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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책의 뒤표지를 보면, 쇼펜하우어는 고독과 고통 속에서 진실을, 윤동주는 침묵으로 위로를 통해 우리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전한다고 합니다. (카피로 저희를 보듬으시는 작가님의 말을 빌려보면,) “너는 너여도 괜찮아. 변하고 흔들려도 그 안에 네가 있어.” 개인적으로 근래 ‘갑작스레/아주 큰/힘든’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서평도 기한을 훌쩍 넘어 이제야 겨우 한 자 한 자 내려갑니다. 그런 제 손에 쥐어진 이번 책은 그 의미가 꽤 큽니다. 저의 부족한 필력과 어휘력, 공감력이 이렇게나 아쉬웠던 적도 없을 만큼,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 “절망을 건너 희망을 쓰다”라고 앞표지에 적혀있던 부분이 쇼펜하우어 러버이기도 하지만, 제 상황에 주어지는 한 줄기 빛과 같았습니다. 이제 감히 ’희망‘을 잡아보려 하기에. … 지금도 이 부족한 필력에 얼굴 운동이 되지만, 정말 모두에게 쥐여주고 싶은 책, 어쨌든, 쇼펜하우어와 윤동주누군가와 쇼펜하우어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연을 맺고 다시 처음의 누군가는 표기해 두었던 작가님의 필력과 그 베이스먼트 제공자: 쇼펜하우어와 윤동주 덕에 추상적인 희망, 그 형태의 1차원적 상태를 살-포시 오른손에 쥐어본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 시인을 잘 모른다고 했는데, 제 신념이자 이번에 크게 아픈 이유가 여기 있었네요. 핏-하고 웃음이 새어 나옵니다.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알바라도 해서 책을 선물하고 싶은데 정작 이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제가 감사한 김이율 작가님과 미래문화사에는 보답할 길이 없다니요. 참 인생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줄을 알았지만, 역시 그렇네요~ 끄덕이며 넘깁니다~ 미소 지으며 넘깁니다, 이제 부족하지만 좋았던 표현을 (너~무 많기에) 아주 조금 담아보려 합니다. _그러나 그대는 고통을 마주하면서도, 그 끝에서조차 별을 바라보는 법을 잊지 않았지요. / 나는 철학자로서 진리를 말했을 뿐이지만 그대는 시인으로서 사람을 품었습니다. / 고통을 말하되, 사랑을 잊지 않은 목소리를. : 발신자와 수신자를 유추해 보세요~ 작가님의 필력을 타고 전해진, 발신: 쇼펜하우어, 수신: 윤동주입니다. 참 예뻤습니다. 다시 읽게 된 지금도 참 예쁩니다. 쇼펜하우어를 어두움 가운데 날카롭고 뾰족한 얇은 창처럼 표현된 듯하여 상반된 느낌으로 가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책을 펴자마자 그를 이렇게 표현해 주심에 감사함을 넘어 ‘항상 먹던 샐러드에 유자 소스를 뿌려 이내 찡그리다가도 먹어보니 괜찮아’처럼 부드럽고 조화된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쇼펜하우어와 윤동주의 글, 그리고 작가님의 글까지 세 사람의 글이 모두 그랬습니다. 누구의 글이라고 지칭하고 구별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조화로웠습니다. 탕평채를 즐겨놓고 왜 발신자와 수신자로 둘을 구분해 보라고 했느냐고요? 제가 그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구분했던 포인트였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서 ‘별을 바라보는 법을 잊지 않은/진리를 말한 본인과 달리, 사람을 품었다고 본/고통을 말하되, 사랑을 잊지 않은 목소리를 사용한 제가 느끼기로는 내심 부러워하는, 항상 굳건하고 세련되고 강인해 보이던 그가 실은 그도 가지고 있는 것들을 스스로 보지 못하고 (물론 작가님의 도움이지만 말이죠:)) 김동주 시인에 대해 존중과 존경을 담아 전하는 편지 같았습니다. 누구나 발신자와 수신자 구분이 가능한 파트였죠. 허나 편지가 끝난 실제 글에서는 그들을 구분할 필요도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습니다. 책에 이 표기 저 표기해 가며 하트를 그렸다가~ 나 아(한자)를 기록하며 내 모습이라며 끄덕였다가 힘들었던 이번 생활 속 유일한 낙이었다고 착각할 정도로, 최고의 책이었습니다. 책 표지의 그림 셀렉도 어쩜 그렇게 감각적이신지 싶고, 뒤표지의 두 인물 사진도 다른 사이즈였다면 이 느낌이 안 나왔을 듯한데 작게 보였던 것도 이젠 감탄할 내용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젠 정말 몇 가지만 적고 마무리하려 합니다. 좋은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감히 제 인생 책을 넘어 누군가의 인생 책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조심스레 추천해 드립니다. 다소 두서없는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오늘도 사랑 가득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하루 보내십시오, 사랑합니다:) -. 