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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정념과 미덕』에 수록된 <정념과 미덕>과 <시향용 향기 혹은 떠돌이 광대들>은 구스타브 플로베르가 청소년기에 쓴 작품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인간의 욕망과 파멸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요. 그의 대표작 『마담 보바리』에 꽤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플로베르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내면과 감정을 집요하게 파고들 준비가 되어 있던 작가였나 봐요.
이 책의 소설들은 사랑과 정념이 결코 순수하거나 아름답기만 한 감정이 아니라는 사실을 극단적으로 알려줘요. 사랑과 정념이 인간을 얼마나 쉽게 극단으로 몰아가고, 파괴하는지를 보여주는데... 정념과 미덕 사이의 간극을 보며, '정념'과 '미덕'의 사전적 의미를 여러 번 찾아보기도 했네요^^;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가며 파멸하는 마짜, 사랑과 질투 속에서 무너지는 마르그리트. 구스타브 플로베르의 사실주의적인 문체 때문인지, 이야기 자체의 냉혹함 때문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랑과 욕망의 민낯 때문인지... 이 인물들에게 감정이입하기가 어려웠어요. 연민보다는 오히려 거리감이 느껴졌고, 그들의 사랑이 공허하고 씁쓸하게만 다가왔습니다. 그녀들에게 사랑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나에게 사랑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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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파멸로 향하는 한 인간의 삶을 그린 소설은 많고, 비뚤어진 사랑이나 비교와 멸시, 질투로 얼룩진 이야기도 낯설지 않다. 줄거리 자체가 특별하다기보다는 작가 귀스타즈 플로베르가 약간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 좋았다. 감정을 몰아붙이거나 인물을 변호하지 않고, 인간이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끝까지 바라보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이러한 통찰력 있는 시선은, 이 작품이 작가가 십대 시절에 쓴 소설이라는 사실을 더욱 놀랍게 만든다.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단편은 사랑에 자신을 건 여자들의 이야기다. 옮긴이의 말처럼, 이 짧은 소설들은 “주체할 수 없는 정념이 어떻게 인간을 타락과 파멸의 길로 이끄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 작품들은 도덕적 교훈을 제시하지도, 사랑과 정념을 미화하지도 않는다. 대신 인간의 감정이 환경과 관계 속에서 어떤 영향을 받고, 어떻게 변질되어 가는지를 한 발 떨어져서 집요하게 관찰한다. 「정념과 미덕」의 비극은 순수한 사랑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인식함과 동시에, 그 사랑이 욕망과 집착, 분노로 변질될 가능성을 어렴풋이 예감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 너무나 황홀하고 소중했기에, 예감은 애써 외면한다. 읽으며 안타까움에 다른 가능성들을 생각하게 된다. 남편과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가정을 꾸려나갔다면,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었다면, 혹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집중할 수 있었다면 그녀의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정념 외에는 삶을 지탱할 게 없었던 한 여자의 이야기다. 「시향용 향기, 혹은 떠돌이 광대들」은 더 냉혹한 이야기이다. 소설 초반의 이 가족의 가난은 고통스럽지만 그건 파멸의 원인이 아니다. 그녀가 끝내 견디지 못한 것은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의 끊임없는 비교, 그리고 살아가는 매 순간 이어지는 멸시였다. “난 그냥 당신이 싫어. 다른 이유는 없어. 그냥 내 마음이 그래.” 이유 없는 혐오는 반박할 수 없고, 인간을 무력하게 만든다. 이 비극을 더욱 잔인하게 만드는 것은 그녀의 직업이다. 광대라는 역할은 사람들 앞에 드러나야 하고, 평가와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리다. 결국 자신을 파괴하는 그 질투라는 감정은 개인의 성격 결함이 아니라, 인간적 존엄이 반복적으로 훼손된 결과처럼 보인다. 이 두 번째 단편을 읽으며 이전에 읽었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라는 국내 소설이 떠올랐다. 이 책의 외모로 차별받고 미움받던 여자는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사랑이 있어도 비교와 멸시를 견디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가난이나 결핍은 버틸 수 있고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품을 수 있지만 존재 자체가 평가되고 열등하게 규정되는 삶은 지속될 수 없다. 정념은 무엇인가. 정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사랑과 욕망, 집착처럼 인간을 사로잡아 이성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힘이다. 