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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간에도 보이지 않는 경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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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 후편은 전편에 이어 발베크가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드렸던 살롱문화는 파리와 같은 대도시 말고도 시골에서도 그곳에서 사는 귀족들이 중심이 되는 살롱문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파리의 살롱와 비교되지 않는 수준이겠습니다. 발베크 부근에 사는 베르뒤렝씨와 그들이 세들고 있는 집의 주인인 캉부르메르씨의 살롱이 등장하는데, 주무대는 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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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과 고모라’ 후편은 전편에 이어 발베크가 무대가 되고 있습니다. 앞서 소개드렸던 살롱문화는 파리와 같은 대도시 말고도 시골에서도 그곳에서 사는 귀족들이 중심이 되는 살롱문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파리의 살롱와 비교되지 않는 수준이겠습니다. 발베크 부근에 사는 베르뒤렝씨와 그들이 세들고 있는 집의 주인인 캉부르메르씨의 살롱이 등장하는데, 주무대는 베르뒤렝씨댁이지만, 두 집안이 은근히 대립하는 양상을 드러내고 있어 당시 유명 살롱들끼리 참석하는 인사들의 면면에 따라서 수준이 비교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발베크의 살롱에서 얼굴을 볼 수 있는 인사들은 파리의 게르망트공작 살롱이나 스완씨의 살롱에서 이미 낯이 익은 분들이기도 합니다. 휴양지인 발베크로 쉬러온 파리의 인사들을 유치해서 살롱의 명성(?)을 드높이려는 속셈이 있는 것이라 싶기도 합니다.

 

발베크의 살롱에서는 몰리에르의 연극과 발자크의 문학세계가 화제에 많이 오르는 것 같습니다. 17세기 중반 활동한 몰리에르는 프랑스가 낳은 가장 위대한 희극작가로 이름을 날렸습니다. 몰리에르는 전통적인 희극의 형식을 수용하면서도 정상적인 것과 비정상적인 것을 대비시켜 이것들의 상호관계에서 희극적 요소를 추출해내는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저의 대학연극반에서도 몰리에르의 <강제결혼>이 레파토리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의사 망나니>에서는 몰리에르가 의사를 얼마나 형편없는 인간으로 그려내고 있던지 화가 날 지경이었던 경험도 생각납니다. 몰리에르는 의사를 엄청나게 싫어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발자크는 19세기 초반에 명성을 얻은 소설가입니다. 따라서 프루스트가 사교계에 드나들 무렵 파리의 살롱가에서 화제에 많이 올랐던 것들을 기억하고서 소설에 반영하고 있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동성애를 주제로 하고 있어, 하편에서는 주로 샤를뤼스씨와 모렐씨 사이의 관계를 주로 세밀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작은 할아버지댁에서 일했던 사람의 아들인 모렐은 자신의 내력을 감춰달라고 주인공에게 요청하면서도 요청을 승낙하자마자 태도가 일변하여 으스대는 꼴을 보이는데, 이런 자의 비밀을 지켜줘야 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작가의 이해할 수 없는 점은 주인공과 알베르틴의 관계입니다. 전편에서는 알베르틴의 동성애적 성향의 흔적을 드러내지만 후편을 통하여 주인공과의 연애는 깊어져 혹시 결혼으로 이어질까 어머니가 걱정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그리고 성장기에는 어머니로부터 사랑을 갈구하는 상황을 묘사하던 주인공이 청년이 되어 많은 여성들과의 사랑을 그려내면서부터는 이야기 가운데 어머니가 등장하는 장면을 별로 볼 수 없다는 점입니다. 발베크에서 지내는 동안 어머니에 대한 설명은 몇 줄 되지도 않는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알베르틴이 등장한 이후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감정의 기복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갑작스럽게 스케치를 다니는 알베르틴을 위하여 자동차를 세내어 편의를 봐준다든가 묵고 있는 호텔에서 동숙을 한다거나 하다가도 헤어질 결심을 한다거나 하는 등입니다. 편집광적인 성격을 드려냈던 스완씨와는 달리 주인공은 불안심리가 두드러지는 성격으로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전편에서보다 동성애자들의 심리나 행동양태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제 마음에 드는 이들에겐 열렬히 친절한 만큼이나 자기에게 마음이 있는 이들을 멸시하는 게 성도착자들의 버릇이다.(53쪽)”라는 설명이나 게르망트 공작이 모렐을 꼬드겨서 홍등가에 드나든다는 사실을 알게된 샤를뤼스씨가 파리에서 쥐피앙을 불러들어 잠복하기도 합니다. 동성애자의 경우 이성애자들보다 질투의 정도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새로 생긴 동성애 상대를 감시하기 위하여 옛날 동성애 상대를 끌어들이는 것이 상황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볼 수 있는 특이한 점은 곳곳에서 고유명사의 어원을 설명하는 장면이 많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능숙한 외교관인 오르메송(Ormesson)의 이름에는 베르길리우스가 좋아한 울무스(ulmus, 느릅나무), 또는 울름(Ulm)이라는 도시 이름이 되기도 하는 오름(orme, 느릅나무)이 보입니다.(70쪽)” 아마도 이런 화제는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박식함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1920년대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프루스트는 일본의 군국주의적 망령을 예언한 것으로 보이는 구절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일본군이 우리의 비잔틴 문에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판국에, 사회 풍조로 된 반군국주의자들이 자유시의 주된 효력에 관해 엄숙하게 토론하다니, 착실한 프랑스 사람, 아니 착실한 유럽 사람이 할 짓이 못 됩니다.(103쪽)”