쇼펜하우어(이하 ‘sp’) and 윤동주 (이하 ’dj’) -. sp, 인간은 본질적으로 모든 존재와 하나 _바다는 파도처럼 흩어질 수 있지만, 본질은 여전히 바다이지요.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과 기억이 달라도 우리는 같은 바탕 위에 놓인 생명입니다. -. dj, 어떤 길이든 걸어가는 사람이 있기에 길이 되고, 당신이 걸음을 멈추지 않는 한 당신의 길은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 sp, 우리가 누군가에게 끌리는 이유는 그 사람 안에 나의 어떤 조각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랑을 통해 자기 자신을 인식하려 합니다. “진짜 사랑” : 타인을 통해 나를 알아가는 동시에, 그 사람을 그 사람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 -. dj, 우물 속을 들여다보면 그곳에 작은 하늘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물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고요한 채로 세상을 담아낼 뿐이지요. 너무 먼 곳만 바라보지 마세요. 이미 당신 안에도 넓은 하늘이 있으니까요. / 가엾음이란 단순히 타인을 향한 연민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는 깨달음일지도 모릅니다. -. sp, 중요한 건 읽는 양이 아니라, 읽은 뒤에 자신이 어떤 질문을 품었는가, 어떤 저항이나 의심을 느꼈는가입니다. “지성” : 많이 읽은 사람이 아니라, 읽으면서도 자신을 지키는 사람에게서 자랍니다. 타인의 언어를 따라가되, 자신의 고요한 중심을 놓지 마십시오. / “지혜” : 자기 자신을 비웃는 데서 시작된다. +142 pg. 지혜란 결국 겪음의 깊이가 아니라 해석의 방향성입니다. 현자는 스스로의 한계를 압니다. 스스로의 무지함을 안 순간, 쉬이 남을 조롱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어리석음에, 행해온 착각에 쓴웃음을 지으며 남을 해치지 않는 이 비웃음으로 자신을 더욱 단단히 만듭니다. 지혜로운 자는 본인에게 가장 엄격한 비평가가 됩니다. [ 자신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보고, 부끄러웠던 순간을 기억하며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습니다. 타인을 향한 비웃음이 교만의 언어라면, 자신을 향한 비웃음은 겸허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하고, 무지합니다. 그 사실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 앞에서 부드러워지고, 자기 자신 앞에서 솔직해집니다. 남을 비웃기보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 더 깊은 용기임을 잊지 마십시오. __. 142 pg. 지혜란 결국 겪음의 깊이가 아니라 해석의 방향성입니다. 체험은 재료일 뿐이고, 그것을 삶의 구조로 바꾸는 것은 오롯이 해석하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해석은 곧 거리를 둔 시선입니다. -1. 한발 물러나 그것을 바라보는 능력. -2. 의미 없는 고통 속에서도 의미를 길어 올리는 인식의 힘. / 인간은 시간 속에 갇힌 존재입니다. 고통과 불안 사이에 흔들리는 존재. 과거는 우리를 놓아주지 않고, 미래는 우리를 초조하게 합니다. 결국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현재만이 유일한 피난처일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려는 노력만이 우리를 고통과 불안으로부터 잠시나마 구해줍니다. -. dj, … 고립이 아니라 만남을, 고독이 아니라 동행을 … -. sp, 편리한 환상이 아닌 불편한 진실을 선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세계와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 무소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소유에 얽매이지 않는 태도입니다. -. dj, 중요한 것은 완벽함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에게 진실된 삶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 sp, 정직이란 타인 앞에서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것만이 아닙니다. 가장 본질적인 정직은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드러납니다. 무엇을 원했고, 왜 실패했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가감 없이 응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실에 가까워집니다. “정직함은 도덕이 아니라 용기입니다.” 자기 기만은 비겁함이 아니라 두려움의 결과입니다. / 진리는 본래 단순합니다. 그저 존재하고, 경험되며, 느껴지는 것입니다. -dj, 비행기는 새처럼 자연스러운 날갯짓을 하지 못합니다. 