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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점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싶어 이 책 읽게되었다. 주인공인 오목이는 어느날 친구와 쑥을 캐러 갔었다. 그때, 어머니께서 밖에 나돌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일본군들이 처녀공출을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어느날 진짜 일본군이 와서 오목이 엄마에게 딸을 데리고 가겠다고 통보하였다. 그래서 결국 오목이는 일본군에게 끌려가게 되었다. 면사무소에는 수십명의여자들이 끌려와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오목이는 트럭을타고실려 어디론가 끌려가다, 또 배를 타고 가게되었다. 도착한곳은 조선에서 멀리 떨어진 인도네시아였다. 오목이를 반기는 것은 더러운 침대와 담요 뿐이었다 또한, 일본군은 오목이에게 한국어 이름대신에 일본어 이름을 쓰도록 강요하였으며 잠을 자지도 못하게 힘들게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날 친하게 지내던 게이코 언니가 달아났다. 이유는 임신을해서 탈출한 것이었다. 모두 게이코 언니가 무사하기를 빌었지만, 게이코 언니는 결국 죽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힘은 약해지고, 일본군은 계속 괴롭혔다. 오지 않을것 같던 그날, 연합군이 일본에 원자폭탄을 터트리면서 일본이 항복하게 되었다. 드어, 오목이는 다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갈수 있게되었다. 기쁨도 잠시, 사람들은 오목이에게 더럽다며 돌을 던졌다. 두 해가 지나고 엄마 아빠의 집을 찾았지만 오목이는 그냥 뒤 돌아갔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자기를 부끄러워 할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모든사람들이 오목이가 일본군 위안부인지 몰랐었다. 오목이는 정말 괴로웠을 것같다.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이유도 모르고 하는것을 보니 정말 불쌍해 보였다. 내가 만약, 오목이라면 하루만에 죽었을 것이다. 오목이는 잘 참는것 같다. 나는 오목이가 엄마, 아빠의 집으로 들어갈줄 알았는데, 들어 가지 않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일본이 우리에게 한 행동을 알면 일수록 일본이 더 더욱 밉고 화가 치밀어 오른다. 다시는 전쟁이 나지를 않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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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비가 들려주는 일제강점기 이야기 <꽃할머니>를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너무 아파서... 감정의 정리가 잘 되지 않아서 아이들에게 읽어주기가 힘들었다. 용기있게 잊어버리고 싶은 과거의 상처를 드러낸 할머니들이 한분씩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을 때 마다 뭔가 하긴 해야 할텐데 ... 마음만 초조해진다. 위안부 할머니들이라고 부르니 요즘 아이들은 할머니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되어 겪은 고통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나이와 상관없이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끔찍한 고통이지만.... )
목소리가 갈라지지 않고, 눈물을 흘리지 않고 읽어줄 자신이 아직은 없지만 더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읽어주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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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물어보면 제대로 설명해주기가 힘들었습니다.. 너무 아파서~~ 고조선, 삼국시대, 고려, 조선... 애들이 시험에 나오는 것은 잘 알아도 우리의 아픈 역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이지요.. 애들이 읽으면서 저와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런지요~~ 이것이 제대로 된 한국사 그림책1권 이더군요.... 암튼 제대로 된 한국사 그림책 시리즈가 계속 발간되서 어서어서 읽히고 싶은 마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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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요일의 소녀입니다 한국사 그림책으로 일제 강점기에 대해 들려주는 이야기라는 것은 책 표지를 보고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는 한국사 그림책 1번인걸 보니 앞으로 계속 시리즈로 나올 책이라는 것을 미리 짐작해볼 수 있었는데요. 첫번째 이야기부터 무거운 주제를 만나본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3월이면 이런 책을 더더욱 읽어봐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봄방학이다 신학기다 정신없이 가는 시간 속에서 시간이 될 때마다 읽어보았답니다.
