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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낯선 땅 무명저고리의 삶을 통해 찾은 우리 역사
"그 옛날, 낯선 땅 무명저고리의 삶을 통해 찾은 우리 역사" 내용보기
어린이들이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로 시작되는 동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동화적 상상력일 것이다. 흔히 고학년 대상의 동화라도 책처럼 시대적․공간적 배경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는 많지가 않다. 이 책은 ‘1884년 겨울’(이야기는 약 3-4년 후까지 이어진다), 우리 조선 땅이 아닌 남의 나라 청나라 ‘연변’을 무대로 펼쳐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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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에”로 시작되는 동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동화적 상상력일 것이다. 흔히 고학년 대상의 동화라도 책처럼 시대적․공간적 배경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경우는 많지가 않다. 이 책은 ‘1884년 겨울’(이야기는 약 3-4년 후까지 이어진다), 우리 조선 땅이 아닌 남의 나라 청나라 ‘연변’을 무대로 펼쳐지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지나간 역사의 기록을 접하게 된다. 비단 ‘독자’를 ‘어린이’로 못 박지 않은 이유는 ‘어른’들도 이 책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어른을 위한 동화’가 따로 있겠는가?

어린이에게 필요한 역사책이란 비단 정확한 연대나 고유 인명이 등장하는 ‘어린이용 조선왕조 실록’, ‘어린이용 삼국사기’나 ‘어린이용 태조 왕건’류 만이 아닐 것이다. 역사책을 읽는(혹은 읽히는) 이유는 ‘내일을 살아가기 위한 올바른 역사관 형성’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왕조사나 위인전 등의 교과서적 역사물에 등장하지 않는 소사(小史)를 다룬 <폭죽소리> 같은 책도 있어야 할 것이다. “살 길을 찾아 걷고 또 걸어서” 두만강 건너 북쪽으로 간 옥희네의 삶에도 역사는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역사의 주체는 대다수의 이름없는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말기(구한말)부터 외세의 침탈과 지주, 양반․관리의 횡포를 더 이상 견디다 못해 우리 조상들은 정든 고향 땅을 버리고, 살기 위해 삭풍 부는 북쪽을 찾아 떠난다. “그가 아홉살 되던 해/ 사냥개 꿩을 쫓아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데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쪽을 향한 발자옥만 눈 우에 떨고 있었다/ /더러는 오랑캐령 쪽으로 갔으리라고/ 더러는 아라사로 갔으리라고/ 이웃 늙은이들은 모두 무서운 곳을 짚었다”(낡은 집, 이용악) 그러나 제 나라 땅에서조차 보습 대일 땅 빼앗기고 소작물까지 빼앗긴 식솔이 어쩔 수 없이 찾아간 그 북쪽 사정 역시 별반 다를 수는 없었다. 민족의 역사가 불행한데 개인의 삶이 행복할 수는 없다. 민족의 역사와 개인의 역사는 수레바퀴처럼 같이 굴러가는 것이다.

옥희는 종자 한 되와 수수쌀 두어 되에 팔려져 중국인 왕씨네의 부엌데기로 가슴 아픈 삶을 이어가게 된다. 왕씨 내외와 전족의 쌍둥이 자매들은 ‘해진 버선에 미투리를 신고, 자주색 고름이 달린 연둣빛의 낡은 무명저고리를 입은’ 옥희를 구박한다. 자주색 고름을 ‘염소처럼 끌고 다니려고 달아놓은 끈’으로 여기는 쌍둥이 자매에게 옥희는 그저 남의 나라에 빌붙어 사는 “써우즈”(말라빠진 아이)일 뿐이다. 제 땅에서 살지 못하는 백성에게는 배고픈 설움 외에 ‘문화 차이’ 또한 설움이 된다. 시간이 지나고 청나라 말을 알아듣고 말할 수 있게 되면서 이방인과의 생활에 점점 익숙해지지만 옥희의 삶은 달라질 것이 없다. ‘폭죽놀이’가 불놀이이기는 하지만 고향 땅에서 치마저고리를 입고 하는 ‘쥐불놀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옥희는 폭죽놀이가 벌어지는 날 ‘쥐불놀이’를 꿈꾸면서 ‘화전으로 먹고사는 치마저고리 입은 사람들’을 찾아 떠난다. 옥희처럼 두만강을 건너온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무리 지어 살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책에서 옥희는 개 ‘헤이랑’과 염소 ‘순돌이’, 이웃집 소년 ‘밍밍’을 통해 위안은 느낀다. 그러나 옥희에게 ‘헤이랑’과 ‘순돌이’는 자신처럼 엄마 없는 신세라는 동병상련인 존재 이상은 아니다. 밍밍은 중국식 제기인 ‘위모챌’(중국식 제기)을 통해 옥희에게 제기차며 자란 고향의 어린시절과 제기를 만들어주던 엄마를 떠올리게 해주며, 국경을 초월한 ‘소통’을 가능케 하는 존재다. 이후 밍밍은 ‘치마저고리를 입은 사람’이 있는 ‘상발원’ 소식을 전해줌으로써, 옥희에게 ‘희망의 증거’를 잃지 않게 해준다. ‘청나라 사람(남의 나라 사람)=악인’이라는 획일적(이분법적) 구도를 따르지 않고 있다.

