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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당은 서로의 오해만 키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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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에서 이벤트 문화버킷리스트를 시작하면서 과연 죽기 전에 보거나 듣고 싶은 책이나, 영화, 음악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절절한 문화상품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몇일을 두고 생각을 해보니 영화부문에서는 딱히나 집히는 것이 없었지만, 음악은 하나 있습니다. 학창시절 동아리에서 무대에 올렸던 손톤 와일드의 연극 <우리읍내>에 삽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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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에서 이벤트 문화버킷리스트를 시작하면서 과연 죽기 전에 보거나 듣고 싶은 책이나, 영화, 음악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을 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만큼 절절한 문화상품이 있을까 싶었습니다. 몇일을 두고 생각을 해보니 영화부문에서는 딱히나 집히는 것이 없었지만, 음악은 하나 있습니다. 학창시절 동아리에서 무대에 올렸던 손톤 와일드의 연극 <우리읍내>에 삽입곡으로 주인공의 장례식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이 모두 같이 불렀던 죽음에 관한 무거운 노래입니다. 가사도 거의 잊었습니다만, “오너라 오려무나, 죽음이여~~~” 이런 가사가 들었던 것 같습니다. 공연을 같이 했던 배우들을 만나면 들을 수 있겠지만, 극중에서 들어야 그 느낌이 그대로 살 듯 하여 아무래도 후배들이 이 작품을 다시 무대에 올려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읍내>를 떠올린 것은 어쩌면 읽고 있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사라진 알베르틴>편에서 다루고 있는 알베르틴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에 대한 저자의 두려움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루스트가 젊어서부터 천식을 앓았는데, 천식의 증상인 기침은 발작이 일어나면 숨이 넘어갈 듯한 공포가 엄습하기 마련이었기 때문입니다. 5편에 이를 때까지 할머니의 죽음이나 가깝게 지내던 스완씨의 죽음 등에 대하여 지나칠 정도로 간략하게 지나친 것은 주인공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놓치지 않고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은 저자의 성격과도 맞지 않는 점이라 하겠는데, 곰곰 생각해보면 두려움의 대상이라고 할 ‘죽음’에 대한 언급을 회피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공포를 줄여 보려는 간절함 같은 것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라진 알베르틴’편은 알베르틴과의 관계를 그리고 있는 전편인 ‘갇힌 여인’에 이어지는 에피소드입니다. 뿐만 아니라 알베르틴의 동성애적 성향을 고쳐보려는 주인공의 노력을 담고 있어서인지 ‘갇힌 여인’에는 ‘소돔과 고모라 III①’이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사라진 알베르틴’에는 ‘소돔과 고모라 III②’라는 작은 제목을 달아두고 있습니다.

 

갇힌 여인을 읽으면서도 느꼈던 점인데, 사라진 알베르틴에 이르러서는 알베르틴에 대한 주인공의 변덕이 더 심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베르틴을 파리의 집으로 데려와 동거를 시작한 것은 사랑해서가 아니고 그녀의 동성애적 성향을 바로잡기 위함이라는 점을 강조하다가도 절절한 사랑을 고백하는 식으로 엮어가던 ‘갇힌 여인’보다 더 극적이었던 것은 알베르틴이 집을 나가고, 그녀를 다시 데려오려는 주인공은 친구 생 루를 특사로 파견하는 한편, 알베르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는 그녀를 밀어내려는 척하면서 상황을 꼬이게 만들어 이를 곡해한 알베르틴도 버티는 소위 밀당이 진행되다가 느닷없이 그녀의 죽음이라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요즈음 우리네 막장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해집니다.

