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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하게 발견한 장샤오위안의 <고양이 서재>입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은 뒤에 생긴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었거나, ‘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쓰는 삶, 만드는 삶’이라는 부제가 눈길을 끌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저자 소개에 따르면 장샤오위안 (江曉原)은 과학사학자, 천문학자, 성학자性學者이자 저자, 번역가, 편집자, 서평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활자 중독자이자 책벌레라고 합니다. 그리고 난징대학교 천문학과를 나와 베이징의 중국과학원 자연과학사연구소에서 과학사를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과학원 상하이천문대에서 오래도록 일했고 상하이교통대학교에 중국 최초로 과학사학과를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중국 고전과 인문서에 탐닉하고 커서는 과학사를 공부한 그는 인문과 과학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중국의 융합적 교양인이라고 소개되었습니다. 책내용도 좋았습니다만, 모두에 실린 출판평론가 표정훈 교수의 추천사도 인상적이었습니다. 7세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 <서유기(西遊記)>, 13세기 칭기스칸의 참모 야율초재가 쓴 <서유록(西遊錄)>, 20세기 초의 유길준이 쓴 <서유견문(西遊見聞)> 등의 공통점은 서쪽 세상의 경험을 적은 ‘서유(西遊)’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하면서 서쪽(西)을 서(書)로 바꾸어 ‘서유견문(書遊見聞)’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책을 유람하며 보고 들은 것‘이라고 풀이했습니다. 그리고 ”유람하듯 책을 읽고 실제로 보고 체험하며 사람들에게 들어서 배우는 일도 게을리하지 마라.“고 조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칸트를 흉내에서 ”체험 없는 읽기는 공허하고, 읽기 없는 체험은 맹목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자는 청소년기에 문화대혁명을 겪었다고 합니다. 문화대혁명으로 문화는 거대한 재난을 만났다고 한 저자는 이를 진시황의 분서갱유에 비유했습니다. 마오쩌둥이 신격화되어 있는 중국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도 경천동지할 일이지 싶습니다. 마오쩌둥의 어록이나 루쉰의 책만이 허락되었던 시절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저자는 그런 길을 찾아내 다양한 책들을 두루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개인의 소소한 독서사라고 할 수 있는 <고양이 서재>를 읽다보니 단순 비교를 할 수는 없지만 저자와는 닮은 점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자가 천문학자로 순수과학을 하고 있다면 필자는 의학이라는 응용과학을 하고 있어서 이과계라 할 수도 있는데도 책을 읽고 책을 쓰는 인문계의 성향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 닮았다고 하겠습니다. 어린 시절 교사였던 아버지가 학교에서 책을 가져다 주었다는 점도 저와 닮은 점입니다. 물론 저자처럼 책읽기를 좋아하는 동무들과 연락망을 만들어 감시자의 눈을 피해 책을 읽었다는 저자처럼 다양한 책을 두로 섭렵하지 못했던 차이가 있고 체계적으로 책을 수집하는 장서가라 할 정도는 아니고, 잘 정리된 서재를 가지고 있지 못한 필자와는 차별되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그의 서재에는 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을 때는 책을 복사한 다음 장정을 해서 서재에 꽂았다는 것입니다. 책벌레이기도 하면서 다수의 책을 쓴 저자인 그는 책을 쓰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에게 책의 집필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일이다.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뇌의 노동이라는 게 그렇게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을 쓸 때는 집 안이 고요하고 정적에 휩싸여야 한다. 내가 당나라 시인 노조린(盧照隣)의 시에서 이 구절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쓸쓸하고 고요한 구석의 집. 해마다 언제고 시렁 가득 책뿐. 오로지 남산의 계화꽃잎만이 옷자락 사이를 팔랑팔랑“ 필자 역시 남원의료원에서 첫 번째 책 <치매, 바로 알면 잡는다>를 쓸 때와 <치매 고칠 수 있다>와 유성 선병원에서 <치매 걱정 없이 10세까지 살기>를 같이 쓸 때는 시간 여유도 많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지 않아 집필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평소에 자투리 시간을 내거나, 심지어는 출근길 지하철에서도 휴대전화로 초고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만든 초고를 주말에 집중해서 가다듬어 원고를 만들기도 합니다. 책읽기와 책쓰기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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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길 때마다 기쁨을 주는 책, 고양이의 서재. 