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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멸종생각보다괜찮은아이디어 #토드메이 #철학 #인류멸종 #인류존속
#위즈덤하우스 정기서평단 #위뷰 1기로서 #도서제공 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본서의 원제는 [Should We Go Extinct?: A Philosophical Dilemma for Our Unbearable Times]이다. 나로서는 답이 나왔다고 생각하고 그다지 딜레마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한국어 부제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한 철학적 사고 실험]인데 부제에서 이미 저자 토드 메이 씨의 입장이 표명되어 있다.
이 책은 인류 멸종을 논하는 무거운 주제의 책이지만 서술은 너무도 대중 친화적이다. 저자가 [굿 플레이스]라는 시트콤의 철학 자문을 맡았었다고 하는데 그 시트콤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너무도 쉽게 딜레마를 불러오면서도 대중적이다. 그 시트콤과 같은 분위기의 책이라고 보면 된다.
저자는 본서에서 인류가 멸종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고 바로 이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존속해도 될 이유를 제시한다. 다시 그럼에도 부정적인 견해의 근거를 제시하고 다시 또 그를 부정하며 이런 순환이 이어진다. 이 리뷰에서는 저자의 입장 전환을 따르기보다 상반되는 입장을 각각 나열해야 할 것 같다. 나에게는 저자와 같은 필력과 위트를 따를 재능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류 멸종을 지지하는 입장에 대해 저자는 공리적 입장에서 논지를 펼친다. 인류 본인이 이미 행복하지 않으며 인류는 공장형 축산과 산림 파괴를 비롯한 환경 파괴로 인류 자신뿐만이 아니라 타 생명체들인 동물들에게 마저 불행과 고통을 전파하고 있다는 이유다.
인류 존속을 주장하는 입장에 대해서는 인류는 이성을 가진 존재이니 무엇보다 존재 가치가 있고 이를 종차별이라는 관점에서 본다고 해도 타 동물군과 자연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응으로 이들에게 미치는 해악을 줄이면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단순한 이야기를 철학적 논변으로 거듭 전제를 반박하고 그 반박을 반박하는 과정을 반복하는데 나는 이 책은 하나의 주제를 유의미하게 던지는 자체로서의 의미가 더 큰 저작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너무도 심오한 주제인데 분량이 너무 짧은 것만이 아니라 서술의 관점 또한 동시대에만 한정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보다는 더 깊은 서술이 가능한 주제의 책이 아닌가 싶었다.
인류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만으로도 이 시대의, 서로를 엿보며 열등감에 쩔어가다가 살인도 서슴치 않는 사람들, 타인의 반응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자기 입장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극대화된 사람들, 서로 분열하기가 극한이라 남녀까지도 대립하는 시대상, 황금만능주의와 승자독식에 찌들어 타인을 인신매매하고 죽여 장기 적출도 거대 사업이 되는 이 시대상은 인류가 멸종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이야기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인류의 역사를 보아도 중국 진나라 장수 백기는 포로 40만 명인가를 묻어 죽인 것으로 알고 있으며 중국사에서 이런 규모의 인명 살상은 적지 않게 반복되었다. 예수가 사랑을 전파하고 간 서양에서는 그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당시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마녀사냥으로 죽였다. 그리고 대항해시대의 신대륙 원거주민들에 대한 살상과 폭력과 잔혹 행위도 인간의 실상을 말해준다. 세계대전 시기 일본군의 731부대 실험이나 위안부라는 이름의 성노예 행위 그리고 중국에서 그들이 행한 난징 대학살, 일본에서의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에 대한 학살 그리고 나치가 행한 홀로코스트 등은 인류가 과연 존속되어야 할 정도로 선한 존재인가 의문이 인다.
현대에도 장기 적출을 위한 납치로 경악스럽지만 20세기에 미국 정부가 군인들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살인병기로 사용하려 최면과 마약을 이용해 세뇌했다는 [MK 울트라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가 음모론으로 알려졌으나 21세기 되어 사실로 밝혀졌다. 20세기에도 후반에 미국 흑인들을 대상으로 매독을 전파해서 이 극도의 전염병이 전파되는 과정을 추적했다는 것이 음모론으로 돌았으나 이 또한 21세기가 되어 미국 정부 산하 미질병청에서 승인을 받고 행한 실험인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개인주의적 관점으로 사건을 보는 미국인들은 이것이 한 질병청 관리이자 의료인의 개인적인 도덕성 문제이자 매드사이언티스트의 그릇된 판단에 기인한 범죄로 보며 대중적 담론에서 묻히게 되었다. 하지만 모든 인종의 여성이 흑인 남성에게 성적으로 호의적인 시대 상황에 이 실험이 흑인 사회만을 향한 실험이었다고 생각하고 미국 시민들이 문제의식 없이 넘어가는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미국 시민 전체에 대한 미국 정부 차원의 질병 전파 과정을 모니터링 하는 실험이었다는 것이 사실일 텐데도 말이다.