‘엄마’를 그리워하던 옥희가 찾아가는 곳은 ‘엄마’가 있는 곳이 아니다. 옥희는 자신의 희망을 ‘자신의 엄마’가 아닌 ‘치마저고리 입은 울 엄마 같은 분들’에서 찾고 있다. 이 설정은 옥희의 불행은 ‘개인’이 아닌 ‘민족’ 차원에서 비롯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그 불행을 ‘민족’을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치마 저고리’는 옥희가 이국 땅에서 잃지 않고 지켜나가려는 정체성의 상징이다. ‘치마 저고리’는 곧 우리의 ‘문화’, ‘정신’ 혹은 ‘얼’이라 할 수 있다.

책의 결말은 다소 낯설다. 책은 옥희가 ‘치마저고리’ 입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도착한 이후의 삶을 그리지 않는다. 치마저고리 입은 사람들과 함께 살게 된 후 옥희의 삶은 행복했을까(행복할까)? 동화 맨 끝을 보면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던(못한) 것 같다. “두만강을 건너온 사람들은 이 곳에 연변 조선족 자치주를 세우고 한복을 입고 자기 말을 하면서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해마다 설이 되면 이 곳엔 폭죽소리가 요란하다” 책이 그 이후를 다루지 않은 이유는 불행이라고 할 수 있는 옥희의 삶이 아직도 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은 재일동포, 재미동포보다 더 먼 옛날부터 이 땅을 떠나 고생해온 조선족, 아니 재중동포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우리는 조선족의 힘들었던 삶을, 그 역사를 지켜온 조선족의 현재를 모른 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연변이나 서울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코리언 드림’을 내세워 취업을 미끼로 조선족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그들을 임금 없이 노예처럼 마구 부려먹고, 서울에서 받은 돈 없는 설움을 ‘조선족’ 현지처를 통해 풀어보려는 추악한 고향 사람들. 그들 때문에 어쩌면 옥희는 지금 무명저고리를 벗어 던지려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동화가 묵직한 것은 옥희가 낯선 땅에서 보낸 옥희의 지난한 삶이 바로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의 이야기와 맞닿아 있는 우리 역사, 한국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옛날, 이국 땅에서 무명저고리를 지켜온 옥희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로 끌어안아야 할 것이다.

그림은 ‘폭죽소리’라는 제목처럼 화려하지 않다. 책의 일러스트레이션은 어둡지만 강렬한 갈색으로 일관해 비극미의 깊이를 더해 주고 있다. 다소 딱딱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동화의 첫 부분은 아이들을 이야기에 쉽게 빠져들게 할 수 있을 만큼 긴장감이 있다. 이후 전개되는 사건이 단순한 나열에 끝치고 있으며, 긴장감을 책 끝까지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부모의 읽기 지도가 필요한 책이다. 시점을 ‘옥희’로 설정했다면 전달력이 더 높았을 것 같다. 번역서가 아님에도 군데군데 거친 문장이 있어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 것도 눈에 밟힌다. 