인터넷 필명은 제다 고양이로 하면서 정작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저자 장샤오위안. 마흔이 되면 고양이를 꼭 길러보겠다며 진즉에 이름까지 지어놓고도 이젠 그 소망마저 사그라들었다는 글의 첫 시작부터 맘에 와닿는다. 책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면서 자신들이 읽었던 책을 소개하고, 묻혀져있던 작품을 알려주는 서평집도 좋지만 이렇게 순수하게 책바라기의 글도 참 좋았다. 위에 적은 것처럼 책장을 넘기는 것 자체가 아쉬웠을 정도. 글자크기도 크고 판형자체도 크지 않아 완독이 목적이라면 2시간 이면 충분히 읽어낼 수 있지만 그 어떤 책보다 오랜시간 붙들고 있었다. 더 읽고 싶지만 참아낸 적도 있고 도록을 모은다거나 취향이 같은 동료를 두었다는 내용을 볼 때면 부러움에 책장 넘기는 손이 떨려왔다. 얼마전 읽었던 책 독학에서 책 살돈이 아까울 정도로 빚을 지거나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하다면 잘못된 인생이라고 볼 수 있다했을 때 반신반의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유럽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도 아니면서 도록 한권 사기 어려운 형편이라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국내에서 전시중인 전시회에 방문했을 때도 기념품에 목메곤 했는데 작품 하나하나 코멘트가 달린 도록을 사는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다. 저자는 문화혁명 당시 청소년기를 맞아 외적인 단절로 오히려 책 읽는 것에 대한 절절함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결혼을 양가에서 반대하는 커플일 수록 애정이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그러고 보면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연유는 맞벌이 하는 부모님께 좋은 성적은 못보여 드려도 적어도 생각 할 줄 아는 아이, 밖에서 겉돌지 않고 안에서 조용히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책임감 있는 아이로 보여지는 게 좋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부모님께서 골라서 사놓은 책을 읽었고 그 책을 다 읽은 후에 학교 도서관을 이용하는 몇 안되는 아이 중에 하나가 되었다. 스스로 밥벌이를 하게 되면서 가장 기뻤던 것도 읽고 싶은 책을 망설임없이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였다. 그런 면면이 저자와 혹은 이 책을 만족스럽게 읽을 독자들과 비슷할거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읽는 다른 이들까지 떠올리며 기뻐하게 되는 것은 처음이었다. "여자들이 옷을 쇼핑하는 게 내가 책을 사러 서점을 다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81쪽 또래의 여자들에 비해, 멀리 갈 것 없이 두살 위 언니의 옷장만 열어도 나보다 족히 서너배는 넘는 옷이 있는 걸 봐도 확실히 옷보다 책을 더 좋아하는 게 맞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거나 예뻐 보이고 싶은 애인이 없었더라면 단벌이어도 만족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다. 이런 공감되는 부분도 있지만 역시나 부러운 게 많은 저자다. 과학전문서적을 출간 할 만큼 문과 이과를 가리지 않는 그의 영역은 책을 좋아하는 이들은 대다수가 부러워 하는 부분이다. 장하석 교수의 신간을 접할 때 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과학서를 대중이 알기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 능력이 놀라울 정도다. 에세이 쓰기가 일반화된 미국이나 유럽사회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런 경향이 많아 그쪽에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이점 덕분일 것이다. 서평을 쓸 때 서평가가 자기 돈을 주고 해당 책을 사야 그 서평이 독립적이고 '깨끗'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출판사에서 증정하는 책으로 추천의 글을 쓰거나 평론하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도 한다. 이 생각은 유치하다. 136쪽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있는데 출판사나 이벤트로 도서를 받는 사람들은 무조건 호평을 남긴다거나 제대로 읽지 않고 서평을 쓸 것이다, 받기만 하고 정작 책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내 경우는 저자와 마찬가지로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애당초 읽고 싶지 않은 책이라면 받지 않는다. 앞서 예로 들었던 옷으로 보자면 아무리 옷을 좋아한다고 자기 스타일이 아닌 옷을 넙죽 받아오는 여자는 거의 없다. 선물받은 옷이 맘에 안들면 그만큼 피곤하고 안타까운 일이 없는 것처럼 책도 그렇다. 아무리 공짜라도 애초에 읽고 싶었던 책이 아니라면 욕심내지 않는다. 그렇기에 읽고서 정말 맘에 들면 책을 보내준 출판사에 대한 고마움과 좋은 책을 다른 사람들도 사볼 수 있도록 서평쓸 때 심혈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맘에 든 책이라면 지인에게 선물하기 위해 사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지난 달 새집으로 이사오면서 그토록 그리던 작지만 알찬 나만의 서재가 생겼다. 그 기쁨을 블로그에도 남겼을 만큼 그 기쁨이 새록새록 돋아나 이 책을 읽는 시간 내내 행복했던 것 같다. 