한국도 선감학원(서울 경기 지역)과 형제복지원(부산 경상도 지역)이라는 어린이를 아무나 잡아다가 성적으로 유린하고 폭력으로 노동력을 착취한 역사가 있다. 21세기의 한국 전라도 신안이라는 곳에서는 염전 노예라고 다른 지역 사람들을 잡아다 노예로 만들어 십수 년을 무임금으로 노동력을 착취하기도 했다. 그걸 전라도의 법원에서 관행이라며 집행유예를 판결한 판례도 있다. 전라도에서는 전국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는 숫자보다 더 많은 숫자의 시신이 매해 발견되고 있고 한국의 전국 곳곳에서 머리 없는 시신과 상반신 없는 시신들이 발견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한국 한해 실종자 수는 7만 명 이상이고 중국은 한해 100만 명이 실종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밀입국자들 자녀 수만 명이 실종되었다. 한국에서 길거리를 가는 여고생을 마구 폭행해 차에 태우는 남자들의 모습이 감시카메라에 찍히기도 하고 중국에서는 아이를 안고 가는 엄마에게서 순식간에 아이를 빼앗아 차에 싣고 사라지는 남자들의 모습이 감시카메라에 찍히기도 하는 세상이다.
21세기 초에는 한 중학생이 게임을 하다가 사람을 죽여보고 싶다며 자기 초등학생 동생을 난자해서 죽인 사건이 있었고 자기 아이를 고층 아파트에서 창밖으로 던진 엄마도 있었다. 사회생활이 여의치 않던 20대가 사회와 타인에게 적의를 품고 서울 번화가 한복판에서 스포츠 경기를 즐기듯 마라톤을 하며 아주 먼 거리 동안에 지나가는 자기 또래의 남자들을 마구 찔러 죽인 사건이 있었던 건 지금으로부터 몇 해 되지도 않았다. 돈이 이유인 사건들은 모두 배제하고 언뜻 기억나는 충격적인 사건들만도 이렇다.
정치가의 범죄나 특정 정치인이 타국 조직범죄자들과 연루되었을 수도 있을 사건들은 현재 법들이 말할 수 없는 시대를 만들어 말하지 않는다. 직위나 계층을 막론하고 모든 인류가 문제이다.
인류 문명은 실패한 문명이다. 개선의 가능성도 없다. 인류는 멸종하는 것이 낫고 이것만이 지구가 개선되는 길이다.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네가 뭔데 그런 판단을 하느냐’고 하지만 그건 누구나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과거에 한국에서는 친아버지와 계모에게 맞아 늑골이 부러지고 온몸이 멍투성이로 죽은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아직 미취학 아동이었고 온몸에는 다리미로 지진 자국과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있었다. 동급생들에게 폭행당하고 강간당한 채 음부가 지져진 채 죽은 여학생도 있었다. 그 여학생이 중학생인지 고등학생인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한 해 중국에서는 27만 명에서 34만 명 정도의 어린이가 실종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런데 세계기구 산하 기관의 중국 장기매매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전 세계 어린이 간의 이식 사례는 모두 합해야 한해 1000명인데 중국은 한해 3000명이다. 중국의 장기 적출 사례를 조사한 기록을 보면 중국에서 망명해온 군인과 의료인들이 보고하기를 태어난 그날 아기 부모에게 사망했다고 거짓으로 통보하고 바로 아기를 죽여서 장기를 적출한 사례도 있다고 한다. 아기던 어린이던 장기를 적출해 성인에게 이식하면 두세 달 사이에 성인의 장기 크기가 된다는 것이 의료진들 증언이다. 이런 실정이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중국에 방문해 시진핑 중국 주석을 만나 장기만 새걸로 바꾸면 영생할 수 있다고 말해 세계적 논란이 되고 러시아 대통령실 대변인이 이에 대해 해명까지 했던 것이다.
상상해 보라. 부모에게 학대당하던 아이가 집을 나서서 힘없이 걷고 있을 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와 손을 잡아주는 모습을. 그 아이는 따듯한 손길에 이끌려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며 따라나설 수 있다. 그 아이는 아줌마가 건네는 따듯한 음료수를 마시고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면 차가운 철제 침대에 묶여있는 현실에 처할 것이다. 아이를 보호해주어야 할 어른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그 아이의 눈과 장기를 적출하는 것이 이 세상이다. 그 아이가 “이 세상은 지옥이구나! 사람이 악마구나! 이딴 세상 멸망해 버려라!”라고 소리없이 절규하며 죽어간다고 그 아이에게 누가 “네가 뭔데 그런 판단을 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런 아이가 있는 세상을 멸망하는 게 낫다고 생각도 못 해야 한다는 것인가! 이 세상은 아무리 생각해도 멸망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나은 세상이다.
