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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나를 죽이지 마세요..]
주인공 숀은 14세의 소년이다. 기억력이 가히 천재적 수준이며, 사물을 보고 관찰하는
예전에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나 큰 수술후 깨어나지 못하는 환자,치매등의 병으로 눈만
이런 아버지를 비정하다고 비판 할 수도 있을것이다.
이책을 읽으며.. 이제 장애인들은 한 가족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이며 모두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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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굉장히 자극적인 책 한 권을 만났다. 우리 아이가 책 제목을 보더니 "엄마, 아빠가 애를 왜 죽여?" 라고 묻는다. "글쎄, 엄마도 안 읽어봐서 아직 잘 모르겠어." 책을 읽기 전에 제목만 보고는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인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책을 읽어 나가다보니 어느 근육 하나 맘대로 조절할 수 없는 뇌성마비 아이의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그제야 안락사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겠구나 하고 직감했다. 그렇다. 우리가 도저히 갈피를 잡을 수 없고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 누구도 안락사가 환자를 위한 일인지 아닌지 판가름 할 수 없다. 안락사란 신의 영역을 인간이 함부로 침범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우리 이모에겐 아들이 둘이 있었다. 나에게는 이종 사촌이 되는 이모의 작은 아들이 오래전에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되어버렸다. 오랜 시간 병원에 입원해 있었지만 더 이상 병원에 있을 필요성을 못 느껴 환자용 침대와 필요한 모든 의료 기구를 집으로 들여 퇴원을 시켰다. 아들이 그렇게 된 후 이모는 꼼짝없이 묶인 신세가 되어 버렸다. 수년을 그렇게 보내셨다. 가끔 우리 엄마가 이모 밥이라도 해드린다고 며칠씩 다녀오시곤 했다. 어느 날 엄마께서 “이제는 사람보도 웃기도 해.”라는 말씀을 하셨다. 그 한마디에 이종 사촌 동생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었다. 전혀 미동도 없다가 많이 호전되어 상대가 하는 말에 반응을 보이기도 하는 것이었다. 어른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걱정은 “엄마가 더 오래 살아야 할텐데...”라는 것이었다. 지금은 다행이라 표현해도 될까 모르겠지만 사촌 동생은 몇 해 전에 하늘나라로 떠났다. 이모의 제일 큰 걱정이 덜어진 것이다. 그 누가 자식을 가슴에 묻고 싶어 하랴만은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가슴이 아파도 마음이 편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더 가슴이 아프다.
내가 우리 이모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듯 이 책에서도 뇌성마비 아이인 ‘숀’ 가족의 고통을 보여주고 있다. 겪어보지 않은 우리들은 그들의 상황을 그들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로 생각해 버리고 고개를 돌린 후 그들의 고통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해 본적이 없는 것 같다. 나의 경우 우리 이모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이 책은 열린 결말로 끝맺음을 했다. 아마 작가 자신도 신의 영역에 결정권을 가지지 못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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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증 장애를 앓는 아이라고 부모가 덜 사랑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힘들다. 아이도 힘겨운 몸짓으로 계속되는 발작을 견뎌낸다. 경제적인 부담도 이루 말할 수 없고, 부모들은 이혼하기에 이른다. 다른 형제들은 상대적으로 방치되고 만다. 이 가족에게 사랑이 남아있을까.