서재가 없는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구체적으로 꿈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 서재를 원하는가? 읽어야 할 책이 아니라 읽고 또 읽고 싶은 책들로 가득한 서재에 이 책 만큼은 꽂아두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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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것에 그치지 않고 책에 대한 책을 찾아 읽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의 책에 대한 책 찾아 읽기는 주변에 책을 책 자체로 즐겨 읽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외로움을 떨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지도 모르겠다. 이번에 읽은 책은 고양이의 서재다. 중국인의 책이야기라는 점이 특이하다. 중국에도 활자중독자가 있을까? 책을 읽고난 뒤 감상은 이 사람도 책에 정말 미친 사람이구나. 라는 것이었다. 책을 즐겨 읽는 사람들의 공통점이랄까. 어린 시기 또는 청년 시기에 가난하게 책을 읽은 경험이 있다. 여기서 '가난하다'라는 것은 반드시 물질적 가난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책 한권 한권이 너무나도 귀해서 책에 대한 갈증이 다른 갈증보다 더 높았던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장 샤오위안도 지금은 성공한 학자지만, 어린시절에 그런 시기를 겪었다. 성장기에 문화대혁명을 경험한 것이다. 세상이 흉흉하고 어려웠던 가운데 그는 동료(?)들과 구하기 힘든 책들을 돌려보고, 간혹 보이는 희귀한 혁명 이전의 책들을 읽는 쾌감으로 성장기를 보낸다. 그러던 사이에 그는 어엿한(?) 활자중독자가 되어 있었고, 더이상 책이 귀하지 않은 시대가 되어도 이미 돌아갈 수 없게 되어있었다. 저자는 이과학부를 졸업했지만, 이과와 문과의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고 할 과학사를 전문으로 하고 있다. 나는 여기에 저자의 독서중독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활자중독자의 몇 특성 중 하나가, 신기해 보이거나 희귀해 보이면 내 분야가 아니라도 꼭 찾아 읽어보는 갈증에 약하다는 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부류는 대개 다양한 부류의 지식을 섭렵하다보니, 어느 한 파트에 사고가 매이기보다는 전체적인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저자의 독서기를 보면, 실제로 다양한 책들을 섭렵하고 있었다. 이 책은 저자의 독서편력을 삶과 함께 서술하고 있는 부분과 저자 스스로 또 다른 직업이라고 생각하는 듯한 서평가와 서평에 대한 생각, 책을 좋아하는(이라고 쓰고 미친이라고 읽는다) 지기들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희귀한 책으로, 활자중독자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으니 본인이 활자중독자라고 생각한다면 절판된 후에 말도안되는 가격으로 중고서점에서 보고 후회하지 말고 빠른 시일내에 서점 도는 도서관에서 찾아보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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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도서 집필과 출판이 자유로워진 시대, 심지어 진입 장벽마저 IT기술의 해일이 쓸어가버린 덕에 온전히 맨 모습을 보인 채 도서출간은 개인의 의지만을 기다리고 있다.만약 누군가가 쓸데없는 책을 내려고 온갖 골머리를 짜내고 있다면, 나는 당당히 이 책을 건네리라. 이 책은 쓸데없이 책을 내려는 자에게, 특히 아주 작은 명예욕이나 추억거리를 만드려는 자에게, 혹은 그냥 이름 석자를 밖에 내보이고 싶은 자에게 경종을 울릴 만한 책임에 틀림없다. 저자가 사용한 소재는 사실 대단한 게 전혀 아니다. 다만, 천문학과 성학을 공부한 자고, 숫자 연산과 논리적 계산 과정이 싫어 이과에서 문과로 자신의 정체성을 못박아 버린 이들에게 양자의 조합은 스스로 흥미를 유발함으로써 가능하다고 알려주는 평범한 자다.이과와 문과는 굳이 나눠놀 필요가 없었던 것인데, 어느 연유로 이와 같은 사태가 한국에 생겨나 모르겠다. 이마저도 일본의 영향 탓인가. 대체 일제시대 잔재는 한국 문화에 얼마나 깊이 침투한 것일까. 물론 확인한 바 없지만, 이과 문과 개념이 미국 교육계에는 대학 전공으로 나뉘는 걸로 알고 있다. 교육 과정은 sat로 통일된 채로 말이다. 아무튼 이과와 문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저자의 책읽기는 올바른 독서의 표본이라고 확신한다. 어줍잖은 글쟁이들이 많아서 글솜씨를 뽐낸다고 쓴 책을 읽노라면, 하나 같이 비슷한 문투가 시야를 흐리고 읽기 감각을 마비시킨다. 특히 잡지사나 영화 평론, 개인 홍보 블로그에서 흔히 접한 문투는 정말 싫다. 이 책은 그런 지루함과 얕은 글쓰기에서 몇 단계를 뛰어넘어, 아니 차원 자체가 다른 소재 및 글로 시작부터 끝까지 장식하고 있다. 진정한 책쟁이이자 올바른 독서가인 저자는 음식 편식만큼이나 소설이나 특정 장르에 치운친 독서가들에게 나즈막히, 그리고 그의 독서와 함께 한 인생 여정으로 진정한 독서를 몸소 보여준다. 문화대혁명기라는 말도 안되는 소요 속에 지식인들은 지적 쾌감을 감추고 살아야 했는데, 그 때 저자는 독서의 즐거움을 애타는 기다림으로 승화시킨 듯하다. 마치 군대에서 책 읽고 싶어 미치겠던 내 감정 상태와 조금은 유사하리라 짐작한다. 3만권을 보유한 저자에 한참 못미치지만, 창고에만 전공서적이 200여권 있고, 방에는 600권가량, 사무실에는 100여권가량 있다. 유년기책은 한권도 없고, 오로지 순수 독서용 책으로만 700권정도 있어서 방이 책으로 빼곡하다. 3만권은 솔직히 일반 개인이 보유할 수 있는 분량을 넘어선다. 