[인상깊은구절]
옥희는 구슬땀을 훔치며 창 밖을 내다보다가 마침 담장 너머로 들여다보고 있는 밍밍이와 눈길이 마주쳤다. 밍밍은 옥희에게 손짓을 했다. 옥희는 왕씨 아주머니와 쌍둥이들의 눈길을 피해 살그머니 밖으로 나왔다. "얘, 오늘 아빠 따라 상발원이라는 곳으로 갔어. 여기서 오 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인데 그 곳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났을지 생각해 봐." "너처럼 치마저고리를 입은 사람!" "뭐?" "연기가 뽀얗기에 쥐불놀이하나 하고 생각했지. 화전민들이었어!" 옥희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소식이었다. 나처럼 치마저고리를 입은 사람들이라니! 그들이 가까이에 있다. 내 가까이에…….
m****t 2001.05.03. 신고 공감 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폭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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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살기 어려운 많은 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청나라로 넘어갔다. 사람들은 연기가 많은 곳이라고 남강은 '앤지'라고 부르다가 나중에는 글자만 바꾸어 '얜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마도 옥희의 부모님도 그 중 하나로 보인다. '옥희'의 부모는 청인의 창고안에 잠든 옥희를 곡식과 맞바꾸어 가지고 돌아갔다. 옥희는 내년에 농사지을 종자에 팔려버린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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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살기 어려운 많은 사람들이 살길을 찾아 청나라로 넘어갔다. 사람들은 연기가 많은 곳이라고 남강은 '앤지'라고 부르다가 나중에는 글자만 바꾸어 '얜지'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마도 옥희의 부모님도 그 중 하나로 보인다. '옥희'의 부모는 청인의 창고안에 잠든 옥희를 곡식과 맞바꾸어 가지고 돌아갔다. 옥희는 내년에 농사지을 종자에 팔려버린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곡식과 바뀌는 신세가 된 옥희가 너무 가여웠다.

조선 아이 옥희는 부모에 의해 종자 한 되와 수수쌀 두어 되를 받고  왕씨네 부엌데기로 들어갔다. 부모는 옥희가 청인의 집에서 힘은 들어도 재는 골치않으리라 여겨져 아이를 맡겼을 것이다. 왕씨의 쌍둥이 딸 쉬메이와 쉬잉이는 틈만나면 옥희를 괴롭힌다. 말이 통하지 않는 옥희를 왕씨 부인은 '써우즈, 즉 말라빠진 아이라고 불렀다. 옥희도 '써우즈'라는 부름이 자기를 부른다는 것을 안다. 병든 왕씨 할머니를 보살피는 일은 맡은 옥희, 왕씨네 집에 제사를 지내게 되엇는데 그중 엿이 없어져 옥희가 의심을 받게 되었다.

"엄마, 엄마는 어디 갔어요? 엄마는 날 이렇게 두고 어디 갔어요? 날 두고 어디로..." 옥희를 팔려고 장에 간 왕씨 부인, 옥희가 팔리지 않자 다시 집으로 데려 오지만 왕씨 부인과 쌍둥이 아이들은 더욱 더 많은 일을 시켰다. "써우즈!" "써우즈!" "써우즈!" 쉴틈없이 불러대는 소리들, 노망든 할머니 시중에, 빨래와 짐승까지 돌봐야 하는 아직 어린 옥희로서는 견디기 힘들 일들이었다. '위모첼' 제기로 인해 옥희와 쌍둥이 딸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자 왕씨 아줌마는 옥희를 집밖으로 쫓아낸다. 참! 언젠가 없어졌던 엿의 범인은 그 집 개 헤이랑이었다.

콩볶는 듯한 요란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 옥희, 청나라 사람들은 설음식으로 죠즈라는 것을 먹는데 '말발굽 모양에 고기를 속에 넣고 밀가루로 빚은 것' 마치 고기만두와 닮은 것 같다. 봄이 되어 염소를 이끌로 숲으로 간 옥희는 그곳에서 이웃집 사내아이 밍밍을 만난다. 서로 말은 안통하지만 제기놀이를 통해 서로 친해진다. 그런 옥희를 질투하는 쌍둥이 자매들, 빨래터에서 옥희가 주어온 진주로 왕씨부부는 큰 돈을 벌자 쌍두이와 옥희에게도 옷 한벌을 해준다. 

