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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갈하게 나이든 자의 사색, 그리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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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공을 들여 읽어도 아깝지 않다. 시의 여백보다는 좁지만 산문의 여백 또한 만만치 않다. 자신이 보고 듣고 생각하여 알게 된 세상을 적절한 언어와 정확한 인용으로 다른 사람에게 밝히는 것의 어려움, 겪어 보지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 들게 정제되어 있고,칠십년대 중반에서 이천년까지의 시간 가운데서 골고루 골랐음을 이유로 서두름의 기색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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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공을 들여 읽어도 아깝지 않다. 시의 여백보다는 좁지만 산문의 여백 또한 만만치 않다. 자신이 보고 듣고 생각하여 알게 된 세상을 적절한 언어와 정확한 인용으로 다른 사람에게 밝히는 것의 어려움, 겪어 보지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 들게 정제되어 있고,칠십년대 중반에서 이천년까지의 시간 가운데서 골고루 골랐음을 이유로 서두름의 기색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풍경은 연약하다. 풍경은 순간으로만 있다. 그것은 덧없이 사라진다. 시시각각 빛은 변화하는 것이다. 풍경은 언제나 단명한다. 그리고 그것은 유일무이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풍경이란 나의 세계(또는 지각)의 모습이 아니라 내 자신의 모습이다.산다는 것은 풍경을 가진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바로 풍경을 잃어버리는 공포다. 캄캄한 밤에 대한 공포도 마찬가지다." 매순간 느껴지던 공포의 베일이 벗겨지는 순간이다.그것은 눈이 있으되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죄값과 같은 것이다. 일회와 영원이 조우하고 내면과 외면이 조우하는,선택의 여지 없는 삶으로부터 버림받은 좌절과 같은 것. "절터에 가면 바람이 있다. 마른 풀 잎사귀들 틈에 쓰러져 있는 초석이 있다. 그 돌들은 무언가 햇빛과 같은 고함을 지르고 있다가 내가 들어서면 입을 다물고 만다. 그러면 다시 목이 긴 가을 풀이 몸을 흔들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허만하는 모던하다, 고 그의 시집 『비는 수직으로 서서 죽는다』를 보면서 느꼈다. 자신의 시 바라보는 아둔한 눈들 같은 것은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생각 단단히 먹은 것처럼, 칠십을 바라보는 노시인의 시가 어떻게 이리도 경이롭게 젊을 수 있을까 의심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시 들여다보면 그의 시들은 절치부심의 세월을 조각하느라 굳은 살 가득한 양손에 들려져 있다. 언어가 생명을 얻어 드넓은 세상으로 나갈 때까지 얼마나 부딪혔는지 툭툭 깎여나가 둥굴둥글하다. 그의 산문은 그래서 시적이다. 그만큼 초연하다. "입춘이 지나면 햇살의 빛깔이 벌써 다르다. 어린 나는 온 몸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얼었던 땅도 물러져서 쓰러져도 땅을 짚는 손바닥이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어느 저녁 해외화제를 보는데 러시아의 모스크바던가, 불확실하지만 어쨌든 극동의 어느 도시에선 겨울이면 녹아 떨어지는 고드름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고 한다. 오늘으로 입춘이다, 겨울이 서서히 녹아 떨어지는 계절. 춥고 외로워 웅크렸던 몸 다시 펴는 육체의 기척 있기 전에, 가두었던 생명의 씨앗 다시 지상으로 돌려 놓는 세상의 기척 먼저 당도하는 계절. 시인은 육체의 기척으로 세상의 기척을 읽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감정과 정감적인 행위도 또한 하나하나의 언어와 마찬가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부자의 정(파테르니티)과 같은 이미 인간의 몸 안에 각인되어 있는 듯이 보이는 감정조차 사실은 제도이다." - 메를로 퐁티 시인은 너무 많다 싶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인용한다. 물론 그것은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서 다행스럽다. 정년퇴직한 병리학자인 시인은 지금도 새벽 두시면 잠에서 깨어나 작품활동을 하고 메를로 퐁티를 읽는다. 메를로 퐁티에 대한 얄팍한 지식의 기술이 아니라 그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다시 보니 다행이 아니라 경외다. "제단에 불을 켜는 것은 사제가 아니라 어둠이다.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밤을 깨우지 말고 밤의 신비 그대로 가만히 둘 수는 없을까." 어둠 속에서 밤을 향해 접근하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청와대를 습격하는 공비 일당처럼, 또는 개화하는 꽃처럼,그것도 아니면 롱나우 재단이 사막에 만들고 있다는 천년에 한 바퀴를 돈다는 시계의 시간처럼 느리게 접근하는 시인.하지만 결국 시인은 자신과 밤 사이의 여백을 줄여 본을 뜨듯 딱 들어맞게 한다. 그는 텍스트 디자이너다. "체험이란 경험의 산술적 퇴적이 아니다.경험에서 한 낱의 의미를 발견해냈을 때 그 경험은 비로소 체험이 된다... 나는 시(포에지)가 가지는 만들어 낸다는 의미를 이런 근거에서 해석하고 싶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시의 근거를 어디에 두는가... 체험을 통해서 영원은 단독자의 목숨에 수렴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역으로 죽어가는 한 체험이 영원을 그의 접시에 담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만에 명징한 글을 읽었다. 아니 명징한 삶을 본 것일지도 모른다. 극과 극 비교 체험처럼 작가가 드리운 그늘에 내 그림자를 숨길까 작정해 본다. 내면의 풍경은 보이지 않는 자에게 침묵의 공간이다. 많은 경험의 자부에도 불구하고, 그곳은 아직까지도 내게 아무런 소리도 들려 주지 않는다.풍부한 여백인가 싶으면 알리바이 허용하지 않는 거짓이고 도착지 짐작할 수 없는 유랑이고 행방묘연한 도적의 숨겨진 보물이다. 시인은 계속해서 간청한다. 멈추어 있는 것, 움직이는 것, 생겨나는 것, 사라지는 것을 향한 모질게 계속되는 철학적 사유의 체험이야말로 존재 이유라고. 그런데 그것이 안 되는 것을 어쩌란 말이냐. "오오 적이여 너는 나의 용기이다." 임화가 자신의 묘비명으로 삼고자 했다는 문장이다. 그럼 당신 나의 적이 되어 줄 수 있습니까?