플로베르는 이 정념 앞에서 등장인물들을 구제하지 않는다. 두 편의 이야기 모두 잔인한 비극으로 끝나며, 인간이 어떤 환경에 놓일 때 얼마나 쉽게 자신을 잃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비극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기분이다. 무엇을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것은 우리를 살게 하는가, 버티게 하는가, 아니면 언젠가 나를 무너뜨리지는 않을까.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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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미덕을 따르느라 자신의 마음을 외면하는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마담 보바리>로 유명한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가히 천재 작가다. 무려 열살부터 글을 썼다는 귀스타브는 열여섯살에 <정념과 미덕>이란 작품을 쓴다. 열여섯살에 어떻게 이렇게 사실적으로, 적나라하게 사람의 깊은 심리를 묘사 했을까 싶다. <정념과 미덕>은 욕망과 도덕이 충돌할 때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단순히 "욕망은 나쁘고, 미덕은 좋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덕이라는 이름으로 욕망을 억누를 때 인간이 얼마나 불행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이 쓰인 19세기 프랑스 사회는 겉으로는 도덕과 종교를 중시하는 사회였다. 사람들은 체면과 규범을 지키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하지만 그 안에는 위선이 많았다. 진짜 마음보다 남의 시선을 더 의식했고 욕망을 드러내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여겼다. 플로베르는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미덕을 지키며 살려고 애쓰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소설 속 주인공은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삶을 살도록 길들여진 인물이다. 그녀의 삶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 속에서 만들어진것이다. 문제는 이 미덕이 내면의 욕망을 제거하지 못한 채 단지 침묵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주인공이 정념에 빠지는 순간은 단순한 타락의 장면이 아니다. 그것은 도덕적 삶을 견디며 살아온 한 인간이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사회는 이 솔직함을 용납하지 않는다. 주인공이 정념에 빠지는 순간은 결국 그녀를 비극으로 몰고 간다. 이 소설이 인상적인 이유는 저자가 어느 한쪽의 편도 들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덕과 정념이 모두 인간을 구원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냉정하게 바라본다. 정념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지만 동시에 자기 파괴적이며, 미덕은 인간을 보호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삶을 질식시킨다. #리뷰어클럽리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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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담 보바리』로 유명한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소설책이다. 이 책 속에는 책의 제목이 된 <정념과 미덕>이라는 중단편 소설과 <시향용 향기 혹은 떠돌이 광대들> 이라는 단편 소설이 실려있다. 두 이야기는 한 여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 외에는 두 인물의 지위도 처한 환경도 다르기에 전혀 다르게 흘러 가는 듯하다. 그러나 다 읽고 나면 결국엔 그 여인들이 간절히 바라던 사랑을 향한 염원. 그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았을 때 겪는 좌절이 질투와 분노로 점칠되어 결국엔 자기 파괴에 이르기까지. 큰 결이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당대에 있었을 법한, '사랑' 이라 포장하고서 난무하였을 '불륜, 치정, 질투, 혐오, 분노, 무책임, 폭력' 등의 그 추한 민낯을 폭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불리는 이유가 드러난다. 더 놀라운 점은, 이 두 작품이 10대 때 쓰여졌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문체에서 <마담 보바리>보단 덜 세공된, 날 것의 풋풋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10대 때 이런 현실을 관찰하고 꼬집어 내는 능력을 발휘하였다니, 대단할 따름이다. 현실, 사실주의 이런 말들이 잘 와닿지 않는다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뻔한 로맨스 소설에 질린 자들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것이다. 추천! #리뷰어클럽리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