부모와 떨어져 부엌데기 노릇을 하는 옥희, 비슷한 또래인 쌍둥이 아이들이 부모에게 사랑받으며 사는 것을 보며 얼마나 부러웠을까, 설 명절이면 청나라는 폭죽놀이를 하지만 조선은 지불놀이를 한다. 이웃 밍밍이 알려준대로 그곳을 찾아가는 옥희, 과연 부모님을 만날수 있을까? 남아를 중히 여기고 여아는 쉽게 버리는 사고방식의 부모님들, 만약 내가 그때를 산다면 나는 어떤 일을 당하게 되었을까? 부디 옥희와 같은 일을 당하지는 말아야 할텐데~~~. 
s*******1 2011.03.01.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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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불놀이가 연길이란 도시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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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불놀이를 하면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워낙 연기가 많이 피어오르니 옌지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됐다. 음은 같지만 의미가 바뀌면서 한자도 연길이라고 적는다.조선인들이 두만강 주변에서는 땅이 거칠어서 작물을 심어서 키우기 어려운 곳이었다.주민들이 강을 건너 간도에 정착하면서, 조선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기 시작했다.당시에도 조선의 남자들은 막노동을 하면서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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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불놀이를 하면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워낙 연기가 많이 피어오르니 옌지라는 명칭으로 부르게 됐다. 음은 같지만 의미가 바뀌면서 한자도 연길이라고 적는다.
조선인들이 두만강 주변에서는 땅이 거칠어서 작물을 심어서 키우기 어려운 곳이었다.
주민들이 강을 건너 간도에 정착하면서, 조선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도 살아남기 시작했다.
당시에도 조선의 남자들은 막노동을 하면서 살아가고, 조선의 여자들은 인신매매로 팔려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지금도 북한사람들이 국경을 넘어 한족이나 조선족 밑에서 일을 하고, 물건처럼 팔려간다. 만약 거부하면 밀고로 인하여 북송되기 때문에 더욱 불안하게 살아간다.
p******h 2018.08.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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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 가랑비 소리 (폭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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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19   겨울밤 가랑비 소리― 폭죽소리 리혜선 글,이담·김근희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1996.3.1./10500원     깊은 새벽 어떤 소리 하나 듣고 잠에서 깹니다. 아이들이 쉬 마렵다고 보채는 소리 아니요, 큰아이가 뒹굴다가 잠꼬대 하는 소리 아닙니다. 설마 들쥐가 집에 들어와서 무얼 갉아먹는 소리인가 생각하다가,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이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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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즐기는 그림책 219

 


겨울밤 가랑비 소리
― 폭죽소리
 리혜선 글,이담·김근희 그림
 길벗어린이 펴냄,1996.3.1./10500원

 


  깊은 새벽 어떤 소리 하나 듣고 잠에서 깹니다. 아이들이 쉬 마렵다고 보채는 소리 아니요, 큰아이가 뒹굴다가 잠꼬대 하는 소리 아닙니다. 설마 들쥐가 집에 들어와서 무얼 갉아먹는 소리인가 생각하다가, 아니겠지 싶으면서도 이 소리인가 하고 부시시 일어나 마당을 내다봅니다.


  한겨울 깊은 밤, 마당은 겨울비로 촉촉하게 젖습니다. 생각해 보니, 어제 하루 햇살 보기 힘들 만큼 구름이 두껍게 끼었습니다. 고흥은 날이 따사롭기에 눈은 안 올 테고 비라도 뿌릴 듯하겠다 싶었습니다. 그리고, 깊은 밤 참말 겨울비 흩뿌립니다. 비오는 소리였구나.


  섬돌 언저리에 놓은 책상자를 빗물 들이치지 않을 만한 자리로 옮깁니다. 흙바닥과 이웃집 마늘밭과 마당과 후박나무 잎사귀를 가볍게 때리는 겨울 가랑비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 나는 빗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군요.