본서는 앞서 말했지만 저자의 긍정적인 답이 와닿기보다는 생각해 볼 주제를 주었다는 자체로서 의의가 있는 책이다. 시대를 보고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존속할 가치가 있다’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들이 과연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건 생각할 기회를 주는 자체로 의미가 큰 책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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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생각해도 지구라는 한정된 공간에 함께 살기엔 인간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라는 내 말에 친구는 말했다. 너 타노스가 이상형이야? 무슨 소리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타노스가 뭔 데? 마블 시리즈를 안 본 나는 타노스가 행성에 사는 종족을 절반만 절멸시키는 캐릭터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조금 많으니까, 지구를 위해서 절반 정도만 유지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했다. 절반만 절멸시키는 그 상황에 내 가족, 친구들을 포함하지 않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바다 수온은 자꾸 오르고 해마다 폭염은 기승을 부리는데 지금이 제일 시원할 때라는 무서운 뉴스가 나온다. 별안간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와 폭설, 그리고 저 멀리 북극의 빙하는 하루가 다르게 녹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서도 여기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는 어제도 집 앞까지 하루 만에 도착하는 배송 주문을 했다. 나 하나 달라진다고 뭐가 되겠어, 라고 생각 안 한다면 거짓말이다. 지구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경고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당장 내 눈앞에 벌어지지 않는 일은 남의 일이라 생각한다. 기온이 오르고 빙하가 녹아내려도 아, 큰일이네! 생각할 뿐, 문제를 해결할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 어찌 보면 지구를 위해, 지구에 사는 비인간 동물들을 위해, 인류 멸종은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일지도…? <인류 멸종,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는 철학자 토드 메이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과연 인류가 멸종하지 않고 지구에 정당하게 존속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이 책은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닌 질문의 질문을 하는 책으로 저자는 끊임없이 독자에게 질문한다. 그래서, 왜? 왜? 왜? 저자가 독자에게 내미는 질문들을 따라가는 책을 읽다 보니 지금의 절반 정도만 유지하는 게 좋지 않을까? 했던 나의 첫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깨달았다. 지금 인류가 만들어낸 수많은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는 단순히 인류의 멸종이나 소멸로 해결할 문제가 아닌 조금 더 철학적인 접근이 필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책을 읽으며 알게 됐다. 지금까지 누적된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문제를 당장 좋은 쪽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방법을 찾고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이 없다면 어쩌면 상황을 더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갈 것이다. 아주 작은 희망이 있다면 그나마 인간은 실수를 반성할 줄 알고 회복하려는 의지를 지녔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지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와 내 가족, 친구, 그리고 미래의 인류를 위해서. 바로 지금이 인류의 멸종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일지도 모른다. 이대로 멸종될 것인지, 아름다운 지구에 함께 살아남을 것인지,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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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인류 멸종"이라는 극단적인 질문에서 출발하는 이 책이 표제는 요즘 우리가 직접 체감하고 있는 이상기후부터, 전쟁, 환경오염 등등 위기감의 극대화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주제들을 다룬다. 철학자이자 대중에게 다양한 철학적 사유들을 공리주의 차원에서 인류의 위치와 상관관계, 그리고 장기적 관점에서의 솔루션으로 식량, 인구, 삼림 벌채, 기후 위기, 동물실험을 구체적으로 다루기도 한다. 그런 주제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까지 이 책은 명확한 해답이 아닌 진정한 숙고의 장을 펼친다.
