐둘 필요가 있다는 조언이다. 기타무라 사에는 이에 덧붙인다. 작가를 죽이더라도 역사적 배경마저 죽이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작품은 필연적으로 발표된 시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고, 중요하게 여겨지는 의식과 주제들을 담는다. 때로는 그런 내용물들이 구태의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낡고 오래된 것이라며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가까운 예로, 故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예로 들어보자. 1970년 대, 대한민국은 급격한 경제 성장기에서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한강의 기적이 비추는 빛은 필연적으로 도시에 소시민, 빈민이라는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도시 재개발을 겪으면서 소외된 사람들의 삶을 세밀하게 그려낸 소설이 바로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그러나 2020년대의 시선으로 이 소설을 읽는다면, 큰 감흥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 당시 사회상의 공기가 피부에 와닿지도 않을 뿐더러, 그때의 대한민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너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아직도 사람들에게 팔리고 읽히는 소설이다. 단지 시대가 변해감에 따라 그 영향력이 줄었을 뿐이다. 2. 분석하기 비평 이론을 극히 단순하게 말하자면 작품 독해라는 게임에서 승리하는 법을 찾는 전략을 정하는 이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2부 분석하기에서 기타무라 사에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기"를 권한다. 비평이란 쉽게 말해, 작품을 독해하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76쪽)이므로, 이전에 존재했던 많은 거인들이 해온 방법을 차용하라는 조언이다. 작가주의 비평, 포스트식민주의 비평, 퀴어 비평, 형식주의 비평, 마르크스주의 비평 등 다양한 비평의 방법론이 있다. 하지만 단 하나의 방법론이 모든 작품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비평에 있어서 최종 이론은 없다. 아직까지 없는 것이지만,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권의 책을 읽은 독자가 100명이라면, 비평은 100개가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 좀 더 실천적인 방안으론, 우선 작품 내의 사건들을 시간 순서로 정리해 "타임라인"을 만들어보라고 말한다. 또는 가브리엘 마르케스나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는 독자들이 자주 사용하는 것처럼, 가계도를 만들어 정리하는 것도 하나의 분석 방법이 될 수 있다. 결국 비평은 일종의 해부와 같다. 우선 정독을 통해 작품을 이루는 요소를 낱낱히 파악한다. 그 뒤에, 타임라인 정리, 모티 찾기 등을 통해 요소들을 하나하나 분해해본다. 그렇게 하면, 각각의 장치들이 작품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그 장치들이 작품 외적인 문화, 역사적 흐름 속에 무슨 의미를 갖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3. 쓰기, 그리고 4. 실천 / 커뮤니티 만들기 쓰기에 이르러서, 기타무라 사에는 단 한 가지 포인트를 확실하게 선정하라고 조언한다. 물론 좋은 작품은 언제나 다채로운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비평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면, 그러한 요소들은 때로는 장애물이 된다. 감정과 생각이 머릿속을 부유할 때, 그것들은 사고의 흐름에 따라 제각각 흩뜨러지기 마련이다. 이를 가지런히 묶어놓을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그 기준을 정하라는 뜻이다. 2장 분석하기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미 구축된 비평의 이론들을 준거로 삼을 수도 있으며, 작가가 자주 차용하는 모티브를 중심으로 비평을 전개해나갈 수도 있다. 또한 비평의 기준점이 작품 외적인 '성공 가치'냐, 아니면 독자 개개인에 대한 '수용 가치'냐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성공 가치'로는 높게 평가하기 어렵지만, 어찌하지 못하고 마음이 끌려버리는 작품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 마음에 들지 않는 면이 아무리 많더라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가 존재하며, 그 반대도 있습니다. 이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사랑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냉정히 생각해봅시다. 개인적인 견해를 밝히자면, 하나의 비평은 쓰여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미 작가의 가치 판단을 거친 것이다. 대체로 그저 그런 작품엔 '시간과 공'을 들여서 비평하고 싶어지지 않는다. 나아가 형편없는 작품도 마찬가지다. 헐뜯을 수밖에 없는 작품에 대해 귀한 시간을 낭비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시니컬한 평론가들은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기도 한다. 또는 너무나 형편없어서 시간을 써서라도 낙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을 수도 있다.) 결국, 누군가에 의해 거론되는 작품은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한 번의 인증을 받은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평에 있어서 '성공가치'보다는 '수용 가치'가 그 탄생의 뿌리라고 생각한다. (안일하게도, 대부분의 비평이 이러한 마음에서 쓰여진다고 믿는다.) 따라서, 많은 경우 하나의 작품에 비슷한 열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교환하게 된다. 개중엔 치열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겠고, 서로의 감상에 공감을 표시하기도 할 것이다. 여기서 생산된 의견들은 작가에게 전달될 수도 있고, 결국 작가와 향후 작품에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간략한 예로, 기타무라 사에는 『처음 시작하는 비평 수업』 말미에 자신의 제자와 함께 같은 작품을 감상하고 적은 비평을 서로 합평하는 대목을 수록해두었다. 이 부분은 특히 눈여겨 볼만 하다. 비평을 비평하는 메타 비평 역시 재밌지만, 중요한 것은 기본적으로 비평은 읽히기 위해 쓰는 글이고 동시에 주장하는 글인 까닭이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읽히는지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그 글은 그저 독후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남의 시선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글이 잘 읽히는가, 어색한가를 따져보아야 한다는 것이지, 내 주장이 다 옳은지, 맞는지를 적극적으로 검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검열을 하기 시작한다면, 아무 것도 쓸 수 없다. "내가 무슨 글이야.", "내가 무슨 비평이야.", 라는 마음에 좌절하고 만다. 결국 내 안에 솟구치는 즐거움과 기쁨에 아무런 이름도 붙여주지 못하고 흘러가게 만든다. 적을 수 있는 말은, 고작해야 "너무 좋아요." 뿐이다. 과연 그런가? 당신의 마음이 그저 그 다섯 글자로 표현될 수 있는가? 한 번 진지하게 물어보자. 혹여라도 아니라는 대답이 들려온다면, 적어나가기 시작하자. 미리 앞서 걱정하지 말자. 다행하게도 우리의 친절한 선생 기타무라 사에는 미리 이런 냉정하면서도 따뜻한 조언을 적어두었다. 어차피 비평가가 사랑을 받는 일 따위 결단코 없으므로, 그냥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 좋습니다. 다른 사람이 기뻐할 만한 비평이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쓰고 싶은 것을 쓰세요. 이 말에 의지해 나도 이 서평을 적었다. 그러니 만약 당신이 무척 감동을 받은 작품 앞에서 아래와 같은 말밖에 하지 못해 당혹스러웠다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당신의 감동에 수많은 이유와 이름이 생겨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 작품이 너무 너무 좋은데, 도저히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그냥 좋다는 말만 하는 바보가 되고 말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