  하기는. 신문배달을 하던 무렵부터 빗소리에 벌떡 일어나곤 했어요. 아주 어릴 적에는 창밖으로 들리는 빗소리 듣고 밤에도 문득 눈을 뜨기는 했지만 딱히 일어나지는 않았는데, 나는 아마 꽤 어릴 적부터, 어쩌면 아주 먼먼 옛날부터 빗소리 알아듣는 유전자가 몸속에 깃들었을 수 있어요.


.. 왕씨는 관 속에 이상한 차림의 여자아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됫박 속에서 뭔가 노르스레한 것이 가볍게 떨어져 내렸다. 이를 본 왕씨 아주머니의 얼굴빛이 갑자기 굳어졌다. “당신 조 씨앗은 누굴 갖다 줬어요?” “저 애와 바꾸었지.” 왕씨는 싱글거리며, 마침 부엌데기를 두려던 참인데 씨앗 한 됫박으로 이 여자아이와 바꾸었으니 얼마나 싸냐고 장사꾼답게 말을 늘어놓았다 ..  (10쪽)


  빗소리를 곧 알아채기에, 눈소리도 이내 알아챕니다. 바람소리도 알아챕니다.


  아이들 이불깃 여미다가 다시금 생각합니다. 나는 어린 날부터 코가 퍽 나빴는데, 코로 냄새를 맡아 헤아리는 느낌을 다른 사람들처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터라, 나로서는 귀로 소리를 들어 헤아리는 느낌에 더 마음을 기울였을 수 있겠다 싶습니다. 사람들이 “냄새 좋네.” 하거나 “냄새 나빠.” 할 적에 나는 무슨 냄새가 나는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곤 합니다. 콧물을 늘 달고 살았으며, 코가 늘 막히니 머리도 늘 멍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도 소리는 먼저 느껴요. 이를테면, 국민학생 때 담임선생이 골마루를 끌신을 질질 끌며 걸어오는 소리를 느낍니다. 교실에서 동무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도 문득 이런 소리를 듣고는 후다닥 내 자리로 돌아가 앉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이들은 담임선생이 교실 문 앞까지 와도 못 알아채지요.


  소리를 듣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소리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들을 수 있을까요.


  식구들과 아직 도시에서 지낼 적에는 전철 소리와 자동차 소리 때문에 귀가 몹시 아팠습니다. 찢어지는 듯한 이들 소리는 참말 가슴을 좍좍 찢는구나 싶었어요.


  도시를 떠나 시골에 깃들며 전철도 버스도 자동차도 멀리 떨어지면서 홀가분합니다. 비로소 내 귀와 마음과 몸을 아늑하게 쉴 만한 소리를 듣습니다. 멧새와 풀벌레 소리를 듣습니다. 바람과 햇살 소리를 듣습니다. 풀과 나무 소리를 듣습니다. 구름과 비와 눈 소리를 듣습니다.


  비오는 날씨를 좋아하는 분들은 빗소리를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나는 눈오는 소리, 곧 ‘눈소리’도 좋아합니다. 눈소리는 귀로도 들을 수 있지만, 귀보다 몸으로 먼저 들어요. 몸으로 퍼뜩 느끼지요. ‘아, 눈이 오네.’ 하고. 저기 높디높은 하늘에도 눈송이 하나둘 떨어지며 내는 가볍고 포근한 소리를 몸이 먼저 듣습니다. 그러고 나서 눈으로 눈송이를 보고, 눈으로 눈송이를 보면서 머리카락부터 발가락까지 쩌릿쩌릿 울리듯 눈소리를 받아들입니다.

 


.. “헤이랑(개)아, 순돌(염소)아, 너희들도 엄마가 없는 거니? 그래, 우리 셋은 다 엄마가 없는 거야. 울 엄마는 선녀같이 예뻤어. 나처럼 치마저고리를 입으셨지. 날 미워서 버린 건 아니야. 무슨 일 때문인지 날 두고 가셨어. 엄만 꼭 무슨 일이 있었을 거야. 꼭 무슨 일이 …….” ..  (24쪽)


  밥을 끓이면, 밥 익는 냄새 구수하게 퍼집니다. 그리고 밥 끓는 소리 자글자글 보글보글 퍼집니다. 냄새와 소리가 어우러지면서 즐겁게 기다립니다. 냄새와 소리가 얼크러지면서 기쁘게 웃습니다.


