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의 나의 모습이 좋던 싫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집을 떠나 대학을 다니던 과거 그때는, 30대에는 내가 무엇이 되어있을지를 한참이나 궁금해 했었다. 그러한 미래에 대한 궁금증, 간혹 가다가는 불안해지기까지 하던 마음은 현재에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반복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었고, 그러한 스스로를 향한 반문이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음은 부정하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때에는 지금보다는 더 많은 종류의 사소하면서 심각했던 궁금증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어디에 나의 믿음을 두어야 하나?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는가? 하는 나름대로의 심각한 물음과 당장 당구를 칠까? 아니면 과제를 할까? 하는 스스로를 죄이는 물음들.. 그때가 내 인생에 있어서 바람이 크게 불었던 때가 아니었나? 그 바람이 차게 느껴질 때도 있었고, 맞고 서 있기가 힘들어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지금과 다른 것은 바람따라 어디던 갈 수 있었던 자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던다. 그러한 나에게 이 책은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주었다. 당장 헤르만 헤세라는 대가가 쓴 글이라는 것부터 내가 이 책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었지만, 내가 하던 그 고민에 대해 이 책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나를 끌어당겼고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빨려 들어갔다. 지금 생각하면 읽지 않는 것이 나았으리라 생각된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는 사이가 좋은 친구이다. 나르치스는 아마 누구던지 가지고 싶어하는 그런 친구이지만 기대어 쉴수도 있는 인생의 연장자와도 같은 그런 대상이다. 사회 관습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서는 상당한 절제력을 지니고 있으며, 나중에는 수도원의 원장이 되며, 자신의 살아가는 방향에 대해 고민이 다소 적어 보이지만, 원하는 것을 착실하게 이루어 간다. 이와는 반대로 골드문트는 나르치스와는 다른 길을 가는데, 결국 수도원 담을 넘으면서 세상을 알아가고 속세에서 느끼는 삶의 독을 통해서 쾌락 혹은 좌절, 때로는 세상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느끼며 예술을 배워간다. 결국 골드문트는 나이가 들어 나르치스를 찾게 되고 나르치스가 원장으로 있는 수도원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조각을 하게 되는데, 그동안 세상에서 묻혀온 때가 너무 커서인지 병들어 힘든 몸으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조각에 전념하게 된다. 어느날 골드문트는 자기가 하고 싶어하던 그 일을 하다가 죽으며, 나중에 골드문트가 남긴 조각을 나르치스가 보고 표현하기 힘든 감동을 받는다. 골드문트의 죽음을 본 순간 나르치스의 갈등이 무었이었을까? 그가 가지 못한 길을 간 골드문트에 대한 부러움일까? 아니면, 그렇게 죽어간 친구에 대한 연민일까? 그러나 내가 여기서 받은 느낌은 나르치스는 그가 인생에서 지향하고 있는 무엇을 골드문트의 조각 작품에서 느끼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골드문트 또한 죽어가면서 나르치스를 통해 그가 인생에서 찾고자 했던 것을 느끼게 된다. 나의 경우를 보면, 억지로 구분하자면, 나르치스 방식으로 살고 있지 않나 하고 생각든다. 그러나 나 역시 골드문트가 수도원 담을 넘듯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담을 넘고 싶어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 이렇게 있는 것은 어쩌면 골드문트나 나르치스가 서로 살아간 방향이 달랐지만, 결국 두 사람이 간 곳은 같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느꼈기 때문이라 생각든다. 이것이 그때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었으면 하고 후회하는 이유이다. |