 

또한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주인공은 당장 달려가 그녀의 죽음을 확인하고 슬픔을 표시하는 것이 아니라 발베크의 호텔 급사 에메를 보내 그녀의 행적을 조사하는 치졸함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죽음으로 인하여 비탄에 빠진 주인공이 알베르틴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주절주절 늘어놓은 이야기만 해도 얼마나 되는지 인내심을 다시 시험받는 느낌이었습니다. 더 웃기는 것은 그리고서 알베르틴의 동성애 상대였던 앙드레를 끌어들여 관계를 맺거나 새로운 여성에 눈길을 돌리는 모습은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석해야 하는가 고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벗기고 벗겨도 새로 드러나는 양파껍질처럼 알베르틴의 동성애 취향에 연루된 사람들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것도 요즈음 우리나라의 드라마적 요소와 흡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샤를뤼스씨의 동성애 상대가 알베르틴의 동성애적 행적에 등장한다거나 생 루의 결혼생활을 파경으로 몰고가려 나선다거나 하는 등의 상황전개 때문인 것 같습니다.

 

책의 말미에 덧붙여 둔 ‘드레퓌스 사건’은 조지 D 페인터의 <마르셀 프루스트 전기>중의 제13장 ‘드레퓌스사건’을 옮겨둔 것이라고 하는데, 원전에 있는 내용이라기보다는 번역과정에서 결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글은 프루스트의 전기에서 옮겨온 탓에 사건의 전말을 가감없이 요약한 것이라기보다는 드레퓌스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프루스트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적을 뒤쫓고 있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 같습니다.

 

후반부에 이르다보니 작가의 지병의 영향도 있는 듯 긴장감이 많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y*****2 2012.10.06. 신고 공감 4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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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내용보기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이유는 아마도 기억이 언제나 진실하다고는 할 수 없고 인생은 세포의 끊임없는 갱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227   사랑했던 여자가 이제는 빛바랜 추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은 그래도 체념하기 쉬웠으나 생기가 넘치지만 기생적(寄生的)일 뿐인 인간 식물로써 우리의 생활을 온통 장식하는 일에 시간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그 불피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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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이유는 아마도 기억이 언제나 진실하다고는 할 수 없고 인생은 세포의 끊임없는 갱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227

 

사랑했던 여자가 이제는 빛바랜 추억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은 그래도 체념하기 쉬웠으나 생기가 넘치지만 기생적(寄生的)일 뿐인 인간 식물로써 우리의 생활을 온통 장식하는 일에 시간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그 불피요한 활기를 아직도 자신에게서 발견하는 일은 그렇지가 않다./228

 

우리의 애정이 식는 것은 상대방이 죽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죽기 때문이다./230

 

생각하는 습관은 현실적인 것을 느끼는 데에 방해가 되는 수가 흔히 있어서 그것에 대해 면역이 되게 하여 역시 그것을 생각 속에서 끌어내는 버릇을 기르는 법이다.어떠한 생각이건 가능한 반박을 내포하지 않은 것은 없으며 어떠한 말이라도 반드시 반대말을 내포하고 있다./238

 

그리고...

 

우리가 죽음을 눈앞에 느낄 때에는 그때야말로 생명이나,일락,이윽고 잃게 될 미지의 나라를 참으로 풍성하게 즐길 거다.일단 위험이 지나면 우리 눈앞에 다시 나타나는 것은 그런 즐거운 것은 하나도 없는 한결같이 침울한 인생이다./90

 