  서로 웃으며 웃음소리를 나눕니다. 서로 이야기보따리 끌르면서 이야깃소리 나눕니다. 서로 사랑을 속삭이면서 사랑소리를 나눕니다. 모든 움직임에는 소리가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든 마음을 움직이든 소리가 있습니다. 즐겁게 울리는 소리요, 환하게 퍼지는 소리입니다.


  까르르 웃어 보셔요. 내 웃음이 얼마나 멀리까지 퍼지는지 느껴 보셔요. 벌컥 골을 내 보셔요. 내 골부리는 얄궂은 소리가 얼마나 멀리까지 퍼지는가 느껴 보셔요.


  사랑을 나누듯 미움까지 나눕니다. 사랑을 건네듯 미움까지 건넵니다. 사랑을 속삭이듯 미움을 퍼뜨립니다.


  어떤 삶이 나부터 즐겁고, 어떤 삶이 나한테서 비롯할 때에 아름다울까요. 내 목소리는 어떤 결 어떤 무늬일 때에 해맑게 빛날까요.


.. 왕씨네 집에서는 옥희를 내세워 선을 보이고 언니 쉬메이를 좋은 가문에 시집 보냈다. 폭죽 터뜨리는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옥희는 순돌이와 헤이랑을 데리고 숲속으로 갔다. 참으로 화창한 날씨였다. “순돌아, 헤이랑아. 이제 여기서 십 리만 더 가면 울 엄마 같은 분들이 사는 곳이 있대. 난 그리로 갈 거야.” ..  (42쪽)


  리혜선 님 글에, 이담·김근희 두 분 그림이 어우러진 그림책 《폭죽소리》(길벗어린이,1996)를 읽습니다. 고향나라 아닌 중국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한겨레 ‘아무개’ 눈물과 서러움이 깊이 깃든 이야기 한 자락 읽습니다. 중국사람한테 폭죽소리란 기쁨과 웃음을 나누려는 소리였을 테지요. 한국사람한테 폭죽소리는 어떤 삶을 나눌 만한 소리였을까요.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자가용 없는 집은 드뭅니다. 자가용을 모는 이들이 내는 소리는 서로한테 어떤 소리가 될까요. 도시를 쩌렁쩌렁 울리는 온갖 기계소리는 어떤 소리가 될까요. 시골에 짓고는 도시로 전기를 보내는 발전소와 송전탑에서 내는 웅웅 소리는 어떤 소리가 될까요. 도시사람이 탈 비행기 오르내릴 비행장이 서는 시골마을에서 늘 들어야 하는 귀를 찢는 소리는 시골사람한테 어떤 소리가 될까요.


  기찻길도 시골을 가로지릅니다. 고속도로도 시골을 가로지릅니다. 도시 한복판에 고속도로나 기찻길을 놓으며 마을을 둘로 쪼개는 일이란 없습니다. 도시사람은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싱싱 내달리며 귀를 째는 찻소리를 내는데, 이 찻소리가 시골사람과 시골숲 들짐승과 풀벌레한테 어떻게 스며드는가 하는 대목을 헤아리는 분은 얼마나 있을까요.


  깊은 겨울밤, 빗소리를 조용히 다시 듣습니다. 아이들 색색거리며 깊이 잠든 소리를 가만히 듣습니다. 식구들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습니다. 고즈넉하니 아름다운 겨울밤을 보듬을 착한 소리를 생각하면서, 나도 다시 이부자리를 파고듭니다. 4346.1.21.달.ㅎㄲㅅㄱ

 

(최종규 . 2013)

 

 

이달의 사락 h*******e 2013.01.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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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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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소리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명절 때 친척 오빠들을 따라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폭죽을 터뜨리던 추억이 떠올랐다.  때때옷이라고 명절날 사 주신 새 옷을 입고 폭죽을 터뜨리고 다녔으니 새 옷이 어떻게 되었을까.  어머니의 꾸중하는 소리와 함께 할머니의 타이르는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폭죽소리는 1884년 겨울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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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소리라는 제목을 보자마자 명절 때 친척 오빠들을 따라서 동네를 돌아다니며 폭죽을 터뜨리던 추억이 떠올랐다.  때때옷이라고 명절날 사 주신 새 옷을 입고 폭죽을 터뜨리고 다녔으니 새 옷이 어떻게 되었을까.  어머니의 꾸중하는 소리와 함께 할머니의 타이르는 소리가 귓전을 맴돈다.