하늘을 나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비행기의 비상은 언제나 기계적 강박과 한계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자유로운 몸짓 대신, 강제된 추진력과 불안한 진동이 그 본질입니다. <가슴 뛰는 이야기>, <마음에 지지 않는 용기>,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말>, <나는 인생의 고비마다 한 뼘씩 자란다>, <좋은 사람만 만나도 인생은 짧다> 등의 베스트셀러를 집필하신 카피라이터이자 김이율 작가님 덕에 (연은 없습니다. 그저 오랜만에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책+다른 저서의 제목도 매력적이라 기록합니다.) 쉴 새 없이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이율 작가님 그리고 좋은 책을 읽기 편하고 읽고 싶게 디자인해주시고 인쇄해주신 미래문화사 선생님들. 선생님들 덕분에 살 수 있던 시간들이였습니다. 항상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길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책을 빠르게 접하게 도와주신 분들도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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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김이율 지음/ 미래문화사 (펴냄) 삶은 진자처럼 고통과 권태 사이를 끊임없이 오간다는 표지의 문장에 이끌려 펼친 책이다. 글을 쓰다 보면 어느 순간 문장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질 때가 있다. 아무리 쓰려 해도 단어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느낌.... 삶의 소음이 문장 사이에 끼어들어 뒤흔들어 놓은 적 있다면.... 이 책은 바로 그런 이들에게 건네는 한 장의 편지 같았다.... 쇼펜하우어의 냉혹한 명제는 너무 차갑고, 윤동주의 시는 따뜻한 온기 같았다.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마치 모순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두 목소리가 서로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독자들은 무엇을 느낄까.... 철학 책을 자주 읽는 독자라면 책은 더욱 선명해지리라 생각한다. 쇼펜하우어는 “세계는 나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윤동주의 잔잔한 빛, 즉 ‘한 점 부끄럼 없이 살고자 하는 마음’을 표상 위에 살짝 얹어본다. 비관적인 시각과 도덕적 긴장감이 공존하는 구조라니!!! 절망을 응시할 줄 아는 사람만이 희망을 제대로 쓰는 법을 안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결국 문장도 삶도 흔들리는 사유 위에 세워진다. 각 장의 마지막에 놓인 ‘질문’들은 독자를 그냥 독자로 두지 않는다. 시와 철학이 서로에게 편지를 쓴다. 쇼펜하우어 선생께도 윤동주 시인에게도 각 한 통씩 편지를 써야겠다.... 삶을 목적 위주로 살았는데 목적보다 때로 진행하는 현재 내 모습에 관심을 갖기 읽는 독자를 사유의 주체로 끌어와, 자신의 사유를 문장으로 만들게끔 독려하는 기분이다. 뭐든 쓰고 싶어지는 마음. 때로 서평 책을 읽다 보면 읽기만 해서는 완성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바로 이 책이다. 읽고 나면 쓰고 싶다. 써야겠다... 나만의 감성, 나만의 문장을 요구하는 책이다. 절망을 정면으로 바라보면, 그 뒤에 작은 빛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 책이다. #어쩄든쇼펜하우어윤동주 #김이율 #미래문화사 #철학과시의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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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팅은 미래문화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성했다. 독일의 대표적인 철학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적 철학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인간의 본질을 ‘의지’라고 보고, 인간의 근원적 결핍과 욕망이 결국 고통을 낳는다고 주장했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윤동주는 「서시」, 「별 헤는 밤」 등을 통해 자신의 부끄러움과 양심, 조국에 대한 사랑을 섬세한 단어 선택과 은율에 담아냈다. 그는 역사적 절망과 식민지 현실 속에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희망과 타인에 대한 연민을 추구했다. 『어쨌든, 쇼펜하우어 x 윤동주』는 고통을 철학으로 직시한 철학자와 부끄럽지만 희망을 품은 시인을 한 권의 책에서 마주하게 하는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비관주의와 희망을 한 화면에 겹쳐 읽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절망을 건너 희망을 쓴다"라는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중심 메시지다.