'기후 우울증', 혹은 '기후 염려증'으로 인식하는 일상의 많은 순간들은 경각심을 일으키긴 하지만 그것은 선의지를 가진 인간만의 특성일 뿐이라고 말한다. 제러미 벤담의 철학 사상에서 유래한 공리주의에 대한 기준 또한 이성적인 사고가 가능한지 여부에 따라 다각적인 다원주의적 관점을 적용해야 하는 사례들을 인용한다. 인간은 비인간인 동물보다 풍부한 경험을 할 능력과 이를 바탕으로 세상에 행복을 보태는 일에 관해 우세하기에 인간의 공존은 타당성을 부여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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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연을 사랑하며, 그보다는 덜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인간이지만 회의감이 들 때가 굉장히 많다. 인간이 세계에 너무 해로운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고 자주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종족의 존속을 위해서라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하더라도 도외시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 또한 인간이기에, 이 도덕적 해이에 빠져있다. 이를테면..., 나는 채식주의를 감내할 수 있을 정도로 도덕적이지 못하다. '전생에 티라노'라는 말을 달고 살 정도로 육류소비를 굉장히 지향하고 있다...!!! 나는 스스로가 인간으로서 생태계에 큰 해악을 끼치고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 해악이 어떤 형태로 발생하는지,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지 생각하려 노력한다. 외면하지 않는 것이 큰 시도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인류 멸종,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도 이런 노력에 생산적으로 도움되는 책이다. 마지막장에 수록된 옮긴이의 말처럼, 이 책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철학 사고실험인데도 말이다! 굉장히 많은 철학자와 철학개념이 등장하는 데도 말이다! 마치 팟캐스트나 북토크 음성/영상 매체를 소비하는 것처럼 대단한 준비 자세가 필요하지 않다. 새벽에 잠깐 든 깊은 생각을 저자와 함께 나눈다고 생각하며 이 책을 읽으면 가장 좋을 듯 싶다. 하지만 그렇다면 조금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 인류 존속에 비관적인 입장인 서술이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인류가 꼭 멸종해야한다는 법은 없다. 이 모든 문제는 어쩌면 지구에 인류 과잉이 찾아왔기 때문일 수도 있다. 행복이란, 양보다 질이 우선된다. (본문에서는 철학자 데릭 파핏의 논리를 빌려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행복한 상태에 있어도, 그것을 위해 누군가 고통받는 상황이 '당연시' 될 수 없다. 적은 수의 사람이 행복하더라도 고통받는 사람이 적거나 없으면, 그만큼 행복에서 차감되는 '불행'이 적어진다. 또, 인류도 자연의 일부이다. 생태계는 존재 자체로 좋은 것이다. 이로써 저자는 더 논의할 이야기를 가지고, 여러가지 철학 사고실험과 함께 마무리 짓는다. 이 책을 읽고 난 독자가 스스로 생각해보길 바라는 입장을 취한 것 같다. 덕분에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굉장히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있게되었다는 점에서 기분도 좋았다. 그밖에 장기적관점, 효율적 이타주의, 인류가 사라진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지구 환경이 나아질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는 점과 현실적인 문제도 여러가지 언급하지만... 이 이야기들은 본문에서 더 자세히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당신은 어느 쪽에 서고 싶은가? 인류는 멸종되어야할까? 아니면 존속되어야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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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찰을 통해서 도덕적으로 선한지, 악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오로지 인류에게만 있다. 인간 세상에 놓여진 무수히 많은 질문과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인류는 과거와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를 지향해 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인문교양서 <인류 멸종,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에서 실존주의와 도덕철학에 관한 책들을 출간했던 미국의 철학자 토드 메이는 다원주의적 인식을 취하며 문제에 접근하려 노력했다. 흥미로운 질문들, 그럴듯한 가설들, 철학적인 사고 실험을 통해서! "우리가 없었더라면 지구는 더 좋은 곳이 되었을까" 라는 질문부터 작가의 돌려까기 위트가 돋보인다. 실존하고 있는 인류에게 인류 멸망의 다양한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일명 셀프 디스, 불편한 질문들을 던진다. 이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기 위한 일부 인류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 한편 희망적이기도 했다. 이 점이 바로 인류의 탁월함이 아닐까! 전 세계적으로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기저에는 인류 자체를 목적이 아닌 노동력으로 인식하며 자본주의 논리의 수단으로 보는 관점이 팽배한 이 시대에 인류 존속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는 점에서 통쾌하기까지 했다. 인간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책들에 늘 더듬이가 향하는 1인으로서 <인류 멸종,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는 필자에겐 취향 저격인 인문교양서이다. 작가의 유머와 휴머니즘이 곳곳에 묻어나서 유독 몰입독서가 잘 된 책이었다. 재밌었던 꼭지는 다시 뒤로 돌아가 읽고 또 읽었다. (요즘 제주도여행 중이어서 책방으로 취향이 향하는 중인데 이 책이 보이지 않아서 참 아쉬웠다. 만났다면 너무나 반가웠을텐데..... 이렇게 재밌는 인문교양서가 출간되었는데 책방지기님들은 왜 입고를 하지 않은 거지?^^;) 현재의 풍요한 인프라를 누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력이 필요한데 영화 속 설정처럼 인구가 점점 감소하게 된다면 대규모로 사람들이 모여살기 보다는 소그룹의 인간이 존속할 거라는 예측이 더 타당해 보인다. 그렇다면 인류는 앞으로 지금보다는 훨씬 덜 자연과 비인간 동물, 타자에게 가하는 해악을 줄이게 될까? 토드 메이의 책을 읽다 보면 독자부터 새롭게 궁금증들을 생성하게 되나보다.^^ (위뷰 1기의 행운으로 토드 메이라는 철학자를 알게 되어 기쁨!) 