맨 앞부분에는 실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그 고통이 전해지는 기분이 드네요. 얼마전에 서대문형무소에 갔을 때도 육성증언을 봤을 때 정말 그분들의 고통의 세월이 그래도 전해져서 마음이 아팠었는데, 그 이후 이 책을 만나보니 더욱 그때의 감정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네요. TV에서 한번씩 위안부에 대한 얘기들이 나올 때 정말 저런 일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었는데, 이 책에서 또 만나보니 정말 그 고통받던 시간들을 다시 떠올리게 됩니다. 언뜻 보기에 단발머리처럼 보이는 소녀의 머리는 자세히 보면 제대로 잘린 머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네요. 부모 형제와 떨어져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간 아픔을 표현한거라고 하니 새삼 다시 들여다보게 됩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아이들의 모습. 그 때의 상황을 자세히 상상해볼 수 있는 이 동화를 보니 인간이 아닌 물건 취급을 당했던 당시의 상황을 아이들은 이해하기 힘들어합니다. 마음대로 이름 붙여서 불렀던 일본군들. 성적으로 짓밟은 것도 모자라 약한자를 괴롭히는 비열함들을 보였던 일본군들. 우리의 역사 속에 이런 아픔이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말해주기가 꺼려지던 부분인데 아이들에게도 알려줘야 할 것들이 또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답니다. 동화를 통해 가상의 인물로 이야기는 전해지지만 실제 위안부 할머니들이 수효일마다 집회를 20여 년간 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답니다. 거짓말로 얼룩져 있는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아서 제대로 알게 해야 하는데, 이 할머니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밝히면서까지 우리에게 알리려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과거의 잘못을 덮기에 급급한 일본을 상대로 우리가 얼마나 용기를 내서 우리 아이들에게 밝혀줘야 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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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마다 집회를 하는 소녀들. 이제 그 소녀들은 더 이상 소녀가 아니다. 아니, 이제 남아 있는 이 소녀들은 몇 되지 않는다. 그들이 그렇게 원하던 진정한 사과의 말 한마디를 끝끝내 듣지 못하고 억울한 생을 마감하고 있다. 어제 3.1절 축사에서 대통령도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일본은 더 이상 역사를 왜곡하려 하지 말고, 진정한 사과를 하길 바란다. 작년 경남도립미술관에서 위안부 관련 사진과 작품 전시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전시된 작품들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나라의 작가들이 그리고, 만들고, 기록한 것들이었다. 이렇게 모든 이들이 그들의 인생을 함께 슬퍼하고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숙연해지는데 왜 정작 소녀들을 괴롭혔던 이들은 일말의 반성도 하지 않는단 말인가. 이유도 모른 채 가족들의 울부짖음을 뒤로한 채 친구와 이웃집 언니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끌려간 곳. 그 소녀들은 더 이상 그들의 눈에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하나의 물건, 군수물품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그녀들은 전장에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힘겹게 목숨을 부여잡고 있던 그녀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가족에게 폐가 될까봐. 그렇게 그녀들은 할머니가 되어 갔다. 그저 지난 기억들은 없었던 것처럼 누구에게도 그 괴로움을 이야기 하지 못한채. 이젠 우리가 할머니들의 억울함을, 상처 받은 마음을 만져주어야 할 때다. 진정한 사과의 말을 일본은 건네야 할 때다. 우리나라 이곳 저곳에 세워지는 평화의 소녀상이 이제는 더 이상 맨발로 있지 않아도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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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나무에서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는 한국사 그림책 시리즈가 출간되었네요. 그 첫번째 이야기는 일제치하때 일본에 잡혀가 위안부로 살아야했던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나는 수요일의 소녀입니다>에요. 일제강점기때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보면 한국인으로써 분노가 치밀어오르는데요.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고, 다시는 그런 아픔을 되풀이하지않도록 힘을 길러야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나물캐러 나갔다 집에 돌아오는 오목이를 본 일본 순사들은 정신대가 되어야한다며 그녀를 다짜고짜 끌고가네요. 오목이와 소녀들을 군수품 취급을 하며 트럭에,열차에,배에 실어나르지요. 일본이 전쟁중이던 인도네시아로 끌려온 오목이는 그 곳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되네요. 연합군이 일본에 원자 폭탄을 터뜨리고 일본이 항복하자 한국으로 보내진 오목이.. 엄마,아빠가 그리워 고향집을 찾지만 차마 엄마,아빠 앞에 나설수가 없네요. 어린 소녀들이 그런 몹쓸짓을 당하고 평생을 수치스러움에 떨며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을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네요.