그래도, 사랑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다소 위험한 방안을 꺼내든다. 아이가 갑갑한 몸뚱이 안에 갇혀있으면서 고통 받는 상황을 끝내는 것이 사랑인지도 모른다고. 그것이 부모가 진정으로 해 주어야 하는 보살핌이라고. 위험하고 끔찍한 주제이지만 이 책은 열네살 사춘기 소년의 발랄함으로, 하지만 중증 장애인이니 그 말이나 생각을 밖의 사람들에 하나도 전달하지 못하는 비극을 그리고 있다. 이 소년이 끝까지 애타게 부르짖(고자 노력하)는 말은 제목 그대로다.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는 아이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많은 것들에 미련이 없을 수 없다. 그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이유로 참고 견딘다. 하지만 정작 가장 무거운 짐을 진건, 당사자. 그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
답은 없다. 아무도 모른다. 저자는 션 같은 장애아를 아들로 두었기에 잔인한 이런 상황의 글을 쓸 수 있었을 게다. 그리고 전혀 알 수 없었을 아들의 눈으로 무력한 아버지인 자신의 모습을 그렸을 게다. 감동의 인간 승리 이야기가 절대 아닌데, 읽다보면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내 자신의 부모된 마음을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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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열 네 살 소년, 그러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음식을 먹는 일도 삼키는 반사에 맡기며 눈을 깜빡이는 일은 물론이고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게다가 하루에도 몇 번씩 지독한 발작 상황을 치러내야 한다. 한 마디도 알아듣지도 못하는 지능 1.2의 열네 살 아들이 있다. 삼키는 것보다 흘리는 것이 많은 아들이며 날마다 기저귀를 갈아 주어야 하며 파리 한 마리가 붙어도 꼼짝 못할 수 밖에 없는 아들이지만 이중관절인 엄지 손가락이 아빠를 그대로 닮았다. 아무도 모르는 일들이지만 나는 보고 들은 내용을 모조리 기억하는 천재다. 그런데 10년 전 나 때문에 이혼까지 했던 아빠가 나를 죽이려 한다. 어떻게 해서든 아빠에게 전해야 한다.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 발작을 겪는 아들의 모습은 고통 자체이다. 그렇다면 숀은 날마다 고통의 일상을 넘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죽고 싶다는 말 한마디 할 수 없다. 그의 삶에도 행복이 있을까? 아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다. 나는 발작할 때 유일하게 자유롭다. 갇혀 있던 나로부터 탈출하여 바깥 세계를 경험하는 가장 황홀한 순간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희대의 살인범과 인터뷰를 했다.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살인마였다.아들을 죽인 아빠였지만 그는 사랑하기 때문에 한 일이었다고, 아들의 고통을 끊어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평화로운 아들을 보았다고 했다. 오늘은 아빠와 내가 단 둘이 밤을 지내야 하는 날이다. 오래전부터 아빠의 계획을 알고 있던 나는 마음이 급하다. “아들아, ,,,,,,, 사랑한다” 라고 말하는 아빠의 두 눈이 눈물로 젖었다. 나도 내 속 가장 깊은 곳에서 끌어낸 말로 답변해야 한다. “저도 사랑해요, 아빠” 안락사와 존엄사가 이슈가 되면서 죽음도 선택될 수 있는 벼랑 위에 섰다. 단숨에 읽고 말았지만 오래도록 고민하게 만들었다. 극한의 장애를 입은 당사자나 그 가족이 겪을 고통이 너무도 생생하여 내 깊은 곳까지 울리도록 하였다. 작가 스스로도 아무도 답을 알 수 없는 이야기라 하였지만 숀과 같은 아들을 실제로 두고 있는 작가 내면의 깊은 사랑을 보았다. 정답이 없지만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일은 여러 가지 답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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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이를 사랑하고 싶지 않은 부모는 없습니다.” “나쁜 부모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인공 숀의 아빠가 토크쇼에 나가서 한 말인데, 이 말이 이렇게 슬프게 들릴 수가 없다.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나려고 하는 걸 꾹 참았다. 누구도 쉽게 답을 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해서, 그렇기 때문에 외면하려고만 했던 문제에 대해서 한번쯤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일러주는 책인 것 같다.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아이와 그들의 가족, 또 사랑하기 때문에 감행하려하는 안락사에 대한 소설이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화자는 뇌성마비 장애아인 숀이다. 신체의 어느 한부분도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숀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장애를 가진 육체 속에 여느 또래 아이들과 다름없는 맑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아이다. 숀은 자신의 감정이나 의지를 밖으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부모님과 누나, 형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입을 통해 울림이 전달되지 않는다. 그래도 숀은 사랑한다고 외친다. 영혼을 통해서 그들에게 고맙다고 외친다. 들을 수 없고 표현할 수 없지만 주위의 모든 이들과 모든 것들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외친다. 숀의 입장에서 생각하니 표현할 수 없어서 안타깝고 슬프다. 또 숀의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도 알아들을 수 없어서 안타깝고 슬프다.