대다수 인간이 개별적으로 지구에 기여하는 바는 미미하지만, 인류가 집합적으로 가하는 위협은 상당한 수준이라는 걸 요즘 제주도여행을 하면서도 이따금씩 느낀다. 선의지를 가지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제주도라는 환경을 지키려는 소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관광객들이 휩쓸고 지나가 버리면 초토화가 되어버리는 현실....ㅠ (가만히 있는 그대로를 지켜주면서 흔적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여행자로 노력중이다.) 인간이라는 종은 멸종당해 마땅하다고 강하게 말하기에는 좀 용기가 필요할테지만 멸종하면 사실 결과적으로 더 좋은 건 아닌가라고 다시 묻는다면 확신을 갖고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긴 할까? 지금까지 비인간 동물들을 책임지지도 않으면서 고통만 주고 착취만 일삼는 인류의 행태를 생각하면 계속 번식해서 존속하기보다는 없어지는 편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지도 모른다. 이런 문제의식에 대해서 도덕적인 쟁점으로 접근해볼 때 작가가 꺼내든 공리주의는 독자로 하여금 인류 존속의 필요성에 대해 정확하고 바르게 판단하는데 좋은 가늠자가 되어주었다. 공리주의는 18세기 사상가 제러미 벤담의 철학에서 유래해서 19세기 존 스튜어트 밀에 이르기까지 최대의 쾌락을 가져다주는 행위가 곧 도덕적으로도 옳은 행위라고 보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고통은 최소화하고 쾌락은 최대화하는 행동들을 실행하는 것이 공리주의 관점에서 도덕적으로도 옳은 접근법이 되는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인간이 다 사라졌을 때 인간의 공장식 축산방식을 통해 태어나 고통을 겪을 동물들이 태어나지 않게 될테니 동물의 고통도 감소할 것이고 해양생물들의 미세 플라스틱에 의한 죽음도 줄어들 것이고 아마존 우림과 북극 빙하 감소로 인해 거주지를 잃고 굶주려 죽게 되는 생태계 또한 보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공리주의 논리로 접근해 보자면 인류 존속의 장점을 찾기가 어렵지만 문제의식을 갖고 성찰함으로써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인류의 탁월함을 공리주의에만 의존할 수는 없겠다.^^; 그래도 인류가 존속해야만 하는 이유는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이를테면 인류만이 아름다움, 진리, 그리고 좋은 삶을 추구하고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에 이러한 인간 삶의 풍부함을 지속할 수 있도록 공동체주의를 발휘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동체란 물론 비인간동물을 포함하며 인간중심주의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인류 또한 자연의 구성원임을 자각하며 비인간동물들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더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만들어가고 책임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이 지점에서 희망고문이라고 해도 좋다. 이게 아니면 현재 스케일만 키우며 돈의 논리만 쫓는 세상에서 뾰족한 방법도 딱히 떠오르질 않는다...ㅠ 다수는 아닐지라도 인류 개개인의 선의지와 탁월함에 기대보려한다. 끊임없이 문제로 인식하고 자문하며 옳은 것이라고 믿는 것에 대해서 실천하는 인류가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인류가 누리는 행복과 인류가 유발하는 고통을 단순 비교할 수도 없고 인간과 비인간동물의 삶의 가치를 계산해낼 수 있는 수학공식 또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돈의 힘이 비단 과시용이 아니라 가치의 관점에서 활용되어지는 미래로 나아가길 바란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만을 위해 전 인류가 이러한 변화를 촉구하는 것은 아닐테다. 이 지구가 선사하는 아름다움과 무한한 자원들을 앞으로 살아갈 세대들에게도 효율적으로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좋은 삶을 보장해주는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의 이로움에 중점을 두는 장기주의가 바로 그것이고 효율적 이타주의를 견지하는 것이다. 윌리엄 맥어스킬이 쓴 <우리는 미래를 가져다 쓰고 있다>라는 책제목만 봐도 사실은 인류가 저질러왔던 공장식 축산, 인구 증가, 삼림 벌채, 기후위기, 비인간동물 대상의 실험 등에 대해 이제부터라도 어떤 행동을 취해야할지 이미 답을 다 알고 있지 않을까. 인류 존속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면 이제부터라도 비인간동물과 자연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하겠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이고 상호 존중의 가치를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노력이 절실하다는 것. 사실 이러한 노력은 인류의 존속과 멸망의 결과에 상관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가치이겠지만 더이상 퇴행할 수는 없다. 뒷걸음질치다가는 결국 절벽이다. 파괴하는 데에만 집합적인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인류 멸망이 더 이상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조롱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인류의 조직적인 힘이 필요하다. 이보다 더 풍부한 관점으로 작가가 펼쳐나간 이 인문교양서는 그래서 전체로 만나봐야 한다, 꼭!!! 위즈덤하우스의 신간 <인류 멸종,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를 통해 철학자 토드 메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이제는 시간을 거슬러 이전 책들을 찾아보려 한다. 17박 18일이라는 긴 여정의 제주도여행을 즐기는 와중에도 독서할만한 공간에 갈 계획이면 꼭 이 책을 챙겨갔고 집중하기에 짧았을지라도 꼭지마다 내용들이 흥미로워서 충만한 시간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참 의미있는 독서였고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인문교양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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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도서는 출판사 측에서 제공 받았음을 명시합니다 사실 제목만 보고 골랐던 책이다. 