이 책에서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철학적 단언과 윤동주의 시구를 짧은 명제·사유·질문으로 엮어 소개한다. 각 장은 두 인물의 문장 한 줄로 시작해 현대의 불안·비교·상실·관계로 이어지며, 마지막에는 독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으로 마무리한다. 책에서 추구하는 형식은 복잡한 이론 해설이 아닌 ‘사유 노트’의 형태다. 독자는 ‘고통과 권태의 진자 운동’, ‘질투라는 그림자’, ‘소유의 역설’ 같은 꼭지에서 자신의 일상적인 감정선을 따라 철학적 사유를 체험하게 된다. 한쪽에서는 냉정한 자기 진단을, 다른 한쪽에서는 조용한 정서적 위안을 제공함으로써 독자는 그 두 감정의 틈새에서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간다’는 주제와 만나게 된다.
저자 김이율은 쇼펜하우어와 윤동주라는, 시대와 국적이 전혀 다른 인물을 전면에 내세웠는데 둘 다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공통된 특징을 만날 수 있다. 쇼펜하우어는 “삶은 진자처럼 고통과 권태 사이를 움직인다"라는 냉정한 문장으로 인간의 결핍을 응시했고,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며 절망 속에서 양심의 빛을 찾았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비관은 형이상학적이며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야만 구원에 닿는다고 말한 반면, 윤동주의 비관은 식민지 현실이라는 구체적 절망 속에서 태어났고 그 속에서도 별과 신앙, 사랑을 향한다. 쇼펜하우어가 ‘감정의 소음’을 걷어내는 냉정한 진단을 건넨다면, 윤동주는 ‘그래도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덧입힌다. 『어쨌든, 쇼펜하우어 x 윤동주』를 읽다 보니 하루가 짧게 느껴지는 11월에 접어들었다. 겨울을 재촉하는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주말 밤이다. 쇼펜하우어의 냉철함과 윤동주의 희망 사이에서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삶은 고통과 권태의 연속이라 단언한 비관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별을 노래하며 부끄러움을 고백한 순결한 시인 윤동주는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길수록, 이 만남이야말로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많은 관계 속에서 감정을 소진하는 직장인의 삶과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정직하게 바라보게 만드는 쇼펜하우어의 냉철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지 말아야 할 마음을 속삭이는 윤동주의 다정함이 교차한다.
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삶은 고통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진자 운동이라고. 이 문장만큼 직장인의 일상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마감에 쫓기고 성과라는 압박에 짓눌리는 시간은 분명 고통이다. 그러다 잠시 숨을 돌릴 틈이 생기면 반복되는 일상에 대한 허무함과 권태가 밀려온다. 이 책은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긍정적이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에서 벗어나게 도와준다. 원래 그런 것이라는 진단은 오히려 이상한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효펜하우어의 진단만으로는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기 어렵다.
삶이 본래 고통이라면 왜 애쓰면서 버텨야 하는 걸까. 이 지점에서 윤동주의 시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라며 노래한 윤동주는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돌아보는 성찰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동주의 맑은 언어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도 잃지 말아야 할 따뜻한 숨결을 보여준다.