y*****2 2012.08.29.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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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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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였다면 4월에 끝났어야 할 8권.거의 한 달 넘게 8권과 시간을 함께 했다.예전같았다면 벌써 포기를 했을 텐데.왠지 정말 '시간'을 찾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였을까? 포기하면 안될 것 같은 묘한 공기가 풍겨진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원서로 읽는 것도 아닌데,도입부터 '언어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사교계를 묘사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렵구나 싶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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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대로였다면 4월에 끝났어야 할 8권.거의 한 달 넘게 8권과 시간을 함께 했다.예전같았다면 벌써 포기를 했을 텐데.왠지 정말 '시간'을 찾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였을까? 포기하면 안될 것 같은 묘한 공기가 풍겨진다.'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원서로 읽는 것도 아닌데,도입부터 '언어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사교계를 묘사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어렵구나 싶으면서도,원서로 읽는 다면 왠지 재미가 배가 될 것 같은 부분일지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나는 가볍게 가볍게 이 장면을 넘어갔다.어떤 상황에서든 생각하는 시선에 따라 보일수 있듯,작가가 풀어 놓는 수많은 언어의 역사 관념을 통해서도 나는 시간의 흐름으로 따라 읽는 내멋대로 재미를 경험했으니 그걸로 일단 만족. 전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두서 없이 풀어 놓는 것 같은데 어떤 지점에서 혹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서로가 만난다.때로는 서로가 숨기려 하는 장면을 들키기도 하고,애써 젠체 하면서 그렇게..그러는 사이에도 변함없이 흘러가는 것은 '시간'

그러나 순간순간을 사는 동안 '시간'은 보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이 시간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면,질투에 시간을 허비하고,누군가에 상처가 되는 말로 시간을 써 버리지는 않을테니까 말이다. 샤를뤼스에 대한 동성애 언급은 7권에 이어 8권에도 이어지지만 8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소설의 화자 (나)에 대한 사랑에 관한 감정이 쏟아진다.이 장면이 없었다면 매우 지루했을게다. 알베르틴를 통해 주인공 '나'의 복잡해진 마음을 스케치하는 장면 덕분에 읽어 낼 수 있었던 8권이다.

 

"상대 인간이란 우리와의 관계에 비례해 끊임없이 위치를 바꾼다.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 세계의 끊임없는 걸음 속에서 우리는 한순간의 시각 속에 상대방을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서 바라본다.상대방을 바라보는 그러한 한순간은 인간을 끌어들이는 운동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짧다.그러나 적어도 그 자체로서는 두드러진 변화를 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 각각 다른 순간의 그리고 상당히 서로 가까운 한 계열 속에서 포착한 상대방의 심상을 우리의 기억에서 골라 내기만 하면 그 두 심상 사이의 차이는 우리하고의 관계에 비례하여 상대방의 변이를 나타내는 척도가 되는 법이다."/189

 

처음으로 나도 모르게 주인공의 삶속으로 들어가 질투는 이제 그만 이라고 외치고 싶었다.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서 오히려 아무것도 선뜻 할 수 없다는 것은 절반의 축복일 테니까.

w*******i 2014.05.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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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서평]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내용보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기 도전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시작한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간다. 도서 구입 목록을 뒤져보니 첫 권을 구입한 때가 2010년 8월이었으니. 내가 읽고 있는 판본은 11권으로 구성된 국일미디어판이다. 한권으로 나온 책에 비하여 여러 권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읽기에 부담도 적고 읽다가 지
"[서평]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내용보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읽기 도전기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시작한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간다.