워낙 기후위기나 환경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인간이 죽어야 세상이 산다~ 이런 쪽의 책인 줄 알았는데 크나큰 착각. 우리 인간이 살면서 한 번은 하는 고민 '나는, 혹은 우리는 왜 살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하는 철학적인 책이다! 정말 유익한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게 앞으로 인류가 살아가면서 곰곰히 생각해봐야 할 고민거리들을 계속해서 던져주는 책이었다. 그래서 삶이 지치고, 힘들 때 한 번쯤 떠오를 것 같은 책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철학 문외한이라 모든 걸 이해하지 못했고 어려운 부분도 참 많았다. 철학 이론들을 간단하게나마 이해하고 이후 다시 싶다! 보통 어려운 책을 만나면 그냥 슥 읽고 넘기게 되는데 묘하게 이해하고 더 고민해보고 싶은 욕구가 드는 책이랄까. 이 책을 읽으며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질문들이 있다. 그에 대한 대답, 아직까지 나는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생각하다보면 내 삶의 의미, 더 나아가서 인류가 존재하는 의미, 그리고 우리가 지녀야 할 태도에 대한 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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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도 못 했던 질문 '만약 인류가 사라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에 대해 생각해 보면 다시금 인류의 존재 의미와 책임감에 대해 되묻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 세상을 어떻게 덜 해롭고 더 아름답게 남길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토드 메이는 현재의 인류가 앞으로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존재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집니다. 우리의 욕망이 현실화되는 편리함으로 인해 지구 생태계는 점점 파괴되고 인간 이외의 다른 생명체들은 고통을 담보로 변화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합니다. 인간이 지닌 장점인 창의성과 사회 관계력, 공감 능력 등을 바탕으로 전에 해왔던 이기적인 행동이 아닌 긍정적인 자세를 통해 모두가 공정하게 잘 살아갈 수 있는 균형 잡힌 노력을 바라는 마음에서 많은 문제의식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먼 훗날 언젠가 인류의 종말이야 오겠지만 막상 앞당겨져 온다면 무척 암담한 현실에 매우 우울할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을 상상만 하더라도 미래 세대를 위한 자세가 곧 우리의 존재를 보다 안전하게 만드는 일일 것입니다. 생태적 책임감, 윤리적 소비, 지속 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저자는 우리에게 지구를 살리라는 거대한 사명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각자의 위치에서 지금보다 조금 더 책임 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부분에서 매우 큰 영감을 얻었습니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조금은 의아해 보였지만, 실상은 인간의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깊고 차분한 철학적 성찰을 하게 만드는 내용이라 매우 의미가 큽니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어떤 흔적을 남기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오래도록 마음에 맴돌고, 지금 많은 분들이 이 부분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는 기회를 갖고자 반드시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위뷰 1기로 위즈덤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솔직하게 작성했습니다. #토드메이 #인류멸종생각보다괜찮은아이디어 #위즈덤하우스 #위뷰1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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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짐을 상상하며, 존재의 이유를 묻다” ✔️ 대화하듯 사유할 수 있는 철학 입문서.
📌 인간이 사라지면 세상은 정말 더 나아질까? 우리는 인류가 멸종해야 마땅한지 묻지 않을 것이다. 그런 물음 밑에 깔린 생각은 대략 다음과 같다. 우리 인간은 근래에 비인간 생명체에 대단한 해악을 끼쳤다. 인구 과잉, 공장식 축산, 플라스틱 생산, 온실가스 배출, 동물실험 등 서로 연계된 활동을 통해 지구에 계속 살기 위한 도덕적인 자격을 스스로 훼손했다. 우리는 우리가 저지른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며, 여기에 유일하게 적합한 처벌은 우리의 존속을 중단하는 것이므로 인류 멸종은 적절한 보복 조치다. (pg. 33) 그렇다면, 비록 인간이라는 종이 멸종당해 마땅하지 않다고 해도, 멸종하면 결과적으로 더 좋은 것 아닌가? 그게 바로 우리가 던지는 질문이다. 인간이 환경에 끼치는 모든 해악과 다른 생명체에게 가하는 모든 고통을 감안했을 때, 우리 종이 계속 번식해서 존속하기보다는 없어지는 편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pg. 34) ✨ 저자는 인류의 해악과 가치를 번갈아 제시하며 끝없는 저울질을 이어간다. 마치 논쟁을 스스로와 반복하는 듯한 ‘철학적 핑퐁 게임’ 같다. 반복적인 서술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는 단순한 주장보다 생각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려는 치열함이 느껴졌다.