역시 저자는 진정한 독서가이자 책벌레라 할 수 있겠다. 과학부터 인문, 역사까지 읽어대는 독서 습관을 똑깥이 향유하는 사람이 대륙에 얼마나 많을지 궁금하고, 언젠가 함께 의견을 나눌 기회가 있으면 하는 마음으로 고양이의 서재를 즐겁게 읽었다. 이런 책이 개인 집필과 출간의 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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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쓰는 삶 만드는 삶’이라는 부제를 갖고 있는 <고양이 서재> 하루종일 서재에 책 사이를 지나다니는 고양이고 싶었다는 장샤오위안의 책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면 나의 또다른 취미생활중 하나인 십자수로 그려낼 수 있는 그림인 책장에서 잠든 고양이가 자꾸만 떠올라서 책을 읽는 내내 여유롭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거기다 새로 편찬해서 내놓은 책을 딸에게 선물해주어도 예전 책을 추억이라며 아끼는 이야기는 너무나 나랑 닮아 있어서 괜히 친구처럼 느껴지는 책이기도 했다. 그는 문화대혁명이 일어난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다. 봉자수라고 하여 봉건주의, 자본주의, 수정주의에 해당하는 그리고 중국의 전통문화, 서구문화까지 거의 모든 책이 ‘독초’로 분류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책을 사랑하게 된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책을 유포시키는 허브 역할을 했고, 부모님 덕에 조금 길게 빌려볼 수 있는 책들은 직접 필사를 했을 정도로 책에 대한 열정의 뛰어났던 인물이다. 특히 그때는 중국 고전 문학을 정말 좋아했는데, 시를 짓는 율격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선생님에게 혼이 난 후, 스스로 수많은 율시를 골라 정리하고 규칙을 찾아낼 정도였다고 한다. 그렇게 문학에 빠져 있던 그이지만, 대학은 또 이과쪽으로 갔다가 대학원은 또 문과와 이과를 연결시키는 과학사를 공부했다. 그의 대학 입학 성적표를 보면 이과랑은 전혀 적성에 맞지 않았던 나의 성적 분포를 보는 느낌이랄까? 지금은 과학사학자이자 천문학자 거기다 저자, 번역가, 편집자, 서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다재다능한 인물이기도 하다. 상하이 천문대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다, 아직 그렇게 노인처럼 보낼 나이는 아니라는 친구의 조언에 상하이 교통대학교에 중국 최초로 과학사학과를 만들기도 했다. 또한 그의 서재는 이동책장을 통해 이만 권이 책을 수납하여, 많은 매체에서 취재를 오기도 했다니 여러모로 참 흥미로운 인물이기도 하다. 나에게는 딸과의 일화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책에 대한 탐욕을 그대로 닮은 딸과 딸의 취향이 다시 아빠에게 영향을 주는 그런 이야기었다. 나 역시 아빠의 독서습관을 그대로 물려받았고, 책을 읽다가 너무 좋은 책은 새로 구입해서 아빠에게 선물하기도 한다. 또 아빠가 책을 읽고 남겨놓은 메모를 보고 내가 읽을 책을 고르기도 하기 때문이다. 책을 너무나 사랑하는, 활자중독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공감할 거리가 많은 책이기도 하고, 서평을 쓰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팁이 많고 또 우리에게는 조금은 낯선 중극 현대사회의 흐름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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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샤오위안.고양이의 서재
고양이의 서재. 책 제목만 봤을 때 어떤 내용의 책일지 쉽게 분간이 가지 않았다. 부제는 '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쓰는 삶, 만드는 삶'이다. 책과 관련된 이야기인가? 작가는 놀랍게도 중국 책벌레이다. 주인공은 장샤오위안. 이 책의 저자인 장샤오위안은 그의 인생을 책과 연관지어서 에세이 형식으로 담담하게 서술한다. 중국인 저자의 책을 읽은 기억이 없어서 이 책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고, 이번 기회에 읽게 되었다.
저자인 장샤오위안은 과학사학자, 천문학자, 성학자이자 저자, 번역가, 편집가, 서평가라고 한다. 그의 이력이 매우 독특했다. 난징대학교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베이징의 중국과학원 자연과학사연구소에서 과학사를 공부,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박사학위를 바탕으로 상하이교통대학교에서 중국 최초로 과학사학과라는 특이한 학과를 만들었다. 어려서 중국 고전,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성인이 되어서는 과학에 관심을 가졌다. 책날개 저자 소개 란에는 '중국의 융합적 교양인'이라는 멋진 단어로 장샤오위안을 설명한다.
그의 이야기는 크게 서재 이전과 서재 이후로 나뉜다. 서재 이전. 첫 문장은 진시황의 분서갱유로 시작된다. 진시황은 분서갱유를 일으키면서 모든 이단 사상, 정권에 반하는 서적들을 금지시켰다. 장샤오위안은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보면서 그 때를 떠올렸나보다. 중국의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거의 모든 서적이 금서 목록에 올랐다. 장샤오위안은 마오쩌둥의 어록과 루쉰의 책만 읽을 수 있었다. 금서 목록이 있었기 때문에 저자가 오히려 책에 호기심을 갖고, 아버지, 고모 등 가족들을 통해서 책을 구해서 읽을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의 경험이 현재의 중국 책벌레로 만든 것이 아닐까.