[인상깊은구절]
나무의 또 다른 상징은 벼랑 같은 그 수직성에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송진 냄새가 자욱히 서려 있는 수령 5백년을 넘는 아름드리 전나무 숲 속에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 여름 다시 찾아본 오대산 월정사에서의 일이다. 수직성이란 평면에 굴복하지 않고 일어서는 실존이란 말을 했던 철학자는 메를로-퐁티였었지.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01.07.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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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사색과 성찰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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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넘게도 나는 지인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판단하여 곧잘 책을 선물하곤 한다. 이 책을 나는 좀 지긋하지만 책 읽기를 즐기고 좀처럼 속내를 보이지 않은 분에게 권하고 싶다. 그 분이 , , 때론 하루키의 을 읽기도 하는, 그 연세론 꽤 다독가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다 조갑제의 같은 책을 읽는다면 그 책 대신 넌지시 이 책을 권할 것이다. 여러번의 담금질을 통해 단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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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넘게도 나는 지인들의 특성을 파악하고 판단하여 곧잘 책을 선물하곤 한다. 이 책을 나는 좀 지긋하지만 책 읽기를 즐기고 좀처럼 속내를 보이지 않은 분에게 권하고 싶다. 그 분이 <삼국유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이야기 백 가지>, 때론 하루키의 <노르웨이 숲>을 읽기도 하는, 그 연세론 꽤 다독가라면 더 좋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다 조갑제의 <네 무덤에 침을 뱉어라>같은 책을 읽는다면 그 책 대신 넌지시 이 책을 권할 것이다. 여러번의 담금질을 통해 단련된 쇠들도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녹슬어 버리는 것이 아니던가. 그런데 허만하 선생의 책에는 그 많은 세월을 겪고도 녹슬지 않은 지성이 확연하다. 좀 통속적인 비유를 하자면 스텐레스나 양은 같은 속된 윤기가 아니라 잘 닦여진 무쇠솥이라거나 그보다는 고가(古家)의 두터운 마룻장 윤기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법 연수원을 졸업해도 취직할 곳이 없다는 보도가 나간 다음 날이면 어제까지의 법대 지망생이 의대로 진로를 돌려버리는 이 경망하고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의사’란 내게 달가운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더구나 두 해전 의료 파업 상황에서 세 번씩 입퇴원을 거듭한 나로서는 부당한 메디컬 크라시가 두렵기만 해서 엊그제 발표된 죽음에 임박한 환자의 치료받지 않을 권리를 합법화 한다는 의료계 소식도 미심쩍게만 보일 정도로 의사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다. 하지만 박완서 소설에서처럼 “사람을 개별적으로 보는 훈련을 하자” 이렇게 다짐하지 않고도 허만하 선생의 글을 읽으면서는 돈 잘버는 의사로서가 아니라 삶에 대해 진지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한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지인으로부터 이 책을 선물 받고 책을 읽은 지 꽤 오래 됐음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리뷰 하나 적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노학자의 지성에 압도 당해서일 것이다. 여행, 독서, 예술 작품에 대한 감상, 성찰이 주를 이루는 이 글을 읽으며 현학이 아니라 책을 읽고 사색하는 것이 이미 생활이 된 학자의 하루가 잡히듯 그려졌다. 39쪽 릴케와 벤샨에서 한구절. “젊을 때 시를 쓰는 일만치 무의미한 일은 없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질기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생 동안 그것도 70년 또는 80년 걸려서 우선 벌과 꿀과 의미를 모아야 한다. 비로서 열 줄의 훌륭한 시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다. 시가 만일 감정이라면 젊어서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시는 바로 경험인 것이다.” 릴케의 말테의 수기의 한 구절이 오랜 세월 후 벤샨으로 하여금 스물 세 점의 석판화를 그리게 했다고 한다고 전한다. 벤샨의 그림을 볼 때 느껴지던 적막하고 쓸쓸해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하던 느낌이 되살아났다. 허만하님의 글에는 읽는 이를 압도하는 지적 편력에도 불구하고 목마름이 느껴진다. 시인은 한사코 타인의 목소리를 내세워 자신의 말을 삼가고 있다. 구절구절 수 많은 인용들...... 깊은 밤, 잠 이루지 못하고 불을 밝히고 책에 몰두한 한 노학자의 서재가 눈에 어른거린다.