📌 "인간의 관점" 생각해볼 문제가 또 있다. 나라면 인간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때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떠올릴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인간인 내게 아름다움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인간이 아름다움으로 인식하는 어떤 것이 있고, 그것은 계속 존재하는데 그 아름다움을 인식할 인간이 없다면, 이 사실을 어떻게 바라볼 수 있을까? (pg. 40) 반드시 인간이어야만 고려하거나 내세울 수 있는 관점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pg. 41) ✨ 결국 인간 세계는 인간의 인식 안에서만 존재한다. 우리가 사라진 뒤의 세계를 논하는 일조차 인간 중심적 사고의 연장이며, 그 아이러니 속에서 인간 존재의 한계를 실감하게 된다. 📌 그래서 인류의 존속, 결말이 뭘까? 인류존속에 정당한 명분을 부여하기 위해 우리가 마침내 행동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가르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보다는 각자, 그리고 하나의 종으로서 집합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이 지구상에서 우리의 존속이 더 정당해질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인류의 존속이 총체적으로 바람직한 일인지조차 알지 못하고, 아마 알 방법도 없겠지만, 인류의 존속을 더 바람직한 일로 만들려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알고 있다. 우리가 과연 그것을 실천할지 여부는 우리의 예견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확고한 의지에 달려 있다. (pg. 197) ✨ 책은 명확한 결론 대신 질문을 남긴다. 인류 존속의 문제에 정답은 없지만, 그 질문을 붙잡고 고민하는 일 자체가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바로 그 사유의 시작점으로서 의미가 깊다. ⟪인류 멸종,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를 읽고, ✨ 이 책은 단순히 ‘인류가 멸종해야 하는가’라는 극단적인 질문을 던지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질문을 통해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다. 저자는 인간의 이기심과 위선, 동시에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움과 연민을 나란히 놓고 끝없이 저울질한다. 그 과정은 때로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이야말로 성찰의 출발점이 된다. 인간이 없는 세상이 더 나은가를 고민하는 일은 결국 ‘인간답게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묻는 것이 아닐까. 명확한 답은 없지만 이 책은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남겼다. 그리고 그 질문을 붙잡고 스스로 생각할 때, 인류의 존속은 조금 더 정당해질지도 모르겠다. * 출판사로부터 서평 목적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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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갑자기 다같이 동반 집단 자살을 할 순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저자는 인류가 멸종해야 할지, 멸종하지 않아야 할지 질문을 던지며 여러 방향에서 같이 고민해 준다. 내 결론은 단순했다. 멸종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인류의 존속을 원한다기보단 그냥 말 그대로 지금 당장의 멸종은 가능하지 않다.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동안은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인류가 존재함으로 자연환경과 비인류 동물들에게 어떤 피해를 끼치고 있는지 회피하지 말고 확실히 인지하여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인류의 존속을 위하여 전체 인구 수가 줄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이 애국이라는 말을 듣고 자란 사람으로서 해당 파트를 읽으면서는 일말의 쾌감까지 느껴졌다. 인구 수 증대를 위해 말도 안 되는 출산장려정책을 펼치는 국가의 뒤통수를 치는 것 같아 즐거웠다. 책을 읽고 한 가지 분명한 건 인류가 언젠가의 미래가 됐건, 멸종이 아닌 존속을 바란다면 이때까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생태계를 지배하는 것이 아닌 지구에 존재하는 하나의 종으로써 공존할 수 있는 길을 걸어야 한다. 정말로 인류의 멸종을 바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해당 리뷰는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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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멸망하고 있다고 믿는 나. 책 제목처럼, 정말 인류의 멸종이 ‘괜찮은 아이디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원서 제목은 《SHOULD WE GO EXTINCT?》인데, 이걸 이렇게 번역하다니— 제목을 후킹하게 참 잘 지었다. 왠지 이 책, 잘 될 예감이 든다.) 인류는 언젠가 멸종한다. 이 책은 그 전제를 바탕으로, ‘멸종은 나쁜 일이다’라는 생각 아래 두 가지 질문을 던진다. 첫째, 인류가 조금 더 일찍 멸종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둘째, 만약 인류의 멸종이 더 나은 일이라면, 그 이유를 완화하기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책은 인류가 자초한 재앙들(like 스불재)을 짚어가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묻는다. 혹은, 재앙 그 자체를 조금이라도 축소할 수 있는 길이 있을지 함께 고민한다. 나는 이 주제가 무척 흥미로웠다. 인류가 ‘어떻게’ 멸종할지 시뮬레이션하는 이야기는 많이 봤지만(책 1장에도 그런 사례들이 등장한다), 이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왜’ 멸종해야 하는가, 멸종으로 인해 누가 수혜를 받을 수 있는가를 탐구한다. 결론적으로, 나는 인류의 멸종이 어떤 생물에게는 분명 ‘이익’이 될 수 있다고 느꼈다. 아니, 적어도 생태계가 다시 자연의 질서로 돌아가는 그 과정만큼은 긍정적으로 보였다. 