서재 이후 파트에서는 서평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인상적이었다. 서평을 쓸 때 서평가가 자기 돈을 주고 산 책에 대한 서평만이 독립적이고 깨끗한 것일까. 저자는 매우 '유치한' 생각이라고 잘라 말한다. 직접 산 책이든, 출판사에서 후원을 받은 책이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의 논리를 따르면 출판사에서 보내온 책, 후원받은 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평을 쓰지 않으면 된다.
좋은 서평에는 세 가지 의무가 있다. 첫째, 책을 소개한다. 둘째, 책을 평가한다. 셋째, 재미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 독자와 공유하는 작업이다. 전적으로 장샤오위안의 의견에 동의한다. 대부분의 서평들은 첫째에서 머무르지만, 좋은 서평들은 위의 세 가지 조건들을 모두 충족한다. 줄거리 요약 뿐이 아닌 서평가의 생각이 들어가고 서평을 읽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나 역시 책을 읽고 좋은 서평을 쓰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직 내공이 많이 부족하고 연습을 부단히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중국인 책벌레 장샤오위안의 서재 이야기. 책에 왜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하여 성인이 되어 서평가로 이름을 날리기까지. 어떻게 보면 그의 에세이가 아닌 그의 자소전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에 대한 마음가짐,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저자 장샤오위안에 감정이입하여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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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에 도착해야 할 책이 도착하지 않는다. 택배 아저씨에게 전화를 했더니 오늘 중으로 가져온다고 한다. 아직 설 명절이 일주일 넘게 남았는데 이렇게 늦게 도착하다니. 괴씸한... 어쨌든 어제저녁 책이 왔다. 책이 올 때까지 퇴근하지 않고 기다렸다. 그렇게 얻은 책. 오자마자 의식을 집행한다. 나의 이름으로 사인하고, 책을 받은 날짜와 구입처 등을 적는다. 그리고 간단한 메모도 한 적도 있다. 이렇게 의식을 마치면 단체 사진을 찍는다. 즐거운 일 아닌가. 정말 오랜만에 책을 구입했다. 고작 1주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1월은 책을 거의 사지 못했다. 책의 목마름이 심해 12만 원어치의 책을 질러 버렸다. 아내는 기꺼이 눈 감아 주었다. 그동안 책을 거의 사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제부터 곧장 읽기 시작한 <고양이의 서재>. 정말 재미있다. 이 책까지 합하면 유유 출판사의 책은 모두 세권이 된다. 작년 12월에 읽은 <단단한 독서>와 작년 봄에 읽은 세르티양주의 <공부하는 삶>이 있다. 유유출판사는 모두 공부와 독서라는 키워드로 이루어진 책들이다. 일인 출판사로 알려진 이곳은 지금까지 약 28권 정도 출판한 것으로 안다. 맘에 드는 출판사다. 기회가 되는 대로 몽땅 사고 싶다. 이 책은 쟝샤오위안이란 중국 작가의 독서와 글쓰기 이야기다. 표지에 적힌 "어느 중국 책벌레의 읽는 삶 쓰는 삶 만드는 삶"이란 문장은 이 책의 핵심이다. 방금 전까지 12쪽까지 읽었다. 251쪽까지 있으니 거의 절반은 읽은 셈이다. 처음에도 재미있고 지금도 재미있다. 오늘 읽은 분량은 1장부터 4장까지다. 5장 '나의 서평 생활'은 지금까지 읽은 것과 사뭇 다른 내용을 다룬다. 이제까지는 읽기에 치중했다면 5장부터는 '쓰기'에 치중한다. 물론 앞 부부에서도 논문과 책쓰기 관련 이야기들이 틈틈이 밝혀있지만 말이다. 나는 책에 대한 글을 쓰면서 텍스트를 폰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는 글을 보면 짜증이 난다. 부족한 부분을 사진으로는 메꾸려는 속셈으로 보인다. 나의 글은 사진이 아예 없거나 참고가 될만한 사진은 가장 아랫부분에 위치시킨다. 가끔 한 두 장을 더 넣기도 하지만. 그런데 오늘 문득 사진을 찍어 함께 올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밑줄 치고 벌겋게 립스틱을 칠해놓은 문장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울렁거리고 무릎이 쳐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나는 천성적으로 책에 밑줄을 많이 치는 편이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한 번 읽었는데도 지저분해지기 일쑤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정도가 심하다. 아직 절반뿐인데 수많은 곳에 줄이 쳐지고 과한 립스팁을 발라 놓았다. 어찌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리도 잘 아는지 표시해 두고 싶은 것이다. 