이 책은 쇼펜하우어와 비관과 윤동주의 희망이 충돌하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메우며 하나의 완성으로 나가는 것에 중점을 둔다. 특히 각 장의 마지막에 있는 질문들이 나를 수동적인 독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사유하는 사람으로 이끄는 것 같다. 빠른 위로보다 정직한 말을 원하는 사람, 설명보다 깊은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어쨌든쇼펜하우어와윤동주 #쇼펜하우어 #윤동주 #철학에세이 #시에세이 #인문학 #삶의태도 #고통과희망 #북리뷰 #서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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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책과 콩나무'를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쨌든 쇼펜하우어와 윤동주』는 고통을 응시하는 철학자와 순결한 언어로 하늘을 바라보던 시인이 한 권 안에서 만나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책은 철학과 시가 서로 멀리 떨어진 세계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내면을 향한다는 점에서 결국 하나의 길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차분하게 드러내고 있다. 저자는 쇼펜하우어의 비관적 세계관을 단순한 비탄의 철학으로 다루지 않고, 윤동주의 시적 세계를 순진한 희망으로만 해석하지 않으면서, 두 시선 사이의 긴장을 책 전체에 자연스럽게 깔아놓고 있다. 이 만남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으면서도 인간다운 품위를 지켜내려는 고요한 시도의 연속으로 읽히고 있다. 책의 기본 구성은 짧은 명제, 사유 산문, 자기 질문이라는 삼단 구조를 취하고 있다. 이는 독자를 빠르게 수용과 반성의 자리로 이끌어내며, 단순히 문장을 소비하는 독자가 아니라 자기 내면을 응시하는 참여자로 서도록 안내하는 방식이다. 『어쨌든 쇼펜하우어와 윤동주』는 빠르게 소모되는 위로의 문장과는 다른 결을 가진 책이다. 상처를 즉각 치유하려 하지 않으며, 아픔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고통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철학과 고통 위에 조용히 빛을 얹는 시가 서로 다가서며, 독자가 스스로의 고통과 화해하도록 돕고 있다. 삶의 흔들림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흔들림 속에서 서 있을 수 있는 기준을 찾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고요한 동반자가 된다. 결국 이 책은 인간이란 존재가 어떤 어둠 속에서도 다시 별을 올려다볼 수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절망을 넘어 삶을 다시 쓰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묻고 있다. #책과콩나무#책과콩나무서평단리뷰 #어쨌든쇼펜하우어와윤동주#김이율#미래문화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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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단 이벤트]에 참여하여 도서를 제공 받아 학습 후,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어쨌든, 쇼펜하우어와 윤동주"는 절망과 희망이라는 인간의 근원적 감정을 철학과 시의 언어로 엮어낸 따뜻한 사유의 책입니다. 김이율 작가는 서양 철학자 쇼펜하우어와 한국 시인 윤동주라는, 시대와 배경이 전혀 다른 두 인물을 나란히 놓으며 ‘고통 속에서도 인간은 어떻게 다시 희망을 쓰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쇼펜하우어가 말한 “삶은 고통이고, 그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존재의 진실”이라는 명제와 윤동주의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시적 기도는 서로 다른 언어로 같은 지점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절망의 바닥에서도 다시 일어서려는 내면의 의지, 그리고 그 의지를 가능하게 하는 ‘희망의 감각’입니다. 작가는 이 두 사상을 교차시키며, 철학적 명상과 시적 감수성이 결합될 때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단단하고도 섬세하게 빛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 책은 단순한 인문 에세이가 아니라, 우리가 매일의 불안과 상실 속에서도 어떻게 ‘희망을 쓰며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치유의 안내서이기도 합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깊이 남은 것은 ‘고통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품는 법’에 대한 저자의 통찰이었습니다. 저자는 삶의 어두운 순간을 피하려 하지 말고, 그 속에서 반짝이는 의미를 발견하라고 말합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인간의 욕망과 한계를 직시하게 만든다면, 윤동주의 시는 그 절망을 감싸 안으며 마음속 별빛을 다시 밝히게 합니다. “물은 흐를 때 깨끗해지고, 바람은 불어야 맑아진다”는 구절처럼, 감정의 고요는 억압이 아니라 흘려보냄 속에서 찾아집니다. 이 책은 그 흐름을 회복하게 하는 한 권의 ‘내면의 바람’ 같습니다. 읽는 내내 삶의 무게를 조금은 내려놓고, 그 속에서도 여전히 반짝이는 희망의 조각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쨌든, 쇼펜하우어와 윤동주"는 철학과 시가 만날 때 어떤 따스한 위로가 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며, 지친 마음에 ‘그래도 살아볼 만하다’는 다정한 응답을 건넵니다. 절망을 직시하면서도 끝내 희망을 놓지 않는 이 책의 문장들은, 마치 마음속 잔잔한 물결처럼 오래도록 독자의 내면에 머무르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