폭죽소리는 1884년 겨울이라는 시간적 배경을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 동화는 우리나라가 배경이 아니고 중국이 배경이다.  그러니까 공간적 배경은 중국인 것이다.  중국인 왕씨 부부가 조선에서 건너온 아이 옥희를 창고에서 발견하면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옥희는 자기가 왜 여기에 있는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지난 밤 부모님을 따라서 어느 집 창고에 들어간 것밖에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밤 왕씨 부부 집에서 제사에 올릴 엿이 없어졌을 때 옥희가 의심을 받았다.  그리고 온갖 잡일은 옥희가 도맡아서 해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왕씨 부부의 쌍둥이 자매와 싸움을 한 옥희를 왕씨 부인이 내쫓아 버렸다.  갈 곳도 잘 곳도 없었던 옥희는 살금살금 집으로 들어와 다시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폭죽소리였다.  폭죽놀이를 구경하러 나갔던 옥희는 밍밍이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옥희와 밍밍이가 친한 걸 본 쌍둥이 자매가 질투가 나서 왕씨 가게에서 돈을 훔쳤다는 누명을 옥희에게 씌우고 급기야 왕씨 부부는 옥희를 팔아 버리기로 결정하는데...


이야기의 배경은 중국이지만 주인공은 조선인이다.  중국에서 살아가는 조선인의 슬픔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하면 적절할 것 같다.  중국에서의 폭죽놀이를 보면서 조선에서의 쥐불놀이를 떠올리는 옥희의 모습을 볼 때 슬펐다.  동화를 통해 내가 살지 못했던 시대,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았던 슬픈 사람(가공의 인물이지만)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은 참 멋진 일이다.



 

 

 

b******s 2009.04.2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조선족의 애환을 담은 책.
"조선족의 애환을 담은 책." 내용보기
어린이용 그림책이라고는 하지만 초등학생(고학년) 치고는 내용면(어휘력)을 빼고는 생각한것 만큼 좋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림이나 책이 가로로 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림 같은 경우 당시 중국인들의 생활풍습을 나타내주는 것이나 조선족(당시 조선) 의 생활풍습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줄거리를 요약한다면 1884년 조선인 부부가 10살이 조
"조선족의 애환을 담은 책." 내용보기
어린이용 그림책이라고는 하지만 초등학생(고학년) 치고는 내용면(어휘력)을 빼고는 생각한것 만큼 좋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림이나 책이 가로로 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림 같은 경우 당시 중국인들의 생활풍습을 나타내주는 것이나 조선족(당시 조선) 의 생활풍습을 보여주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줄거리를 요약한다면 1884년 조선인 부부가 10살이 조금 넘은 딸아이를 중국에 중산층정도 되는 집에다가 씨앗 한 됫박에 팔아버린다. 중국인 왕씨집안에는 10살이 조금넘은 조선인과 비슷한 연령대의 쌍둥이 자매가 있다. 중국인 왕씨 부인과 쌍둥이 자매의 조선여자애를 어려움을 겪게 하는 장면들은 꼭 콩쥐밭쥐전의 스토리와 매우 흡사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동네에 사는 동갑내기 남자아이와 왕씨 집안에서 기르는 강아지 와 양이 친구가 되어서 외로움을 달래면서 지낸다. 두해가 지나 우연히 동네에 사는 남자아이에게 좀 떨어진곳에 조선족 화전민이 모여산다는 말을 듣고 왕씨 집안을 나오면서 스토리가 끝난다. 조선족의 애환을 시사하려는 것이 책의 골자인것 같지만, 별로 느끼지를 못하겠다. 하였튼 생각했던 만큼의 기대를 저버려서 돈이 아까웠다.
k********k 2005.02.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