시뻘건 립스틱이 발라진 문장 몇을 골라 담았다. "이 인용문이 불러일으키는 감흥에는 소련 소설을 읽던 그때의 기억이 포함된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마다 기억하는 세부 사항이 달라졌지만 당시에 '무엇을 원하는가'에 대한 곤혹과 이 책이 가져다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어려운 독서의 쾌감'이 한 세대의 집단 기억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p.36 "여자들이 옷을 쇼핑하는 게 내가 책을 사러 서점을 다니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오늘처럼 서점을 몇 군데나 돌았는데도 좋아하는 책을 전혀 구하지 못하면 돌아오는 길에 다리도 유난히 뻐근하고 온몸에 힘이 없더라고." p.81 "얼마 전에 책을 정리하다 이십 년 전에 보고 싶다고 말했던 책을 발견했다. 그 책은 이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읽지 못했다." p.95 "독서에서 가장 좋은 경지는 놀이 삼아 읽다가 역사 자료를 발견하는 것이다." p.108 "예를 들어, 하룻밤을 꼴딱 새운다면 한밤중에는 누구도 방해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 한 번쯤은 괜찮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잦아지면 책을 한 권 쓰고 난 뒤 병원 신세다." p.113 이런 고백은 애독가라면 수시로 겪는 즐거운 고통이다. 잃어버린 책을 책장 정리하다 발견하고, 오래전 읽은 책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 안에 적힌 메모를 보고 추억에 빠지기도 한다. 삶이 곤고하고 힘들어질 때 독서는 최고의 위안이자 친구이다. 날이 밝아오고 있다. 바쁜 날이다. 하루 종일 이리저리 뛰어다니겠지. 그러나 독서의 즐거움을 알기에 그것도 즐겨야 할 일이다. 오늘 안으로 이 책을 다 읽을는지 모르겠다. 읽고 싶다. 책의 두께도 적당하고, 크기도 손안에 쏙 들어온다. 맘에 든다. 겨울이니 잠바 호주머니에 구겨 넣어도 들어갈 정도다. 유유출판사의 책들이 대부분 이런 사이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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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있으면 부자이고 일 없으면 신선이라는 글에 저자의 책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서재를 작업실이자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매체의 방문을 맞는 응접실이자 시청각실로 이용한다. 일도 공부도 휴식도 서재에서 한다. 가장 좋아하는 날은 하루 종일 바쁘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날이며, 하루 종일 서재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이라고 한다.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비치는 서재에서 게으른 고양이가 책과 디브이디 사이를 거닐다 앉았다 하며 동서고금의 신기하고 이상한 일들을 생각하는 모습을 언제나 상상한다고 한다. 오죽하면 스스로 쓴 묘비명이 “그는 늘 자신이 즐거운 고양이기기를 바랐다.”일까. 3만 권이 넘는 책을 소장하고 있는 저자가 소년 시절부터 읽기 시작한 책과 인생 이야기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책에 소개된 저자의 이력이 책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과학사학자, 천문학자, 性學者이자 저자, 번역가, 편집자, 서평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활자 중독자이자 책벌레. 난징대학교 천문학과를 나와 베이징의 중국과학원 자연과학사연구소에서 과학사를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중국과학원 상하이천문대에서 오래도록 일했고 상하이교통대학교에 중국 최초로 과학사학과를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중국 고전과 인문서에 탐닉하고 커서는 과학사를 공부한 그는 인문과 과학을 조화롭게 아우르는 중국의 융합적 교양인이다. 최근에는 SF를 읽고 보고 즐기고 있다. 『천문학의 근원』, 『雲雨 : 성이라는 장력 아래의 중국인』 등 과학사와 성학을 다룬 50여 권의 책을 썼고,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천문학사』 등의 책을 번역했으며, 중국의 과학 문화를 다루는 총서를 책임 편집했다.
경계가 없는 활자 중독 지식인이다. 천문학과를 나와 중국에 처음으로 과학사학과를 만들었으면서도 性學을 자기의 두 번째 전공이라고 공공연히 말하는 데다 이후에 과학소설 서평과 영화평론을 쓰고 책을 내는 일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니 비난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특히 학계에서는 못마땅하게 여기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저자는 세간의 평가에 그리 좌우되는 것 같지 않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즐기고 있을 따름이다. 기저에는 언제나 책이 있다. “어떤 일에 흥미가 생기고 그 분야에 좀 더 깊이 들어가고자 할 때는 관련된 책을 읽”는 게 순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여, “그는 늘 자신이 즐거운 고양이기기를 바랐다.”