잃어버린 시간을...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어느 시인이 이 책에 대해 언급한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였음을 책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지루한 듯한 문장,그러나 그 행간 속에 심오한 아포리즘의 발견들.어느 순간 소설이란 생각 보다는 심리학책을 읽는 듯한 착각.사람의 마음까지 스캔이 가능할까 싶은데,가능하다고 나도 모르게 말하게 될 것 같은 착각.소설 내용만 놓고 보면 냉소적임을 넘어선 예민함을 받아들이기가 버거울 정도인데,그가 쏟아 놓아낸 말들은 결코 박물관에나 걸려 있을 과거형의 유물이 아니였다.어느 순간은 내 자신의 모습을 들킨 것 같기도 하고,또 어느 때는 프루스트가 풀어 넣은 인물을 닮은 사람때문에 힘들어 한 기억.웃음이 나기도 하고 위로가 되기도 한다.한때는 즐겨 읽었던 심리학책도 프루스트 보다 정확할 수 있을까 싶어진다.우리가 가지고 있는 죽음,질투,사랑,욕망 등에 대해 그야말로 민낯을 드러낸다.그를 까칠하다 말하게 되는 것은 나의 치부를 인정하고 싶지 않음도 깔려 있을지 모르겠다.때로는 지루하기도 하고 또 가끔은 그의 기복 심한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힙겹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인간의 수많은 감정들을 이미지화 해서 활자로 풀어낸 글의 마력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w*******i 2014.06.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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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 사라진 알베르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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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사라진 알베르틴/마르셀 프루스트/김창석/국일 미디어 11권의 번역본 중에서 10번째 책이다. 마르셀은 알베르틴과 동거한 이래 그녀의 동성애 성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감시한다. 그것을 알베르틴에 대한 깊은 사랑이며 의무라고 생각한다. 알베르틴과 결혼까지 생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러한 마르셀의 의심에 지쳐 가던 알베르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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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0 :사라진 알베르틴/마르셀 프루스트/김창석/국일 미디어


11권의 번역본 중에서 10번째 책이다.


마르셀은 알베르틴과 동거한 이래 그녀의 동성애 성향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감시한다.

그것을 알베르틴에 대한 깊은 사랑이며 의무라고 생각한다.

알베르틴과 결혼까지 생각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그러한 마르셀의 의심에 지쳐 가던 알베르틴은 마침내 한 장의 편지를 남기고 집을 나간다.

친구인 생 루를 알베르틴의 숙모집으로 보내지만 다시 돌아오겠다는 편지보다 먼저 도착한 것은 알베르틴이 말에서 낙상하여 죽었다는 전보였다.


알베르틴을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면서도 집착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녀가 죽은 후에도 자신의 의심을 여러 방법으로 확인한다.

그런데 그녀가 떠난 또 다른 이유를 발견한다.

마르셀이 결혼을 계속 미루자 그녀의 숙모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추진했었기 때문이었다.


여러 증언으로 알게 된 사실들을 통해 그가 알고 싶었던 두려운 진실이 아무 의미 없는 사소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확인된 진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무수한 증언과 추측만 있을 뿐.


시간이 흘러 알베르틴에 대한 추억은 점점 식어지고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면서 변해가는 자기감정을 합리화시킨다.

그녀를 용서했으며 사랑은 영원하지 않는 것이라고.


책의 뒷부분에 보충해 놓은 ‘베네치아에서 노르푸아 씨와 빌파리지 부인이 합석한 저녁식사 장면’도 만일 알베르틴과 결혼해서 함께 늙어갔다면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과 알베르틴을 끊임없이 감시해 온 자신에 대한 뒤늦은 후회가 담겨 있다.


소설의 내용과는 별개로 당시 프랑스 전역을 들끓게 만들고 국론을 분열시켰던 드레퓌스 사건의 전말을 실어 놓았다.

조지 D. 페인트가 쓴 「드레퓌스 사건」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그 사건과 밀접한 연관을 가졌던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곳곳에 사건과 관련된 일화를 실어 놓았으며 이 글을 통해서 전후 맥락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시작한지 3년이 지났다.

첫 권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내용은 물론 프루스트식의 전개와 문체가 낯설어 몇 페이지를 읽지 못하고 중단하기 일쑤였다.

끝까지 한 번 읽어보자는 오기 하나로 여기까지 오게 된 지금은 전체적인 흐름이 보이는 듯하고 프루스트 특유의 문체에도 조금씩 적응이 되어 간다.


어느 미국 독자가 3년간 이 소설을 읽고 나서 프루스트에게 “잘난 척하지 말고 당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단 한 장으로 요약해서 말해 달라”고 편지를 보냈다던 일화가 떠오른다.


마지막 한 권을 마저 읽고 난 후에는 추운 다락방에서 이불을 덮고 어머니가 만들어 준 마들렌의 맛을 떠올리며 평생 동안 대작을 완성한 저자의 마음을 단 한 줄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고대해 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w******5 2012.05.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