우리동네 공원에도 평화비가 있어서 소녀상을 볼때마다 마음한켠이 스산해짐을 느끼는데요. 역사적 아픔을 몸소 체험했던 분들이 나이가 들어 돌아가시고, 아이들뿐만 아니라 엄마세대도 시대적인 아픔을 잘 모르기에 그냥 과거에 있었던 일이라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을꺼에요.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지 못하고 외면하고 관심밖으로 내칠때 우리나라는 우리가 서 있을 자리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세계속에 우뚝설 한국은 과거와 역사를 토대로 세워진것이니까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였던 할머니들이 역사를 바로잡기위해 용기내었는데 우리가 그들을 외면하고 더 깊은 상처를 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는 계기도 되었네요. 일본의 조속한 사과조치가 행해져 평생 아픔을 간직한 우리 할머니들이 조금이나마 위안을 받고 남은 여생을 편안하게 보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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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요일의 소녀입니다 수요일의 소녀입니다. 는 일제 강점기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의 이야기입니다. 부모가 된 입장으로 이 책을 읽으니 주인공인 오목이가 너무 가엽고, 일본의 행태에 화가 나서 손이 떨릴 정도였습니다. 너무 가슴 아픈 일이라 눈을 감아버리고도 싶지만 나라가 힘을 잃으면 어린 소녀조차 지켜주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잊는다면 이런 일을 또 겪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리고 예쁜 십대의 오목이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라는 평범한 소녀였습니다. 친구와 나물을 캐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영문도 모른 채 일본 순사에게 잡혀갑니다. 사람취급도 받지 못한 채 물건처럼 배에 실려 하나의 군수품이 되어 위안소에 도착합니다. 오목이는 성적으로 육체적으로 일본군들에게 짓밟힙니다. 인간 같지도 않은 그들은 소녀들을 성노예를 만들어 온갖 고통을 줍니다. 행여 달아나기라도 하면 총살을 해버리고 병이 들면 짐승을 죽이듯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다 해방이 되어 오목이는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목이는 고향 집 앞에서 발길을 돌립니다. 자신의 모습을 보며 부모님에게 보여드릴 자신이 없었던 겁니다. 그 이후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오목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합니다. 그리고 수요일마다 일주한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의 잘못의 인정과 사과와 보상을 위해 정기 수요 집회를 엽니다. 여기서 나오는 오목이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실재 위안부 할머니들께서 수요일마다 집회를 20여 년간 여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지금도 망언이나 일삼으며 이를 무시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부고를 가끔 언론에서 접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우리는 이 아픈 역사를 잊지 말고 후세에 그대로 알려주어야 합니다.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려고만 하고 있고 이럴 때 우리 아이들이 역사를 바르게 알아야만 나라를 빼앗기는 일을 다시 겪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일본은 할머니들이 한분이라도 살아계실 때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와 적절한 보상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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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비가 들려주는 일제 강점기 이야기 " 나는 수요일의 소녀입니다 " (처음부터 제대로 배우는 한국사 그림책 시리즈 1) ' 나에게 수요일은 그냥 평범한 날이 아니야.