지금까지 독서는 나의 낙이었다. 내 인생의 정신적 지주였다. 나는 독서를 통해 나 자신을 지탱하고자 했다. 독서는 나 자신이 진실로 꽉 차있다고 느끼게 해 주었고 허황되지 않았다. (83쪽)
난 젊은이들에게 이럴게 말한다. 좋은 글을 써서 좋은 간행물에 발표하면 누군가 당신의 글에 주목할 것이다. 그렇게 여러 편의 영향력 있는 글을 쓰고 나면 책을 쓰자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면 고생할 필요도 없고 원고료가 없다느니 도리어 돈을 내야 한다느니 이천 부를 통째로 구매하라느니 하는 모옥적이고 고통스러운 말을 들을 필요도 없다. 출판사에서 당신을 찾아오게 하라. 출판사에서 날 찾아오게 된 원인도 그들이 내 글을 봤기 때문이다. (130 - 131쪽)
좋은 서평에는 세 가지 의무가 있다. 첫째, 책을 소개한다. 이 점은 책을 읽고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둘째, 책을 평가한다. 책을 적절한 배경에 놓고 평가하는 일인데 일부 사람은 해내지 못한다. 서평가는 해당 책과 비슷한 책이나 관련된 주제를 이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건 상대적으로 더 어려운데 서평가의 취향에 달렸다. 책에서 재미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 독자와 공유하는 작업이다. 자기 취향이 없는 사람은 이 작업을 할 수 없다. 자기 자신이 제대로 가지고 놀지 못했으니 그 안에서 재미있는 걸 찾기도 어렵다. 아니면 분명히 재미있는 것인데 작가가 재미있게 여기지 않아서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하기도 한다. 제법 힘겨운 일이다. (138 - 13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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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 삶읽기 300 아름다운 책 둘레에 즐거운 책 ― 고양이의 서재 장샤오위안 글 이경민 옮김 유유 펴냄, 2015.1.24. 12000원 처음에는 책 한 권입니다. 글씨가 찍힌 종이를 묶은 꾸러미로 보이던 것이 책인 줄 알아차리고, 이 책을 찬찬히 넘기다가 어느새 푹 빠져듭니다. ‘읽다’가 무엇인지 깨달으면서 삶읽기가 책읽기로 뻗고, 어느새 사람읽기와 마음읽기로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책을 하나 만났기에, 다른 아름다운 책이 더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 권 곁에 두 권이 놓입니다. 아름다운 책 둘레에 즐거운 책이 놓입니다. 즐거운 책 언저리에 사랑스러운 책이 놓입니다. 사랑스러운 책 가까이 멋스러운 책이 놓입니다. 어떤 기자가 내게 “만약 스스로 묘비명을 쓴다면 뭐라고 쓰겠습니까?”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내 대답은 이랬다. “그는 늘 자신이 즐거운 고양이이기를 바랐다.” 이 바람은 지금도 여전하다.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비치는 서재에서 게으른 고양이가 책과 디브이디 사이를 거닐다 앉았다 하며 동서고금의 신기하고 이상한 일들을 생각하는 모습을. (17쪽) 장샤오위안이라는 분이 쓴 《고양이의 서재》(유유,2015)를 읽습니다. 책에는 딱히 고양이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책 첫머리에 ‘빗돌에 적히고 싶은 글’로 고양이 이야기가 짧게 나올 뿐입니다. 그런데 책을 첫 줄부터 끝 줄까지 다 읽고 보니 다른 생각이 들어요. 어느 모로 본다면 고양이가 낮잠을 자고 먹이를 찾고 마실을 다니듯이 책 사이에서 홀가분하면서 호젓하게 삶을 누리고 싶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 서재”란 고양이 같은 모습이나 몸짓으로 삶을 일구었다는 뜻일 수 있어요. 책을 읽고 사랑하며 가까이한 삶은 마치 고양이가 느긋하면서 한갓지게 볕바라기를 하거나 낮잠을 자는 듯한 모습이나 몸짓이었다고 할 만해요. 역사 사건의 발생은 시간과 공간을 포함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우리는 역사를 죽도록 암기하는 과목으로 알고 지내며 그저 시간이라는 한 축에만 주의를 기울여 왔다. (68쪽) 나는 다른 사람에게 책을 빌려주지 않는 편이다. 돌려받지 못할까 걱정하는 탓이다. 책에 대한 나의 애정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책을 빌려 가고도 신경 쓰지 않고 아무렇게나 굴리다가 책을 잃어버리면 없어졌나 하고 만다. (85쪽) 사람은 책만으로 배우지 않습니다. 사람은 삶에서 배운 이야기를 책에 담습니다. 사람은 책만 쓰거나 읽지 못합니다. 사람은 삶을 짓는 즐거움이나 기쁨이 있어서 책을 쓰거나 읽습니다. 삶을 깊이 바라보면서 책을 깊이 읽습니다. 사람을 넓게 마주하면서 책을 넓게 읽습니다. 삶을 두루 헤아리면서 책을 두루 헤아립니다. 사람을 사랑스레 얼싸안으면서 책을 사랑스레 얼싸안습니다. 《고양이의 서재》를 쓴 분은 스스로 수많은 책을 읽으며 배우는데, 책으로뿐 아니라 다른 숱한 삶자리에서도 고루 배웁니다. 그리고 이렇게 배운 이야기를 언제나 스스로 글로 옮겨 새로운 책 한 권으로 내놓습니다. 왜 좀더 참신하고 새로운 건 없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다들 어두운 미래를 그리면 왜 밝은 미래를 그리는 사람은 없나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반성이라는 관점에서 이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밝은 미래로는 반성을 이야기하기 힘들다. (164쪽) 자기 책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일은 자기 책이든 아니든 세상의 좋은 책을 모두 사랑하는 일이다. (188쪽) 최남선은 《삼국사기》를 정리한 사람이기도 하다. 해제는 한국어로 쓰였지만 대단히 ‘학술적’인 글이라 글에 한자가 많았다. 