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게 된건 외국말 잘하려면 한국말부터 잘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다녔던 영어학원에서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그땐 영어선생님이 그말을 하신 이유를 깊이 깨닫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나도 많이 공감한다. 이 책은 이런 내 생각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주었을 뿐만 아니라 왜 우리가 우리말을 사랑해야되는지 깊이깊이 알게 해 주었다. 일상 생활에서 무심결에 사용하는 표현들, 몰랐었던 예쁜 우리말 등 이 책을 읽는 동안 새롭게 알아가는 재미를 느낄수 있었다고 할까.. 그동안 국어 시간에 배운 국어는 오로지 시험을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 우리말의 소중함과 가치를 느끼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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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우리말과 글에 관계된 책을 좋아하게 되고 즐겨 읽게 되었다. 그래서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우리말을 좀 잘하고 많이 아는 줄 안다. 하지만 지금은 읽어도 그때 뿐, 내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데에 있어서는 별로 나아진 게 없다. 그래서 새로운 책이 나오면 또 읽는다.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은 재미가 없으니 같은 종류의 다른 책을 읽으면서 저절로 언어습관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말이다. 과연 조금씩은 그런 면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는 관심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스스로의 열정에 늘 부족감을 느낀다.
'말 잘 하려면 국어부터 잘하고 외국말 잘하려면 한국말부터 잘해라'는 책은 그동안 읽었던 우리말 사랑에 대한 책과는 조금은 달랐다. 대부분의 책들이 '어떤 것을 어떻게 잘 못 쓰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책은 '왜 잘 못 쓰고 있는지'와 '적절하게 쓸 때의 기쁨'까지 언급하고 있다.
도사리 자마구, 괴좆나무, 촐래, 밤느정이, 노굿 등 사라져 가는 우리말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이것이 이미 거의 사라진 말이라는 것을 나는 지금도 확인하고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 자체적으로 있는 오자 교정에 따라 빨간 줄이 쳐져서 사라지지 않는다. 도사리란 병들거나 가뭄이 들거나 해서 익기 전에 저절로 떨어진 열매를 말한다. 자마구는 벼꽃가루는 말하고, 괴좆나무는 우리가 흔히 구기자나무로 알고 있는 것이다. 촐래는 버드나무 껍질로 만든 피리이고, 밤느정이는 밤꽃, 노굿은 콩이나 팥 종류의 곡물열매를 맺는 꽃을 말한다. 그런데 특히 노굿은 피었다고 하지 않고 일었다고 한단다.
이렇게 하나하나 알고 보면 알 수 있을 것도 같고 시골에서는 흔하게 본 것들이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는 그것을 어머니가 쓰던 말보다는 텔레비젼에 나오는 말로 바꿔버렸다. 나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라면서 삘기를 많이 먹었다. 언제인지도 확실하지 않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그때가 그립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서 그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데 듣는 사람들이 삘기를 모른다. 그러니 그 단어는 점점 안쓰게 되고 어쩌다라도 듣게 되면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그리고 내가 살던 시골 산에는 상수리나무가 많았다. 물론 도토리도 있었지만 상수리보다 작은 도토리는 별로 귀하게 취급하지 않았다. 요즘도 가을이면 많은 사람들이 도토리를 주우러 다닌다. 아마도 도토리묵을 해먹으려고 그럴 꺼다. 순수 자연물인 도토리묵은 옛 맛을 기억하는 나이든 분에게는 더 없이 좋은 음식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틀림없는 상수리인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도토리라고 말한다. 도토리와 상수리는 엄연히 다르다. 도토리는 뾰족하고 상수리는 둥글고 알이 굵다. 그런데 아무리 상수리라고 말해도 다시 도토리가 된다. 상수리는 엄연히 국어사전에 나오는 표준말인데도 사투리 취급해버린다.