l******r 2002.11.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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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장인, 허만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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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어의, 시의 장인이다. 그리고 그 장인이 장인답기 위해서는 심연, 궁극을 보아야 한다. 저자 허만하의 일생은 이 장인적 구도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는 그가 일생동안 써온 잡문들을 자기 스스로 거르고 걸렀다. 그래서 70평생을 모은 글이 초라하게도 2백여 남짓의 자그마한 책으로 추려졌다. 글쎄 뭐랄까...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버려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어울릴까?
"시의 장인, 허만하" 내용보기
그는 언어의, 시의 장인이다. 그리고 그 장인이 장인답기 위해서는 심연, 궁극을 보아야 한다. 저자 허만하의 일생은 이 장인적 구도의 과정이 아니었을까? 그는 그가 일생동안 써온 잡문들을 자기 스스로 거르고 걸렀다. 그래서 70평생을 모은 글이 초라하게도 2백여 남짓의 자그마한 책으로 추려졌다. 글쎄 뭐랄까...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버려나가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어울릴까? 허만화란 작가는 나에게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러다가 그를 알게 된 것은 강우방의 에세이집 [미술과 역사 사이에서]라는 책에서 였다. 예술과 종교를 한 데 어우르는 시각과 궁극을 지향하는 순수한 혼과 열정이 느껴져 그의 시집과 새로 출간된 이 에세이집을 구입했다. 읽는 즉시 그 깊이있는 세계에 공명하고 싶었고 그의 삶의 태도를 따라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 깊이는 나에게 너무 깊고 그 태도는 너무 순도 높은 듯 했다. 이런 생각도 든다. 저자는 전업작가는 아니다. 의사였고, 의대교수였었다. 최근에 은퇴를 했고, 이제야 문학에 전념할 여유를 얻었는 듯 하다. 전업작가... 솔직히 나는 이 직업이 불운한 직업이라고 생각된다. 전업작가는 하기 싫어도, 혹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도 말을 하고 글을 써야 하는 직업이다. 물기없는 걸레를 쥐어짜는 일이다. 예술은 전업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야 예술을 전유해서 생계도구로 쓰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예술은 삶의 경험이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자연스럽게 터져나오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허만하는 말한다. "시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감정이 아니다. 시가 만일 감정이라면 젊어서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시는 바로 경험인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설익은 감정과 아이디어를 성마르게 무엇으로 만드는 일에 집착한다. 아마도 금새 유통상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 시대의 집단 무의식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착상이 떠오르면 당장에 글로 옮기고 책으로 출판해야 직성이 풀린다. 한국의 문화산업이 규모의 경제를 향해 나아간다고 즐거워해야 할까? 존경스런 인물의 항목에 또 한 분을 새겨넣을 수 있어서 기뻣다. 블량쇼, 오스터, 강우방, 그리고 허만하...

[인상깊은구절]
풍경은 연약하다. 풍경은 순간으로만 있다. 그것은 덧없이 사라진다. 시시각각 빛은 변화하는 것이다. 풍경은 언제나 너무나 단명하다. 그리고 그것은 유일무이한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풍격이란 나의 세계(또는 지각)의 모습이 아니라 내 자신의 모습이다. 산다는 것은 풍경을 가진다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바로 풍경을 잃어버리는 공포다. 캄캄한 밤에 대한 공포도 마찬가지다. ... 풍경이란 언제나 그 앞에서 일인칭 단수 소유격이 붙어 있는 나의 풍경으로만 있는 것이다. 그래서 풍경은 언제나 살아서 숨쉬는 것이다. 풍경은 언제나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 하나의 풍경이 나의 체험이 되고 나의 체험이 하나의 풍경이 되는 그런 일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