이 책은 ‘공리주의’를 다양한 경우의 수를 탐구하고 비교하며 재단하는 도구로 활용한다. 공리주의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사상으로, 행복의 유일한 척도인 ‘쾌락’이 ‘고통’을 능가하는 상태를 만들어야 한다는 도덕철학 이론이다. 책은 각 경우의 수마다 행복의 총량과 고통의 총량을 비교하며, 그 방법이 지닌 강점과 한계를 치밀하게 따진다. 물론 단일한 척도로 명확히 수량화하기 어렵다는 점이 공리주의의 한계지만, 인류 혹은 생명의 삶을 관통하는 ‘보편적 선과 악’을 정의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그 자체로 매우 합리적인 틀이라 느꼈다.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공리주의를 넘어 다양한 도덕철학의 관점을 함께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철학자 데이비드 베너타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까. 그가 쓴 책의 제목이 이미 답을 말해준다 —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그는 인류 멸종에 찬성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인간을 낳지 말자고 주장한다. 살면서 경험하는 어떤 쾌락이나 행복보다, 결국 ‘죽음’이라는 필연에서 비롯되는 고통이 훨씬 크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꽤나 합리적인 주장이라고 느꼈다. 특히 이어지는 문장들이 인상적이었다. 인간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맞게 ‘선호’를 조정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경험보다 긍정적인 경험을 더 잘 기억한다는 점, 또 선망하는 직업이 있더라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직업군 안에서 자신의 선호를 ‘적응’시킨다는 주장. 이건 내가 인간으로서 직접 체감한 현상이기도 해서, 자연스레 고개가 끄덕여졌다. 하지만 베너타의 의견이 논리적으로 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철학에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인간이 ‘망각’이라는 능력을 지녔기에 고통과 번뇌를 곁에 두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설령 고통이 행복보다 크더라도, 우리가 스스로 인지하는 행복의 총량이 더 많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하는 고집을 부리고 싶다. 토드 메이(저자) 역시 베너타의 비관론을 거부한다. 그의 이유는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아름답다. 그래서 내가 인류로 태어난 게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가 말하는 ‘의미 충만함’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있으면, 인류란 마치 ‘희망’을 씨앗으로 태어난 생명처럼 느껴진다. 그가 어떻게 이 개념을 풀어내는지 궁금하다면, 《인류 멸종, 생각보다 괜찮은 아이디어》 50페이지부터 천천히 읽어보시라. 인간, 그리고 세상이라는 것은 결코 하나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기에 더 아름답다. 나 또한 나 자신을 하나의 잣대 안에 가두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 책은 인류가 멸종해야만 하는 이유를 공장식 축산, 동물의 고통,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 삼림 벌채 등의 사례로 풀어낸다. 활자일 뿐인데도 묘사가 너무 생생해, 몇 번이나 책을 덮고 눈을 질끈 감았다. 종이 위에서는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지만, 내가 매일 먹는 음식이 결국 어떤 동물의 원치 않는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마음을 짓눌렀다. 더 괴로운 건, 인간이라는 이유로 그것을 멈출 수 없다는 점이었다. 정말 인간은 쓰레기 그 자체다. 나는 내 얼굴에 침을 뱉는 심정으로 이 문장을 썼다. 하지만 이 정도의 침으로는 무고한 생명들이 겪은 한을 갚을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인간이 아닌 생물뿐 아니라, 삼림과 환경 역시 인간의 욕망 앞에서 파괴된다. 인류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분에 넘치는 환경조차 쥐락펴락하려 하고, 자기 입맛에 맞게 바꾸려 한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으로 세상을 조종하는 기득권 세력을 가리키지만, 결국 같은 인류이기에 ‘우리’라고 표현했다.) 인류는 ‘통제하려는 성향’을 기본값으로 타고나는 걸까. 왜 가진 것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지 못할까. 아마도 그것이 높은 지성을 가진 종의 비극일지도 모른다. 인류 멸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확신하던 그때, 저자는 ‘사랑’을 이야기한다. 죽어 마땅하다고 느꼈던 사람들에게조차 사랑이 존재한다는 건, 내 안에 품고 태어난 ‘희망’이라는 씨앗이 다시 빛을 비추는 순간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사랑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은 인류만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인류 또한 사랑할 수 있기에 다시금 변화할 수 있다. (다행히도) 우리는 모두 사랑을 알고 있으니, 이제 그 사랑의 방향을 다시 조준해보면 어떨까 싶다. 일단, 나부터. 책을 읽으며 계속 떠올랐던 생각이 있다. ① 똑똑해지는 느낌. ② 흥미로운 주제와 ‘아는 척’하고 싶게 만드는 양질의 이야기들. ③ 그리고, 인생에서 꼭 한 번은 다시 읽고 싶은 책. 내 생애 이 책을 만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인류의 한 표본으로서 ‘나’를 돌아보게 되었고, 잠시 헤이해졌던 삶을 다시 사랑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싶다는 다짐을 품게 되었다. 책이 다소 어렵고 철학적인 탓에 아무에게나 쉽게 추천하기는 어렵지만, 그래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매년 꼭 다시 읽고 싶은 책! 그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성장한 내가 이 책을 통해 더 깊고 숭고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를. ‘마음의 양식’이라는 말은, 아마 이 책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