또한 책의 작가 테리 트루먼씨도 똑같은 뇌성마비 장애아를 둔 부모라는 점에서 또 한 번 가슴이 아려왔다. 책을 쓰면서 느꼈을 작가의 복잡한 심정이 읽는 독자에게도 전달되는 듯하다.
임신기간 내내 나를 불안하게 하고 가끔 악몽을 꾸게 한 것이 바로 아이의 건강여부다. 티비에서 또는 주위에서 바라본 장애아를 키우는 부모들의 힘겨움을 알기에, 제발 건강하게만 태어나 달라고 매일 기도를 드렸었다. 모든 부모들의 기도가 나와 같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의 입장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안락사에 대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 못하는 장애아의 고통을, 그리고 지금 나의 상황을 정리해본다. 생각할수록 고개가 숙여지고, 건강하게 태어나주고 자라주는 딸아이에게 저절로 감사의 말이 나온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는 독서였다. 기회가 된다면 모두에게 읽어보라고 권해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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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를 봤을 때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제목이었다. 상당히 자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제목이 성인 문학도 아닌 청소년 문학의 제목으로 사용되었으니 눈에 띌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목 때문에 아이들 특히 남학생들이 꽤 많이 읽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자주 발견하게 되는 책이어도 책을 손에 잡아보지 못하고 지나다가 오늘 이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눈에 들어보았다.
담쟁이 같은 덩쿨 식물의 잎으로 보이는 나뭇잎들이 한 사람의 형상을 갖추고 있는 하지만 머리 부분에서 잎이 날리고 파랑새가 날아가는 표지를 보면서 약간 의아했다. 제목을 보고 이 책이 반항하는 청소년과 부모간의 갈등을 그리고 있는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표지 디자인이 따뜻하고 희망적이다? 혹시 해피엔딩을 암시하나?
책을 읽을 때의 습관대로 뒷표지를 보았다. '몸 안에 갇힌 숨겨진 천재 이야기'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그리고 이 책이 반항아가 아닌 천재이지만 중증 장애인인 한 소년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순간 작년에 읽었던 <나의 마음을 들어줘>가 생각났다. 그 책에서 멜로디가 바로 중증장애를 가진 천재 소녀였다. 그런데 어라? 아빠가 자신을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얼른 책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이제 곧 15살이 되는 숀은 한 번 들은 것은 모두 기억하는 탁월한 기억력을 가진 천재 소년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숀은 아이큐 1또는 2, 정신연령 3, 4개월의 판정을 받는 지적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숀은 자신의 의지로는 아무 것도 못하는 상태이지만 자신의 삶을 안타까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천재인 자신이 특수학급에서도 가장 저능한 취급을 받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재미있어 하는 유쾌한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장애에 지쳐 이혼하고 가족을 떠난 아버지 또한 이해하고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소년이다.
숀의 장애를 견디지 못한 하지만 여전히 숀을 위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약간은 이기적인 숀의 아버지는 숀에 대한 시를 써서 퓰리처 상을 받은 유명한 시인이다. 때문에 숀은 세상에 중증의 지적 장애아의 대명사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런 숀이 아버지가 자신을 죽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숀의 아버지인 시드니가 숀을 죽이려는 이유가 증오가 아닌 사랑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가족 전체의 삶을 일부 망가뜨리는데 일조한 숀에 대해 지쳐서가 아니라 숀이 겪는 고통을 끝내주고 싶은 아버지의 갈등. 이 소설이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장애를 가진 아이를 둔 부모, 그것도 지적 장애를 가진 부모의 소망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소망인 것은 그들이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숀은 발작이라는 고통을 수시로 겪어야 하는 아이이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신이 범죄자가 되더라도 자식의 고통을 멈춰주고 싶은 것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한 마음일지 모른다. 그러며 이 소설은 안락사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게 만든다. 고통을 멈춰주고 싶은 가족의 마음...
하지만 이런 선택은 이기적인 선택일지 모른다. 하지만 책을 읽다보면 알게 되는 점이 있다. 시드니는 사실 숀을 죽이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지금 현재로서 숀이 행복한 지 알고 싶은 부모라는 것을 말이다.