이런 분야에서 일본과 한국은 꽤 닮아서, ‘학술적’인 글일수록 한자가 많다. (206쪽)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딛으면서 책을 한 권 읽습니다. 앞으로 두 걸음을 내딛으면서 책을 두 권 읽습니다. 찬찬히 내딛는 걸음마다 책을 한 권씩 곁에 둡니다. 그리고 새롭게 배우는 만큼 새로운 이야기를 손수 써서 아이나 이웃한테 남깁니다. 우리 스스로 길어올린 아름다운 삶과 살림이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이라는 모습으로 책에 적힙니다. 새롭게 짓고, 새롭게 나누어요. 새삼스레 읽고, 새삼스레 써요. 아름다운 책 둘레에 즐거운 책을 놓고 싶은 마음이 자라면서 서재를 이루고 도서관이 태어납니다. 네가 쓴 책을 내가 기쁘게 읽고, 내가 쓴 책을 네가 반갑게 읽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짓는 사람이요, 우리는 모두 배우며 나누는 사람이로구나 싶습니다. 2017.8.20.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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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고양이의 서재-장샤오위안 서재의 고양이 장샤오위안, 그리고 벚나무 밑의 고양이였던 나 짜라의 이상한 도서관을 채우기 위해 먼저 두 편의 책이야기를 했다. <연금술사>와 <데미안>. 계획대로라면 뒤이어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해변의 카프카>,<태엽감는 새>, 파울로 코엘류의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피에트라 강가에서 나는 울었네>,<악마와 미스 프랭>, 폴 오스터의 <환상의 책>,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 같이 나와 군대 시절을 함께한 책들을 이야기하려 했다. 하지만 몸이 아프고나서 이런 저런 일로 글을 쓰지 않았더니 생각이 바뀌었다. 책이야기를 굳이 연대기적으로 쓸 필요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나는 2015년 3월 29일로 10년이 넘는 시간을 건너뛰었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고른 발전이란 인간으로서 추구할만한 목표임에 들림없다는 사실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조롭고 재미없는 인생을 원하지도 않을 테고 원해서도 안 된다. 문과와 이과를 아우르려는 노력은 결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시간은 문제가 아니다. 관심이 있다면 시간은 생기기 마련이며, 문과와 이과를 두루 익히겠다는 목표는 평생을 들여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11) 2015년 3월 29일의 오후. 나는 벚나무 밑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온몸으로 따스한 햇볕을 받으며. 손에는 한 권의 책이 쥐어져 있었다. <고양이의 서재>. 읽다가 나른해져서 졸음이 쏟아졌다. 수마의 요구에 따라 나는 눈을 감았다가 잠시 뒤에 눈을 떴다. 한동안 자다 깨는 행동을 계속했다. 잠시 의식이 있던 시간에 나는 이곳에 나에게 '작은 천국'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평온함, 따스함, 주변을 스쳐가는 사람들의 행복한 목소리와 행동, 누구도 간섭하지 않고 남들에게 간섭할 필요도 없는 자유, 벚꽃이 가득한 옆의 벚나무와 하천에 내려서서 뒤뚱거리는 청둥오리들, 일요일이라는 시간과 지금의 풍경과 책읽기가 선사하는 여유까지. 더도 덜도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한 충만한 시간. 나는 한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그때 나는 여유롭고 게으른 고양이에 가까웠다는 사실. 벚꽃 흐드러지게 피어난 나무 아래 앉아 조용히 책속의 소리에 귀기울인다 봄볕의 따스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 졸다 깨어나니 아! 이곳이 진정 작은 천국이더라 -2015년 3월 19일날 기분이 좋아서 내가 쓴 시 문화대혁명이라는 혹독한 유년기를 금서로 지정된 중국 고전과 서양 고전을 읽고, 친구들에게 이 책들을 소개하고 중재하며 견뎌냈던, 이과와 문과를 넘나드는 독서를 계속했던, 독서와 책구매의 욕망에 사로잡혀 책을 사고 읽어나가다 못해 미래에도 계속 이것이 계속되기를 바랐던, 중국의 책벌레 장샤오위안은 서재에서 뒹구는 고양이가 되기를 꿈꾼다. 아직 고양이가 되지 못한 관계로(??) 이 책을 써낼 수 있었던 장샤오위안의 독서편력이 자유롭게 서술된 <고양이의 서재>를 다 읽고 나서, 나는 저자와 나의 독서편력이 책을 읽으며 겹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읽기에 가능한 기적 같은 각각의 개인사의 겹쳐짐. 아마도 그 겹쳐짐이 그가 꿈꾸던 것을 내가 잠시나마 체험하게 해 준 것은 아닐까. "그는 늘 자신이 즐거운 고양이이기를 바랐다." 이 바람은 지금도 여전하다.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비치는 서재에서 게으른 고양이가 책과 디브이디 사이를 거닐다 앉았다 하며 동서고금의 신기하고 이상한 일들을 생각하는 모습을, 나는 언제나 상상한다.(17) 꿈같이 조용하고 평화롭고 자유로운 시간은 이미 지나갔다. 한 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시간의 법칙에 따라서 다시 그 시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내 몸속에 새겨진, 두뇌에 기억된, 그 시간의 기억은 영원히 내게 남아 있다. 프루스트의 마들렌 과자처럼, <고양이의 서재>를 떠올리면 언제나 2015년 3월 19일의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고양이와 비슷한 체험을 했던 그때의 기억을. 이렇게 장샤오위안의 <고양이의 서재>는 나를 고양이로 변신시키는 마법의 주문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