이렇게 사라지는 말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리고 어휘는 단조로워진다. 저자가 지적했듯이 같은 강아지풀이면서도 밭에 나는 것은 '가라지'인데도 강아지풀이라고 하면 그만이고, 억새의 꽃은 '새품'인데도 그냥 억새꽃이라고 한다. 물론 틀린 말이라고까지야 할 수 없겠지만, 아쉬움은 떠나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스스로 느껴야 할 때이다. [인상깊은구절] 유대인들이 2000년 전의 고향땅으로 돌아와서 맨 먼저 시작한 일은 그들의 모국어를 재현하는 일이었다. 그것은 인류 역사에서 보기 드문 일이었다. 2000년 동안 외국어를 모국어로 생각하며 살았던 민족이 글자로만 존재히고 현실에서는 이미 사어가 된 언어를 복원해 낸 것이다. 만일 그들이 언어를 경제적으로만 생각했다면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러시아어, 이태리어 등 그들이 유창하게 하던 언어를 공용어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세계 어디를 나가도 외국인과 대화할 수 있으므로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인데 무엇 때문에 이미 사라진 언어를 복원하여 새삼스럽게 국민을 교육하고 그 언어를 모국어로 삼으려 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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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도서관에서 영어 사전을 펴놓고 공부하는 이들은 많이 보여도 국어사전을 놓고 공부하는 이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함께 살아가는 모국어이기 때문에 그런 걸까? 어릴 때부터 해오던 말이니까 무슨 공부가 필요하냐? 라는 생각 때문일까? 『말 잘하려면 국어부터 잘하고 외국말 잘하려면 한국말부터 잘해라』를 읽다보면 우리의 한국어 생활이 얼마나 지저분하고 올바르지 않은 지 알 수 있다. 비문과 오문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쓰고 있는 단어조차 그 의미를 제대로 알고 쓰는 게 많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언문이라 낮춰 불렸고 일제시대에는 일본어가 공용어(公用語)자리를 차지하면서 한국어는 가치를 발휘하기는커녕 훼손당하고 천대받기 일쑤였다. 2000년이 된 지금은 세계어 영어에 공용어(公用語)자리를 내놓으라는 공용화 논쟁에 끌려가기까지 했다.
공용화 논쟁에서 세계어 영어가 민족어 한국어를 제압하는 논리는 경제적 이익이다. 영어 열풍에 막대한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국민들. 세계시장에서 두루 쓰이는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이점 등등. 그러나 세계 경제를 주무르는 유대인들이 유대어라는 민족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민족의 문화와 정신이 그대로 민족어에 담겨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공용화 논쟁은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영어가 한국인들에게 필수라는 것은 억지 주장이며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 것은 잘못된 영어교육 탓이지 민족어 한국어 탓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어능력은 천부적인 소질보다는 언어교육과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 길러지는 후천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한국어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어법에 맞게 구사하는 사람은 외국어 역시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구사할 것이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듯 모국어인 한국어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국어 구사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나는 영어 공부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일지 여러 책을 살펴보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영어 공부가 아닌 외국어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외국어를 왜 배우려는지, 언어-외국어와 한국어 모두-는 어떻게 공부하고 구사해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외래어는 내국인을 위한 것이지 외국인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한국어라는 민족어의 기준 없이 외국인들이 부르는 소리에 맞게 적는다고 할 때 영국식 발음과 미국식 발음, 프랑스 단어를 영어로 어떻게 불러야 할 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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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분류사전="">으로 잘 알려진 남영신 님의 <말 잘하려면="" 국어부터="" 잘하고,="" 외국말="" 잘하려면="" 한국말부터="" 잘해라="">는 우리말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 국어의 문제와 국민들의 국어 사용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문제점에 잘 지적하고 있다. 별다른 생각 없이 툭툭 내뱉는 말과 국어사전의 도움 없이 쓰는 글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여러 틀린 표현과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에 대한 지적은 일반인은 물론 글이나 말로 먹고사는 이들이 새겨 들을 만 하다. 마지막 장인 '영어 공용화 논쟁과 우리 언어의 자화상'은 1998년에 있었던 영어공용화 논쟁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정리한 것인데,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이라면 꼭 한 번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인상깊은구절] 모국어는 그 모국어를 쓰는 사람들의 인격이고, 그들의 삶이며, 그들 자신이다. 그 모국어를 부정하는 것은 그들을 부정하는 것이고, 그들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며,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이 모국어를 쓰지 못하게 되는 순간에 그들은 말할 수 없는 열패감에 빠지고 말 것이다. 모국어를 스스로 버릴 수 있는 민족은 이미 자신을 포기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말>우리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