도서 구입 목록을 뒤져보니 첫 권을 구입한 때가 2010년 8월이었으니.


내가 읽고 있는 판본은 11권으로 구성된 국일미디어판이다.

한권으로 나온 책에 비하여 여러 권으로 나뉘어져 있어서 읽기에 부담도 적고 읽다가 지루해지면 다른 책들을 읽을 수도 있어서.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장석주 선생의 『느림과 비움의 미학』을 읽고 나서였다.

그 전에는 작가나 책의 이름을 한두 번 들어본 외에는 거의 알지 못했다.

(하긴, 그 외에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어떤 책이라는 것이 있기는 하겠는가마는.)

평소에도 선생의 여러 책에서 나의 독서와 삶에 대한 지표로 삼고 있었는데

이 책은 또 다른 과제를 제시해 주고 있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나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지 않았다고 해서,

(......) 사람 구실을 못하거나 자기가 수행하는 일에 지장을 받는 공무원은 없겠다.

(......) 철저하게, 깊이 있게 책들을 읽지 않는다면 그 흐름을 쫓아가기 힘들다.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자기 의지대로 방향을 잡고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일은 불가능하다.

충격적인 말이었다.

당장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구입했다.

만일 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내 삶이 헛되이 끝나 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마저 엄습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시 무지에서 오는 오판이었던가.

첫 권을 읽기 시작하고 나서야 비로소 엄청나게 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느린 호흡으로 오랜 시간을 두고 읽어야 하는 소설이라는 사실을 겨우 눈치챘을 뿐이다.

만일, 그것을 미리 알았다면 『율리시즈』를 먼저 읽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말이 『율리시즈』를 쉽게 생각한다는 말은 아니다.


아무튼,

첫 권 <스완네 집 쪽으로>를 어렵게 다 읽고 났지만,

인간 의식을 사실의 기억을 더듬어 해명하고 이를 시적으로 묘사한 미학적, 철학적, 과학적인 교양이 짙게 배어 있는 20세기 신심리주의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라는 책의 소개와는 동떨어진, 그저 지루하고 난해한, 시대에 맞지 않는 외국 소설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해가 바뀌었고 중간쯤 읽다가 구석에 처박아 놓고 말았다.


그런데,

이 한계에 이른 도전에 생기를 불어 넣는 전환점이 생겼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 『1Q84』를 읽으면서였다.

그 소설 속의 여자 주인공인 아오마메가 사이비 종교집단인 <선구>의 우두머리를 암살하고 은신하고 있을 때 읽기 시작한 책이 바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다.


이 책을 다마루는 아오마메에게 이렇게 추천하고 있다.

나는 교도소에도 간 적이 없고, 어딘가에 오래 은신할 일도 없었어. 그런 기회라도 갖지 않는 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들 하더군.


거의 1년에 걸쳐 읽으면서도 이해하지도 못하고 지루해 하기만 한 자신의 무능을 자책하고 있었던 참에 아오마메의 말은 구원의 빛과도 같았다.

“프루스트는 읽고 있나?”

“좀처럼 책장이 안 넘어가요”

“취향에 안 맞았나?”

“아니, 그런 건 아니에요. 하지만 뭐라고 할까, 이곳과는 전혀 다른 세계에 대해 묘사한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한참을 읽다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똑 같은 곳을 읽게 돼요”

“하지만 (......) 줄거리를 따라 앞으로 가는 독서보다 오히려 더 좋을지도, 뭐랄까, 거기에는 시간이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느낌이 있어요. 앞이 뒤여도 괜찮고, 뒤가 앞이어도 상관없을 듯한”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이 책 자체가 원래 그렇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구나, 하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나서야 다시 용기를 내어 한구석에 처박아 놓다시피한 책을 다시 펼쳐 들었다.

그렇지만 그 때에도 이 책을 이해하면서 읽은 것은 물론 아니었다.

『1Q84』에서 아오마메가 토로한 이 책 읽기의 어려움이 나의 불안과 부담감을 조금 덜어 주었을 뿐.


그렇게 읽다 말다 하기를 1년여인 지금은 제 8권 <소돔과 고모라> 편에 접어들었다.

이 책을 제외하고 아직도 세권이 더 남았다.

올해 안으로는 이 도전을 마무리하고 싶지만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1Q84』의 주인공 아오마메는 제 5권 <게르망트 쪽>까지 읽고 1Q84의 세계를 떠났다.

이 책을 완독하는 날,

책에 대한 감상문은 언감생심 생각할 수도 없겠지만

아오마메에게 그가 읽지 못한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정도라도 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w******5 2011.07.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