어떤 문제를 인식하는 방법은 그 문제를 받아들이거나 회피하거나 두 가지의 방법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그 인식한 문제에 대해 작가가 접근하는 방식도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동화적 접근을 꾀하는 방법과 처절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식의 차이가 있다. 앞서 거론했던 <나의 마음을 들어줘>가 전자의 접근법을 보여준다면 이 책은 후자의 접근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이 소설 속 가족이 보여주는 애정에 의해 희망을 보게 된다.
책을 다 읽은 후 알게 된 점이 있다. 저자의 아이가 바로 숀과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라는 점이다. 이 책이 진솔하게 마음을 울렸던 이유를 알게 되면서 이런 부모를 둔 그의 아이가 행복하길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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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의 삶과 무관한 사람에게 일시적으로 도움을 주는 봉사와는 다른 개념이다. 아이를 대할 때 어른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시선으로,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를 바라봐야 한다는 걸 알지만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한때 아이였던 어른은 자신이 아이였던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고 아이의 눈이라고 착각한 어른의 눈으로 아이를 대한다. 그런 이유로 아이의 세상을 절대 이해하지 못한다. 장애아였던 시절이 없었던 우리가 장애아를 이해한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운 일이다.
숀 맥다니엘은 시애틀에 사는 14살의 장애아다. 누나와 형이 있고 엄마와 아빠가 있다. 시인이자 작가인 아빠는 10년 전에 엄마와 이혼했다. 숀의 고통을 견디지 못했던 아빠는 가족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여전히 숀의 아빠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는 것이 가족이라고 말하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흩어지는 게 또한 가족이다. TV 뉴스를 보면 어려운 일이 생겨 흩어지는 가족들이 넘쳐 난다. 장애아와 함께 산다는 것은 그 아이를 사랑하느냐 마느냐 와는 문제와는 별개의 징그러운 일상이다. 가족이고 사랑하는 내 아이라는 이유만으로 늘, 언제나 따뜻한 시선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숀은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지적 장애아로 때때로 발작까지 일으킨다. 숀이 몸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의사 표현을 못하지만 천재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하더라고 그를 온전히 하나의 인격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나는 발작이 숀에게 쓸모없는 육신으로부터 탈출하는, 자유의 느낌을 갖고 있다는 걸 모르는 아빠는 발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숀이 안타깝다. 아빠가 나를 죽이려는 한다는 걸 알았을 때 숀은 두려움과 슬픔을 느낀다. 아빠는 고민한다. 숀을 죽이는 일이야 말로 숀을 영원한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하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해본다.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의 고통을 평생 지켜보는 일은 꽤나 고통스러운 일이리라. 어쩌면 아빠는 숀의 고통이 아니라 아빠의 고통을 끝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 누군가를 위한다는 것이 결국은 나를 위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작가인 테리 트루먼에겐 숀과 같은 장애를 가진 아이가 있다. 그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을 썼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다른 장애를 다룬 책보다 더 생생하게 마음에 와 닿는다. 장애아를 둔 가족이 겪는 아픔과 장애아 자신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럼에도 숀의 밝은 성격 탓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내 가까이에도 의사소통이 어려운 발달장애아가 있다. 그 아이도 숀처럼 천재적인 사고에 밝은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궁금해진다. 다행히 그 아이의 부모는 그 아이를 끔찍이 사랑한다. 오히려 나는 그 아이의 동생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두 아이 모두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 내가 우리 반 친구들을 저능아라고 부르는 건 단지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그렇게 부르기 때문이다. 지체라는 말은 ‘느리다’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단지 느린 부류의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이기도 한데, 모든 사람이 모든 일을 똑같은 방식과 똑같은 속도로 처리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다. 정상인들이 우리를 저능아라고 하니까 우리는 저능아가 되는 거다.(5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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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장애인의 날 즈음 해서 우리딸이 자신은 장애아를 낳으면 홀트아동복지센타에 보낼꺼라는 말을 한적이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며 어른이 되어 막상 엄마가 돼면 생각이 바뀔것이라는 말을 했다. 철없는 요즘 아이들의 생각이 짧기는 짧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내가 읽은 [아빠, 나를 죽이지 마세요]에 나오는 아빠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고 아이들 양육을 엄마에게 모두 맞기고 이혼했다. 심지어 아이를 사랑해서 편안하게 해주고 싶다고 한다. 그 의미를 무엇일까?......머릿속이 엉망진창이 되는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