2011년 일본 대사관 앞에 처음으로 평화비가 세워졌습니다. 평화비의 그림자는 가슴에 나비를 단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일제 강점기시대 우리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 냈던 이땅의 모든 오목이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할머니 가슴에 달린 나비가 훨훨 날아올라 온 세상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루빨리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일본 정부의 사죄를 받아 내어 할머니들의 응어리진 한이 풀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목아, 밖으로 나돌지 마라. 요새 순사들이 처녀 공출을 하느라 눈이 시뻘겋단다." "놋그릇 공출, 쌀 공출은 알아도 처녀 공출은 처음 들어요" 일본은 총알을 만든다고 제사 지내는 데 쓰는 놋그릇과 촛대를 모조리 빼앗아 갔어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몸을 돌려 도망치려는데, 순사가 내 머리채를 휘어잡았어. "어딜! 천황 폐하를 위한 정신대가 되는 걸 영광으로 여겨라." 아빠는 순사에게 달려들었지만, 일본군은 징 박힌 장화로 아빠를 걷어찼지. 나는 그렇게 끌려갔어.
나는 트럭을 타고 어딘가로 끌려갔어. 엄마 아빠, 내가 알고 지내던 어떤 사람도 다시는 만나지 못했지. 일본은 우리를 물건처럼 취급했어. 군인들을 이동시키거나, 식량을 옮길 때는 서류가 필요한데, 그들은 우리를 '군수품'이라고 적었지.
위안소 생활은 비참했어. 군인들은 자기들 멋대로 나에게 일본식 이름을 붙였고, ... 날이 갈수록 내 몸은 약해졌어. 군인들은 병이 낫지 않는 여자들을 데리고 풀숲으로 들어갔어. 밀림 어딘가에 버렸거나 죽였거나...
인천에 닿은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어. 아무나 붙잡고 살구마을을 아느냐고 물었고, 신발도 없어서 낡은 헝겊 조각을 발에 친친 감고, 걷고 또 걸어 꿈에도 그리던 집을 찾아갔지만, 먼발치에서 보는 것 말고는 더 할 수 있는게 없었어. 내가 돌아가면 부모님은 부끄러워 할 것 같고, 사람들이 손가락질 할텐데.. 부모님께 그런 괴로움을 안겨 드릴 수는 없었지.
1991년 8월 모두들 입 다물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증언을 한 사람이 나왔어. 김학순 할머니였지. 그 뒤 많은 분들이 피해 사실을 고발했지만, 일본은 여전히 모른척 하거나 발뺌을 하고 있어. 기억을 파헤치는 것, 때로는 두려운 일이지만 그럼에도 숨기지 말고 드러내야 할 때가 있어. 두려움을 무릅쓰고 증언한 할머니들 처럼. 매주 수요일 12시면 일본대사관앞에서 위안부할머니들의집회가 열립니다. 연세도 많고, 몸도 불편하신 할머니들이 왜 시위를 하는 것일까요? 우리 아이들은 궁금해하면서, 할머니들이 시위를 하는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나는 수요일의 소녀입니다' 책으로 우리아이들이 일제 강점기 시대 일본은 우리나라에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이 책이 알게 해주네요. 일제 강점시 시대 억울하게 온몸으로 역사를 겪었던 할머니들의 억울함을 일본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해야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일본은 역사를 왜곡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할머니들은 점점 몸이 쇄약해지셔서 지금은 몇분이 남지 않았습니다. '수요일의 소녀'가 없어지면 잊혀질지도 모르니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부분은 정확이 알려주고 또 이런 아픈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힘을 보태면 좋을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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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전 문득 일본대사관 앞을 지나갈일 있어서 가다가... 아이가 엄마 저게 뭐야?? 하고 묻길래... 2학년인 딸에게는 차마 뭐라고 설명을 못해줬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이 책을 먼저 접한 나는 아직도 어린 아이에게 이 책을 보여주지를 않았는데 고학년이 되어서..알만한 나이가 되었을때는 꼭 보여주리라 마음 먹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 사람들의 성 노예가 되었던... 불쌍한 어린 여자아이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 해지고.. 그 당시 당했던 고통들을 생각해 보면... 가슴이 찢어질듯이 아팠습니다.
이런 슬픈 역사가... 사라지기 전에 진심으로 우리는 일본 정부에 사과를 받아야합니다.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진심어린 사과로 그 동안 피해 입었던 많은 사람들이 이미 고인이 되신 분들도 계시고.. 다들 연로하셔서 지금은 겨우 55분이 살아 계신다고 하는데 꼭 이분들께 눈물로 호소를 하셨으면 합니다.
기억의 먼 저편에서 묻혀질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1991년 8월에 용기 있게 증언해 주시는 김학순 할머니.. 일본인의 사죄를 받지 못하고 1997년에 생을 마감하셨는데.. 고인이 되신 김학순 할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라도 사죄를 받아야 합니다
1992년 1월 8일 수요일 일본 총리가 한국 방문시에 첫 시위가 열렸지만.. 아직도 해결이 된게 없답니다.. 지금도 수요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세계에서 가장 긴 기간 동안 벌어진 시위라는 사실이 가슴을 아프게 하네요 하루 속히 해결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뿐이 없네요...
평화비 소녀상이랍니다...
지금도 시위를 하고 있는 모습이랍니다
풀려나게 되었지만.. 갈곳도 없고..먹을것도 , 잘데도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합니다.
죽었다 생각하고 사시는게 맘이 편할것 같아, 부모님한테 가지도 못하고 되돌아 섭니다.
아이들도 읽고 나면 많은 이해가 될듯 싶어요~
이 가슴 아픈 역사.. 말로 표현 못할 아픔... 진실로 사죄를 받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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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침략 전쟁의 희생자, 할머님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 입니다. 책내용 중: 사람들은 나를 평화비 혹은 소녀상이라고 불러. 내 머리는 반듯한 단발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머리칼이 거칠게 뜯겨진 듯 잘려 있어. 부모 형제와 떨어진 전쟁터에 강제로 끌여간 아픔을 표현한 거래. 소녀 오목이는 외동딸로 엄마.아빠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귀한 자식 입니다. 어느 날 친구와 놀다가 집에 온 오목이는 총칼을 찬 헌병에게 머리채를 잡혀 끌려갔지요. 일본군은 오목이와 함께 소녀들을 강제로 배에 태워 머나먼 타국으로 끌고 갑니다. 오목이와 소녀들을 좁은 방으로 밀어넣어 군인들의 성 노예가 되어 마음과 몸을 망가트립니다. 그곳에서 병이들면 숲속에 내다 버리고, 탈출하다 발각되면 총살하기도 합니다. 일본 군인들에게 무자비하게 짓밟힌 소녀들은 삶과 죽음을 선택할 수 없었지요. 그저 그리운 고향을 꼭 돌아가겠다는 생각으로 이 악물고 정신을 놓지 않았답니다.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하고, 1945년 8월 15일 일본에게서 해방되었습니다. 오목은 포로수용소로 보내지고, 커다란 배에 태워 인천과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꿈에 그리던 고향을 밟은 나에게 사람들의 차디찬 시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비참하고 억울한 마음을 모르고 사람들은 그녀에게 돌을 던졌습니다. 그래서 그녀와 부모님을 위해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1991년 8월, 모두 입을 다물고 있을 때 가장 먼저 증언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 입니다. 지금 김학순 할머니는 안계십니다. 1997년 돌아가셨습니다. 그 뒤 많은 분들이 피해 사실을 고발했습니다. 그들은 역사 앞에 부끄러워 사죄해야할 지금, 아무 말이 없습니다. 매주 수요일 평화비가 있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집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소녀들의 꿈 많은 시절을 무참히 짓밟은 그들에게서 사과의 한 마디를 받고자 용기낸 할머님들의 마음을 헤아려 줬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